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곽재식 날아가다

2015.06.30 23:5806.30



날아가다


1.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날씨가 맑고 햇빛이 매우 밝은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시내에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었다. 분수가 있는 시내 교차로까지 왔을 때, 신호가 바뀌어 나는 길에 잠깐 섰다. 크지 않은 소음이 멀리까지 들렸고, 분수가 뿜는 물방울들의 잔 알갱이가 햇빛과 함께 엷게 거리로 퍼졌다. 길거리를 지나는 자동차들마저 다들 어딘가에서 즐겁게 놀고 돌아가는 길처럼 보였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먼거리에서 크게 부르는 어른 목소리였는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 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길바닥에 내어 놓은 어느 커피 가게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꾸물거리고 있다가는 아버지가 또 내 이름을 크게 여러 번 부를 것 같아서, 그게 부끄럽게 생각되어 재빨리 아버지에게 갔다.


“너, 시내에서 뭐했어?”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아버지의 탁자에는 맥주병이 둘 놓여 있었다. 햇빛이 뜨겁게 병에서 번쩍이고 있었는데도 병은 차가운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한 눈에도 낮술에 적당히 취한 모양으로, 그 눈빛은 꿀단지를 트럭째로 발견한 곰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본래 아버지는 볼품이 없는 사람으로, 다만 집안에서는 그저 어머니에게 복종할 뿐인지라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장점의 전부인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날 낮술을 마신 아버지는 유난히 후줄그레 해 보였다.


“엄마한테 그렇게 교회 안 가겠다고 떼쓰더니, 교회 안 가고 일요일 오전, 점심 내내 뭐한거야?”


아버지는 나에게 다시 다그쳐 물었다. 아버지는 옷차림도 엉뚱했고, 본래 좀 나이가 들어 보이던 그 인상도 그날은 더욱 더 늙어 보였다. 거기다가 이 좋은 여름 날, 할 일 없이 대낮부터 혼자 나와서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보다는 중년의 걸인에 더 가까워 보였다.


“가 볼께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돌아 서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심해서 가라”는 말을 하는 대신에 다른 말을 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뭐하냐? 친구 만났어? 너도 이제 중학생 될 테니까 여자친구도 만나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어지면 한가지 감각만은 예민해 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의 표본과 같이, “여자친구”라는 말을 할 때 내 표정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날, 혼자서 길을 걷던 내내, 내 표정은 실수로 흙바닥에 쏟은 아이스크림 콘과 같아 보였던 것도 포착한 듯했다.


“가 볼께요.”


내가 다시 말하고 가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급히 들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 놓고 의자를 빼 주었다.


“야,야, 여기 좀 앉아 봐.”


아버지는 나를 붙들어 앉혔다. 아버지는 어머니 혼자만 교회 다니면 좀 그렇지 않겠냐 하는 말과, 이 커피 가게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옛날 영화가 나오는데 왜 2010년대에는 왜 그렇게 초능력 영웅이 영화로 많이 나왔었는지 모를 일이라는 말과, 어머니 교회 간 동안 나 여기서 맥주 마시면서 시간 때운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남은 맥주를 다 마시더니 좀 긴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셨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2.
옛날에 한규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바로 이런 좋은 날씨인 날, 길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아버지와 내가 지금 있는 곳 같이 이런 번화가는 아니고 아파트들이 많은 주택가였다고 한다.


한규동은 햇빛이 비치는 것이 좋아서 가로수를 보았다. 가로수에 초록색 잎이 가득하게 싱싱한 것이 바람에 조금씩 떨렸다. 나무가지들이 느릿느릿 통째로 흔들렸다. 한규동은 그것도 좋아 보여서 가로수 잎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강한 햇빛이 가로수의 잎을 지나 오면서 가로수의 잎 언저리를 빛나게 하는 것을 보았다. 한규동은 손을 뻗어 가로수 높은 곳의 잎을 건드려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1.5리터짜리 콜라를 들고 앵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 가던 작은 무인기 한 대가 한규동의 손에 부딛혔다.


그때는 이제 막 배달용 소형 무인기들이 퍼져 나가던 때라서 재미로 가게에 이것저것 배달 주문을 하던 것이 많았다고 한다. 주로 아파트 단지내 상가에 입주해 있는 작은 가게들이 인근에 있는 대형 할인점과 경쟁하기 위해서 운용했다고 하는데, 집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것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할인점에서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조그마한 무인기가 과자 한 봉지, 콜라 한 캔을 들고 날라다 주는 형태였다.


아파트 단지는 집이 배열된 구조가 규치적이고 단순했기 때문에 길 찾기도 쉬웠고, 배터리 용량에 한계가 있는 무인기가 움직이며 다니기에 단지 내 상가에서 아파트 주민의 집까지는 거리도 가까웠기 때문에 장비도 싸고 간단하게 꾸밀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배달 음식을 더 빨리, 더 싸게, 더 작은 양이라도 갖다 주기 위해 무인기가 퍼졌는데, 나중에는 콜라 한 캔, 과자 한 봉지 같은 작은 물건들을 배달해도 손해가 안 난다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한규동의 손에 부딛힌 것도 바로 그런 배달 무인기였다. 배달 무인기의 프로펠러는 한규동의 손에 닿자 안전회로가 작동해 바로 멈추었지만 그래도 그의 손에는 상처가 생겼다. 멈추는 프로펠러에 묻은 피가 원형으로 날렸다. 한규동의 이마와 목에 가는 핏방울이 가늘게 떨어졌다. 배달 무인기는 어떻게든 안전하게 착륙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더 이상하게 움직이면서 배달 무인기가 한규동의 머리에 충돌했다. 1.5리터의 콜라가 든 병과 함께 배달 무인기는 한규동을 때려 넘어 뜨렸다.


한규동은 바닥에 자빠졌고, 최소한 몇 초 정도 정신을 잃었다. 한규동이 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길 저쪽에서 누가 달려 오는 소리였다.


“괜찮아?”


누워 있는 한규동의 눈 앞에 아까 보이던 밝은 햇빛과 초록색 나뭇잎이 보였고, 하늘도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달려와 그를 내려다 보는 그녀도 보였다. 한규동은 처음에는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누구인지 알아 보지도 못했다.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은 진심이어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머리칼은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야, 말 해봐. 말.”


그렇지만 한규동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너 이름 뭐야? 몇 학년 몇 반이야? 괜찮아?”


그러자 한규동은 시키는 대로 이름과 학년, 반을 말했다. 그녀는 얼굴에 조금이지만 웃음이 생겼다. 한규동은 그냥 이제부터 평생 동안 누워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계속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규동을 일으켰다. 한규동은 주춤거리며 반쯤 앉았을 때, 그녀가 바로 2년 전인가에 같은 반이었던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다. 음료수 배달하는 편의점 무인기에 부딛혀 기억 상실을 하지 않게 된 것을 그는 감사했다.


얼마 후, 가게에서 주인과 아르바이트 학생이 뛰어 나왔다. 주인과 아르바이트 학생은 서로 연결된 크랭크 장치와 같은 몸짓으로 고속으로 번갈아 가며 허리를 굽히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라고 말했다.


주인은 이 놈의 드론 안전 소프트웨어가 보통 키인 사람은 잘 알아서 피하는데, 키가 큰 사람이 갑자기 손을 들거나 하면 금방 피하지를 못한다면서 한탄을 했고, 무인기 조종과 감독을 하던 배달 아르바이트 학생은 안전 교육 받을 때 나무 밑에서 사람이 갑자기 손을 드는 경우는 못 배워서 잘 대비를 못했다면서 더듬더듬 말하였다.


