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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의 노인



옛날 옛날 저기 멀리 보이는 강가에 기암절벽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동화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다 보면 양옆을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던 산맥이 돌연 사라지면서 사방이 탁 트이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시야에선 왼쪽, 방위로는 강의 동쪽에 해당하는데, 왼쪽으로는 수풀이 자취를 감추고 회갈색 깎아지른 암벽이 완만한 경사를 이르며 쭉 펼쳐져 있습니다. 완만하다고 하지만 사람이 올라가기엔 가파르고 거친 이 암벽지대를 넘어설 수 있다면 너머의 남화산에서 남쪽 산맥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을 볼 수 있겠지요. 반대로 시선을 오른쪽, 강의 서쪽으로 돌리면 습지와 허리까지 오는 갈대밭을 지나 흐릿한 안개에 덮인 푸른 들판과 더 멀리에 있는 논밭까지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강이 산과 들을 나누는 경계인 셈이죠.


그런데 이 서쪽, 산에서 평야로 갑작스레 바뀌는 지점은 거친 바위투성이입니다. 조물주가 이 부근을 빚다가 싫증이 났던 건지 여기만 집채만 한 바위들이 온통 아무렇게나 쌓이고 겹쳐져 있지요.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퀸 것처럼 드러난 산의 단면에는 오래된 화석의 지층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바위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연인지 조물주 영감님의 장난이었던지 길쭉하고 위태롭게 휘어진 바위가 그 끝을 강물 쪽으로 내밀듯이 하고 있었지요. 요즘 사람들이라면 다이빙대라느니 자살바위라느니 하는 이름을 불렀으련만, 옛날 사람들은 신선이 와서 노니는 곳이라고 신선봉이라 불렀지요.


그 절벽처럼 위태로운 가장자리엔 마치 세상 끝에서 자라난 것만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단정할 순 없지만 소나무나 향나무가 아닐까 싶어요. 강 서쪽에는 그만큼 높은 바위가 또 없었으니 산새나 학이라도 와서 앉았을 테고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신선봉이라고 부르게 되었겠지요.


여기서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믿을 수도 없고 증거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 아래에는 노인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 노인인지, 애초에 사람이기나 한 건지조차 알 수가 없는 일이죠. 주위에 풀도 제대로 없는 바위투성이 절벽 끄트머리에 초라하게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그림자에 의존해서 앉아 있는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행을 통해 수련을 쌓는 도사거나 정말로 산신령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곳에서 하루 종일 있을 수 있겠어요. 그냥 밤길에 떠꺼머리 총각을 만나 밤새 씨름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총각은 간 데 없고 옆에 부러진 싸리비만 놓여 있더라 하는 민담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면 될지도 모르겠네요.


노인은 가부좌를 틀고 나무 밑에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명상에 잠겨 있는 건지 그 자세 그대로 죽어서 미라처럼 굳어진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던 시절 커다란 돌덩이와도 같은 신선봉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노인은 대체 어떻게 오르내렸던 걸까요. 늘 보였다면 아예 거기서 살고 있다는 얘긴데, 나무가 딱히 과일나무였다는 얘기도 없고. 물은 고개만 돌리면 저 아래에 넘실거리지만 한 방울도 입에 댈 수 없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는데 뭘 먹고 살았다는 건지.


