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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영 무료체험

2013.06.30 23:0506.30

무료체험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진심이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스토커 짓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고 대답하겠다. 그렇다. 나는 스토커다. 더럽고 비열한 범죄자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사랑하는데. 들키지 않으면 장땡인데.

그녀가 가사용 안드로이드를 사겠다고 했을 때, 일주일간 체험 서비스를 신청한 즉시 나는 서류를 위조했다. 체험용 안드로이드인 척 그녀와 일주일 동안 한 집에서 머물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된다. 그녀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이고, 손수 빤 속옷을 입히고, 내 손길이 닿은 이불 위에서 천진하게 자는 모습을 지켜볼 테다. 결코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할 생각이 아니다. 난 그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변태일 뿐이다. 어쨌든 들키지 않으면 만사 오케이.

그녀는 아름답다. 사랑받는 사람이다. 어느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사랑은 더 고강하고 깊어질 것이다. 그녀가 내게 사랑을 돌려주리란 기대는 없다. 그녀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나 같은 변태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은 일말도 없다. 슬프지 않다. 변태가 어디 상대방 신경 쓰면서 변태 짓 하겠나. 이해받지 않아도 좋다. 내 주제와 한계를 잘 알고 솔직하단 점에서 나는 과히 신사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드디어, 드디어 사랑하는 그녀와 그녀의 보금자리와 만난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다스리느라 아주 진을 뺐다. 초장부터 들통 나서 은팔찌를 차게 되면 곤란하다.

토요일 아침 9시. 아직 꿈나라에 있을 그녀. 그녀의 단잠을 깨우는 일은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조급한 맘에 문이 열릴 때 까지 초인종을 눌렀다. 5분 뒤 인터폰이 연결됐다.

 

--- 누구세요……

 

잠긴 목소리도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가사용 안드로이드 무료체험 서비스입니다.”

--- 맞다. 오늘이었지.

 

삑 소리와 함께, 사랑하는 그녀의 비밀의 화원이, 은밀한 성이 드디어 나타났다! 학수고대했다. 이 문을 넘어서면 꽃처럼 향긋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우웁.”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부패한 쓰레기 냄새였다. 순간 쏠리는 토기를 참았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얼마나 방치했는지 모를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였다. 분리수거도 없이 쓰레기봉투에 있는 대로 쑤셔 넣은 듯, 음식물 쓰레기가 부패해 참상을 만들었다. 맙소사, 쓰레기봉투 안에 구더기가, 하얀 구더기가 드글드글 움직였다.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시커먼 파리 떼가 나를 적으로 간주하고 덤벼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마당 한 편의 장미나무에서 떨어진 꽃잎과 낙엽은 몇 년을 묵혔는지 바닥과 혼연일체였다. 그 위로 개미와 쥐며느리가 도로를 텄다. 미친, 이게 무슨 꼴이야? 대문에서 열 발자국만 나가면 쓰레기 수거함이 있잖아?

무슨 사연이…… 그래. 사연이 있을 터였다. 나는 파리 떼를 손으로 내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아름답고 어여쁜 그녀는 천사처럼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그럼 수고 좀 해. 난 더 자야겠어.”

 

……말하지 않았다. 비명이 튀어나오려다 막혔다. 그녀는 꼬질꼬질 다 헤진 추리닝 차림으로, 감은지 일주일은 된 것 같은 떡 진 머리를 긁으며 시큰둥하게 말하고 어기적어기적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넋을 잃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해선 안 될 말이지만 할 수 밖에 없는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씨발……”

 

집안은 마굴이었다. TV에서 종종 보았던, 쓰레기를 모으는 정신이상자의 집 풍경이 겹쳐졌다. 정확히 그만큼 심하지는 않다. 최소한 발 디딜 틈은 있으니까.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그런 꼴이 될 위기감을 느꼈다.

쓰레기와 택배박스가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바닥 청소는 해 본 역사가 없는지 튀튀한데다가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었다. 쉰내가 진동하는 빨래더미엔 버섯이 자랐다. 가구며 가전제품의 먼지는 말도 마라. 딱 봐도 걸레를 한 순간에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준이니까. 전등갓 안은 죽은 하루살이와 나방의 시체로 수북해서 불을 켜도 도통 밝지가 않다. 거실이 이 지경인데 부엌과 화장실은, 하느님.

저게 인간이냐? 미쳤나? 이러고서 어떻게 사는데? 돼지우리도 이보단 깨끗하겠다. 아니지. 돼지는 깨끗한 동물이다. 미안하다, 돼지야. 그녀고 자시고 너무하다, 너무해!

부엌, 부엌이 말이지. 얼마나 방치했는지 모를 설거지와 싱크대가 어떤 모습이냐면, 회생 불가능한 곰팡이 그릇과 악취가 펄펄 풍기는 오수와 초파리 군락이라고 함축해 말하겠다. 싱크대 위로 오동통한 바퀴벌레가 신나게 달려가기는 예사다. 와, 미친.

