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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 들개는 쉰 목으로 운다

2021.06.01 00:0006.01

들개는 쉰 목으로 운다

pilza2


천장(天葬)이 있는 날은 새벽부터 바빴다.

죄송스럽게도 늘 스승님이 나를 깨웠다. 내겐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는 습관이 배지 않았던 탓이다. 반면 스승님은 시계도 없는 환경에서 늘 같은 시간에 잠이 들고 또 깨어났다. 아마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그야말로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경지.

스승님은 언제나처럼 기척도 없이 다가와 왼쪽 다리를 두 번 흔들고 가버린다. 그러면 나는 졸다가 들킨 보초처럼 깜짝 놀라 깨게 된다. 가볍고 무성의한 손짓 같은데 짐승의 이빨 같은 무시무시한 촉감에 잠이 확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밤사이에 무슨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영 희미할 뿐. 그래도 독수리 떼나 살아 움직이는 시체에 쫓기는 무시무시한 악몽은 이제 꾸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그만큼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증거 아닐까.

고원의 밤은 늘 춥다. 원래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힘든 땅이지만 특히 요즘 바람은 화살처럼 빠르고 바늘처럼 뾰족하다. 분명 저 아래 세상은 붉고 노랗게 물드는 초가을일 텐데 이곳은 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잿빛 동토다. 사후세상의 입구가 있다면 분명 이런 풍경이겠지.

잡생각을 떨치고 헛간을 겸한 방에서 나오면 주전자 주둥이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메마른 살갗을 어루만져준다. 좁고 허름한 집안에 문짝이 달린 별실은 따로 없다. 부엌이나 화장실이라는 개념 또한 없고. 난방을 겸한 화덕이 있는 쪽이 곧 부엌이며, 용변은 바깥에 나가 자연 속에서 해결한다. 크고 네모진 돌로 발판을 만든 벼랑 가장자리가 화장실이고 주워 모은 낡은 옷 뭉치가 귀한 휴지 대용품이다.

사방 어디에도 집 한 채 안 보이는 외딴집이지만 가까이에 있는 동굴 안에 샘이 있어서 겨우 사람 한둘 살아갈 정도의 물은 얻을 수 있다. 그 외의 음식과 생필품을 얻기 위해서는 산 아래로 반나절은 내려가야 읍내에 이른다. 그래서 평소에는 참파(말린 보리와 곡물류를 볶아서 빻아 만든 가루. 버터차를 섞어 떡처럼 만들어 먹는다)와 말린 자두 정도로 간소하게 먹지만 오늘은 천장이 있는 날이니 든든하게 먹는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옷을 다 입고 나면 집을 나서기 전에 치르는 짧은 의식이 있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스승님 앞에 마주 섰다. 나보다 키가 훨씬 작기에 내려다보았지만 다부지고 강인한 그는 내게 여전히 거인처럼 느껴졌다.

의식이라고 해봐야 정해진 수칙을 스승님의 선창에 이어 내가 반복해서 말하는 간단한 형식일 뿐. 그래도 우리는 더없이 심각하고 진지했다.

“시신은 추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시신은 추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시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시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해체할 때 입은 움직이지 말고 손은 쉬지 않는다.”

“해체할 때 입은 움직이지 말고 손은 쉬지 않는다.”

“해체에 열과 성을 다하되 자신의 안전에 유의한다.”

“해체에 열과 성을 다하되 자신의 안전에 유의한다.”

“공양을 드릴 하늘의 사자(使者)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양을 드릴 하늘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수칙을 읊고 나면 비로소 천장터로 나선다. 손잡이 달린 나무 상자를 운반하는 일은 원래 내 몫이지만, 요즘에는 스승님이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기에 평소 스승님이 들던 가방까지 내가 맡느라 추운 아침이어도 걷는 동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이 흠뻑 젖는다. 겨우 10분 정도 걸었지만 고원의 거친 길이라 그런가, 한 시간 정도 뛴 것처럼 힘들다.

천장터에는 터줏대감처럼 독수리 몇 마리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 독수리는 깃털색은 황갈색이고 털이 없는 머리와 목 주위는 붉다. 주로 무리를 지어 돌아다닌다. 나는 주위를 정리하며 간단히 청소하고 스승님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크고 작은 칼, 도끼, 가위와 망치가 들어 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으면 저 멀리에서 완만한 비탈을 따라 올라오는 장례행렬을 볼 수 있다. 시커먼 갈기가 풍성하고 개를 닮았지만 눈이 세 개인 짐승 가면을 쓴 사제가 북을 두드리며 앞장서고 뒤에 천으로 온몸을 감싼 시신을 둘러업은 사제가 따라왔다. 유가족이 사제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야크 똥 위에 소나무 가지와 솔잎을 덮고 불을 피운 다음 곡물 겨를 뿌렸다. 푸르게까지 보이는 짙은 연기가 뻑뻑하게 주위를 뒤덮는다. 표면적으로는 독수리를 부르기 위해서지만 시체의 냄새를 지워주는 효과도 있고, 유족과 주위의 시선을 가려주는 목적도 있어서 연기의 역할은 중요하다.

단상 위에 있는 크고 네모난 돌은 마치 작은 침대처럼 생겼다. 여기에 시체를 엎어놓고 사제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해체 작업을 하라는 신호가 내려진 셈이다. 연기와 음악으로 인해 주위의 감각이 차단되면 천장사는 약간의 최면 혹은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정해진 작업을 묵묵히 수행한다.

