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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윤 스마트 귀신

2018.10.01 00:0010.01

스마트 귀신

엄길윤

민우는 잠에서 깼다. 어둠이 내린 침대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의 행방을 찾았다. 얼굴을 문대던 베개를 들추자 딱딱하고 네모난 물건이 손에 잡혔다. 바로 액정을 어루만졌다. 경쾌한 알림 음과 함께 스마트폰 화면이 켜져 주위가 밝아졌다. 눈이 부셔 얼굴을 찌푸린 민우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새벽 1시밖에 안 됐다.

민우는 다시 스마트폰을 끈 후 배게 옆으로 던졌다. 내일은 학교 끝나고 학원 수업이 3개나 있는 날이었다. 졸지 않으려면 푹 자야 한다. 눈을 감은 민우는 새 스마트폰을 샀다고 자랑하던 상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부 잘 해서 사준 거라고 거들먹거리던 녀석이 몹시 얄미워 보였다.

민우는 뒤척이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떠올렸다. 엄마가 공부하는데 좋은 스마트폰은 필요 없다며 최저가로 사준 스마트폰이었다. 더군다나 요즘 나온 게임은 아예 지원도 되지 않는 구식 기기였다. 민우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민우야.”

깜빡 잠이 들었던 민우가 잠에서 깼다. 슬며시 한쪽 눈을 떠 침대 맞은편에 위치한 창문을 살폈다. 방금 창문 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가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자려고 누웠다가 머릿속에서 계속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울려 무척 곤란했었다.

“민우야.”

민우가 화들짝 놀랐다. 머릿속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창문 밖에서 들렸다. 민우는 누구일지 생각했다. 우리 반 회장 최정인? 아니면 옆 반 까불이 김민재?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목소리긴 한데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민우는 대체 누구일지 고민하다가 인터넷 어딘가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늦은 밤에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세 번 부를 때까지 절대 대답하지 말라고. 그건 바로 당신을 데려가려고 찾아온 귀신이라는 식의 괴담이었다.

소름이 돋은 민우는 덮은 이불을 코까지 끌어올렸다. 창문 쪽을 힐끔힐끔 살피며 애써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민우가 들었던 괴담은 말 그대로 옛날식 괴담이었다. 더구나 민우네 집은 3층 빌라였다. 밖에서 부르면 충분히 들릴 수도 있는 높이였다.

“민우야.”

민우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따지는 와중에 창밖에서 민우를 세 번째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민우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숨죽이고 기다렸다. 정말 귀신일까? 아니면 단순히 친구인데 기억을 못한 것일까?

민우의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종종 늦은 밤 엄마 아빠 방에서 들리던 마우스 클릭하던 소리도 지금 이 순간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불 안에서 몸을 움츠린 민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부엌에서 나던 냉장고 팬 돌아가는 소리도 멈췄다. 사방이 고요했다. 마치 민우의 방만 따로 떨어져나가 세상에서 고립된 것 같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창문 밖에서 더는 민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민우는 오싹해져 뒤집어쓴 이불을 꽉 부여잡았다. 진짜 귀신이었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불 속에서 몸을 벌벌 떨었다. 창밖에 귀신 아니면 그 비슷한 게 있다. 엄마를 부르러 엄마 아빠 방으로 뛰어갈까 고민하다가 이불 밖으로 나오면 귀신이 공격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내밀었던 머리를 이불 속으로 숨겼다. 민우는 이불 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몸을 배배 꼬았다. 민우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민우야.”

확실했다. 네 번째로 민우를 부르는 소리였다. 민우는 안도했다. 어쨌든 귀신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걷어낸 민우가 반갑게 대답했다.

