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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안테로스

2021.09.01 00:0009.01

안테로스

노말시티

 

올해 여름에는 8월 32일이 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올해 여름에는 8월 32일이 온다. 지금 내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내가 지금 화성으로 날아가고 있는 이유는 8월 32일 때문이 아니다. 지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화성의 개척지에서 대기 관측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나는 넘치도록 찾아 놓았다.

"8월 32일에 다시 만나자."

"차라리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해."

"내가 거짓말한 적 있어?"

아니. 단 한 번도 없지.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과거에 대해서나 미래에 대해서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니 8월 32일에 다시 만나자는 말은 8월 31일에는 만나지 말자는 말이다. 30일에도 29일에도. 1년 365일의 그 어느 날에도. 심지어 4년에 한 번 오는 2월 29일에도 만나지 말자는 말이다.

차라리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할 것이지.

그 사람은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선발대에 자원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올 계획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잡지 않았다. 잡는다고 남을 사람도 아니었다. 아니. 내가 잡았으면 남았을지도 모른다. 잡는다고 남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잡았으면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잡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고 떠났어도 나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떠났어야 했다. 8월 32일에 다시 만나자고 해서 나는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나는 화성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지구의 누구에게도 그 사람은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지구에서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 화성으로 떠나면서 그 사람은 내게 8월 32일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쁜 자식.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화성에 가려고 한 건 아니다. 정말로 아니다. 난 그냥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었다.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 난 그 사람을 8월 32일이 아니라 8월 31일이나 9월 1일에 만나서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이 거짓말쟁이야. 소리쳐 줄 생각이었다. 왜 8월 32일에 만나자고 했는지 따져 물어야지. 앞으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믿지 말아야지. 거짓말쟁이니까. 생각만 해도 벌써 속이 시원했다.

"올해 여름에는 8월 32일이 올 예정입니다."

귀를 의심했다. 그 사람이 화성으로 떠난 지 십삼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내가 화성으로 출발하는 걸 불과 한 달 앞둔 때였다. 화성 식민지 개척은 순조로웠다. 방사선 차폐막과 대기 순환 시설을 갖춘 돔이 건설되었다. 감자를 비롯한 농작물들이 화성의 토양에 맞게 개량되었다. 광산과 제련 시설이 완공되어 더 이상 지구에서 건설 자재를 실어나를 필요가 없어졌다. 화성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삼 년 전에 만 명을 돌파했다. 이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교육 훈련을 받으면 화성으로 갈 수 있었다.

오 년 전에 대기 관측원 과정에 지원했다. 성적이 좋지 못해 파견되기까지 남들보다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변명하자면 난 필사적으로 화성에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난 그저 그 사람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던 거니까. 나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화성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다들 나보다는 필사적이었다. 난 화성에 꼭 가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냥 화성에 가는 게 좀 더 재미있어 보였을 뿐이다.

화성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면. 절대 8월 32일이 아닐 어떤 날에 그 사람을 만나서.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쳐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올해 여름에는 화성에 8월 32일이 올 예정이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정했다. 내게는 그저 8월 32일이 온다는 것만 중요했다. 더 황당한 건. 내가 지구를 떠난 날이 7월 6일이다. 화성에 도착하는 예정일은 9월 1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8월 32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될 예정이다. 말도 안 돼.

사람들이 그렇게 정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그 나쁜 자식이 내게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이유를 설명해 볼까. 중요하진 않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직 화성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작년까지 화성은 지구의 달력을 사용했다. 화성의 하루는 24시간보다 좀 더 길다. 정확히는 37분 22초가 길다. 처음에는 지구와 시간이 같았다. 그러니 낮과 밤이 매일 30분 이상 밀렸다. 어떨 때는 오전 6시에 해가 뜨고 어떨 때는 오후 10시에 해가 떴다. 지구와의 통신보다 화성 내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해지자 개척자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맞췄다. 화성의 1초는 지구의 1.026초였다. 이제 화성에서도 매일 오전 6시쯤에 해가 떴지만 화성의 6시는 지구의 6시가 아니었다.

