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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짐승들끼리

2015.04.30 23:3104.30

짐승들끼리




“너 그렇게 살지 마.“ 라고 말하며, 여동생에게 컵을 집어 던졌다. 여동생은 차갑게 웃으며 티비에 나오는 재벌마냥 오만 원짜리 지폐를 허공에 뿌렸다.
“아니라고! 오빠는 뭐 대단해? 빨리 취직해서 엄마랑 여기 나갈 궁리나 해. 여긴 뭘 해도 안 되는 곳이야. 여기 사는 인간들은 다 짐승들이야!” 
홀로 여동생과 나를 키우신 어머니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침상에서 나오셨다.
“야! 이것들아! 내가 니들 치고 받고 싸우는 꼴 보려고 여태까지 살아 있는 줄 아냐?!”
어머니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동생이 던진 오만 원 지폐를 긁어모으셨다. 여동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의 몰골을 보고 여동생의 눈에 확신이 가득 찼다. 나는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찌질하고, 궁상떠는 곳에서 뭐라도 될 생각 마. 이웃집 문에 술 먹고 오줌 싸지르는 걸 아주 당연히 여기는 하등인간 집합소야! 짐승들이야!”
“내가 취직하기 싫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너 몸 파는 짓보다는 낫지.”
여동생은 차갑게 뒤돌아 현관문에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래! 그럼 오빠는 몸이라도 팔 수 있어? 여길 나갈 수 있다면 난 엄마라도 팔 거야! 그럴 배짱도 없으면서!”
여태껏 아니라고 부정했던 여동생이 드디어 매춘을 했다는 걸 인정했다. 나는 어머니를 쳐다봤지만, 어머니는 오만 원짜리 지폐를 움켜쥐고 바닥만 내려다보셨다. 여동생은 작년에 집을 나간 뒤 가끔씩 돌아와서 거액의 생활비를 주고는 사라졌다. 어린 여자애가 무슨 돈을 벌까? 싶어서 올 때마다 떠봤는데, 드디어 오늘 내 의심을 확인했다. 어머니는 딸이 매춘을 해도 아무 말 못하셨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상상도 못했다. 여동생이 문을 세게 닫으며 사라졌다. 어머니는 허공에 욕설을 날리는 나의 바지가락을 잡으셨다.
“취직해도 여기 나갈 돈이 되겠니. 임대 아파트 입주권, 엄마 이름으로 돼 있으니까 엄마 죽을 때까지 넌 돈 모았다가 죽으면 그때 나가. 여기 이상한 사람들 많아도 잠시만 피하면 되잖니.”
 
그 다음날 바보라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던 나는 피씨 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 늦게 아파트로 향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빈민 구제 임대 아파트. 홀로 살면 외로움에 옥상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고, 가족과 같이 살면 원수보다 더 많이 싸웠다. 멀쩡히 일할 수 있는 나이와 여건 속에서도 생활 보호 대상자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동네 슈퍼 파라솔 아래에서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품평하거나 세상을 욕했다. 낮보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가면 아이들은 밤에 아파트 단지로 나와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새벽이 되면 놀이터에 아이들끼리 모여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우리 어머니는 식당 일과 파출부 일을 하며 나와 내 여동생을 기르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 층 수 4층을 누르자, 아파트 현관을 걷어차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야! 너 올라가지마! 멈춰!”
슬리퍼를 질질 끌며, 두 명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면접에서 떨어진 걸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에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거친 반말에 반발심이 솟아올라 닫음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가! 야! 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두 남자의 팔뚝에 각각 선명한 용과 잉어 문신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려 퍼졌다. 엘리베이터 입구 위 층수를 알리는 패널에 --ER이 떴다. 엘리베이터는 일시정지 했다.
“야이 씹새끼가!”
욕이 끝나자마자 다시 쿵하는 충격이 엘리베이터를 진동시켰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을 들이박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걷어차거나. 도대체 얼마나 힘이 세면 이런 게 가능할지.
“야! 너 몇 층에 멈추는 지 잘 봐. 이 새끼 내가 쫓아가서 잡을 거야.”
“형! 먼저 올라가고 있어. 멈추는 층 뜨면 내가 소리 지를 게!”
자기 집 안방 마냥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까지 들려왔다. 20년 전에 지어진 엘리베이터라 그런 지 내부 공간은 좁고,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아 미세한 틈이 생겼다. 문을 여닫는 모터는 힘이 약해 애들이 종종 장난으로 손으로 열기도 했다. “오케이!”라는 소리와 함께 쿵쾅 거리며 계단을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패널에 ----가 떴다. 집으로 가면 안 돼. 쫓아 올 거야. 나도 모르게 최상층인 9층을 눌렀다. 패널에 --9F라 뜨더니 엘리베이터가 살짝 하강했다 다시 상승을 시작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 밖에서 거친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이 새끼 구층에 사나 보네. 개새끼 두고 보자. 지옥까지 쫓아간다. 감히 내 말을 씹어?”
