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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rita 금시조

2014.05.31 23:0605.31

[금시조]





  국수란 무엇인가, 한 그릇의 햇님이고 황금 바다고 비단 춤, 흰 춤사위, 너울너울하고 부드러운 용맥 같은 것 아닐는가.


  골치 아프게 날뛰는 용을 하나도 아니고 무리 지어 잡으려며는, 재주도 보통 재주로서는 역부족일 일이다.


  그리하여 국수 그릇 앞두고 앉은 이 오래 생각하였고, 이윽고 무릎 탁 치고는 어깨 너머의 달 집었다. 묘안이야 한 순간이면 그만이나 요리야 그래서는 안 될 일. 밝은 구슬 큰 그릇 속으로 흘러 들었다. 무지개 한 줄기 뿌옇게 어른거리다 문득 강산 이어지고 마을 솟고 새 지저귀고 꽃 피었다. 더운 국사발 안이니 마땅히 여름이렷다, 맑은 국물이니 의당 청천(淸天)이렷다, 불씨 이끌어줄 추라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빛 물결 가라앉아 요적하다. 푸르고 어진 땅 이곳 저곳 여러 생명 움틀어 흰 김 뿜어낸다. 햇살 한 점 내려앉는 곳 바라보니 이리 탁월할 수가, 손톱만한 국수 천막이 아닌가.


  그리하여 결정된 일이다.


  천부겸은 오 대째 내려오는 국수 가게 주인이다. 가게 이름은 천가네였고, 천가네는 홍천장터의 한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숨듯이 틀어박혀 장사를 했다.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탁월하고 시원히 훌훌한 그 맛을 모르는 이 없으니, 항상 점심 때가 지나기도 전에 깨끗이 다 팔리기 마련이었다.


  혹자는 “눈처럼 희고 비단실처럼 얇은 국수 가닥에, 맑고 그윽한 풍취의 육수가 그야말로 일품이라,” 하였고, 혹자는 “여름에 마시면 시원하고 겨울에 마시면 따뜻해지니 내 평생 이처럼 신묘한 국수는 맛 본 적이 없다,” 고도 했다. 무슨 국수 한 그릇이 맛이 있으면 얼마나 맛이 있을 수 있느냐며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한 번 먹고 나면 한결같이 찬탄키 마련이었다.


  부겸은 백석산 너머 들서리마을에 넉넉한 살림을 살았다. 전답 일곱 마지기는 세를 주고, 어엿한 기와집에서 성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각시와 살았다. 새색시는 아직도 수줍음 타는지라 그와 눈만 마주쳐도 당황해 했는데, 그는 그 귀밑머리며 흰 목덜미만 보면 절로 헤벌쭉 웃음이 났다.


  그는 이번 미월(未月) 보름장에 가서는 장사 파한 후 아내에게 줄 비단을 몇 필 살 작정이었다, 아내가 놀랄 것을 생각하면 또 무척이나 흐뭇하였다. 


  백석산(白石山)으로 말하자면 차마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그만큼 낮고 작은 산이었다. 짐 나귀 하나 끌고 가면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아 넘는다. 장날 새벽에 부겸은 집을 나섰다.


  노을에 점점 구름 붉은 비단에 매화 병 엎어진 듯하니 가히 장관이라 할 만했다.


  비록 여름이나 새벽 바람 찼다. 이슬과 얼그러진 흙내 싱그럽고 백석산 저 위로 보이는 하늘 끄트머리 보랏빛인데, 연기처럼 번져드는 노을빛에 속절없이 밀려가는 형상이었다. 완만한 산길 점차 기울었다. 수풀과 나뭇가지가 부겸의 후방을 덮어 갔다. 이윽고 그는 푸른 휘장 한가운데로 훅 넘어졌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부겸은 처음에는 나뭇잎 같은 것이 얼굴을 덮었는가 싶었다. 다시 보니 매끄러운 푸른 비단이 맞았다. 멍하니 돌아보니 나귀며 산길도 간데 없고 그저 혼자였다. 비단 휘장 펄럭이는 정자 한가운데였다. 사방으로 거울 같이 맑은 호수였고, 아니 한없는 바다였다. 어디를 보아도 육지는 없었다. 그저 바다 위 푸른 휘장 감돌린 정자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는 한동안 아연히 앉아만 있었다.


