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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rita 이화(二花)

2013.11.30 22:4711.30

이화二花

 

 

 

  이는 이화(二花)라는 어느 공양주가 겪은 일이다. 그의 어미는 일운산 청문사(靑紋寺)의 공양주였는데, 일전에 만삭의 몸으로 절에 찾아와 쓰러져 그를 낳았다 한다.
  이화가 다 자라 혼기가 찼어도 워낙 심한 박색인지라 데려가려는 이가 없었다. 혹 매파를 보았어도 단숨에 없던 일이 되었다. 심히 얽은 얼굴에 뻐드렁니, 사팔눈에 뻣뻣한 머리채, 게다가 발까지 절름대는 처자를 보고 좋다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소문이 다 나서 “절색 중의 절색은 남청강변의 이화(梨花)요 추색 중의 추색은 청문사의 이화(二花)로다,” 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딱히 이화도 시집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스물이 되던 해 모친이 돌아갔다. 이후 이화는 모친이 하던 대로 묵묵히 스님 수발을 들었다.
  청문사로 말할 것 같으면, 다 쓰러져가는 형색인데다 스님은 여든을 넘긴 주지 스님 한 분뿐이었다. 기와를 얹은 지가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지붕의 반절은 어설프게 짚을 얹었고, 탑이며 불상이며 하다못해 목탁마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모르는 이가 지나다 보아서는 산 중턱 다 허물어진 폐가와도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스님은 노환이라 드러누운 지 오래되었다. 시주 들어올 일도 없고 바랄 형편도 아니니, 이화는 약초를 캐어 팔거나 마을에서 빨래나 바느짓일을 받아와 빈한한 절의 살림을 꾸려 나갔다.
  하루는 그가 산에서 당귀를 캐는데 뒤에서 미약한 울음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고로 잘못 들었는가 싶어 다시 흙을 쓸어내는데, 다시금 누군가 울었다. 이화는 혹시 귀신인가 싶어서 겁이 나 일어섰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귀신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내려가려고 조심스레 걸음 옮기는데 문득 오른편 어깨너머로 웬 뽕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뽕나무 가지에 친 거미줄에 나비 두 마리가 걸려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은가. 막 걸린 모양인지 아직 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울었다면야 너희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이화는 살살 나비를 떼어냈다. 거미줄 엉기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간신히 하나를 떼고 다시 나머지 하나를 뗄 참인데, 풀려난 나비는 얼른 날아가기는커녕 곁에서 불안히 어른거릴 뿐이었다. 나비 부부인가, 손바닥보다 작은 미물일지언정 그 마음이 갸륵한지라 이화는 더욱 신중히 다른 나비를 떼어냈다. 둘은 기진했는지 바위 위에서 한참을 할딱거렸다.
  졸지에 먹이를 빼앗기고 집까지 찢어진 거미 역시 안되었으니 이화는 먹다 남은 주먹밥을 부수어 멀쩡한 쪽 거미줄에 살살 뿌려주었다. 이후 당귀를 마저 캐어 광주리에 넣고 다시 바위를 보니 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날개가 심하게 끈적거리지는 않은 모양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갔다. 선행을 베푼 덕인지 이날 따라 의원 댁에서 약초값을 후히 쳐 주었다. 실로 오랜만에 참기름 한 병, 백설기 한 편 사서 돌아가는데 어찌나 즐거운지 몰랐다. 그날 저녁 이화는 잘게 자른 떡을 스님 입에 넣어 드리며 한참 나비 얘기를 늘어놓았다. 스님께서는 그저 웃으실 뿐이었다.
  그로부터 이레가 지난 날이었다. 검불을 모으러 나갔다가 이화는 우연히 적송 둥치에 붙은 송이를 발견했다. 뒤뜰에서 몇 걸음 가지 않아 바로이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겠다. 이렇게 가까운 걸 왜 지금까지 못 보았을까? 뛸 듯이 기뻐서 얼른 땔감을 내려놓고 치맛자락에 손을 문지르는데, 갑자기 무슨 흙 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자신의 발소리라 여기고 얼른 송이에 손을 가져갔다. 막 하나 따려는데 다시금 소나무 너머에서 더욱 다급한 흙 소리가 났다. 그제야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넘겨보니 소나무 뒤쪽으로 족히 칠 척은 깊어 보이는 구덩이가 떡 하니 있지 않은가. 흙 소리는 그 안에서 났다.