이러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두 마을에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강의 서쪽 습지 건너 호숫가 작은 마을에서는 노인을 신령님이라 부르며 귀히 여겼던 반면 더 너머 들판의 비옥한 평야를 소유한 농촌에서는 꺼림칙한 곳이라 여기며 외면했습니다. 양쪽 모두 아이들에게 절대 가까이 가거나 바위 위로 올라가선 안 된다고 가르쳤건만 그 이유는 반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판이했던 것이죠.
한쪽에선 신령님께서 참선에 잠기셨으니 이를 방해하면 큰 벌을 받을 것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다른 쪽에선 노인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저주받는 죄인이니 가까이 갔다가는 저주의 기운이 옮아 붙어서 삼대가 재수 없을 거라고 겁을 주었던 겁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야 그 말을 믿고서 위로 올라갈 엄두도 못 냈을지 모르지만 산골 마을의 아이들이라면 조금만 머리가 굵어지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재미로 살아가는 녀석들이 아니겠습니까. 두 마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나면 부모님들의 말씀은 자기 아이들이 위험한 돌투성이 절벽을 오르내리다 다치거나 떨어져 죽을까봐 그런 옛날얘기로 겁을 주어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거라고 여기게끔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을 때쯤 그들은 나무 밑의 노인이 실은 돌이나 나무를 깎아서 만든 조각상에 불과할 거라고 단정 지으면서도 자기네 부모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물려주곤 했지요.


그래도 세상 살다보면 영 어쩔 수 없는 개구쟁이가 마을에 한둘쯤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무서움이라는 감정을 엄마 뱃속에 놔두고 태어난 것만 같은 사내아이가 주로 그렇죠. 그런 아이는 또 청개구리 띠를 타고 난 건지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지게 마련 아니겠어요. 결국 그 개구쟁이는 어느 날씨 좋은 날 바람에 살랑거리는 절벽 위 나뭇가지를 보고 자신을 부르는 손짓인양 홀려가지고는 정신없이 바위를 타고 기어 올라갔던 겁니다.


농촌 마을의 아이들 중에서는 그런 녀석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청개구리 같은 아이라도 저주의 기운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은 갖고 있었거든요. 반면 호숫가 마을 아이들은 산신령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직접 보고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생겨날 법도 했습니다.


이 녀석도 호숫가 아이였습니다. 점심 먹고 곧바로 오르기 시작했는데도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던 절벽 위는 까마득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는 미처 몰랐지만 울퉁불퉁하고 때론 큰 바위에 막힌 산길을 멀리 멀리 돌아서 올라가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아이는 해질 무렵 바위틈에서 자라는 특이한 약초를 찾아다니던 노파가 발견하여 마을로 데리고 왔습니다.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전신이 흙투성이에 옷은 곳곳이 찢어지고 신발도 다 해져서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손바닥이며 무릎, 발뒤꿈치는 다 까져서 마른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요.


자식을 현명하게 기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부모님은 갑자기 사라진 아이를 기다리던 애타는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회초리로 등이며 종아리를 모질게 때리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특히 그렇게 가지 말라던 절벽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부모의 화는 더욱 커졌습니다.


다행히 그날 밤 어머니는 바위산을 오르다 다친 곳과 매질을 한 부분에 연고를 발라주고 잠든 아버지 몰래 주먹밥을 만들어 아이에게 먹였습니다. 마음이 놓인 아이는 그만 나무 밑의 노인을 만나고 왔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신령님은 살아 있어. 아이는 그렇게 말했죠. 내가 돌멩이를 던져서 팔을 맞췄더니 눈을 번쩍 뜨지 뭐야? 놀라서 그만 도망쳤지. 어머니는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했다간 더 크게 혼날 줄 알아라. 그렇게 으름장을 놓는 게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아이가 절벽을 올랐다는 사실을 마을 어른들이 알게 되면 사단이 날 게 빤했으니까요. 부모인 자신들의 책임까지 물을 테니 그런 헛소리를 떠벌리고 다니게 놔둘 순 없었죠. 산에서도 고생하고 집에 와서도 혼쭐이 난 아이는 결국 어머니에게 굴복하여 다음날부터 약간 주눅이 들긴 했지만 얌전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썽쟁이 성질을 되찾아가긴 했으나 절벽 위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들려줄 생각도 여전히 들지 않았죠.