그래도 날짜는 지구와 맞췄다. 화성의 날짜는 화성시가 0시가 되는 시간의 지구의 날짜였다. 그러니 가끔 건너뛰는 날이 생겼다. 8월 30일 다음이 31일이 아니라 9월 1일이 되는 식이다. 그래도 8월 32일이 올 일은 없다. 화성에도 계절이 있다. 화성의 공전 주기는 화성일 기준으로는 670일이다. 화성의 8월은 여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화성의 8월에 반드시 여름이 되는 건 지구의 북반구였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그리고 올해부터 화성은 독자적인 날짜를 사용하기로 했다. 화성의 8월이 언제나 같은 계절이 되는 셈이다. 화성의 일 년도 열두 달이 된다. 대신 한 달이 55일 혹은 56일이다. 그리고 지구와 화성이 태양으로부터 같은 방향에 있을 때 같은 달이 되도록 맞췄다. 그렇게 하면 지구와 화성은 계절이 반대로 된다. 화성의 북반구에 있는 개척지에서 8월은 언제나 겨울이 된다.

올해 8월부터 날짜를 바꾸면 월을 건너뛰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올해 화성에는 8월이 43일까지 있다. 그다음은 9월 1일로 넘어가고 이후부터는 한 달이 55일 혹은 56일인 화성의 자체적인 날짜를 쓰게 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8월 32일이 온다. 화성 기준으로는 올해 겨울부터 8월 32일이 온다.

그리고 그게 내가 화성에 도착하는 날이다. 8월 32일.

다시 말하지만 내가 화성으로 가는 건 8월 32일 때문이 아니다. 진짜 아니다. 그 사람 때문도 아니다. 나는 화성에 대기 관측원이 되기 위해 간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 사람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쳐 줄 이유도 없다. 그냥 모든 게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그래도 나는 화성으로 떠나는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후 화성에 도착한다. 8월 32일에.

"안테로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현재 시각은 화성 표준시로 1년 8월 32일 06시 32분입니다."

안테로스. 화성을 돌고 있는 우주 정거장이다. 나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착륙선을 타고 화성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그 사람은 화성 표면의 개척지보다 이곳에서 더 많이 일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안테로스는 화성을 상징하는 아레스의 아들이자 에로스의 형제다. 사랑에 보답하는 신이자 보답하지 않는 사랑에 복수하는 신이기도 하다.

"거짓말쟁이."

그 사람은 내게 거짓말을 했다. 그 사람은 내게 8월 32일에 만나자고 했다. 지금은 8월 32일이고 이곳은 화성인데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이 년 전. 그 사람은 여기 안테로스에서 실종되었다. 고장 난 태양광 패널을 수리하다 안전선이 끊어졌다고 한다. 하필이면 제트팩의 연료도 바닥난 상태였다. 화성의 인구가 만 명을 훌쩍 넘고 난 뒤로는 화성에서 누군가가 죽는 게 대수롭지 않아졌다. 지구에서 일하던 사람이 죽듯 화성에서 일하던 사람도 죽었다. 아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은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죽음은 내게 사망자 명단과 사고 상황을 요약한 짤막한 보고서로 전달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걸까. 8월 32일에 만나자고 했잖아. 그 사람이 나를 떠난 건 언제일까. 화성으로 떠나던 그날일까. 아니면 안전선이 끊어져 검은 우주 속으로 사라지던 그 순간일까. 그냥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8월 32일은 오지 않아야 했다. 그 사람은 영원히 오지 않을 8월 32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내가 그 사람을 8월 31일이나 9월 1일로 억지로 끌어 내린 뒤에 마음껏 놀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8월 32일은 오고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내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거짓말쟁이. 이 거짓말쟁이야.

나쁜 자식. 차라리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할 것이지. 이제 나는 화성에 왔고 화성은 매년 8월 32일마다 공전 궤도의 같은 점을 지난다. 8월 32일에 만나자는 그 사람의 약속은 그때마다 거짓말이 되겠지.

매년 8월 32일에 나는 그 사람을 삼킨 우주에 대고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쳐 줄 계획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좀 시원해질 것 같다. 그리고 일 년 중의 나머지 669일 동안은 아무렇지 않게 화성의 대기 관측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게 실컷 욕을 먹고 멋쩍게 웃어 줄 그 사람이 8월 32일에서 나를 기다리는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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