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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퇴근하는 세상

노말시티

 

사람들이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굳이 여론조사를 해 볼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있을 것이다. 퇴근하고 싶다.

재택 근무가 일상으로 자리잡았고 현장 업무도 점차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아직 대중 교통에 몸을 맡긴 채 회사로 직접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몸을 써야 하는 작업 중에서도 이동이 잦아 고정된 컨베이어 벨트로는 수행할 수 없거나 값비싼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적용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많은 일들에 아직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언뜻 사소해 보일 수 있어도 기계화의 사각지대를 메꿔주는 이들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명감만으로 버텨내기에 이들의 업무는 너무 지루하고 소모적이다. 상황에 따라 약간씩 변주되는 게 전부인 업무를 여덟 시간 동안 반복하는 걸 보고 있자면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이들의 외침에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출근하자마자 퇴근할 수 있는 회사가 등장했다. 농담이 아니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한 뒤 바로 퇴근하면서 하루 일당을 받는다. 공짜로 돈을 받는 게 아니다. 이들은 분명 여덟 시간 동안 일을 했다.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퇴근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의 설명을 들어 보면 이렇다. 아침에 출근하면 안락 의자에 기대 앉아 전극이 잔뜩 달린 헬멧을 머리에 쓰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바흐가 작곡한 푸가가 들린다. 반복되고 겹치는 선율을 듣고 있다보면 잠깐 음악이 끊기는 느낌이 든다. 간혹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나 체감상으로 일 분이 지나기 전에 삐 하는 완료음이 들리고 음악이 꺼진다. 그럼 헬멧을 벗고 퇴근한다. 밖으로 나오면 여덟 시간이 지나있다.

회사는 이들이 여덟 시간 동안 몸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행법상 인간이나 인간의 신체를 거래하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빌려주는 것에 대한 규정은 없다. 무엇보다 빌려주는 행위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몸을 직접 잘라서 빌려주는 것만 빌려주는 것인가. 상대방이 내 생각과 행동을 모두 제어할 수 있어야 빌려주는 것인가. 아니면 이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당한 채 상대방이 지시한 업무를 정해진 시간동안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수행해야 한다면 그건 내 몸을 빌려준 것일까.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많은 노동이 마지막 범주에 포함된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모든 직업이 넓은 범위로 볼 때는 몸을 빌려주는 일이라는 게 이들 업체의 주장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직원의 의지와 행동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제어하는 대신에 일하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제거해 준다고 설명한다. 근무 시간을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듣기 좋게 말만 포장한 게 아니다. 이들은 일하는 동안 입을 수 있는 신체적인 피해에 대해 그 어떤 직종보다도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보상해준다. 긁힌 상처 하나라도 있으면 치료비에 위로금까지 얹어 주는 식이다. 심지어 이들은 출근과 퇴근 시의 근육 피로도까지 측정하여 그 차이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 수당을 준다.

무엇보다 직접 일하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계약서를 꼼꼼이 읽어보고 동의하는 건 물론이다. 언제든지 일을 그만 둘 수 있고 일한 기간에 따라 퇴직금까지 챙겨 받을 수 있어도 한 달 단위로 갱신되는 계약의 재계약률은 95%를 넘는다. 이정도면 개인적인 사정이 생긴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계약을 하며 심지어 개인적인 사정을 무릅쓰고도 계속 일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 개월간 이 일을 계속해 온 사람들은 비슷한 일당을 주는 다른 일용직에 비해 몸이 훨씬 덜 피곤하다고 말한다. 업체는 직원들이 관리자의 제어에 정확히 따라 올바른 자세로 일하고 휴식 시간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삶에서 여덟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에게 무시받으며 고된 작업을 반복하는 시간이 삶에 왜 필요한지 되묻는다.

퇴근 후의 삶도 개선되었다. 예전에는 퇴근 후에 술을 마시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자기 개발에 시간을 투자한다. 오히려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걱정이 회사에 다녀오고 나면 싹 사라진다는 사람도 있다. 월요일이 기다려진다는 말을 진지하게 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견이 갈린다. 찬성하는 사람은 실질적인 업무 효율과 직원들의 만족도를 볼 때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다른 직장들의 근무 조건을 이런 회사의 수준에 맞추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꼬집는다. 직장에서 입을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피해를 정량화하여 비교하면 과연 어디가 문제겠냐고 묻는다.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원칙론에 가깝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억압당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루 여덟 시간의 자유 의지를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고 나면 나중에는 수 개월 혹은 수십 년을 통째로 거래하는 경우도 나타나지 않을까. 감옥에 다녀오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이들의 주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찬성 쪽은 그럼 다른 노동자들의 자유 의지는 억압당하지 않고 있냐고 반박한다. 말했듯이 이들의 노동은 우리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들이 그런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충분한 복지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 겨우 먹고살고 누군가는 그저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다. 누군가는 그런 노동자들을 마음껏 무시하고 멸시하는 한편 누군가는 그런 감정을 받아내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개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결과일까.

인간은 고귀하다. 모든 인간은 자유 의지를 침해받지 않으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 고집스러운 원칙이 우리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받쳐주는 버팀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아직은 우리 사회가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도 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이 천차만별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원칙을 고수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덜 고통받으며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쪽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은 우왕좌왕이다.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업체가 모두 반발하는 상황에서 이런 회사들을 규제할 법안 마련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해당 기술을 적용하는 업체들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는 세상이 열린다.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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