  “잠시면 그만이니 염려 마시게.”


  기왕 아연한 것, 웬 새 한 마리가 인간의 말을 조잘대면 또 어떤가. 부겸은 그저 눈만 끔벅였다. 이것은 필시 꿈이리라. 꿈이 아닐 수 없잖은가?


  새는 외양은 딱 딱새처럼 생겼으되 모조리 흰 빛이었다. 까만 눈과 부리, 발만 빼놓고는 다 희었다. 창백한 빛깔은 아니고 불꽃의 끝처럼 열렬(烈烈)한 백색이다. 부겸이 아연하든 어쨌든, 새는 다시 말했다.


  “이제 큰 일을 해야 하는데,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여 불렀으이. 아주 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그려. 사례는 제대로 하겠네.”


  허공에서 무언가 뚝 떨어져 부겸의 머리를 쳤다. 그는 여전히 멍하니 자신의 어깨를 타고 굴러 내려가는 붉은 구슬 꿰미를 보았다. 광채 영롱한 것이 그냥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자네 오늘 국물 통에 넣어두게.”
  “이게, 이게 무엇인지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부겸은 저도 모르게 흰 새에게 조심스레 존대를 하였다.


  “화주(火珠)라는 것인데 아주 진귀한 것이지. 폐하께서 친히 주셨다네. 아니 그러게 처음부터 그냥 제대로 처리했으면 될 것을……. 아 그것도 쉽게 구한 게 아니여! 말도 마…….”


  새는 새로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주 착잡히 혀 차는 소리까지 내더니 파르륵 날아와 부겸의 머리에 앉았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딱 아홉 명의 손님만이 들 것이야. 알겠는가? 잘 듣게.”


  이윽고 새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설명을 다 마친 후에는 그러나, 여전히 멍한 부겸을 보고는 자뭇 답답한지 꽁지로 딱딱 그의 정수리를 때려 댔다. “거 참 그! 아 됐어, 됐다고!” 무 하나 뚝 떨어져 부겸의 배를 쳤다. 그는 심한 통증에 소리치며 일어났다. 아주 숨이 다 턱 막힌다.


  “여기가…….”


  역시 난데없이 백석산 길 한 귀퉁이였다. 수풀 우거졌는데 앉은 자리에는 돗자리 깔렸다. 짐 바구니에서 떨어져 굴러가는 무 보였다. 나무 뿌리 베개 삼아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다 무언가 뚝 떨어지기에 바라보았다. 방금 꿈이라 생각했던 흰 새 꿈에서 받았던 화주 꿰미와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아주 말끄러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이 뻔뻔하게 영롱한 광채를 발할 뿐이었다.


  부겸이 “이게 어찌 된…….” 이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윗쪽에서 흰 두건 하나 뚝 떨어졌다. 그는 이제 좀, 그만 좀 물건이 허공에서 뚝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바람에는 아랑곳없이 흰 새 파르르 날아와 두건 곁에 앉았다. 이윽고 말했다.


  “자, 그럼 이제 그만 가세나.”
  “왜, 왜요?”
  “뭐라?”
  “왜 제가 가야 합니까? 아니지, 도대체 당신은 뭡니까? 아니, 새긴 한데, 왜 나한테 와서 시빕니까? 전 오늘 장사하러 가는 길이니 내버려 두시고 갈 길 가십시오!”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겐가? 하긴 계속 맹하니 있어도 안 될 일이지.”


  새는 부겸의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다.


  “나는 일테면 백옥선생이라 하네. 자, 이제 두건을 쓰게.”
  “아니, 도대체 그런데 왜…….” 그러면서도 부겸은 하란 대로 두건을 썼다.
  “천자께 받은 중차대한 임무가 있으니, 나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가는 게야. 나라고 뭐 좋아서 이런 수고를 자처하는 줄 아나? 왼쪽 소매를 걷어 보게.”


  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지 몰랐으나 어쨌건 부겸은 왼팔 소매를 걷었다. 깨알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손님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국물 푸면서 꼭 읊어야 하느니, 까먹거나 하면 아주 낭패이리라. 일러준 대로 틀림 없이 잘 해야 하네, 알겠는가?”


