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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

 
 
 
 
 
 
 매문가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팔 매. 글월 문. 매문가란 글을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단어는 마치 빵 굽는 타자기라는 책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구수한, 마치 갓 구워 낸 따끈따끈한 밤식빵과 같은 냄새를 연상하게 했다. 아직 그 책을 읽진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을 처음 들은 순간 느꼈던 미묘한 낭만을, 나는 그 단어에 바로 대입했다. 작가라는 단어 대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꼬고 경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을 담아서. 
 아, 나는 진심으로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 내 글을 돈으로, 와인 한 병과 몇 구의 초콜릿으로, 혹은 시집 한 권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의 돈으로 만들고 싶었다. 혼자 먼 길을 떠나며, 손때묻은 몰스킨에 에메랄드빛 잉크로 하루하루 일기를 적고, 그 일기를 팔아 다시 다음 여행을 떠나는 여행가가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살아본 일 없는 날들을 꿈을 꾸며 기록해 나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글을 팔아 먹고 살고 싶었다. 내 이름 앞에, 작가라는 두 글자를 붙이고 싶었다. 가녀린 펜대 위로 온 생애의 무게가 쏟아져 피를 토하듯 글을 쏟아내며,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거나 혹은 자신의 영감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그런 인생. 그런 광기로 자신을 불태우는 젊은 작가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수십 년 전에 씌여진 전혜린의 수필같은 그런 삶을, 나는 늘 동경했다. 가슴에 불덩이를 폐병처럼 끌어안고,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먼 창 밖을 바라보며, 퇴폐적일정도로 선명한 레드 립스틱 자국을 담배 필터에 남기며, 다른 작가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조차도 마치 1930년대의 귀부인으로 분장한 탕웨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꿈꾸곤 했다. 내 앞에 펼쳐진 진붉은 레드카펫을. 미모의 큐레이터들이 방송을 타는 것을 보거나, 홍대 근처에 교수나 작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커피집을 경영하는 예쁜 카페에 대해 여성지에서 읽을 때 마다, 나는 그녀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작가가 되어서 그녀들 못지않은 미모를 뽐내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함께 미술품을 고르는 내 모습을 눈에 선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때로는 레드카펫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초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범속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화려한 사람들이 재능을 칭찬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어설프게 작가의 천재성을 논하는, 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있잖아, 그 스캔들 이야기 들었어?”
 “어휴, 난 정말 걔네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은, 지루하고 범속하기 그지없어서, 나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싼 티 나는, 연예인들의 가십거리,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지난 주말의 무한도전.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흔적이라고는 없는 앵무새들의 조잘거림. 이런 세계는 내게 익숙했지만 어울리지는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돈을 세거나, 몇 푼 들어있지도 않은 통장을 만지거나, 귀가 얇아 보이는 사람을 붙잡아 고객님 카드 한 장 새로 만드세요, 하고 권하는 일 따위는. 차라리 안쪽의 프라이빗 뱅크에서 부유하고 화려한 고객들을 상대로 그들의 부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민들의 푼돈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아무리 봐도 예술 축에도 들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손마디 굵은 손에 번쩍번쩍한 반지를 끼고 나타난 아줌마들을 속으로 비웃고, 몰취미한 동기들과는 적당히 어울려주는 척 하면서 경멸했다.
 인터넷이라고 딱히 나을 것도 없었다. 학교에서 일기를 쓰라고 할 때에는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이 났던 여자애들은 학교에서 더 이상 일기 검사를 하지 않을 나이가 되면 스스로 싸이월드니 블로그니, 요즘은 페이스북을 열어놓고 자기 일상을, 자기 일상이었으면 싶은 모습들을 기록한다. 진솔한 척 하는 매일의 자랑질을 구경하고 부러워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날 다녀온 예쁜 가게와 맛있는 음식, 어딘가에 몰래 숨겨놓고 혼자서만 다니고 싶다고 써 놓았지만 사실은 지난 주 쯤 어디의 파워 블로거가 자기 블로그에 언급한 와인바, 애인이 선물해 준 물건들과, 소위 얼짱 각도에서 일부러 볼을 부풀리고 귀여운 척 억지를 쓰듯이 찍은 셀카들. 학교 다닐 때는 과연 일기나 제대로 썼을까 싶은, 내가 아는 수많은 가련한 속물들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일상을 보여주고, 반응을 기대하곤 했다. 
 나는 그런 것 따위 질색이었다. 블로그를 띄워놓고, 몰스킨 수첩의 종이 위에 만년필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나가듯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다. 그 배덕적이라면 배덕적인 말을,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누군가라면 틀림없이 보고 화를 낼 만한 문장을, 정말로 그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아주 정성껏. 
 
 애초에, 재능 같은 게 없었다면 작가 지망생 따위가 되지도 않았을 거다. 
 중학교 때였다. 내 재능을 깨달았던 것은. 친구들과 오고가며 소소한 수다를 떨다가, 아마도 어떤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정확히는 나 혼자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 이야기를 연습장에 기록해 두었다가, 원고지에 베껴 적었다. 별 이야기는 아니었다. 제법 멋을 부린,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게는 아직 오지 않았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형태로는 오지 않은 사랑이 이백 자 원고지 칠십 매 가득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친구들은 소설가 났다고 마냥 신기하게 여겼고, 그 이야기는 졸업 문집에 실리기까지 했다. 친구들이 즐겨 읽던 인터넷 소설이나 순정만화에 나올 것 같은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 하는 남자애도, 멋진 남자선생님도 현실에는 없었지만, 그때 내가 썼던 소설은 지금 보아도 뿌듯할만큼 근사한 것이었다. 서투르긴 했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남자가 존재했으니까. 
