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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윤 코로나 호캉스

2021.07.01 00:0007.01

코로나 호캉스

엄길윤

드디어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있게 됐다. 짧은 2박 3일 동안이지만 승낙받으려고 얼마나 야근을 해댔는지 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국이라서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요새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데, 무턱대고 욕할 수만은 없는 게 확진자 수가 내려갈 만하면 여기저기에서 집단 확진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다시 확진자 수가 올라가는 걸 보면 사람들이 지칠 만도 하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밖을 제대로 못 돌아다니니까 몸이 쑤셨다. 너무 답답해 미친 척하며 휴가계를 들이민 터라 당장 며칠 후부터가 휴가였다. 당일에 뭘 할지 몰라 헤매기 전에 얼른 계획을 짜놓아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어떤 휴가를 보내면 좋을지 검색하다가 요새 사람들이 호캉스를 자주 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호캉스 후기에 관한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블로그 등에 가득했다. 호캉스는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말로 휴가지에 가서 사람들 등쌀에 떠밀리고 바가지요금에 고생하느니 차라리 편안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합성어였다. 하긴, 생각해보니 사람들하고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운 요즘 시대에 딱 맞는 휴가이기는 했다.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호캉스 후기를 살펴봤다. 대부분이 만족하는 추세였다. 코로나로 인한 부담감도 없고, 또 편안히 빈둥거리기만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무엇보다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요즘엔 호캉스가 유일하게 안전한 휴가일지도 몰랐다. 그럼 선택지는 하나였다. 호텔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좀 부담스러웠지만, 그거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되니까.

대충 호텔에 대해 알아본 후 스마트폰에 깔린 숙박시설 예약 앱으로 들어갔다. 장소는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서울에 있는 호텔이어야 했다. 되도록 비싼 호텔이 만족감이 크다고 했던가? 이번만큼은 가격 보지 않고 맘에 드는 거로 골라야지. 호텔 숙박 패키지들을 훑어보다가 생맥주와 와인 무한 패키지를 발견했다. 좀 비싸긴 해도 이만하면 쓸 만하겠다 싶어 안내 정보를 찾아봤다. 생맥주와 와인을 무한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호텔 방에서 나와 따로 마련된 시설까지 올라가야 했다. 번거롭기도 하고 최대한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하므로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숙박 패키지를 찾다가 디럭스룸과 조식 패키지를 구매하기로 했다. 분명 맥주를 사 와서 진탕 마실 텐데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누군가가 이야기하기로는 호텔의 꽃은 조식이라고 하고, 식당가기도 부담스러운 시국이니 꼭 일어나서 그때만이라도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가격을 확인하니 2박 3일 동안 60만 원이었다. 살짝 비싼 게 사실이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을 쓸까? 괜히 고민만 하다 기분을 잡치느니 결정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게 낫다. 앱에서 디럭스룸과 조식 패키지를 과감히 결제했다.


휴가 당일 늦은 아침에 일어났다. 침대 옆 책상에 놓인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20분이었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15시라서 아직 시간은 많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창문을 통해 밝은 햇볕이 쏟아졌다. 얼마만의 여유로운 아침일까? 창문 밖을 확인해보니 날씨가 좋았다. 아무리 호캉스라고 해도 비가 오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느긋하게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TV 앞에 앉아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어차피 호텔에서도 최소한의 외출만 할 예정이라 챙겨야 할 짐이 많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손소독제와 여분의 마스크 같은 코로나 위생용품을 빠뜨리지 않는 거였다. 쓸데없는 옷가지들을 넣는 것보다 그것들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게 이득이었다.

가방을 다 싼 후 TV와 연결된 ps5로 게임을 했다. 오랜만이라 정신없이 열중하다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시가 넘었다. 지금쯤 일어나 천천히 출발하면 딱 맞았다. 옷을 가볍게 챙겨 입고 백팩을 멘 후 집을 나섰다.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집 앞 골목을 걸으며 다시 한번 호캉스 계획을 점검했다. 먼저 체크인을 하고, 사전에 예약한 서울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온 후, 아침에 조식을 먹고는, 코로나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기가 좀 그러니까 최대한 호텔 객실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세한 건 그때 고민하는 거로 하자.

원래 휴가란 게 자세하게 계획을 잡을수록 어그러지기도 쉬운 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전시회를 못 간 지 너무 오래됐다. 사람들 때문에 좀 꺼려져도 서울국립현대미술관은 워낙 크고 넓어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편이었다. 최대한 거리 두기를 하면 되니까. 물론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대놓고 밖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게 진짜 목적인지도 몰랐다. 가끔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속감과 함께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충이나마 할 일을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의 휴가라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처음 해보는 호캉스라 한껏 설레었다.

들뜬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으로 나왔다. 백팩을 고쳐 메고 걷다 보니 어느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몇 명의 사람은 가는 길을 멈추고 나를 봤다. 뭔가 잘못된 걸까? 느낌이 안 좋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얼굴이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차!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오는 걸 깜빡했다. 호캉스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얼른 손으로 입을 막고 집으로 뛰었다. 물론 가방 안에 여분의 마스크를 넣어놨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착용하는 건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빨리 자리를 피해야 그나마 욕을 덜 먹었다.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이면 되돌아갈 수 있었다.


허겁지겁 마스크를 착용한 후 집에서 나왔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걸으면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살폈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로부터 벌써 일 년 반이 지났다. 사람들은 지쳐만 가는데 코로나는 아직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잡힐 듯 말 듯 확진자 수가 많아졌다가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하더니만, 요즘은 오히려 다시 늘어나는 추세였다. 물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상황은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직접 체감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다르겠지. 마스크 없이 살던 때가 너무 그리웠다. 아마도 내년까지는 마스크를 써야 하지 않을까?

