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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노트는 반드시 복사를 해 둘 것

갈원경

 


어쩌면 모든 것은 그날 결정되었을지도 몰라. 내가 교무실 앞에 서 있을 때, 누구도 동반하지 않고 예전학교 교복을 입은 채로 나타난 나를 어느 반에 넣을지로 담임 둘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을 때, 인원수로는 4반이 가장 적지만 벌써 한 명의 전학생을 받은 4반의 사회가 2명이나 전학생을 받는 게 어디있냐고 했고, 한 명이 자퇴한 1반의 수학은 그래도 인원수를 기준으로 해야하지 않냐고 했던 날 말이야. 그래서 1반과 인원이 같았던, 그래서 처음부터 다른 반보다 1명이 적었던 우리 반 담임이, 내가 이 상황을 듣고 있는게 마음이 쓰여서, 그럼 저희 반으로 받죠, 라고 했던 날. 신도시 신설학교인 이 학교는 배정받은 애들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지. 유난히 전학도, 자퇴도 많았던 건 우리가 말 많은 범띠여서였는지, 막 기관이 옮겨온다고 했다가 취소됐다가 하는 지역이어서였는지. 모든 애들이 수업시간마다 다른 교실을 찾아다니는 선택형 교육과정 세대인 너는, 사실 한 달이 지나도록 말 한 마디도 안 한 애도 많았다고 했는데.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생긴 학교로 발령받아 온 쌤들이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불리한 입장이 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한참 후에야 알았지. 그래서 나는 신설학교 교복이라 교복사에 재고가 없어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내 옛날 학교 교복을 입고 갔을 뿐이지만, 보호자도 없이 온 내가 엄청난 첫인상을 주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 너에게서 들었지. 교칙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옛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나는, 입학 후 몇 달 안 되어서 교칙에 저항한 성가신 애가 아니겠냐고. 나는 상상도 못했지, 부모님 없이 혼자 학교에 온 전학생, 한부모가정, 그것이 모두에게 어떤 의미로 닿았는지.

“소정민, 자, 내가 1학년 3반 담임이야. 교실로 가자. 정민이는 1학년 3반 24번이 되겠네. 학생증은 신청하면 다음 주엔 나올 거야.” 

너는 교실에서 비질을 하고 있었어. 참 이상하게 생긴 빗자루였지. 솔 대신 유리창 청소용 고무같은 게 달려 있는 빗자루 끝으로 머리카락이며 사탕껍질, 지우개가루가 모여 있었어.

“선호, 오늘 주번이야?”
“아뇨, 저 교실 당번이어서.”
“부지런하네.”

담임이 말했고, 나는 너의, 강선호의 목소리를 들었어. 울림이 좋은 목소리구나, 생각했어. 키가 크구나, 그 생각도 했지.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나가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교실에서는 나를 탐색하는 시선이 흘러넘쳤어. 선호 네가 들어왔어. 담임이 가볍게 손뼉을 쳤어. 모두가 나를, 담임을 보았어. 

“우리 반 24번이 된 소정민. 어느 학교에서 전학왔는지 알겠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자. 자리는….”
“강선호 혼자 앉아요.”
“자리 새로 뽑을까요?”
“쌤 우리 자리 한 달 됐어요!”

이야기가 두서없이 나오는데 담임이 난처하게 웃었어.

“우리 반이 좀 이래. 명원고는 안 이랬지?”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그냥 있었어. 보통 전학 오면 자기 소개 같은 거 시키지 않나? 근데, 뒤쪽에는 여분 책상을 가지고 벌써 선호, 네 옆에 자리를 만들고 있더라. 나는 담임을 봤어.

“자 그럼 일단 정민이는 저기 선호 옆에 앉고, 청소 시간에 자리 뽑기 하자. 1교시 준비하고, 제2외국어네. 자, 이동.”

담임이 나갔어. 나는 네 자리 옆으로 가서 교실 앞의 커다란 시간표를 봤어. 

“일본어야, 중국어야?”

네가 물었어.

