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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눈물눈물

2021.04.01 00:0004.01

 

거울속난새3

 

눈물눈물

갈원경

 

 

  길이 멀다.

  고향을 떠나 이 무리에 들어와 첫 이레는, 아니 첫 열흘 정도는, 하루하루 지나는 날을 세었다. 먼 걸음이지만 지나는 날을 세다 보면 백일이면 떼돈 벌어 돌아가기 충분하다는 날을 지워가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을 꼽기 더 쉬울 날이 올 거라고. 어느덧 북으로 북으로 추운 바람을 거스르기 시작해서 바투 봇짐을 꽉 붙들고, 낡은 옷깃으로 스미는 바람을 사람들의 체온으로 막으며 걸었다. 처음 며칠은, 처음 열흘가량은 끼니때마다 그래도 사람들 웃음이 났다. 북쪽 바람이 매섭다더니 별것도 아니네. 떠난 걸음은 이리 걷지만 돌아갈 때는 말을 타고 돌아갈 걸. 말은 타 본 적도 없으면서 잘도 말하네. 말 그게 뭐 별 거람. 귀한 분들은 뭐, 말 타는 피를 타고 태어나서 그리 말을 타고 다닌대냐. 말을 못 타면 가마를 타지. 가마를 못 타면 또 어때. 소문만 듣던 집채만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도 될 테고. 우리는 꿈을 꾸듯 돌아오는 날을 이야기했다.

 

  마을에 낯선 이가 흘러들어온 건 길을 떠나기 보름쯤 전의 일, 호된 가뭄으로 모두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계절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러번 고쳐 깁지 않은 천으로 만든 포를 입고, 먼 길 걸어도 거뜬한 가죽신을 신었다. 서산으로 갈 사람을 모은다고, 아니, 서산으로 갈 소년을 모은다고 했다.

  - 서산에서만 나는 버섯이 있대. 불로불사의 명약이라는 소문도 있다던가. 버섯이 사람 손으로밖에 딸 수 없는 곳에 있는데 하나만 따도 십 년 놀고먹을 금을 받을 수 있다고. 버섯을 못 따면 또 새집을 따는데, 새집 하나 온전하게 따면 오 년을 놀고먹는다고.

  소문은 달콤했다. 또래에 비해 한 뼘은 작은 덩치가, 남들보다 좁은 어깨가, 딱 그가 원하는 모습이라 했다. 너무 자라지 않은, 땋은 머리 길 때가 딱 버섯 따기에 적임이라고들 했다. 어떤 버섯이 어디에 있기에 장정들보다 어린 사람들이 더 낫다고 하는지, 아예 어려도 안 되고 아예 커도 안 되고, 몸이 가볍고 행동이 재빠르고 귀 밝고 눈 밝은 이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에 집집이 제 또래의 이들이 짐을 꾸렸다. 외동들은 부모와 맞서 싸우다 결국 눌러앉았지만, 막내거나 아직 어린 동생들을 형과 함께 건사해야 할 소년들은 무리에 더해졌다.

  - 그래도 말도 안 통하는 곳인데, 생판 처음 본 사람의 말을 어찌 믿고 그리 간다니.

  시운은 금방이라도 떠나겠다고 짐을 꾸리는 저를 영 내켜 하지 않았다. 원체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긴 손가락 끝이 모두 굳은살로 덮이도록 베틀 앞에 앉아 세상 아무것도 관심 없는 듯 말을 아끼고 베를 짜고 농사를 짓던 이가, 어쩐 일로 제 일을 막아섰다.

  - 키 크고 덩치 좋은 사람들은 되려 못 딴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나이 더 먹고 더 자라기 전에 다녀와야지. 밤마다 베 짜고 농사일 도와도 입에 풀칠하는 게 고작인데. 여기 입 하나라도 줄여야지.

  - 그리 좋은 자리면 그 사람이 따지 왜 여까지 와서 사람을 찾는대? 그 주변에도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 서산 근처 고장에는 죄다 버섯으로 새집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 뿐이라잖아. 일찌감치 잘 먹이고 잘 재워서 아이들도 그렇게 가볍고 재빠르질 않대. 덩치만 보면 내 또래만 해도 어른만큼 덩치가 크다잖아.