“응. 내가 민운데. 누구야?”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차가운 바람이 민우의 얼굴에 확 와닿았다. 이상하다고 느낀 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안이 마치 한겨울 산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추웠다. 창문 밑에서 가느다란 손 하나가 쑤욱 올라오더니 창문틀을 부여잡았다. 곧바로 산발을 한 긴 머리의 여자가 창문을 기어올랐다. 분홍색 티와 면바지를 입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창문 밖에 섰다. 그 광경을 본 민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 여자는 아무런 받침대도 없는 창문 밖에서 공중에 둥둥 뜬 상태였다. 핏기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은 그녀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민우가 앉은 채로 뒷걸음질치다가 침대 헤드보드에 머리를 부딪쳤다. 뒤를 돌아봤다. 달아나야 한다. 침대에서 구르듯 뛰쳐나와 비틀거리며 방문으로 뛰었다. 헐떡이며 방문 손잡이를 잡고 늘어졌다. 아무리 손잡이를 잡아당겨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귀신은 창문 유리창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민우야. 어디 가려고 그러니? 내가 세 번 부르는 말에 대답했으니 이제 나와 같이 가야 해. 거기는 말이야. 아주 좋은 곳이야. 엄마 아빠도 없고, 학교도 안 가도 돼. 하루 종일 놀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아주 즐거운 곳이란 말이야.”

민우는 방문 손잡이를 잡고 온몸을 들썩거리다가 귀신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마치 롯데월드타워 꼭대기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귀신이 말하는 좋은 곳이란 바로 저승이나 사후세계가 틀림없었다. 따라가면 그대로 죽는다.

“어서 가자. 좋은 곳에 가자.”

귀신이 닫힌 창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음침한 목소리가 방안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민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방문 손잡이에 매달리다가 이건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괴담에서는 세 번 부르는 소리에만 대답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귀신은 민우를 네 번이나 불렀다. 그래서 민우가 대답한 거였다. 귀신은 은근슬쩍 민우를 세 번 불렀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창문 밖을 서성였다. 민우는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창문 밖의 귀신에게 악을 쓰며 소리쳤다.

“난 분명히 세 번 부를 때까지 대답 안 했어요! 이건 완전히 치사한 거 아닌가요? 거짓말이잖아요! 네 번 불러 놓고서.”

귀신이 유리창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어쩌니? 난 분명 세 번 말했는데.”

귀신이 어느새 한쪽 손에 든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단지 내가 말한 걸 녹음해서 다시 튼 것뿐이거든. 그러니까 세 번 말한 거 맞지?”

민우가 어이가 없어 방문 손잡이를 놓고 소리 질렀다.

“귀신이 그런 걸 쓰는 게 어딨어요?”

귀신이 혀를 차며 말했다.

“대체 언제 적 귀신을 말하는 거니? 옛날 소복 입은 귀신을 말하는 거면 그들은 이미 진작 사라졌어. 이승에서도 그렇듯 저승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나도 얼마 전까지 사람이었거든? 원래 이승과 저승은 다른 것 같아도 결국 하나로 이어진 세상이야.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쓰는 게 당연하지.”

창문을 두드리던 귀신이 말을 끝내자마자 두 손으로 닫힌 창문을 잡고 흔들었다. 당장에라도 창문을 잡아 뜯을 기세였다. 창문틀이 지진이라도 난 듯 앞뒤로 거세게 흔들렸다.

“안 나와? 얼른 안 나와? 네가 안 나오면 내가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

금방이라도 깨질 듯 덜컹거리는 창문을 보며 민우는 공포를 느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억울하게 끌려가게 생겼다. 민우는 입술을 깨물다 엄지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귀신이 한 짓이 몹시 비겁하다고 느꼈다. 예전에 같은 반 친구 영민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졌는데도 이겼다고 우기던 기억이 떠올렸다. 그때 반 아이들 전체가 나섰는데도 영민이를 설득하지 못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민우는 방문 손잡이에서 떨어져 나와 침대로 뛰었다. 그때 영민이의 말을 막은 건 바로 단짝 친구 준현이의 대응이었다. 준현이는 두 손으로 자기 귀를 틀어막으며 영민이가 계속 졌다고 큰소리로 우겼다. 영민이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를수록 준현이도 똑같이 교실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결국 영민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도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면 된다.

민우는 침대 위로 올라와 배게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었다. 얼른 잠금 화면을 풀고는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촬영 모드를 셀카로 바꾼 민우가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내가 민운데. 누구야?”