화장실? 하하. 이젠 이 집의 기본 환경요소라 믿어 의심치 않는 곰팡이랑 물때는 그렇다 쳐. 엉덩이 대고 앉는 변기의 누런 오줌 때와 튀겨서 굳어버린 똥 자국은 좀 닦지 그래. 여자잖아! 칠칠맞게 생리 핏자국 남겨두지 마! 징그럽다고! 쓰레기통 비워! 쓰레기통이 넘치다 못해 보이지도 않을 만큼 휴지를 쌓아두면 어떡해! 하수구 망 위에 시커먼 머리카락 뭉치는 왜 남겨놨냐? 호러 영화냐? 기절할 뻔 했다! 파리랑 거미랑 민달팽이랑 집게벌레가 창궐하는 화장실이라니, 쌍 팔년도 푸세식 화장실도 아니고!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엄마, 고마워요. 날 정상으로 키워줘서. 비록 변태긴 하지만 최소한 사람의 본분을 잊지 않게 해줘서. 이딴 상태에서 태평하게 살지 않는 정신머리로 키워줘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사랑해요. 앞으로 효도할게요.

자, 현실도피는 이쯤하고. 지금 내게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지랄 마! 개소리 작작 해! 이런 정신병자를 사랑하겠냐? 그녀가 싸는 오줌이고 똥이고 다 사랑할 수 있지만 오줌 때와 똥 묻은 휴지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고!”

울고 싶다. 소중한 마음을 가차 없이 부정당한 기분이다. 절망이 엄습한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녀를 버리겠다. 그간 그녀에게 바친 사랑이 아깝고 억울하다. 최소한 사람답게는 해 줘야겠다. 이 지랄 같은 집을 살만하게 치워놔야 그나마 덜 억울하겠다.

나는 청소를 시작한다. 웬만한 건 다 내다버리면 되니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 눈에 띄는 쓰레기부터 내다버렸다. 20리터 쓰레기봉투로 열다섯 봉지, 50리터로 두 봉지, 박스는 2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부지런히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나를 보고 이웃에선 이사 가느냐고 물었다. 왜 내가 다 부끄러운가.

락스와 곰팡이 제거제를 발굴해내서 화장실부터 문지르고 닦았다. 변기는 손도 대기 싫었지만, 물청소를 할 수 있단 점에서 화장실 청소는 다른 데 보다 수월한 편이다.

이어 부엌을 공략했다. 락스는 하늘이 준 선물이 틀림없다. 세정력은 물론이고 역겨운 냄새를 가려주니까. 집 안에 락스 냄새가 가득하니 평화가 찾아온다. 물때와 찌든 때를 공략하고 곰팡이를 박멸한다. 싱크대 서랍을 모두 열어 바퀴벌레 똥을 죄 쓸어버리고 초파리 굴도 제거. 곰팡이 핀 그릇은 살릴 수 있는 것만 살리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으로 직행. 유통기한 지난 음식물도 모두 폐기. 냉장고는 마굴 속에서도 아수라장이다. 다 녹아버려서 형체를 잃어버린 정체불명의 식재의 악취에 헛구역질을 세 번 쯤 했다. 콩나물인지 양파인지 중요하진 않겠지. 기름 때 지천인 가스레인지와 벽면은 철 수세미로 빡빡. 소독. 소독. 삶아서 죄 소독! 그냥 집을 통째로 들어다가 락스에 담가버리고 싶다!

거실 환기! 먼지 털기! 바닥 쓸고 닦기! 가구 가전제품 닦기! 물건 수납! 탈취제 뿌리기! 유리창도 다 닦아! 창틀 먼지 제거! 청소기는 사놓고 한 번 쓰기라도 했냐? 이럴 거면 날 줘! 기계가 불쌍하지도 않아? 입는 옷인지 뭔지 알 게 뭐냐. 걸레로 써주지. 마당? 쓰레기를 치웠는데 무서울 게 뭐냐. 철 쓰레받기로 낙엽을 박박 긁고 물청소하면 말끔하지! 그래,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장미나무 가지치기는 서비스로 해주지. 하하하. 기분 좋다.

빌어먹을. 맛이 갔군. 이쯤 되니 잡념조차 사라지는 기분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이럴까. 마지막으로 나는 무심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 엉덩이를 긁으며 잠에 취한 한 마리의 조악하고 더러운 짐승을 질질 끌고 나왔다. 비몽사몽인 짐승을 화장실에 처넣는다.

 

“씻어요. 박박 씻어요. 두 번 씻어요. 땟국물 안 나올 때 까지 밀어!”

 

그녀는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고 감탄을 터트리더니 주섬주섬 샤워를 시작했다. 자, 이제 방을 습격하자.