 그때 알았다. 내게는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연애 경험 따위 없었어도 내 소설은 충분히 실감났고 훌륭했다. 코찔찔이 남자애였다가 어느새 훌쩍 자라서는, 여자애들을 무시하기나 하고 매일 쉬는 시간마다 농구공을 붙잡고 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내애들이 아닌, 매력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도 같았다. 에밀리 브론테는 남자와 연애는 고사하고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히스클리프같은 남자를 창조해냈는데, 연애 한 번 못 하고서 연애소설을 쓸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거다. 그 무렵 귀여니의 소설이 인터넷을 강타하면서, 아무나 글만 쓸 수 있으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인터넷소설닷컴 같은 데서 들여다본 글들은 글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없었지만 책으로 묶여 나왔다. 나는, 내가 쓰는 소설 정도면 그런 인터넷 소설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자신했다. 소설 사이트에 가입하고 개인 게시판을 얻을 수 있을 때 까지 열심히 도배하듯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게시판을 얻을 무렵이면 모의고사니 내신이니 수행평가 같은 것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쓰던 글을 몇 번인가 연중하고, 나는 소설은 대학에 가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무난하게 괜찮은 학점을 받았고, 어학연수도 1년쯤 다녀왔고, 꽤 잘나가는 은행에서 인턴도 했다. 부모님은 그제야 안심하셨다. 그러면서도 친구분들을 만나시면 “우리 애의 취미는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작가가 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고, 까딱하면 굶어죽거나 부모님께 빌붙는 백수가 되기 딱 좋은 일이기도 했다. 무슨 시나리오 작가가 자기 집에서 굶어죽었다는 신문의 토막기사는 그런 말씀을 증명하는 좋은 예였다. 하지만 취미로 글을 쓴다는 것은, 옛날 말로는 문학소녀라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썩 나쁘진 않은 이야기였다. 처음에 인턴을 했던 은행 대신, 아버지와 연줄이 있는 은행의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은 취미란에 소설쓰기라고 적어 낸 내 서류를 훑어보며 농담처럼 한 마디 했다. 
 “그럼 사보에도 소설 같은 것 내 보지?”
 사보에 소설을 내 보진 않았지만, 나는 결국 그 은행의 카운터에 앉아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대학 다니는 4년동안 제대로 써 본 소설이 한 편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무렵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젊어서 썼던 단 한 편의 소설, 단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불멸의 이름을 얻은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럴진대, 고작 몇 년의 공백이 작가 지망생이라는 이름에 큰 하자가 될 리 없었다. 
 취직을 하고 보니, 세상이 좀 더 넓어 진 것 같았다. 문창과에 갔다는 중학교 동창과 어떻게 또 페이스북으로 연결이 되면서, 문창과를 졸업해본들 논술학원 선생이 되거나, 잘 나가봐야 기자나 편집자가 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범속한 재능을 가진 자들을 마음 속으로 애도했다. 그 과에서 가장 잘 나가더라는 이가 방송국 새끼작가를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학교 동창의 말끝에는, 어디다 명함 내밀어도 무슨 회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썩 괜찮은 회사에, 정규직으로 다니는 나에 대한 부러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아주 잠깐 그 동경어린 시선을 즐겼고, 곧 그 친구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진짜 작가를 만나보는 거라면 모를까, 그렇게 실패한 친구와 계속 연락하는 것은 내게도 좋지 못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서점에서 골라 스타벅스에 앉아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나는 진정한 친구란 나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말에 옅게 밑줄을 그었다. 
 나는 나를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저 화려한 세계에서 나를 향해 손 내밀어 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고만고만하게 도토리 키 재듯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부류인 척 하고 살아가는 내가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섬세함이 있는 호러작가 오노 후유미의 ‘마성의 아이’를 읽으며, 공포를 느끼는 대신 먼 다른 세계를 동경했다. 미용실에서 여성잡지를 읽거나 가끔 로맨스 소설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책이라고는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않는 내 동료들 사이에서, 나 혼자 별종처럼 책을 사들였다. 알랭 드 보통이나 츠지 히토나리나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을, 모자이크를 하듯 내 방 책꽂이에 촘촘히 꽂아놓았다. 누군가 내 사진을 찍었을 때, 혹은 한가한 주말 아침에 드물게 셀카놀이라도 할 때, 누군가 내 뒤에 배경처럼 꽂혀있는 책들을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햇살 아래, 온갖 색감이 빚어내는 그 미묘한 불협화음 속에서 나를 발견해주면 좋겠다고.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되고 싶었다. 발견되고 싶었다. 이 모든 범속함 속에서,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갈 수가 없어 하염없이 그네를 뛰었던 춘향이처럼, 있는 힘껏 손을 내밀고 싶었다. 누군가 이 손을 잡아주기를, 이 홍진에서, 오리새끼들이 가득한 이곳에 뭔가 혼자만 동떨어진 내가 사실은 불구가 아니라고, 백조가 되어 날아오를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세상을 향해 등을 떼밀어 주기를. 
 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내 블로그에 글을 쓰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읽어 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 창작 블로그들을 지원하고 우수한 작품은 홍보도 해준다기에 일단 줄을 서 보았다. 인터넷 서점 계정으로 블로그를 만들고, 소설을 올리면, 해당 인터넷 서점의 창작 블로그 페이지에 해당 글이 소개되는 형태였다. 몇몇이 들어와서 읽기는 하는 것 같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창작 블로그 메인 페이지에 커다랗게 노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 서점에서 홍보를 위해 모셔온 작가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어느정도 연재가 되던 중에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책을 내고 사라지곤 했다. 출판사 쪽의 홍보를 위해 이름을 걸어놓고 있었던 거다. 메인화면에 큼직하게 걸린 아래쪽에, 최근 올라온 글과 사람들이 자주 찾는 글을 노출시키는 공간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글을 올려본들, 단 10분만 지나도 다른 사람들의 글에 밀려 최근 올라온 글의 목록에서는 사라지곤 했다. 오히려 이런 쪽은, 재능이라고는 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사람들의 차지였다. 그 블로그들 사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블로그를 열여섯개나 만든 어느 아줌마였는데,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그녀의 캐리커처가 온 메인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괜히 나까지 우울해지곤 했다. 그녀는 아침드라마같은 소설 아홉 편과, 연예 블로그 네 개와, 생활의 지혜니 오늘의 요리니 하는 내용을, 그것도 각각 블로그를 파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목록만 보면 거창하니 혼자 잡지를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퀄리티가 말도 되지 않을 수준이라 그렇지. 
 열 편 정도 올려보고, 나는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 소설을 올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런 것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소설 커뮤니티에 회원가입을 하고, 게시판을 만들었다. 메인 화면에서 순식간에 밀려버리는 바람에, 누구 한 사람에게 읽혀 볼 기회도 없이 묻혀버리고 또 묻혀버리는 것을 보다가, 나는 동생의 주민번호를 빌려 다른 아이디로 가입을 하고, 선작을 찍고 점수를 주고 추천 게시판에 내 글에 대한 추천글을 남겼다. 면구스런 짓이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가슴을 찔렀지만, 무슨 상관이야. 남들도 다 하는 짓인걸. 몇 번인가 이런 일을 반복하고, 더러는 메인 페이지에 오래 띄워두기 위한 아이템을 구입해보기도 하고, 쓰다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글은 그대로 끊어 하드디스크 한 구석에 처박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일도 다 인맥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인맥 없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터넷에 글을 올렸더니 조회수가 오르고 사람들이 덧글을 달고 선작을 하고, 조금 지나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더라고? 다 새빨간 거짓말. 그런 것은, 우연히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월드컵 거리응원전을 다니던 여자가 사실은 데뷔 준비하는 신인이었더라, 어머 놀라워라. 딱 그런 수준의 거짓말이다.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리 포장해서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을 내는 것일 뿐. 그냥 시시한 마케팅이지 않느냔 말이다.