자신의 셀카 동영상을 촬영한 민우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귀신에게 다가갔다. 무서워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민우는 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도중에 졸음을 참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힘을 내야 했다.

“어, 어서 이 스마트폰을 데, 데려가요.”

민우가 창문 너머의 귀신에게 방금 촬영한 자신의 셀카 동영상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민우의 행동을 지켜본 귀신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까 대답한 건 분명히 너야. 그리고 이건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거고.”

민우가 심호흡을 한 후 되물었다.

“그, 그건 귀신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까 날 부른 목소리도 스마트폰에 녹음된 목소리였잖아요. 그, 그러니까 네 번째로 날 부른 건 스, 스마트폰이 되는 거죠. 제 말이 틀렸나요? 스마트폰이 불렀으니 대답한 스마트폰을 데려가는 게 이치에 맞잖아요.”

말문이 막힌 귀신이 민우를 노려봤다. 찔끔 겁이 난 민우가 뒤로 물러섰다. 너무 무서워 소변이 마려웠다. 귀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럼 녹음된 음성이 없다면 스마트폰이 부른 것도 아니라는 거지?”

“무, 물론이에요.”

민우가 내심 기뻐하며 대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음성이 없다면 민우는 귀신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게 확실해진다. 귀신은 창문 너머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줬다. 깡마른 손가락으로 고음질 녹음이라는 앱을 누른 귀신은 곧바로 음성 파일을 삭제했다.

“이렇게 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거네. 맞지?”

귀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민우가 얼른 대답했다.

“맞아요.”

귀신이 민우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히죽 웃었다.

“근데 민우야. 네 말대로 하면 부른 스마트폰이 사라졌으니까 대답한 스마트폰도 없어지는 거야. 결국 대답한 너만 남았다는 뜻이지. 스마트폰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 말이지.”

민우가 황당한 얼굴로 귀신에게 따졌다.

“억, 억지 부리지 마세요. 이건 단순히 스마트폰에 저장된 내 셀카 동영상일 뿐이에요. 아까 말했잖아요.”

귀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귀신이 스마트폰을 들어 민우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찰칵! 귀신이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창문에 바짝 붙이며 민우에게 말했다.

“잘 봐. 민우야. 여기에도 네가 있는데 어떤 게 진짜 너일까? 내가 찍은 너의 모습일까? 아니면 네가 직접 찍은 너의 모습일까? 누가 봐도 직접 찍은 네 동영상이 진짜 너이지 않겠어?”

민우는 발끈해 소리쳤다.

“당연히 둘 다 아니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귀신이 되물었다.

“진짜? 진짜로? 민우야 다시 물을게. 진짜 둘 다 네가 아니라는 거지?”

민우는 뭔가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요! 우겨도 소용없다고요.”

귀신이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머리를 흔들며 낄낄 웃어댔다.

“대답 한 번 잘했다! 네가 분명 둘 다 아니라고 했으니까, 진짜인 너를 데려가는 게 맞겠네. 그치? 어서 이 문 열어.”

귀신이 두 손으로 닫힌 창문을 잡고 다시 앞뒤로 흔들어댔다. 플라스틱으로 된 하얀 창문틀이 빠드득 소리를 내며 먼지를 날렸다. 놀란 민우가 뒤로 물러서다가 다시 창문 앞으로 와 따졌다.

“왜 데려간다는 건대요? 네 번째로 부른 음성 파일은 삭제했잖아요. 그건 이제 없다고요. 애초에 아까 있었던 일은 다 없던 일이 된다면서요?”

귀신이 민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이. 잘 생각해 봐. 말했잖아. 음성 파일을 삭제하면서 처음부터 다시라고.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지? 대놓고 네 이름을 세 번씩이나 불렀던 거 기억 안 나? 그때마다 꼬박꼬박 대답해 놓고선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민우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귀신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셈이었다. 괜히 민우의 사진을 찍어 누가 진짜인지 묻는 쓸데없는 짓을 함으로써 주위를 돌려 진짜 하고자 한 일을 한 것이다.