시간이 흘러 이제 나무는 그저 하늘을 배경으로 절벽 위에 그려진 시커먼 얼룩처럼 되었습니다. 봄이 와도 꽃이 피질 않았고 여름이 되어도 나뭇잎이 달리지 않았으며 가을이 되어도 낙엽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나무 주위는 늘 겨울인 것만 같았죠. 그래도 노인은 늘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젠 나무의 일부분인 것만 같이 여겨졌죠. 신령이든 죄수든 그가 어떻게 그렇게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신기해하는 건 아이들뿐이었습니다. 노인은 햇빛과 바람만을 먹고 산다는 설도 있고 가끔 나뭇가지로 내려오는 산새를 잡아먹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여름날 강가에서 멱을 감고 고기를 잡던 아이들은 아무리 지켜봐도 노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멀리에서 보니 정말 사람의 모습이 맞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죠. 겨울에 눈이 오면 나무도 노인도 절벽 위로 그저 하얀 눈덩이의 일부가 되어 세상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최소한 봄이 올 때까지 노인에 대해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마을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길은 넓어지고 평평해졌으며 왕래하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말이라는 크고 빠른 짐승 덕에 사람도 물건도 활발히 교류할 수 있게 되었죠. 사람이 가는 곳엔 이야기가 따라가는 법. 왕래가 늘면서 마을에서 전해지던 이야기도 마을 밖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무 밑의 성자를 만나러 왔다는 여행자가 호숫가 마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긴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여 먼 길을 걸어온 그는 칠십 평생 산에서 도를 닦은 자칭 도인이었습니다. 이내 마을에서는 도사님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나무 밑에서 참선을 하는 성자가 있다는 풍문을 전해 듣자마자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지 뭐예요. 모처럼 나타난 진귀한 손님을 보러 마을 사람들이 주막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도사는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고 삼라만상의 기운을 얻었노라 주장했습니다. 온갖 병을 치유할 수 있고 죽은 꽃을 되살리며 물 위를 걷거나 구름을 불러서 타고 다니는 건 일도 아닌데다가 죽은 이의 혼령을 불러내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 위의 성자가 얼마나 대단한 도력을 지녔는지 모르나 자신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늙은이들은 그 말에 불쾌해 했고 나이가 제법 든 이들은 그 능력을 직접 봐야 믿겠으니 도술을 부리라고 청했으며 어리거나 젊은이들은 얼른 나무 밑 노인과 겨루어보라고 부추겼습니다.


이에 도사는 노인들의 반응을 보고 나무 밑 사기꾼에게 속아서 살았다고 응수했고 능력을 보여 달라는 청에는 이유 없이 함부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거절했고 겨뤄보라는 부추김에는 내일 만나볼 거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도사는 홀로 바위를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나무 밑 노인이 겨우 보이는 물가에 보여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과연 칠십 년간 도를 닦은 사람답게 바위 위를 훌쩍 훌쩍 잘도 타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게 정말 축지법인가봐 라면서 감탄했습니다. 도사는 한 식경도 되지 않아 절벽 꼭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윽고 도사가 나무 옆에 서서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덩어리 정도로만 보였지만 도사가 노인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짐작이 가능했죠. 실제로 도사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수련과 고행을 거듭했으며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이 진짜 성자이고 너는 그저 아무것도 하는 게 없으니 네가 기대고 있는 잎사귀 하나 없는 죽은 나무와 마찬가지다, 라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인이 아무 반응이 없자 화가 난 도사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말이 얼핏 절벽 아래까지 들렸던지 마을 주민들이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그걸 들은 도사는 아차 싶었습니다. 저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깜박했던 거죠. 여기서 신통한 능력을 펼쳐 보이지 않는다면 저들이 자신을 엉터리 사기꾼으로 여길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얼른 도사는 말을 바꿨지요. 네 능력이 꼼짝도 안 하고 여기 앉아 있는 거라면 내가 너보다 더 오래 버텨주겠다, 그러면서 노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도사가 나무에 꽃을 피운다거나 구름 위를 걷는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던 주민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보여줄 거란 기대에 한참을 더 기다리고 있었죠. 결국 둘 다 꼼짝도 안 하는 걸 보자 이내 각자 흩어져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지고 절벽 아래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도사는 겨우 한숨을 쉬고 오줌을 누려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비틀대다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어지럽고 다리가 아파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던 지라 급한 대로 누운 채로 용변을 본 후 다시 앉으려 했으나 이번엔 다리가 저리고 온몸이 쑤셔서 그 마저도 되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운 채로 밤을 보냈지요. 다음날 사람들이 하나둘 절벽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본 도사는 화들짝 놀라 얼른 가부좌를 틀고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멀리서 보기엔 어제와 똑같은 광경이었지요. 만약 나뭇가지에 앉은 산새처럼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봤다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진땀을 흘리는 도사의 일그러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점점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도사는 틈만 나면 나무 주위에 난 얼마 안 되는 풀을 뜯어 씹으며 공복과 갈증을 달래었습니다. 물론 노인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나무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죠. 태양은 이글거렸고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는 만족스러운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더위와 갈증으로 인해 체력은 고갈되었고 가부좌를 튼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정신까지 혼미해진 도사는 나무 아래에서 기어 다니다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물은 분명 있었습니다. 절벽 아래에 말이죠. 빛을 받아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맑고 신선한 물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도사는 왜 진작 이걸 몰랐냐며 스스로를 탓하면서 남은 힘을 쥐어짜 물을 향해 기어갔습니다.