한규동은 곧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다 같이 병원에 갔다. 한규동은 다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머리를 다친 것이었으니 병원에서 며칠은 입원해 있으면서 검사도 받고 안정을 취하자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가니까, 이제 괜찮아.”


한규동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이렇게 가면, 네 옆에 저쪽 사람만 있잖아. 이럴 때 편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손해 안  보는 거야. 네 편도 누구 하나는 있어야지. 나도 잠깐 따라 갈게.”


그런 이유로 그녀도 한규동의 병실에 따라 오게 되었다. 병실에서 간호사들과 경찰과 보험회사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그녀 역시 한규동의 옆에 같이 있었다. 한규동은 그녀와 무인기 조종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요즘 한 건 두 건 무인기 교통 사고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러면 너는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냐는 이야기, 돈 이야기, 대학 등록금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런 이야기를 거쳐서 마침내 미래와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한규동은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잘 주고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냥 말하기 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마음 속으로 놀랐고, 실제로 몸의 신호를 재는 병실의 기계가 그때 마다 삑삑 소리를 내기 까지 했다. 한규동의 귀에 병실의 기계가 내는 삑삑 거리는 소리는 “너 쟤 좋아하지?” “너 쟤 좋아하지?” 라고 하면서 반복해서 웃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한규동이나 그녀, 둘 중에 누구 하나가 특별히 농담을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화를 즐겁게 해 주는 사회자도 없었고,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배달하다가 떨어 뜨린 콜라병 맞고 자빠져 있다가 병원에 실려 온 상황이, 뭐 얼마나 즐거울까?


그런데도 그녀와 대화는 끊김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한규동은 이런 것은 희귀한 현상이며, 이것이 그녀와 자신 사이에 어떤 큰 의미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한규동은 점점 더 그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두 시간 사이에 한규동은 그녀가 자기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무척 많은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그때까지 살아 온 시간들은 별 말할 필요가 없는 시시한 일들이고, 가로수 밑에 누워서 그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가장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규동은 그 소중한 시간이 지금 온통 주위에서 흘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공기 중에서 감촉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규동은 우스운 일을 이야기하고 웃는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 얼굴을 보다가 무슨 말을 하다 웃었는지 잊었다. 웃을 때 그녀는 갑자기 사람이 덤벙대고 엉성해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길어 보이는 그녀의 목이 웃을 때의 그런 느낌과 상관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한규동은 그녀가 웃는 소리를 듣고 인생이 그저 통째로 흐뭇해지는 느낌이 되어 자기도 다시 웃었다.


그러고 있는데, 김교진이 들어 왔다.


“너, 괜찮아?”


다른 한규동의 친구들도 여럿 김교진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 왔다.


그들은 한규동의 친구들로, 드론 조종 클럽의 회원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모두 공원에서 만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규동이 늦어졌고, 그러다 마침 사고 소식을 듣고 다들 그를 찾아 온 것이었다. 김교진은 듬직한 목소리로 한규동의 사고에 대해 묻고,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이야기했다.


“뭐, 별 느낌은 없는데.”


한규동이 대답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기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다들 찾아 오다니, 고맙기도 하고, 갑자기 인기 있는 사람이라도 된 느낌이 들기도 하여 뿌듯하였다. 그러나 뿌듯함을 느낀 지 몇 분이 되지 않아 한규동은 그것을 깊이 후회하게 된다.


후회하기 전까지, 한규동과 그녀와 김교진과 다른 친구들은 한규동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며 모여 있었다.


한규동은 그녀와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는 남자애들, 남학생들이 하는 거 였잖아. 여자 애들은 주로 주문 받거나 음식점에서 음식 나르는 거 하고. 그런데, 무인기로 배달하면서, 배달하는 사람들이 무인기 조종만 하게 되니까, 이게 직접 몸을 써서 달릴 필요가 없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여자애들, 여학생들도 이제 무인기 조종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어. 오히려 여자애들이 더 많지. 여자애들이 무인기 조종 시험치면 성적은 더 잘 나오니까.”
“그렇지.”


김교진은 그 말을 유심히 듣다가 고개를 움직였다. 한규동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게 말이야, 남녀 평등에 대한 생각을 청소년 시절부터 심어주는 데도 무슨 역할을 하고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말을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웃으려는데, 한규동은 그녀의 눈을 보고 놀랐다. 놀랐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바로 그 깊은 후회하는 것 같은 마음이 한규동에게 밀어 닥쳤다.


그가 놀란 까닭은 그녀가 김교진을 보고 있는 표정이 자신이 그녀를 볼 때의 표정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병실 기계가 다시 삑 하고 크게 소리를 냈다.


한규동의 아버지가 오고, 그녀와 친구들이 떠나고, 한규동이 내내 그녀를 생각하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새도록 고민하는 동안, 이번에는 기자 떼들이 몰려 들어 들락거렸다.


“사고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때 상황 찍은 사진은요? 드론 비행 영상 녹화분 혹시 입수 가능하세요?”


기자들은 병상에 드러누운 한규동을 보고 도리어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친구들이 다시 찾아 왔을 때 그녀는 한규동에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금 무인기 교통 사고 때문에 난리거든.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사건 터지니까, 기자들이 무슨 ‘기술 선진국형 사고’니 어쩌니 하면서, 되게 재밌는 주제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저렇게 몰려 드는거래. 저 사람들이 다친 사람 생각이야 하겠니.”


간호사들이 기자들을 쫓아 내자, 기자들은 무척 안타까워 했다. 어떤 기자들은 흥분해서 큰 소리를 지르며 간호사들과 싸우기도 했다.


“아무것도 그림 못 찍어 가면 큰일 나는데.”


실망한 기자들은 뭐라도 찍어 가야 겠다고 서성거렸다. 기사 거리 생겼다고 쉬는 날인데도 멀리서 뛰어 온 기자들 중에는 이와 같이 희생을 했지만, 빈손으로 돌아 간다면 자기는 어쩌냐고 따지고 드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기자는 취재에 실패한 자기에게 자기 상사가 발작하듯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을 상상했고 달달 떨기도 했다. 그런 기자들은 하는 수 없이, 사고 피해자의 주변 사람이라도 취재해 가려고 했고, 이 사람들은 결국 김교진에게 모여 들었다.


그런데 김교진을 찍은 화면이 반응이 좋았다.


“단순히 기술적인 면, 경제적인 효과 뿐만 아니라 드론 배달은 문화적인 영향도 크거든요. 예를 들어서 남녀평등이요. 예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는 남학생들이 하는 거라고 흔히 생각했지만, 드론 조종으로 배달을 하면서부터는 여학생들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김교진은 목소리와 말투가 훌륭했다. 특히 김교진은 아주 적절한 정도로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이 점은 무척 중요했다. 김교진은 한 눈에 보기에 “쟤 잘생겼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잘 생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들게 할 만큼 아주 잘 얼굴이었다면, 김교진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얼굴이 잘 생겼고, 그래서 인기가 많을 것이고, 부럽다고 생각 되고, 괜히 얼굴 잘 생긴 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는 재주가 떨어질 거라고 지레 짐작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김교진은 딱 바로 그 직전 수준 만큼만 잘 생겼다. 마음 속으로 잘 생겼고, 호감 가고, 듬직하다고 받아 들이면서도 얼른 김교진이 잘생겼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긴 것인가 싶은 의심이나 자책감은 생각은 안 들만큼만 잘 생긴 사람이었다. 김교진의 영상은 여러 사람의 눈에 들었다. 김교진은 드론 조종 클럽의 회원이었고, 스스로 무인기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다들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신종 교통 사고의 희생자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늙고 힘빠져 보이고 말을 더듬거리는 전문가 학자와 같이 앉혀 놓고 뉴스를 진행하면, 어리고 밝아 보이고 언제나 얼굴빛에서부터 건강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김교진의 모습이 멋지게 비빔국수처럼 어울렸다. 텔레비전과 네트워크 방송에 그만이었다.