“일본어.”
“그럼 같이 가면 돼.”

너는 책가방을 든 채로 교실을 나섰고 나는 네 뒤를 따라갔어. 나는 강선호라고 해, 나는 소정민, 그런 인사도 없이 나는 너를, 그래, 처음 눈 뜬 오리가 엄마 오리를 쫓아가듯이 네 뒤를 따랐어. 네 진회색 이스트팩 가방은 신입생인데도 어깨와 연결되는 부분의 실이 조금 풀려 있어서, 어깨끈이 네 어깨에 마침맞게 잘 붙어 있어서,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됐어. 내 가방이 마침 진초록 이스트팩이라서. 내 어깨끈은 아직 내 어깨에 길들지 않았지만 나는 너와의 공통점이 반갑고 좋아서 불안한 그 실밥을 보며 교실을 옮겼어. 세영고는 가끔 TV에서 공간이 사람을 디자인한다고 말하는 건축가가 지은 곳이었어. 내 옛 학교도, 내가 나온 중학교도, 긴 복도 한쪽으로 교실이 몰려있고 교실은 모두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20세기 디자인이어서 나는 ‘중정’이라 부른다는 중앙의 계단 소용돌이에 조금 놀랐어. 중정 가운데서 자라는 나무도, 천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계단도, 그 공간을 둘러싼 벤치와 테이블들도 모두 낯설었는데, 너는 거침없이 걸어서 4층의, 사다리꼴 모양 책상들이 빙 둘러 원을 그리며 놓인 외국어실로 들어섰어. 벽에는 일본 그림과 타코야키 야타이의 등과, 노렌 같은 것들이 걸려 있었지. 

이미 도착해 있던 일본어 쌤은 내 옷을 보고는 웃으며 말을 건넸어. 

“ああ、転校生? 始めまして。” (전학생이야? 안녕, 반가워.) 
“始めまして、ソゾンミンと申します。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안녕하세요, 소정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무심결에 대답해버렸어. 네가 나를 봤어. 네 동그란 안경이 빛에 흔들렸어.

“先生、転校生って、学校を移してきた生徒のことですか?”
(선생님, 전학생이라는 거, 학교를 옮긴 학생을 말하는 건가요?)

너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어. 듣기 샘플같은 또렷한 발음에 나는 놀랐고, 선생님은 들고 있는 탭에 뭐라고 썼는데, 책상에 놓인 화면에 글씨가 나타났어. 한자로 쓴 転校生, 히라가나 표기의 텐코우세, 그리고 学校に移ってきた生徒. 너는 그런 애였어. 모두 너를 아는데, 나는 너에게 계속 놀랐어. 그날부터, 그 이후로 줄곧. 
너는 친구가 많았어. 너는 친구가 없기도 했어. 너는 교실 청소를 마지막까지 하는 아이였어. 나는 일손이 모자란다는 교실 청소에 보태졌는데 책상을 조금 들어서 다리에 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있었더니 너는, 날 보고 웃었어. 책상을 밀기만 하면 머리카락은 책상다리에 엉켜. 쓸어도 잘 안 나오지. 나는 문 뒤 교실 모퉁이를 네가 쓸고 있을 때, 문틀 사이에 낀 먼지를 쓸었어. 내 마음에 드는 쓰레받기를 쥐고 교실을 쓸면 너는 잔뜩 모인 쓰레기 뭉치를 내 앞에 모아왔어. 자리 뽑기에서 또 네 옆을 뽑은 나는 다음 달까지 네 짝이어서 공통과목이든 선택과목이든 거의 네 옆에 앉았어. 

 

교복이 나오고 내 가방이 어깨에 잘 붙게 되었을 때, 세영고 중정에서 길을 잃지 않고 외국어동과 과학동을 바로 찾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중간고사 성적표가 부모님 핸드폰으로 발송된 그다음 날, 너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일등이 강선호가 아니라고?”

애들이 그렇게 말했어. 

“오등 안에도 못 들어? 강선호가?”

