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곽재식 최후의 기술

2021.08.31 08:3408.31

최후의 기술

 


법무부 장관이 특별히 화제가 많이 되던 시기였기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다. 어쩌다 보니 치열한 것이 너무 심해져서,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을 이야기할 때 “나는 누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기에 이르렀다. 그렇다 보니 그 법무부 장관 감이라고 지목된 사람들의 말, 행동, 주장과 생각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얼마 후, 서로 다른 대통령 후보들이 내세운 법무부 장관 감들의 몇 가지 법 집행에 관한 의견 차이를 두고 논란이 생겨 났다. 그 논란들은 점점 극심해졌다. 그리고 그 논란 때문에 선거판은 뒤집혔다. 결국 후보들의 승패까지 바뀌었다. 그러니까, 역사를 돌아 본다면, 그 때 법무부 장관들이 벌였던 법 집행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 다툼은 후대에 끼친 영향이 무척 큰 토론이었다.

지금 와서 토론의 핵심을 꼽아 본다면 그것은 복사초였다. 논란 중에서도 가장 심한 논란에서 승기를 잡은 사람은 복사초의 의미를 정확하게 내다 보고 그것을 선거에 이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복사초에 대해서 처음 알아낸 사람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 문화사에 대해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이 대학원생은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 조선 시대 사람들이 고구려를 조상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모으는 사업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고 한다”라는 사실에 한국인이 분노해야 하며, 그 분노를 표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마침 다시 늘어 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조선시대, 고려시대 같은 옛날부터 한국인들은 고구려를 좋아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업이 다시 인기를 얻었다. 자연히 그런 사업에서 대학이 예산을 따 내기도 쉬워졌다.

그 대학원생은 연구 도중 녹동거사라는 과거의 인물을 알게 되었다. 녹동거사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한 학자의 호였다. 녹동거사가 당시에 조사해서 기록해 놓은 이야기들 중에 삼국시대에 관한 전설과 이야기 거리들이 꽤 많았다. 대학원생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녹동거사는 본시 서울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녹동거사가 기록해 놓은 전설들은 삼국시대에 서울을 오랫 동안 차지하고 있던 나라, 즉 백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대학원생은 당황했다.

그렇지만, 곧 대학원생은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아 냈다. 마침 고구려가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절에 백제를 공격해 서울과 경기 지역을 빼앗은 큰 승리를 거둔 역사가 있었다. 잘 찾아 보니, 녹동거사가 조사해 둔 백제의 전설 중에는 백제가 고구려에게 공격 당해 패배하고 괴로워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중에는 고구려에 관한 언급도 몇 번 나왔다. 다행이었다. 대학원생은 녹동거사가 써 둔 전설들을 잘 옮겨서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백제 전설에 나오는 고구려에 대한 네 번의 언급을 해설하는 이야기를 모아서 기관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살펴 본 나머지 자료들은 묻혀서 잊혀질 뻔 했다.

그런데 그 대학원생의 컴퓨터를 물려 받아 사용하던 그 대학원생의 후배가 컴퓨터에 남아 있던 녹동거사의 글에 대한 자료에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후배 학생은 녹동거사가 남긴 백제의 전설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그리고, 그 말미에서 복사초 이야기를 찾아냈다.

복사초 이야기는 백제 멸망에 관한 전설 속에서 등장한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의 도성을 방어할 병력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마지막 남은 백제 병사들은 모두 싸우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움터에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병사들도 결국 신라 군사들의 꾸준한 공격으로 전사했다. 마침내 백제의 궁전 입구를 지키는 몇 안 되는 병사들이 마지막 남은 백제 병사들 중에서도 마지막 남은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그 숫자는 331명이었던가 332명이었던가 그랬다.

아무래도 용감한 병사들부터 먼저 나가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을 테니, 마지막 남은 병사들은 겁이 많은 편에 속하는 병사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싸우면서 버텨 주어야, 궁전에 있는 고귀한 사람들, 노약자, 어린이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마지막 남은 병사들은 겁난다고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싸우려고 목숨을 버리자니, 두려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녹동거사의 글에는 전설 속에서 백제 병사가 했다는 말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하잘 것 없는 벌레에서부터, 개, 돼지,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무릇 목숨이 붙어 있는 것들은 목숨을 아까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자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이 깊고 생각이 많으며 미래를 떠올리기 좋아하는 성정을 갖고 있으므로, 자연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만큼 깊고 많으며 또한 생생히 떠올리게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을 많이 두려워하는 것을 어찌 이상하다 하겠습니까?”

