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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가장 무서운 이야기

2015.04.30 23:3004.30

황량한 기차역 광장에 우리 셋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 낯선 지방에 아는 사람 없고, 길도 몰랐다. 무작정 시내로 오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숲을 벗어나 번화가로 나왔다. 시내 모든 가게들은 간판에 불이 꺼졌고, 차도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인도를 따라 무작정 걸으니 기차역 광장에 도착했다. 내가 말했다.


“서울이면 지금부터 불타는 밤 시작인데..니들 정말 여기 아무도 아는 사람 없어?”
 
바람이 뭔가를 스치고 갔는지 그림자가 흔들렸다. 멀리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광장에 홀로 서 있는 가로등은 어둠을 막기 역부족이었다.
 
"여기 우리 밖에 없어. 어쩌지?"
 
가로등이 희미하게 깜박이다가 꺼졌다. 우연의 일치에 우리는 움찔했다. 민동식이 투덜댔다.
 
"낮에 괜히 귀신 이야기 해가지고..."
 
나는 기차 역 광장을 둘러봤다. 온통 컴컴한 어둠뿐이었다. 뒤통수가 순간 서늘해져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겁쟁이가 되었을까? 그래 낮에 괜히 귀신이야기 해서 그래.
 
 
10시간 전, 나 차길현, 하동진, 민동수는 군 전역 후 복학 시기를 기다리다 선배의 부름에 지방으로 내려갔다. 선배는 그 지방의 낚시 축제에 참가 중이었다. 우리 셋 중 낚시는 낚싯대에 지렁이를 물려 물속에 담근다 이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할 일없고 무료했기에 두말없이 기차에 올랐다. 하동진은 기차에 오르자마자 평범한 여행객처럼 보이려면, 통기타를 가져와야 한다며 통기타를 꺼냈다. 정작 기타 치는 건 민동수의 역할이었다. 하동진은 기타를 칠 줄 몰랐다. 민동수가 칠 줄 아니까 능숙한 폼으로 기타를 잡아 몇 곡을 튕겼지만 보컬이 기타연주를 받쳐주지 못해 듣기 민망한 노래가 되었다. 민동수는 승객들에게 무언의 야유를 받아 마음의 상처를 입어 기타를 내려놨다. 하동진은 낄낄 거리며 삿대질을 했다.
 
"야 남자가 가오 죽고 어떻게 사냐? 사나이 아냐? 분위기에 쫄긴. 나 같으면 내렸어. 집에까지 걸어 되돌아갔다.“
"뭔 헛소리야. 니미 기타 삼 개월 배우고, 집에다 모셔두는 놈이. 기타가 상전이냐? 집까지 걸어가긴. 이십일 세기에 스마트폰으로 맵 찍어서 근처 역 아무데나 찾아가면 되지."
"너희들 우리 가는 곳에 아무도 아는 사람 없어? 친척이라든가."
 
내 물음에 민동수가 대꾸했다.
 
"사나이가 두 쪽 달고 무대포도 써봐야지. 선배도 생판 모르는 곳인데, 그냥 찾아가서 축제 참여하는 거야. 쫄릴게 뭐가 있어?"
 
하동진이 스마트폰을 켜서 맵 지도를 띄웠다. 조롱하듯 내 눈 앞에서 흔들었다.
 
"봐봐. 뭔 걱정이야. 좌악 뜨잖아. 거기 명물, 숙박지, 관광. 이런 만능시대에 뭐가 걱정이야?!"
 
친구들이 나를 겁쟁이로 몰아가 놀리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상하게 남자들 사이에서 미래에 대한 예비를 논하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
 
"알았어. 새끼들아. 이 형이 혹시나 하면 품이라도 팔아서 서울 가는 기차 비 벌 테니까 걱정 마."
 
그리고 우리는 미리 마중 나온 선배와 만나 낚시축제에서 놀다가 스마트폰을 호수에 빠뜨려 잃어버렸다. 우리 셋 전부.
 