급해진 민우는 눈앞의 귀신이 무섭던 말든 일단 창문에 달라붙었다. 두 팔과 두 다리. 아예 온몸으로 창문을 잡고 늘어졌다. 귀신이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귀신은 창문이 닫힌 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귀신이 피식 웃었다.

“뭐하니?”

귀신이 창문을 잡고 흔들었다. 그때마다 창문에 달라붙은 민우의 몸이 요란하게 들썩거렸다. 한 번 흔들릴 때마다 팔다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민우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의 힘으로 귀신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더구나 세 번 부름에 대답한 게 됐으니 귀신이 들어와 민우를 데려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세게 흔들리는 창문에서 더 버티지 못한 민우가 떨어져 나갔다. 창문 너머에서 귀신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웃었다.

“좋은 곳에 가자. 좋은 곳에 가자.”

허우적거리며 다시 창문에 달라붙은 민우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손으로 창문 손잡이를 쥐고 온몸으로 창문을 막아선 민우는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낑낑대며 창문 너머의 귀신을 동영상 촬영하고, 그걸 재생해 귀신에게 보여줬다.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아까는 이 동영상의 귀신에게 대답한 거라고요!”

귀신이 창문을 흔들다 말고 혀를 찼다.

“대답한 건 아까잖아? 아예 시간대가 다른데. 이젠 댈 핑계가 없어서 그런 핑계를 대니. 그 스마트폰에 촬영된 것과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안타깝네. 정말.”

귀신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이 문 열어. 어차피 넌 나와 같이 가야 해. 힘들잖아? 서로서로 편하게 오케이?”

민우는 귀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순히 끌려갈 수 없었다. 민우는 생각했다. 확실히 동영상으로 찍은 귀신과 창문 밖에 있는 귀신은 다른 존재였다. 같지만 다르다? 민우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실마리가 잡혔다. 바꿔 말하면 다르지만 같다는 말도 된다. 민우가 여러 명일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민우는 얼른 스마트폰을 들어 영어사전 앱을 눌렀다. 민우는 엄마 몰래 트위터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하도 닦달을 해서 트위터 앱을 영어사전 앱으로 바꿔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나중에는 스마트폰 제일 첫 화면에 옮겨놓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민우는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민우는 트위터에 접속해 트위터 검색하기 기능으로 민우를 검색했다. 예상대로 민우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수십 명이나 화면에 떴다. 민우는 스마트폰 화면을 귀신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잠깐만요. 보여요? 나랑 똑같은 이름이 이렇게나 많잖아요. 아까 불렀던 이름이 나라는 걸 증명하세요.”

귀신이 콧방귀를 끼며 되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누굴까? 이 자리에 있는 건 너 뿐이야.”

민우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걸렸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왜 나뿐이에요? 여기 이 스마트폰을 보세요. 언제 어디서나 이게 있는 한 우린 함께 라고요. 귀신님도 스마트폰을 쓰니 잘 알 것 아니에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걸요.”

“아니, 그건.”

말문이 막힌 귀신이 이를 갈았다. 창문을 흔드는 걸 멈추고 민우를 노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태로는 아까 부른 민우란 이름이 바로 앞의 아이였다는 걸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또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한 귀신이 신음을 흘렸다. 보통 꼬맹이가 아니었다. 민우를 노려보다가 창문을 마구 긁어댔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창문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음이 민우의 귓가를 때렸지만, 민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귀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기뻤다.

귀신은 창문을 부여잡고 악을 쓰며 소리치다가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꼭 트위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수많은 사람이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였다. 꼬맹이가 깔아놓은 판에 놀아날 필요는 없었다. 살짝 비틀기만 하면 된다.

귀신이 두 손을 내려놓고 슬며시 민우에게 물었다.

“아까 부른 게 너라는 걸 증명하면 되는 거지?”

민우가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몇 번을 말해요? 이 트위터 안의 수많은 민우 중에 누가 나인지 재주 있으면 증명해 봐요.”

귀신은 건방진 꼬맹이를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되받아쳤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

귀신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크롬에 접속했다. 곧바로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가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지금 민우가 사는 곳의 주소와 빌라 이름, 몇 호실에 사는 것까지 정확히 기재한 후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귀신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민우에게 보여주며 따져 물었다.