마스크가 조금 내려간 게 느껴져 손으로 올리다가 길거리에서 턱스크를 한 남자와 마주쳤다. 카악! 가래침을 내뱉던 남자는 마스크를 시원하게 턱까지 내린 채 주변을 서성이며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담배 연기 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와 목구멍에 턱 막혔다. 최대한 숨을 참으며 그 자리를 빠르게 지나쳤다. 아예 처음부터 담배를 배우지 않은 나로서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나쁜지 아니면, 저렇게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게 나쁜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진짜 뭐가 나쁠까? 담배? 아니면 턱스크?


버스 정류장에서 5분을 기다리니 호텔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대충 승객들이 없는 뒤쪽 창가 좌석에 앉은 후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상가의 모습이 왠지 어두워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코로나로 인해 제일 큰 타격을 받은 건 아무래도 자영업자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앞좌석의 손잡이를 잡은 후 스마트폰을 봤다. 앞으로 네 정거장만 더 가면 되니 체크인 시간은 충분하다.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정차하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출입구에 올라섰다. 연신 기침을 하며 교통카드를 버스 단말기에 갖다 댔다. 마스크는 코를 노출한 채 입만 가린 상태였다. 버스 기사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참지 않고 한마디 내뱉었다.

“어르신, 마스크는 제대로 쓰셔야죠. 코까지 올려주세요.”

할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뒷문 쪽에 있는 좌석으로 향하다 갑자기 뒤돌아섰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뭐?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야? 마스크가 뭐 어째?”

할아버지가 휘청거리며 버스 운전석 바로 옆 좌석에 앉더니 마스크를 내리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이도 어린 게 어디 싸가지 없이 말을 함부로 해? 네가 뭔데 마스크를 올리라 마라 난리야? 네 부모가 그리 가르치더냐?”

마스크를 있는 힘껏 끌어내린 할아버지가 버스 운전석 칸막이를 주먹으로 쾅쾅 쳤다. 몇 번 두드리더니 힘에 부쳤는지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침을 튀기며 버스 기사에게 호통쳤다. 마스크를 쓴 다른 사람들이 버스 출입구에 올라서다가 할아버지의 행동을 보고는 다시 내려가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신고해라 이놈아! 마스크 똑바로 안 썼다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버스 운전석 옆에 앉아 발광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유는 뻔했다. 단순히 지적을 받아 기분이 나쁘다는 거였다. 본인이 느끼는 부당함만이 중요할 뿐,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코로나 감염이나 다른 사람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은 때에 따라서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었다. 뉴스만 봐도 흔한 광경이었다. 하루에도 마스크 미착용 시비가 몇 차례나 일어나곤 했었다.


할아버지의 난동은 경찰이 오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풀이 죽은 채 경찰의 뒤를 따르는 걸 보니 자신이 잘못한 걸 아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떻게든 금융치료를 피하기 위해 그런 척만하는 비겁한 사람이거나.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도심 한가운데에 고급스러운 외관의 건물이 보였다. 앞으로 2박 3일 동안 푹 쉬게 될 앰배서더 카운티 호텔이었다. 입구를 통과해 로비에 들어서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유니폼을 입은 호텔 직원이 다가왔다. 잠시 양해를 구한다는 듯 꾸벅 인사를 하고는 손에 들린 발열체크기를 내 얼굴에 갖다 댔다. 잠시 후 삑! 소리가 나자 호텔 직원이 웃으며 물러났다.

“고객님, 온도 체크 했고요. 아무 이상 없으십니다.”

프론트 데스크로 걸어가니 프론트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환한 얼굴로 반겼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늘 편안한 앰배서더 카운티 호텔입니다. 예약 사항 있으신가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떠올렸다. 요즘은 대부분 호텔 예약도 앱으로 하는 터라 예약 화면만 보여주면 된다고 했었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숙박시설 예약 앱을 실행했다. 예약 화면을 보여주자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프론트 직원은 QR코드 스캐너로 화면을 찍었다. 데스크 앞의 화면을 콕 콕 누른 직원이 스마트폰을 되돌려주며 책자로 된 호텔 시설 안내문과 조식 쿠폰, 객실 카드키를 함께 건넸다. 먼저 호텔 시설 안내문과 조식 쿠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객실 카드키 뒷면을 보니 1203이란 숫자가 쓰였다. 아마도 객실 번호가 1203호인 모양이었다. 맞다. 조식이 몇 시부터였지?

나름 중요사항이라 프론트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고개를 드니 프론트 직원이 손소독제를 손에 듬뿍 짜는 게 보였다. 뭐야, 내 스마트폰이 더럽나? 조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어쨌든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었다. 프론트 데스크 위쪽을 보니 체크인할 때 손소독제를 이용 부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고객님, 문의 사항 있으신가요?”

프론트 직원이 손소독제로 손을 박박 문지르며 물었다. 신경질적인 몸짓을 보고 있자니 씁쓸했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신체 접촉은 물론이고, 주고받는 물건까지 조심해야 했다. 여러모로 불편한 세상이 됐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식 시간표는 나중에 호텔 시설 안내문에서 찾기로 하고 로비 끝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코로나가 사람들 간의 온정도 시들게 하는 걸까? 한숨이 나왔다. 이 코로나가 언제쯤 잠잠해질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렇다 할 기약이 없었다.