 
선배는 능숙하게 얼어붙은 호수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낚시 줄을 담갔다. 우리는 낚싯대도 없었고, 할 마음도 없었다. 셀카나 찍고, 겨울 회나 맛볼까 해서 왔는데, 선배의 낚시찌는 한참 동안이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니들 자연의 풍취를 즐길 줄 알아야 해. 맨날 스마트폰이나 주물럭거리고, 니들이 얘냐? 남자라면 자연과 어울리는 아웃도어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지.”
“선배. 저 강원도에서 전역했어요. 자연이라면 충분해요. 오월 달까지 눈 안 녹는 거 본 적 있으세요?”
 
멀리서 민동수와 하동진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수 얼음에 뚫은 낚시 구멍으로 밀어 서로의 발을 빠뜨리고 있었다. 녀석들이 물귀신 어쩌고, 저쩌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놈들 저렇게 놀다 한번 빠져봐야 정신 차리지. 물귀신은 뭐하나?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나의 혼잣말에 선배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배는 낚시 대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차길현. 애들 모아봐.“
 
선배의 정색에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서둘러 민동수와 하동진을 데리고 선배 앞으로 왔다. 나는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혼날 것을 각오했다. 민동수와 하동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선배를 돌아가며 쳐다봤다. 나도 무엇 때문에 혼날지 몰랐지만 선배는 쉽게 정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친구 같지만 중요할 때는 화를 내고, 진지했다. 민동수와 하동진도 왜인지는 모르나 선배에 대해 알고 있기에 웃음기를 바로잡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니네 떠들면서 뭔 소리 했어?“
 
하동진이 우물거리자 민동수가 대신 말했다.
 
”별말 안 했는데요. 낚시 구멍에 밀어 발 빠뜨리기 놀이하다가...“
“뭐가 잡아당긴다고?!”
 
선배의 억양이 높아지자 민동수는 침묵했다.
 
“왜 물귀신 얘기를 꺼내?”
 
하동진이 설명했다. 서로 구멍에 빠뜨리기 하다가 제 발 앞 못 보고 스스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 물귀신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물귀신이 잡아끈다고, 너도 조만간 물고기랑 헤엄 칠 거라고...농담인데요?”
“야 이놈들아. 여기 재작년에 세 명 빠져 죽었고, 작년에 한 명 빠져 죽었어. 저거 안 보여?”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진지한 표정으로 짚 인형을 얼음 구멍 안으로 담그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사람이 매년 익사하자 물귀신을 달래기 위해 낚시 축제 주최 측과 마을 사람들이 축제 때마다 사람 모양으로 짚을 삼아 물속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야 니들 말이 씨가 돼. 귀신 이야기하면 귀신이 자기 얘기하는 줄 알고 찾아와. 어렸을 때 한 번씩 들었잖아? 못 들었어?”
 
우리 셋은 이십일 세기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선배 말에 거역할 수 없어 머리를 깊게 숙였다.
 
 
선배의 꾸중에 기가 죽은 우리들은 멀뚱히 선배의 낚시질을 구경하다가 좀이 쑤셔 낚시터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러다가 축제를 쫓아온 상인들의 간이 포장마차를 발견하고는 들어가 대낮부터 소주 3병을 시켜, 한 사람당 한 병씩 해치웠다. 술 먹다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동진이 피식 웃었다.
 
“왜? 물귀신이라도 나타났대?”
 
선배의 꾸중이 마음에 남았는지 퉁명스러웠다. 나 역시 차라리 주최 측과 마을사람들이 진지하게 여긴다고 분위기에 맞추라고 하면 모를까 귀신 이야기 하지 말라니.
 
“선배 남자다운 줄 알았는데 잘못 봤나? 말이 뭐가 씨가 돼. 쫄보네.”
 
노란 조끼를 입은 축제 진행요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호수가 갈라져서 사람들이 물에 빠졌어요!”
 