제일 먼저 스승님이 큰 칼로 목과 팔다리를 분리하고 나서 등뼈를 따라 그어 피부를 양쪽으로 절개하여 벗겨내고 몸통을 뒤집으면, 그사이에 나는 분리된 사지를 모아 도끼로 토막을 내고 망치로 뼈를 부수어 가능한 한 잘게 조각을 낸다.

뒤집은 몸통 역시 가운데를 칼로 내리친 다음 가슴 피부를 벗겨낸 다음 갈고리처럼 끝이 휘어진 칼로 내장을 긁어내듯 다 끄집어낸다. 내장을 잘게 자르는 일도 내 역할이다. 스승님은 이제 머리의 해체에 착수한다. 아직 나는 머리 다루는 작업을 허락받지 못했다. 기술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일뿐더러 시신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여전히 초짜에게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먼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낸 다음 칼로 이마를 그어 두피를 벗겨낸다. 그런 다음 작고 뾰족한 칼로 눈, , , 입술을 잘라내는데 특히 눈알이 터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도려내는 섬세한 솜씨가 필요한 작업이다. 눈알이 중요한 이유는 조금 뒤에 알 수 있다.

이 사이에 우리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오직 거친 숨소리뿐. 외웠던 수칙 그대로 입은 다물고 손은 움직여야 했다.

스승님이 머리를 처리하는 동안 나는 몸통으로 다가갔다. 경험이 좀 쌓인 후에야 스승님은 몸통의 처리를 내게 맡겼다. 갈비뼈를 쳐내다가 세게 휘두른 도끼날이 빗겨나 자기 다리나 발등을 찧어서 다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라나. 나도 실제로 몇 번 다칠 뻔했기에 나뭇가지 다발을 끊어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내가 갈비뼈와 등뼈를 도끼로 조각내는 사이에 스승님은 망치로 두개골을 깨고 뇌수를 꺼냈다. 이때 힘을 적당히 조절하지 않으면 뇌수가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역시 경험에서 비롯된 실력이 요구되는 섬세한 작업이다. 뇌수 역시 눈알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취급했다.

이때쯤 되면 주위에는 이미 독수리가 가득 몰려들었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으나 백 마리는 가볍게 넘을지도. 그렇지만 놈들은 쉽사리 덤벼들지 않는다. 나는 솟아나는 두려움을 억누르려고 주문처럼 수칙을 외운다. 하늘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늘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늘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체가 거의 다 끝나가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진다. 이를 신호로 삼아 우리는 단상에서 허겁지겁 물러난다. 천신(天神)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독수리들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얌전히 천신을 기다린다.

이곳 토박이들은 샹샹이라고 부르고 내가 사는 문명사회에서는 보통 인면조(人面鳥)라 부르며 벽지에 사는 요괴 취급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샹샹을 직접 보는 것은 여기 와서 천장사 일을 하면서부터다.

직접 봤을 때의 박력과 무시무시함은 상상을 넘어섰다. ‘하늘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다짐한다 한들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토록 크고 소름 끼치게 생긴 생물을.

샹샹 한 마리가 천장터 바로 위에서부터 날개를 유유히 펄럭이며 천천히 수직하강했다. 그 주위를 마치 소용돌이치듯 독수리 떼가 둥글게 둘러싸며 거리를 두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샹샹을 가로막기는커녕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듯했다. 명실공히 왕의 행차가 아니랴. 아직 천장사 경험이 일천하지만 내가 보기에 샹샹은 늘 혼자 나타났고 둘 이상 동시에 나타난 적이 없다. 어쩌면 이 세상에 샹샹은 단 한 마리만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스승님께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확인은 못 했지만.

닭 무리 속의 학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더욱 과장하고 극대화하려면 독수리 무리 속의 샹샹이라 함이 적절하겠다. 그 덩치는 독수리 수십 마리를 합친 것보다 크고 물론 사람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사람의 살빛을 닮았으나 그보다 허연 몸통은 소 두세 마리를 합친 크기에, 짧지만 사람 몸뚱이만큼 굵은 두 다리와 발톱은 생김새가 독수리와 꼭 닮았다. 하얀 날개는 펼치면 하늘을 뒤덮을 정도이고 땅에 내려와 접어도 끝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독수리와 다른 점은 목이 훨씬 길고 머리가 인간과 닮았다는 점이다. 차마 똑바로 쳐다보거나 오래 관찰하지 못해서 확신할 수 없으나 성별을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은 무표정하고 주름은 별로 없다. 또한 눈에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고 흰자위만 번뜩여서 소름이 끼쳤다.

샹샹이 혼자 천장터를 휘젓는 동안 독수리 떼는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며 호위하듯 구경하듯 지들끼리 밀고 부딪치며 소란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샹샹과의 간격을 절대 좁히려 들지는 않았다. 눈알, , 간처럼 변질하기 쉬워서 싱싱할 때 먹어야 하는 부위는 전부 그의 몫이었다.