1203호 안으로 들어오니 큼지막한 공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현관에서 탁자와 의자가 놓인 거실까지의 거리가 상당했다. 무슨 터널이라도 펼쳐진 것 같았다. 시야가 탁 트이자 코로나 때문에 가라앉은 기분이 좀 살아났다. 현관문 옆의 카드리더기에 객실 카드키를 꽂고는 거실로 향했다. 쭉 내뻗은 공간을 걷다 보니 옆에 욕실 문이 보였다. 주위에 화장실이 따로 없는 거로 보아 그 두 개가 합쳐진 모양이었다.

욕실 안으로 들어와 사방을 둘러봤다. 내부가 모텔에 비교해서 상당히 넓었다. 천장과 벽은 모두 은은한 베이지색 타일로 이루어졌고, 바닥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분홍색 매트를 깔았다. 한쪽에 따로 미니바 같은 게 있어서 살펴보니 다용도세재와 유막제거재 같은 욕실청소용품들이 다양한 크기의 브러쉬들과 함께 차례대로 놓여있었다. 그걸 보고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하는 직원이 그대로 두고 갔나? 아니면 원래 호텔이라는 곳은 그런 건가. 그럼 욕실용품은 어디에 있을까?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은 욕실 내부를 살폈다. 한가운데에 공중전화 부스처럼 투명한 칸막이로 만들어놓은 샤워실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샤워기 밑의 받침대에 바디워시와 샴푸 등의 욕실용품이 가득했다.

샤워실 밖으로 나와 커다란 거울이 달린 세면대를 바라봤다. 실제 사물과 유리를 통해 비치는 사물 중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거울이 깨끗했다. 하얀 세면대는 선반 위에 각종 세안 도구와 병에 담긴 꽃을 두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호텔을 자주 찾는 모양이었다. 모텔 시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세면대 서랍장을 열어보니 둘둘 말린 하얀 수건들이 열을 맞춰 수납됐다. 더 대박인 건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조가 생각보다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거였다. 마치 고급 목욕탕에 온 기분이었다. 이 모든 시설이 구석에 자리 잡은 변기와 상당히 떨어져 화장실과 욕실이 각각 독립된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동네 목욕탕을 못 간 지 너무 오래됐다.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와서 제대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고 생각하니 벌써 온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온 호텔치고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욕실 구경은 이만하면 됐다 싶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로 걸어와 주변을 살폈다. 여기도 생각보다 넓은 편이었다. 현관에서부터 보이던 탁자 위에는 화사한 꽃들을 담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꽃들은 모두 생화였다. 그 밑으로 두 개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며 자리했다. 옆에는 소파가 있고, 그 뒤로 커다란 침대와 맞은편에는 벽걸이 TV가 보였다.

바로 침대로 가 백팩을 멘 상태로 뛰어들었다. 비스듬히 누워 얼마나 푹신푹신한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다시 주위를 살폈다. 탁자 앞에 화장대가 보이고, 그 옆의 옷장에 호텔 가운 2개가 걸려 있다.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벽걸이 TV 위에 네모난 종이가 떡 하니 붙은 걸 발견했다. 큼지막하게 글씨가 쓰여 있어 천천히 읽어봤다.

‘실내에선 꼭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내용을 확인하고는 기가 찼다.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아우성이어도 이건 너무 깐깐한 것 아닌가? 취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정도껏이어야지. 혼자인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게 말이나 될까. 더구나 실내인데 말이다. 편히 쉬러 왔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코로나 예방 수칙에도 그런 사항은 없을 터였다.

벌떡 일어나 말도 안 되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뜯어냈다. 처음 와보는 호텔이라 이게 이상한 건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로 가 구석에 마련된 휴지통에 종이를 힘껏 구겨서 버렸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숙박시설 예약 앱에 올라온 호텔 방 내부 사진과 실제 모습을 번갈아 비교했다. 각도와 방향 때문에 앱에 올린 사진이 더 넓어 보이는 것 빼고는 거의 비슷했다. 트집을 잡기엔 구도상의 문제라 뭐라고 악플을 달기가 애매했다.

코로나를 조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자며 화를 삭였다. 어차피 휴가를 왔는데 기분이 상하면 나만 손해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파 위에 백팩을 내려놓았다. 안에서 손소독제와 여분의 마스크 등의 위생용품이 가득 든 손가방을 따로 챙겼다. 얼른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객실에서 나와 호텔 로비를 가로지르며 입구로 향했다. 부쩍 사람이 많아진 데스크에는 손소독제를 사용하라던 직원은 보이지 않고, 다른 여직원이 고객과 상담 중이었다. 아마도 다른 직원에게 안내를 맡겨 놓은 채 잠시 화장실에 간 모양이었다. 프론트 직원이 열심히 손소독제를 사용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코로나로부터 버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지하철에서 내려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관람 때문에 온라인에서 사전 예약한 사람만 관람이 가능했다. 매표소에서 사전예약 QR코드를 찍고 티켓을 받았다. 지하로 내려가 2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니 연인들이나 가족끼리 온 관람객들 사이로 혼자 다니는 관람객이 많았다. 다행히 모두 마스크를 잘 쓰고 거리 두기를 지켜 코로나 감염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다.