  우리는 ‘떼돈을 벌어서 더는 버섯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서역 사람들을 상상해 보고, 매 끼니 밥상에 수북하게 기름진 것이 올라온다는, 먹고 남아서 버리는 음식이 입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많다는 서역 이야기에 군침을 흘렸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아도, 그저 이 가뭄만 견뎌냈으면. 몇 해 전 심한 태풍으로 애써 키운 것들이 열에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산속 깊은 나무껍질을 벗겨서 끓여 먹어가면서 버텼지만, 집안에 한둘은 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 볼 낯이 없다며 밤에 몰래 집을 떠난 노인들이 산속에서 해진 옷가지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도 그 해의 일이었다. 그런 일을 또 겪을 수는 없었다.

  - 나는 모르겠어. 여기까지 사람을 찾으러 와야 할 정도라면 그 주변이 모두 그렇게 부자라는 말일 텐데, 여태까지 그런 말이 어째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니.

  - 그럼 어쩔 거야. 이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 이러다가 그 베 사 줄 집도 안 남을걸.

  반대하는 것은 시운뿐이었다. 한숨만 푹푹 쉬던 아비도 손위 누이도 이웃조차도 내가 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외동아들이 같이 떠나겠다고 말을 꺼내는 걸 절대 안 된다고 몸져누운 집조차도, 자식 여섯을 어떻게 이 가뭄에 건사하냐며 말을 보탰다. 동생들에겐 너무 먼 길. 너무 크지 않고 너무 약하지 않은 내가, 한몫을 할 수 있는 일.

 

  이제 보름이 되었으려나. 길을 떠난 전날 달이 보름이었나, 그믐이었나. 매일 달은 뜨는데 달은 차고 이지러져 매일 조금씩 바뀌는데 어느덧 보름달이 밝았다. 마음이 들떠 달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 북쪽으로 가는 길이 조금 버겁지 남으로 길이 접어들면 힘들 것 하나 없다 하더니, 분명 걸음이 남쪽으로 바뀐 지 오래인데 산길은 여전하고 밤이면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도 변함이 없다. 해가 저물기 전에 묵을 곳을 구하고 돌아가며 밤을 새워 동물을 쫓아대니 어느 날인가부터 해가 저물면 입을 닫았다. 해가 떠 있을 때도 말수가 적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밤이면 낮게 들려왔지만, 누구든 무슨 일이냐 묻지 않았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터지고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고 다시 물집이 생기고 멀쩡한 이가 하나 없었다. 처음 신나서 서산의 이야기를 하던 나그네도 이제 싹 입을 닫았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묻지도 못했다. 아니라 하면 또 어쩔 것이람. 이대로 돌아간들 반길 리 없는데. 금을 가지고 돌아오길 바라는 게 첫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한 입 줄어드는 것이 내심 더 기쁜 것은 집집이 마찬가지인걸. 아직 농사일로 한몫을 해낼 정도는 되지 않아도 그 정도 사정은 나도 안다.

  몇 개의 물을 건넜다. 얕지도 깊지도 않은 물이었다. 폭을 보면 배가 다닐 법도 한데, 물살이 급하지 않아 배를 띄울 만큼 바닥 깊이가 고르지 않고 가장 깊은 곳도 어른 허리 정도라 물길 한쪽 가까운 나무에 줄을 묶고 그 줄 끝을 반대편 나무에 묶고 줄을 잡고 조심스레 물을 건넜다. 줄을 묶은 것은 모두를 데려온 나그네였다. 그는 익숙하게 줄 한쪽을 나무에 묶고는 허리에 줄을 묶고 물을 건너서는 건너편 나무에 줄을 묶고 줄을 잡고 돌아왔다. 엇비슷한 키에 엇비슷한 덩치인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물을 건널 때 그는 처음 우리 쪽에 서 있다가 묶었던 줄을 풀고 마지막으로 다시 물을 건넜다. 사흘에 한 번쯤 그런 물을 만났다. 바다가 가까운 물의 하류라 물살이 넓고 줄기가 많다고 했지만,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겨우 옷을 말리고 다시 길을 가면 이내 다시 만나는 물길이 지긋지긋했다.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이런 물에 다리 하나 못 놓는대냐.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누구도 말을 받지 않았다.