애들은 그렇게 자주 네 이름을 말했어. 강선호는 영재학교에 갈 애였다고 했어. 국제고를 가고 싶어했다고도 했어. 애들이 말하는 너는 다른 애 같았어. 수학 올림피아드 우리나라 대회에서 3등상을 받았다고, 웬만한 계산은 머리로 다 해서, 서술형 시험에서 꼭 감점을 당했었다고. 과학탐구대회에서 결국 2등을 했다고. 세상에 강선호가 하나 더 있는 게 아닐까. 청소를 좋아하고 필통에는 샤프와 볼펜 세 자루와 수정테이프와 자가 들어 있는, 책에 줄을 그을 때 꼭 자를 쓰는 너는, 맨날 나한테 지우개를 빌려 가는 너는, 그래도 지우개 모서리를 새로 닳게 하지도 않고 쓰고 나면 꼭 깨끗하게 손으로 더러운 부분을 닦아서 돌려주는 너는, 지우개가루가 쌓이면 잘 모아서 휴지로 싸 뒀다가 버리는 너는, 다른 애들이 말하는 강선호와는 다른 사람과 같았어. 

“선호 집에 같이 갈래?”

김상규가 내게 물었어.

“선호 집이 어딘데?”
“…너, 몰라?”

김상규가 나한테 의아해하며 말했어. 너와 나는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건지, 세상에 강선호 집을 모르는 애는 없다는 건지. 나는 네 전화번호를 알았지만 너는 카톡도 문자도 답하지 않았어. 교실 청소 때 늘 네가 쥐던 실리콘 빗자루는 내가 쥐었어. 너는 목요일이 되어서 학교에 왔어. 김상규와 최영민이, 반장과 부반장이 너희 집에 갔다고 했어. 사흘만에, 아니 주말을 포함하면 닷새만에 만난 너는, 무척 많이 아파 보여서 놀랐어.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며 책을 꺼내는데, 네 노트가, 책이 몇 장이나 구겨져 있었어. 나는 네 노트가 항상 반듯한 제본노트이고, 접는 것조차 싫어했던 걸 알아. 네가 쓰는 것 중에 스프링으로 된 건 연습장 뿐이고, 그나마도 찢거나 구기지 않고 곱게 쓰는 너였어. 네 글씨는 절대로 잘 쓴 글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알아보기 쉬운 글씨였어. 연습장에 잔뜩 휘갈겨쓴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연습장은 원래 누구나 그렇게 쓰는 거잖아. 

“…아 씨, 한국사 노트…….”

네가 중얼거렸어. 네가 안 온 사흘 중에 한국사 수업이 두 시간 있었지. 금요일은 한국사 노트를 내야 하는 날이었어. 

“노트 빌려줄까? 복사하고 줄래?”

내가 물었어. 너는 동그란 안경 너머로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어. 나는 내 노트를 꺼내 줬어. 필기가 필요한 모든 과목 노트가 있는 바인더. 노트에 남는 페이지가 생기는 게 싫어서 나는 중학교 때부터 모든 과목 필기를 이렇게 했었지. 너는 내 바인더를 받더니 묘한 표정을 하더니, 복도로 나가서는 한참만에 돌아왔어. 복사기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 줄 알았어. 네가 복사해야 하는 건 두 시간, 세 페이지밖에 없었으니까. 

다음 날 한국사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한국사 노트 부분만 빼서 얇은 바인더에 옮겨서 제출했어. 청소시간, 교실에는 쓰레기통이 없어서 쓰레받기를 들고 복도 끝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더니 노트들이 돌아와 있었지. 내 바인더는 맨 위에 있었어. 나는 끝번이니까 이상할 건 없었어. 노트 맨 앞장에는 A라고 적혀 있었지. 나는 내 자리로 와서 원래대로 큰 바인더에 옮겼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한국사 노트는 스물 다섯 장이었는데, 얇은 바인더에는 스무 장만 있는 거야. 오늘 쓴 마지막 장은 들어 있었지만 그 앞의 다섯장이 사라진 거였지.

