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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로 9-4번지에 어서오세요

 지현상

박성아는 볼수록 꺼림칙한 여자였다. 길고긴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릴 때는 더더욱 그랬는데 그 사이로 희끗거리는 눈매가 꼭 산 사람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확실히, 촬영을 다니며 무수한 역술가들을 만나봤지만 저만한 눈매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 빌어먹을 장소 때문인지도 모르지.’

영준은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낮에 본 2층짜리 단독주택은 조금 크다 뿐 별다를 것 없는 오래된 폐건물이었다. 적당히 으슥한 곳에, 그렇다고 너무 깊지는 않은 산중턱에 자리 잡은. 깨진 유리창과 썩어가는 바닥재, 어질러진 물건과 먼지 곰팡이가 어우러진 그저 그런 장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건물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비웃음을 품은 채 그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만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지?’

답지 않은 일이었다. 찝찝한 공기가 폐에 들어차 속이 거북한 것 같았다.

영준은 주택 앞에 우거진 덩굴식물 옆에서 촬영감독과 담배를 피웠다. 영준과 달리 촬영감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래 다 기분 탓인 거지. 코리한 연기가 핏줄을 타고 돌자 기분도 한결 나아졌고 속도 조금 진정되었다. 두뇌도 이성을 찾았는지 생각들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세상에 귀신같은 건 없으니까. 그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폐가를 찾아 다녔으나 제대로 된 심령 현상 한번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했던 적도.

왜지? 다른 일행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어 보였다. 정작가는 여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뭔가를 끄적이며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일반인 참여자로 동행한 미스터리 클럽의 두 여자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저희들 끼리 뭔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건물은 아무 탈 없이 눈앞에 서있을 뿐이었다.

“신 PD님. 슬슬 들어갈 때 되지 않았나요?”

아름이 다가와 영준에게 물었다.

그녀는 조금 작은 키에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외모를 가진 프로그램의 단골 참여자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 싶더니, 이번엔 고맙게도 미혜라는 예쁘장한 지인까지 데려온 참이었다.

눈빛을 보니 이 아가씨들은 건물 안에서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꼭 무서운 놀이기구 앞에서 기다리는, 이제 막 자신의 차례가 거의 다 다가온 듯한 표정이었다. 영준은 마지못해

“그렇죠? 이제 열두시 쯤 되었나요?”

라고 되물었다.

초여름 밤. 보랏빛이 진해지다 못해 검게 내린 밤하늘은 촬영을 하기에도 적당해 보이긴 했다.

“그래요. 준비들 되셨으면 슬슬 들어가 볼까요?”

영준이 담뱃불을 짓밟아 끄며 모두에게 들리도록 약간 크게 말했다.

촬영이 시작됐다. 긴 머리의 역술가와 미스터리 클럽의 두 여자가 카메라 앞에 서고 영준과 정작가는 두세 걸음 떨어져 뒤를 따랐다. 세 여자가 폐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깨진 창문들이 그들을 응시하는 가운데 길쭉하게 벌어진 현관문이 그녀들을 차례로 집어삼켰다.

하나. 하나. 하나.

남자들도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부서진 가구와 더러운 유리조각, 먼지, 싱크대. 그리고 사람들. 모든 게 어둠속에 뒤섞였다.

촬영감독이 역술가와 참여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가 다시 주변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깨진 창문으로 서늘해진 밤바람이 스며들고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들이 카메라의 약한 조명을 받아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꼭 얼굴 같은 그림자였다.

“영 찝찝하구만.”