  “온통 흙물이야. 황천이 따로 없네.”

  강안이 말했다. 딸도 아들도 많은 아홉 남매 중에 가운데,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좋은 밭을 빌려서 식구가 더 많아도 우리보단 덜 곯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이 가뭄에는 견디기 어려워서 딱 찾는 체격에 맞는 가운데 강안이 떠밀리듯 길을 떠나게 됐다고 했다. 산길을 헤쳐 오면서 온통 흙투성이인 옷으로 우리가 건넌 탓도 있어서 건너는 물마다 황토물이 흐르니 황천(黃泉)이 아니라 황천(黃川)이라면 맞는 말이다.

  “말이 화를 부른다는 말 모르나? 가뭄으로 물이 얕아진 덕에 이렇게 건너는데, 다행인 줄 알아.”

  나그네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입을 닫았다. 산속에 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먹을 수 있는지 어떤 열매를 먹으면 탈이 나고 어떤 버섯이 탈이 없는지 아는 것은 그뿐이었다. 떠날 때 부실하게 챙겨온 먹거리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라, 그가 갑자기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곤란한 것은 우리였다.

  다시 며칠을 또 걸었다. 달이 반쯤 이지러져 걸렸을 때, 어슴푸레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나그네의 말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했다. 그곳은 마을이 아니라 큰 성곽이고, 궁궐이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높으신 분들 사는 곳도 그렇게 넓지는 않을 터였다. 높은 벽을 쌓은 너머로 또 멋들어지게 휘어진 지붕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데 건물 하나가 따로따로 한 집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이 이어져 있다가 불쑥 높이 탑으로 솟아 붙어있거나 해서 이야기에나 보던 궁궐이 이런 곳이려나 싶었다. 그 너머로 나그네가 말했던 큰 산이 보였다. 멀리서도 보였던 산이었는데 이 성과 함께 있는 것을 보니 그가 말한 서산이 이곳일 터였다.

  “명을 받잡고 돌아왔소.”

  나그네가 문지기에게 말했다. 문지기는 머리 위에 쓴 것이 목을 붙잡고 있기라도 한지, 미동도 없이 쓱 우리를 훑어보고는 문을 열었다.

  “채집동들이 왔습니다!”

  “채집동들이 왔답니다!”

  머리 위에서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문지기가 선 곳 위에 높은 벽으로 보이던 곳 위 망루에서 외친 소리였다. 성안으로 계속해서 다른 목소리들이 말을 전했다. 우리는 나그네를 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열둘이 모두 들어서자 성문이 닫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서역의 왕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게 이끌려 성안 깊은 곳에 있는 건물로 갔다. 성안 건물이 모두 모난 돌을 맞춰 쌓은 모양에다 뾰족한 지붕을 얹었는데 그 건물만 나무판을 엮은 지붕이 얹어져 있고 벽도 흙을 쌓은 듯 황톳빛이었다. 고향 집집이 있는 툇마루도 없고 문을 열고 나오면 그대로 흙바닥이었다. 고향 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안의 다른 건물과도 다르다. ‘채집동’이라는 말이 우리를 부르는 말이라는 것은 바로 알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그다음 날에야 알았다. 먼 길을 왔으니 배부터 채우는 게 좋겠다고 한 상을 차려 올 때까지는 다들 얼떨떨하면서도 흙바닥이 아닌 바닥에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별말들이 없었다. 한 상 가득 차린 것이 낯선 음식인 것도, 그리 먼 길을 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끼니마다 기름진 것들을 먹어서 일찌감치 몸이 자란다더니, 상위에 오른 건 불을 더 대고 칼을 더 댔다 뿐이지 길에서 먹은 것들과 다를 게 없었다. 꼭 베를 짜는 실처럼 생겼던 버섯이나 나무껍질 같은 껍질로 싸여 있던 열매. 고기나 생선은커녕 쌀 한 톨도 볼 수 없는 차림이었다.

  “내일부터 일을 배울 테니 몸이 무거워지면 안 되거든.”