도사는 미처 잊어버렸던 겁니다. 나무와 물 사이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물놀이를 하며 고기를 잡던 아이들이 뛰어내린 도사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물이 연한 붉은색을 띠면서 흐르기 시작하자 기겁을 하며 물가로 달아났습니다. 절벽 아래의 강가는 결코 뛰어들기에 적당한 수심이 아니었던 거죠. 물 위로 둥둥 뜬 시커멓게 햇볕에 탄 초라한 주검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아이들은 기겁을 하며 마을로 도망치듯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영험하신 신령님이 경망스러운 도전자를 가볍게 물리친 거라고 말하며 기뻐했습니다. 제법 나이 든 이들은 둘의 신통력 대결을 보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도사 혼자서 도전했다가 스스로 도망쳐서 투신자살한 걸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후로 나무 밑 노인에게 도전하겠다고 나선 여행자는 없었습니다. 대신 길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노인에 대한 소문도 거의 사라질 무렵, 또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모를 방문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살아가자고 주장하며 낙원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더니 나무 아래에서 나체로 지내는 노인을 만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젊은 무리를 본 사람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그들은 허락도 없이 절벽 위로 올라가더니 나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천막을 치고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예의를 차리기 위해 둘렀던 천 조각 같은 옷까지 완전히 벗어던지고는 알몸으로 나무 주위에서 눕거나 뒹굴거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습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습니다. 특히 벌거벗은 여자들을 보려고 몇몇 남자들이 몰래 절벽을 오르다 들켜서 망신을 당한 이후에는 더욱 그랬지요. 촌장을 비롯한 몇몇 노인이 생필품을 사러 내려온 나체족 대표에게 마을에서 나가줄 걸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자신들은 자유인이며 평화주의자이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뿐이었죠. 신령님이 진노할 거라는 경고에도 나무 밑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들을 받아들였다며 되레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던 모양입니다. 얼핏 그대로 정착해서 사는 게 아닐까 싶었던 때도 있었죠. 그들도 나름대로 마을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싶었던 건지 마을로 내려올 때는 성의껏 옷을 걸쳤습니다. 여전히 주책없는 몇몇 남자들이 나체족 여성들에게 수작을 부리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들도 위험을 알고 있었던지 결코 혼자서 다니는 법이 없었죠. 한 여자가 들꽃을 모으겠다고 무심코 혼자서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가 술에 취해 낫을 들고 협박하며 덤벼든 홀아비에게 팔을 베여 다친 일은 있었으나 함께 다니는 동료들이 즉시 쫓아와서 봉변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제압하고는 흠씬 두들겨 패는 일도 벌어졌죠. 이게 아마 나체족들과 관련해서 일어난 가장 크고 심각한 사건이었을 겁니다. 이후 며칠 정도 지나 나체족은 왔을 때처럼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대략 보름 정도 머물렀던 셈인데 아무 조짐도 작별 인사도 없이 갑작스레 사라졌기에 마을 사람은 며칠 동안 떠난 줄도 몰랐을 정도였지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여느 때처럼 깊은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버섯과 대마 등을 조합해 만든 환각제를 피우며 광란의 축제를 벌이다가 그만 누가 불을 붙인 대마잎을 나무 밑에 떨어뜨렸던 듯합니다. 나무에 불이 붙자 마른 장작이 잘 탄다고 삽시간에 횃불처럼 타오르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나체족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놀람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경외심을 느끼며 황홀경에 빠진 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두운 밤 환각에 빠진 이들에게 그 모습은 노인이 분노의 불길을 피워 올리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모닥불의 몇십 배는 될 듯한 커다랗고 밝은 불덩어리, 그 아래에 미동도 없이 근엄하게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 진노하신 부처님의 모습이 이랬을까요.