“…어…….”

내가 중얼거리자 네가 나를 봤어. 그리고 네가, 얼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내 바인더를 통째로 들고 복도로 나가며 나에게 손짓했어. 나는 널 따라서 나갔지. 홈베이스, 집에 가는 아이들이 바삐 엄마와 아빠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중에, 너는 내게 말했어.

“몇 장 없어?”
“…어……?”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 라는데 네가 네 사물함을 열더니, 집게로 철한 종이 묶음을 내게 건넸어. 내 노트였어. 한국사 부분 전체. 그래, 너한테 빌려줄 때는 노트가 모두 그대로 있었지. 돌아왔을 때도 없어진 건 없었어. 노트를 얇은 바인더에 옮길 때 분명히 확인했는걸. 1페이지부터 49페이지까지 스물 다섯 장이 순서대로 있었어. 네가 내민 종이에는 오늘 필기한 것 빼고 전체가 있었어.

“찢어도 티 안 나는 노트는 쓰면 안 돼. 누가 손댈지 모르니까.”
“누가…….”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어느새 홈베이스에는 너와 나만 있었지. 너는 아주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날 봤어. 

“너 명원에서 왔잖아. 너 이번 중간고사 잘 봤잖아. 한국사 만점, 맞지?” 

그게 왜 내 노트에 손을 댈 이유가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내 표정에 너는 조금 한숨을 쉬었어. 

“너 내신 따려고 여기 왔다고 생각해. 애들이 그래. 여기 전교생 수가 작아서, 필수 과목도 1등급 5명밖에 안 나와. 한국사 6등 7등 다 우리 반인 거 알아? 눈앞에 네 성적 낮출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할 걸? 물론 티 안 나게.” 

네가 해 주는 말은 꼭 어느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나올 것 같은 말이었어. 나는 그 말보다, 네가 내 노트를 전체 다 복사를 해 두고는 지금 이렇게 주는 이유가 더 궁금했는데, 한순간이지만 네가 그 노트 몇 장을 없앤 사람이 아닌지 생각도 들었는데, 너는 내가 이 상황에서 멍해 보이는 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어. 

“……이거 다 복사한다고 그저께, 오래 걸린 거야? 아니, 다 복사해도 상관없는데, 복사 해 두고 왜 나한테 도로 줘?”

“소정민, 노트 막 빌려주고 그러지 마. 네가 나한테 노트 빌려주는 거 애들이 다 봤어. 다른 애들도 빌려달라고 그러면 다 줄 거야?”

그러면 되지, 라고 대답할 뻔 했어. 나는 노트 정리를 잘 하고 싶어하지만 나보다 더 정리 잘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어. 애들이 노트를 빌리려고 한다면 내 노트는 아닐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어쨌든, 스프링 노트든 바인더 노트든 안 쓰는 게 좋아. 상위권 애들이 그냥 제본 노트 쓰는 줄 알아? 아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너한테 해 주고 있냐. 명원에서 왔다면서 왜 이래 넌.”

나는 네가 화를 내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네가 준 내 노트 복사본으로 나는 그날 집에서 노트 정리를 새로 했어. 중간고사 범위 부분까지는 스테이플로 철하고, 기말고사 범위부터는 중학교 때 부상으로 받았지만 쓰지 않았던 제본 노트를 꺼내 새로 정리했어. 없어진 다섯 장은 모두 기말고사 범위라 새 노트에 썼어. 시간은 꽤 많이 걸렸지만, 다른 과제가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어.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가 잠든 사이에 아빠는 벌써 출근하고 없었어. 새벽 근무조가 시작됐으니 한동안은 아빠 얼굴을 보기 힘들 것 같았지. 

 

노트 검사를 하는 과목을 하나씩 제본 노트로 바꿨어. 주말마다 만나는 대학생 멘토 쌤에게 나는 네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 노트가 몇 장 없어진 이야기를 했어. 쌤은 꼭 너처럼 한숨을 쉬었어.