  나그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꼭 고향 사람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웃음을 흘렸다. 입이 잔뜩 나온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배가 고픈 것이 먼저라서 모두 허겁지겁 상을 비웠다.

  다음날 새벽부터 우리는 일을 배웠다. 나그네의 말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귀한 버섯을 캔다는 말은 맞았다. 그게 서산의 절벽 끄트머리에 있다는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다니기 어려운 길이어야 버섯이 남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시커먼 것이 썩은 나뭇잎 같은 것이 가까이 가 보면 말라붙은 미역 이파리처럼 생겼는데, 어른 손이 닿을 곳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우리는 절벽에 붙어 내려갔다가 작은 주머니칼만 가지고 버섯을 따고 올라왔다. 버섯이라 보고 내려갔는데 정말 말라붙은 나뭇잎일 때도 있었다. 주머니칼을 잘못 놀려 버섯이 부스러지기라도 하면 제값을 못 받았다. 아주 온전한 버섯 하나를 따 오면 그들은 장부에 큰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가 열 개가 모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삯이 된다고 했다. 뱃삯을 모아 돌아가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우리는 매일 절벽을 내려갔다. 동그라미 열 개를 또 열 번을 하면 되지. 다들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온전한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는 버섯은 너무 귀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손바닥만 한 버섯을 가져왔더니, 이파리 색이 고르지 않다며 반도 못 받았다. 작은 것들은 따 와 봤자 동그라미도 받지 못했지만 작은 것이라도 따지 않으면 그날 밥이 없었다.

  키가 한 뼘만 더 크면 닿을 것 같은 버섯이 손에 닿도록 가려면 발 딛는 곳은 발가락을 겨우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돌 끝밖에 없었다. 너무 어린아이들은 구석구석 갈 수는 있지만, 칼질이 서툴러 버섯에 흠집을 내기 일쑤라, 그래서 채집동은 내 또래여야 했다. 절벽에 바싹 붙어 작은 버팀돌 사이를 디뎌가며 채집장이 절벽 위에서 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 한 손으로 버섯을 한 손으로 칼을 쥐어도 버팀돌을 딛고 선 몸이 휘청이지 않을 사람. 가장 먼저 배운 서역 말은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크다 작다. 조심하라는 말은 느지막이 배웠다. 버섯에 상처가 안 나게 조심해. 이파리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흘리지 않게 조심해. 조심해야 할 것에 우리는 없었다.

  백일이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바람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불어가는 계절이 오면 바람에 실려 동쪽으로 향하는 새가, 구름이 되고 싶었다. 서늘한 달이 뜨면 저 달빛이 고향에도 보이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때 이른 달이 해와 같은 하늘에 떠 있으면 달이 해가 나보다 낫구나 웃었다. 옷깃을 여며도 바람은 스미는데 모래바람은 동쪽으로 불어가도 내 목소리 내 소식은 동쪽으로 가지 못했다. 먼저 온 채집동이 있을 법도 한데 우리는 우리 외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나그네를 보면 채집동을 데려온 곳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몇몇은 여기로 오는 험한 산길에 쓰러졌을 터였다. 여기로 오는 긴 걸음에 견뎌내지 못한 이가 한둘일까. 건너야 하는 물이 한둘이 아니고 넘어야 하는 산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뭄이 아니면 이리 건널 수 없다는 그 많던 물길은 어찌 건넜을까. 황색 흙물로 일렁이던 그 물길이 황천(黃川)이 아니라 황천(黃泉)이 된 이도 있었을 터다.

  가장 먼저 낙오된 것은 강안이었다. 돌이 무너지며 절벽을 미끄러지다 어찌어찌 뻗은 나뭇가지를 잡은 것은 천운이었지만 미끄러지는 중에 소스라치는 비명이 돌연 찢어질 듯 들렸다. 겨우 절벽에서 끌어올려 돌가루투성이인 몸을 업고 방으로 옮긴 뒤에 며칠을 앓고는 그날 뒤로 밝은 곳을 보지 못했다. 팔다리 다친 곳은 없어도 빛이 있는 곳을 보질 못하니 버섯을 딸 수는 없었다. 강안이 그간 딴 버섯은 동그라미 여덟. 몇 명이 마음을 보태면 뱃삯 정도는 마련하지 않겠냐 했지만 강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러고 돌아가면 그야말로 짐이야. 억지로 떠밀어 보낸 게 꼭 금덩어리를 가져오란 뜻이었겠어? 아직 어린 누이가 입 덜겠다고 먼 마을까지 시집을 갔어. 이러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콱 목을 매고 말지.”