대경실색한 그들은 알몸으로 바위산 아래로 도망쳤습니다. 워낙 급하게 내려오는 바람에 몇 명이 굴러 떨어지며 크게 다쳤습니다. 죽은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일 정도였지요. 온몸에 생채기가 나고 팔다리가 부러진 가련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주민들이 보지 못한 게 다행이었습니다. 한밤중의 일이었거든요.


불행 중의 다행이었는지 불은 오래지 않아 꺼진 모양입니다. 마침 그날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내렸거든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앙상하던 나무는 가지 대부분이 떨어져서 그냥 시커멓고 길쭉한 숯 덩어리 같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체족은 다음날 새벽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얼른 짐을 싸서 마을을 떠났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간 자신들을 무사히 보내줄 리가 없음을 알았던 거죠. 노인이 불에 타서 죽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무를 태운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노인은 변함없이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그 모든 일이 자신에게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혹은 어떤 것도 참고 견뎌낼 수 있다는 듯이. 세월은 흐르고 흘러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마을이 생긴 이래로 수백 년간 일어났던 변화보다 더 빠르고 극적인 변화가 일이 년 사이에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이 마을까지 흘러와 푹 잠기도록 뒤덮었던 것이죠.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도시로 떠났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넓고 단단한 도로가 깔리고 전선이 이어졌으며 초가를 헐고 벽돌과 시멘트를 쌓아 집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농사일을 손에서 놓고 모여서 이 마을이 어떻게 될지 얘기를 나눴습니다.