“내가 나온 학교랑 비슷하네. 세영이 신설이라서 전교생이 적구나. 그럼 더하긴 하겠다. 학교장 추천도 내신 낮으면 서류 통과도 못할 수도 있으니까. 문이과 없어져서 좀 경쟁 덜 해 지려나 했는데 그렇지도 않네.”

쌤은, 고른기회 전형으로 국립대 화학과에 입학한 새내기였는데, 신학기 초에 쌤이랑 같은 전형으로 들어온 신입생들 보고 다른 동기들이 뒷말을 해 대곤 해서 힘들었다고 했어. 모든 애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정시로 들어온 재수생 한 명이 지역균형선발이니 뭐니 하는 것들 다 없애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녔다나봐. 그래서 쌤은 중간고사 잘 보려고 엄청 노력했대. 아주 잘 본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래도 아주 못 보진 않았고, 그즈음 슬슬 그런 말들도 안 나오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쌤이 고교생 멘토 멘티 결연에 참가한 거라고 했어. 쌤도 비슷하게 멘토 쌤이랑 공부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나봐.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옆반 학부모가 쌤 들으라는 듯이, 저렇게 국립대 들어가는 애들이 있으니까 열심히 하는 애들이 기운이 안 난다고 그러기도 했는데, 멘토 쌤한테 들은 거랑 너무 똑같은 말이라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고 그랬어. 나는 그래도 그런 말을 안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나는 중간고사 이후로 어떤 말이 돌고 있는지 몰랐어.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학원에서 만난 애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너와 같은 쌤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명원고는, 분명히 직선거리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실제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 전세 기간이 끝나서 새로 구한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에 새로 학교가 생겼다고 해서 전학이 가능한지 문의를 했었고, 가능하다고 해서, 한 달이지만 매일 두 시간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전학을 온 거였어. 전학을 간다는 말에 짝과 몇 명, 서운해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애들도 거의 없었던 명원에서 새로 친구를 사귀기에도 한달은 너무 짧았으니까 나는 그래도 별 미련 없이 세영고로 오기로 했던 거였어. 명원고가 그렇게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였는지, 한 학년이 12반까지 있다는 게 왜 좋은 건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 아빠는 전학 수속을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어쩌겠어. 아빠는 주간 근무였고, 근무를 바꿀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과 졸업식, 고등학교 입학식과 마찬가지로 혼자 새 학교로 갔지. 전교생도 안 많다는데 학교는 참 크고 예쁘구나, 그런 생각밖에 하지 않았어. 

 

나는 사흘간 결석한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 네가 결석했던 것도 잊고 있었던, 기말고사가 다가오던, 슬슬 하복을 입은 애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너는 학교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서는 1교시가 시작된 뒤에도 오지 않았어. 담임쌤 시간이었어. 쌤은 나보고 화장실에 한 번 가 보라고 했고, 나는 화장실 문 너머에서, 네가, 몸 안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낼 듯이 계속 토하는 소리를 들었어. 나는 그 소리를 알아. 아빠가 지난번 회사에서 잘려서 며칠을 집에 있을 때, 아빠는 몇 번이나 그랬어. 먹은 것이 없는데도 견딜 수가 없다고, 119를 불러서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아무 병도 없다고, 그냥 스트레스성이라고, 그렇게 말했지. 나는 아빠의 그 얼굴을, 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해.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성큼성큼 들어가서, 네가 있을 화장실 문을 열었어. 너는 힘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나를 봤어. 

“소정민 너 왜……, 아, 수업…….”

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어. 내가 너를 부축했는데, 나보다 오 센티는 큰 네가 기대는 팔이 너무 가늘어서 놀랐어. 너는 나를 뿌리치고, 세면대에서 푸우푸우 세수를 하더니 얼굴을 닦고 먼저 화장실 밖을 나갔지. 네 구겨진 교복을 펴 주고 싶었지만, 너는 날 보지 않았어. 담임은 너를, 나를 보고는 말없이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지. 