  어둔 곳에는 그래도 앞이 보이니 다행 아니냐며 강안은 웃었다. 우리는 강안을 두고 이틀을 다시 절벽으로 향했다. 버섯을 딸 수 있는 계절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집에 가져갈 만큼을 벌어야 했다. 사흘 걸리는 절벽을 다녀와 돌아왔을 때 강안은 집에 없었다. 독한 맘이라도 먹었을까 걱정하며 성안을 뒤지는데, 성안의 서역인들이 슬금슬금 우리를 피하는 통에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불로불사의 명약까지는 아니어도 왕이 섬기는 황제는 이 버섯으로 이십 년 묵은 병이 나았다고 했는데. 다른 성 사람들도 이 버섯을 구하러 거창한 마차를 타고 줄지어 성으로 오곤 했는데, 그 버섯을 따는 우리는 이 계절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채집장은 먼저 온 채집동들은 모두 몸도 자라고 금도 모여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지만 우리는 금도 모이지 않고 몸도 자라지 않는데 버섯을 딸 수 없는 겨울이 되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

  “뭐 이리 늦게 와, 해가 다 졌는데 버섯을 밤까지 땄어?”

  한참을 찾다 돌아오니 강안이 이미 방 앞에서 옷을 털고 있었다. 돌가루 대신 흙이며 풀잎에 벌레까지 두둑 옷에서 떨어졌다.

  “어딜 다녀왔는데 옷이 그래. 돌아왔는데 네가 없어서 찾으러 갔더니.”

  “밤눈이 밝아져서 새집 따러 갔다 왔지. 새집도 버섯만큼 돈이 되는데, 버섯 따 본 사람 아니면 못 하겠더라. 동굴 안에서 새집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나그네가 말했던 새집 이야기였다. 서산 곳곳에 있던 동굴 안에 귀한 새집이 있는데 덩치는 조금 더 커도 상관이 없지만 어둔 동굴 안에서 불을 켜면 동굴 안에 사는 것들이 도망치며 덤벼서 불도 없이 밤눈만 믿고 새집을 딴다 했다. 강안은 첫걸음이라 먼저 사람이 다 못 따고 놓친 새집 조각만 겨우 땄지만, 그걸로 밥값은 되었다며 웃었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절벽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하나둘씩 강안과 같이 동굴로 들어갔다. 새집 하나는 버섯보다 값이 더 나갔지만 어두운 곳에서 새가 있는 새집을 만졌다가 새에게 쪼여 떨어지기도 하고 새집 가까이 있던 벌레를 못 보고 쏘여 손이 퉁퉁 붓기도 했다. 온전하지 못한 새집이 돈이 덜 되는 것은 버섯과 마찬가지였다. 온종일 온전한 새집 하나를 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손이나 다리를 다치면 꼬박 하루는 일을 나가지 못해서 버섯보다 오히려 어려웠다. 버섯이 있는 곳을 알려주던 채집장 같은 사람도 동굴 안에는 없었다. 큰 소리가 나면 동굴 안에 어떤 것이 깨어날지 모른다고 소리를 내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채집장은 동굴 밖에서 우리를 기다릴 뿐이었다.