쿵쾅거리는 걸음소리가 엘리베이터를 맹렬하게 쫓아왔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나는 재빨리 뛰어나와 계단을 향해 달렸다. 계단 문을 열자 거친 욕설이 올라왔다.
“이 개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씨발 좆만한 딱따구리 새끼. 거지 동네에 사는 별 그지 같은 새끼가! 너 이 새끼 반드시 죽인다!”
나와 원수를 지고 수년을 싸운 것 같은 집요함에 섬뜩해졌다. 옆 동에 옆집에서 라면 안 빌려줬다고 혼자 괄괄히 날뛰다가 유리창을 깨 손목을 그은 또라이 얘기가 떠올랐다. 그 또라이는 자기 어머니 멱살 잡고, 복도를 끌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유는 자기 어머니가 폐지 팔아 번 돈 오천 원을 자기에게 주지 않아서였다. 못 배우고, 돈 없으면 인간은 쉽게 밑바닥까지 드러난다. 여긴 그런 인간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내 머리에 뭔가 생각이 번뜩이자 내 다리가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나는 8층까지 내려가 계단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지 수초 지나지 않아,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8층을 지나 9층으로 향했다.
“얼래?! 이 새끼 어디 갔어?”
9층 세대 현관 벨을 마구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가기 시작했다.  1층 계단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엉! 그 새끼 잡았어?! 잡았냐고?! 들었으면 대답해! 씨발! 귀 먹었어?! 대답 하라고! 잡았어?! 말았어?!”
계단을 울리는 짜증스런 목소리는 부당한 일에 대한 자기주장을 하는 것처럼 매우 당당했다. 이 짐승 같은 놈들은 대체 뭐지? 남의 아파트에서 왜 이리 당당할까? 나는 얼마 전에 이삿짐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일을 떠올렸다. 설마 이 녀석들 내 이웃인가?  

나는 다음날 아침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경비실에 찾아갔지만, 경비원은 아직도 출근하지 않았다. 24시간 교대제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경비들은 교대자가 오지 않아도 제 시간만 채우면 임의로 자리를 떠났다. 이런 아파트에 부녀회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시청 복지과에서 1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경비원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후줄근한 등산복을 입고 경비 김씨가 나타났다. 김씨는 기다리는 나를 보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몸에 힘을 주었다.
“뭐야?! 말해!”
일 년 전에 김씨는 a4 용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휘저었다. 여자가 지나가면, 무슨 헌팅 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앞을 가로막고, 목소리를 깔며 위압적으로 a4 용지를 내밀었다. a4 용지는 자신들 경비원 처우 개선을 위한 임금 인상에 대한지지 서명이었다. 여자들이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면 경비원은 마치 자신에게 호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여자들을 위아래로 훑어 봤다. 슈퍼마켓 파라솔 아래에서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다가 지나가는 남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손가락을 까닥까닥해 불러내 설명도 않고, 턱짓으로 서명 용지를 가리켰다. 그러다가 나를 불렀는데 내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하대하지 말라며 따지자 “아따 같은 아파트에서 한 솥 먹는 식구끼리 이러면 섭하지잉.” 라며 슬그머니 용지를 치웠다. 그 후 내가 지나가면 괜히 한참이나 쳐다보며 마치 이렇게 견제하는 게 대단한 의미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 현재 일 년 만에 다시 말을 거니까 김씨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몸에 힘을 주고, 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잡게 기 싸움을 준비했다. 끌려가기 싫어 감정을 억누르고 최대한 건조하게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는 씨씨티비를 볼 수 있게 요청했다. 김씨는 나의 진지한 태도를 보고 호탕하게 허허 웃으며 내 경험과 요청을 작은 일로 깎아내렸다. 김씨는 경비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허름한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상의를 벗고, 티비를 켜고, 하의를 벗고 인터넷으로 도박사이트에 접속하고는 제복 상의를 입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느릿느릿 하의를 입으며 기다리는 나를 보며 괜히 히죽 웃었다.