  목을 길게 빼고 안을 들여다보니 흰 토끼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흙벽을 긁어대는 중이었다. 어쩌다 빠졌는지 너무 깊어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화는 송이는 나중에 따기로 하고 급히 절로 돌아가서 사다리를 꺼내 이고 지고 왔다. 끙끙대며 구덩이 속으로 사다리를 천천히 내려놓고 한숨 돌리는데, 토끼는 사다리가 어색한지 올라타다가도 떨어지고 구르고 했다. 좀 올라오다가도 어느 정도 높아지면 어쩔 줄을 몰라 해서, 보다 못한 이화는 직접 안으로 내려갔다. 다 내려가서 손을 내미니 신기하게도 얼른 뛰어올라 안기는 토끼였다. 그는 구덩이 밖으로 나와서 토끼를 내려 주고 재차 힘들게 사다리를 올려 꺼냈다. 토끼는 긴 귀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깡총 대며 산속으로 사라졌다.
  이화는 그날 달군 솥뚜껑에 참기름 조금 떨구고 송이 구우며 토끼 구해 준 보람이란 바로 이렇게 맛나고 고소한 것이라 여겼다. 역시 잘게 자른 송이를 올리며 스님께 토끼 이야기를 하니 그저 빙그레 웃으실 뿐이었다. 그 후로 이처럼 별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화는 언제나처럼 다 무너져가는 절과 스님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듬해 마을에 큰 혼사가 있어 이화는 음식 일을 도우러 갔다. 처녀는 오동로 뒤 동네 학당선생의 고명딸로, 성품이 온아적정(溫雅寂靜)하며 누구나 다시 돌아볼 만큼 빼어난 미인이라 일전에 성도(省都)의 큰 장사치가 매파를 보낸 적이 있다. 그 얘기가 어느덧 다 진행되어 혼담이 성사되었으니 마을 전체가 더불어 들썩였다. 친영(親迎)을 온 신랑이 신부 못지않은 미남자라는 소문이었다.
  신랑의 집안은 성도에서도 매우 크게 장사를 하고, 궁에도 줄이 닿은 지라 그 세도가 어지간한 벼슬아치 부럽지 않다고 했다. 선생이 평생 코흘리개 모아놓고 글을 가르친 공덕으로 이와 같은 복을 얻었다며 모두 훤훤효효(暄暄囂囂)한 가운데, 이화는 말없이 나물 삶고 고기 잘랐다. 때때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가련해하는 시선이야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가능한 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만 했다. 익숙한 마을 사람이라면 몰라도, 신랑 행차에 따라온 외지인이 혹 자신 같은 추녀를 본다면 기분을 몹시 잡칠 것이 분명했다.
  하늘의 선녀나 탈법한 꽃가마가 북소리 징소리에 휩싸여 떠난 뒤 이화 역시 엽전 몇 푼과 남은 음식을 받고 절로 향했다. 잔치가 있을 때마다 가서 거들면 설령 보수는 짜게 받더라도 음식만큼은 차고 넘치게 가져올 수 있었다. 스님을 생각하여 풀이나 담백한 찬 위주로 부탁하면 더욱 많이 받았다. 기름진 전이나 고기는 많이들 먹기에 금방 떨어지고,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지만 채류(菜類)는 남아돌기 마련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큰 광주리를 이고 기분 좋게 산길 오르던 그는 문득 길 꺾이는 지점에서 팔랑이는 나비를 보았다.
  날 어두워 의지할 빛이라고는 구름 너머 달빛뿐인데, 백옥 비단같이 풀어진 그 속에서 나비 한 쌍 서로 춤추는 중이었다. 그 자태가 어찌나 찬찬(燦燦)하고 연연(姸姸)한지 이화는 오랫동안 망연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혼인은 인륜대사라지만 과연 세상천지 어디에 이런 나도 좋다 할 이 있으랴 싶었다. 만약 자신이 사내였대도 이런 여인은 사양했을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었다. 그러하되 조금은 울 것도 같은 이런 심정까지야 어쩔 도리 없었다. 그는 나비 춤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었다. 