피리와 북소리가 한층 커졌다. 분명 유족들은 안도하고 있으리라. 천신이 강림하여 시신을 맞아주었으니 천국행 열차에 올라탄 것과 다름없다. 내 경험으로도 천장 때마다 늘 샹샹을 볼 수는 없었다. 다섯 번 중에 한 번 나타나면 다행일까 싶은 확률이다. 물론 샹샹이 확률을 따져서 나타나는지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것인지, 민담과 종교 내용 그대로 죽은 사람이 천국에 입장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 판단하여 데려다주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샹샹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자기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더 볼일 없으니 가겠다는 듯한 태도다. 발로 바닥을 몇 번 두드리며 가볍게 날갯짓하더니 한번에 훌쩍 솟아오르고는 그대로 유유히 날아가버렸다. 그 서슬에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과 무아지경에 빠진 듯 열렬히 연주하는 사제들이 보인다. 물론 나와 그들 사이에는 빽빽하게 원을 그리고 있던 독수리 떼가 있다. 그들은 이제 나는 법을 잊어버린 듯이 닭처럼 뒤뚱거리며 주인 없는 천장터 위로 몰려들어 게걸스레 남은 것을 주워 먹는다. 그 광경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서로 몸을 밀치고 날개로 때리고 발톱으로 할퀴며 남이 문 것을 빼앗기도 한다. 두 부리가 내장 조각을 서로 잡아당겨 길게 늘어질 때 다른 한 마리가 끼어들어 중간을 물어 끊어지는 바람에 둘 다 뒤로 넘어지며 다른 놈들과 부딪쳐 나뒹구는 우스꽝스러운 꼴도 보인다.

수백 마리가 고갯짓하며 서로 밀치고 꽥꽥대는 광경은 지옥도 같기도 하고 펄펄 끓는 더러운 진흙탕 같기도 하다. 인면조가 홀로 노닐던 고고한 풍경은 태풍의 눈처럼 잠깐의 평온이었는지 이제는 온데간데없다.

이제 살점이 다 없어져 재빨리 배를 채운 몇몇은 날아가고 대부분은 남아 고개를 푹 숙이고 웅성댈 때쯤 스승님과 내가 나선다. 우리가 들어가면 놈들은 대부분 순순히 비켜준다. 간혹 발등과 종아리를 쪼는 사나운 놈도 있지만, 이에 대비하여 천장사는 두꺼운 가죽 장화 위에 길고 가느다란 나뭇조각을 엮어 만든 각반을 차서 다리를 보호했다.

우리는 나뒹구는 뼈를 그러모아 칼로 남은 살점을 긁어서 떼어내고 망치로 뼈를 잘게 부순 다음 참파를 섞어 덩어리로 만들어 뿌린다. 그러면 독수리들이 뼈까지 남김없이 수월하게 먹어치워 준다.

더 먹을 것이 없어져 독수리들이 떠나면 천장은 끝난다. 보통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깨끗하게 먹어야 유족들은 좋아한다. 이들이 믿는 종교에 따르면 그래야 영혼이 수월하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부위는 머리카락, 손발톱, 치아 정도다. 이는 사전에 연락을 받아 챙겼다가 유족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유족이 받지 않을 경우는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천장터 주위에 어지럽게 흩뿌려진 갈색 깃털을 쓸어서 치우면 대충 정리가 끝난다.

보통 유족들이 씻을 물과 천, 먹을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우리에게 준다. 불문율로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는다. 스승님은 가면을 쓴 사제와 짧게 안부인사를 나눌 뿐, 유족들은 얼굴조차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 사람들의 정수리만 보면서 음식이 담긴 광주리를 받았다.

스승님과 나는 우선 양동이에 받아둔 물과 천으로 손을 닦았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면 더 깨끗하게 씻어야 하니 피와 땀만 대충 씻어냈다. 사람 뿐이랴. 도구도 닦고 날도 갈아야 하니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씻다 문득 바라본 내 손톱 끝의 시커먼 혈흔은 지워질 날이 없었다. 아마도 남은 평생 마음에 품은 미련처럼 후회처럼 달라붙어 있겠지.

사제와 유족들이 돌아가자 우리는 천장터 곁에 있는 큰 바위 밑 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 감자, 훈제한 산양고기, 사과, 건포도와 견과류 등 모처럼 푸짐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노동의 강도도 셌기에 몸이 축 늘어진다. 힘을 보충하려면 있을 때 가능한 한 먹어둬야지.

나무 한 그루 없고 풀을 찾기도 힘든 황량한 풍경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린다. 무언가 냄새를 맡았는지 곧장 이쪽으로 다가온다. 녀석을 이끄는 원인은 우리가 먹는 음식 냄새일까, 천장터에 남은 피 냄새일까?

될마다. 내가 지은 이름. 주인도 없고 사는 곳도 모르는 떠돌이 들개다. 천장을 마치고 나면 남은 먹을 것이 있나 싶어 나타나는 놈이다. 독수리가 휩쓸고 남은 천장터에 그나마 남은 찌꺼기를 주워 먹는다. 피가 겹겹이 덮여 시커메진 천장터의 돌바닥을 날름날름 핥아보기도 한다.

그러는 꼴이 안쓰러워서 먹던 떡과 말린 고깃조각을 몇 번 던져주었더니 이제는 천장만 마치면 곧장 내게로 온다. 될마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오늘도 될마가 다가오자 나는 넓적한 돌 몇 개를 둥글게 놓아 만든 그릇에 물을 부었다. 곁에는 떡 조각도 놓았다. 될마는 혀를 축 늘어뜨리고 반갑게 달려왔다. 귀가 축 처지고 몸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곳곳에 털이 빠진 땜빵이 보인다. 한 마디로 비쩍 마르고 불쌍해 보이는 몰골. 입 주위에 달라붙은 누렇고 시커먼 흙 비슷한 것은 배설물일까? 아니면 마른 피?

나는 알아볼 수 있다. 이놈이 비록 지금은 야생짐승처럼 살고 있다 하여도 태생은 사람에게 길러졌음을. 눈빛과 몸짓에서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는 순종적인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떡을 게걸스레 주워 먹는 될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스승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또 그놈의 개냐? 개보다 네 몸이나 챙겨라.”