김교진은 인기를 얻었다. 마침 투자금을 뭉텅 챙겼지만 어디에 돈을 써야 할 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새로 생긴 무인기 회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 회사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티를 내려면 빨리 돈을 써 없애야 했기에, 일단 광고비, 홍보비로 돈을 써 없애기로 했다고 하는 것 같다. 그 회사는 김교진을 “무인기 연구 원탁 회의”라는 조직의 외부 연구원으로 영입했고, 자기네들은 능력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나이와 배경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우대한다고 자랑하는 광고도 했다.


김교진은 거기서 번 돈을 가지고도 꾸준히 드론 클럽에 나타났다.


“야, 너 지난번 광고에서 그, 누구랑 나왔었지?”


친구들이 장난치며 물으면 김교진은 텔레비전과 사업과 연예인들의 세계에 대해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김교진은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도 우쭐해 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 덕분에 우쭐해하는 것보다 더 친구들은 김교진을 떠받들어 주었다. 김교진은 유명해진 뒤에도 드론 클럽을 배신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드론 클럽이 더 좋은 기계와 더 좋은 소프트웨어로 더 재밌게 활동할 수 있도록 꽤 많은 돈을 대어 주기도 했다.


한규동 역시 퇴원한 뒤에도 드론 클럽에 꾸준히 나갔다. 그렇지만 한규동이 그곳에 나가는 것은  클럽의 다른 활동 보다는 새로 클럽에 가입한 그녀를 보러 가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한규동은 새 무인기를 고를 때나, 무인기를 개조할 때, 무인기를 조종하며 묘기를 부릴 때에, 언제나 그녀가 그런 자기 모습을 어떻게 볼 지를 생각했다. 그녀는 가끔 한 번씩은 한규동에게 관심을 가져 줄 때도 있었고, 그러면 한규동은 기뻐하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 한규동은 그녀와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한규동은 숨기려고 했지만,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았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겼고, 그 행운에 기뻐했다. 한규동은 그날 콜라 병에 머리를 맞고 그녀를 보았던 때와 오늘 그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들이, 모두 이어지는 하나의 선에 있으며, 무엇인가 의미까지 숨겨져 있는 필연일 수도 있다고 상상했다.


“이거 맛있다. 너무 짠가? 그래도 냄새는 좋네.”


한규동은 어떻게든 대화를 다시 재밌게 이어 가고 그녀를 앞에 두고 조용한 시간은 없게 만들려고 노력 했다. 그렇지만, 그날처럼 그녀와 재밌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한규동은 그 때는 도대체 뭐가 달랐을까, 그 날은 왜 그렇게 대화가 부드러웠을까, 한편으로 곰곰히 돌아 보기도 했다.


회식자리에서 그녀는 멀리 가운데 자리에 앉은 김교진이 하는 이야기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 그 자리에 모인 클럽 회원들이 거의 마찬 가지였다. 한규동 역시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만 한규동은 안타까웠다. 왜 그녀는 바로 맞은 편에 앉은 나보다, 저렇게 멀리 앉은 다른 사람에게 더 집중하는 지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생각까지 조금씩 품었다.


김교진이 말했다.


“미국에서는 엄청 고민하는 게 뭐냐면, 무인기로 사람 암살하는 거 때문에 말썽이래.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총이나 화약을 쉽게 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무인기에다가 총을 달아다가 방아쇠를 배달 집게랑 연결해 놓거든. 그리고 드론으로 길 가는 사람에게 쏴 버리는 거야. 조종하는 사람은 몇 백미터,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일 저지르고 나서 바로 멀리 멀리 하늘로 날아서 도망쳐 버리면 잡지도 못해, 목격자도 없고. 그래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데도 잡지를 못한다는 거야.”


그녀가 물었다.


“그래도 그 무인기를 추적하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무인기를 붙잡아 놓고 까보면 누가 접속해서 조종했는지 기록도 좀 남아 있을거고.”
“일단 무인기를 추적하는 것 부터가 쉽지가 않고, 루팅한 소프트웨어가 들어가 있으면 기록도 거의 안남다고 하더라고. 거기다가 작심하고 확실히 숨기려는 애들은 사람 쏴 죽인다음에 바로 무인기를 바다 한 복판으로 보내서 거기서 떨어뜨려 버린데. 그러면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떨어진 조그만 무인기를 어떻게 누가 찾겠어.”
“진짜 그러네. 무섭다, 야.”
“지난 번에 장관 회의에 들어 갔을 때 가서, 그 이야기를 했거든. 그러니까 다들 놀라더라고. 우리나라는 총기가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고, 드론이 더 퍼지는 만큼 총기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된다고, 총기 관리하는 부서랑 경찰을 막 더 들볶는 거 같더라고. 그러면서 방송에는 우리나라에는 총이 없으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내보내라고 하고.”


김교진이 장관 회의에 ‘들어 간다’고 표현한 것에 어쩐지 다들 매력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 역시 마찬 가지였다. 한규동은 어떻게든 이야기에 끼어 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 부질 없는 짓 아니야?”


한규동이 말했다. 다들 한규동을 보았다. 보는 사람들 중에는 왜 김교진이 잘 이야기하고 있는데, 쟤는 굳이 자기 잘난척 하려고 저렇게 급하게 끼어드는 건가, 싶어 약간 싫은 기분이 드는 사람도 있어 보였다. 한규동은 그것을 느껴서 주춤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렇게 끼어들었는데, 그만 말을 안 할 수도 없었다.


한규동이 설명했다.


“꼭 총이나 폭탄이 없어도 사람 공격하는 데 무인기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 황산이나 질산을 한 바가지 담아서 들고 가다가 사람 얼굴에 부딛혀도 될 거고, 아니면 휘발유로 화염병 만든 뒤에 병째로 떨어뜨려도 될거고.”


한규동의 목소리는 확실히 김교진 보다는 훨씬 못했다. 다들 김교진의 이야기에 비해서는 별로 재밌게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김교진만은 한규동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반가워 했다.


“맞아. 정말 그러네. 왜 그런 걸 모르지.”


그러자 이야기를 꺼낸 한규동 보다는 그 이야기에 감탄하는 김교진에게로 무리들의 초점은 다시 돌아 갔다. 다들 김교진에게 감탄하고 집중하는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 가자, 모든 것은 다시 순리 대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 역시 마찬 가지였다.


그 날은 그렇게 끝났다. 그렇지만 김교진은 그 이야기를 잊고 있지 않았다. 김교진은 다음 번에 텔레비전에 나갔을 때, 그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규제 당국은 너무 가까운 곳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총이 없어서 안심이라고 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총이 없다고 안심인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김교진은 누구나 살 수 있는 물질과 집안에 있는 병, 그릇등을 이용해서 드론으로 사람을 아주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김교진이 조종하는 드론이 사람대신에 세워둔 곰인형을 화염병으로 공격하고, 그 곰인형이 활활 불에 타서 숯덩이가 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은 또 인기를 끌었다.