 

그 뒤로 나는 네가 사라질 때마다 불안했어. 네가 세수를 한 얼굴로 교실로 들어오는 게 잦아졌어. 너는 급식을 거르기 시작했고, 네 책상 위에는 핫식스나 레드불 같은 게 늘어났어. 교실 청소를 하다가 멍하니 빗자루를 들고 딴생각을 할 때도 많았어. 교실은 여전히 다른 반보다는 깨끗했고 네가 좋아하는 영어 일본어 수업 시간이면 너는 예전처럼 밝은 표정으로 질문에 대답하고 발표도 하고 했지만, 자리를 바꾸면서 필수 교과 수업에서 너와 같이 앉을 수 없게 된 뒤로 너는 내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어졌어. 그렇지만 나는 외국어 수업같이 네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는 날이면 항상 눈길이 갔어. 너는 자를 쓰지 않고 줄을 긋기 시작했어. 네 노트는 며칠인가 안 구겨진 상태로 있다 싶다가, 주말이 지나면 때로 구겨진 걸 억지로 편 듯한 모양이 되어 있곤 했어. 

“노트, 왜 그래?”

그건 기말고사 바로 전날. 일본어 시간이었어. 내일이 시험이고 진도도 다 나갔으니까 조금 일찍 마쳐 주겠다고 쌤이 준 10분의 자유 시간에, 애들 모두 당연한 듯 챙겨온 내일 시험 과목 자료를 보고 있을 때, 내가 물었어. 너는 나를 빤히 쳐다봤어.

“뭐가?”
“노트 구겨지는 거 너 싫어하잖아. 요새 자꾸 구겨져 있어.”
“……너 그런 것도 보고 다녀?”
“아니 보고 다니는 게 아니라 보이잖아.”

그야 모르고 넘어가는 애들도 있겠지. 하지만 다들 네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중학교 때 누가 네 노트를 말도 없이 가져가서 보다가 모서리를 구겼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가 그 애에게 화를 냈다고, 강선호가 사이코처럼 구는 거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애들이 그랬으니까. 강선호는, 영재학교 1, 2차를 무난히 통과한 세원중 전교 일등은, 3차 면접에서 어째선지 불합격했다고 했어. 그 내신에 그 스펙에 불합격이 된 걸 보면 면접 때 아예 0점을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얼마나 면접을 잘못 보면 그렇게 되는 건지 다들 불가사의하다고 그랬다고, 내가 묻지 않아도 사방에서 강선호의 이야기는 들려왔으니까. 

“사람 그렇게 관찰하고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네가 아무리 이상한 애라고 내가 널 관찰하기까지 했을까. 나는 그 말이 갑자기 그렇게 서러웠어. 그래도 나는 세영고에서 네 첫 짝이고, 너는 내 없어진 노트를 되살릴 수 있게 해 준 앤데, 길에서 지나치다가 부딪힌 사람한테도 그렇게 쳐다보지는 않을 것 같은 눈으로 네가 그러는 게.

그래. 이 학교에서 너는, 나와 말을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나는,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걸 알아. 노트 몇 장이 없는 걸 알고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구석에서 킥, 하고 웃었던 걸 알아. 내 영어 발음이 영국 발음을 닮았다고, 영국인도 아닌 사람이 영국 발음 하는 거 웃기다고, 그랬던 걸 알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휴 그랜트를 너무 좋아해서, 다른 애들이 엔드 게임 결말을 궁금해할 때 나는 휴 그랜트의 옛날 영화를 샅샅이 찾아서 봐서, 그래서 어느새 그 배우 발음이 입에 붙어 버렸다는 걸 중학교 때 친구들은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이 학교에서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애는 없어서 누구도 내 발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몰랐지. 그런데 왜 애들은 영국 발음을 하는 걸 그렇게 싫어했을까. 모두의 발음은 다들 미국 발음이었는데, 미국인도 아닌데 모두 미국 발음을 따라 하면서, 영어 쌤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내 발음이 웃기다고 그렇게 키득거렸을까. 일본어 발음 좋은 애들은 거의 오타쿠들이라고, 네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는 애들이 내 등 뒤에서는 그렇게 말했지. 알아. 내게 한 말이 아니라고 애들은 말할 거야. 애들은 늘 그랬으니까. 