호수 쪽을 쳐다보니 사람들이 호수 주위에 모여 웅성대는 모습이 보였다. 노란 조끼 입은 진행 요원들이 둥그런 고무 튜브를 가져와 밧줄에 묶기 시작했다. 우리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일어나 달려갔다. 호수 중앙이 좌우로 크게 갈라져 얼음과 사람들이 호수에 둥둥 떠 있었다. 진행요원들은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향해 고무 튜브를 던졌다. 나와 친구들은 낚시하러 온 사람들과 같이 밧줄을 잡고 진행요원의 신호를 기다렸다. 얼음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가까스로 고무 튜브를 잡자 진행요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가 내렸다. 밧줄을 잡은 사람들이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고무 튜브는 호수 바깥으로 끌려왔다. 호수에 빠진 사람은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진행요원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인공호흡 했다. 민동수가 말했다.
 
“선배는 어딨어? 내가 걸어볼게.”
 
하동진과 나는 통화하는 민동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민동수가 몇 번을 연속 걸었지만, 선배는 받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말이 씨가 된다는 선배의 호통이 스쳐갔다.
 
“저기요 도와주세요!”
 
진행요원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호수로 향했다. 우리가 있는 호숫가에서 먼 곳에 어떤 사람이 물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잠겼다 나왔다하는 머리모양이 영락없는 선배였다.
 
“저거여. 드디어 나타났구먼.”
“저 끔찍한 것이 올해도 왔어.”
 
주위 사람들이 사투리 섞인 억양으로 한 마디씩 했다. 진행요원의 고무튜브는 사람에게 닿지 않았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 가슴이 잠길 때까지 걸어가더니 다시 튜브를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허우적대는 사람 부근에 떨어졌다. 진행요원이 손을 들었다가 내리자 사람들 모두가 밧줄을 잡아 당겼다. 밧줄이 길어 힘이 잘 집중되지 않아, 호수의 파도를 이길 수 없었다. 누군가 외쳤다.
 
“젊은이들! 호숫가 안으로 들어가서 댕겨봐!”
 
나와 친구들은 호숫가 안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갔다. 진행요원과 힘을 합치어 밧줄을 잡아당겼다. 고무 튜브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음조각들이 호수 물에 잠겼다가 뜰 때마다 물이 요동쳐 밧줄이 호수 안으로 끌려가는 게 느껴졌다. 물귀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안 돼. 허튼 미신에 홀리지 않았지만, 나는 소름이 곤두서면서 뭐가 초자연적인 존재와 마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넘실거리는 저 호수 물속에서 당장이라도 하얀 손이 튀어 나와 고무 튜브를 낚아챌 것 같았다. 고무튜브는 뭔가에 끌리듯 점점 멀어지다가 나와 친구들의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호수가로 가까워졌다. 진행요원이 밧줄을 놓고, 호수 안으로 더 들어가 수영으로 고무 튜브에 접근했다. 고무 튜브를 끌고 나오면서 사람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원재씨! 정신차리세요! 원재씨!”
 
나와 친구들은 허망하게 밧줄을 놓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선배가 아니잖아? 민동수가 주머니를 뒤지다가 비명처럼 외쳤다.
 
“내가 다시 걸어볼게...내 폰! 어딨어?!”
“악! 내 폰도. 약정 20개월 남았는데!”
 
나도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스마트 폰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들은 호수에서 나오자마자 난로 주위에서 몸을 말리라는 진행요원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사방팔방으로 선배를 찾아 다녔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모여 있으면 얼굴을 들이밀어 선배를 찾았지만 선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들은 스마트 폰을 잃어버려 선배를 찾을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며, 구조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물어봤다. 마을 사람들과 진행요원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사히 전부 구조했어요. 올해에는 희생자가 더는 생기지 않겠어요.”
“다행이구먼. 짚 인형 태운 보람이 있었어.”
 