“그런다고 느릿느릿한 정부에서 크게 뭐 움직일까?”
“움직일꺼야. 무인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녀가 묻자 김교진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김교진의 말은 맞았다. 무인기 배달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 택배 기사들과 배달 업종 종사자들은 무인기 규제 운동을 하려고 여기저기서 힘을 쓰고 있었다. “사람 체온이 있는 배달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가 그 중에서 가장 활발했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망한 구식 택배회사 직원 한 명은 정부 장관 한 명의 머리 위로 드론을 날려 보내서, 거기에 계란을 한 바가지 떨어뜨리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드론 테러의 재료로 쓸 수 있는 물질들은 철저히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휘발유, 아세톤 같은 가연성 물질에서부터, 순도가 높은 알콜, 염산이나 질산을 팔고 사는 것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도 다 사고 팔 때마다 신고해야 되는 거야?”
“드론 테러 방지법, 법 그대로 하면 그렇지 뭐.”
“그러면 몇 십만명, 몇 백만명이 신고를 할텐데, 그 신고를 받아 줄 공무원들은 있고?”
“몰라 거기까지는 생각은 못한 거 같아.”


드론 클럽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농담으로 하며 회식을 했다. 실제로 규제를 만들기는 했는데, 급하게 만든 규제가 어디까지 적용 되는 지, 어떻게 단속을 할 것인지 상상을 못했던 까닭에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이 단속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을지로에서 누가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을 모아서 그걸로 만든 화염병 드론으로 불을 질러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이 생기자, 정부에서는 급하게 근처에 있는 매니큐어 지우는 약 파는 사람들을 잡아 들였고, 이 사람들을 중벌로 다스려야 된다는 둥,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둥 또 시끌벅쩍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와 김교진과 한규동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녔다. 졸업한 후에도 종종 드론 클럽 회원들은 같이 모였다. 점점 드론 클럽이라기 보다는 김교진과 김교진을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모임처럼 변해가기는 했지만, 그녀는 모임에 꼬박꼬박 나왔고, 한규동도 꼬박꼬박 나왔다.


드론 클럽을 통해 이어지는 김교진과 한규동의 관계도 이전과 비슷했다. 김교진은 무인기에 대한 정부나 사업계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다들 감탄하고 있으면 거기에 대고 한규동이 뭐라고 한 마디 했다. 그러면 김교진은 한규동이 내어 놓은 의견의 가치를 알아 챘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더 보태서, 다시 세상에 들려 주었다. 김교진은 겸손하게도 그 생각은 “저희 드론 클럽 친구들이 내어 놓은 아이디어에 나는 약간 살만 덧붙였다”고 말했고, 그럴 수록 김교진의 생각은 더 진지하게 인정되어 그의 인망은 더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김교진의 말이 큰 돈이 된 것은 “육군 첨단 화력 계획” 때였다. 김교진은 값싼 배달용 무인기에 소총이나 폭탄을 달아서 정찰과 공격 겸용으로 쓰는 것을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 했다. 병사의 생명을 아끼면서 먼 거리까지 보면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이면서, 생각 보다 값도 많이 들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도 원래 한규동이 드론 클럽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라고. 이게 진짜로 현실화 되면, 군인들이 전부 어릴 때 만화에서 보던 로봇을 조종하면서 적과 맞서 싸우는 로봇 조종사가 되는 거라니까. 군인들도 좋아할 거 같지 않냐?”


그러면서 한규동은 전투용 로봇을 조종하는 보안 규정을 어떻게 만들면 간단하면서도 확실할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유탄을 발사할 수 있는 로봇을 띄워서 적진으로 보냈는데, 적에게 해킹을 당해서 조종사를 공격하게 된다든지,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민간인을 공격한다든지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몇 가지 설명 했다.


드론 클럽의 다른 회원들은 한규동의 아이디어를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김교진은 한규동의 보안 체계에 대한 생각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 했다. 김교진은 한규동의 생각을 좀 더 현실적으로 꾸몄고, 거기에 소형 무인기를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전술도 몇 가지 생각해 냈다.


김교진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금방 유명해졌다. 그렇지만 사실 국방부가 바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국방부 대변인은 “우선 제한적인 규모에 대해 실험적으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논의 중에 있다는 선으로 이해해 주면 좋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아무 신경도 안쓰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 말고도 국방부가 골치 아파 할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 김교진의 말은 새파란 대학생이 군대에서 하는 일을 병정놀이 장난 쯤으로 여기면서 떠드는 소리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김교진에게는 끈기도 있었고, 차근차근 일을 꾸며서 밀고 나가는 추진력도 있었다. 김교진은 적당히 날아 다니는 눈 먼 돈을 잡아 채서, 곧 무인기 회사를 하나 차렸고, 꾸준히 사업을 해 나갔다. 얼마 후에 일본과 중국에서 소형 공격용 무인기를 육군 전투병들 사이에 대량 보급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국군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겠다고 허겁지겁 달려 들었다. 그때는 김교진이 몇 십 년 동안 무기를 납품하던 대기업들과 줄을 대고 있는 상태였다. 그 대기업들은 장군들과 끈끈한 관계에 있었고, 김교진이 일을 따내는 것은 순조로웠다.


김교진은 소형 무인기를 대량으로 이용해서 야전에서 활용하는 전술은 인민군이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점점 더 판매를 늘려 나갔다. 야전부대 전투병 4명에 한 대 꼴로 무인기가 도입 되었다. 육군 보병의 주특기는 무인기 조종과 정비, 수리, 목표 관리를 중심으로 바뀌었다. 김교진의 회사는 단순히 무인기를 만들어서 팔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무인기에 대한 보급 체계와 훈련 방법 개발까지 사업을 엮어 돈을 벌어 들였다.


한규동이 취직에 고민을 하다가, 큰 소프트웨어 회사의 무인기 팀의 신입 사원으로 들어 가서, 자기 소개를 하고 회식 자리에서 강제로 먹이는 술을 마시며 괴로워 하고 있을 때, 김교진은 이미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인 부자로 국제적인 저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김교진은 단순히 부자일 뿐만 아니라, 무인기 사업계를 홀로 이끌면서 계속 미래로 나아 가는 젊은 인물의 상징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교진은 드론 클럽에 계속 나왔고, 자연스럽게도 그녀와 김교진은 연인 관계가 되기도 했다.


한규동은 그녀가 김교진과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작 드론 클럽에 나와서는 별 대단한 소식이 아니라는 듯이 가장하고, “그래? 교진이만큼 성공한 남자면 결혼도 하고 싶겠지?” 라고 말하며 큰 감흥이 없는 척 행동 했다. 나중에 한규동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심한 척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는지, 자기 스스로가 답답해서, 길을 걷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견딜수 없어서 “으이구”하고 괜히 혼자서 소리를 냈다.


한규동은 드론 클럽에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김교진과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드론 클럽에 안 나가면, 한규동은 그것은 자신이 “패배”하는 것 같다고 생각 했다. 패배라면 이미 진작에 패배한 것이라고 봐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규동은 그래도 그런 생각으로 또 그 어색한 마음과 정신적 혼란만 초래할 것이 뻔한 드론 클럽 모임에 계속 나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내 어색한 마음이었고, 끝없는 정신적 혼란이었으나, 한규동은 그래도 모임에서 그녀를 볼 때만은 몇 초 씩, 몇 번 눈길을 마주칠 때 만큼은 그것이 인생의 “좋은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드론 클럽에서 김교진 다음으로 눈에 뜨이는 회원이 되기 위해, 한규동은 꾸준히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한규동은 무인기 범죄와 무인기 교통 사고에 대해서 계속해서 묘한 것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무인기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화학 약품이나 연료를 정부에서 규제한다고 난리를 쳤잖아? 그런데 무인기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꼭 대단한 약품이 필요한게 아니야. 그냥 무게로 꽝 내려 찍기만 해도 무서운 거거든.”