  길 밖으로 거의 나가다시피 하여 두 나비를 놀래지 않고 지나쳤는데, 실상 그들은 이화를 따라와서 광주리 꼭대기에 앉았다. 이화는 그것을 모르고 나중에 뒤를 돌아보고는 나비가 놀라서 멀리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발을 저니 조용히 걷기도 쉽잖구나 하며 다시 가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 한구석에서 흰 토끼와 마주쳤다. 혹시 전에 구덩이에서 건졌던 토끼인가 싶어서 반가웠다. 역시 그러한지 이화가 가까이 가도 도망치기는커녕 길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귀만 쫑긋거린다. 마치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 보여서 이화는 토끼를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그때 수풀 너머에서 몸집이 산만한 대호가 뛰어 나와 나비, 광주리, 토끼, 이화까지 한입에 꿀꺽 삼켰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배불리 먹은 범은 만족스레 산을 타고 다녔다. 계곡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고 은방울 성성한 꽃밭에서 구르기도 하고 마음 썩 드는 나무에 발톱 자국 남기기도 했다.
  새벽이 다 되어 동녘 밝아 오니, 푸르거나 붉은 구름이 온 산을 뒤덮었다. 안개 같기도 하고 온김 같기도 한 뿌연 것이 강물 흐르듯 비단 풀리듯 구릉마다 능선마다 부드럽게 휘감돌거나 물결쳤다. 그 속에서 어슬렁대던 호랑이는 점차 햇빛을 받으며 기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햇살 아래 누웠을 때만이 아니라 그늘로 들어가도, 동굴 깊이 들어가도, 물에 들어가도, 해가 다 뜨고 지고 달 오른 밤에도 여전히 은은히 빛났다. 머리통부터 발톱까지 남김없이 황금빛 가루 분분(紛紛) 날리듯 했는데, 광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환해 갈 뿐이었다. 뒤늦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범은 쉬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내달렸다. 청문산이 타고 내려온 산줄기를 거슬러 가서 광릉산에도 갔다가, 태협산맥으로 접어든 후 한없이 내달려 마침내 소선국(小船國)의 경계를 넘었다.
이때 이미 범의 눈부신 정도가 족히 별과도 같고 땅에 내려온 태양과도 같으니, 그가 지나칠 때마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까지 다 눈부실 지경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타오르는 빛덩이가 산을 헤매고 다닌다는 소문에, 나중에는 관청에서도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군졸들을 보냈다. 눈부신 빛이 온 산을 뒤덮은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본 병사들이 돌아가서 이를 고하였다. 그런들 딱히 대책이랄 것이 없어서 모두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호랑이가 산줄기를 재차 타고 뛰어 드디어 국경을 넘으니, 다들 비로소 안심하였다.
소선국의 서북으로는 대륜국(大輪國)이 있는데, 그 크기와 기세가 가히 천하를 다스리는 대국(大國)이요 황제국(皇帝國)이라, 북으로는 빙해까지 미치며 동으로는 지도가 밝히는 경계까지 수십의 제후국을 거느렸으며, 서로는 여만협해, 남으로는 소선을 비롯하여 바다 건너 바위섬 섬월국(纖月國)에까지 그 위력이 닿았다.
대륜의 궁궐로 말할 것 같으면 황금 기와를 얹은 구중궁궐부터 시작하여 파도치듯 이어지는 누각과 운교(雲橋), 게다가 계절마다 옮기는 별궁, 절기마다 열리는 정원까지 그 규모도 규모거니와 건축의 탁월한 정묘함이 마치 옥황궁을 하늘에서 끌고 내려와 땅에 둔 듯하니, 천하의 뛰어난 장인을 불러모아 스무 해 족히 걸려 지은 보람이 차고 넘쳤다. 
대륜의 황제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성군이라, 공정하고 자애롭게 천하를 다스렸다. 관(官)이 청(淸)하여 법도가 두루 바르니 백성의 삶이 밝고도 순히 족(足)하여 곧 태평성세라 할 만했다. 다만 오랫동안 육궁(六宮)의 자리가 비었으니 이가 태후를 비롯한 온 나라의 근심거리였다.