2전시실에 전시된 작품들을 본 후 3전시실을 지나 4전시실로 들어갔다. 천천히 작품들을 살피며 걷는데 앞에 가던 연인들이 멈춰 섰다. 거리 두기 때문에 따라 멈췄다. 뭐하나 싶어 고개를 빼고 지켜봤다. 연인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며 뭔가를 속삭이더니 살짝 마스크를 내려 서로 뽀뽀를 쪽, 하고는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원래 사람들이 모인 실내에서 마스크를 내리면 안 된다. 잘 알지만, 금방 마스크를 다시 쓰기도 했고, 저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한창 뜨거울 때니 주체를 못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연인을 보며 헤어진 전 여친이 생각났다. 결혼을 빨리하고 싶다던 그 애는 내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런 식으로 헤어진 터라 다시 연락할 수는 없었다. 전화번호를 아예 삭제하기도 했고, 그건 전 여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마도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겠지.

“이봐요. 왜 방역 수칙을 어기는 행동을 보고도 자리를 피하지 않죠?”

뒤에서 들리는 화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얼른 돌아보니 누군가 휙 방향을 틀어 걷다가 코너를 돌아 4전시실 출구로 나갔다. 뒷모습을 보니 남자였다. 어이가 없어 바라보기만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쫓았다. 이건 억울해서라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뉘앙스가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기는 것보다 코로나에 확진되는 게 더 나쁘다는 식이었다.

사라진 남자를 찾아 4전시실 출구로 나왔다. 갈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행방을 쫓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마스크를 쓴 관람객이 많아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 시국 때문에 답답해서 한 소리 내뱉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왜 피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요새 들어 코로나로 인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점점 쌓이던 코로나 분노가 한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코로나 확진자보다 그들에게 감염된 다른 사람이 더 혐오의 대상으로 분류되는 기분이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의 전시실을 돌고 나니 체력 소모가 심했다. 배가 고파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1층 카페로 향했다. 내부에 아직 푸드코트가 들어오지 않아 카페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카페 계산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주문한 후 추가로 뺑오쇼콜라를 선택했다. 진동벨을 받고 어떤 자리가 좋을지 살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른 사람과 떨어져야 한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나 주문한 음식을 받아 오는 사람들을 피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딱 알맞은 자리를 찾았다. 화장실과 가까워 사람들이 피하는 1인용 테이블이었다. 이 정도면 남에게서 코로나가 옮거나 혹, 내가 남에게 코로나를 옮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주문한 샌드위치와 뺑오쇼콜라를 먹다 보니 소변이 급했다. 어차피 화장실이 바로 앞이라 굳이 마스크를 안 써도 상관없었다. 금방 나올 테니 다른 사람 눈치는 안 봐도 된다. 급히 변기 칸에서 소변을 보고 손을 박박 씻은 후 테이블에 앉았다. 먹다 만 샌드위치를 들어 올리다 입을 닦으려고 몇 장 뽑아온 냅킨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앞장에 시커먼 뭔가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확인해보니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들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마스크는 써야죠.’

누군가가 남긴 경고 메시지였다. 가슴이 철렁해 얼른 카페 안을 살폈다.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냅킨에다가 이런 메모를 적어 놓았을까? 비뚤비뚤 써진 글씨를 보다가 다시 카페 안을 둘러봤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이 정도로 사람이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서로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분명히 글씨를 쓴 사람은 카페 안의 누군가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걸 목격하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경고를 남긴 게 분명했다. 물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한번 실수한 거로 바로 지적이 들어오자 서운함을 넘어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실제로는 눈에 불을 켜고 서로 감시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입맛이 떨어져 반쯤 남은 샌드위치와 뺑오쇼콜라를 한쪽으로 치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얼른 호텔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코로나 방역 수칙을 잘 지켜도 한번 실수하면 그걸로 죽일 놈이 되는 게 요즘의 추세였다.


착잡한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몇 정거장 가기도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소변이 마려웠다. 최대한 참다가 호텔 인근의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뛰었다. 제발 변기 칸이 비어 있어야 할 텐데. 서서 소변을 보면 굉장히 찝찝했다. 소변 줄기가 소변기 안쪽 벽에 맞고 바지에 튀기 때문이었다. 유튜브에서 그런 내용의 영상을 시청한 후로는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는 걸 선호했다.

지하철 화장실로 뛰어와 안을 살폈다. 다행히 사람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소변기에서 볼일을 봤고, 다른 한 명은 세면대에서 열심히 손을 씻는 중이었다. 얼른 화장실 안쪽을 바라봤다. 4개의 변기 칸은 모두 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손가방을 옆으로 돌려 멘 후 두 번째 칸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먼저 변기 커버를 최대한 닦고, 다시 휴지를 꺼내 물기를 제거했다. 혹시 제거하지 못한 이물질이 있나 살핀 후 변기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똑, 똑

곧바로 다시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짜증이 나 아까보다 더 힘을 주어 네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똑!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사방이 조용했다.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칸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금방 소변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면대로 향하다 문득, 이미 들어왔을 때부터 사람이 몇 명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변기 칸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문을 두드렸으니 나머지 칸도 비어 있을 게 뻔했다. 그러면 거기로 가면 그만이었다. 꼭 내가 들어온 변기 칸에 와서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황당해 뒤를 돌아봤다. 비어 있는 다른 칸들을 살피다가 내가 나온 두 번째 칸 문에 뭔가가 붙은 걸 발견했다. 그건 노란색 포스트잇이었다. 볼펜으로 깨알 같은 글씨를 적어 놓았다. 가까이 가서 내용을 확인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

또 코로나였다. 혹시나 해서 다른 변기 칸을 살폈다. 문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예민하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까?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필 오늘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도 이상했다. 서울국립현대미술관의 카페에서도 경고성 메모를 적어놓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됐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마스크를 쓰고 갔어도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금방 다시 벗었을 터였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적하려면 손을 안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 걸 확인한 후에 하는 게 맞지 않나? 왜 내가 마치 손을 안 씻을 것처럼 단정할까? 4전시실에서 마스크를 내린 커플을 보고 왜 피하지 않느냐는 비난은 또 어떻고.