  “예……아니, 아니 그러니까 왜 저한테 이러냐……이러시느냐구요!”
  “지금 어서 해결하지 않으면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남해안 일대가 몽땅 괴롭게 될 텐데, 그래도 상관 없나? 그때 가서 산 무너지고 논밭 갈라지고 바닷물이 자네 기와집까지 덮어 쓸어가도 상관 없는가 이 말이야.”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게…….”
  “도술 구경이나 한다 치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하게. 복잡하게 골치 아플 것 뭐 있는가? 그닥 위험할 것도 없으니 염려치 말고.”
  “아니 무엇보다 도대체 제가 뭘 하는 겁니까? 왜 제가 이런 걸 해야 합니까? 저 같은 놈 말고, 저보다 훨씬 명철하고 똑똑한 사람 많지 않습니까?”
  “그야,” 새 부리가 그의 머리를 톡톡 가볍게 쪼았다. “자네 국수 맛이 천하일품이라지 않는가.”


  부겸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도사 새에게 칭찬 받은 국수 맛, 작금의 이 상황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착잡함, 제대로 실수하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함, 자신이 꿈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엄청난, 장대한 사건의 중심으로 내몰렸다는,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으나, 버거운 두려움까지 죄다 그를 괴롭혔다. 당장이라도 나귀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내달리고 싶었으나, 이미 경험한 바 이 도사라는 새가 자신을 질질 끌고 오는 일이야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집까지 바닷물이 쓸어간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무얼?”
  “남해안 일대가 다 괴로워진다고…….”
  “얘기하자면 길다네, 길어. 먹칠하는 아홉 용 때문이니 더는 묻지 말게나.”
  “그러면, 도사시라면서 왜 새의 모습인지요?”
  “용은 새로 잡는 법이니 그렇지.”


  더 물어봐야 알 수 없는 소리만 나올 것 같다. 그리하여 부겸은 묵묵히 나귀를 이끌고 백석산을 넘었다. 이쯤 되니 그저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장터에 이르니 오늘 따라 사람도 많았다. 그는 고삐터에 나귀 매어 놓고, 혹간 낯익은 얼굴이 보일 때마다 짧게 인사하며 가게 자리로 향했다. 수레 세우고 짐 풀다가 옆집 돗자리 가게 어르신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오늘도 일찍 오셨구먼. 그런데 웬 두건인가?”
  “하하하, 머리에 수건 두르느니 두건이 낫지 않습니까?”
  “허기야 맨날 수건 두르고 다니긴 했지. 출출하지는 않은가? 일하다 배고프면 들리게나. 간식 거리가 좀 있거든.”


  성문 어르신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부겸은 다시 꾸벅 인사하고 짐으로 돌아왔다.


  돗자리 가게 주인인 한성문은 연세 일흔을 넘겼어도 정정하였다. 언제 마주쳐도 항상 웃는 얼굴이라 장터 사람들이 다 좋아했다. 그는 장사는 아들 내외에게 거의 맡겨 두고 하루 종일 밖에서 햇빛 쪼이며 돗자리를 짰다. 돗자리 말고도 짚신이며 바구니 등도 만들었는데, 빈틈 없고 매끄러운 솜씨였다.


  부겸은 언제나처럼 육수를 내고 면을 두드려 풀어내며 장사 준비에 바빴다. 오른쪽 소매에 넣어 둔 화주 꿰미가 계속 신경 쓰였으나 별 도리 없으므로 그저 일에 열중하였다.


  점심 때 한참 이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할 텐데, 어째서 오늘은 손님이 아홉 명만 온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하니, 물론 인간이 아니라 딱새지만, 그냥 하라는 대로 할 작정이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자신이 겪은 일이 있고, 딱 믿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으니 뭘 더 생각하기도 힘들어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는 육수에 화주 꿰미 떨군 후 혹 무슨 일이라도 날까 싶어 기다렸으나 아무 일 없었다.


  국수 가게는 말이 가게이고 작은 천막이라 하는 편이 옳았다. 부겸이 한 편에 서면 맞은편 손님 자리에는 많아야 서넛이 간신히 앉을까 했다. 그런 연유로 보통은 운 좋은 첫 손님 몇몇이 앉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국수 그릇을 받아가서 바깥 다른 곳에서 알아서 먹었다. 단골 대부분은 아예 자기 그릇을 가지고 왔다. 옆 돗자리 가게에서 돗자리를 사서 바닥에 펼쳐 놓고 먹는 경우도 많아서, 성문 어르신은 항상 부겸만 보면 무엇이라도 주려 했다.