  열두 명이 함께 왔지만 한 해가 지났을 때는 아홉이 남았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둘이 사라지고 없었다. 손이 맵지 못해서 겨우 밥값이나 해내던 둘이었다. 딱히 잘 먹는 게 없어도 키는 자라고 덩치는 커져서 슬슬 절벽에 발을 디디기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두 사람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가 다리를 다 쓸리고 구해진 뒤로 사흘을 방안에만 있다가 어느 날 밤 사라졌다. 채집장은 그들이 밤새 성을 도망쳐 나갔다 했다. 드문 일은 아니라 했다. 먹여주고 재워준 공을 모르고 꼭 제대로 보탬도 못 되는 것들이 겁만 많아 야반도주한다 했다. 둘은 한 날 떠났고 하나는 동굴에서 뭔가에 쏘인 후 깨어나지 못했다. 의원에게 보이겠다고 채집장이 그를 데려갔지만, 장례를 치러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했다. 우리는 전보다 적게 먹고 적게 잠을 잤다. 밤눈은 점점 밝아졌고 키는 자라도 몸은 자라지 않았다. 동그라미 열 개가 찼다. 스무 개가 찼다. 어제 서른 개가 되었다 싶었는데 버섯이 물에 닿자 부스러지는 불량품이었다고 한 개도 못 받기도 했다. 온전한 새집이라 가져왔더니 그 새가 아니라 다른 새의 집이라 했다. 크고 완전한 새집이라 가져왔더니 피가 섞인 새집이 상품(上品)인데 너무 반듯해서 하품(下品)밖에 안 된다 했다.

  강안은 성에 와서 두 번째 여름으로 한창 절벽이 바쁠 때 사라졌다. 한여름에는 동굴에도 새집이 없고 벌레며 동물들이 너무 많아서 겨우 캐 온 새집에 뱀독이 있어 쓸 수 없다고 몇 번인가 캐온 새집이 동그라미 반 개도 받지 못했다고 푸념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강안이 끼니를 절반도 먹지 않고 몸이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을 모두가 알았지만, 그렇다고 햇빛을 볼 수 없는 강안이 다시 절벽에서 버섯을 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중에 강안과 음식을 나누는 것을 꺼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강안은 우리가 돌아와 여느 때보다는 조금 나은 상을 받은 것을 구석에서 조금 집어 먹고는 그날 밤에 사라졌다. 채집장은 강안이 채집장의 방으로 숨어들어와 돈이 될 만한 것을 다 뒤져 가져갔노라며 대노했다. 강안이 동그라미 열 개는 채운 지 오래니 얼마나 귀한 것을 가져갔는지는 몰라도 강안의 품삯을 많이 넘긴 건 아닐 텐데도.

  백일을 말했던 길이 천일이 넘었을 때, 몸이 더 자랄까 봐 눈을 부릅뜬 채집장 눈치를 살피게 될 때는 이제 성안 사람들 말 중에 더 많은 것들을 알아듣게 되었다. 함께 잠드는 이들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새 채집동은 오지 않았다. 바깥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지는 않아도 성안으로 들어오는 수레에 실린 것들로도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서산의 열매들이 몇 해 만에 가장 큰 열매를 맺고 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내린 여름날이 이어졌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에 물을 대러 콧노래를 부르며 모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날씨면 누에도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려니. 이런 날이면 배부르고 등따스운 사람들이 결이 고운 감에 후한 값을 치를 테지. 어쩌면 높으신 분께 올린 비단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서 옆 옆 고장 그 옆 고장 사람들이 시운의 손아래에 곱게 펼쳐지는 옷감을 기다리며 앞다퉈 돈을 내밀기도 하려나. 어릴 적 동네 어르신이 들려줬던 옛이야기처럼 고향 마을이 질 좋은 물건들을 만든다고 소문이 퍼져서 다들 귀한 흰 밥에 기름진 반찬을 곁들일 수도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천일을 서산을 타는 동안에 나는 함께 논에 물을 대며 부르던 노래 가사가 가물가물해졌고 시운이 부드럽게 웃음 짓던 목소리가 점점 옅어졌다. 버섯과 새집을 따는 데 필요한 건 노래도 귀도 아니고 찢어질 듯 외치는 채집장의 소리를 따라 엄지발가락만으로 몸을 절벽에 붙여 짐승도 타지 못하는 절벽을 동굴 벽을 타는 재주뿐이어서. 더 자라지 않고 그저 날렵하기만 늘어서 혹여 먼 고장에서 새로 채집동이 오더라도 감히 노리지 못할 험한 곳의 귀한 것을 손으로 고이 거둘 재주뿐이어서.

  그렇게 절벽을 타던 때였다. 며칠 단비가 내려 좀처럼 절벽으로 나오지 못한 귀한 휴일을 보내고 나온 첫 길, 아직 비가 마르지 않은 길은 여전히 미끄러웠지만, 며칠 사이 몸집을 키운 버섯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채집장은 서둘러 우리를 데리고 절벽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꼭대기에 채집장이 앉고 우리는 거슬러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큰 동그라미 열 개를 열 번 모으면, 무엇이 된다고 했더라.