사람들은 우리의 사연보다 자신들의 얘기에 더 열중했다. 우리가 낙담한 순간, 어느 진행요원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진호씨의 후배들이죠? 저는 축제 인터넷 카페 사람인데, 웬 아마추어가 아까 바다낚시처럼 낚싯대 휘두르다가 카페 부회장님 눈을 찔렀어요. 진호씨가 지금 앰뷸런스로 동행했어요. 두 시간 내로 돌아오신다고 어디가지 말고 꼼짝 말고 기다리시래요.”
 
갑작스런 소식에 우리의 불안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하동진은 호기심에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나름대로 사고 상황을 그려나갔다. 민동진 역시 적당히 걱정하는 척하며, 얼마나 다쳤는지 궁금 해했다. 그래 사람이 다쳤다는데 선배를 찾았다고 너무 좋아할 수만은 없지.
내 눈에 해가 지면서 만들어내는 노을이 들어왔다.
 
 
선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자 축제 운영진이 시내까지 태워준다고 했지만 우리는 선배를 기다리기 위해 거절했다. 전화로 선배의 소식을 들으려하는데 선배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친한 회원들이 모두 부회장을 쫓아갔기에 통화할 수 없었다. 대신 카페 메신저를 통해 쪽지를 넣어준다고 했다. 축제 운영진은 호수를 둘러싼 숲을 빠져나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랜턴을 빌려줬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기다렸으나 선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숲이 흔들렸다.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흡사 울음소리 같았다. 낮의 물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셋 누구라 할 것 없이 호수를 떠날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랜턴을 켜고 숲길로 향했다. 시내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경찰 순찰차를 만날지 몰라. 가게 들어가서 뭐라도 먹으며 전화 빌리면 되지. 하지만 기차 역 광장까지 걸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마주치지 못했다.
 
 
내 라이터의 불이 일시적으로 기차역 광장의 어둠을 밀어냈다. 싸늘한 바람이 가스라이터의 불을 짓밟았다. 다시 키려 했지만, 부싯돌의 순간적인 불빛이 가스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럴 때 스마트 폰이 있었더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하동진이 투덜댔다.
 
"이런 젠장. 할부 아직 이십 개월이나 남아 있는데."
 
하동진은 인상을 찌푸리고 추운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민동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야 어디 잘 때라도 알아보자. 여관이나 모텔."
 
주위를 둘러봐도 불이 들어온 건물이 한 군데도 없었다.
 
"지방은 밤에 장사 안 하나? 뭐 먹고 살려고..."
 
나는 말을 하다가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을 발견하고 친구들에게 알렸다. 나와 친구들은 상대가 무서워하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어둠이 눈에 익자 사람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대략 중년의 남자로 보였다. 상대가 핸드폰을 꺼내 우리 얼굴을 비췄다.
 
"뭐여. 잘 때 구해? 따라 올텨?"
 
사막에서 물을 구하는데 갑자기 우물이 나타나자 우리는 대답보다 웃음을 먼저 터뜨렸다. 하
동진이 까불거리며 나섰다.
 
"저기 아저씨. 그보다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우리 핸드폰 여기 낚시 축제에서 빠뜨려서 모두 고장 났거든요. 그 전에 먼저...야! 니들 선배 번호 알아?"
 
내 머리로 공익광고가 지나갔다. 소중한 사람의 번호 정도는 외워놓으라는....우리 중 아무도 선배 번호를 외우지 못했다.
 
"엄마한테 걸어서 선배한테 알리면 되지. 엄마가 나 먼데 간다고, 선배번호 저장하라고 해서
했어.“
 
민동수가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년의 남자는 핸드폰을 점퍼 주머니 안에 넣었다.
 
"총각들. 미안한데. 이 전화는 통화가 안 돼. 선불 폰이야 다 썼어. 잘 때 있는데 따라 올껴?"
 
민동수와 하동진이 발걸음을 뗐다. 나는 친구들을 붙잡았다.
 
"야 니들 임마. 애냐? 덜렁덜렁 따라가게? 잘 때가 어디예요? 여관이예요?"
"쪽방. 오갈 데 없으면 자고, 노가다 뛰러 왔으면 자고, 가진 것 없을 때 자고. 싫어?"
 