  개점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과연 기이한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가게 사방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릴 텐데 오늘은 그저 고요했다. 이상해서 천막을 걷고 밖을 내다보아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가게 주인들도 보이지 않고, 옆집 어르신도 안 보이고, 객이라고는 아무리 목을 빼고 찾아도 없다.  


  막상 딱새가 했던 말처럼 한적하자 슬슬 긴장이 되었다. 아직도 지금 두건 속 딱새가 믿겨질까 말까 한데, 정말 이 새가 도사이고 무언가 용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대 사건이 아닌가. 재주라고는 국수 만드는 것밖에 없는 자신이 이런 일에 엮이다니, 말이 되는가. 그는 괜히 국물을 저어댔다. 멸치며 대파 조각이 휘휘 떠오르다 가라앉았다.


  “여기 지금 장사 하는지……?”
  “앗, 이예, 예. 물론입죠.”


  두건 속 딱새가 발로 정수리를 딱딱 쳤다. 부겸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힘들게나마 웃음 띄웠다.


  “국수나 한 그릇 주시오.”
  “예, 금방 드리지요.”


  오늘 첫 손님은 언뜻 보기에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 매끈한 비단옷에 홍골(紅骨) 꿰미 드리운 입성에, 흰 살빛이며 곱상한 얼굴이 어디 귀공자라면 모를까, 절대 용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 머리 위에서 딱새가 소곤거렸다. “뭘 하는 게냐, 빨리 읊어라! 왼팔! 빨리!”


  부겸은 그제야 딱새가 신신당부 일렀던 말이 기억났다. 국자를 느리게 국물 통으로 가져가며 은근슬쩍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니 한 문구 팔뚝에 절로 나타난다. “해 지니 달 붉네……?” 입 속으로 아주 조용히 수얼댄 고로 그 자신의 귀에도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딱새의 반응을 기다렸으나 고요했다. 그렇다는 것은 괜찮다는 뜻인 듯하다. 그는 국물 푸고 돌아서서 국사발을 손님 쪽으로 밀었다.


  “여기 나왔습니다.”
  “고맙소.”


  청년은 여느 사람이나 다름없이 국수를 가져가 먹었다. 부겸은 혹시 다른 손님은 안 오나 하고 기다렸으나 첫 손이 천막을 떠날 때까지 별무소식이었다. 둘째 손님 역시 훤칠한 미남자로, 첫 손님이 떠난 지 한참 만에 청라관에 운청빛 소맷자락 휘날리며 들어섰다. 이번에는 딱새가 재촉하기 전에 부겸이 먼저 왼팔의 문구를 읽었다. “안개 너머 청새 둥지로다.”


  후에 셋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벼랑 끝 운하(雲霞)구나.”
  넷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새벽녘 산울음 늘어지네.”
  다섯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굽어치는 바람 사나워라.”
  여섯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속절없네, 바닷눈(海雪)이라니.”
  일곱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한천(寒天)에 얼음 자수 실로 가없다.”
  여덟째 손님이 왔을 때에는, “빙설로 빚은 부채인가.”


  마침내 아홉째 손님이 왔을 때 부겸은 적잖이 놀랐다. 계속 청년만 오고 가서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검은 너울을 쓴 여인이었다. 황금빛 꽃 수놓은 치맛자락에 걸음걸음 침미(沈迷)한 향내 올랐다. 천 걷어 올리니 어디 구중궁궐이나 연꽃 사이, 구름 전각에나 있어야 할 법한 심요(甚搖)로운 미인이라 부겸은 어찌 몸 둘 바를 몰랐다. 딱새가 정수리를 한껏 두드려 대고서야 간신히 때맞춰 왼팔의 문구를 볼 수 있었다. “혹한 칼서리 오른 꽃이라.”


  마지막 손님 떠난 후 부겸은 비실대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수레 한 편에 등 기댄 채 그저 한숨만 푹푹 쉬었다. 한숨만 푹푹 나왔다. 머리가 좀 뜨거웠지만 불기운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한 번도 장작을 갈지 않았다. 아침에 한 번 넣은 것이 다인데, 이상한 일이다. 그는 일어나려 했다. 이제 다 끝난 모양이니 화덕도 점검하고 치울 건 치우고 해야 했다. 왼팔 소매를 걷고 보자 살갗은 그저 맨들하니 어떤 먹 자국도 없다. 부겸은 옆으로 돌아앉아 천을 조금 밀고 바깥 보았다.