영준은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역술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봤다. 그녀는 영준에게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한숨을 쉬고는 촬영감독과과 사방을 돌아다니며 손을 휘저었다. 어지러운 물건들도, 벽지와 내장재가 떨어져 나간 흉측한 벽과 천장들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건물은 대낮보다 훨씬 커보였다. 천장의 모서리는 끝을 모르게 검어서 정말 뭐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기야, 뭐가 튀어나오려면 이만한 곳도 없었다. 신빙성 없는 뜬소문일 뿐이지만 이웃주민들 모두가 한가정은 이곳에서 단체로 목을 매달았고, 또 한 가정은 가장이 부인과 두 자녀를 도끼로 찍어 죽이곤 스스로의 입에 칼을 쑤셔 박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주민들은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모두. 모두가 이곳을 귀신들린 집이라고 대답했다.

영준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귀신같은 건 몇 년 전 프로그램을 막 시작하던 애송이 적에나 믿고 찾아 헤매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나요?”

영준이 의례적으로 물었다.

“예, 한 스무 명 정도?” 역술가가 대답했다. “아니, 서른 명은 되겠네요.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많습니까?”

“장소에 얽매인 영들은 언제나 외롭습니다.” 역술가가 여전히 주변을 훑어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을 불러 모으죠. 하나. 하나. 하나. 그렇게 길을 잃은 사람이나 생전의 지인들을 꼬여내서 죽이는 겁니다. 우리도 PD님 덕에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으니, 어쩌면 여기에 PD님의 지인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었다. 영준은 지인이야기에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차분하게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시신은 다 어디 있을까요? 최소 서른이라면 정부에서 방관하고 있을 숫자는 아닌데요.”

“글쎄요.” 역술가가 초점 없는 눈으로 영준을 바라보며 약간 올라간 입 꼬리로 대답했다. “이집이 잡아먹는 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요.”

영준은 순간 그녀의 눈이 굉장히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형 따위의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의 눈이 아닌 것 같은 모양새였다. 광신도나 미치광이의 눈과도 조금 달랐는데, 백화점 명품관의 마네킹이 꼭 저런 눈이었다.

역술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한참 주변을 살폈고 일행은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저… 점심에 본 난장판이 어둠속에 반쯤 가려져 더 불길하고, 더 꺼림칙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부엌에 다다르자, 역술가가 갑자기 발음 멈추고 손을 뻗어 일행을 제지했다.

“이쪽으론 가면 안 되겠군요.” 역술가가 싱크대 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이가 있네요. 남자아이인데 우릴 보고 있어요. 나이는 많아봐야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모두의 시선이 싱크대에 꽂혔다. 낮에 본 것과 똑같은 별 볼일 없는 구식 싱크대였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그 안쪽에서 희미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 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물이라니? 영준이 의아함에 귀를 기울였다. 낮에는 물은커녕 먼지 한 톨도 내뿜지 못하던 싱크대였다.

미스터리 클럽의 두 여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호흡을 줄이고 서로를 바라봤다. 둘 모두 몸이 경직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던 중 아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싱크대를 가리켜 물었다.

“저거 칼 아니에요?”

싱크대 안쪽에 확실히 카메라의 조명을 반사하는 금속물체가 있었다.

“그렇네요.”

영준이 정신을 차리고는 낮게 대답했다.

“낮에도 저게 있었어요?”

아름이 다시 물었다.

그가 뭔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역술가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싱크대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일행 쪽으로 한걸음을 물러나 작게 말했다.

“이만 다른 곳을 둘러보죠.”

“왜죠? 뭔가 있는 건가요?”

영준이 물었다.

그러자 역술가는 눈을 흘기며 무뚝뚝하게 ‘나중에 말하죠’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영준은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지만 불친절한 역술가의 표정과 태도에 말문이 턱 막혔다. 솔직히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내뱉으려 허 하고 숨을 삼켰다. 그리곤 입을 열려는 찰나,

쨍강!

하고 오른쪽에서 뭔가 둔탁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말하려던 것도 잊고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오른쪽의 까만 공간 너머에 살짝 열려있는 방문이 보였는데, 소리는 그쪽에서 들린 것 같았다. 자박거리는 작은 소리도, 누군가 깨진 조각을 밟고 다가오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들이 소름을 돋아내며 영준의 등을 쓸어 올렸다.