남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졸졸 쫓아갔다. 남자는 횡단보도를 통해 기차 역 광장 건너편으로 넘어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연탄과 쉰내가 풍기는 복잡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고 돌았다. 붉은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철문 앞에 섰다. 사람 키보다 작은 철문을 힘으로 밀어붙여 반강제 여니 끼이익 하는 쇳소리가 밤에 울려 퍼졌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니 좁은 계단이 위로 향해 있었다. 계단 끝에는 중앙에는 좁은 복도와 양 벽에는 나무문이 줄지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남자는 가장 구석 나무문 앞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
 
“하루 오천 원."
 
민동수가 돈을 꺼내려는 하동진과 나를 저지했다.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지. 졸려 뒤지겠다. 애들아. 형이 쏜다.”
 
나는 나무문 옆에 자물쇠 걸이를 발견했다.
 
"이건 뭐예요? 왜 밖에서 잠그게 돼 있어요?"
 
남자는 나무문 옆 스위치를 눌러 복도의 불을 밝혔다. 남자는 중년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쭈글쭈글한 얼굴 피부는 녹아내리다 굳은 것처럼 보였고, 머리카락은 엷은 백발이었다. 중년을 넘어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총각들 까다롭기는...여기가 호텔이여? 쪽방이야! 문고리도 문구멍에 비닐 노끈 달았는데, 어떻게 잠궈? 노가다 꾼들 장기 투숙 때 지들이 자물쇠 사서 일하러 갈 때 잠궈. 안에도 문 옆에 자물쇠 걸이 있으니 자물쇠 있으면 걸어. 훔쳐갈 꺼 있거나 수배자면 걸어. 나중에 잊어버렸다 지랄 마. 낼 아침 열시까지 나가!"
 
나는 남자의 기에 눌려 할 말이 없었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어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우리는 불을 켜고, 방안에 들어섰다. 벽지에 붉은 갈색의 뭔가가 붓으로 휘갈긴 듯 잔뜩 말라붙어 있었다.
 
"이거 뭐야? 피야?"
 
하동진의 말에 민동수가 대답했다.
 
"아냐. 곰팡이 일거야. 내가 알어."
 
민동수는 말을 마치고, 방 한 구석의 이불을 끌어다 폈다.
 
"혹시 몰라. 여관은 자살 많이 해. 그래서 귀신 쫓으려고, 방에 부적 붙여놔. 길현아 부적 있나 봐봐."
 
내가 하동진 말에 이끌려 방을 살피자 민동수가 짜증을 부렸다.
 
"그만자자. 그렇게 귀신 이야기가 좋냐? 귀신 그렇게 보고 싶어? 지금 상황이 재미있냐? 니들 안 피곤하면 나가."
 
민동수의 기세에 아무 말 못하고 나와 하동진은 불을 끄고, 민동수 옆에 누웠다. 나는 피곤해도 낯선 방에 있다는 게 긴장 되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게다가 방문을 잠그지 않아도 괜찮을까? 옆에서 친구들 뒤척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우리 귀신 이야기나 하자?"
 
민동수가 화를 냈다.
 
"야이 씹새. 좆같이 구네. 쳐자 이 새끼들아."
"무섭냐? 왜 욕하고 지랄이야. 어차피 니들도 잠 안 오잖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야. 남자 셋이 있는데 뭘 쫄아. 설마 귀신이 나올 것 같냐?"
 
하동진의 대답을 들으니 겁쟁이로 몰리는데 내뺄 수 없었다. 나도 한마디 보탰다.
 
“지금 낯선 곳에서 납치돼 섬이나 고깃배로 팔려갈 꺼 걱정해야지. 이게 현실적이지. 귀신은 니미 처녀 귀신 오면 좋겠다.”
 
나까지 가세하자 민동수는 아무 말 못했다. 하동진이 목을 가다듬으려, 침 삼키는 소리가 어둠을 넘어 또렷이 들렸다.
 