“자, 이제 남들 보는 게시판에 너의 신상명세를 남겼으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너라는 게 증명된 거야. 내 말이 틀려? 맞잖아.”

민우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무슨 소리에요? 트위터에 나와 같은 이름이 수십 명이나 있는데 왜 딴대서 억지를 부려요? 트위터에서 증명해야죠.”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 본질은 네가 누군지 찾는 게 아니야. 너라는 걸 증명하는 거지. 이 주소에 사는 민우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너밖에 없거든.”

민우는 귀신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뇨. 절대 아니에요. 트위터랑 익명 게시판이 무슨 상관인데요?”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말 한 번 잘 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 누가 말했어? 너잖아. 그 말대로라면 익명 게시판도 마찬가지야. 스마트폰만 있으면 게시판을 통해 수십 명 아니, 수백 수천 명이 함께 할 수 있어. 트위터랑 다를 게 뭔데? 난 분명히 너라는 걸 증명하면 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어디서 우겨, 우기긴.”

할말이 없어진 민우는 귀신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귀신 말이 맞았다. 귀신이 다시 창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창문틀에 균열이 가면서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이 하나둘씩 밑으로 떨어졌다. 민우가 기겁한 채 창문에 달라붙었다. 귀신이 창문 밖에서 소리쳤다.

“소용없어! 이제 같이 가야 할 시간이야!”

민우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아뇨! 난 안 따라가요! 절대 안 간다고요! 어디 해볼 테면 해 봐요!”

귀신은 악착같이 버티는 민우를 보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쉽게 데려갈 거라고 생각했던 꼬맹이에게 이정도로 당할 줄은 몰랐다. 더 기분이 나쁜 건 결과적으로 세 번 부름에 대답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따라온다고 우기는 거였다. 귀신이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았다.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저럴까? 귀신은 자신이 얕잡아 보였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안 돼. 그냥은 못 데려가. 무서운 꼴을 당해야 정신 차리지. 다 네가 자초한 거야.”

민우는 들은 척도 않고 창문에 매달렸다.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창문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자존심이 상한 귀신이 눈에서 피를 쏟으며 창문을 쾅쾅 두드렸다.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너, 너, 너, 어차피 나와 마주친 이상. 그냥은 못 넘어가! 알아? 넌 무조건 날 따라올 수밖에 없어!”

민우가 찡그린 한쪽 눈을 뜬 후 귀신에게 되받아쳤다.

“그건 두고 봐야죠! 이대로 아침까지 버티면 그만이에요! 아니, 그럴 필요도 없겠네요. 곧 있으면 엄마 아빠가 요란한 소리를 듣고 달려올 테니까!”

귀신이 창문을 부술 듯 두드리다가 고개를 젖혀 웃었다.

“모르는 구나? 네가 날 인식한 순간, 딱 그때부터 이 방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 세상으로 떨어져 나온 거야. 잘 생각해봐. 너네 부모님이 올 거면 진작에 왔어야지. 어쩌나? 바보 같긴. 방문이 안 열릴 때부터 눈치 챘어야지.”

민우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귀신이 키득키득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시간 좀 봐봐. 얼른. 지금 몇 시? 여기에서는 시간이 아주 아주 느리게 흐리거든. 아직 5분밖에 안 지났어. 넌 나한테 끌려가게 되어 있다니까.”

민우가 얼른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 5분이었다. 귀신 말이 맞았다. 시간을 끄는 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창문 밖의 귀신이 눈과 입에서 피를 쏟으며 위협했다.

“이대로 계속 버텼다가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순순히 따라오는 게 신상에 좋을 텐데.”

민우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코웃음 쳤다.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어차피 따라가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속을 줄 알아요?”

귀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애다운 맛이 없어.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라니까.”

민우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바로 귀신이 부른 말에 대답했다는 거였다. 애초에 그걸 해결하지 않는 한 결국은 귀신에게 끌려가게 되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야.”

귀신이 창문을 붙잡고 온몸을 마구 뒤틀었다. 거세게 흔들리는 창문을 버티지 못한 민우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우수수 방바닥으로 떨어지고, 귀신이 깨진 창문 사이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이제 끝났네?”