 “작가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맥입니다. 그 인맥이 있어야 프로그램에 투입될 수 있거든요.”
 방송작가가 되는 법 같은 것을 검색했더니,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인맥이라며, “방송계 인맥을 만들어 드린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방송작가 학원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 글에, 글은 스스로 쓰는 것이라고 덧글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안다. 조금이라도 빨리 현실에 눈을 뜨는 쪽이 결국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당장 예술을 논할 것 같은 화가들의 세계만 해도 그렇다. 국전같은 데서 상을 받는 젊은 예술가들이란 사실 미술계의 유력한 거장이나 잘 나가는 교수들의 애제자들이고, 그 관계에 돈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그쪽으로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온라인 작가 커뮤니티 같은 데 들어가 보면 편집자라는 사람과 작가라는 사람들이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인맥 문제였다. 나는 우선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송작가 지망은 아니지만 한겨레 문화센터 같은 데는 어느정도 이름있는 작가가 강사로 나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가 있었다. 나는 등록을 했고 수업에 나가고 몇 번인가 뒷풀이에도 참석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내 연줄을 만날 수는 없었다. 수강생들은 의욕만 넘쳤지 재능이라고는 합평 때 눈 뜨고 봐 주는 것 조차 고행이다 싶은 수준들인 것이 하나같이 칭찬을 바라고 데뷔를 꿈꿨고, 강의를 하는 작가라고 딱히 남다를 것은 없었다. 몇년 전 인기작 몇 권을 낸 작가는, 지금은 문화센터 강의로 생계를 이어가는 듯, 딱히 신작을 준비한다거나 그 세계 사람들은 어떻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 작가의 눈에라도 들어 어떻게 출판계 사람들을 소개받아 보려 한 내가 멍청이였다. 나는 강의를 슬슬 빠지기 시작했고, 강의 마지막 달에는 결국 한 번도 들으러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라고 말했다. 대하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부터 한 편에 한두 줄, 뭔가 낙서같은 이모티콘만 가득한 글을 적는 어린 중학생까지 너도나도 서로 작가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역시 작가라 불릴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은 있었다. 게시판의 화제의 중심이자, 선배 작가로서 이 바닥에서 출판사와의 인맥을 특히 강조하던 그들. 그들 중 중심은 역시, 달호라는 아이디를 쓰는 남자였다. 게시판에서 그는 그야말로 엄마친구 아들로 알려져 있었다. 형님은 잘 나가는 출판사의 공동 출자자였고, 본인은 20대 후반, 내 또래의 나이인데 벤처 기업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안개 낀 새벽, 스포츠카로 자유로를 질주하는 것이 취미라는 그는, 작가라고 해서 예술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설파하곤 했다. 그는 지금은 한낱 가난한 티를 줄줄 흘리는 작가 지망생이라도 ‘나폴레온 힐의 성공학’을 읽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주목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친목에 기반한 넓은 인맥을 쌓아애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도 그는 게시판의 무리들을 이끌며 심심하면 번모며 정모를 했고, 그들 중 몇 명은 정말로 데뷔를 하기도 했다. 몇 달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며 게시판으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뒤, 나는 다음 번 정모에 참석하고 싶다고 달호에게 연락처를 남겼다. 
 달호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돈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아, 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글로 이름을 얻고 싶었다.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지중해 풍의 원피스를 입고, 이슬 머금은 새파란 잔디밭을 맨발로 걸으며, 누군가 나의 글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사람 앞에서 화사하게 웃음짓고 싶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내가 만들어 낸 세계를 사람들 앞에 소개하고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품에 안고 줄을 지어 서고, 나는 웃음지으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고, 속표지에 사인을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려 한다며 수줍게 입을 떼는 귀여운 청년에게는, 내 사인 위에 “이 사람 놓치지 마세요”라는 작은 격려의 말을, 캘리그래프 펜으로 멋지게 휘갈겨 적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글로 부와 명예를 얻으면서도, 누군가가 내게 글을 쓰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아, 이건 그냥 밥벌이일 뿐이야. 남들과 똑같은, 지난한 밥벌이.” 그렇게 대답하며 상대방의 질시어린 시선을 즐기고 싶었다. 나는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서 읽었다. 은행에 다니는데 은행원같이 딱 부러진 구석이라고는 없다고 동생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말에 연필로 옅게 밑줄을 그었다. 
 “내 말 좀 들어 보라고.”
 “뭐가.”
 “온라인 게시판.”
 “그게 뭐. 야, 넌 남의 취미생활에 웬 참견이야. 내가 글을 쓰건 뭘 하건.”
 “지난번에 거기다 내 아이디 멋대로 만들었잖아.”
 “그건......”
 “저번에 누나 글에 추천버튼 눌러달라고 하도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부탁했단 말야.”
 “근데 뭐?”
 “거기 사기사건 났다며.”
 나는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사기 아니래. 오해가 있었다고.”
 “사기 맞아. 그 달호라는 새끼, 상욱이네 학교 대학원생이거든?”
 “뭐?”
 “달호가 상욱이네 과 선배라고. 선배는 선밴데 찌질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게, 취직 안된다고 대학원 와서는 국문과가 아직도 맞춤법이나 틀리고 있고 글도 더럽게 못 쓰는 게 남들 다 하는 조교도 못 따서 찌질거리고 다니는 새끼라고.”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말 한 마디 안 섞어 본 사람을.”
 “그래서 지금 그 달호 편들었던 여자들, 줄줄이 달호랑 잔 여자들이라고 올라오는 거 못 봤어? 누나 아이디 현월야 맞지? 그 이름도 거기 명단에서 봤거든?”
 머리가 지끈거렸다. 
 “얘, 난 거기 정모에 나가 본 적도 없어!”
 “근데 왜 편을 드는데?”
 할 말이 없었다. 요즘 애들, 인터넷 악플 다는 것 정도는 우습게 아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 양보해서 그 달호가 가짜고 사기꾼이라고 치자. 그런데 달호 편을 좀 들었다고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니, 그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지. 천박한 상상력만 발달하고 머리는 나쁜 인간들은, 하여간, 멀쩡한 사람으로도 가십을 만들지 못해서는. 