“엊그제 나 근무 설 때 난방 틀어 달라고 지랄들을 하더만. 씨부랄 아직도 중앙난방 하는 곳이 어디 있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제분수를 몰라. 내가 여기 꼬진 아파트 직업로 다니지 나 사는 곳은 서른 평짜리 아파트야. 별 미친년이 다 와서 경비실 앞에 주저앉아 가랑이 벌리고 틀어주지 않을 때까지 안 돌아간다고 지랄을 해댔어. 여기 또라이들 참 많아. 우리 집 검사 아들이 봤으면 싹 다 잡아갔겠지. 그치?”
마치 내가 자신의 검사 아들을 본 것처럼 동의를 구했다. 김씨가 저번에는 대기업 어디에 근무한다고 말했기에,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경비는 하의를 다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했다. 씨씨티비 검색 프로그램으로 어제 내가 말한 시간대를 살펴보고는 책상을 크게 내려쳤다.
“이 새끼들 싸이코야. 한 일주일 전에 같은 동 삼층으로 이사 왔어. 이 새끼들 오자마자 나보고 만 원짜리 한 장 던져주며, 맥주사오라고 시키더만.”
김씨는 마치 내가 그들인 것처럼 나한테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했다. 내가 불편해하자 자신이 이긴 것처럼 슬쩍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애네 나한테 팔 문신 보여주며 지들 내역 쫙 까는데. 뭐 어디 교도소에서 의형제 맺었고. 무슨 사업 한다는데? 아무튼 완전 또라이들이야. 조심해.”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김씨가 나한테 확 달려들었다. 나는 움찔하면서 놀라 뒷걸음질 쳤다. 김씨는 어깨로 내 가슴을 치고 달려갔다. 김씨는 아파트 단지 입구로 가는 누군가에게 허겁지겁 달려가더니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크게 인사했다. 누군가가 극진한 대접에 어색하게 인사를 받고, 사라지자 김씨가 내 앞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누군가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 쳐다봤다.
“이런 동네에서 참 훌륭한 사람이야. 변리사 시험이라고 알아? 몰라? 아냐고? 몰라? 안다면 안다고 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봐. 알아? 그래 대학물은 먹었으니까. 아네. 저 사람이 그 시험 1차에 붙었대. 참 크게 될 사람이야.”
“그렇게 열심히 인사해봤자 기억이나 하겠어요? 뭐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겠어요?”
김씨가 정색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그 기세와 태도가 일생 바른 길만 걸어 온 것처럼 당당했다.
“높이 있는 사람을 귀히 대하는 게 나를 높이는 길이야. 떡고물? 그런 사고방식으로 절대 크게 못 돼. 잘 됐으면 인정해주고 더 잘 되라고 빌어주는 게 훌륭한 태도지. 먼저 사람이 되야 해. 그래야 나도 크게 돼.”
김씨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 찔렀다. 한 번도 아니고 리듬 타는 것처럼 두드렸다.
“이 동네 꼬마 애들 벌써 입에 좆나, 씨발 달고 다녀. 엄마들이 애들 교육 신경 안 쓰니까 그렇지. 그 엄마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슈퍼마켓에서 잔돈으로 오십 원 덜 받았다고 애를 시켜 물건 샀다가 환불하기를 열 번도 넘게 하며 보복해. 마켓 주인이 애 싸대기를 후려치니까 후라이팬에 펄펄 끓는 기름 담아 복수하겠다고 뛰쳐나왔어. 뭐 지발에 걸려 지가 뒤집어썼지만. 여긴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야. 짐승들도 있어. 그런 놈들은 싹 내쫓아야 해.”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내 가슴을 두드리는 김씨의 손가락을 쳐다보자 김씨는 휘파람을 불며 내 옆을 지나갔다.
“어디 순찰이나 돌아볼까. 입주자님도 궁금한 것 풀렸으면 가보쇼.”
나는 무례한 행동에 사과를 받으려고 김씨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김씨는 비명 같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아파트 화단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난쟁이 똥자루 아저씨가 서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랐다. 단지 동네 아이들이 난쟁이 아저씨를 둘러싸고 난쟁이 똥자루라 놀려대기에 그렇게 알았다. 키가 150이 넘을까 말까한 그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같이 타면 벽면에 바싹 붙어 오만인상을 찌푸렸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 나타나면 매우 크게 거리를 벌려 지나갔다. 아이들이 난쟁이 똥자루라 놀리면 “우씨!“ 하며 혼잣말로 중얼대며 씩씩대다가도 가끔씩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으며 놀린 걸 잊고 천진난만하게 같이 뛰어 놀았다.
김씨는 화단에 서 있는 난쟁이 아저씨에게 쌍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난쟁이 아저씨는 발끝으로 판 구덩이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온 비닐을 묻고 신발로 흙을 덮고 있었다.
“아 씨발. 똥자루 아저씨. 하지 말라니까. 여기가 당신 농장이야?”