헌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소리 난 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라? 영준은 눈치를 살피며 이마를 매만졌다. 일행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촬영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자박거리는 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뭐지? 영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뭘 잘못 들은 건가? 그걸? 아니야. 소리는 선명했었다.

일행은 역술가의 안내를 따라 거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영준은 머뭇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정말 아무도 못 들었다고?’

이상했다. 영준은 이 공간과 상황자체에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부엌, 거실, 화장실, 크고 작은 세 개의 방. 먼지 끼고 곰팡이가 핀 금이 간 콘크리트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게 낮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예민하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사방을 살피자니 주위를 떠도는 공기도 어딘지 조금 기괴해져진 기분이었다. 먼지와 곰팡내 사이로 이상한 냄새들도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비릿한 물비린내와 풀냄새 사이에 살짝 숨은 피 냄새 같은 것이었다. 신입시절 멋모르고 촬영을 다닐 때의 긴장감이 같은 것. 몇 년 동안 내로라하는 폐건물들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기분이 드는 퍽 건 오랜만이었다. 귀가 예민해지자 사각거리는 정작가의 볼펜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려왔다.

“민호씨, 이렇게 어두운데 뭐가 보입니까?”

영준이 괜스레 정작가에게 물었다.

“그럭저럭요. 엉망이더라도 나중에 알아볼 수는 있겠지요.”

정작가가 감흥 없이 대답했다.

영준은 그가 노트와 펜을 구분하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흔들림 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평온하게 글자들을 적어내는 나머지, 그 모습마저 소름끼치도록 수상할 정도였다.

‘아니야,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게 뭐가 수상한 일이야?’

영준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번 이상한 생각이 들자 끝이 없었다. 일행모두가 멀쩡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왜 혼자만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준은 슬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이 공간에 가득한 묘한 불안감이, 몇 년 동안 사라져있던 두려움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끌어내려 꿈틀대는 것 같았다.

역술가는 어느덧 1층의 모든 장소를 살펴보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최대한 빨리 둘러보고 나가도록하죠.”

영준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그녀에게 들어본 말 중 제일 맘에 드는 말이었다. 촬영 분량을 생각하면 귀신을 부르는 의식이라 던지, 기계를 들고 요상한 주파수를 찾아낸다던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그런 건 이미 영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뚫고 도착한 2층은, 낮에 보았듯 작은 거실 하나와 방 두 개가 전부인 비교적 좁은 공간이었다. 바닥이 다 썩은 스펀지 마냥 푹푹 꺼지는 느낌이어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싸한 바람소리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게 꼭 웃음소리 같았다. 영준의 불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역술가는 거리낌 없이 좌측 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이번엔 그녀도 살짝 당황한 듯 움직임이 버벅였다. 방안엔 갖가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쥐와 비슷한 작은 동물들의 사체도 잔뜩 널려 있었다. 개미와 벌레들이 잔뜩 달려 들어있는 바람에 실제로 그게 쥐였는지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카메라의 조명이 쏘여졌는데도 벌레들은 신경조차 쓰지도 않고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미스터리 클럽의 두 여자는 비명이 튀어나오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은 채 튀어나올 것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벌레들을 바라봤다. 아마 영준의 눈도 비슷했을 터였다. 낮에는 이곳에, 동물의 사체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영준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촬영을 이끌었다. 하지만 역술가가 두 번째 방문을 열었을 때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목 매달린 여자.

그것이 두 번째 방 한 가운데에서 시계추처럼 바람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영준은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칼에 찢긴 건지 여자의 배가 길게 갈라져 피와 내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온몸은 물론 바닥도 피로 흥건히 젖었고, 가슴에 닿을 정도로 길게 뽑힌 그녀의 혀에서도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좌우로 흔들거리던 그녀의 몸이 점점 더 세게 흔들렸다. 그러다, 그 목에 걸린 밧줄이 툭 하고 끊어져 여자의 시신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자가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보고,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왜 그래요! PD님! PD님!”