 “글도 졸라 못 쓰면서, 쪽팔리게 그런데서 게시판 싸움에나 끼어들지 말고 좀 때려쳐. 뭐 하는 거야?”
 “누가 글을 못 쓴다고?”
 “누나 말이야.”
 마시던 물을 끼얹고 싶었지만, 하필 내 책꽂이를 등지고 선 탓에 어쩌지도 못한 채, 나는 동생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서, 잤으면 어쩌려고?”
 나는, 물잔을 내려놓고, 김훈의 책도 덮어놓았다. 방에서 돌아나오는 내 뒤통수에, 동생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 쪽으로는 한 점의 재능도 없는 사람의, 재능을 가진 자에 대한 질투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 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민일까. 
 “막 살지 좀 마, 좀.”
 아, 누나의 남자관계까지 터치하려 드는 가부장적 억압이구나. 구제불능의 꼰대같으니.
 가족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길이란 답답하고 막막한 것이라, 나는 조금씩 SNS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세상은 넓었고,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는 많았다. 나는 재능도 없이 매일매일 습작을 거듭하는 노력형 바보들과, 취미라면서 만화나 영화 속 캐릭터로 에로틱한 패러디를 써내는 변태들과 몇 번 말을 섞어보고 차단을 먹이기를 반복했다. 직장에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주머니 속에 못을 넣어두면 언젠가는 자연스레 두각을 나타내듯이, 사람들은 내 특별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저기서 강동원의 복근이나 현빈의 미소 따위에나 열광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거나, 가끔은 생각있는 척 하며 노후준비며 펀드같은 돈 냄새나는 소리들을 일삼는 게 낙인 내 직장동기들은, 평소처럼 나와 어울렸지만 가끔 내 등뒤에서 “은선 씨는 좀 특이한 것 같아.”하고 소근거리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기뻤다. 그것은 이십 대 중반까지 오도록 내 특별함을 사람들에게 증명받지 못하던 내가 늘 갈망하던 찬사였다. 어려서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오던 아이들이 슬슬 평범해질 이 나이에, 나는 조금씩 특별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내 직장동기들이 남이 만들어놓은 환상을 누리며 기뻐할 때, 나는 언젠가 내가 써 낼 걸작과, 그에 뒤따를 환호와 찬사를 생각했다. 어디서 이런 신인이 나타난 거지, 대체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던 거야. 그런 평론가들의 찬사와 당황 속에서 화려하게 떠오르는 혜성같은 신인. 아무래도 날 때부터 글을 썼을 것 같은 천재 소리를 들으려면 지금보다 몇 년은 일찍 등단했어야 하겠지만, 삼십 대 중반 쯤 되어, 신인임에도 원숙한 맛을 풍기는 젊은 작가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예 애들 다 키워놓고 등단하여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박완서처럼 되는 것도 괜찮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고 예쁠 때 이름을 날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뭐. 공지영 정도면 어떨까. 글 잘 쓰고, 책 잘 팔리고, 얼굴도 그만하면 괜찮고. 그런 생각을 사각거리는 몰스킨 노트에 남몰래 적을 때면, 종이 뒷면에 잉크가 비치는 것조차도 멋스러웠다. 
 그러니까, 인맥만 만들면 말이지. 인맥만. 
 나는 게시판 활동을 하면서 소문만큼은 확실히 들어 왔던 꽤 유명한 판타지 소설가의 카페에 가입했다.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은 읽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읽으면서 소양을 키워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썩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작가가 은둔중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카페 글을 아무리 뒤져 읽어봐도 작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카페 회원들은 좀비니 네크로맨서니 감나무니 사과나무니, 그런 이야기만 해 댔다. 다음에는 방향을 바꿔, 몇년 전 모 신문사의 문학상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의 사이트에 가 보았다. 책 소개와 사진이 걸려 있을 뿐,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취향이 비슷한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데는 역시 트위터가 좋다는 말을 듣고 트위터에도 가입했다. 트위터에서 열심히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어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이외수나 공지영을 팔로해서 그들의 말을 챙겨 보았다. 책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꽤 소탈한 면모가 보이긴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팔로워가 너무 많았다. 몇 번인가 그들의 트윗에 대해 내 정성어린 의견을 담아 답글을 남겼지만, 응답은 없었다. 가만히 보니 날 맞팔해 주지도 않았다. 그런 것에 대해 투덜거리면 “트위터 쓰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셔야 할 것 같다”며 엉뚱한 놈들이 시비를 걸었다. 나는 갑갑했다. 나를 이끌어 줄 만한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거나, 아니면 소통할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투자인거야.”
 동기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그런 말을 들은 것은, 바로 그런 문제로 한참 고민하던 때의 일이었다. 
 “아이돌 가수라고 해도 말이야, 신인 시절에 알아보고 그때부때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좀 더 각별하게 대한단 말이지. 지금 아시아 정상급 스타인 애들 따라다녀봐야 아는 척 안 해줘. 여튼, 팬질도 알차게 하려면 골수 팬이 되어야 한다니까. 아니면 물량공세고.”
 “물량공세?”
 “그럼, 맨날 선물 보내고 그러면 또 알아봐 주잖아. 내가 지금은 좀 시들해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SM에 월급통장을 상납하던, 뭐 그런 거 아니니. 지금이야...... 결혼이라도 하려면 돈좀 모아야 할 것 같고 그렇지만. 음.”
 진리다, 진리. 내 눈 앞의 직장동료가 갑자기 샤이니에 열광하면서 팬클럽 활동의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내게 어부지리로 득이 될 줄이야. 감사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의 지혜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너무 높이 있는 사람들을 뒤따라다니는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은 추종자들이 너무 많아서, 옥석을 가려 내는 데만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 테니까. 그보다는 차라리 적당한 신인작가를 찾아내서, 처음부터 당신 팬이라고 들이대면서 차근차근 인맥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교대를 했다. 카운터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번호표를 든 사람들이 이 쪽으로 다가왔다. 좀 더 시간이 있으면 그 작가 인맥 만드는 법에 대해 생각을 했을 텐데. 저 사람들은 밥도 안 먹고 은행에 오는 걸까.
 “통장 하나 새로 만들어 주세요.”
 일행인지, 내 카운터 앞으로 지난 시즌 유니클로에서 팔던 무슨 만화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에 스키니 진을 입고 가슴 가운데까지 내려오는 핵진주 목걸이를 건 학생같은 여자와, 삼십 대 초반의 직장 여성같은 음울한 얼굴의 여자가 함께 다가왔다. 모르긴 몰라도 신참 아르바이트 학생과 그 학생을 관리하는 직장인이나 뭐 그런 거겠지. 나는 넘겨짚으며 어린 쪽에게 작성할 서류를 내밀었다. 학생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삼십 대 쪽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자, 여기요.”