일찍이 선황이 붕어(崩御)하기 전 마지막으로 태자에게 “실로 하늘이 너그러워 네게 친히 월옥(月玉)과도 같은 황후를 내리리니 굳이 찾으려 말고 기다리라,” 명하였기로, 아무리 누군들 엎드려 청하여도 황상은 그저 묵묵히 고명(顧命)을 받들 뿐이었다. 설령 태후가 걱정하여 넌지시 황후를 책하기 권하여도 “소자 이제 겨우 약관(弱冠)일 뿐이온데 서두를 필요야 있겠사옵니까,” 할 뿐이었다.
  매년 황제는 황성 북쪽의 함원으로 행행(行幸)하여 닷새간 매사냥을 했다. 매번 문무백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히 검을 차고 말을 달렸는데, 이때는 시복 궁인을 다 거두고 좌우대장군과 친병 몇몇만을 곁에 허(許)하였다. 징을 쳐서 짐승을 유인하는 등 인위적인 안배를 일체 금한 고로 당일의 수확은 순전히 운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짐승이 잡힐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일이었는데, 대륜 영락(永樂) 5년 화월花月의 보름 밤, 실로 들판을 통째로 불 지르려는 양 광휘로이 타오르는 별성 하나가 연무제의 백마 발치로 금살같이 날아와 박혔다. 이때 굉음과 함께 예예(芮芮)한 빛이 폭발하여 만월까지 창백해졌는데, 일동이 혼비백산하였다. 오로지 임금만이 놀란 빛 없이 침착하여, 단지 놀란 말을 진정시킬 뿐이었다.
  잠시 후 눈부신 기세가 곧 가시고 땅에 쓰러진 것이 비로소 명확히 그 정체를 드러냈다. 족히 구 척은 되어 보이는 대호였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이 일렁이던 빛은 대부분 흩어졌으나, 그 털가죽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반들거렸다.
  모두 땅에 엎드려 벌벌 대는 동안 황제는 말에서 내려 범에게 다가갔다. 검집 끝으로 앞발과 뒷발, 목과 등, 배를 눌러보는데 아무리 보아도 산 것 같지는 않았다. 이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좌우대장군이 칼을 빼어 들고 범에게 달려오는 것을 손짓하여 물러서도록 하였다. 옆으로 누운 범의 배 아래로 검집을 넣어 뒤집으려다 자세히 보니 배 중심을 따라 희미한 흰 선이 있다. 그 선을 따라 검집 끝으로 슬쩍 누르는데 범 가죽이 느닷없이 꽃 터지듯 탕탕히 만개하지 않는가. 놀랄 새도 없이 삽시간에 자욱한 국향(菊香)이 사방에 진동하였다.
  호랑이 가죽 속에 든 것은 한 뭉치의 설백색 비단이었다. 그 비단에 품긴 것은 다름 아닌 한 여인이었다. 평온히 잠든 눈매가 옥 같은 설부화용(雪膚花容)이라, 실로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의 자태이지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황제는 곧바로 검을 내던지고 좌우대장군에게 하명하기를, “이는 선황의 말씀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라 상서롭기 그지없는 일이니, 어서 가서 태후께 자초지종을 고하고 천녀(天女)의 시중을 들 궁인과 시비를 이끌고 오라,” 하였다. 이윽고 몸소 옥녀를 끌어안고 행궁으로 귀환하여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황제는 다음날로 사냥을 거두고 궁궐로 돌아와 국혼을 선포하였다. 이전에는 아무리 재촉하여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임금이 돌변하여 모든 절차를 해치우는 기세가 일사천리, 뇌려풍비(雷勵風飛)하니 모두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쩔쩔매며 명을 따랐다. 자나 깨나 황후와 황손을 고대하던 태후는 희색만면하여 “내가 일찍 죽지 않고 버틴 것이 오늘을 위함이다,” 하며 금정궁으로 매일같이 패물과 진귀한 별식을 내렸다. 
  단지 곧 황후의 위에 오를 옥녀만이 침중히 있더니, 그날도 찾아온 황제를 맞이하여 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황상이 놀라 일으키려 하자 “소첩을 참하여 주시옵소서. 소첩은 실로 하늘의 소생이 아니라 그저 먼 소국의 보잘것없는 백성에 불과하옵니다,” 라고 고하였다.
