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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온 통신


다들 모르는 것 같아서 여기에 밝혀두는데, 2005년에 K모 박사가 빛보다 빠른 타키온 통신을 발명했다. 그는 다들 알아주는 서울 소재 대학교 물리학 박사 출신인데 좋은 학벌에도 불구하고 IMF 때문인지 취직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대학에선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없다며 교수가 아닌 기업체의 연구소에서 일하기를 원했으나 시대가 안 따라준 탓에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었다. 긴 세월 그는 취준생처럼 학교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며 부모의 등골을 고아도 국물이 안 우러날 정도로 쪽쪽 빨면서 살았다.


그러다 IT벤처 열풍이 일어날 무렵 승승장구하던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사세 확장의 일환으로 고급인력을 찾은 덕에 K박사는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선임기술고문을 맡아 기존 통신망을 이용해서 가능한 빠른 속도로 많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새로운 통신 프로토콜 개발에 매달렸다.


하지만 5년도 못 버티고 회사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사장의 잠적과 함께 무너졌다. 애초에 언제 성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K박사의 연구를 지원했던 이유도 코스닥 상장 당시의 외부 과시용에 불과했던 것이다. 해서 K박사 및 연구팀 전원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고 다들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K박사는 다행히도 그 사이에 부모에게서 약국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여성과 결혼했기에 당장 밥 굶을 걱정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K박사는 퇴직금과 밀린 월급을 대신하여 연구실의 자재들을 모두 집으로 갖고 와서 혼자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길 몇 년, 언제부턴가 연구 주제가 완전히 바뀌어서 빛보다 빠른 타키온 통신의 발명에 매달리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약국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조달한 부인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K박사는 돈이 조금만 모일라치면 연구비로 쓴답시고 가져갔고 그걸로도 모자라 틈만 나면 연구비를 달라며 부인을 닦달했다.


시간이 흘러 박사는 드디어 타키온 통신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하고 실험도 성공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제 남은 건 실제 테스트뿐이었다. 이때 박사에게는 조수가 하나 있었는데 말이 조수지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하다 현재는 자칭 재충전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웃집 청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K박사가 과외를 도와준 덕에 수학실력이 부쩍 좋아져서 모두의 예상보다 한 등급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그래서 청년의 부모는 취직을 못하면 박사 밑에서 배우라며 조수로 맡긴 것이었다.


조수는 박사의 지령에 따라 장비를 챙겨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갔다.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시험하려는 목적이었다.


조수로부터 부산의 모 호텔방에 도착했고 준비를 다 마쳤다는 연락을 받고 K박사는 통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타키온 통신기는 컴퓨터에다 접시 모양 안테나를 달아놓은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새로 만들 자본과 장비가 없는 관계로 위성방송용 안테나를 개조한 것이다.


박사는 DOS 시절을 연상시키는 투박한 통신창을 씌워놓고 미숙한 타자 실력으로 천천히 조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부산의 날씨는 어떤가?

그리고 마우스를 움직여 전송 버튼을 누르는데 누르자마자 곧바로 답신이 화면에 출력되었다.

아침에 비가 왔는데 지금은 그쳤습니다.

K박사는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답신이 왔다는 의미를 생각했다. 모든 통신이 그렇지만 데이터 통신 역시 기본은 주고받는 것이다. 디지털 데이터라 하더라도 전선이든 무선이든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를 보내거나 받아서 출력에 걸리는 시간, 이 둘 중 하나라도 느려지면 흔히 버퍼링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방금 송수신은 그런 타임래그가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답신을 보냈다는 것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읽은 다음 그에 대한 답변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후 키보드로 글자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고 아무리 빨라도 1~2초 정도는 소요된다. 따라서 지금의 답변은 최소한 1초 이상 시간이 단축되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K박사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했다. 휴대폰 문자도 이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현대의 고속 통신망은 인간의 감각으로 마치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정밀하게 측정하면 그렇지도 않다. 전화 통화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지만 실은 음성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간이 아주 짧아서 타임래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속단하기엔 이르다.