  벌써 저녁인지 서녘 하늘 붉었다. 이리 붉고 저리 붉고 끈 같은 구름 줄기 줄기에 혹은 둥글게 부푼 듯, 혹은 겹겹이 파도 치는 듯 실로 그린 듯한 풍경이었다. 어떤 것은 새파랗게 질려 창백한 빛깔이고, 어떤 것은 목숨 걸고 몸부림치듯 절절한 선에 휩싸였다. 핏줄 서듯 파르르 떨며 부푸는 저것이 구름 폭포인가 물결인가, 회오리 바람인가, 낙화유수 점점이 흩날려 강물 따라 휩쓸려 가는 꽃잎인가, 천둥 굉음이 천지 팔방에 몰아쳤다. 넋 놓고 하늘 보던 부겸은 소리 지르며 땅으로 굴렀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죽네!”
  “사람 살려!”


  부겸은 덜덜 떨리는 손을 약간 들어올려 보았다. 방금 전만 해도 기척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아주 떼거지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 어디서 온 겐가? 다시 굉음 울렸다. 귀가 다 아팠다. 부겸은 허둥지둥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밖에서 무엇 엎어지는 소리, 말발굽 소리, 비명이며 울음 소리가 아주 난장으로 일어난다. 공터 고삐막에 매어 둔 나귀는 잘 있을지, 이게 무슨 일인지, 그저 예사롭게 재잘대던 딱새 말을 믿었던 자신이 잘못이다. 그놈의 딱새……. 딱새? 두건 훅 벗으니 머리칼 눈 찌른다. 머리며 어깨, 뒤, 옆을 죄 돌아봐도 딱새는커녕 깃털 한 쪽 찾을 수 없다. “대체 어디 간 건가?”


  천지가 통째로 박살나는 듯 세상이 다 몸을 떨었다. 부겸은 머리를 바닥에 콱 박았다. 사람 살려! 국자며 젓가락이 우수수 그의 등으로 떨어졌다. “아이고 천지신명이시여…….”


  곧이어 광창(廣昌)한 웃음 소리가 온 사방을 꽉 메웠다. 소리 날 때마다 공기가 콱, 콱 막혔다. 부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등의 젓가락을 밀어 치우다 문득 왼팔이 뜨거웠다. 소매 걷힌 부분으로 글줄 끄트머리 보인다. 그는 얼른 소매 걷고 읽었다. 눈물 때문에 잘 안 보였지만 애써 오기를 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뭐든 다 읽어주마.


  비늘 녹아 흐무러지고 창자꺼정 말랑쿠나.


  사방천지 청천벽력 날뛰는 와중에 문구를 잘 따라 읽기는 힘들었다. 부겸은 때로 악 쓰며, 때로 혀 깨물며 어렵게 어렵게 글을 따라 읽었다.


  뱃속 불 지피니 절로 춤사위 천지군락이라.


  급작스레 바람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허공 뻥 뚫렸다. 부겸은 멍한 얼굴로 통째로 날아가는 국수 천막을 응시했다. 두 개 화덕은 큰 발톱 같은 것이 긁은 양 뜯어져 숯검댕 점점이 쓸려간다. 물통 엎어지는 소리에 그는 화들짝 놀라 정신 차렸다. 거대한 바람이 덩어리로 뭉쳐 갔다. 포악한 비명 소리 메아리 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도 않았다. 다들 어디로 날려갔거나 도망친 모양이다. 멀리서 드문드문 외치는 소리 솟운다.


  ‘나는 왜 도망칠 생각을 못 했나.’


  부겸은 지금이라도 어디로든 뛸까 생각했으나 정작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날 수도 없었다.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죽는 건가…….’


  이렇게 되자 그는 지쳐서 더는 굳이 겁도 안 났다. 그저 허탈하고 서글펐다.