방 상태는 다른 데에 비해 처지가 나았다. 아무래도 자고 생활하는 곳이라 그렇겠지.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다행이다. 짐승에서 꼴불견 인간 정도로 등급 조절 해주마. 그래도 20리터 쓰레기봉투 세 장은 썼다. 그녀의 속옷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도 전혀 음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누렇게 탈색된 브라자나 지린내가 진동하고 똥방귀 흔적이 역력한 팬티에 흥분할 만큼 나는 상변태가 아니다. 표백제에 아예 담금질을 해야 할 지경이다. 침대 위의 이불을 죄 걷어버리고 손빨래한다. 분노를 담아 콱콱 힘주어 밟는다. 구정물 봐라. 용케도 병에 안 걸리고 살았다. 더러운 거도 면역인가보다. 정말 인간의 적응력에 찬사를 보낸다.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던져놨으면 아주 잘 살았겠다.

샤워를 끝낸 그녀는 내가 평소 알던 모습으로 돌아와 윤이 나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TV를 틀었다. 야속하고 괘씸해 죽겠다.

총 걸린 시간 8시간 35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마굴을 사람 사는 집으로 바꿔 놨다. 후련하다. 나는 지금 태어나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다. 대견하다.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하얗게 표백된 그녀의 브라자와 팬티가 천사의 날개 짓처럼 너울거린다. 번뇌가 씻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해냈다. 난 해냈어!

이젠 뭐가 어찌됐든 상관없어. 욕망 따위 이 청결함과 만족감에 빗댈까보냐. 잘 가라, 내 애욕아. 열정아. 무기여 잘 있거라……

 

 

 

일주일 뒤, 그녀는 가사용 안드로이드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판매처를 찾았다. 판매사원이 친절하게 상담에 응했다.

 

“체험서비스는 만족하셨습니까?”

“무척 만족했어요. 구매하려고요.”

“일주일간 체험용 안드로이드를 통해 고객님의 생활패턴을 분석한 결과, 고객님께는 ‘어머니 클래스’의 안드로이드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녀는 클래스에 따른 차이점이 무엇이냐 물었다. 사원은 사심 없이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당사에서는 고객님의 생활패턴과 안드로이드 의존율에 따라 ‘가정부 클래스’, ‘연인 클래스’, ‘어머니 클래스’로 나누어 출시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무척 섬세한 기계입니다. 주인과의 궁합을 최대한 맞춰야 고장이 적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님처럼 어머니 클래스가 필요한 분이 가정부 클래스나 연인 클래스의 안드로이드를 사용하실 경우, 안드로이드가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쉽게 고장이 나버립니다. 가정부 클래스는 일반적인 가사 노무원 급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주로 명령받은 일을 처리하며, 중노동은 불가하고 가격대는 가장 저렴합니다. 서빙이 필요한 업종이나 가정주부의 도우미로 주로 사용됩니다. 연인 클래스는 마치 연인이나 배우자가 챙겨주는 만큼, 보다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사생활 침범이라고 여기실 수 있습니다. 혼자 자취하고 바쁜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알맞습니다. 간호 업종에도 간호용 안드로이드 대신 사용되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객님께 추천한 어머니 클래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고객님의 생활에 대한 부분이라면 뭐든지 해 내는 만능 일꾼입니다. 생활력이 많이 떨어져서 어머니 급의 봉사와 희생수준이 아니라면 감당하지 못하는 고객님께 적합합니다. 가격은 가장 높고 자주 잔소리를 하지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녀는 생활력이 없다는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그러나 곧 ‘그러니 가사 안드로이드가 필요하잖아’라며 선선히 납득하고 어머니 클래스의 안드로이드를 사겠다고 말했다. 관련 서류를 작성하면서 문득 생각나 물었다.

 

“체험용 안드로이드는 어떤 클래스였어요?”

“연인 클래스입니다. 드문 경우인데, 고객님이 체험 사용하신 일주일 동안 해당 안드로이드의 수용 가능 범위를 초과하여 시스템이 터져버렸어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싹 포맷하면 되니까요.”

 

그녀는 비로소 안심했다.

60개월 무이자 할부로 카드를 긁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날 것처럼 가벼웠다.

 

 

- END

안드로이드 연작,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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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No Profile
    모나위 13.07.01 02:54 댓글

    막판 단락 읽으면서 아! 하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아! 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 모나위님께
    No Profile
    양원영 13.07.01 11:36 댓글

    드러운 이야긴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하하 ㅠㅠㅠ 어머니 클래스 안드로이드 보급이 시급합니다...

  • 양원영님께
    No Profile
    pena 13.07.01 13:00 댓글

    하지만 비싸겠져....... ... 비싸도 렌탈할 테야.........

  • pena님께
    No Profile
    양원영 13.07.01 13:21 첨부 1 댓글

    나오기만 한다면...


    take.jpg


    이럴텐데 말이에요 흡 ㅠㅠ 내 돈 가져가! 가져가라고! 돈도 없지만!

  • No Profile
    매미 13.07.16 13:31 댓글

    이렇게 되면 가정부 클래스는 또 어떤 성격인지 궁금하네요. 즐겁게 읽고 갑니다. ^^*

  • 매미님께
    No Profile
    양원영 13.07.17 08:24 댓글

    정말 서비스 마인드의 성격이지 않으려나요? :) 그렇다보니 겉다르고 속 다른 시크남/시크녀 일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즐겁게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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