그 말에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같이 손을 부여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궁중의 약방에서 일하던 궁녀 한 사람이 궁전 안에 남아 있어서, 울고 있는 마지막 병사들의 그 모습을 보았다. 궁녀는 그 병사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궁중에 내려 오던 비방을 보고 약초 몇 개를 섞어서 약을 만들었다.

그 약이 복사초였다.

궁녀는 복사초를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궁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약을 먹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복사초는 사람을 신선으로 변신시켜주고, 달인으로 변신시켜 준다는 금단대약에는 미치지 못하나, 바로 그 다음 경지는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눈물을 멈추고 이 약을 드십시오.”

궁녀의 권유대로 복사초를 먹었더니 병사들은 하나 둘 눈물을 그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죽고 나서 내가 마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하나 둘 그렇게 말하더니, 앞다투어 칼을 들고 적진 앞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차례로 싸우다가 전사했다.

약을 나중에 먹을 차례가 된 병사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약을 먼저 먹은 병사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약을 먼저 먹은 병사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약을 먹고 나니, 내가 평소에 학식이 높은 사람에 들었던 것이 환하게 보이는 것 같구나. 내가 예전에 동네의 무당에게 듣기로,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 생전에 선한 일을 한 사람은 구름 위의 부유한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천상의 벼슬아치로 변해 즐겁게 지내게 되며, 살아 생전에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다음 세상에 벌레로 다시 태어나 비참하게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의심하였으므로 그 말을 믿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 복사초를 먹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그와 같이 죽은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들은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임을 환하게 깨닫게 되었다.”

대답한 병사는 싸우다가 신라 군사의 화살을 맞아 쓰러져 죽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정말 그 병사는 자신이 죽어 가면서, 자신의 혼령이 저승으로 가서 새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는 듯 하였다.

“무슨 일을 겪고 계시오? 무엇이 보이시오?”

하고, 옆에서 물어 보니, 그 병사는 말하기를,

“내가 저승의 판관에게 판결을 받는데, 병사로 싸우며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것도 사람을 죽인 죄라고는 할 수 있으므로 천상의 관리로 다시 태어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다음 세상에서는 산 속의 늑대나 표범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내가 다음 세상으로 건너 가면서 몸체가 점차로 새끼 짐승으로 변하는 느낌이 드는구나.”

라고 말하다가 숨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본 병사는 복사초를 먹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신라 병사들이 궁중에 들어 닥치자 생각이 바뀌어서 다시 복사초를 구하기 위해 약방으로 뛰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복사초를 만들어 주었던 궁녀도 죽어 있었다. 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영영 복사초 만드는 방법은 잊혀졌다는 이야기였다.

후배 대학원생은 이 전설이 각별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전설이 사실을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그는 백제 궁중에서 어떤 환각제나 신경안정제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두려운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공포심을 느끼는 뇌의 신경을 둔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 있어서 그것을 먹는다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약을 백제의 의사들이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기록에는 복사초에 대한 전설 전후에 다른 백제 궁중의 뛰어난 약재에 대한 언급이 짤막하니 몇 마디 덧붙어 있었다. 그 학생은 그 다른 약재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기록에 남아 있던 궁중 약재 중 한 가지의 이름이 나무에 적혀 있던 것이 서울의 풍납토성 발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학생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그 말이 약재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기록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백제 역사의 중반까지 백제의 도성이 있던 서울 풍납토성 인근에 백제 궁중의 비법 약물 몇 가지가 실제로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전설대로 그런 약을 만드는 비법이 대대로 전해져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학생은 이 연구 결과를 졸업 논문으로 발표했다. 지도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졸업 논문은 그 해에 통과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은 이 연구 내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다른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풍납토성 재발굴 조사팀에게 귀한 자료가 되었다. 풍납토성 재발굴 조사팀은 약재가 발견된 곳 근처를 살펴 보면, 다른 백제의 약재에 대한 자료도 찾아 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 근처를 집중 조사했다.

과연 약재가 발견된 곳 근처에는 다른 약재들도 묻혀 있었다. 그 중에는 복사초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복사초는 10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 재발견되었다. 복사초에 대한 내용을 적어 놓은 나무 조각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썩어 바스라져 있었지만 복사초 실물도 아주 적은 양이지만 남아 있었다.