스승님은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사실 스승님이 모르는 사연이 있는데, 나는 들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곳에 처음 왔던 때, 낯선 고원에서 길을 잃고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에서 피로와 굶주림과 고산병이 겹쳐 그대로 기진맥진해 쓰러져 죽으려는 찰나 지나가던 들개를 발견했다. 녀석을 따라간 곳에 바로 스승님의 집이 있었고 그렇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본 들개가 될마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볼 때 생김새도 비슷하고 이 근방에 개가 그렇게 많지도 않아서 아마도 같은 놈이지 싶다. 그때는 기갈과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어 심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라 들개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도 표하지 못해 아쉽던 차에 천장터에 나타난 들개에게 친근함과 안쓰러움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나.

왜 스승님이 들개를 싫어하는지도 짐작이 간다. 될마에게 처음 음식을 주었던 날, 돌아가던 사제가 그 모습을 보더니 일부러 내게 다가와 해준 말이 있다.

“들개에게 잘해주지 마세요.”

“예? 아니, 왜요? 저렇게 불쌍한 것을……. 사제님의 종교는 요괴가 아닌 한 모든 생물을 긍휼하지 않습니까?”

“말씀은 맞습니다만, 여기 사는 들개는 그럴 가치가 없는 놈들입니다. 송장을 뜯어먹고 살거든요. 샹샹이나 독수리에게 먹힌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지만 요괴와 들개에게 먹힌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오.”

말없이 듣고만 있던 스승님은 사제가 간 후에 지나가듯 한 마디를 보탰다.

“천장을 치를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시신을 들판에 그냥 버려. 그러면 들개가 와서 뜯어먹어. 그 꼴이 역겨워 보이니 그런 믿음이 생겨났겠지.”

나는 그때 스승님이 저들의 종교를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많이 놀랐다. 천장을 하는 사람이 천장을 주관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니……. 얼핏 생각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감히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혼자만의 고민으로 마음속에 꾹 담아두었다.

아무튼 종교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들개가 스승님을 포함한 이곳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임은 이해할 수 있었다. 더럽고 위험한 부랑자, 재수 없는 놈, 꺼림칙한 놈, 그런 느낌을 주고 있으니까. 동시에 내가 될마에게 애착을 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바로 과거의 나와 같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왜 이 힘든 천장사의 길을 걸었던가? 고민해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결론이 난다. 당시 나는 세상에서 몸을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나와 동지들이 품은 뜻은 높고 컸으나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역사에 범죄자로 남고 말았다. 시도 자체는 후회하지 않으나 결과는 차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순순히 붙잡혀 국가와 사회와 법률과 인민에게 단죄받고 처벌받기는 싫었다. 토로하자면 두렵다는 쪽이 맞겠지만……. 투옥되고 고문받고 처형당하는 숱한 동지들을 뒤로 한 채 비겁한 겁쟁이는 길고 긴 도피 끝에 높은 산을 올랐다. 수치와 자괴감이 커지자 이렇게 살아남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산을 오른 이유는 하늘과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생각으로 왔건만 고원을 헤매며 고산병에 시달리자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두통과 호흡곤란과 환청에 시달리며 나는 죽은 동지들의 비난과 조소를 들었고 심신은 급속히 쇠약해졌다. 풀조차 찾기 힘든 척박한 땅을 헤매던 그때, 주인도 없는 이름 모를 들개가 나를 천장사에게 인도해준 것이다. 내 목숨을 살려준 이는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살아있는 저승사자였다. 그러니 버려진 시체를 뜯어먹으며 질긴 목숨을 부지하는 재수없는 부랑자가 내게는 목숨을 이어가게 해준 은혜로운 신령일 수밖에.

원래 스승님은 나를 제자로 거둘 생각은 요만치도 없어 보였다. 고산병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이곳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몸이 낫는 즉시 내려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리며 여기서 머물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 나눈 대화는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조아리거나 옷자락을 붙잡지는 않았고, 주전자를 데우는 작은 석유풍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제발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머무르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데도 갈 곳이 없습니다.”

“아, 이 사람 참…….”

“큰 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저 구석에 제 몸 하나 누울 자리와 마실 물, 먹을 것만 조금 나눠주시면 됩니다. 대신 시키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뭐든지 다요.”

“뭐든지? 하하…….”

이때 스승님은 기가 찬 듯이 피식 웃었다. 조롱의 의미가 담겼긴 하지만 스승님의 웃는 얼굴을 이때 유일하게 봤다고 기억한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쉽게 하는군.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뭐든지 다 해?”

“제가 비록 기술은 없으나 몸은 튼튼합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어르신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알고 싶나? 내일 도착한다고 하니 봐두게.”

스승님은 그 말을 끝으로 더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이 ‘도착’한다는 말인지는 다음날 알았다.

그렇게 나는 천장 의식을 목격했고 그때는 샹샹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신을 조각내어 독수리 밥으로 주는 장면은 무시무시했으나 역겹지는 않았고, 그들 나름의 종교의식이라고 생각하니 되레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저녁 조수가 되겠다는 내 말에 스승님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토악질을 하다가 겁을 먹거나 혐오감에 시달리며 줄행랑을 치리라 짐작했겠지. 담담한 내 태도가 좋은 인상을 주었는지 나를 조수로 받아주었고, 얼마 뒤에 스승님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내 역할이 한층 늘어났다. 스승님 혼자서 모든 일을 하기 힘들어지자 생각보다 더 빨리 천장사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아직 한참 멀었는데…….”