 

기말 고사가 끝나고, 나는 애들이 답을 맞춰 보는 소리를 듣다가 가방을 챙겼어. 커다란 바인더 노트는 조금 더 두꺼워졌지만 내가 늘 들고 다니는 노트의 낱장이 없어지거나 하진 않았지. 사물함 문을 여는데 거기에 아주 정성껏 구겨서 공처럼 다져놓은 노트가 보였어. 구겨져 있어도 그게 없어진 한국사 노트인 건 알아봤어. 내 사물함에 누가 그걸 놓아둘 수 있냐고? 시험 기간 내내 대부분 책을 들고 다녀서 사물함 문을 안 잠그고 다녔거든. 비어있는 사물함 한가운데 얌전하게 놓여있는 그 종이공을 보니 웃음이 나왔어. 

그리고 네가 내 뒤에 서서, 그걸 보고 있었어. 

“아 씨…….”

나한테 또 화가 난 줄 알고, 나는 널 봤어. 너는 시험을 보는 며칠 사이에 더 야위었어. 네가 수학을 만점을 받았다고, 네가 정답이 하나라고 된 세계사 문제에서 복수정답이 되는 걸 찾았다고. 그동안 너에 대한 이야기는 또 내게 너무 많이 들려왔는데, 아무도 네가 너무 야위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나는 24번이고 너는 1번이라, 시험 보는 동안의 내 자리는 너무 너랑 멀어서, 나는 네 얼굴이 이렇게 된 걸 모르고 있었지. 

“너 영화 좋아해?”

갑자기 네가 물었어.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을 거야. 너는 한숨을 쉬었어. 

“애니메이션은?”
“……센치히로는 좋아했는데. 별로 본 게 없어서 모르겠어.”

너는 어째선지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나갔어. 나는 후문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 많이 여윈 너는 앞서서 휘청이듯이 걸어가서 버스를 탔어. 나는 너를 따라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지하철역과 이어진 새로 생긴 영화관을, 처음 너와 외국어실을 갈 때처럼 그렇게 널 따라 갔어. 너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표를 끊었어. 나는 콜라와 팝콘을 샀어. 명탐정 코난 감벽의 관. 나는 그 제목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영화관에서 너는 학교에서보다 훨씬 즐거워 보였고, 반반 팝콘은 절반밖에 못 먹고 콜라는 둘 다 싹 비우고 나왔을 때 너는, 웃었어. 나는 그 웃음을 알아. 처음 교실 청소를 했던 날, 내가 책상을 들어서 다리 밑의 머리카락을 빼고 문틀의 먼지를 쓸어서 쓰레받기로 모으고 있었을 때, 네가 먼지를 모아서 내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너는 그렇게 웃었었어. 

“재미있었지.”

네가 말했어. 말해 뭘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어. 

“애들이 내가 영재학교 떨어진 거 이야기했지?”

나한테 이야기한 건 아니었지만, 이야기한 건 맞지. 

“국제고 가고 싶다고 암만 이야기해도 안 된다 그러더라고. 원서 내면 붙을 건데 왜 그러냐고 난리를 쳐서 자기소개서에 불합격한다고 해 놓은 내용 다 써 놨거든. 근데 붙은 거야? 아빠가 내 아이디로 들어가서, 딴 데서 써 온 자기소개서로 바꿔놨더라.” 

너는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는 애여서, 나는 네 말을 그저 듣고 있었어. 긴 영화관 복도 계단을 내려가는데 사람은 우리 말고는 없었어.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아. 그냥 그 공간엔 너와 나만 있는 것 같았거든.

“믿고 맡겼더니 머저리 같은 짓을 했다고, 내가 원래 쓴 자소서를 본 아빠가 되레 큰소리를 치고. 엄마는 또 나보고 왜 그랬냐고 훌쩍거리고. 아 이럴 거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합격하고 말겠다고 결심했는데, 2단계도 어쩌다 보니 붙고, 면접만 통과하면 가야 하니까. 면접장 들어가서 10분 동안 입 꾹 다물고 앉아있다가 나왔어.”