 “통장 있는데......”
 “돈 준다고 해도 이러면 어떡해요, 작가님. 우리 회사는 여기랑만 거래하는데.”
 작가님이라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저 사무실에서 시들시들해진 것 같은 서른 근처의 저 여자, 화장도 어쩐지 성의가 없고, 정신은 저기 버스정류장 근처에 떨어뜨리고 온 것 같은 저 여자가 작가라고? 전문직이나 대기업 다니는 커리어우먼도 아니고, 기껏해야 웬만한 작은 사무실에서 대리나 겨우겨우 달았으면 다행일 그런 느낌의 여자가?
 “아, 거기도 사인. 인터넷 뱅킹은 안 해요?”
 “전에 가입했어요.”
 “에이, 뭐야. 여기 통장 있었으면서 그런 거예요?”
 “예전에 깬 통장이라서.”
 “언니, 이 사람 아이디 살아 있죠? 언니?”
 나는, 마치 내 꿈 속을 들여다보듯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는,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확인해 보았다. 
 “아, 예......”
 “보안카드 새로 발급해 주세요. 이 은행 통합 전에 갖고 있던 거라서.”
 “아, 그거 아직 쓸 수 있어요. 안 버리셨죠?”
 “책상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휴, 당신 책상 완전 쓰레기통인거 내가 알거든요? 저기, 보안카드도 새로 주세요.”
 작가와 함께 왔다면, 편집자일까. 나는 수다스러운 쪽을 쳐다보다가, 얼른 새 통장과 보안카트와 서류 사본을 내밀었다. 
 그의 서류를 챙기다 말고, 나는 그의 서류 뒤에 복사된 주민등록증을 잠시 쳐다보았다. 한주영. 흔한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가만히 중얼거려 보았다가, 퇴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그 이름을 입력해 보았다. 
 한주영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은 영화배우가 한 명, 축구선수가 한 명. 한참 머리를 싸매다가 싸이월드로 들어갔다. 요즘이야 싸이월드도 한물 갔지만, 1982년생이 학교 다니던 시절에야 싸이월드도 대세였으니.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아는데 싸이에서 사람을 찾지 못할 리는 없었다. 나는 한참 뒤지다가, 사진도 무엇도 없이 그저, “빈 섬” 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는 싸이월드를 찾아냈다. 그 흔한, 싸이월드 접속용 주소 하나 따로 붙어있지 않은, 그야말로 관리가 되지 않은 티가 팍팍 나는 싸이였다. 나는 전에 누구 소개로 잠깐 만났던, 껄떡대긴 껄떡대는데 좀 어설프게 껄떡거리는 게 어디서 여자 꼬시는 걸 책으로 배웠나 싶은 한심한 아는 오빠 하나를 카톡으로 불러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쪽이라면, 네이버 다니는 아는 오빠가 좀 잘 알 테니까. 
 “뭐야, 우리 회사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그 오빠는 카톡으로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전화로 걸어댔다. 어우, 짜증나. 
 “아니, 우리 회사 쪽 페이지라도 이런 걸로 사람 찾고 그러는 건 좀.”
 “그게, 학교 선배란 말야.”
 “에이, 설마. 82년생이면 너랑 네 살이나 차이나잖아. 근데 주말에......”
 “초등학교.”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그냥 동네 아는 언니였는데 소식 궁금해서 찾아보는 중이란 말야. 근데 싸이에 아무것도 없고.”
 우와, 내가 사람 하나 찾자고 저 찌질이에게 이런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니. 다행히도 그 아는 오빠는 더 이상 주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럼말야, 차라리 여기 친구 목록에 들어가보면 어때.”
 “친구 목록은 왜?”
 “여기, 친구 중에 과 친구라고 있잖아. 이 사람 들어가 보면 대학을 어디 나왔는지 알 거고.”
 “아하.”
 “응, 학교랑 이름이랑 나이 알면 대충 나오지. 앗, 팀장님이다. 오빠 바빠서 이만.”
 하여간 매너 없기는, 그러니까 아직도 애인이 없지. 주말 이야기를 바로 씹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썼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만나면 같이 할 이야기가 없는걸. 저런 컴퓨터 회사 다니는 사람들 치고 말 통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다들 이상한 것들이나 좋아하고, 간혹 가다보면 일본 만화같은 것에나 푹 빠져있고. 심지어는 드라마도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사람들과 문학 이야기 같은 것을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그 한주영의 싸이에 연결된 친구들 싸이를 들여다보는데, 전화벨이 올렸다. 
 “음, 나야. 좀전에 그 사람 있잖아. 한주영.”
 “응?”
 “그 사람 친구 싸이 들어가서 보다보니까 나온 사진 보니까 아는 사람 같아서.”
 “안다고?”
 “그래, 어...... 맞다, 이 사람 이쪽 사람이거든. 게임회사 대리인데.”
 “에이, 아니겠지.”
 “맞아. 거기 사진 한 번 봐봐.”
 시키는 대로 클릭해 보았다. 아까 보았던 무표정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무표정한 얼굴에 안경을 쓰고, 머리도 대충 빗어 묶은 듯한, 어쩐지 시들시들해 보이는 여자. 지금보다 몇 년은 어린 얼굴이지만, 여전히 만사 재미가 없어보이는 그런 얼굴. 
 “맞지? 그 사람이면 싸이 안 해. 원래 그런 거 싫어하거든.”
 “연락처 알아?”
 “알긴 아는데...... 야, 정말 아는 언니 맞는거지?”
 “그럼 뭐?”
 “하긴, 네가 왜 이 사람을 이유도 없이 찾겠냐. 저기, 전화번호는 나도 없고.”