처음 화장실에 들어올 때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사람이 떠올랐다. 아마 그 사람이 손을 다 씻고는 내가 들어온 변기 칸에 포스트잇을 붙였을 것이다.

세면대로 걸어가 가방에서 핸드워시를 꺼냈다. 수도꼭지를 돌려 흐르는 물에 손을 박박 씻으며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다. 코로나 예방 수칙도 중요하지만,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다 코로나 예방 수칙을 안 지키면 집단 린치라도 당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손을 다 씻고 손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을 닦은 후 손소독제로 다시 한번 꼼꼼히 양손을 문질렀다. 왠지 불길했다. 얼른 호텔 객실로 돌아가야겠다. 별다른 일이야 당연히 없겠지. 그래도 이 코로나 시국에 밖을 돌아다니는 건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지하철 화장실을 나와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를 가득 샀다.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저녁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올 수 없는 호캉스인 만큼 2박 3일 동안 최대한 즐겨야 한다. 서울국립현대미술관은 이미 다녀왔고, 호텔로 돌아가 그동안 못 본 밀린 영화들을 보며 맥주를 진탕 마시고, 그 후에는 욕실에서 반신욕도 즐기고,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서 묵은 때도 벗겨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려고 회사에 미친 척하며 휴가를 낸 거니까.


양손 가득 캔맥주와 안주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객실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하다가 옷장 옆에 냉장고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비닐봉지가 무거워 낑낑대며 거실에 들어오다 옆을 돌아보고는 멈춰 섰다. 화장대 거울 한가운데에 웬 A4 용지가 안내문처럼 붙어 있었다. 그 자리에 선 채 내용을 살폈다.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확인하세요.’

하얀 종이 위에 바탕체로 인쇄된 글씨들을 곱씹으며 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생각했다. 어차피 혼자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꼭 그래야 할까? 호텔은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방이 꽉 막힌 실내라도 혼자라면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었다. 뭔가 미심쩍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맥주와 안주를 양손에 들고 냉장고로 향했다. 바닥에 비닐봉지를 내려놓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몸을 숙여 안을 확인하니 안쪽 깊숙이 플라스틱 물병이 가득했다. 보통 모텔 냉장고에 구비된 물은 2병이 전부였다. 아마도 비싼 호텔이라서 이렇게 많이 준비된 것 같았다. 어차피 맥주 때문에 물 마실 일은 많지 않기에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사 온 맥주캔들을 물병들 앞으로 차곡차곡 밀어 넣고, 남은 맥주는 냉장고 문에 붙은 트레이에 넣었다. 문을 닫고 소파로 걸어갔다. 팔걸이 옆에 놓인 백팩을 연 후 메고 있던 손가방을 집어넣었다. 뭐 볼만한 TV 프로그램이라도 있을까. 침대로 가 스탠드 옆에 있는 리모컨을 집어 드는데 선반 위에 작은 종이가 보였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메모였다. 화장대 거울에 붙어 있던 것과는 달리 손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였다.

‘덥다고 느끼면 코로나로 인한 발열 의심 바람.’

이건 뭔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호텔 측의 공지사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했다. 지금껏 객실에서 봤던 모든 문구가 정말 호텔에서 붙인 걸까? 서울국립현대미술관과 지하철 화장실에서도 그렇고, 아까의 상황이 끝나지 않은 채 뭔가 연장선에 있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경고의 강도는 조심하라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코로나에 걸리면 절대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예감이 이상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반의 종이를 떼어내 손에 쥐고는 화장대 거울에 붙은 A4 용지를 잡아챘다. 성큼성큼 걸어가 탁자 옆에 마련된 휴지통에 같이 넣어버렸다.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혹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나? 서둘러 객실 안을 둘러봤다. 누군가 숨어있기에는 너무 탁 트인 공간이었고, 몸을 숨길만 한 장소도 없었다. 어쩌면 처음 객실에 들어왔을 때 실내에서 마스크를 꼭 쓰라는 문구처럼 애초에 화장대와 선반에 붙어 있던 걸 그 당시에는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숨이 나왔다. 프론트 데스크에 이런 거로 민원을 넣어도 될까? 어쨌든, 코로나 시국이라서 조심해야 하는 건 맞았다. 만약에 확진자라도 나오면 호텔 영업에 타격이 크겠지. 기분 좋게 호캉스를 왔는데 귀찮게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탁자에서 화장대 옆 옷장으로 향했다. 옷걸이에 걸린 호텔 가운 중에 하나를 골라 손에 들었다. 옷장 바닥을 보니 비닐로 포장된 호텔 슬리퍼 한 짝이 놓여 있었다. 호텔 가운으로 갈아입고, 호텔 슬리퍼 포장을 뜯은 후 슬리퍼를 침대 밑에 던져 놓았다. 나중에 조식 먹으러 갈 때나 신으면 될 것 같았다. 냉장고로 걸어가 문 쪽 트레이에서 맥주캔 4개를 꺼냈다. 이제는 좀 쉬자. 안주와 함께 맥주를 침대로 들고 가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 호텔만의 서비스인지 영화 전용 채널이 따로 있어 극장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된 최신 영화도 유료 결제 없이 보는 게 가능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그동안 못 봤던 영화 중 하나를 골랐다. 타이틀 화면이 시작되자 선반에 있던 맥주캔 중에 하나를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역시 이런 게 호캉스지! 어제였다면 지금도 정신없이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대였다. 침대가 너무 크고 편안해 마치 구름 위에 누운 기분이었다. 이미 3캔을 비웠고, 나머지 1캔도 절반 정도 비우니 낮에 먹은 샌드위치 때문인지 대변이 마려웠다.