난쟁이 아저씨는 기세등등한 경비 김씨와 마주보지 못하고 발끝을 내려다봤다. 
“....언제 봤다고 똥자루라 불러. 경비 주제에.”
“뭐 경비 주제에? 내가 여기서 끝날 인물인지 알아?”
김씨가 난쟁이 앞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다. 일부러 목과 허리를 과장스럽게 숙여 난쟁이 보다 큰 것을 과시했다. 난쟁이는 고개를 숙이고 양 손끝을 서로 주무르다가 별안간 이마로 김씨의 가슴을 들이박았다. 김씨는 뒤로 나가떨어지고 난쟁이는 자기가 욱하고 저지른 일에 놀라 볼쌍 사나운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내로 도망쳤다. 김씨는 가슴보다 넘어질 때 허리를 더 다쳤는지 허리를 잡고 뒹굴었다. 나는 웃으며 다가갔다. 김씨는 내 시선을 의식하고 소리쳤다.
“내 저 새끼 죽이겠어. 개새끼. 반드시 죽이겠어.”
“방금 전에는 사람이 되라면서요?”
“야! 니가 사람이냐! 이걸 보고도 웃음이 나와! 너나 똥자루나 똑같은 짐승이야!”
“그럼 나도 죽이세요.”
“내가 못할 것 같아?”
나는 쓰러진 경비 김씨 옆에 침을 찍 뱉었다.

그 날 저녁 9층에서 터져 나온 욕설이 아파트 단지 내로 쏟아져 내렸다. 문신 형제는 엘리베이터 일을 잊지 않았다, 9층으로 다시 올라가 9층 세대를 취조했다. 9층에는 일명 새소리가 살았다. 사람 신경을 거슬리는 고음 톤 목소리를 가진 9층 새소리 여자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성매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낮에 불특정 다수 남자들이 현관 벨을 누르고 “인터넷 보고 찾아왔는데요.“ 라고 말하면 재빨리 문을 열어 남자들을 안으로 들였다. 대낮부터 신음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와 아파트 사람들을 민망하게 해서 1층사는 깡패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찾아가 싸움을 걸기도 했다. 생활비 지원을 끊은 아들이 찾아오자 냄비로 아들의 이마를 후려갈긴 깡패 할머니도 새소리의 신경 긁는 목소리를 못 당해내고 욕을 퍼부으며 내려왔다. 새소리는 깡패 할머니가 가끔씩 싸움 걸 때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일부러 공개적으로 싸웠는데 문신 형제도 같은 방법으로 맞이했다.
“니미 씨발년. 목소리 좆같네. 야 낮게 안 깔아?”
“뭐라구요?! 언제 봤다고 지랄이야. 팔뚝에 지렁이 박은 것들이! 나 그때 집에 없었다니까!”
“씨발 누가 너래? 좆 달린 새끼니. 니 서방이겠지!”
“서방은 지랄 헛소리 말고 꺼져!”
“씨발 년. 야! 너 한 바퀴 돌고도 다른 사람들 아니면 너나 니 서방이다?!”
“다른 집 가서 지랄 해. 나 서방 없어. 미친놈들아.”
한 바퀴 돈다니 무슨 의미지? 나는 잠시 후 이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욕설이 담긴 소음이 천장을 낮게 흔들었다. 아파트 전체가 낡아 9층 소음은 벽면과 기둥을 타고 가끔씩 우리 집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말뜻이 분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현관 밖으로 나가 계단 쪽으로 가서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층에는 언어장애가 있는 남자가 홀로 살았다.
그 남자는...
“저...전 몰라유. 몰랐어요. 엘리베이터야 매.매..일 타지요.”
“씨발 듣다가 숨넘어가겠네. 빨리 못해? 아가리에 모터 달아줘? 그때 그럼 어디 있었어?”
“그게..그게..게.”
“어디 있었냐고?! 귀에 뭐 박았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현관 벨. 7층. 무능력한 도박중독 가장과 엄마가 버리고 간 아이들.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아파트 전체를 샅샅이 뒤져?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니 애비 어딨어? 씨발.”
“경륜장 갔는데요.”
“밥은 처먹었냐? 씨발 니 인생도 좆같네. 문 닫아 새끼야.”
뚜벅뚜벅 자신감 있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끊기자마자 현관을 걷어차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6층. 누가 사는지 몰랐다.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남편 없어요. 혼자 살아요. 아들만 있어요.”
“씨발 뽀글머리 아줌씨야. 아들은 사람 아니야? 혼자는 니미. 젖 쳐진 것 봐. 닫아.”