스승님은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내게 몸통 처리처럼 힘이 드는 일을 맡겼다. 그토록 노련한 천장사가 다친 이유는 나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요괴들이 돌아다닌다. 그중에는 시신은 손도 대지 않고 살아 있는 짐승의 피와 고기를 탐하는 놈들도 있다.

여기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자주 읍내로 내려갔다. 외딴 천장사의 집에서 단둘이 사는 생활은 어색하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천장 일을 가르칠 때 외에는 나와 하루에 두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반면 마을에는 사람들이 있고 누추하나마 문명의 결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신문에 낀 나의 현상수배 전단을 발견한 이후 한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마을 주민의 눈치를 살폈다. 신문의 날짜를 보니 발행 후 한 달 가까이 지체된 다음에야 이곳에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산 아래 세상과의 교류가 드물뿐더러 정보와 소식은 느렸다. 다행히 순박한 주민들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길어진 머리카락과 수염에 상처 입고 꼬질꼬질한 내 얼굴이 멀쑥한 현상수배범 초상화와 꽤 동떨어져 보였던 덕분이다.

나는 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조금씩 사람들과 안면을 트였고, 이대로 천장사 조수 일을 그만두고 여기에 정착해 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는 스승님의 당부를 잊고 술을 얻어 마시고 쌍륙(주사위 두 개로 말을 이동시키는 보드게임)을 놀며 노닥거리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둑해진 고원을 황급히 달려올 때 그만 요괴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사람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지만 그 둘 다 아닌 놈이 허공에서 생겨난 것처럼 홀연히 나타났는데, 오직 두 눈만 호롱불처럼 밝았다. 조물주가 인간을 빚고 나서 심심해서 남은 재료로 아무렇게나 뭉쳐서 만들어놓은 실패작 같은 몰골. 어두워서 그런지 꿈틀대는 요괴는 마치 오랫동안 구속되었던 땅에서 풀려나 날뛰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보통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작은 요괴는 시체를 먹는지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리를 치면서 팔을 휘둘러 위협하기만 해도 저쪽에서 먼저 도망치곤 했다. 그런데 운이 없었는지 산 짐승을 잡아먹는 사나운 놈을 만나고 말았다. 물론 요괴가 노리는 짐승에 사람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나는 스승님과 마을 주민에게 들었던 대로 돌을 주워 던지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불을 무서워하니 불을 피우면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나는 등불도 없이 맨몸이었다.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것을 쓸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늘 숨겨왔던 비장의 보물이지만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쓰랴. 요괴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자 나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쏘았다.

나는 총소리가 이토록 큰 줄 처음 안 사람처럼 놀랐다. 탁 트인 고원에 총소리가 숱한 메아리를 남기며 멀리 퍼져 나갔다. 요괴는 상상도 못한 강력한 공격을 받고 크게 뛴 것처럼 뒤로 훌쩍 날아가 나뒹굴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키는 놈에게 대담하게 다가가 머리를 겨누고 한 발 쏘았다. 어둡기도 하고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 움직이는 바람에 빗맞았다. 총알을 구할 방도가 없으니 아껴야만 하는데. 나는 속이 탔지만 아무리 총알이 귀한들 목숨값보다 비쌀 순 없으니 재장전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총소리에 놀랐는지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길 저편에서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램프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바람에 불빛이 이리저리 춤을 추었고 그의 그림자도 함께 일렁였다.

요괴는 불빛을 보더니 도망칠 기세였다. 이때 도망치도록 그냥 놔둬야만 했다. 그랬다면 비록 요괴는 살았어도 스승님이 다칠 일은 없었는데. 그러나 그때 나는 권총을 들고 있었기에 자신만만했고 감히 내게 덤벼든 요괴에게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어차피 총알을 두 개나 허비했으니 하나를 더 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놈을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총을 겨누며 요괴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램프를 들고 온 사람과의 거리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스승님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도시에서 온 범죄자라는 정체를 들킨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혼란으로 인해 조준이 흐트러졌고 세 발 째 총격에도 놈을 맞추지 못했다. 스승님은 가까이에서 들은 총소리에 놀라 램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총을 본 것도 총소리를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나의 귀가가 늦자 램프를 들고 마중을 나오다가 크고 기괴한 폭발음을 듣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쇠로 테두리만 두른 램프의 불은 땅에 떨어져 꺼져버렸고 요괴는 이때다 싶어 스승님에게 덤벼들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스승님은 다리를 물리고 말았고 나는 닿을 거리까지 달려와 요괴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쏘았다. 놈은 트림 비슷한 낮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나는 스승님을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집보다 마을 쪽이 더 멀었기에 응급처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째선지 다음날 마을 의사에게 가자는 내 제안을 한사코 거부하고 스승님은 스스로 치료를 했다.

“칼질하면서 많이 다쳐봤어. 이 정도 상처쯤이야…….”

스승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물린 부위를 잘라낸 다음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았다. 요괴의 침은 인간에게 독이라 상처를 씻어내야 했는데, 마땅한 소독약이 없으니 물린 부위를 잘라낸 것이다.

나는 후회와 자괴감과 미안한 마음으로 거의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고민했다. 결국 아까운 총알을 네 발이나 허비했고 총을 든 모습을 스승님에게 보이고 말았다. 수배당하는 정치범이라는 정체가 발각날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내 판단 착오로 스승님이 다쳤으니, 조금이나마 품었던 신뢰나 애정마저 사그라졌을지 모른다. 정말 언제 쫓겨나도 할 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스승님은 넌지시 나를 부르더니 천장사의 도구 다루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이후로 내 역할은 늘어났다. 다친 자신을 대신해서 내가 장비를 나르거나 힘을 쓰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마치 그 사건 이후로 나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더 두터워진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스승님은 여전히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는 법이 없는 양반이었으니, 그저 속내를 내 마음대로 넘겨짚을 뿐이지만.