욕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 손을 씻고 나왔다. 수건에 양손을 문질러 물기를 제거하다가 고개를 드니 문 앞에 플라스틱병에 담긴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보였다. 마치 누가 갖다 놓기라도 하듯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놀라서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객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해 방금 나왔던 욕실에서부터 아예 들어갈 틈도 없는 침대 밑까지 온 방 안을 샅샅이 들여다봤다. 아무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없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게 분명했다. 귀신이라도 있는 걸까? 적어도 다른 사람이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기분이 나빠 얼른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집어 휴지통에 버렸다. 다시 주위를 꼼꼼히 살피는데 화장대 옆의 옷장이 이상했다. 뭔가 아까와 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다가가 옷장 안을 확인했다. 옷걸이에 걸린 호텔 가운이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혀서는 앞뒤로 천천히 흔들리는 중이었다. 가운 속에서 삐져나온 허리띠가 축 늘어졌다. 이건 뭘까? 분명히 아까 호텔 가운을 몸에 걸칠 때만 하더라도 남은 가운은 옷걸이에 제대로 걸린 상태였다. 이렇게 뒤집히지 않았다.

프론트 데스크에 연락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사소한 거로 클레임을 걸어도 될까 걱정됐다. 낮에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코로나 때문에 피곤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신경이 예민해진 걸지도 몰랐다. 살짝 취기가 올라온 게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당장 퇴실하기에는 확실히 위협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결정적인 뭔가가 없었다. 이게 무슨 느낌일까? 아까부터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았다. 분명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침대를 바라봤다. 분명히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침대 옆의 우산 모양을 한 스탠드가 어느새 목이 구부러진 채 방향을 틀었다. 머리 쪽이 내가 있는 옷장으로 향한 상태였다. 이건 뭔가 싶어 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 밑에서 서로 마주 보던 의자들이 어느새 나를 향해 돌려졌고, 유리병에 담긴 꽃들도 일제히 줄기가 꺾여 한데 뭉쳐진 채로 나를 가리켰다. 모두 내가 서 있는 쪽이었다. 심지어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호텔 슬리퍼도 가지런히 모여 나를 향해 방향이 바뀌었다.

이건 뭘까? 마치 저 물건들이 날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틀었다. 저것들은 생물이 아니었다. 날 볼 리가 없었다. 아마도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이것저것 건들어서 방향이 틀어진 것 같았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돌아다녀 저것들을 건들었다고 해도 한쪽으로만 돌리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내가 옷장 앞에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는 듯 모두 나를 향한 상태였다. 그건 불가능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뭔가 쳐다본다고 느끼자 불편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먼저 스탠드 머리를 다시 똑바로 세우고, 옷장을 향한 호텔 슬리퍼를 다시 침대 쪽을 바라보게끔 방향을 바꿨다. 줄기가 꺾인 꽃송이를 다시 유리병 안에 세워 놓은 후 탁자 밑의 의자들을 서로 마주 보게 돌렸다. 그 와중에 의자가 잘 돌아가지 않아 낑낑대며 힘을 줬다. 뭔가 이상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양옆의 의자들이 서로 2개씩 겹쳐진 걸 발견했다. 의자 위에 또 의자를 얹은 셈이었다. 맞물린 의자를 빼려고 보니 탁자도 2개가 겹친 상태였다. 그걸 보자 열이 확 뻗쳤다. 객실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문구들은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이건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뿐만 아니라 이번 경우는 누가 봐도 호텔의 잘못인 게 명백했다.

침대 옆에 구비된 유선전화기로 향했다. 잠시 전화기 옆의 안내사항을 살핀 후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앰배서더 카운티 호텔 프론트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1203호인데요. 탁자와 의자를 두 개씩 놓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깜짝 놀랐다고요.”

여직원이 가만히 듣다가 차분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죠?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고객님이 불편하셨을 일에 대한 경위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어떻게 된 일인데요?”

“우리 호텔에서는 예약하실 때 추가 사항을 주문할 수 있는데요. 간혹 탁자와 의자를 더 원하는 고객님들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서비스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이 탁자나 의자를 겹쳐서 가져다 놓고 따로따로 세팅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래는 그래선 안 되는데요. 전에 머물던 고객님이 퇴실할 때 직원이 제대로 원상 복귀를 안 해놓은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원래 하나씩인데 갑자기 더 생겨난 것 같다고요. 혹시 누가 이 객실에 몰래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뭔가가 이상해요.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잖아요. 누군가 침입해서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놔두면 어떻게 하냐고요. 네?”

여직원이 높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호텔 보안 시스템상 그건 불가능합니다. 외부인은 호텔에 출입할 수 없고요. 객실 문은 절대 카드키 말고 다른 걸로는 열 수가 없습니다. 전에 쓰던 카드키도 마찬가지고요. 새 고객님이 오실 때마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카드키를 새로 발급하고 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요?”

이 정도로 답변을 들으니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탁자와 의자는 직원을 보내 바로 치워드리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됐어요. 그냥 놔두세요. 지금 좀 바빠서요.”