아름이 영준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 매달린 여자는 없었다. 두 번째 방의 천장 한 가운데에, 원래대로라면 조명이 있어야할 자리에 전선이 길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방 한 구석에 낮에 없던 밧줄 더미가 놓여있긴 했지만….

“이만 내려가죠.” 영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나가서 카메라에 뭐 특별히 찍힌 거라도 있나 확인해 봅시다.”

모두가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눈. 당황스러운 눈. 역술가만이 비교적 태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방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그가 뭘 본 건지조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전보다 더 삐걱 대는 탓에 꼭 그들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와르르 무너져서 심연 깊숙한 곳까지. 덜컥. 아니나 다를까 영준이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사이, 앞서가던 아름의 발밑에서 계단하나가 부서졌다. 나무 특유의 비명과 함께 그녀가 앞으로 넘어졌다. 아름은 너무 놀라 헉 소리만 냈을 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녀의 다리 한쪽이 아예 계단 밑으로 파묻혔는데, 반바지를 입은 탓에 부러진 나뭇조각에 파이고 찢겨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미혜가 놀라 울먹이며 아름을 부축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영준도 카메라 앞으로 내려가 아름을 끌어올렸다. 계단이 부서질 듯이 흔들리는 바람에 작업은 쉽지 않았다. 신경을 곤두세운 몇 분여의 사투 끝에 아름은 가까스로 계단을 빠져나올 수 있지만,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녀가 신음소리를 냈다.

“지혈도 지혈이지만 가시가 많이 박힌 것 같은데 얼른 나가서 치료부터 하죠. 저희 차에 구급용품이 있습니다.”

영준이 말했다.

“죄송해요.”

아름은 다리를 절뚝이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응급처치로 될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나가면 병원으로 바로 가죠.”

촬영감독조차 아름의 다리를 살펴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가 최대한 조심하며 계단을 벗어나느라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이제는 촬영감독도 미스터리 클럽의 두 여자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몇 걸음 앞에 현관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싱크대 쪽에서 갑작스레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괴성을 지르며 싱크대를 때리는 격렬한 물소리였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부엌을 바라봤다. 수도꼭지에서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물소리가 홀로 저택을 채웠다. 입에서 뜻 모를 신음이 새어 나왔다.

“빨리 나가죠.”

누군가 말했다.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확인 할 겨를이 없었다. 발아래에서도 우지직 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젠장 맞게 불길한 소리였다.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이 집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눈에 긴장이 떠오르고, 아차 하는 순간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이 뒤엉켜 돌무더기와 함께 추락했다.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되어 모든 게 현실 같지가 않았다. 영준은 지면에 패대기쳐져 엄청난 고통이 찾아온 뒤에야, 아니 그 고통이 조금 물러가준 뒤에야 가까스로 상황을 인식 할 수 있었다. 그가 신음을 흘리자 누군가 힘겹게 물었다.

“다들 괜찮아요?” 촬영감독이었다. “대답들 좀 해봐요.”

어둠속에서 미혜와 정작가의 희미한 대답이 들려왔다.

“저도… 괜찮아요.”

영준이 대답했다.

그는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애쓰면서 스스로의 몸을 확인했다. 등의 통증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였지만 뼈가 부러지진 않은 것 같았다.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가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다시 말했다.

“아름씨랑 다른분들은요?”

대답은 없었다.

“아름씨? 성아씨!” 영준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재차 이름을 불렀다. “젠장…, 감독님 조명 좀 켜주 실 수 있나요?”

“카메라는 그럭저럭 돌아가는데 조명은 나갔어요. 떨어질 때 깨진 것 같습니다.”

촬영감독이 대답했다,

영준은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냈다. 액정은 아작 났으나 플래시 기능을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불을 비추자 주변의 공간이 윤곽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위로 기어 올라가기엔 너무 깊은, 지하 땅굴처럼 보이는 좁은 통로에 떨어져 있었다. 길고 좁고 컴컴한 공간. 사람들. 코를 찌르는 썩은 내. 그렇게 한참을 상황을 살피는데

“저… 여기 있어요.”