고속도로가 마을 옆을 지나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외지에서 못 보던 사람들이 차를 타고 몰려와 논밭을 가리키며 땅주인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땅값이며 토지이전이며 보상금 같은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얼른 전답을 팔고 도시로 떠났습니다. 몇몇은 조상 대대로 농사지은 땅을 버릴 수 없다며 맞섰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을 주위의 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몰려왔습니다. 누가 언제 왜 시작한지도 모르는 공사가 진행되었고 며칠까지 떠나라는 공문이 집집마다 대문에 붙었습니다. 주민들은 멀거니 포클레인 위에 내려앉은 산새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나마 호숫가 마을은 변화의 물결이 발치에까지만 와서 살랑거리는 정도였습니다. 주민들은 옆 마을의 눈부신 변화를 부러워하는 사람과 논밭과 숲이 사라지는 모습에 고개를 젓는 사람 둘로 나뉘었죠. 그렇다고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거나 반목하지는 않았고 그저 강 건너 불구경처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새로운 방문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스스로를 환경단체 회원이라고 소개한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편이라며 공사를 막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주위 숲과 호수, 습지는 천혜의 경관이며 희귀 동식물의 보고라며 무차별적인 환경 파괴를 좌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연한 투쟁으로 공사 저지를 천명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치고 피켓을 들고 마을 주위를 돌면서 연일 시위를 했습니다. 주민들 중에서도 그들을 위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환경단체의 청년 한 사람이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죽은 나무와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허물없는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과 친해진 그는 이른바 산신령에 대한 옛날얘기를 전해 듣고 산을 올랐습니다. 직접 그 모습을 본 청년은 감격하여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시커멓게 탄 나무 아래 가부좌를 튼 노인의 모습은 물론이고 자신이 든 피켓을 옆에 놓거나 자기가 둘렀던 어깨띠를 노인에게 걸치게 해놓고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시위에 대한 소식이 점차 외부로 퍼지면서 노인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시위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외국의 환경단체 회원이 사진에 흥미를 느껴 청년에게서 필름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는 필름을 다시 외신 특파원에게 넘겼고, 노인을 찍은 사진이 이름난 외국 신문에 크게 실리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 같기도 하고 석상 같기도 한 신비로운 노인은 이제 자연의 수호자요 환경보호의 상징이 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환경운동가를 필두로 학자, 종교인, 연예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노인을 보러 마을을 찾았습니다. 물론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고요. 이제 누구나 나무 밑의 노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찾아온 이들은 노인에게 절을 하거나 옆에서 함께 정좌를 하며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이제 정부에서도 무작정 공사를 강행할 수 없게 되고 말았죠.


결국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찾아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노인을 회유하거나 협박하거나 심지어 흥정하려고까지 했으나 노인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나 경찰을 보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하려는 시도는 세계적인 명망가들이 노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현 상황에서 비추어볼 때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강행했다간 전세계의 비난을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겠죠.
노인에 대한 세계적 인기와 유명인들의 공사 반대 선언이 대중의 지지를 이끈 덕분에 결과적으로 고속도로의 노선을 수정되어 마을과 논밭은 무사히 남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나무 밑의 노인을 칭송했습니다. 이제 마을의 저주받은 전설은 사라지고 호숫가 사람들이 그랬듯 영험한 산신령님이라며 노인을 우러르며 사랑했습니다. 부동산업자와 논밭을 비싸게 처분할 기회를 잃은 주민과 같은 몇몇 사람만이 노인을 증오했을 뿐이죠.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제는 그 일마저 잊히고 더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인구감소를 거듭하며 한사코 이주를 거부했던 소수의 노령자만이 남았던 두 마을은, 마지막 남은 이들까지 노환과 병마로 인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정부에 의해 반강제로 외지의 양로원으로 이송된 후 행정구역에서 소거되어 빈껍데기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던 겁니다.


여행자들은 가끔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특히 호수는 아름답기로 유명했고 주위에는 희귀식물들이 가득 했거든요. 얼마 전에도 새로운 꽃이며 나비를 발견했다고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유명 가수의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으니까 아마 이름을 알려주면 들어본 기억이 날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무와 노인이 있었다는 바위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호수 옆에 있는 여관 주인은 외지 사람이라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모르고 있더라고요. 다만 거기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자기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며 한 가지 알려주신 게 있습니다.


전쟁 때 이 부근에서 교전이 있었는데 그때 폭탄 피해를 입은 건지 전쟁이 끝난 후엔 기암절벽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더라는 겁니다.


또 하나, 강 동쪽 산맥 너머에 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자칭 재야 사학자라는 노인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수집한 민담에 의하면 동화강 양옆에 호랑이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쪽에서 왜구가 쳐들어오자 남편이 나라를 구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남편 호랑이는 강을 헤엄쳐 내려가며 다시 이 강을 타고 돌아올 거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남편은 왜구를 해치우는 공을 세웠으나 심하게 다쳐 어느 남해안 바닷가에서 죽고 말았죠. 아내 호랑이는 강을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해안에는 지금도 호랑이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나요. 그리고 돌이 된 아내가 바로 노인이 있었던, 강을 향해 머리를 내민 바위라고 합니다. 덤으로 호랑이 꼬리가 둥글게 말리면서 지금의 호수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나무 밑의 노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얘기 같아서 실망을 했는데 그 분이 말을 잇기를 전승되면서 점점 살이 덧붙여져 원래 불행한 결말이 행복하게 고쳐졌는데 학을 타고 온 신선이 돌이 된 아내의 육체에서 혼령을 거두어 남편에게로 보내주었고, 그렇게 부부는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겁니다.