알몸에 호텔 가운만 걸친 것도 그렇고, 호캉스 와중에 다른 사람을 들인다는 게 영 찝찝했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더 불편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투덜거렸다. 의자와 탁자는 그냥 단순한 실수였나?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프론트 여직원의 안내에 맥이 빠졌다. 진짜 아무도 없다는 걸까? 고개를 돌리니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이 확 젖혀진 상태였다. 밖은 어느새 밤이었다. 언제 커튼을 열었을까 의아해하며 창문을 봤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창문 한가운데에 기름기 묻은 손바닥 수십 자국이 이리저리 찍힌 상태였다. 에이, 더럽게. 바로 욕실로 향했다.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전에 투숙한 지저분한 손님 짓이거나 청소 담당 직원의 부주의일지도 몰랐다. 세면대 서랍장을 열어 흰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창문을 닦는데 아무리 팔을 휘둘러도 손자국들이 닦이지 않았다. 몇 번 더 수건으로 창문을 훔치다가 손자국이 밖에서 찍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그머니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창문 주위에는 밖에서 몸을 지탱할만한 구조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의 야경이 펼쳐진 허공뿐이었다. 창문 밑의 도로에서 차가 지나갔다. 소름이 끼쳐 얼른 팔을 밖으로 구부려 창문의 손자국들을 닦고는 쾅! 창문을 닫았다. 수건을 거실 휴지통에 내던지고 다시 돌아와 창문을 살폈다. 설마 누군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발버둥이라도 쳤을까?

불안한 마음에 창문을 잠그고 아예 커튼까지 쳐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 방금 봤듯이 창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커튼을 열어 창문이 제대로 잠겼나 확인하고는 커튼을 친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처음 와 본 호텔에서 이런 찜찜한 일을 겪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이 진실이든 기분이 더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호캉스를 원한 게 아니었다. 마음 편하게 쉬려고 온 것 아닌가? 그렇다고 단순 변심만으로는 환불도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난 후였다. 목이 컬컬해 침대 선반을 살폈다. 다 마셔 찌그러진 맥주캔들이 보였다. 일단 시원한 맥주를 꺼내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냉장고로 향했다. 문을 열어 안쪽에 넣어둔 맥주를 꺼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데 뒤편의 플라스틱 물병들이 뭔가 이상했다. 전부 윗부분에 뚜껑 대신 꼭지 같은 게 달렸다. 자세히 보니 손으로 눌러 안에 있는 액체류를 배출시킬 때 사용하는 부품이었다. 그런 걸 디스펜서라고 불렀나. 보통 카페에서 사용하는 시럽 용기에 달렸거나, 아니면 헤어젤이나 손소독제에도 붙어 있는 부위였다. 절대 물병에서 볼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맥주를 옆으로 치운 후 플라스틱 물병을 꺼냈다. 한눈에 봐도 이건 물이 아니었다. 병을 옆으로 돌려보니 점착성 강한 액체가 출렁였다. 앞면과 뒷면에는 영어로 hand clear gel이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코로나 사태에 필수품인 손소독제였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냉장고에 들어있던 것 전부가 손소독제였다. 아까까지 있던 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미친 걸까? 만약 물이라고 생각하고 마셨으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했을까.

손소독제들을 하나하나 꺼내 냉장고 위에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굳이 냉장고에 손소독제를 가져다 놓은 이유가 뭘까? 마실 수도 없고, 냉장고 안에만 있으면 사용하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조금 고민하니 답이 나왔다. 코로나였다. 어쨌든 코로나 조심하라는 거겠지. 오늘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코로나였다. 코로나가 모든 걸 집어삼켜 버렸다.

이쯤 되자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결론은 하나였다. 코로나만 안 걸리면 그만이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집에 갈 수 없었다. 나름 코로나 예방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나한테 뭔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휴가를 내려고 얼마나 야근을 많이 했는지 몰랐다. 이런 거로 프론트 데스크와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호캉스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꺼내다 만 맥주들을 끄집어냈다. 침대로 가져가 선반에 올려놓았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홀짝홀짝 마시다가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살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다시 맥주캔을 들어 입에 갖다 대다가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욕실을 나오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미니바를 바라봤다. 다양한 청소도구들이 구비 된 걸 보고 있자니 청소 직원의 신경질적인 강박증이 느껴졌다. 욕실만큼은 작은 물때나 곰팡이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역시 고급 호텔은 달라도 뭔가가 다른 모양이었다.

욕실에서 나와 거실로 되돌아오다 옷장에 거꾸로 걸린 호텔 가운을 살폈다. 다시 똑바로 걸어놓고는 침대로 와 뛰어들 듯 누웠다. 역시 이 객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요새 하도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예민해져 있을 뿐이었다. 나도 그 영향으로 별것도 아닌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걸 수도 있었다. 괜히 클레임을 건 프론트 여직원에게 미안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서 호캉스를 왔으니 제대로 푹 쉬다 가는 게 맞다.

한창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다 슬슬 졸리는 걸 느꼈다. 눈이 감긴다. 자기 전에 씻어야 하는데, 이대로 자면 찝찝한데, 억지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누웠다. 어차피 나중에 욕조에서 제대로 몸도 지지고 반신욕도 즐길 거였다. 지금은 푹 자고 그때 씻으면 된다. 조금 게으르고 지저분해도 상관없다. 그게 호캉스니까. 나중에 퇴실하고 작성할 후기에서 별점은 5점 만점에 3점이 적당하지 않을까? 처음 와본 호캉스 후기! 다른 건 다 별로였는데 욕실만큼은 맘에 듬. 특히 청결 상태와 시설이 좋음.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흐려지는 머릿속에서 따뜻한 물이 넘실대는 욕조가 보였다. 그 안에서 내가 온몸을 푹 담군 채 눈을 감고 있다. 너무나 편안하다.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음, 끙끙거리는 신음까지. 자다가 일어나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갔다. 고개를 들어 거실에서부터 현관까지의 긴 공간을 쫓다가 현관문 앞이 탁자 2개와 의자 4개가 서로 뒤엉킨 채 소파 앞에 차곡차곡 쌓인 걸 발견했다. 그것들이 한데 모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이건 뭔가가 문으로 들어오려는 걸 막으려는 행위였다. 그게 아니라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거나.