다음은 내가 사는 층, 바로 위 5층이었다. 나는 독한 관절염 약을 먹고 주무신 어머니를 깨울 생각을 했다. 대신 어머니를 내보낸다면 난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매춘을 해서 가장 노릇을 대신하는 여동생의 비웃음이 떠올랐다. 녀석은 몸뚱이만이 아니라 배짱도 있었지. 남자인 나는 왜 이리 비겁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었다. 난 저 괴물들과 마주할 수 없었다. 여기서 온갖 군상들과 마주하며 오래 살았지만 저것들이야 말로 짐승들이야.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모든 잠금장치를 걸고, 핸드폰을 들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누구나 자기 사는 층 계단 소리는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벌써 5층을 지나 우리 집으로 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112를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112 신고접수센터입니다.”
도와주세요! 짐승들이 우리 집 앞에 왔어요! 완전 미친 놈들이예요! 말이 입술을 터뜨리고 폭발하기 전. 갑자기 싸이렌이 들렸다. 소방차도 아니고, 민방위 훈련도 아니고. 경찰차 싸이렌이 분명했다. 보지 않아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핸드폰 속 경찰이 지금 무슨 상황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내 온 신경은 현관 밖에 있었다. 밖이 잠잠했다. 그제야 나는 완전히 확신했다. 경찰이 분명해. 벌써 누군가 신고했어. 현관 밖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 김씨의 지나친 공손한 목소리는 경찰을 경관님이라 떠받들고 있었다. 난 현관에 바싹 귀를 갖다 댔다. 경찰이 문신 형제에게 신고내역을 알리자.
“아이고. 경관님. 저희가 장난이 심했나 보네요. 바쁘신데. 저희 별 일 아니예요. 이사 온지 얼마 안돼서 인사드리는 거예요.”
사람 좋은 척하려 연신 허허 웃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웃음아래 불안한 기운이 분명했다.
“경관님. 저희 나쁜 사람 아니예요. 누가 신고 했어요? 저희가 가서 사과할게요. 저희 정말 진심입니다. 예?”
신경질을 억누른 진짜 같은 억울한 톤으로 형제들은 빌었지만 경찰은 단호했다.
“일단 신고가 들어왔고. 상황을 살펴보니 같이 동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관님.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요. 저희 얌전해요. 착해요. 제 눈을 보세요.”
“갑시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가서 간단한 조사만 할 겁니다. 그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씨발! 착하게 산대도!”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갑시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되고 싶어? 팔뚝에 그거 지렁이야. 이무기야? 선수끼리 이러지 맙시다.”
우르르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 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날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야 무슨 일이니?”
“이제 다 끝났어요. 살았어요.”
 
다음날 새벽. 나는 남들이 출근할 때 구직광고지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와 문이 열린 순간 나는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오는 문신형제와 마주쳤다.
문신형제의 눈은 붉게 독이 올라있고,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과도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니야. 다 끝났어. 경찰서에 끌려갔다 왔잖아. 저 놈들도 정신 차렸겠지. 어제처럼 못 해.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내리 깔았다. 문신형제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전.
“이 씨발. 신고한 새끼 찾아서, 반드시 찢어 죽인다. 야 너 말리지 마.”
“형님이야말로 가만 있으슈. 내 그 새끼 눈깔을 확 후벼버리고, 벽돌로 찍어버릴 테니.”
난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내 다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저 놈들은 진짜 짐승이구나.
비척비척 걸어 현관을 벗어나자 빠르게 걸어 단지 내를 가로질렀다. 왜 새벽에 일어났는지. 구인광고지는 새벽에 나오는지. 난 왜 아직도 취직 못 했는지. 눈앞에 문신형제가 없어도 감히 속으로도 차마 욕을 할 수 없었다. 나를 탓하는 게 훨씬 쉬웠다. 강한 자를 욕하는 것보다 약한 나를 탓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니까. 난 왜 이렇게 비겁할까? 경비실 앞에서 건들대며 담배를 피우던 김씨가 손끝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어이! 어이! 야! 너 어제 나 땜에 살았잖아. 그 싸이코들이 너 찾았잖아. 내가 경찰 불렀어! 인사는 하고 가야지. 인사는 해야지. 응? 나 십만 원만 줘!”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이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경비원이 분을 못 이기고 담배를 땅에 내팽개치고, 땅을 발로 굴렀다.
“저런 짐승 같은 새끼가! 은혜를 웬수로 알아? 짐승도 저러지는 않아. 저런 짐승. 인간 말종 새끼.”