한규동은 무인기에 못을 달고 모래를 채운 쇠파이프를 붙인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새로 나온 정밀 조종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그 무거운 무인기로 건물 30층, 40층 높이에서 물건을 떨어뜨려서 걸어 다니는 사람의 머리통을 정확히 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김교진이 기증한 드론 클럽 전용 실험장에서 한규동이 그것을 보여 주었을 때, 그때만은 확실히 모든 회원들이 한규동을 인상적으로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김교진은 한규동의 이야기를 가장 관심 있게 듣고 있었다. 김교진은 한규동이 한 이야기를 한국 무인기 관리 협의회라는 단체에서 이야기 했다.


“화학 약품이나 연료를 단속한다고 해도, 무인기로 사람을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정부에서는 다시 또 급하게 무인기의 무게와 상승 고도를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겠다고 했다.


“무게를 조금 밖에 못 들게 하고 날아 가는 높이도 제한하면 무인기로 배달을 어떻게 하냐? 무인기 배달업자들 다 망하란 소리냐? 그러면 먹고 살 길은 정부에서 마련해 줄 거냐?”


무인기 배달을 하는 사람들은 반발하며 공청회장에 나와서 소리를 지르고, 정부 청사 앞에 현수막을 걸고 드러 누웠다. 한편으로, 이미 다 망해가고 있었던 무인기를 안 쓰던 배달업자들은 또, “살인 기계 금지하라!”면서 규제 법령을 지지하고 나서서 소리를 지르는 무인기 배달업자를 향해 드러누웠고, 드러누운 무인기 배달업자들이 일어 서서 돌아 가려고 할 때 그 앞에 드러 누웠다.


한편 한규동 역시 멈추지 않았다.


“고도 제한에, 무게 제한을 건다고 해도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한규동은 사람 몸에 들어 가면 위험한 기름을 주사기에 넣어서 그걸 무인기에 붙여서 사람을 찌르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고, 하다 못해 먹물을 들고 가다가 빠르게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의 자동차 앞 유리창에 떨어뜨려서 갑자기 앞을 못 보게 해서 사고를 나게 하는 수법을 보여 주기도 했다.


김교진이 이런 내용을 다시 무인기 관리 협의회에 전달 했을 때, 그제서야 협의회의 높은 사람들은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 지 깨닫게 되었다.


“자동차도 마찬 가지지 않습니까. 자동차도 누구나 운전할 수 있지만 갑자기 작심하고 길가는 사람 들이 받으면 살인 무기도 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무인기에 자꾸 제한 기능을 추가하고, 무슨 이상한 특별 제한 장치를 붙이게 하고 이런 게 능사가 아니라, 무인기를 운전하는 사람을 잘 관리해야 되는 겁니다.”


협의회 회장의 말은 협의회의 중진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협의회의 중진이라는 사람들은 무인기 회사의 은퇴한 중역들과 무인기 규제 기관에서 일하다 나온 퇴임 공무원들이 많았다. 김교진은 이 사람들과 어울려 몇 차례 술 마시며 떠드는 자리를 만들었고, 폭탄주 세 잔에 김교진이 구해 온 값비싼 위스키 세 잔씩이 곧 굳건한 맹세의 순간을 만들었다. 협의회 사람들은 흩어져 무인기 회사들과 정부 사람들을 각자 나누어 맡아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강화된 무인기 심사 제도와 무인기 면허 제도가 시행 되었다. 무인기를 조종할 자격이 있는 지, 검사하고 시험하는 역할을 전적으로 무인기 관리 협의회가 맡게 되었다. 시험 응시료로 무인기 관리 협의회는 꼬박꼬박 전국의 무인기 배달업자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들였고,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한 문제집과 강의를 판매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한편으로 규정을 어기는 위험한 고공 비행을 하는 등의, 무인기 교통 법규를 위반을 단속하기 위한 조직도 필요 했다. 그런데 아직 경찰이나 정부에는 무인기 기술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것도 무인기 관리 협의회의 일이 되었다.


무인기 관리 협의회는 정부와 무인기 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뒤에, 무인기 범죄를 단속하고 점검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경찰에게 무인기 단속 업무를 이관한다는 계획으로 경찰에 무인기 교육과 훈련을 시켜 주면서도 돈을 벌었다.


무인기 관리 협의회는 점점 더 큰 조직이 되었고, 특히 경찰과 협력해 일을 하는 무인기 범죄 대책팀은 많은 인력을 거느린 힘 있는 부서가 되었다. 사시사철, 24시간 무인기를 띄워서 전국의 하늘을 감시하고 있으면서, 범죄 무인기를 추적하거나 제압하기 위한 무기까지 갖추고 있는 조직이 되기까지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무인기 범죄 대책팀은 처음에는 비행 중인 무인기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곧 불법으로 무인기를 개조해서 총, 칼이나 화염병을 장착하는 범죄자들을 찾아 다니는 일도 했다. 무인기로 마약이나 밀수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 다녀야 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서 일반 범죄 수사에 무인기 범죄 대책팀의 무인기들을 요청하는 일도 생겼다. 으슥한 골목길을 홀로 걷는 사람이 갑자기 따라 오는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을 때, 어디에선가 무인기가 한 대 날아 와 범죄를 저지르는 지 아닌지, 감시 해 주는 일이 대도시에서는 일상 생활이 되었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의 가로등에 연결된 충전 착륙장에 앉아서 쉬던, 무인기가 주변에서 움직임이 감지 되면 날아 가서 혹시 범죄가 벌어 지고 있지는 않은 지 확인하는 기능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김교진은 이 모든 일을 벌이면서, 자신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젊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시기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김교진은 계속 규제가 만들고 관리 단체를 만들면서 그것을 다스릴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런 일자리들은 그럴듯한 직함을 달고 업자들에게 호령하기를 좋아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들이었다. 김교진은 정부와 업계의 영감님들을 깍듯한 예의로 모시면서도, 또한 그런 일자리를 미끼로 내밀어 자기에게 모여 들게 했다. 김교진은 항상 굽신거리며 다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더 깊게 뿌리를 내려 다른 사람 머리 위로 자라나고 있었다.


한규동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수습사원에서 단기 계약직 사원으로, 단기 계약직 사원에서 장기 계약직 사원으로, 장기 계약직 사원에서 무기 계약직 사원으로, 무기 계약직 사원에서 의무 계약직 사원으로, 의무 계약직 사원에서 자동 계약직 사원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승진해 나갔다. 다른 사원들에 비해서는 아주 빠른 승진 속도였다. 요란하게 나날이 변해 가는 무인기 정책에 발빠르게 맞춰 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잘 제시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규동의 회사 사람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새로운 법에서 숫자 하나, 말투 하나가 바뀌는 것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 안망한다 하는 판이었지만, 그런 법의 뿌리가 사실은 한규동이 드론 클럽에서 떠드는 소리에서 나오는 것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게, 중국에서 새로 나온 드론인데, 와류형 추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적은 전기로도 훨씬 더 잘 날아.”


한규동과 김교진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드론 클럽 모임에서 한규동은 중국에서 개발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신형 무인기를 보여 주었다. 한국에서 그때까지 나온 무인기 보다 훨씬 오래, 멀리 빠르게, 무거운 것을 들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였다. 한국 회사들도 서둘러 비슷한 것을 흉내내서 만든다면서 무슨 “몇 세대 무인기를 만든다”느니, “무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어쩌니 하고 있었지만, 이 신형 무인기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제품 뿐이었다.