  세상은 온통 시퍼렇게 뒤집어져서 파도처럼 출렁였다. 바람 같은 것들, 물길 같은 것들이 날뛸 때마다 하늘에 먹빛 길 남았다. 큰 소리 일 때마다 귀 아팠다.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그 소리는 자꾸 듣다 보니 왠지 고통스런 비명 소리처럼도 들렸다. 부겸은 도사가 아니니 그런 것을 알 길은 없었으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지금은 세상이 한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냥 부서진 화덕 곁에 엎어진 채 다 포기한 지금, 드넓은 하늘이며 끝없는 땅, 일렁이는 바다와 구름, 갈기갈기 찢기는 바람, 휘날리는 먼지며 나란히 뜯겨 날아가는 휘장이며 지붕, 돗자리, 비단, 노리개며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모두 국수 한 사발에 쓸어 넣고 휘휘 흔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온 지경이 밑바닥에서부터 후덥지근 달아오른다. 아홉 먹빛 줄기 하늘 높이 더 높이, 안간힘 쓰며 날아오른다.


  흉간(凶姦)한 물것들이 정녕 자하紫霞의 경계까지 넘보는가.


  부겸은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아프다!
  아파!
  타는 것 같다!


  아홉 용들은 저마다 몸부림치며 악 썼다. 부겸은 오늘 따라 노을이 유난히 환하다 싶었다. 저무는 노을이 아니라 타오르는 불덩이 같다. 붉거나 황금빛으로 쏘아낸 천만 개의 화살처럼 저 멀리서부터, 처음에는 지평선부터, 서서히 하늘로 번져 오르는 광경이란 뭐라 형용할 수도 없었다.


  “새……. 새?”


  부겸은 저도 몰래 머리로 손을 가져가 얹었다. 


  천천만만의 태양을 쏟아 부어 빚어낸 새 한 마리, 양 날개 펼치니 지평선 협소하다. 붉고도 또한 밝으니 차라리 눈부시게 희다. 날뛰던 모든 소음이 한 순간 쓸려 나갔다. 하늘에 형형(炯炯) 흰 비단 깔린다. 땅이 가벼워진다. 천지만물이 덩달아 날아오르려 한다. 희고 붉은 금빛 기운이 산봉우리에, 논밭에, 언덕에, 수풀과 건물과 천막과 부겸의 뺨에 물감처럼 선명히 발렸다. 뱃속에 불씨 품어 괴로이 날뛰던 용들은 더는 어쩌지 못하고 지전(紙錢)처럼 공중 한 편으로 천천히 밀려갔다.


  광대하고 광대하여 사람의 눈으로 차마 다 볼 수도 없는 빛의 운행을, 부겸은 단지 어디 멀리서 세상 기우뚱하는 감각에 기대어 짐작할 뿐이었다. 수많은 움직임들이 숨 가다듬는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쏜살같이, 흔들리거나 몰아치거나 찬란하게 흐른다.


  춤사위 천지군락이라, 타오르는 황금 하늘 메운다. 일월성신의 궤도 희게 그슬리고 꿈처럼 번쩍이는 새 소리, 때때로 천지에 꽂힌다. 단지 다 타올라 이스러지는 비명의 흔적만이 혁작(赫灼)스레 부서져 흩어졌다.


  둥근 세상 더욱 둥글어져서 흰 구슬이나 다름 없다. 높은 곳에 큰 손 있어 비단 풀어내듯 무지개 두어 필 펄럭이며 천공을 가로 지난다.


  세상은 이미 한 폭 자수나 새깃 비끼어 지나는 바람이거나 불씨 한 점이었다. 그마저 흔들릴 뿐이다. 끓어오르는 물 속 구슬이거나 허공에 그림자 없이 새긴 한 글자이거나, 흘러내리는 유성이거나 천리 만리 심해 밑바닥 뒤덮은 적막이었다. 마침내 끝까지 타올라 맑아진, 공허한 손끝 실체 없이 쥐인 붓끝에서 곱게 피어 오르는 불길이었다.


  빛 맺혀 이슬이다.
  맑이 공한 중 동풍(東風) 고인다.
  푸른 잎 하나 노을 긋는다.
  봄 오니 꽃 핀다.
  굽이 강산 결결이 메아리 따른다.
  별 나고 일월 구르니 운우(雲雨) 돌아간다.
  영롱한 숨것들 강산마다 깨어난다.
  천도향(天桃香) 빗길 따라 내린다.
  폭풍 지나니 연꽃 열린다.