 일단은 회사 쪽 메일주소를 땄다. 메일주소가 있으면 어떻게든 더 찾아볼 방법도 나오겠지. 나는, 모처럼 쓸모가 있었던 아는 오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쓸모가 있었던 것은 있었던 것이고, 주말에 만나달라거나 그런 말은 이쪽에서 사절이니까. 이번에는 이름은 빼고, 메일주소 아이디만 넣고 검색을 해 보았다. 정말로 무슨 게임회사와 관련된 글만 수두룩하니 나오던 끝에, 몇 년 전 날짜로 ‘원고 투고’라는 제목이 붙은 글 하나가 걸렸다. 클릭해보니 비번이 걸려 있었지만, 글을 쓴 사람의 아이디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용을 쓴 끝에, 나는 ‘빈섬’ 한주영의 블로그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전에 한주영의 글을 읽어본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서, 창구 너머로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나는, 한주영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던 우아한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글을 썼는지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겐 그럴 권리가 있었다. 뭐, “곧 독자가 될 예정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그렇게 겨우 찾아낸 그의 블로그, 가장 최근 포스팅에는 짧은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 라이트노벨 쪽 출판사에서 고등학교 배경의 추리소설을 내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래 쓰던 소설이 제 데뷔작이 되길 바랐기 때문에, 이쪽을 e-book으로 먼저 출간하려고 알아봤습니다. 다행히도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네요. ‘가시나무 소녀’는 이번 달에 e-book으로 나옵니다. 라이트노벨 ‘출동! 여고생 탐정단’은 다음 달에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에는 유료로 보게 되어 서운하다거나 신작을 기대한다거나 하는 덧글 몇 개가 달려 있었다. 나는 가시나무 소녀 쪽이 어디 올라와 있는지 먼저 찾아보았다. 뜻밖에도, 그녀는 나와 같은 소설 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게시판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나는 차분하게 앉아 밤새 한주영의 소설을, 일종의 판타지인 ‘가시나무 소녀’와 죽어가는 연인과의 로맨스를 담담하게 풀어낸 ‘네가 없을 미래에서’를 찾아 읽었다. 완결을 낸 장편소설이 두 편이 되도록 마땅한 출판사의 컨택도 받지 못한, 서른이 넘어서 출판사의 문예상이나 언론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하는 것도 아닌, 고작 라이트노벨로 데뷔하는 늦깎이. 성실하게 글을 쓰긴 하지만 눈부시진 않은, 그저 평범한 노력가의 작은 승리. 또 모를 일이다. 게임회사 같은 데는, 만화나 잡지나 라이트노벨 같은 데와 합작해서 뭔가 이벤트를 만들기도 하니까, 그렇게 연줄이 닿아서 데뷔하게 된 것일지도.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면을 떠나서 기분은 좋았다. 그녀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나도 그녀 정도의 글은 언제든 쓸 수 있으니까. 
 나는 한주영의 소설 게시판에 덧글을 달고 그녀의 블로그에 덧글을 달고 트위터를 팔로하고 내 블로그에 ‘출동! 여고생 탐정단’의 감상문을 적었다. 처음 얼굴 봤을 때도 느꼈지만 영 붙임성이 없는 여자였다. 보통은 독자가 자기 소설에 감상 남겨주고 그러면 고마워서라도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 아닌가. 슬슬 그 짓을 포기할까 생각할 무렵, 그녀가 내 덧글에 반응을 보였다. 피드백이 영 늦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반년쯤 그 짓을 계속하다보니 그녀가 내 덧글에 간간히 반응을 보이는 일도 점차 늘어났다. 트위터에 맞팔을 해준 것은 반년하고도 두 달이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 안 된 사람이었다. 저가 무슨 공지영이나 이외수면 또 몰라도. 아니, 트위터도 한 주에 열 트윗도 안 올라오는 꼴로 봐서는, 트위터를 제대로 사용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는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주영이 ‘출동! 여고생 탐정단’을 3권까지 내고, 게시판에 다른 소설 한 편을 또 마무리짓는 사이, 나는 여섯 편의 소설을 새로 시작했다. 완결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미리부터 결말까지 다 보여주면 책을 팔 때도 애로사항이 있을 테니까, 완결은 출판사 컨택을 받은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 소설 사이트 게시판에 그런 문제에 대한 질문을 올렸더니, 역시 아니나다를까, 너무 많이 연재된 상태의 글은 출판사에서도 컨택하길 꺼릴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가만히 보면 한주영도, 반짝거리진 않아도 무난하게 안정적인 글은 쓰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여우같이 머리를 쓰지 못하고 곰같이 무식하게 글만 쓰면 될 줄 알고 애를 쓰다 보니, 완결까지 낸 소설을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지 못하고 e-book으로나 내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여튼,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녀의 팬을 자처하고 있었으니까. 팬은 팬이지. 그것도 무명이던 시절부터의 팬. ‘출동! 여고생 탐정단’이 책으로 묶여서 서점에 깔리기 전부터 그녀의 팬 흉내를 내고 있었으니까. 
 그런 팬에게, 그 여자는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불친절했다. 어린애들이나 보는 소설 몇 권 냈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건지. 
 “미안합니다. 저는 다른 분의 원고를 봐 드리지 않아요.”
 그렇게 여러 번 당신 팬이라며 어필한 내가 작가지망생이고 당신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나는 작가 지망생인데 당신이 내 원고를 한 번 봐 주면 좋겠다며 내 게시판 주소까지 달아서 디엠을 보내자 사흘만에 답변이라고 보내온 게 저런 것이었다. 나는 내 소설을, 쓰다 만 소설을 싹 갈무리해 파일에 담고, 그 첫 페이지에 내 재능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해 적어내려갔다. 그 파일을 지난번 그녀의 블로그를 뒤질 때 찾아낸 네이버 쪽 메일주소로 일단 보냈다. 소설을 투고할 때 썼던 메일 주소니 아예 버려두진 않을 거다. 
 답메일이 날아온 것은 2주는 지난 뒤의 일이었다. 
 
 저는 편집자도 아니고, 누굴 가르치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른 분의 미발표작을 읽고 평가할 만한 안목은 없습니다. 보내주신 메일은 읽지 않았고 앞으로 읽을 생각도 없으니 이런 부탁은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메일은 짧았다. 그래, 그러니까 내겐 바로 그 편집자가 없다고. 애초에 그걸 편집자에게 보일 인맥이 없다니까. 왜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나는 소설 사이트 쪽에서 쪽지를 주고받던 사람에게 지난번 소개받은 익명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익명으로 한주영에 대해 적었다. 그녀가 얼마나 불친절한 사람인지를. 그녀가 내, 소설을 봐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얼마나 교만하게 무시했는지도. 