뒤쪽에서 역술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그럭저럭요.”

그녀가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를 다친 건지 음색이 약간 정상이 아니었다.

영준은 섬뜩한 느낌에 불빛을 비춰 역술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실없는 웃음을 뱉고 있었다.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성아씨?”

뭔가 이상했다. 미혜도 촬영감독도 얼빠진 얼굴로 역술가를 바라봤다. 역술가는 이제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도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성아씨 괜찮아요?”

영준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손에 한가득 뜨겁고 질척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피였다.

영준이 놀라 손을 때는 찰나 그녀의 머리가 힘없이 툭하고 꺾여 떨어졌다. 아니. 아예 떨어지진 않고 뒤집힌 머리가 목 아래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아예 머리가 떨어져 버린 것 보다 더 좋지 않았다. 핏기 없는 새하얀 얼굴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곤 그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정확하게 영준과 눈을 맞췄다.

“이런, 젠장!”

촬영감독이 거의 반사적으로 역술가를 향해 카메라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미혜도 잔뜩 얼어붙어 비명을 내질렀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영준과 촬영감독은 거의 본능적으로 미혜를 잡아채듯 일으켜 무작정 뒤로 달려갔다. 미혜도 그제야 그들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쯤 울면서 비명을 지르는 미혜의 목소리사이로 자꾸만 역술가의 찢어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던 장소였는지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도 없고 갈라지는 길도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장소였지만, 모두가 주위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가지고 있질 못했다. 역술가의 웃음소리가 계속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만 같아 뒤는커녕 좌우도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미혜가 지쳐 토하기 직전이 돼서야 달리기를 멈추고 벽을 짚었다. 촬영감독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깊은 신음을 토했다. 이제 보니 다리를 다쳤는지 걸음이 불안정 했는데,오른쪽 바지가 허벅지부터 절여지다시피 피에 젖어있었다. 미혜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소리를 냈다.

“그게 뭐였죠? 대체 그게 뭐냐고요!” 미혜가 소리쳤다. “지금도 따라오고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우리 나갈 수 있는 거예요?”

“방금 우리가 뭐 잘못본건 아니었죠?”

촬영감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잔뜩 찡그린 표정을 보아 무리해서 달린 다리의 고통이 대단 한 것 같았다.

“확실히 봤어요!” 미혜가 울먹이며 말했다. “확실히 봤다고요! 살려줘요 PD님. 제가 잘못했어요. 네? 그만해요. 여기서 내보내줘요. 여기서 내보내 줘요!”

“진정해요 미혜씨. 미혜씨!” 영준이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미혜를 잡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도 무서워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우리 다 같이 살 방법을 찾아봐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방법이….”

“헌데… 정작가님이랑 아름씨는 어떻게 된 거죠?” 촬영감독이 물었다. “그러고 보면 추락한 뒤로 아름씨를 본적이 없어요. 정작가님은 처음에 괜찮다고 대답은 했던 것 같은데….”

“그만해요. 그만!” 미혜가 손으로 귀를 막고 작게 소리쳤다. 그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아름아…. 미안해….”

영준은 미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름도 정작가도 구하러 가기엔, 그 행방을 찾으러 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 영준은 어쩌면 이곳에 있는 자신들도 이미 늦어 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휴대전화를 확인해 봤지만 수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사람 드문 시골 산중에서 지하에 까지 갇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화기의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미혜도 촬영감독도 휴대전화야 한 개씩 있겠지만, 이 알량한 불빛이 그들의 시야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어둠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다리는 맥이 풀려 휘청거렸고 가슴은 벌렁거리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쩌면 구조대가 올지도 몰라요….” 영준이 넋을 놓고 중얼 거렸다. “여기 온 사람이 여섯이나 되요. 연락이 안 되면 누군가 경찰이든 어디는 연락을 할 거고… 결국은 우리를 찾아낼 겁니다. 며칠정도만 버티면….”