  그리고 마침내 고요하였다.


*


  부겸은 화덕 곁에서 깨어났다. 젓가락과 국사발, 장작 몇 개, 텅 빈 화덕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살피니 초토화된 장터가 그저 휑뎅그레 하였다.


  하늘 맑고 구름 한 점 없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평온한 노을 지평선 덮은 채 그저 말끄러미 있다.


  한숨만 나온다.


  “가게가 날아갔으니……어쩐다…….”


  오 대째 내려온 가게가 통째로 날아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도 하고, 동시에 너무 놀랍지 않기도 했다. 어차피 네 바퀴에 판자 몇 개, 철판 몇 개 이으면 금방인 작은 수레에 천막 얹어둔 것이니 무엇 큰 손실이랄 것은 없다.


  “꿈이었나……?”


  물론 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지붕 날아간 국밥집 곁으로 안장 질질 끌며 흑마 한 마리 지나간다. 멀리 초췌한 사람 몇몇도 보였다. 건질 수 있는 물건이나마 건지려고 폐허에 쪼그려 앉아 무얼 열심히 뒤진다.


  부겸은 천천히 일어서 보았다.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었다. 그는 곁을 나뒹구는 국사발 몇 개를 발로 뒤적이다가 개중 멀쩡한 것 하나만 집어 들었다. 흙을 턴 후 소맷자락 속에 넣고, 양손 비벼 열을 내어 뺨에 가져다 대었다. 심호흡 여러 차례 한 후 눈을 몇 번 떴다 감았다. 혹시 누가 있나 싶어서 돗자리 가게를 기웃거렸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피신한 모양이었다. 그는 이후 고삐터를 향해 걸었다.


  장터 입구 공터에 매어 둔 나귀 두 마리는 역시 다행히도 무사했다. 이곳 짐승들도 제각기 놀랐던 듯, 사뭇 부산스러웠다. 개중 어떤 곳은 아예 말인지 소인지 도망치다가 말뚝까지 뽑아간 모양이었다. 진땅에 깊은 자국 길게 굽이굽이 났다. 부겸은 조심스레 나귀를 풀어 끌어냈다. 나도 데려가라는 듯 다른 짐승들이 길게 우는 소리를 냈다.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하면 누가 믿을까?’


  장터에 사람 많았으니 순식간에 알려지지 않을까. 들서리마을에서도 장터 온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내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하면 뭐라 할까. 분명 깜짝 놀라겠지. 부겸은 괜히 웃었다. 웃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 질렀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늘에서 가죽 부대 떨어져 그의 머리를 때린 탓이다. 이윽고 또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총 아홉 부대가 떨어졌다. 하나같이 심히 무거워서 부겸은 나중에는 온몸이 다 얼얼했다.


  비실대며 아무 것이나 붙잡고 열어보니 황금이 편편이 들었다. 놀라서 다른 부대도 열어보니 각각 백옥, 산호, 진주, 금강석, 감람석, 비취옥, 공작석, 밀화가 수북했다.


  “괜히 그만하라고 했나?” 그랬다가, 부겸은 허공을 향해 급히 부언했다. “농담입니다. 농인 거 아시지요?”


  그나저나 나귀 두 마리로는 다 싣고 가기 힘들 듯하다. 그는 일단 되는 만큼 두 나귀에 나누어 부대를 실었다. 그 와중에 소매 속에 넣어 두었던 국사발이 쪼개져서 자꾸 살갗을 긁어대니, 팔 흔들어 박 조각 떨어냈다.  


  세 조각으로 쪼개진 박 국사발은 땅에 닿자마자 무성한 연기를 피워내더니 이윽고 큰 백마 세 마리로 화하였다. 그냥 백마도 아니고, 모두 황금 안장을 얹었다. 이제 부겸과 두 나귀는 굳이 또 놀라지도 않았다.


  부겸은 보석 부대를 적당히 나누어 싣고, 짐 없는 나귀 하나에 올라 탔다. 말을 탈까도 싶었지만 아직 왠지 쑥스러웠다.


  “내가 앞서 갈 테니 너희는 잘 따라오너라.”


  줄줄이 연결한 고삐 끝을 손목에 묶고서 부겸은 천천히 나귀를 몰았다. 이제 노을도 거의 다 졌다. 그래도 밤이 너무 늦기 전에는 집에 당도할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어두워 인적 드물 때 마을에 들어서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일일지 모른다.