 남을 칭찬하는 일에는 무심한 사람들도, 남을 비난하는 일에는 열광하며 달려들곤 한다. 내가 올린 그 몇 줄의 글과, 혼자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듯한 모습을 주지 않으려 짐짓 다른사람인 듯 덧글로 적어 올린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지 모르는 몇몇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 게시물은 화제가 될 만큼 오래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진 않았지만, 한주영을 옹호하는 쪽과 한주영은 재수가 없다는 쪽은 서로 공방을 일으키며 십여 개 남짓한 덧글을 추가로 남겼다.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쓴 글 중 열 개가 넘는 덧글을 받아본 것은 이 글이 처음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한주영은, 예상한 그대로 인터넷 쪽으로는 영 서투른 사람인지, 그 익명 게시판에서 일어난 일 따위는 모르는 듯 했다. 둔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에게 1년 가까이, 무명시절부터 팬 노릇을 해준 게 아까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관성처럼, 이제는 덧글도 달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트위터와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주영은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 쓰는 게 아닐 텐데.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게을러서 그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내 블로그에 그녀의 블로그에서 클릭해 들어온 리퍼러가 찍히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글은 읽지 않는다고 해 놓고 몰래 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는 한주영을 상상하며, 모짜르트의 악보를 읽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사실은 질투심에 불타고 있던 살리에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었고 독자를 넘어 동료작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을 그런 교만함 때문에 잃어버린 한주영을 가엾게 생각했다. 
 한주영이, 익명게시판에 적은 내 글에 직접 반응한 것은 두 달 가까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간만에 그녀의 블로그가 업데이트되었다 했더니,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가끔, 글을 읽어보고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회사에서의 글이라면, 일이니까 당연히 평가하고 승인하거나 돌려보내거나 고칠 점들을 함께 의논해나가곤 합니다. 거대한 세계관 안에 이야기가 맞아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쓰다 보면 세부적인 부분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점들을 관리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작가님이, 이번에 내 책이 새로 나왔다거나, 그동안 온라인으로 쓰던 소설이 완결났다고 넌지시 말씀해 주시면 역시 사서 읽습니다. 저는 저와 사적으로 아는 분의 글에 대해서는 감상을 말씀드리지 않고, 그분들께도 “읽었다”고만 언급하는 편입니다.
 작가 지망생님들의 글, 또는 다른 작가님의, 아직 어떤 식으로든 발표되기 전의 글에 대해서는 읽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작가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작가가 된 이후에는 이미 완성된 글에 대해, 그 분량이나 몇몇 표현에 대해 편집자와 논의할 수는 있어도 다른 작가와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움도 되지 않고요. 제 자신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글을 보여줄 창구가 없이 직접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여 투고해야 했습니다. 요즘은 온라인 게시판이 있고 사람들의 피드백이 있으니 인터넷이 없던 시절보다는 낫겠네요. 사람들의 반응이라는 것이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각 출판사마다 투고를 받는 연락처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원고를 보내고 상담을 받으시는 쪽이 좋겠어요. 직접 찾아가더라도 출판사에는 인력이 늘 부족하다 보니 바로 원고를 살펴보고 도움을 주시긴 어려울 겁니다. 투고해서, 2주정도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으면 읽긴 읽었지만 답변해주기엔 너무 바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추신 : 당신 한 사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연히 찔려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지금, 완결나기 전의 소설에 대해서는 읽지 않는다는 거야? 읽어도 감상따위 남겨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거야? 게다가 이 추신은 뭐야. 나를 대놓고 의식하는 듯한 이 추신에, 나는 즉시 반응했다. 
 
 현월야 : 빈섬님, 참 잘나셨네요. 
 
 올려놓고 보니 한줄 더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월야 : 당신처럼 인맥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의 글을 누가 출판사에서 읽어봐주기나 하나요?
 
 20분쯤 지난 후 답글이 올라왔다. 한주영의 덧글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의 소설 게시판에서 한주영과 친한 척 굴던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Rainy83 : 새벽 2시에, 빈섬님이 글 올리시고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런 글이라니. 현월야님 스토커예요?
 현월야 : 우와, 인기작가는 다르네. 바로 친목질 하던 사람들이 와서 옹호해주고. 좋네요. 
 현월야 : 나같은 오래된 팬을 막 무시하는데도 친목질 한방이면 다 처리되고. 인기작가 되고 볼 일이네. ㅋㅋ
 빈섬 : 현월야님, 저와 같은 사이트에서 연재하셔서 게시판 본 적 있어요. 시작하신 글은 많아도 완결하신 글이 없던데, 일단 글을 한 편이라도 완결을 내시죠. 한 편의 대하장편소설을 완결짓지 못한 사람보다 열 편의 짧은 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게 실력을 쌓는 방법이니까요. 
 Rainy83 : 이런 사람 상대좀 하지 마세요. 왜 다 그렇게 지성껏 상대를 해서 이상한 애들을 끌어들여요. 
 현월야 : 이상한 애? 말 다하셨어요? 그리고 한주영씨, 나 의식해서 이런 글 쓰는 거 다 알아요. 심심하면 내 블로그 들어와서 글 읽고 가면서 뭐라는 거예요, 이 추신. 
 빈섬 : 리퍼러를 잘못 아시나 본데...... 그 개념이 아닙니다. 
 Rainy83 : 아 진짜 이 사람 제정신이야. 그거 아무나 이 블로그에서 당신 이름 클릭하고 그쪽 블로그로 넘어가면 찍히는 거잖아요. 닌자툴 처음 써 봐? 
 현월야 : 어디서 반말 짓거리야. 당신 나 언제 봤다고. 
 Rainy83 : 익게에 빈섬님 까는 글 올려놓은 것도 당신 아니야?
 현월야 : 어디 익게? 무슨 익게? 
 빈섬 : 다른 분들 소설 안 봐드리는 이유는, 그분들이 아이디어를 도용당할 가능성과 우연히 비슷한 아이디어를 썼을 경우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이니님 내일 출근 안 하세요? 가서 주무세요. 그리고 현월야님은 다시 뵙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Rainy83 : 너같은 애들이 득실거리는 익게. 
 현월야 : 잘났어, 인맥으로 데뷔한 인간이 뭐라는거야. 
 Rainy83 : 빈섬님이 왜 인맥으로 데뷔했다는 거야? 증거 있어?
 현월야 : 게임회사 사람이면, 다 어떻게 인맥이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쥐뿔도 모르면서 끼어들긴.
 Rainy83 : 쥐뿔도 모르는 건 현월야 당신이야. 설령 그런게 있었더라도 실력이 닿지 않으면 데뷔 못 하거든? 출판사가 자선사업체냐? 
 현월야 : 빈섬님이 공모전을 뚫길 했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어? 작가라고 해도 기껏 책 내는 건 애들 보는 라이트노벨 따위 아냐. 실력은 무슨 실력. 
 Rainy83 : 공모전 맞는데.
 Rainy83 : 나 다니던 회사 공모전 뚫었는데 우리 회사가 망했음. ㅠㅠ 상금도 못드렸음. 