오랜만에 샹샹을 본 이후, 일주일이 넘게 천장이 없었다. 동시에 스승님의 건강은 한층 나빠졌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추운 사람처럼 손발을 떨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손끝과 입술, 눈 주위가 보라색으로 물들고 피가 섞인 시커먼 가래를 수시로 뱉었다.

상처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요괴의 독이 일부 체내로 들어갔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둘 다일지도. 스승님은 그래도 마을로 가서 치료받기를 고집스레 거부했다. 일주일이 넘어 천장 소식이 오자 스승님은 한층 느리고 힘든 걸음으로 천장터로 향했다. 샹샹은 오지 않았고, 겨우겨우 천장을 마치고 나자 사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예, 별것 아닙니다. 나이 이길 장사는 없는 모양이죠.”

스승님은 다쳤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인지 이렇게만 대답하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장이 많이 없어서 힘드시죠? 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나요?”

내가 끼어들어 묻자 사제는 나를 보며 대답했다. 무표정한 짐승 가면 너머에서 근심 섞인 자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실은 화장터가 세워졌습니다. 우리 역할은 이제 끝나나 봅니다.”

“화장터요? 이 깡촌에?”

“문명개화를 한답니다, 나라에서……. 요새는 자고 일어나면 마을이 바뀌어 있더군요. 사람과 물자가 물밀 듯이 들어와서 새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고 있지요. 여기서 태어나 칠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요 몇 주 사이만큼 많이 변한 적이 없었답니다.”

문명개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생 못 들을 줄 알았던 말이다. 나와 동지들이 혁명을 일으켜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려 했을 때 주창한 표어 중 하나다. 문명의 과실을 군주와 귀족이 독점하는 현실을 타파하여 만국의 만백성에게 나누어주자. 그래서 세상 문명을 한 단계 끌어올리자. 이것이 바로 문명개화다.

우리의 혁명은 실패했는데. 어째서 문명개화라는 말이 여기까지 퍼지며 실제로 실행되고 있는 걸까?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라 산 아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도통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눈앞의 상대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사제는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산 아래 나라에서 온 관리들이 마을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 종교를 야만 습속이라며 탄압하려는 기세여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 시작이 천장이지요. 화장을 권유하며 천장을 금지하고 있답니다. 천장사님도 앞날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사제는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갔다. 더 묻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느라 혼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로도 내 마음은 이미 고원 아래를 떠다니고 있었다. 관리들이 마을에 있다면 수배범인 내 입장에서는 한층 위험해진 상황임에도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스승님을 치료할 약을 구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날 마을로 내려갔다.

사제의 말대로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마을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널찍한 도로가 깔리고 마을 한복판에 신식 벽돌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돌려 읽는 신문을 통해 엄청난 소식을 알았다.

산 아래 나라에서는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내가 참여했던 첫 번째 혁명은 비록 실패했으나 우리의 뜻을 전파하는 데 성공하여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결국 민중의 힘으로 혁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변화가 없어 마치 시간이 멎은 듯한 고원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이 이토록 급변했을 줄이야. 그렇다면 이전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면되었으리라. 내 죄도 없어졌겠지?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영웅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다!

이상하게도 크게 기쁘지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며 내가 바로 첫 번째 혁명을 이끌었던 선도자라고 자랑했을 텐데. 내게는 그보다 더 중한 일이 있어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신문을 내려놓고 곧장 약방으로 달려가 물었다.

“약사 어르신, 혹시 요괴의 침에 중독된 사람에게 잘 듣는 약이 있습니까?”

“요괴? 어떤 요괴를 말하는지요? 환자의 용태는 어떻습니까?”

나는 스승님을 물었던 요괴의 생김새와 스승님의 증세를 최대한 설명했다. 약사는 주의 깊게 듣고 잠시 궁리하더니 책을 가져와 찾아보았다. 애타게 대답을 기다리는 내게 그는 흐린 표정과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미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내 한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귀로 흘러나왔다.

“얼굴에 변색 증세가 드러났다면 치료하기에 이미 늦었습니다. 도시에 있는 의사라 한들 손쓸 도리가 없을 거요.”

결국 고통을 달래는 아편류를 사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연처럼 천장이 끊긴 무렵부터 스승님이 앓기 시작했기에 마을 사람들은 천장사의 병을 몰랐고 나도 굳이 알려주진 않았다. 안부를 묻는 말에 그냥 노환으로 집에만 계신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생계를 걱정해주는 착한 사람도 있었다.

“나라에서 천장을 금지하고 화장만 하라고 하는데 천장사는 앞으로 뭘 하고 살아?”

“어떻게든 되겠죠. 정 안 되면 때려치우고 여기서 막노동이라도 할까 봐요.”

나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그렇지만 신문물이 들어오며 급속히 개화를 맞은 마을의 풍경은 감동적이었다. 바야흐로 내가 꿈꾸던 세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발전하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은 충동에 이끌려 하마터면 시간을 더 뺏길 뻔했으나 스승님을 살펴야 한다고 자신을 채근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스승님의 상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미 늦었다는 약사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후로 며칠 동안 집에는 아편 연기가 자욱했고 스승님은 그저 약에 취해 고통을 잊어야 하는 산송장이 되어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계십니까?”