  이윽고 소선국의 청문사, 공양주 어미, 나비와 토끼를 도왔다가 후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이야기까지 남김없이 아뢰고 다시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말을 끝까지 듣고는 황제는 크게 웃으며 그를 끌어 일으켜 세웠다. “이는 참으로 신묘하고 기이한 일이로다, 그대가 애환에 굴하지 않고 미물에 불과한 목숨에 무심치 않아 자비를 베푼 덕으로 하늘이 이렇듯 큰 복을 내려주지 않았겠는가. 이것이 그대를 덜 어여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로 정순하고 인자한 황후를 맞는 것이 짐과 대륜의 큰 복이라, 기뻐하고 감격할 일이지 도저히 벌을 줄 일이 아니니 염려치 마시오,” 하고는 이어 묻기를, “그전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하였다.
  그는 더는 참을 수 없는 눈물 떨구며 “이화라 하옵니다,” 아뢰었다. 그런 그의 눈물을 몸소 닦은 후 황제는 다른 손을 펴서 내밀었는데, 구슬 두 개가 채옥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이화를 처음 호랑이 가죽에서 꺼낼 적 찾은 것이오. 왼손에 꼭 쥐고 있었소.”
  대륜국이 마침내 황후를 맞게 된 연유가 이러하였다.
  후일 황제는 가장 신뢰하는 신하인 시랑(侍郞) 심이명을 불러 소선국의 청문사로 보냈는데, 혹시라도 주지승이 아직 살아 있다면 대륜으로 데려올 요량이었다. 심 시랑은 족히 반년이 지나서야 황도로 돌아왔다. 그가 대전에 엎드려 자초지종을 사뢰기를 이렇게 하였다. 
  “비록 미천하고 우둔한 신이오나 크나큰 폐하의 명을 받잡와 남쪽 소선국으로 뱃길 따라 다급히 떠났사옵니다. 불의의 바람이 일어 여러 날을 허비하고 마침내 소선의 여호도에 입지(立地)하였사온데, 관아의 그 누구도 일운산을 알지 못하고 청문사는 더더욱 찾을 수 없으니, 다시금 망연하여 수 달을 허하게 흘려보냈나이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치 않고 사람을 풀고 계속하여 수소문한 끝에, 족히 삼백 년은 전에 광릉이라 불렸다는 첨병산에 드디어 이르렀사옵니다.
  그곳의 관청에 눌러앉아 문서를 남김없이 뒤집어 재독하고, 멈춤이 없이 누구든 붙잡고 답을 구했으나 끝내 일운산을 찾을 수 없었나이다.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싶어 다만 앙천자실(仰天自失)하여 실성한 사람처럼 수일을 보내던 참에, 그곳의 관리가 소신이 혹 자결이라도 할까 불안했는지 출조(出釣)를 강권하였사옵니다. 이곳에서 몇 리만 내려가면 풍광 아름답기로 유명한 호수가 있다며 신을 끌다시피 데려갔는데, 그곳을 이름 하여 청경호(淸鏡湖)라 하였나이다.” 
  황제는 시랑에게 계속하라 명하였다.
  “편주에 담겨 낚싯줄은 드리우지도 않고 폐하를 감히 무슨 낯으로 뵈오리 한탄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사옵니다. 이윽고 석양 내리니 돌아갈 때라, 배를 호숫가로 저어 가 내려서는데 무슨 부서지는 소리에 돌아보니, 배 때문에 일어난 물결이 물가 큰 흰 바위를 때린 까닭이옵니다.
  때마침 연하일휘(煙霞日輝) 하늘에서 불길처럼 번지어 내리니 비단 휘장 천하를 덮는 형상이온데, 흰 바위 저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다시 들리기로 다가가 보았사옵니다. 멀리 푸른 꽁지 새가 짝을 지어 서로 오가며 울고, 나뭇잎 소리 성성한데, 누군가 비스듬히 정박하여 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나룻배 물결 따라 소리 내고 있었사옵니다.”
  “다른 것은 없었는가?”
  “단지 다 낡아 부서진 나룻배 곁에 자라난 금잔화 한 무리 선선히 흔들릴 따름이었나이다.”
  이에 황제는 토지와 명마를, 금후(金后)는 비단과 패물을 내려 심 시랑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또한 그에게 명하여 있었던 모든 기이한 일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니, 곧 금호록(金虎錄)이 탄생한 연유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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