  백석산이 낮아서 다행이다. 부겸은 슬슬 휘파람 불었다. 별 일 없이 무사히 귀가하게 되어 다행이다.


  ‘물론 별 일이 있기야 했지만…….’


  멀어지는 천가네 국수집 주인 어깨 너머로 노을 끄트머리 흘러갔다.


  깃털 구름 느긋이 하늘 지난다. 지는 해 건너편으로 백옥 같은 달 오른다. 먼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 장장하였고, 가까이로는 풀벌레 소리, 새 소리 분주했다. 한 사발의 세상 다시금 평화로웠다.


  누군가 조심스레 국물 위 떠오른 흰 잿가루 건져내어 버렸다. 용 비늘 타고 나면 비단 조각 같은 것만 남는다. 다 걷은 후에는 사발 속 백옥 구슬도 건져내어 정화수 담긴 호리병에 넣었다. 일순간 흰 김 뿜겼는데, 이에 호리병 쥔 이 잠깐 웃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던 대륜국의 제관은 성성한 흰 수염 부르르 떨며 힘들게 일어나 섰다.


  “이 고마움을……어찌 이루 말로 다 할 수 있사오리. 그저 감읍하고 감읍할 따름이라, 비록 이 보잘것없는 늙은이의 절이라도 부디 받아 주십시오.”


  화경선생은 얼른 그의 팔을 잡아 부축하였다.


  “태사 어르신의 충정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니 절은 가당치 않습니다. 이제 마음 놓으시고 평안히 귀향하십시오.”


  대륜국의 황제를 어릴 적부터 가르치고, 제사를 주관하고 별을 관측해 온 제관 노엄은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화경선생을 힘껏 끌어 안았다. 한참 후에야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힘들게 가마에 올랐다.


  천천히 산길 돌아 사라지는 가마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선생은 왼손의 호리병을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병 속에서 곱고 가냘픈 소리 흘러나왔다. “그런데 왜 굳이 국수집 주인을 택했지?”
  “나나 그나 다를 바 있나.”


  초막 위로 서서히 날 어두워졌다. 어느덧 달 높이도 올랐다. 산밤 바람 불어오니 여름 공기 한결 시원하다. 금시조 올랐던 하늘 부분만 잠시 희게 버티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마지못해 구름 한 거품 몰아 뿜어내며 서서히 식어갔다.


  설푸른 선 한갓지게 산줄기 타고 내려 호수 칠하고 풀과 나무, 구름과 안개, 바위와 꽃 이어 돌아돌아 가다가 문득 툭 난다. 이윽고 다시 내려와 호수 곁 조각배 찍은 후, 하늘과 호수에 각각 달 하나씩 그려 넣었다.


  자뭇 태평한 산수화라 할 만도 했는데, 도사 하나, 호리병에 든 금시조 구슬 하나, 별이라도 따다 붙여둔 듯 빛났다. 붓 든 팔 멀어지자 가렸던 달빛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이는 실로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그대로라 할 만하다.


  곧 삼계의 달 더불어 빛날 때 하늘 아닌 하늘문 열리고 땅 심지 물길 풀리니, 능히 큰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리하여 도사 아닌 도사, 그림 속 새 구슬, 국수 한 사발로 흘려 넣으니 하마터면 족자가 전부 불탈 뻔하였다. 먹칠로 바쁘던 아홉 용 희게 타오르니 오직 한 줌 잿가루 남았다. 국수 그릇 요동치니 인간 지경(地境) 덩달아 몸 떨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와중에 큰 일을 크게 성사시킨 천부겸은 아무도 몰래 말 세 마리, 나귀 두 마리, 보화가 잔뜩 든 가죽 부대 아홉 개를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방에서 그를 기다리느라 앉은 채 꾸벅꾸벅 졸던 부인을 황금으로 간지럽혀 깨웠다.


  놀라 들썩이는 지붕 위로 달 밝았다. 족자 흐뭇이 굴러 감겼다. 이제 신수도 신선도 초막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수풀 흔드는 바람 그저 잔잔하다. 호숫물 간혹 출렁였다. 뿌듯한 큰 손 하나, 청경호 위로 떠오른 달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곧 왔던 길 따라 돌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무리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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