어느 날 좀처럼 없던 사람 목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두꺼운 옷을 몇 벌이나 겹쳐 입고 위에 덮은 넝마 같은 긴 천을 망토처럼 늘어뜨려 눈과 손과 발만 겨우 보이는 여행자 여섯 명이 서 있었다. 각자 등에 이불이며 솥 같은 세간살이를 지고 목과 손목에 염주를 둘렀으며 키보다 큰 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누군가 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천장 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사제였다. 늘 짐승 가면을 쓰고 있어서 맨얼굴을 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도 눈만 보이긴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인간처럼 보였다.

그들의 종교식 예법으로 인사를 드리니 사제가 스승님 안부를 물었다. 그에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이미 집 주위에 아편 연기 냄새가 자욱하니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고.

“실은 요괴에게 물려서 누워 계시는데…… 차도가 없으십니다.”

사제들은 한탄하며 그들 종교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며 병이 낫기를 빌어주었다. 효과가 있든 없든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저희는 오늘 마을을 떠납니다. 천장사 어르신이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우리 젊은 천장사님도 무탈하시길…….”

“떠나시다니요?”

“나라에서 우리를 탄압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문명개화를 제창할 때도 토속종교를 미신과 원시 습속으로 간주하여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라도……. 그럼 두 분의 정토왕생(淨土往生)을 빌겠습니다.”

사제들은 인사를 마치고 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고원을 나아갔다. 솥과 그릇이 부딪쳐 떨그렁대는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초라한 행렬을 보며 음악을 연주하던 사제들의 화려하고 활기찬 지난 모습을 떠올렸다. 점점 작아지는 그들의 모습이 세상에서 기반을 잃어가는 그들 종교의 상황을 상징하는 듯했다. 아쉽긴 했지만 변화가 시작된 이상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었다. 저들은 그저 변화에 따라가기를 거부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쪽을 선택했을 뿐. 자라나는 문명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숱한 과거의 일부가 되어…….

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로도 한참을 더 지켜보다 될마가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다. 천장사 일이 끊긴 이후 나는 될마를 발견하자 집으로 데리고 와 목줄을 매어 기르고 있었다. 비록 내 먹을 것도 풍족하진 않지만 돌아다니다 굻어 죽을까 염려가 되었던 탓이다. 이제 화장이 보급되면 들판에 버려질 송장도 없을 테니 될마의 처지도 우리와 다름없어질 터. 없는 사람끼리 도와야지.

그렇게 앞날이 보이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 모아둔 돈도 저장한 음식도 떨어지고 근심만 커지던 어느 날 밤, 스승님이 모처럼 제정신이 들었는지 나를 불렀다. 눈에는 한동안 못 보던 생기가 엿보여 반가웠다.

“그동안 이 늙은 몸 돌봐주느라 고맙다.”

“무슨 말씀을요. 오늘은 좀 좋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약은 그만둘란다.”

“왜 그런 말씀을……?”

“부질없는 목숨을 억지로 잡아두고 있을 필요 없어. 너만 고생이지.”

“고생이라니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셔야죠.”

“내가 늙었지만 눈치는 있어. 천장이 없어졌지?”

“…….”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얼버무렸다.

“스승님이 건강을 되찾으시면 다시 찾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아니야. 시간의 흐름은 냉정하지. 평생 똑같은 풍경을 보며 살았지만 나도 느낄 수 있어.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네가 쏜 총을 보고 그 천둥보다 큰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알았어.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산 아래는 바뀌고 있음을…….”

“…….”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어? 내가 왜 천장사가 되었는지. 너를 왜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스승님이 자기 이야기를, 과거를 말한다니? 놀라움이 가라앉자 호기심이 부풀어 저도 모르게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귀를 기울였다.

“나도 원래는 산 아래 마을에서 살았어. 정말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는데……. 그 행복이 깨지니까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지.”

아주 느리고, 가끔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느라 멈추면서도 스승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산 아래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푸줏간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러 이웃 마을로 갔던 그는 오겠다고 한 예정일보다 일찍 왔다가 집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스승님은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여자와 정분을 나누는 남편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라 악귀가 되고 말았지.”

분노에 눈이 먼 스승님은 푸줏간에서 쓰던 큰 칼로 두 사람을 찔렀다. 방 안은 천장까지 붉게 물들었고 사람 둘이 몇 조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보아 셀 수 없이 많이 찌르고 베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스승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평소에 믿고 존경하던 사제에게 갔다고 한다. 그때는 한밤중이라 발각되지는 않았고, 스승님은 사제의 발치에 엎드려 이 죄인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사제는 인자한 말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행동에는 의미가 있으며, 너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모두는 하늘의 뜻이다. 그 길로 스승님은 사제의 말씀에 따라 산을 올라 이곳으로 왔다. 그 당시는 마을에 사람도 더 많이 살았고 천장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천장사도 조수를 셋이나 두고 있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정말 하늘의 뜻이었는지 스승님이 천장사의 집에 오기 전날에 조수 한 명이 갑작스레 죽었다고 한다. 스승님은 곧바로 천장사에게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처음에는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며 거절당했지만 사제의 뜻을 전했고 푸줏간에서 일한 능력을 보여주며 거듭 간청하자 결국 천장사는 조수로 받아주었다. 세월이 흘러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스승님만 홀로 남았다.

“마침 세월이 변했는지 천장도 줄어들어서 딱히 혼자여도 힘들진 않았어. 이대로 내가 죽으면 천장도 사라지겠지 싶었는데 네가 나타난 거야. 그러니 이제 여한이 없어……. 내가 죽더라도 세상에 천장사는 남아 있으니까.”

“스승님…….”

“부탁 하나만 할게. 나를 하늘로 보내줘.”