불길한 예감에 현관문 앞으로 뛰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하면 안 됐다. 그냥 이중 잠금장치를 걸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이대로는 객실 안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리저리 뒤엉킨 소파와 탁자 사이로 뛰어들었다. 낑낑대며 의자 하나를 빼내자 뒤에서 욕실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의자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봤다. 한 남자가 얼굴과 손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거기에다가 손소독제를 손에 묻혀 양손을 박박 문질렀다. 낯익은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내 스마트폰을 만진 후 미친 듯이 손소독제를 사용하던 프론트 데스크 직원이었다. 체크인을 한 후에는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었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 씩 웃더니 다시 욕실로 들어가 마스크를 쓴 채 회칼을 들고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프론트 직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땠어? 이 방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 반응이 아주 죽여주더만. 많이 놀랐지? 작품명은 대충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라고 정할까? 주제는… 그래! 현대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호텔의 일상적인 물건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겁이 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지금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프론트 직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알면서 왜 그래. 스탠드가 구부러진 거 하며 의자가 너를 향하던 것도 그렇고. 거꾸로 뒤집힌 호텔 가운 등등. 익숙하지 않아? 이 모든 게 다 설치 미술이라고. 네가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람한 것들이잖아.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도 너처럼 즐겨야 하지 않겠어?”

말을 끝낸 프론트 직원이 내 눈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객실에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도. 얼굴을 살피던 프론트 직원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지. 나와 마주친 상황 자체가 세팅이 끝난단 의미니까. 어쨌든, 들키지 않게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하며 너한테서 바로바로 받는 피드백도 상당히 재밌었어.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이제 편안히 호텔 방에서 호캉스를 즐길 차례네. 내가 그래서 당신을 콕 찍은 거거든. 2박 3일 동안 할 일이 참 많단 말이야. 사람의 몸을 해체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

프론트 직원의 손에 들린 회칼을 바라봤다. 그 말은 곧 저걸로 찌른다는 소리였다. 공포심으로 온몸이 떨렸다.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무의식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발요. 하지 마세요!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프론트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그렇게 억울해하지? 이게 그럴 일이야? 애초에 이건 내 호캉스야. 오늘 오후부터 시작해 내일 모래까지 휴가를 냈단 말이야. 코로나 시국이라서 어디 밖에서 사람을 고를 수가 있어야지. 딱 2박 3일 동안인데 지금 몇 시야? 벌써 밤이잖아. 잠자는 시간도 아까운 마당에.”

너무 억울했다. 하필 처음 온 호텔에서 영화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사이코패스를 만났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마치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을 보는 것 같았다.  

“왜 하필 나예요? 왜? 왜? 나를 골랐는데요.”

“하룻밤만 자면 그게 호캉스니? 그냥 숙박이지. 넌 혼자잖아. 연인이나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 일이 복잡해진단 말야. 그래서 거르고 걸렀는데 하필 네가 딱 예약을 했네? 난 그걸 확인한 거고. 이런 게 호텔 직원의 특권 아니겠어?”

말을 마친 프론트 직원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모습을 살폈다.

“혹시 열이 난다거나 기침이 나오거나 그러진 않지? 복통과 설사 증상은 없고? 기분 좋게 호캉스를 즐겨야 하는데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잖아? 잘못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데.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자가격리는 해야 되는 거고. 시체를 처리하는 것보다 그게 더 귀찮고 번거롭거든. 그래서 너한테 그렇게 경고를 했던 거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프론트 직원을 바라봤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물거리다가 다시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가 내 행동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보니까 대충 상황 파악은 끝난 것 같고. 이제 갑시다. 우리나라 호텔 중에서 제일 좋기로 소문 난 욕실로.”

프론트 직원이 회칼을 들고 다가왔다. 주춤주춤 물러서다 뒤를 돌아봤다. 이리저리 뒤엉킨 탁자와 의자들 앞에 방금 꺼낸 의자를 발견했다. 얼른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무력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용기를 내 소리쳤다.

“와 봐! 어서 덤비라고! 가만히 당할 것 같아?”

프론트 직원이 뭔가에 깜짝 놀란 듯 얼굴을 찌푸렸다. 걸음을 멈추더니 회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선 채 앞주머니와 뒷주머니를 뒤지다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마스크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포장을 뜯어 새하얀 마스크를 꺼냈다. 다시 허리를 숙여 회칼을 집어 들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그가 새 마스크를 들이밀었다.

“큰일날뻔했네. 하여튼 사람들이 말이야. 자기는 그렇다고 쳐도 적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방역 수칙을 지켜야지. 자, 이건 혹시 모르니까 코로나 예방!”

엉겁결에 의자를 내려놓고, 마스크를 받았다. 뒤로 돌려 양쪽 귀걸이에 두 손을 넣고는 마스크를 얼굴로 가져가 착용했다. 혹시 코나 입 일부분이 노출됐는지 더듬었다. 마스크가 흘러내린 것 같아 얼른 올려 썼다. 다시 한번 꼼꼼히 마스크를 매만진 후 놀란 얼굴로 프론트 직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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