흥미롭게도 강 동쪽, 산맥 너머에서는 호랑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신선은 나중에 생겨난 덤에 불과한데 직접 바위를 볼 수 있는 강 서쪽에서는 신선, 즉 노인에 대한 전설만 있고 바위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전설이 없더라는 거죠.


이후로 전 문제의 사진을 찾아냈답니다. 바로 그 노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유일한 증거품 말이죠. 우리나라 신문에선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국회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된 옛날 신문을 뒤졌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 수가 없으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 같았죠.


결국 연결 고리는 환경단체일 거란 생각에 그쪽을 찾아가 묻고 다녔는데 마침 돌아가신 부모님의 대를 이어 같은 단체에서 일하던 분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집까지 찾아가 낡고 두꺼운 앨범에 스크랩을 해둔 외국 신문에서 문제의 사진을 볼 수 있었죠. 어렵게 허락을 받아서 사진을 찍고 복사도 했지요.


그런데 결과를 말하자면 실망스러웠어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고 흐릿한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의 내용을 읽어도 노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거든요. 절벽 위에 있는 기묘하게 뒤틀린 나무가 환경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자연보호의 상징물이 된 나무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정부에 탄원서를 올리고 시위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런 내용이었어요. 거의 알아보기 힘든 사진에 담긴 풍경은 피켓을 나무에 기대놓은 젊은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이어서 전쟁에 대해 찾아봤어요. 호숫가 근처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내용은 사실인 것 같아요. 강의 동쪽은 천혜의 장벽이니 요새로 이용하기 적합한 지형이었겠죠. 마을의 인구가 감소한 큰 원인에는 전쟁도 한몫 했던 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호숫가 마을은 병사들이 점령하여 아지트로 삼기도 했었대요. 그러니 폭격으로 바위 절벽이 무너져 사라졌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겠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해지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고속도로 공사는 전쟁이 끝난 한참 후의 일이니까 바위산이 무너진 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시위가 뒤따랐으며 사진을 통해 노인이 알려지며 공사가 변경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단 말이죠.


앞뒤가 맞지를 않네요.


바위와 함께 나무도 노인도 사라졌을 텐데 그럼 그 청년이 발견해서 사진까지 찍은 대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니면 전쟁의 영향을 입지 않고 무사히 남아 있었다고 치더라도, 신문에도 사진에도 나무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는데 그럼 노인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전쟁을 틈 타 피난이라도 간 걸까요?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롭고도 믿지 못할 사연을 들려드리죠. 수소문 끝에 노인병원에서 찾아낸 호숫가 마을 주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제로 병원으로 이송되고 마을이 사라질 때 마지막으로 떠났던 분이죠.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치매 기운이 있어 어제 일도 잘 기억을 못하시는데, 간병하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가끔 어린 시절 일을 신기하게도 자세하게 떠올린다는 겁니다. 가족들 이름이나 어제 본 TV방송 내용도 잊어버리면서 말이죠.


몸이 불편하여 잠든 시간이 더 길었기에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허탕을 친 끝에 간신히 어릴 적 기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직접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제가 들려드린 말썽꾸러기 이야기는 바로 이 분에게서 들은 할아버지의 경험담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노인이 떠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어린 손자인 자신에게 털어놓았듯이 자기도 평생 비밀을 이제야 밝히는 거라고 약간의 비장함마저 섞인 목소리로 제게 들려주었던 겁니다.