 Rainy83 : 또 인맥 어쩌고 할까봐서 하는 말인데 나 그 공모전 전에는 빈섬님 알지도 못했음. 일이 이렇게 된 거 새로 들어가는 회사에 빈섬님 당선원고 갖고가서 제안해 보자고 그러다가 친해진 것임. 
 Rainy83 : 근데 그것도 모르는거 보면 오래된 팬 따위는 확실히 아닌 모양이네. 그 시절부터 빈섬님 알던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Rainy83 : 다른 설명이 필요하삼? 
 
 나는 창을 닫았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다 알아들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 깐죽거리는 Rainy83의 말을 뒤엎을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작전상 후퇴였다. 물 한 잔 따라 마시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저 침착해 보이는 빈섬 한주영 선생과 싸가지라고는 없는 Rainy83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 있을까. 나는 생각을 했다. 머리를 굴렸다. 그때 휴대폰으로 새 메일 알림이 떴다. 나는 메일을 켜 보았다. 내 블로그에, Rainy83의 덧글이 매달려 있었다. 
 
 Rainy83 : 당신 블로그 잘 봤어. 소설도 최근에 쓴 것 대충 훑어봤고. 캐릭터 설정만 보면 나쁘지 않은데 최근작 세 편의 스토리가 똑같아. 자기복제를 계속하는데 그 최초의 원본도 썩 좋은 편이 아니고, 설정 말고 본편에 묘사된 캐릭터들이 10화만 넘어가면 다 산으로 가. 대사도 어디서 들어본 대사만 치는데, 미안하지만 빈섬님 소설하고 주인공 이름만 다르고 대사가 똑같은 부분도 세 군데나 찾았어. 취미로 인터넷에 소설 올리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순 없지만 계속 출판 생각하는 모양이고 출판계에 불만도 많은것 같은데, 간단히 말하면 지금 실력으로는 당신 아버지가 출판사 사장이라고 해도 그 책 내기 힘들어. ok? 
 
 나는 그 덧글을 깨끗하게 지웠다. 안목이라고는 없는데다 작가와 친목질이나 하는 어린 편집자의 말 따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83년생이면 나보다 세살 위일텐데, 그날 봤던 그 학생같던 애가 이 사람일까. 나는 공연히 서랍을 열어 나이트크림을 꺼내 뺨과 얼굴에 문질러 발랐다. 지난번 소셜커머스로 구입한 모델링 팩 재료도 꺼내놓았다. 팩을 하면 크림이 더 잘 흡수될 것 같아, 팩 재료를 얼른 물에 개어 얼굴에 발랐다. 팩제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나는 네이버 블로그나 지식인을 뒤지고 다녔다. 몇달 전엔가, 한주영이 어디 웹진과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 다시 읽었다. 자기만의 철학과 논리적인 배경 없이 글을 쓸 수 없다는 허세어린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시작한 글이라면 어떻게든 완결을 내는 연습이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도 보였다.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으니 다른 직업이 있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한 질문에 대해서는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글을 쓰고, 한 달에 단편소설 한 편이라도 완성하라고 답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 정규 교육과정 12년동안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이면 누구나 다 풀 수 있다는 수능문제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보통의 재능에도 운이 더해지면 열고 나갈 수 있지만, 재능이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열고 나갈 수 없는 문. 그 보이지 않는 문의 중량감을 느끼며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 내 글을 팔아, 부와 명성과 속물들의 관심을 얻고 싶었다. 데뷔를 했고 책을 냈지만 여전히 시시하고 재미없는 저 잘나신 작가선생님과 달리, 나는 작가가 되어 누릴 수 있는 모든 화려함을 내 손에 쥐고 싶었다. 낭만과 환희, 귓바퀴를 간지럽히는 속삭임과 모험. 와인과 초콜릿과 에메랄드빛 바다. 여행을 떠나고,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내 글에 환호한 사람들이, 나를 정신적인 멘토로 여기며 먼 이국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뇌와 광기에 사로잡혀 술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이어지고, 누군가와 격렬한 사랑에 빠지고 또, 참담한 이별을 겪고 싶었다. 나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땅에 매인 채 영원히 날아오를 수 없는 춘향이의 그네뛰기처럼, 그렇게 허구헌날 매일매일 무기력하고 뻔한, 범속하고 범속한 인생살이에 한낱 동네 은행원으로 살아가는 대신에. 천형처럼 고독한 영혼을 안은 채 그 외로움을 끊임없이 놀고 춤추며 세계의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일로 달래고 싶었다. 카페 모퉁이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동등해지고 싶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명동 백작'의 시대로, 혹은 '미드나잇 인 파리'의 시대로.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한주영과 동등해지고 싶었다. 그녀가 나를, 한낱 작가지망생에 불과한 상대할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블로그에 들어가 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몰스킨 다이어리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쓰듯, 한 자 한자 성의를 담아 두드렸다. 쓸모없이 진지한 그녀에게는 충격일 수도 있을 이야기. 그러나 내게는 인생 그 자체인 이야기. 그녀에게는 이런 내 모습이 어린 사람의 허세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그런 신중하고 서투른 척 하는 모습조차 허세로 읽히는 내게, 이 글은 지금까지 썼던 어떤 글보다도 솔직한 자기고백이다. 아마도 이 글을 보면, 그녀는 조금은 나를 신경 쓸 것이다. 어쩌면 몇 번쯤, 들어와서 내 블로그를 다시 들여다 볼 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 글을 읽기를, 이 글이 그녀를 도발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일부러 이 글의 첫 문장을 굵은 글씨로 써 내려갔다. 
 매문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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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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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12.12.01 01:33 댓글 수정 삭제
    대놓고 말하는 것 같은데 이것저것 뒤섞여 있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제목도 강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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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망재 12.12.01 11:43 댓글 수정 삭제
    쓰는 내내 짜증내면서 썼는데 쓰고 나니 개운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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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12.12.05 04:06 댓글 수정 삭제
    치열한 이야기네요.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싸움. 그 싸움 끝에 뭔가 묵직한 거 하나를 건져내신 듯도 하고요. 마지막에 이야기가 몸을 한번 탁 비틀어주는 느낌이, 그 순간 뭔가 힘이 느껴진달까. 쓰시느라 에너지 소모가 크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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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12.05 11:54 댓글 수정 삭제
    슬프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어서 가슴이 덜컥거렸다면, 제가 속물이라는 증거일까요. 잘 읽었습니다.
분류 제목 날짜
해망재 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4 2012.11.30
해망재 안나푸르나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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