나는 문신형제에게 짓눌린 공포가 훨씬 커서 김씨의 패악 따윈 귀엽게 느껴졌다. 오히려 저런 낮은 수준의 위협을 보자 왠지 모르게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나는 김씨에게 괜히 여유 있게 웃어보였다.

구직을 핑계로 피씨 방에 들른 게 화근이었다. 피씨 방 창밖이 어두워지고서야 내가 하루를 헛되이 보냈음을 알았다. 다른 백수들은 밤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새벽녘에 잠들고, 오후에 일어나 게임하고, 그러다가 또 밤늦게까지...나 역시 구직을 핑계 삼아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동생이 매춘으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안 이후로 눈에 불을 켜고,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나섰지만 찾기는 쉬워도 지원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말없는 탈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피씨 방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가 환했다. 임대 아파트는 운영비를 걷지 않아 가로등이 있어도 켜지는 않았다. 20년 전 건설이 막 끝난 후 정부가 관심을 가질 때 한 3년간은 켜졌다고 한다. 다른 아파트 단지들은 가로등이 켜져 있거나 창밖으로 빛이 새어나오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는 늘 어둠이었다. 간간히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층도 있었다. 밤이 되면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거실 한 곳만 불을 켠 후 생활하거나 촛불을 켜놓는 집도 있었다. 몇 년 전 촛불을 감싸는 전등이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유행했다. 이런 동네이지만 최신 스마트 폰 만 나오면 전부 득달같이 새 것으로 바꿨다. 그리고 집집마다 시켜먹은 외식 그릇이 즐비했다. 만원을 벌어서가 아니라 천원을 아껴야 돈을 모으는데, 이래서 가난을 못 벗어나는지도.
단지가 환한 이유는 가로등이 아니라 경찰차 때문이었다. 경찰차 3대와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집 아파트에 서 있었다. 아파트 현관 주위에 단지 주민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똥자루 아저씨 죽었대.”
“똥자루가 누구야?”
“그 쬐그맣고, 쭈그리 같던 양반. 애들한테 씨발, 씨발대며 쫓아다니다가 다음날이면 헤헤 웃으며 같이 축구했잖아.”
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파트 현관 옆에 김씨가 경찰에게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 태도는 평소에 보이던 껄렁하고 만사가 귀찮던 일개 경비가 아니라 진짜 대한민국 공무원 경찰처럼 위엄 있고, 점잖았다. 저 양반은 경찰에게 말 걸면서 자신도 동급이라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이 와 하고 일제히 소리 냈다. 경찰들이 문신형제 양쪽에 팔짱을 끼고 현관을 나왔다.
“아이 씨발! 뭘 봐?! 눈깔 안 깔아?”
“눈깔 확 뽑아버려. 나중에 만나면 배때기에 칼빵을 놓을까 보다!”
문신형제는 주민들에게 욕설을 내뱉다가 키가 좀 더 커 보이는 잉어 문신이, 용 문신에게 뭐라 속삭였다. 그리고 그 둘은 나를 정확하게 노려봤다. 입모양으로 씨발 새끼 죽여 버려 하면서.
     
다음날 아침, 나는 구직광고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경비 김씨가 변리사 합격자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는 걸 봤다. 나는 슬그머니 김씨 뒤로 접근했다.  
“선생님 그러니까요. 그때 딱 하필 씨씨티비가 고장 나서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었어요. 아무리 봐도 그 문신들이 범인인 것 같은데, 알리바이가 있고, 벽돌을 못 찾았으니 증거가 없어 경찰들이 다시 풀어줬대요.”
“벽돌이 왜요?”
내가 대화에 끼어들자, 김씨가 뒤돌아봤다. 나를 보자마자 이마에 뇌천자를 쓰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합격자를 의식하고 무표정으로 가장했다. 점잖은 척 낮게 타일렀다.
“거 뒤에서 엿듣는 거 좋은 행동 아닙니다.”
“입주민이 질문하는 거에 대답이나 하시죠.”
김씨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입술로 쯧 소리를 냈다. 나한테가 아니라 허공에 대고 말했다.
“살인도구가 벽돌이라는데 그거 알아서 뭐하려고? 선생님은 유식하시니 제가 어디서 월급 받는지 아시겠죠? 시청 복지과에서 받아요. 부녀회도 관리 사무소도 없는 아파트 입주민이 거 되게 유세네요.”
합격자는 나와 김씨의 미묘한 긴장감을 알고 허허 웃으며 끼어들지 않았다.
“왜 난쟁이 아저씨가 죽었어요?”