아주 어릴 때 일인데 여름날 밤 잠이 안 와서 강으로 수영을 하러 갔답니다. 밤에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당부가 당연히 있었겠지만 할아버지의 피는 못 속이는지 기어코 갔던 거죠. 전등도 랜턴도 없던 시절이라 놋쇠 촛대를 들고 강가로 가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데 밤하늘이 유독 밝아지더라는 겁니다. 하늘을 보니 글쎄, 학 같기도 하고 구름 조각 같기도 한 물체가 절벽 위로 서서히 다가가는 게 아니겠어요? 밝기는 얼마나 밝은지 하늘의 별을 다 합친 것보다도 선명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날개를 펼친 빛덩이가 나무에 걸칠 듯 가까이 내려가자 지금껏 오랜 세월 꼼짝도 안 하던 노인이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습니다. 어두운 밤이고 워낙 먼 거리라서 쌀알처럼 작게 보이는 인물의 세세한 움직임을 알아보기란 힘들었겠지만 엄청 밝은 빛덩이가 가까이에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죠. 노인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장 일어나 서서히 내려오는 빛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치 하나로 합쳐지듯이, 빛 속으로 녹아들듯이 노인의 모습은 사라졌고 천천히 떠오르던 빛덩이는 눈을 깜빡하고 나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숨을 멈춘 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귀에는 산새와 벌레와 강물이 쏟아내는 시끄러운 산속의 소음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앞에 있는 세상은 빛덩이와 노인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목격자인 그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부가 그 순간 정적에 사로잡혔던 거죠.


노인의 고백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후로 나무 밑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사라졌고 지금은 아무도 모를 텐데 이렇게 기억하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며칠 후에 더 들을 얘기가 없을까 싶어 다시 찾아갔을 때는 빈 침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그 사이에 이미 돌아가셨고 유가족도 유품도 없이 무연고 시신이 되어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채 사라졌던 것이죠. 전 그저 빈 침대에 절을 하고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나무 밑의 노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이야기가 진짜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요.


누가 진실을 알겠어요?


지금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절벽이며 나무며 노인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릅니다. 그들이 찾아오는 건 그저 야트막한 언덕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와 강가에 펼쳐진 습지입니다. 이 호수가 예전 마을 옆의 있었던 호수가 맞는지도 알 수가 없고, 호수 너머 낮은 바위 언덕이 전쟁 때 무너진 절벽인지 아니면 다른 장소인지 그도 아니면 바위 자체가 처음부터 실재하지 않는 민담 속 가상의 존재인지 밝혀낼 수 없게 되었죠.


그래도 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관광오신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언젠가 만날지도 몰라요. 호숫가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후손, 논밭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후손, 강으로 뛰어내린 도사를 아는 사람, 마을에서 머물렀던 나체족의 후예, 시위를 벌였던 환경단체의 일원, 전쟁 때 이 부근에서 싸웠던 참전용사, 밤하늘을 가로지른 발광체를 목격한 사람…… 이 중의 한 명쯤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적어도 이렇게 흥미를 보여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여유가 되시면 마실 거라도 사주세요. 술이면 더욱 좋지요. 멋진 경치를 보는 게 관광의 으뜸가는 즐거움인 거야 분명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 하나 들은 것도 나쁠 건 없잖아요.


언제 시간이 나면 강가에도 가보세요. 다들 강가 쪽에는 볼 것도 없다고 하는 바람에 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는 캠핑족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볼 만한 가치는 있어요. 예전에 신선봉이 있었다던 그곳엔 얕은 언덕이 있는데 주위의 바위투성이 속에서도 유독 거기만은 초목이 우거졌거든요.


지금은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 피어 있을 겁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엔 잎사귀가 무성하며 가을에는 낙엽으로 뒤덮이고 겨울에는 눈에 감싸이죠. 전설은 사라지고 민담은 잊혔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옛날얘기를 주고받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죠.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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