귀신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빼더니 아예 창문 전체를 뜯어냈다. 휘어진 창문틀을 밖으로 내던진 귀신은 창문이 사라진 빈 공간을 넘어 방안으로 들어왔다.

“너 가만히 안 둬.”

귀신이 민우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방바닥이 귀신의 눈과 입에서 떨어진 피로 얼룩졌다. 민우가 방바닥을 기며 뒷걸음질쳤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민우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꽉 쥐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살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귀신이 세 번 부르고 답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의 시작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때문에 귀신이 민우를 속였던 거고, 스마트폰 때문에 계속 되받아칠 수 있었다.

민우는 결심했다. 지금 스마트폰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소중해도 목숨에 비할 수는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어지면 귀신도 사라질 것이다. 분명히 귀신이 말했다. 소복 입은 귀신들은 진작 사라졌다고. 저승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고. 말하자면 저 귀신은 요즘 귀신, 즉, 스마트 귀신이었다. 귀신은 늘 그 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민우가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올렸다. 귀신은 이를 악문 민우를 보자 당황했다. 팔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너 뭐하려는 거야? 안 돼! 그러지마!”

귀신의 반응을 본 민우가 확신했다. 이게 바로 귀신의 약점이었다. 민우가 온힘을 다해 스마트폰을 방바닥에 내던졌다. 바닥에 부딪친 스마트폰이 배터리가 분리되면서 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귀신이 허우적거리며 민우를 향해 달려왔다. 날카로운 괴성을 질러댔다.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가자!”

민우가 벌떡 일어나 구석에 처박힌 스마트폰을 향해 달렸다. 귀신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민우를 쫓았다. 책상과 침대 모서리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한 민우가 맨발로 스마트폰을 밟아댔다.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리저리 차이던 스마트폰의 액정이 깨졌다. 어느새 귀신이 바로 앞까지 달려들었다.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이 민우를 향해 쭉 뻗어왔다. 귀신이 깔깔대며 웃었다.

“이제 잡았다!”

민우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바로 앞까지 달려들던 귀신이 갑자기 허리가 뒤로 꺾였다. 눈과 입에서 검은 액체를 내뿜으며 비명을 질렀다. 민우가 황급히 바닥을 뒹구는 스마트폰을 살폈다. 스마트폰의 액정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귀신이 머리를 부여잡고 온몸을 뒤틀었다. 어느새 귀신의 몸이 마치 유리가 깨지듯 균열이 생겼다. 자신의 몸을 더듬은 귀신은 머리를 흔들며 울더니 창문이 있던 자리로 달려가 밑으로 뛰어내렸다. 밖에서 귀신의 악에 받친 외침이 들리다가 점점 사그라졌다.

“난 돌아올 거야! 다시 돌아온다고!”

민우가 창문 너머로 사라진 귀신을 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침대 모서리에 기댄 채 액정이 부서진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헐떡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어느새 부엌에서 냉장고 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가 고개를 들어 방안을 살폈다. 알고 보니 방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은 언제 부서졌냐는 듯 멀쩡했다. 인근 도로에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중간 세상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민우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어쨌든 귀신을 물리쳤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이 부서졌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민우는 침대 옆에서 천천히 일어나 방문 옆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부서진 스마트폰을 버린 민우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 새 걸로 사면 되니까.”

댓글 4
  • No Profile
    너울 18.09.30 14:31 댓글

    정말 귀엽고 재미있어요!

  • 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엄길윤 18.10.01 02:18 댓글

    아앗... 너울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히힛. 저도 요새 핫하신 너울님의 글 잘 읽겠습니다~

  • No Profile
    유이립 18.10.02 01:24 댓글

    성실하게 글 쓰시니 나중에 분명 엄길윤 단편집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

  • 유이립님께
    No Profile
    글쓴이 엄길윤 18.10.02 01:38 댓글

    저보다 더 열심히 글 쓰시는 유이립 작가님은 이제 금방 단편집이 나오실 겁니다! 전 아직 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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