복사초의 미량 실물 표본을 처음에 조사한 곳은 시립문화재과학기술원이었다. 그런데 조사한 복사초 표본은 역사 연구나 문화재 연구를 위해 흔히 살펴 보는 방식으로 몇 가지 실험을 해도 별다른 깔끔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보고서를 써야 하는 연구 담당자의 골치거리가 되는 것으로 조사 작업은 끝을 맺고 표본은 버려지기 마련이었다.

복사초 표본도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마침 실험을 맡아 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은퇴를 25일 앞 둔 한 나이든 연구원이었다. 특별히 다른 일에 욕심이 없던 그 연구원은 복사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일부러 신경을 써서 다른 몇 가지 조사를 계속하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복사초 표본은 국립약학연구지원단으로 넘어 가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국립천연물신약연구소로 넘어 가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복사초는 몇 군데의 실험 기관을 더 돌아 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세관 산하의 마약류연구원이라는 곳에서 중요한 실험 결과를 얻으며 복사초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마약류연구원에서는 복사초라는 백제 궁중의 약물이 현대에 사용하는 강력한 신경 반응 억제제와 과연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게다가 환각 효과를 갖고 있는 성분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성분의 배합과 성분을 어디에서 얻느냐 하는 점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점이 있었다. 이 성분을 잘만 이용하면, 그다지 구하기 어렵지 않은 재료를 이용해서 값비싼 마약을 대신하는 용도로 복사초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다른 방법으로 멈출 수 없는 지나친 통증이나 고통이 있을 때 그 고통을 멈추는 값싼 진통제 같은 약으로 복사초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약류연구원의 직원들 중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하려고 이런저런 기회를 쟤보고 있던 한 연구원이 있었다. 그 연구원은 복사초의 원리를 이용한 진통제를 개발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구원은 몇몇 창업 지원 행사를 돌아 다니며, 복사초의 원리와 그것을 응용한 신종 저가 마약, 그리고 다시 그것을 이용한 신형 진통제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파하고 다녔다.

연구원은 그 어떤 창업 지원 행사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연구원의 창업은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실패하기 전에 1년 여간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영향은 사람들 사이에 남았다. 복사초의 성분을 이용해서 신경의 활동을 조절한다는 생각은 제법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몇몇 다른 사람들이 복사초의 성질과 원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그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택에 복사초는 다른 어떤 약도 따라 올 수 없는 최고의 약이 되었다.

사람의 뇌는 그 부위에 따라 기능이 조금씩 다르며, 어느 부위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뇌의 어떤 부위는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이해하는 역할을 하며, 뇌의 다른 부위는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부위는 슬픔을 느끼는 역할을 하고, 어떤 부위는 막연하고 끝 없는 상상 속으로 사람을 빨아 들인다. 그런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다양한 뇌의 부위들 중에는 사람이 죽을 때, 죽기 직전의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는 지에 대해 담당하는 부위도 있다.

복사초는 바로 죽음을 받아 들이는 정신을 위한 그 뇌세포들에게 특별히 강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약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죽음의 순간 복사초가 뇌에 들어 가면,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오히려 점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 실제로 가까이 다가 와 뇌에서 피와 산소가 부족해지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갈 수록 누구나 느끼기 마련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간다. 그런데 복사초는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 두려움을 대체할 다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대신 자라나게 해 준다. 이 약은 죽음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던 상상이 점점 더 뇌 속에서 실체에 가까운 느낌으로 바뀌어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복사초는 죽음의 공포를 안정시켜주는 약물이 동시에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상상을 즐거운 꿈처럼, 그렇지만 꿈이라고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형실처럼 느끼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복사초를 먹은 사람은 평소에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모든 상상이 그대로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 복사초는 꿈과 현실을 판별하는 의심하는 뇌세포들을 파괴하는 약이기도 하므로, 그런 착각이 착각이라는 의심은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굳게 믿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이 자신은 훌륭한 사람이므로 저 세상에 가게 되면 별자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 보자. 그 고대 그리스인이 복사초를 먹는다면, 늙고 병들어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점점 별자리로 변하는 것 같은 행복한 꿈을 진짜처럼 꾸게 된다. 어떤 현대의 SF 소설 중독자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5만 광년 떨어져 있는 다른 행성으로 정신이 순간 이동 되어 외계 왕국의 왕자로 다시 태어날 거라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고 있다고 해 보자. 그 사람이 복사초를 먹느다면, 실제로 죽음을 맞이할 때, 웜홀을 통과해 5만 광년 너머의 전혀 새로운 행성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 같은 환각을 마지막으로 생생히 느끼게 된다. 그것이 하필 죽음의 순간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뇌 부위에 작용하는 복사초가 갖고 있는 강력한 환각 작용의 특이한 효능이었다. 복사초의 강한 환각을 느끼는 동안에는 고통을 포함한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시간 감각도 정지한다. 모든 현실감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복사초는 현대의 기술로는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약이었다. 곧 사람들은 이 약을 실제로 사용할 곳을 찾고, 판매해서 돈을 벌 방법을 찾고자 했다.