“애들이 너 인성 면접에 싸이코짓 한 거 아니냐고 했어.”
“아 그래도 괜찮았겠는데. 창의성 면접이 점수 급간이 크다고 잘 봐야 한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근데 영재학교 불합격하면 국제고 쓸 수 있지 않아?”
“쓰게 하겠어?”

너는 쓰게 웃었어. 

“중간고사 망쳤다고 쌩 난리를 치는데. 일본어 만점인데 수학 90점이라고 일본어 책 노트 다 집어던지는데. 그러면 학교 안 갈 거라고 밥도 안 먹고 버텼더니 전학시켜 버린다고. 명원고에 빈 자리 있는지 알아본다나. 세상 다 자기 맘대로 되는 줄 알아.” 

너의 사흘의 반항은 그랬었지. 너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너 같은 고민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나라도 네가 어떻게 화장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지는 알아서. 네가 요즘 더 야윈 건 알아서, 그냥 널 와락, 끌어안았어. 너는 놀랐지만 밀쳐내진 않았어. 

“…그냥 학교에서 나 모른 척 안 하면 안 돼? 이런 이야기, 담아놓지 말고 나한테 힘들 때마다 해 주면 안 돼?” 

내가 널 안은 채로 물었어. 

“너 나랑 친해지면 괜히 말 더 들어. 지금도 힘들잖아.”

“그거 너 때문 아니야. 너 때문이면 또 어때. 나 학교에서 아무랑도 말 못 하는데,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있긴 해?”

네 어깨가 조금 들썩였어. 나는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팔을 풀지 않았어. 네가 한숨을 내쉬었어. 너는 늘 내 일로 한숨을 쉬어서, 세상에 한심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날 봐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너는 내 노트를 살려준 친구, 제본 노트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친구라서. 사물함 안에 내 구겨진 노트를 보고 나 대신 화 내 준 사람이라서. 나는, 네가 나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해 주면, 네가 토할 것 같이 힘들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면, 그걸로 괜찮을 것 같아. 

“너 진짜……, 답 없어. 알아?”

네가 말했어. 말끝에 웃음이 돌았어. 그래서, 기뻤어. 

 

우리는 3학년 때까지 같은 반이었어. 적당한 성적 차이라서 같은 반이 될 확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3년 연속 우리가 같은 반이 된 걸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너는 가끔 내게 네 노트를 맡겼어. 일본어 노트, 정보과학 노트 같은 것들이었지. 너는 다시 자를 대고 필기를 하게 되었고 시험 기간에는 급식을 거르기도 했지만 핫식스나 레드불은 적어도 학교에선 마시지 않게 됐어.

2학년 때 나는 우리 학군에서 가장 유명한 아파트 최고층이 너희 집이라는 걸 알았지. 네 아빠가 학회 때문에 우리 나라에 없어서 나는 처음 너희 집에 가 봤어. 너를 꼭 닮은, 아니 네가 꼭 닮았을 엄마가 날 보며 웃었지. 아, 첫마디가 엄마가 안 계셔서 힘들겠구나 라는 건 좀 너무했는데 네가 대신 화를 내 줬으니까 괜찮았어.

내일 오후 다섯시, 너와 내가 같이 원서를 넣은 학교의 합격자 발표가 있는 시간. 멘토 쌤은 내가 후배가 되면 좋겠다고 나보다 더 들떴지만 아무래도 면접을 잘 본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은 돼. 하지만 또 알아? 우리가 3년을 함께 보낸 기적이 조금 더 이어질지. 툭하면 운다는 네 엄마가 딱 한 군데만큼은 네가 원하는 과를, 나와 같은 과를 쓰게 해 준 학교니까 이 모든 기적이 이어진다면, 나는 졸업식 때든 입학 뒤든 내 앞에서든 뒤든 무슨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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