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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버섯을 먹으렴

2021.05.31 14:4405.31

버섯을 먹으렴

이경희

 

“버섯을 먹으렴.”

어릴적부터 엄마는 항상 그 말만 했다. 이유식을 뗀 직후부터 나는 매일 지겹도록 버섯을 먹어야 했다. 우리집 밥상엔 언제나 버섯이 세 종류 이상 올라온다. 가끔은 버섯만 올라올 때도 있다. 밥 대신 버섯을 먹는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버섯. 버섯. 버섯버섯버섯. 버섯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배가 불러올 정도다. 아마 내 뱃속엔 버섯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목구멍에서 버섯이 쑥 올라온대도 나는 놀라지 않을 테다.

그런데 엄마는 나보다 더하다. 나는 키가 쑥쑥 자라나야 할 성장기라며 조금이나마 고기반찬도 먹게 해주지만, 엄마는 정말 버섯만 먹기 때문이다. 팽이버섯을 반찬으로 느타리버섯을 먹고, 깍둑 썬 양송이버섯을 구워 얇게 썬 양송이버섯에 싸먹는다. 으으, 엄마가 능이버섯 볶음을 한덩이씩 집어먹을 땐 내 밥맛까지 뚝 떨어진다. 할머니 말로는 벌써 이십 년 째 버섯만 먹고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 오늘만은 정말 참지 않을 거다. 나도 이제 다 컸으니까. 오늘은 내 열 살 생일이니까. 어떻게 생일날에도 버섯만 먹게 할 수가 있는지.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온힘을 다해 엄마에게 빽 소리질렀다.

“엄마 미워! 나는 왜 맨날 버섯만 먹어야 하는 건데! 나도 친구들처럼 피자랑 치킨이랑 스테이크 먹고싶단 말이야!”

엄마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깜짝 놀라 눈물이라도 뚝뚝 흘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엄마는 통나무에 매달린 표고버섯처럼 입술을 붙이고 가만히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멈춰 있던 엄마가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이상한 소릴 하기 시작했다.

“윤희야, 있잖아. 엄마가 젊었을 적에 전생 체험을 한 적이 있거든...”

 

 

아마 스무살 때였던가, 스물한 살 때였던가. 엄마가 전생을 보게된 적이 있었어. 유명한 최면술사가 나오는TV프로그램이었는데,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갔다 불려나와서 얼떨결에 최면에 걸리게 됐거든. 최면술사가 엄마를 의자에 눕히더니 머리 위에 있는 불빛을 바라보라고 했어. 눈앞에서 밝은 불빛이 왼쪽으로 왔다,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왔다, 오른쪽으로 갔다... 그러다 툭, 잠이 들었단다.

꿈 속에서 엄만 까마귀였어. 사람들의 시신을 파먹는. 온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녔지만 먹을 거라곤 마을마다 그득 쌓인 사람 시신 뿐이었단다.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됐어. 그 때가 전쟁 중이었다는 걸.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미워했고, 사방에 포탄을 쏟아부어 산과 들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은 흙더미로 덮어버렸어.

엄마가 하도 잔인한 말들을 쏟아내니까 당황한 최면술사가 엄마를 더 전생으로 보내버렸어. 그 전생에서 엄만 삵이었어. 새들을 사냥하길 특히 좋아하는. 까마귀를 잡아먹는 게 하루의 유일한 즐거움인 줄무늬 산고양이. 거기서 한번 더 전생으로 돌아갔을 땐 구렁이였어. 스르륵 시원한 여름 수풀 사이를 미끄러지며 삵들을 꿀꺽 삼키는 팔뚝만한 구렁이. 그 전생에선 날벌래였지. 죽은 구렁이의 시신을 파먹고 살았어. 그 전생엔 죽은 날벌래들을 집으로 가져가는 일개미였고.

아마도 최면술사는 몰랐겠지만 그날 엄만 더 전생까지, 더 먼 전생까지 가보았단다. 그 전생에서 엄만 때로는 호랑이였고, 때로는 메뚜기였어. 때로는 지렁이나 두더지가 된 적도 있었어. 매머드나 공룡으로 살아본 적도 있었고.

하지만 무언갈 먹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최면에 빠져있는 동안 엄마가 자연히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 우리가 먹은 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것. 그렇게 우린 우리가 먹은 것들과 점점점점 가까워져 결국 하나가 돼. 죽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먹은 생물로 환생하게 돼. 까마귀를 잡아먹은 고양이는 까마귀로. 고양이를 잡아먹은 뱀은 고양이로. 사람을 먹은 짐승은 사람으로.

엄마가 까마귀였을 때 온 세상에 큰 전쟁이 벌어졌었단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산천을 망가뜨려 먹을 것이 없어진 짐승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먹어야 했어. 아마도 그래서 지금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게 된 것 같아. 잔뜩 늘어나버린 사람들이 소와 닭이며 온갖 물고기들을 끝없이 먹어치우는 걸 보아하니, 곧 찾아올 다음 시대엔 인간들이 전부 죽어 사라지고 그들의 세상이 올 모양이야.

윤희야.

그때 엄마가 잠에서 깬 다음에 여러 삶을 찬찬히 헤아려보니 그중 가장 하찮고 재미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더라. 아니, 어떤 때는 무언갈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생물의 운명이란 것이 처량하고 부질없게만 느껴지더라.

그래서 엄만 고민 끝에 버섯이 되기로 마음먹었어. 버섯은 통나무를 먹고 자라니 언젠가 나무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무는 대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니 언젠가 죽어 대지로 다시 태어날 테고, 대지는 햇살을 머금어 기운을 충전하니 언젠가 태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야. 태양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빛을 내니, 별이 되기만 한다면 더는 무엇도 잡어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윤희야, 버섯을 먹으렴. 그럼 언젠가 너는 별이 될 수 있단다.”

엄마가 싱긋 웃었다. 전부 털어놓고서 어딘가 마음이 편해진 것처럼. 엄마가 손을 뻗어 내 뺨을 부드럽게 만졌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씩 씩 콧숨을 내뿜으며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됐어! 암튼 엄만 항상 이상한 소리만 한다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젓가락으로 버섯을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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