  이 성의 왕은 귀한 버섯을 차로도 마시고 반찬으로도 먹는다고. 왕은 가끔 귀한 물건을 바치는 이들에게 하사품으로 버섯을, 새집을 내린다고 했다. 성안 사람들은 왕의 은덕이 하해와 같아서 먼 북쪽의 왕까지 귀한 것들을 수레에 가득 싣고 오게 한다 했다. 성 위의 서산에 버섯과 새집이 마르지 않고 나는 것이 다 왕의 은덕이라는 말을, 흙투성이 돌투성이 이방의 소년들까지도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재우는 것이 다 왕의 자비라는 말을, 나는 마당에서 해 질 녘 주머니칼의 날을 세우며 들었다. 이 칼이 몇 번째 칼이었더라. 이 칼을 고향에선 뭐라고 불렀더라. 오늘 저녁으로 나온 생선이 너무 맛나서 전보다 많이 먹어 버렸는데 내일 절벽을 못 내려가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가득해서 더 열심히 칼을 갈던 때, 흙투성이 돌투성이 이방의 소년인 나를 흘깃 쳐다보고 성안에서 왕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덩치 좋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 아래 왼쪽, 네 키 두 번 만큼 아래에서 왼쪽. 디딜 곳 잘 보고!”

  채집장이 외쳤다. 귀가 울렸다. 손바닥은 이미 발바닥처럼 단단하다. 돌에 쓸려도 아프지 않고 칼날이 잘못 스쳐도 피도 나지 않는다. 나는 무릎을 손바닥을 발바닥처럼 버티며 내려간다. 저걸 따면 동그라미 큰 걸 하나 받을 수 있겠지. 큰 동그라미를 하나 더 채우면, 매일 아침 몸을 훑어보는 채집장이 오늘은 남으라고 할까 봐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겠지. 큰 동그라미가 더 늘어서 열 개가 되고, 그 열 개가 다시 열 개가 되면.

  나는, 시운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얼핏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발가락이 디딘 돌이 비에 젖은 흙을 붙잡지 못하고 힘없이 빠지면서 내 몸이 함께 미끄러질 때, 나는 얼핏, 시운의 얼굴을 손길을 떠올렸다. 하늘을 보아선 안 돼. 햇빛이 내 눈을 삼키게 하면 안 돼. 강안처럼 동굴에서밖에 일할 수 없게 되면, 나는, 동그라미 열 개의 열 개를 채우지 못하면.

 

  열둘이 온 동쪽의 채집동은 사 년째 되던 해 넷이 남았지만 넷 중에 버섯을 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서 왕은 자비롭게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이 가져온 옷 중에 남은 것이 없어 새 옷을 지어 입히고, 버섯도 새집도 딸 수 없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고향으로 향하는 배에 태웠다. 

  시운은 서쪽에서 왔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서산과 버섯으로 유명한 고장에 관해서 물었지만 아무도 그 고장을 알지 못했다. 시운 외에는 모두다 열둘이 떠난 먼 길을 점점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떠난 이들의 형제 누이들이 자라 가정을 이루고 혹은 다른 고장으로 떠나거나 했지만, 서산에서 출발한 배는 고향에 닿지 못했고 시운은 계속해서 베를 짜며 기다렸다. 마을의 아이들이 자라고 다시 험한 계절이 가끔 다시 찾아왔지만, 시운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오래전 먼 길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서쪽에서 사람들이 오거든, 이곳을 떠나 서산으로 갔던 이들이라고 하든 그들의 아이들이라 하든, 험한 계절을 이겨 보려고 고향을 떠난 이들을 반갑게 맞아 달라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이 돌아오면 그들이 와야 하는 곳이 여기였음을 알게 해 달라고. 마을에서 가장 좋은 실을 잣고 가장 좋은 천을 짜는 시운은 하얗게 머리가 세고 또 그 머리카락이 실처럼 가늘어지도록 이야기를 담아 실을 잣고 천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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