“며칠이라고요?” 미혜가 말을 끊었다. “며칠? 여기서요?”

“그러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아볼까요?” 촬영감독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땅굴이 있다는 건 어쨌거나 출구나 목적지가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출구가 없으면요?” 미혜가 되물었다. “나가는 길이 반대쪽에 있으면요? 그리고 구조대가 진짜 온다면 저쪽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미혜는 거기 까지만 말하고 흠칫 놀라며 말음 멈췄다. 웬 아이하나가 녹슨 식칼을 들고 뒤쪽에 서있었다. 멀지 않은 뒤쪽에. 그들이 지나온 길 가운데에서 아이가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이의 어깨너머로 스며드는 어둠속에는 희미하게 역술가의 얼굴도 떠있었다.

영준이 깜짝 놀라 플래시를 들이밀자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 아이는 없었다. 역술가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셋 모두 같은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일단 움직여보죠.”

영준이 급히 말했다.

모두가 말없이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계속, 계속. 이따금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그들을 계속 몰아붙여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차박거리는 발소리와 벽을 긁는 장난스러운 금속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은 반쯤 얼어붙어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출구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길은 갈수록 좁고 음침하게 변해갔고, 공기도 점점 탁해졌다. 출구와 점점 멀어지는 증거들이, 뭔가 잘못 됐다는 증거들이 온몸을 통해 느껴졌다.

귀신에 홀린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한참을 걸어도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가면 갈수록 머리는 신경 쇠약이라도 걸린 듯 지끈거렸다. 영준은 이마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괴리감과 이질감이 도처에 널려있어 이 상황 자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터널이 끝나기는 하는 것인지, 뒤에 따라오는 것들이 사람이기는 한 것인지, 아니, 실제로 뭔가가 따라오고 있기는 한 것인지.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얽히고설켜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러다 문득, 영준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문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왜 우리뿐이지?’

싸하게, 날카로운 무언가가 등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영준은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서서 빠르게 눈을 굴렸다. 미혜, 촬영감독, 그리고 사라진 아름과, 역술가, 정작가. 고작 다섯이라니? 아차 싶었다. 그의 촬영팀은… 애초에 수가 많은 건 아닐지라도 이렇게까지 소규모는 아니었다. 영준은 그제야 시작부터 뭔가가 크게 잘못됐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오늘 내내, 작가들은 물론 조명담당도 오디오담당도, 수년을 함께해온 그 많은 스태프들 중 촬영감독을 제외한 누구의 얼굴도 본 기억이 없었다. 젠장 할. 영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심지어 같이 다니던 ‘정작가’라는 남자는 그의 촬영팀도 아니었다. 대체 누구지? 뭣 때문에 우리랑 같이? 어떻게 이걸 이제야 눈치 챌 수 있지? 그리고… ‘아름’이라고?

“아아….”

영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옅은 신음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하는 소리 탓인지, 아니면 다른 낌새 탓인지 미혜와 촬영감독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좀 전 까지만 해도 우는 소리를 내던 미혜와 촬영감독이, 정말 기괴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방송국이 영준과 촬영감독의 실종으로 난리가 난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중요한 촬영이 잡혀있는 날이었는데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도무지 둘이 나타나질 않았던 것이다.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딜 간다 던지, 무슨 일이 있다 던지 둘 중 한명의 소식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준이나 촬영감독 모두 업무를 팽개치거나 말도 없이 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 한통이 없었고, 사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 가족들조차 둘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사람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일종의 괴담이었는데, 그날이 ‘아름’이라는 출연자가 촬영도중 돌연 실종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영준과 아름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느니, 아름이 사라진 이유가 사실은 영준 때문이라느니, 촬영감독도 같이 연루가 되었다느니. 알 수 없는 뜬소문들이 방송국을 떠다녔다.