“스승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내 몸은 내가 알아. 아편에 취해서 모를 거라 생각하나? 당장이라도 죽을 목숨이야. 네가 처리해준다면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어. 내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냐.”

“그럼……?”

“죽으면 지옥에 갈지 모른다는 것이 두려워.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천국에 갈 수 있겠어? 그저 남은 내 몸뚱이라도 공양할 수 있다면……”

“그런 말씀 마세요. 스승님은 평생 수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 스승님께 천국으로 갈 자격이 없다면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이 부디 위로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스승님은 말을 마쳤다는 듯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 입술이 살짝 움직였으나 목소리가 새어 나오진 않았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으리라. 나는 스승님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잠자리에 누웠지만, 나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머지않았음을.

스승님은 이후로 기절하듯 이틀을 더 누워 있었고, 사흘째 되는 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가는 길이 편안했기를.

그날 마지막 천장을 치렀다. 시신을 옮기고 또 도구를 옮기느라 천장터까지 두 번 이동하는 동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오랜만에 목줄에서 풀려난 될마는 나를 응원하듯 주위를 맴돌며 가끔 낮은 목소리로 짖었다. 단순히 피와 연기 냄새에 흥분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풀을 피우고 독수리가 몰려들자 얼른 될마에게 목줄을 씌우고 천장터에서 멀리 떨어진 바위에 묶었다. 철없이 뛰어다니다 독수리 밥이 될까봐.

이후 잡념을 잊고 오직 스승님에 대한 추모만을 마음에 간직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서 천장을 치러냈다. 사람은 없이 오직 들개 한 마리와 수많은 독수리가 지켜보는 속에서 나만의 작업을 이어갔다.

추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랜 수칙이 스승님의 목소리로 떠오른다.

나는 시신의 목과 팔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갈랐다. 내장을 긁어내고 뼈를 부수고 살을 다졌다. 눈알, 입술, , 간과 심장을 소중히 떼어 따로 바위 위에 놓았다.

그때 뜨겁던 햇볕이 일순 사라졌다. 구름인가 싶어서 무심코 하늘을 보니 이럴수가, 샹샹이 나타났다. 당연하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샹샹은 곧장 스승님의 시신을 향해 내려왔다. 너무 놀라서 나는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고 피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땅에 내려온 샹샹의 접은 날개가 내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하얗고 깨끗한 깃털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정녕 부정(不淨)이 하나도 없는 천국에서 온 것처럼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듯이 눈부신 몸뚱이를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샹샹이 긴 목을 슬쩍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놀랍고 무서워 숨을 멈춘 채 마주보았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매끈한 얼굴, 눈동자 없이 허옇기만 한 두 눈.

“무아!”

샹샹이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샹샹이 내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사람과 닮았으되 사람 목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괴성이다. 얼핏 남자가 소리높여 지른 비명 같기도 하고 여자가 낮게 토한 함성 같기도 하다.

“무아!”

또 한 번 소리쳤다. 마치 나를 꾸짖는 듯이. 무아(無我)? 내가 없다는 말인가? 나도,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허무하고 부질없다, 이런 뜻일까?

“무아!”

거듭 일갈한다.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려고. 실로 그렇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듯한 고원도 변한다. 스승님도 곁에 없다. 토착 종교도 세월과 문명에 밀려 떠나간다.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지리라. 모두가 변하고 모두가 사라지니, 집착도 미련도 없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고민하고 매달렸던가. 그냥 다 놓아주자.

이내 샹샹은 스승님의 시신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정성 들여 꺼낸 뇌와 눈알과 심장과 간을 남김없이 먹더니 훌쩍 날아올랐다.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샹샹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천신님. 스승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독수리 떼가 몰려들어 남은 시신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떠나자 도구를 모두 꺼내 천장대 위에 놓고 위에 야크 똥과 솔잎과 겨를 덮어 불을 붙였다. 손을 씻은 다음 될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미리 챙겨둔 짐을 들었다. 짐이래 봐야 옷, 가죽신발, 작은 솥, 램프와 부싯돌을 제외하면 물과 비상식량뿐이지만.

집을 나서는데 될마가 멀찌감치에서 따라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녀석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내가 이곳을 영원히 떠나고 있음을.

“어떡할래? 따라올래, 말래?”

나는 말도 못 알아듣는 미물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봤다. 될마는 낮게 짖더니 조금 떨어져서 나를 보았다. 내가 어쩌려는지 보려는 심산인가보다.

당장이라도 목줄을 채워 끌고 가는 편이 좋을까? 이 척박한 땅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그렇지만 막상 다가가자 녀석은 황급히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나와 이 땅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쭈그리고 앉아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너 좋을 대로 해라. 난 간다.”

마을 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내 모습에 녀석은 당황했는지 아니면 실망했는지, 나를 따라갈지 말지를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듯이 내게로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따라왔다. 결국 다시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가자 될마는 가장자리에서 주춤대며 망설이더니 결국 멈췄다. 이곳을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녀석은 평생 살아온 땅에 남기를 택한 것이다. 문명의 그림자에 묻힌 사제들처럼. 그렇다면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놓아줄 수밖에…….

조금 더 내려가다 돌아보니 여전히 그 자리였다. 손톱만 해진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낮은 목소리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듣는 내 심정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이겠지만, 이별을 슬퍼하는 울음 같기도 하고 이 땅을 떠나지 못한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하는 울음 같기도 했다.

무아, 무아.

들개는 샹샹을 흉내 내려는 듯이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부디 잘 살아.

나는 속으로 작별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이었다. 이후로 한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산을 내려가 바뀐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20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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