가장 먼저 복사초가 공급된 곳은 전쟁터였다.

전쟁터의 긴급 상황에서는 통상의 법적인 기준이나 규제에서 벗어난 긴급한 물품의 사용이 승인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복사초 판매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용도는 고대의 백제 병사들이 사용하던 분야와 같은 용도였다. 전쟁 중에 죽음을 예상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면 병사들은 복사초를 나누어 먹는다. 그러면, 고통스러운 죽음의 공포 대신에, 다들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바람직하게 체험한다. 죽음 이후에 저승사자를 만나는 장면이건, 염라대왕을 만나는 장면이건, 모두 진짜라고 믿으며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을 편안하게 느끼며 그 모든 체험을 실제라고 믿게 된다. 그 환각에는 그 어떠한 의심도 없으므로, 아무리 처절한 전투 끝에 절망에 빠진 병사들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그 마지막만은 복사초를 먹고 편안함을 느낀다.

전쟁터에서 복사초가 갖는 효험이 확인되자,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 몇몇 말 잘하는 사람들, 인기 많은 사람들은 복사초를 좀 더 널리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그들은 복사초는 병사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복사초를 당국에서 허용하기 전에도 몰래 구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 났다. 그들은 단체를 만들고 변호사 여럿을 고용해, 미국, 일본, 유럽의 몇몇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죽음, 그 자체인데, 그 괴로움을 덜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국가에서 널리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단 몇 나라에서 복사초가 허용되고 나자, 그 성능과 유용함에 대한 목격담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복사초는 또한 아주 널리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사초를 허용해야 하느냐 마느냐 정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예 의무적으로 복사초를 반드시 먹여야 한다는 법령을 제안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야수에게 물어 뜯기고 있다면 구출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듯이, 누구인가가 죽음을 맞이하며 가장 두려운 죽음의 공포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복사초를 주는 것이 도리라는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가 옳다고 여겼다.

물론 복사초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초기에는 적지 않았다. 그들은 복사초를 먹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보내는 것이 인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최후는 어쩔 수 없이 비극임을 느끼는 것이 옳은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반드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겠다는 사람들은 가스레인지로 조리한 음식은 제 맛이 나지 않으니 먹지 않으며 장작 불 위의 가마솥에서 만든 옛날 방식의 음식만을 먹겠다는 사람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아예 복사초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두고 "자기는 별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잘난 척 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복사초는 다수의 사람들이 정말 정말 좋아하는 약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사초는 저승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좋았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복사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며, 죽음의 순간을 안식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몇몇 사람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승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 복사초를 먹으면 죽음을 맞이 할 때, 삶의 모든 단계를 차근차근 거친 결과 드디어 끝을 맺었다는 데 대해서 어떤 깊은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생명이 완전히 종료 되었으며, 이제 사람의 의식은 꺼져서 흩어져 가는 그 느낌이 어떤 게임을 마지막까지 다 해낸 후에 결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후로 자신 없이 영원히 이어지는 망망한 미래의 시간이 가장 바람직하고 좋은 저승의 한 형태라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복사초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양이 팔려 나갔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 누구나 복사초를 먹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병에 걸리지만, 누구든 죽는다는 점은 예외 없이 같다. 때문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약으로 복사초는 자리 잡았다. 복사초가 보여 주는 마지막 꿈은 각자가 자기의 믿음대로 인생을 정리하고 인생 이후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믿게 만들어 주는 가장 기분 좋은 방법이었다. 죽음 후에 천사를 따라 가서 영원한 낙원에서 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실제로 삶이 꺼져 가운데 인생의 그 어떤 체험보다도 더 진짜 같은 느낌으로 어떤 조각상 보다 생생한 모습의 천사를 따라 가서 어떤 영화 속의 낙원 묘사보다 풍요로운 낙원을 구경하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생명이 떠나감에 따라 뇌 속의 시간 감각도 서서히 삭아 없어져 바로 그 환상의 즐거움을 영원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여전히 장례 문화나 무덤을 만드는 방식은 전 세계에 걸쳐 서로 다른 풍습이 나뉘어 있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 하는 방식에 복사초가 들어 가는 것은 세계 모든 사람의 공통이 되었다.