가족들의 불안감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하루. 이틀. 경찰은 한참의 수사 끝에야 외딴 시골의 산중턱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인적이 드물다 못해 오로지 나무와, 흙. 수많은 덩굴 식물만이 가득한 곳에 그들의 촬영차량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운전석과 탑승칸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차키는 그대로 꽂혀있는 상태였다. 경찰들은 왜 차가 이곳에 버려져 있는지, 영준과 촬영감독은 왜 이곳까지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금품 갈취를 위한 납치부터 인신매매, 원한관계에 의한 보복성 범죄까지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지만 무엇 하나 이렇다 할 증거나 정황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곤 그게 전부였다. 경찰들은 인력을 동원해 차량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더 이상 손톱만한 증거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수사가 미궁에 빠져갈 무렵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다급한 신고 하나가 접수되었다. 강변에 올라온 퉁퉁 불어버린 시체 한 구, 바로 영준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인터넷은 이례적일 정도로 귀신이야기에 들썩이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괴담을 주고받고 떠들었다. 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괴담은, 단연코 촬영나간 PD는 변사체로 발견되고 카메라맨이 실종됐다는 산사로 9-4번지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인터넷에 유출된 두 개의 파일이었다. 소설과 동영상. 출처를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은 이 파일들의 제작자와 유출경로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사망자의 의도적인 제작과 경찰이나 유가족의 유출설이 가장 유력하게 떠올랐지만 사실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그건 경찰이나 유가족은 고사하고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유포할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망자가 직접 제작했다니, 귀신에라도 쓰이지 않고서야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이 가능했을까? 물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제로 경찰은 파일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애를 먹는 상황이었고, 유출자를 찾아내고자 이를 갈고 있기도 했다. 어쨌든 가장 큰 문제는 파일들이 필요이상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는 거였다.

박성아는 볼수록 꺼림칙한 여자였다. 길고긴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릴 때는 더더욱 그랬는데

소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래, 여태 당신이 읽어온 이 글이다. 물론 이것만 본다면 그저그런 공포 소설정도라는 것 잘 알고있다. 문제는 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영상이었다.

그건 치직거리며 푸른 산속을 비추는 화면 한 가운데에, 영준이 몇 시간이고 멍청하게 서있는 영상이었다. 벌건 대낮에, 영준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그냥 그대로 서있었다. 아주 가끔 최면이라도 걸린 듯 중얼거리며 좌우로 흔들리거나 멍청한 표정의 초점 없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게 영준이 하는 행동의 전부였다.

화면은 그 알 수 없는 모습 속에서 몇 시간이나 지속됐다. 그러다가, 화면 속의 그가 갑자기 커다란 돌덩이를 집어 들고 카메라를 향해 다가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퍽…. 퍽…. 퍽…. 소리는 딱 세 번 더 울렸다. 피에 젖은 돌덩이를 들고서도 영준은 끝끝내 멍청한 표정이었다. 그가 머리가 함몰된 카메라맨의 시신을 끌고 산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고, 곧이어 다시 다가와 카메라를 집어 드는 장면이 나왔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영준과 카메라맨의 행동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정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 자극적인 영상에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경찰이 별의별 수를 써보았지만 동영상의 파급력은 대단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동영상을 구해보고는 저희들끼리 쑥떡이며 뜬소문을 내뱉었다. 온갖 억측사이에는 조작이네 거짓말이네 하는 얘기들도 많이 있었다. 궁금하다면 당신도 영상을 찾아보길 권한다. 사실 우리는,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던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늘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래, 좋지. 자극적인 것. 신선한 것. 우리도 그런 친구들을 원하니 이해 할 수 있다. 긴이야기를 읽어주어서 고맙다. 결론은 그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어딘지도 모르는 산사로 9-4번지를 찾기 위해 밤길을 헤매는 사람이 많아 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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