“난쟁이 아저씨가 문신들이 댁 찾으면서 난동 필 때 신고했으니까. 그 놈들이 찾아서 보복한 거지. 난쟁이 아저씨가 지입으로 애들하고 공차면서 지가 문신들 잡아넣었다고, 자랑한 게 온 동네에 파다한데, 뒷북치는 거 봐. 난쟁이 아저씨 같은 동 이층에 사는 거 알기나 했어요? 거 이웃끼리 참.”
“이웃인 거 알았어요. 근데 왜 나보고 자기가 신고한 것처럼 십만 원 달라고 했어요?! 이상한 사람이네.”
“내가 언제! 십만 원 달랬다고! 억지 부리는 거 보소! 선생님 제가 여기서 계속 머물 사람은 아니예요. 사람이 경비 질 한다고 사람까지 경비 아니예요. 이 젊은 사람 말 하는 거 보세요.”
“당신이나 여기 뜨기 전에 사람 되서 나가. 누구한테 짐승이래.”
“뭐 이 새끼야?! 네가 짐승이지! 너와 똥자루 둘 다 짐승이야. 너와 나는 한참 격차가 있어! 당연히 내가 위야!”
도발에 넘어가 흥분을 못 이기고, 본성을 드러낸 김씨에게 나는 픽 크게 비웃어 보이고는 뒤돌아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 다가가 상승 버튼을 눌렀다.
“씨발. 그 벽돌 빨리 찾아 없애야 하는데.”
“그래도 지문은 다 닦았어. 피가 묻어서 그냥 버리기가 뭐해서 가루 내려고 하는데, 경찰차가 들어서잖아. 경비실 건물 뒤에다가 슬쩍 던져 놨어. 있다 새벽에 경비 쳐 잘 때...”
등 뒤에서 뭔가 서늘한 게 느껴졌다. 이건 짐승의 시선이었다. 누군가 날 뒤에서...문신형제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사이좋게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문신형제의 눈빛은 고용했다.
조금의 변화가 없이, 지그시 계속 나를 쳐다봤다. 난 고양이와 마주친 쥐처럼 꼼짝 말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입구가 열리자 엉거주춤 옆걸음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오자마자 4층을 눌렀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계단 쪽에서 흥분된 말소리가 올라왔다. 
“야! 저 새끼가 그 새끼 맞지?! 사층에 살았구나 그니까 못 찾았지.”
“형! 이 새끼 사층 살어! 이 새끼도 나중에 벽돌로 찍어버리자!”
“저 새끼 집 찾아가서 애미 애비 싹 다 죽이고 불 지를 거야! 너 나 말리지 마라.”
저 짐승 같은 놈들이 똥자루 아저씨를 죽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냈다.
   
나는 피씨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창밖이 어두워 진지 한참이 지났다. 게임 속에서 대전 상대를 찾는 로딩 바가 움직였지만 나는 게임을 강제 종료 시켰다. 내가 계획한 시간이 왔다. 더 이상 비겁하게 살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야 할 때였다. 내 여동생은 매춘을 하며 집안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남자인 나는 집이라도 지켜야 했다. 문신형제와 같은 짐승들과 한 아파트에서 살 수 없었다. 일생을 가난과 싸우며 이 집을 지켜낸 어머니를 위해서도. 나는 이 짐승들을 우리 아파트에서 반드시 내쫓아야 했다.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관리실 건물 뒤로 접근했다. 폰 액정을 환하게 해서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건물 뒤에 벽돌이 하나 있었다. 다가가 들어보니 뒷면에 피가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무거운 신음소리가 나왔지만 억눌렀다. 벽돌을 들어 주머니에 넣으려 했지만 컸다.
“누구 십니까? 얼레 뭐하는 거여?”
경비 김씨였다. 김씨는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었다. 나는 벽돌 든 손을 뒤로 했다. 김씨의 눈이 놓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산책하고 있었어요. 수고 하십니다.”        
나는 상황 상 예전처럼 까칠하게 대할 수 없었는데, 김씨는 그게 어색한 지 멀거니 서서 나를 바라봤다. 아니면 내가 무엇을 숨겼는지 머리를 굴리거나.
“그 문신 싸이코들 조심해. 자네 웬만하면 계단으로 피해 다녀.”
내가 좋게 나가서 그런 지 김씨의 말도 고왔다. 내내 어색한 태도로. 나는 조심스럽게 벽돌이 보이지 않게 몸을 돌려 경비실에서 멀어졌다. 김씨의 눈이 나를 뒤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내가 무엇을 할지 쫓아다니며 볼 수는 없겠지.