학자들은 복사초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사상 속에서 바꾸어 놓았다고 평했다. 더 많은 투자자들은 복사초야 말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약이라고 느꼈다. 그 보다 많은 정치인들이, 삶의 마지막에 사용되는 복사초가 그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는 평생 동안 지니고 있는 성격과 사상까지도 바꾸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를 교묘하게 피하고, 모든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명확히 확인하는 것만 같은 꿈을 느끼는 시대가 인류 문명의 처음으로 열렸다고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학자들은 마침내 복사초를 가공한 새로운 형태의 약물을 만들어 냈다. 이 약은 태어나자 마자 사람의 몸에 주입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급박한 상황을 맞아 복사초를 미처 먹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결할 수 있었다. 태어나자 마자 주입해 놓은 복사초의 성분은 생명의 마지막을 맞이하면 항상 그 사람의 뇌에 자동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든, 어떻게든, 삶의 마지막은 복사초를 먹은 백제의 마지막 용사들과 같이 자신이 믿고 있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경험하며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복사초 약물 주입은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무로 진행되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복사초를 이용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당의 법무부 장관 후보라는 사람은 바로 그 점을 거꾸로 이용해서, 사형제 폐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사형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심하는 여론도 같이 퍼지고 있었다. 이때, 그 법무부 장관 후보는 사형 판결을 받을 사람에게는 색다른 처벌을 대신 내라지고 했다.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에게는 복사초의 해독제를 먹일 거라고 했다.

결국 그를 후보로 선정한 당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 2021년, 서울 시민의 숲에서

댓글 9
  • No Profile
    윤새턴 21.08.31 14:33 댓글

    주식회사 염라대왕의 서비스와 복사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네요. 동시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09.01 08:12 댓글

    그러고보니 비슷한 소재네요. 잘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Profile
    한때는나도 21.08.31 16:33 댓글

    중간에 '복수초'라는 표시가 있는데 혹시 단순한 오기인지, 아님 역사 속 누군가 혹은 언젠가 복사초를 복수초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기록한 게 발견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 한때는나도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09.01 08:11 댓글

    앗 오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곽재식님께
    No Profile
    한때는나도 21.09.01 14:32 댓글

    여러가지 (허구의)역사적 기록을 다룬 소설이라 혹시 시대별로 다른 표기가 있는 것인가 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심너울 21.09.03 00:06 댓글

    언제나처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런 식의... 편년체? 느낌의 서술은 작가님의 가장 큰 매력인 듯 합니다.

  • 심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09.05 09:36 댓글

    감사합니다 거울은 아무래도 좀 자유롭게 이런저런 글 올리기 좋은 곳이라 이것저것 써 보고 있습니다

  • 임캐럿 21.09.10 16:46 댓글

    줬다 뺏는게 제일 치사한거랬는데... 제일 치사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네요 ㅋㅋ

  • 임캐럿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09.16 19:36 댓글

    그렇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류 제목 날짜
정도경 대게 - П...4 2021.10.01
노말시티 일인용 냄비에 라면을 끓였다 2021.10.01
갈원경 우주로 2021.10.01
유이립 이기적이다 2021.10.01
곽재식 하늘의 뜻2 2021.09.30
돌로레스 클레이븐 천국의 벌레들 2021.09.13
갈원경 마지막의 아이 2021.09.01
노말시티 안테로스 2021.09.01
곽재식 최후의 기술9 2021.08.31
해망재 상해기담 - 마리 이야기 2021.08.22
갈원경 믿어라, 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2 2021.08.01
노말시티 출근하자마자 퇴근하는 세상 2021.08.01
곽재식 크리에이티브 이노배이션을 위한 뉴 스페이스2 2021.07.31
갈원경 중요한 노트는 반드시 복사를 해 둘 것2 2021.07.01
노말시티 헤매 2021.07.01
갈원경 삼각형이 아니라 삼각기둥이라고 수민은 말했다 2021.07.01
지현상 파고들다 2021.07.01
엄길윤 코로나 호캉스 2021.07.01
곽재식 이상한 웅정 이야기2 2021.06.30
노말시티 기관사를 좋아하세요 2021.06.01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