“이거 나온 지 몇 년 됐잖아. 왜 우리 나라에는 안 들어오는 건데?”
“한국에는 무인기 규정이 괴상한 게 엄청 많잖아. 일단 고도 제한 장치, 중량 제한 장치도 달아야 되고, 무인기 범죄 대책팀이 추적할 수 있는 추적용 RFID도 달아야 되고, 또 안전 장치 인증에, 정부에서 출시한 안전 소프트웨어도 설치해야 되고 그러니까. 중국 회사가 거기에 다 적응해서 그거 다 갖추기가 쉽지가 않거든.”
“그래서 이걸 못 쓴다고? 이거 엄청 좋은데.”


드론 클럽 회원들은 저마다 중국제 신형 무인기를 한 번씩 조종해 보면서 감탄 했다.


“한국 회사들도 이거 들어 오는 걸 반대하고 있거든. 이거 들어 오면 다들 이거 밖에 안 살 거고, 그러면 한국 회사들은 망할 거라고 온갖 수를 다 써서 반대하는 거지. 그런데 어차피 무인기 관리 협의회 사람들이 다 한국 회사 사람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안전 장치가 부족한 외국 제품은 한국에서 쓰면 안된다는 핑계로 일단 최대한 막아 보는 거지.”
“막는다고 막아질까. 이렇게 훨씬 좋은데.”
“계속 이렇게 버티면 결국 우리나라 업계에도 안 좋을 거라고. 어떻게든 쓰이기는 쓰일거고.”


한규동의 말대로, 신형 무인기는 몰래 몰래 들어 와서 점점 더 늘어 났다. 신형 무인기는 기본 성능으로만 따지면, 급정지 성능이 좋아서 안전하기도 더 안전했다. 그래도 불법은 불법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신형 무인기를 쓴다는 영세 업자들과, 그 업자들을 대충 봐주는 단속팀과, 가끔 일제 단속하겠다고 나서서 중국제 신형 무인기를 붙잡으러 다니는 행사가 계속 복잡하게 엮여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무인기 부품을 만들어서 팔던 작은 회사들이 해외에 수출을 하지 못하면서 하나하나 망해가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제 신형 무인기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에서 구식 무인기를 위한 부품이나 만들던 회사들은 수출 길을 잃었고, 곧 수출할 만한 제품을 만들 기술도 잃게 되었다. 무인기 부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들이 망하자, 대형 무인기 생산 업체들도 점점 더 사업이 피곤해지게 되었다.


“이게 다 중국산 싸구려 불법 무인기 때문입니다.”


무인기 관리 협의회에서는 날마다 그런 이야기를 표현을 바꿔가며 내세웠다.


이미 끈끈한 맹세처럼 뭉쳐 있던 무인기 관리 협의회의 그 수많은 직원들은 어떻게든 한국 무인기 회사가 연명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최대한 신형 무인기를 막아 보려고 했다. 그 사람들은 무인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배달되는 짜장면을 먹지 못해 굶주리며 괴로워하는 슬픈 아이의 얼굴을 공익 광고로 내 보내 보기도 했고, 신형 무인기를 몇 백 대 쌓아 놓고 불법 무인기를 추방하자면서 거기에 불을 지르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강화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되어 있는 신형 무인기가 잘 타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 불을 다시 붙이고 기름을 다시 붓고 하느라, 얼굴이 새까매서 한나절 내내 콜록거렸던 그 사람들의 고생을 또 누가 알겠는가?


그렇지만, 신형 무인기 불태우는 행사에서 연기 많이 마셔서 협의회 직원들과 공무원들이 다들 병원에 갔던 오전에, 무정하게도 중국과 일본의 신형 무인기 회사들이 이제 정식으로,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진출하겠다고 나서는 발표를 했다. 이제 신형 무인기들은 사람을 자연스럽 붙잡아 들어 올릴 수 있는 수준으로 개량 되어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부터, 한 사람이 하늘을 날아 볼 수 있는 장비로도 쓰이고 있었다. 아직도 무인기는 편의점 배달용으로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도 하기 어려웠던 용도로 활용 분야는 늘어 나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다 망합니다.”


신형 무인기가 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무인기 회사들은 열심히 기자들을 불러다가 큰일 났다고 했다.


무인기 회사들은 이제 어떻게든 신형 무인기에 반대하기 위해, 꾸준히 무인기 반대 운동을 해 오던 “사람 체온이 있는 배달을 위한 모임”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 체온이 있는 배달을 위한 모임” 사람들은 무인기 회사에게 “자폭하라”고 하던 적이었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신형 무인기를 반대할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한국 무인기 회사들은 이런 단체도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사람 체온이 있는 배달을 위한 모임”에서는 우리를 내쫓고 괴롭힌 무인기 회사들과 힘을 합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동안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이제 이 회사들 지원이라도 받아서 투쟁도 투쟁이지만 생계도 좀 돌보자는 사람들로 모임이 나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 체온이 있는 배달을 위한 모임”에서 “사람 냄새 나는 배달을 위한 모임”이 쪼개져서 새로 생겼다던가 그렇다.


그 무렵, 김교진이 한규동에게 연락을 해 왔다. 김교진은 드론 클럽 모임과 관계 없이 한규동과 둘이서만 만나자고 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신형 무인기 들어 오기 전에 급하게 법을 지금 새로 만들려고 하거든. 그런데 이게 굉장히 큰 일이 될 거 같아. 돈도 꽤 될거고.”


김교진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규동은 김교진을 만나 대화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어색했다. 김교진을 보고 있지만, 한규동은 계속 그녀에 대한 생각만 자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규동은 김교진 앞에서 세상 밝고 명랑한 척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큰 일인데?”


한규동이 묻자, 김교진은 지금 급하게 만든다는 새로운 법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위원회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냐면, 무인기 범죄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방법을 찾아 냈다고 하고 있거든.”


김교진이 설명하는 새로 나온다는 법은 “비행 안전 종합 관리법”이라는 것이었다. 그 법은 모든 무인기를 정부에서 관리하는 중앙 통제 컴퓨터에 전부 접속시킨 채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무인기의 움직임을 항상 중앙 통제 컴퓨터에서 항상 감시한다. 만약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무인기가 나타나면 강제로 중앙 통제 컴퓨터에서 무인기 조종을 차단시키고 안전하게 착륙하게 강제로 원격 조종한다. 이렇게 하면, 무인기로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설령 못 막는다고 하더라도 중앙 통제 컴퓨터에 남아 있는 조종 기록을 추적해서 바로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무인기에 강제로 별도의 제어 회선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강제로 장치해야 했다. 만약에 제어 회선이 없는 무인기가 비행하는 것이 발견되면, 바로 불법으로 간주하고 무인기 범죄 대책팀이 출동해서 바로 격추해서 떨어 뜨린다는 계획도 있었다. 제어 회선은 확인 신호를 전파로 보내면 바로 자기의 고유 제어 코드로 응답하게 되어 있었다. 무인기가 날아 다니는 것이 보였는데 확인 신호를 보내도, 응답이 없는 무인기가 있다면 바로 미등록 불법 무인기로 보고 격추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 제어 회선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거야?”
“그렇지. 모든 무인기 마다 다 무조건 제어 회선을 설치해야 할 거니까, 이거 제어 회선 사업 따내면 엄청 큰 돈이 될 거라고.”