또한 조수는 박사의 메시지를 받기 전에 미리 날씨에 대한 화제를 꺼낸 것일 수도 있었다. 우연히 대화를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마다 먼저 말을 건넨 걸지도 모른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K박사는 조수가 사전에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히 조수의 발언이 대답처럼 여겨질 여지가 없는 질문. 잠시 생각한 박사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었

……까지 치고 있는데 화면에 답신이 떴다.

부산 명물 돼지국밥요

그걸 본 박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쁨보다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앞섰다. 아직 문장을 완성하지도 않았고 전송 버튼을 누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편지를 보내기는커녕 다 쓰지도 않았는데 답장이 온 것이다. 즉 빛보다 빠른 메시지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로 보내진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타키온 통신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박사는 여기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자신이 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혹은 내용을 급히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바로 시간여행에서 생기는 타임 패러독스와 같은 문제였다. 과거로 가서 자기 부모를 죽인다면 지금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와 흡사한 종류의 고민이었다.


여기에 뜬 문장은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가정 하에 돌아온 답신이다. 즉 조수의 시간축에서는 박사가 메시지를 보낸 일이 이미 일어난 과거이다. 하지만 박사의 시간축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다. 둘이 동일한 시간 속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박사가 메시지의 내용을 바꾸거나 전송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부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박사는 가설과 추측의 영역으로밖에는 알지 못했다. 두 개의 우주로 갈라지며 박사의 시간도 두 개의 서로 다른 미래로 나뉘게 될지, 운명이라 불러야 할 시간의 힘이 작용해 그가 아무리 저항해봤자 결국 정해진 미래로 흘러가게 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모순이 발생하여 시간축이 뒤섞이고 엄청난 혼돈이 펼쳐지게 될지……


K박사의 손가락 끝에 인류와 우주와 시간과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도박을 할 정도로 실험과 도전정신에 충만한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긴 세월을 바친 연구에 대한 성공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아무리 과학자이고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빛보다 빨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키온 통신을 발명했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넘어서서는 안 될 영역이 있으며 지금 자신이 그 문턱에 서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K박사는 한 인간으로서 이 거대한 우주와 시간의 비밀을 밝히는 하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짧은 시간 깊고 깊은 고민을 거듭했으나 결국 박사는 그대로 문장을 완성하고 송신 버튼을 눌러 자신의 미래이자 조수의 과거에게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었나?

짧은 문장 하나를 썼을 뿐인데 온몸이 땀투성이였고 기운이 빠져서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K박사는 타키온 통신의 발명으로 얻어질 돈과 명예라는 세속적 성공보다 시간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도전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작고 무력한 존재임을 통감하며 몸을 떨었다.


같은 시간, 경기도 미사리의 어느 바에서 조수는 한 여인과 술잔을 마주치고 있었다.


“정말 속아 넘어갔어?”


여자가 묻자 조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노트북 컴퓨터를 돌려서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것 봐. 생각대로 문장을 보냈잖아. 소심한 영감이라 바꿀 생각을 못한 거야.”


“어떻게 한 건데? 진짜 타키온 통신을 만든 건 아니겠지?”


조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설마. 노망든 영감 헛소리에 맞장구쳐준 것뿐이지. 이건 간단한 장난이야. 박사 컴퓨터에 백도어 프로그램을 미리 깔아놔서 여기서 내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 키로깅이라고 해서 키보드로 무슨 글자를 치는지도 바로 알 수 있어. 절반쯤 보면 무슨 문장을 쓰려는지 파악이 되거든. 단순한 노인네니까.”


“그럼 이제 그 양반은 실험 성공했다고 좋아하고 있겠네?”


“그래. 영감이랑 이혼할 타이밍은 지금이야. 지금까지야 당신이 물주니까 절대 안 된다고 버티고 애걸복걸하면서 매달리기도 했겠지만 이제 발명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테니 당신이 어디 안중에 있겠어? 오히려 재산 뜯길 우려가 없어져서 좋다면서 쉽게 허락해 줄 거야, 분명. 차후에 위자료 운운하는 일 없도록 깔끔하게 갈라서. 그 다음에 나한테 오면 돼.”


“알았어. 난 자기만 믿어.”


조수와 박사의 부인은 한 번 더 건배를 하며 야릇한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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