"내가 스타트 끗는다. 우리처럼 여행 온 청년들이 있는데, 산장으로 놀러갔대. 산 계곡에서 실컷 놀다가 어두워지니까 산장으로 돌아가는데 계곡 근처에 무덤이 있는 거야. 공동묘지. 청년들은 공동묘지가 주위에 있는 것도 모르고 실컷 논 게 마음에 걸리고, 왠지 무서워서 서둘러 산장으로 돌아갔지. 남자들이 밤에 뭐하겠어? 술 마시잖아? 밤새도록 고기 굽고, 술 마시고 게임하고 노는데...하나, 둘, 지쳐서 잠들었어. 그런데 아직 잠이 안 오는 팔팔한 청년들이 남았는데 뭔가 아쉬운 거야. 찐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래서 잠든 친구 중 한명을 등에 업고, 단체로 낮에 본 공동묘지로 우르르 몰려갔어. 공동묘지 한 가운데 잠든 친구를 내려놓고, 재빨리 달려 산장으로 돌아왔지. 청년들은 친구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어. 친구가 자다가 일어났는데 공동묘지에서 깨어나면 얼마나 놀랄까? 하고 킥킥댔지. 친구가 전화를 받았어. 청년들은 친구의 공포와 놀람을 기대했는데 친구가 그러는 거야. 야! 여기 사람들 되게 많아! 우리 다 같이 놀고 있어. 졸라 재밌어! 너희들도 어서와! 하고. 깜짝 놀란 청년들이 친구를 데리려 공동묘지로 달려갔어. 그런데 공동묘지에 가니 아무도 없는 거야. 청년들이 한참을 찾다가 어느 묘지 위에 올려 진 친구 핸드폰을 발견했어. 손에 든 순간, 문자가 왔어. 문자를 보니. 야! 너희들도 곧 데리러 갈 거야. 여기 정말 재밌어...라고 써져 있었어.“
 
얘기 끝에 침묵이 찾아왔다. 민동수가 갑자기 썅 소리를 냈다.
 
“야 좆도 아니네? 뭐가 무서워? 이거 무서우면 두 쪽 떼고 다녀. 내가 진짜 무서운 얘기해줄게. 잘 쳐들어.”
 
어둠 속에서 퍼지는 친구들 목소리를 듣다가 나는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하지만 민동수가 먼저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어느 집 딸이 막 이상해졌어. 엄청나게 많이 먹고, 빨개 벗고 다니고 부모한테 쌍욕하고, 때리고 난리도 아닌 거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도대체 원인을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무당에게 데리고 갔지. 무당이 그러길. 이 딸에게 씌인 귀신은 너무 원한이 강해서 방법이 없다. 딸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딸을 죽이는 게 낫다. 부모는 펄쩍 뛰었지. 자기 딸을 어떻게 죽여.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의 이상행동은 갈수록 심해져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됐어. 그때 어느 유명한 절의 주지스님에게서 연락이 왔어. 아버지가 절에 딸을 데리고 가니. 주지스님이 그랬어. 귀신을 잡아둘 터이니, 딸을 밤 열두시에 이 절에서 업고 나가라. 단 산을 내려가는 동안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 아버지는 딸을 업고 열두시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어. 그런데 뒤에 아버지가 걸을 때마다 똑같이 걷는 소리가 들렸어. 분명 아버지와 딸 외에 없는데 뒤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따라왔지. 아버지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여기며 산을 내려갔어. 갑자기 딸이 말하는 거야. 아빠 여기 어디야? 무서워. 분명 딸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목소리였지만 뒤돌아보지 않았어. 그러자 딸이 울고불고 하면서 내리려 하는 거야. 아버지도 무섭다면서....딸이 밀치며 내리려 하자 아버지는 딸을 추스르다가 그만 뒤를 돌아봤지. 근데! 뒤에는 아무도 없었어. 덜컥 걱정됐는데, 딸은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아버지는 일단 딸을 집으로 데리고 왔지. 딸을 재우고, 아버지도 쉬려고, 침대에 눕자 부인이 옆에 누웠어. 그리고 부인이 말하길. 왜 뒤돌아봤어? 뒤돌아보지 말랬잖아. 귀신이 내 안에 들어왔어. 이제 다시는 안 나간대.”
 