김교진은 말을 멈추고 한번 웃었다. 그리고 김교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신형 무인기도 막을 수 있을거야.”
“어떻게?”
“신형 무인기는 비행 방식이 다르잖아. 그래서 제어 회선하고 제어 소프트웨어를 따로 만들어야 될 거거든. 그런데, 법 시행하기 전에 신형 무인기용 제어 회선은 개발을 안 할 거야. 구형 무인기용 제어 회선만 있는 상태에서 법을 시행할거라고.”
“그게, 그래도 돼?”
“위원회 사람들 논리는 이거지. 어차피 국내 합법 무인기의 99 퍼센트 이상이 구형 무인기인데 신형 무인기용 제어 회선은 비용을 들여서 정부 주도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거지. 이렇게 되면, 신형 무인기는 열심히 우리나라 기준에 맞게 설계 바꿔서 제품을 팔려고 해도 제어 회선을 장착을 할 수가 없어서 무조건 다 불법이 될 거라고.”
“신형 무인기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제어 회선을 개발하면?”
“개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그런데 제어 회선이 중앙 통제 컴퓨터랑 연결이 되어야 되는 거잖아. 그런데 외국 회사들이 우리나라 중앙 통제 컴퓨터랑 접속하는 걸 잘 만들 줄 알겠냐? 중앙 통제 컴퓨터 관리팀에서도 귀찮게 그런거 도와주는 데 애 쓸 사람도 없을거고. 억지로 억지로 신형 무인기용 제어 회로랑 제어 소프트웨어 만든다고 해도, 안전 심사 받으려면 장관 승인까지 받아야 되는데 1,2년에 될 일은 아니지.”


김교진은 그 말하는 음성 속에서도 이미 더욱더 막대해진 부유함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한규동은 감탄하면서도, 김교진이 왜 자기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는지 궁금해 했다.


김교진은 곧 거기에 대해서도 설명 했다.


“새 법이 나와서 중앙 통제 컴퓨터가 돌아 가기 시작하면, 무인기 범죄 대책팀이 하는 일이 엄청 늘어날 거거든. 일단 미등록 무인기가 뜨면 찾아내서 빨리 격추하는 것부터가 엄청 큰 일일테니까. 그래서 무인기 범죄 대책팀을 지금보다 한 세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더 늘리려고 하고 있는데, 거기서 네가 한 분야 좀 맡아 주면 어떤가 해서.”
“내가? 나 지금 회사에서 이제 신입사원 벗어난 지가 언제라고 그렇게 큰 일을 할 수가 있나.”
“왜. 너 만한 사람도 없어. 무인기 범죄에 대해서는 드론 클럽에서 네가 아이디어 제일 많았잖아.”


한규동은 잠깐 동안 높아진 지위와 넉넉해진 월급 통장을 상상했다. 김교진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고, 한교진은 김교진이 이런 일에서는 매우 믿음직스럽다고도 생각 했다. 지금까지 김교진이 발을 잘못 디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김교진이 한규동에게 한 제안은 그날도 굳건한 성공의 계획처럼 들렸다.


그런데 한규동은 김교진이 드론 클럽에 대해서 말한 것을 듣고 다른 것을 하나 물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의문도 없이, 깊은 생각도 없이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런 일 있으면, 드론 클럽에서 애들 다 있을 때, 이야기하지, 왜 나한테만 따로 이야기 해?”


김교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진 김교진의 대답은 한규동이 그날 제대로 기억하는 마지막 말이었다.


“드론 클럽에 내가 이제 나가기가 좀 애매해져서. 걔랑 헤어졌어. 그러니까 아무래도 당분간 다시 그런 모임에서 얼굴 보는 게 영 이상하겠더라고. 걔가 이렇게 생활이 달라지는 것에 적응을 못하더라고. 지금쯤 헤어지는 게 걔한테도 결국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한규동은 그 말을 듣자 문득 주변이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교진의 말투는 매우 오묘해서 한규동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김교진은 그녀가 자신에게 버림 받았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비열하게 낄낄대고 있지도 않았고, 지저분한 미련에 궁상 맞은 모습도 아니었다. 과연 누군가를 사랑했던 적이 있는 사람 같게 들리는 착찹하면서도 쓸쓸한 말투였다. 한규동의 마음 속에 그녀의 웃는 모습에 대한 기억과 슬퍼하는 모습에 대한 상상이 막 떠올라 가슴에 축축 쌓여 나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들어 있던 무슨 틀이나 창문 같은 것이 단숨에 산산히 쪼개져 부서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한규동에게, 김교진은 자신의 꿈꾸던 사랑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꿈도 꾸지 못한 이별까지 빼앗아 간 것 같은 엉망이 된 기분을 느꼈다.


한규동은 김교진에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규동은 김교진의 제안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규동은 그 동안 온힘을 다해 보지 않고 있던, 그녀에 대한 소식을 샅샅히 다시 조사해 찾아 보았다. 김교진의 말대로, 그녀는 김교진과 헤어진 것처럼 보였다. 김교진의 결정이 과연 순리대로 였는지, 그녀는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더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김교진을 격렬히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한규동은 그녀가 그런 이유로 슬퍼한다는 사실에 또 격렬히 속이 터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 며칠 정도는 한규동이 이러한 소식이, 이제 자신이 그녀와 사귀며 지낼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한규동은 그녀에게 한 번 괜히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통화를 하고, 또 다시 며칠 간 생각을 하면서 한규동은 이미 자신은 그녀의 사랑을 받기 매우 어려운 위치에 이상하게도 굳건히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김교진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러자 애초에 별 생각도 하지 않던 한규동과의 거리는 덩달아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규동으로부터 멀어 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식도 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1년 쯤이 지나서, 김교진이 이야기했던대로 중앙 통제 컴퓨터가 모든 무인기들을 관리하는 비행 안전 종합 관리법이 시행되었다. 김교진과 위원회는 수없이 많은 제어 회로를 팔고 중앙 통제 컴퓨터를 팔고, 중앙 통제 컴퓨터 관리 사업을 맡아 하면서 다시 돈을 벌었다.


엉성하게 급하게 만든 제어 소프트웨어 때문에 합법적으로 비행을 하고 있는데도 갑자기 중앙 통제 컴퓨터의 오류로 강제 착륙을 당해서 불만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분명히 합법 무인기를 쓰고 있는대도 확인 신호에 응답이 없었다면서 격추 당한 사람들이 가끔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무인기 범죄 대책팀에 훈련이 부족한 팀원들이 많아서 정작 불법 무인기들은 제대로 단속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야 도입 초기의 부작용이라면서 덮어 나갔다. 그러나 중앙 통제 컴퓨터와 위원회에 불만을 품는 업계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 났다.


그 무렵, 한규동은 위원회를 망하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규동은 중앙 통제 컴퓨터에 침입하여 해킹할 방법을 찾아 냈다. 원래 몇몇 회사의 무인기 조종 소프트웨어의 보안 프로그램은 엉성하기로 악명 높았는데, 중앙 통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역시 급하게 만든 만큼 비슷한 오류는 많았다.


한규동이 중앙 통제 컴퓨터를 부수어 큰 피해를 입히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한규동이 일을 저지르는데 시간이 걸린 것은 오히려 한규동이 그 피해를 줄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한규동은 갑자기 무인기들이 추락하여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했고, 구조 업무나 응급 약품을 배달하는 무인기는 오작동을 하지 않도록 골라 냈다. 한규동이 일을 벌일 준비를 하는데 걸린 대부분의 노력과 시간은 그런 배려에 소요 되었다.


한규동이 중앙 통제 컴퓨터에 접속해서 원격 통제 권한을 얻었던 날, 그날 직접 그 난리를 보았던 사람들은 굉장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영감을 받을 정도였다.