나는 3층 소화전에 벽돌을 숨겼다. 누가 쫓아오는 것 마냥 벌벌 떨며,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런 겁쟁이. 괜찮아. 큰 일 했어. 아니야. 난 더 이상 겁쟁이가 아냐. 이제 신고만 해서 경찰에 벽돌이 있음을 알리면 됐다. 근데 경찰이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내일 낮에 공중전화로 익명으로 신고하자.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 씨발 나와 봐!”
문신형제였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은 분명 잠겨 있었다.
“씨발 개호로 새끼야. 나와 봐. 씨발 경찰에 신고하면 너 죽인다.”
나는 당장에 폰을 꺼내 112를 입력했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야. 문을 걷어차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문고리를 난폭하게 덜컥거리며 잡아당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 사는 층 계단 소리는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점잖 빼는 김씨의 목소리와 공무를 알리는 경찰이었다. 김씨가 부른 건가? 이번에는 자기 할 일 제대로 한 건가? 폰에서 112 접수센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폰을 껐다. 됐어. 경찰이 왔어. 문신형제들은 비굴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이웃을 찾아왔다고 변명했다. 경찰은 일단 가지 말고 서 있으라고 한 뒤에 우리 집 현관 벨을 눌렀다.
“안에 계십니까?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없어요. 우리가 눌러봤는데도 안 나오더라구요.”
문신형제들은 싹싹한 태도로 경찰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아. 내가 이 두 눈으로 틀림없이 봤어요. 피 묻은 벽돌을 삼층 소화전에 몰래 숨겼어요. 난쟁이 아저씨와 여기 입주한 청년 되게 친했어요. 둘이 딱 같은 수준이야.”
김씨의 목소리가 흥을 타고 높아졌다. 뭔 소리야? 나는 당장에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숨을 죽였다. 경찰의 목소리는 일정한 톤으로 높지도 낮지도 않고 냉정했다.
“그래요? 그런데 벽돌 넣는 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씨씨티비로 봤죠.”
“씨씨티비 고장 났잖아요?”
“씨씨티비야 늘 제 손안에 있습죠. 진작에 고쳤죠.”
주머니를 뒤지는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스마트 폰 다이얼을 누르는 버튼 효과음.
“어이 김경장. 자네는 당장 경비실로 가 있어. 있다가 씨씨티비 녹화 본 확보하러 갈 거야.”
이게 아니었다. 오해야. 누명이야. 뭘 모르니까 그런 거야. 무식한 김씨의 저 나대는 태도 때문에 내가. 뭣도 모르는 저 새끼 때문에.
“죽은 난쟁이 아저씨와 이 친구. 태도가 딱 짐승이었어요. 내가 그렇게 둘에게 잘해줬는데, 나한테 욕을 하거나 밀치거나 없는 말 지어내서 억지 부리거나. 어휴. 이 억울함 말도 못해요. 내가 하는 일이 경비이지 사람이 경비인가?”
“예. 알겠습니다. 경찰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경찰은 내 편이 아니었다. 경찰이 현관 벨을 두드리며 노크했다. 경찰이 나를 잡으러 와 있다.
“애야 무슨 일이니?”
어머니가 주무시다 깨서 일어나 눈을 비비고 계셨다.
“무슨 일이니? 어서 열어드려.”
“아니예요. 어머니 들어가 있어요.”
나는 어머니 어깨를 잡고 방 안으로 밀었다. 빨리 머리를 굴려야 한다. 저 뭣도 모르는 놈이 나대서 내가 뒤집어 쓸 수 없었다. 난 무죄야. 난 죽이지 않았어. 어머니를 방 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다시 현관으로 가 숨을 죽이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런데 둘이 사이좋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관님 그게요. 한 이틀인가 삼일 전인가? 화단에서 싸우더라구요. 죽은 난쟁이 아저씨가 화단에 음식물 쓰레기 묻는데 그거 가지고 시비가 붙더니 지들끼리 밀치고 싸우다가 서로 죽인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요.”
“그것도 씨씨티비에 있나요?”
“아뇨. 아 그게 씨씨티비가 자주 고장나서요. 그때도 고장나가지고요. 근데 제가 증인이지 않습니까?”
뭣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김씨는 다 알고 있었다. 씨씨티비는 김씨 손에 있으니까. 아마 문신형제들이 난쟁이 아저씨를 죽인 것도 씨씨티비로 봤겠지. 그러나 지웠겠지. 자기가 원한을 품은 난쟁이 아저씨를 죽였으니까 덮었겠지. 그런데 저 김씨는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걸까? 내가 뭘?
“이 친구 짐승이예요. 난쟁이 아저씨도 그랬지만, 이 친구도 아주 악질이야!. 사람이 아니라 짐승! 이런 짐승들은 우리 아파트에서 반드시 내쫓아야 해!”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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