무서운 이야기의 마법은 이야기가 끝난 후 침묵이다. 이 침묵 안에 무서운 이야기의 본질이 담겨있다. 침묵 속에서 이제 마지막 내 순서가 오자 이야기를 하려 목을 가다듬었다.
 
“어느 날 어떤 학생이 길을 가는데, 웬 할아버지가 나타나 무거운 짐 좀 들어 달래. 학생은 흔쾌히 들어줬지. 짐이 정말 무거운 거야. 학생은 낑낑 거리며, 내리막길을 내려갔어. 도착해서 짐을 내려주니까.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만원을 주더래. 학생은 돈을 받아 기뻤지만 남루한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걸려서 돈을 돌려주고 할아버지 맛있는 거 사드세요. 라고 말했어. 그러자 할아버지 눈초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변하더니. 넌 착하니까 보내준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새끼야! 학생이 뒤돌아보니 봉고차에서 웬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학생에게 달려들었어. 학생은 내리막길을 거슬러 달리는데, 남자들이 봉고차를 타고 오려는 거야. 학생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할아버지가 봉고차 앞을 가로막더니. 오늘은 충분해. 이만하자 라고 외쳤어. 그러자 봉고차가 멈추었고 학생은 무사히 도망쳤지.”
 
얘기가 끝났는지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 속에서 어색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하동진이 말했다.
 
“야 길현아. 뭔가 허전해. 하나도 안 무서워.”
 
민동수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나는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용기를 내어 방안을 가득채운 어둠을 향해 말했다.
 
“나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처음 무서운 얘기하자고 한 게 누구야?”...“하동진 아냐?”...“나 아닌데? 길현아 네가 했어?”...“애들아. 나 아직 얘기 안 했어. 말 하려고 목만 가다듬었는데 방금 얘기가 시작됐어. 누가 한 거야?”
 
그 목소리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여기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 그 봉고차에 다른 학생이 이미 잡혀 있었지. 그래서 할아버지가 충분하다고 말한 거야. 그 학생은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학생 부모들이 경찰과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지.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부모들은 무당이라도 믿어보기로 했어. 무당이 말하길. 학생을 찾으려면 오천만원이 필요하대. 부모들은 사기인가 싶어 믿지 않았지. 그러나 궁금했어. 왜냐고 물으니 무당이 말하길. 학생의 눈은 서울에 있고, 신장은 중국에 있고, 간은 부산에 있어. 어느 것부터 살 거냐고...”
 
나와 친구들은 머리칼이 쭈삣 서는 걸 느꼈다. 여기에 우리 외에 누군가 있었다.
 
“그 일이 여기서 일어났어. 난 여기서 오천만원에 팔렸어.”
 
갑자기 문 밖 복도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덜덜 떨었지만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 함부로 귀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왜냐하면...민동수에게서 억지로 삼키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동진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말로 주기도문을 외었다.
 
“내 이야기가 제일 무섭지? 아냐. 너희에게 일어날 이야기가 더 무서워.”
 
발걸음이 문밖에서 멈췄다. 금속음이 들리더니 철컥 큰 소리가 났다. 밖에서 자물쇠를 거는 소리였다. 아까 우리를 데리고 온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젊은 놈 3마리 있어. 아주 팔팔해. 얼마 줄 거야?”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문고리를 잡아 당겼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고리 역할의 비닐 노끈이 지직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문밖에서 남자가 말했다.
 
“걱정 마. 쟤네 핸드폰 그 물 귀신 나온다는 호수에서 다 잃어버렸대. 물귀신이 올해도 한 건 한 거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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