전국의 모든 비행중인 무인기들이 중앙 통제 컴퓨터에 모조리 다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한규동은 중앙 통제 컴퓨터에서 단 한 번의 명령으로 전국의 모든 무인기를 일시에 다 오작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한규동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거리 곳곳을 날던 무인기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놀랐을 때, 벌써 그 많은 무인기들은 날던 방향을 바꾸어 일정한 곳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규동은 전국의 모든 무인기들을 위원회 건물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 많은 무인기들이 줄을 지어 한 곳으로 모여 드는 모습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철새들이 수없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무인기 한 대 한 대가 먼지 입자처럼 되어 아주 거대한 검은 회오리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무인기의 무리들은 세워 놓은 안내 간판으로 달려 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무인기들이 계속해서 위원회 건물 앞으로 내려 꽂으며 충돌했다. 수십대의 무인기들이 한꺼번에 충돌하며 부서지고 쪼개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위원회 건물의 안내 간판과 입구 벽돌이 무참히 깨져 나갔다. 고장난 무인기의 깨진 조각이 근처에 수북수북히 쌓여 나갔다.


한규동은 곧 자신이 붙잡힐 거라고 생각 했다. 너무 큰 사건이었고, 한규동을 붙잡으러 나선 사람들은 그만큼 많았다. 한규동은 자신이 잡힐 것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지만 한규동은 후련하고 기뻤다. 그 이유는 김교진이 이제 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커다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중앙 통제 컴퓨터와 무인기 제어 체계의 많은 부분을 맡고 있던 김교진은 모든 것을 잃을 거라고 생각 했다. 죄를 지은 것이 되어 벌을 받지는 않더라도, 손해를 배상하거나 돈을 내어 놓아야 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했다. 설령 무슨 꾀를 써서 그런 것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위원회는 바뀌고 김교진의 사업이 기울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를 보호하고 미래의 무인기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위대한 발상이라고 선전했던 단체와 기술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는 드러날 거라고 믿었다.


한규동은 붙잡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그녀를 찾아 가 만났다. 그때 한규동은 이제 어떻게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지내던 것, 적어도 행복해 보이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던 것은 자신에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규동이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한규동은 다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돌이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행복한 삶을 찾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한규동은 드디어 오래간만에 다시 그녀와 함께 정말로 즐겁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었다. 나무 밑에 쓰러져 그녀를 보았던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엄지 손가락 만한 아주 작은 휴대용 초소형 무인기를 가볍게 날려서, 자기 사진을 자기가 찍고 싶을 때 휴대용 초소형 무인기로 찍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한규동은 그런 무인기도 일일히 중앙 통제 컴퓨터에 접속을 시키고 비행할 때마다 통신을 해야 하는 게 지금 법인데, 어떻게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봐야 겠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로 시작을 했지만, 그녀는 곧 한규동에게 다른 많은 즐거운 이야기들을 더 들려 주었다.


그녀는, 그녀의 직장 동료와, 한규동이 보기에는 한심하고 아둔해 보이기만 하는 남자와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한규동은 다시 답답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래도 웃으며 그녀와 농담을 하며 떠들었다.


그녀와 헤어지며, 그녀를 계속 쳐다 볼 때, 한규동은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었다. 한규동에게 오랫 동안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어떤 목표 같은 것이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남자의 다툼의 일부로, 그것도 김교진은 다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녀를 생각 했음을 한규동은 깨달았다. 그녀 또한 그 동안 성장하고, 고생하고, 슬퍼하고 기뻐했을텐데, 그녀 역시 자기만의 관점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규동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 한규동은 김교진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저지른 중앙 통제 컴퓨터 해킹 사건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관계 부처의 장관이 바뀌고 위원회 위원장이 사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리고나서 이제는 “절대 해킹할 수 없는 중앙 통제 컴퓨터로 추가 프로그램을 개발해 설치 하겠다”는 계획을 정부는 발표 했다.


위원회는 이중 보안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대한 사업을 또다시 김교진과 동료 업체에게 맡겼다. 김교진과 위원회 사람들은 이제 모든 무인기에게 제어 회선 뿐만 아니라, 새로 개발한 별도의 보안 회선을 다시 다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김교진은 그 장치들을 만들어서 다시 팔기 시작했다. 모든 무인기들마다 하나씩 보안 회선을 팔아 치웠다. 이 복잡한 보안 회선이 오류를 일으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인기에 대해서는 추가로 개조를 하거나,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김교진의 회사와 위원회는 교체비와 개조비를 받아서 다시 돈을 벌었다.


3.
아버지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을 때, 마시던 맥주가 다 떨어졌다. 아버지는 맥주를 더 주문했다. 작은 무인기 한 대가 맥주가 든 잔을 들고 날아 와 탁자 위에 맥주를 내려 놓고 다시 날아 갔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잘 하라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길가다 갑자기 자리에 앉은 초등학생 입장에서, 맥주 마시는 사람에게 듣기에는 상당히 긴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 결론으로 덧붙이는 말에서, 어떻게 “잘 하라”는 것인지는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너도 좋아하는 여자 애 생긴 거 같으면, 잘 하라 이 말이야.”
“예?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대답하면서도 얼굴이 달아 올랐다. 나는 얼른 다른 말로 내 얼굴색을 감추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야기에 나오는 그 여자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버지는 대답하기 전에 새로 온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그때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보니, 어머니께서 우리를 발견하시고 이쪽으로 오고 계셨다. 일요일 오후 햇빛 때문에 어머니는 손을 이마에 대고 계셨다. 나에게 한 마디 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른하게 내 옆을 지나가는 거리 자동차의 소리와 분수의 물줄기 소리 때문에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왜 대낮부터 애를 앉혀 놓고 길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는 거냐고 아버지에게 투덜거리시는 그 다음 이야기는 잘 들렸다.


“저기 있네.”


아버지는 그때 그렇게 짧게 대답하시며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가리켰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는데, 그 표정은 지구상의 모든 꿀단지를 다 차지한 곰과 같은 얼굴이었다.


- 2015년, 삼성동에서

mirror
댓글 2
  • 정도경 15.07.01 14:59 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계약직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슬프네요 ㅠ

  • 정도경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07.01 17:47 댓글

    중간에 이렇게 사설조의 열거법을 한번 넣는 것을 너무 많이 써먹어서 약간 지겹다 싶은 느낌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매번 왜이리 재밌는지 꼭 넣게 됩니다. 이런 내용이 좋아서 이런 열거를 아예 따로 다룬 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는 나오자마자 사서 본 기억이 납니다.

분류 제목 날짜
엄길윤 자동차 (본문 삭제) 2017.01.31
이나경 사랑손님과 나3 2017.01.31
곽재식 잡귀야 나한테 달라 붙지마라5 2017.01.31
아이 청포로 3057 (본문 삭제) 2017.01.01
곽재식 박승휴 망해라 (본문 삭제)2 2017.01.01
해망재 효성동 손 여사의 한숨1 2017.01.01
곽재식 해변의 휴양지4 2016.11.30
유이립 폴라리스의 기사 2016.11.30
pilza2 노래의 탄생2 2016.11.30
엄길윤 닫히다 (본문 삭제) 2016.11.30
곽재식 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 (본문 삭제)4 2016.10.31
곽재식 재건축의 마신7 2016.09.30
전삼혜 안드로이드 고양이 소동2 2016.09.30
해망재 겨울비 2016.08.31
곽재식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 (본문 삭제) 2016.08.31
미로냥 푸른 수염, 혹은 긍정의 증명 2016.08.31
유이립 모두 엇갈리다 2016.07.31
곽재식 따주십시오의 의미에 관한 신고찰6 2016.07.31
정도경 황금의 피 -- 본문삭제6 2016.07.31
곽재식 재식주의자4 2016.06.30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47 Next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