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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영 인간의 표피

2010.11.27 01:0211.27


 어느 날, 제퍼 로이튼이라는 사람이 ‘관문 우주론’을 발표했다. 관문 우주론은 인류가 어느 한계 이상 우주에 대해 알아낼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우주에는 일정 거리마다 지정된 범위가 있고, 그 범위를 넘어서기 위한 관문이 존재한다. 인류가 태양계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태양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양계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행성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제퍼는 이 관문은 10개라고 말했다.
 그의 관문 우주론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이미 인간은 은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우주의 시작과 끝도 계산할 수 있었다.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 했을 뿐이었다. 제퍼의 주장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비난받았고, 학계에 정식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의 우주론은 결정적으로 학자들의 역린을 건드렸는데, 바로 관문에 관여하는 것이 신이며 지구의 과학은 신의 주관 하에 인간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인류의 찬란한 유산을 발견해낸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한낱 신이 주는 거짓된 정보에 열광하는 바보 멍청이로 몰아넣었다고 비난받았다. 제퍼에 말대로라면, 우주에 대한 어떤 발견도 모두 무의미했다.
 제퍼는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왜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태양계라는 행성계 뿐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상 인간이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면, 인간은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이 작은 별에 인간을 존재케 하신 이유는 다름없습니다. 인간을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학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는 우리가 신이 만들어둔 세계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인류가 정말로 진실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관문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의 시험이자 도전이 될 것입니다.”


 제퍼는 관문 우주론을 주장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여러 추측이 난무했고, 가장 힘을 얻은 설은 그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궁극의 비과학적 형태의 계기이니만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는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제퍼와 관문 우주론은 비교적 오랜 시간 조롱꺼리로 남았다. 특히 창조론자에 대한 비난에선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제퍼 사후에는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주장을 근거도 없이 우기는 현상을 제퍼 증후군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 * * * *


 


 30억년이 지나고 태양계가 사라졌다. 한 때 지구인이었던 사람들은 살아남아 우주 여기저기에 터전을 마련했다. 이미 사람들은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났고 자라난 과학과 기술의 계보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수록 사소한 진리조차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나기 일쑤였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퍼는 알고 있었다. 누가 우주를 우주라고 불렀는지는 모르나, 우주에 대해 아는 것과 같았다. 상대성 이론은 사라졌지만 제퍼 증후군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지구라는 별과 태양계라는 터전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구와 태양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별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다. 죽음 또한 피할 수 있었다. 지독하게 오래 살았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Human)이었다.
 쿼크리온은 학자이며 탐험가였다. 나이는 12만 5765살이었다. 그의 본업은 은하를 직접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10만년동안 오로지 애지중지하는 컴퓨터 렙티와 단 둘이서 일했다. 그의 일은 누군가와 교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했다. 어떤 사람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도 그리는 일에서 은퇴한 후, 쿼크리온은 점점 우주 외부로 나아갔다. 단 한 번도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았다. ‘우주의 끝을 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목표로 2만년을 허비했다. 어차피 시간이란 무의미했다. 얼마든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일에 덤벼들었다.


 “영민한 렙티. 앞으로 몇 개의 은하단이 있지?”
 “현명한 주인님. 현재 위치에서 인지할 수 있는 200억 광년 안에는 총 8,143개의 은하단이 있습니다.”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나?”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 가보자. 우주의 크기가 무한이라면 무한으로 나아가보자.”


 쿼크리온과 렙티는 계속 전진했다. 10만년이 흐르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 다다랐다. 쿼크리온은 그 곳이 우주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것 봐, 렙티. 우리가 드디어 우주의 끝에 다다랐어. 여긴 아무 것도 없다고. 12만년 밖에 걸리지 않았어.”
 “축하드려요, 주인님. 주인님은 우주의 끝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십니다.”


 쿼크리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에 끝을 향해 나아갔다. 오로지 캄캄한 어둠 속을 또다시 10만년동안 헤맸다.


 “주인님, 다시 은하가 보여요.”
 “뭐라고?”


 렙티의 말 대로였다. 나아가는 정면에 눈부신 별들이 보였다. 분석 결과 되돌아 온 것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성분과 성질의 우주가 펼쳐졌다. 쿼크리온은 혼란에 빠졌다. 나타난 우주는 모든 것이 거대했다. 쿼크리온의 우주 따위는 한입으로 잡아먹을 만큼 크고 격렬했다. 쿼크리온은 성난 파도처럼 흔들리고 폭발하는 새로운 우주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제 판단과 사고 기능을 초월하였습니다. 위험합니다. 귀환을 권고합니다.”


 쿼크리온은 고민에 빠졌다. 10년 동안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또다시 10만년을 허비해 원래의 우주로 돌아가느니, 계속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렙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정보 습득과 분석을 하며 쿼크리온을 안전한 길로 이끌었다.
 1억년이 지나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이번에야 말로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억년을 더 어둠속을 헤매자 또 다른 우주가 나타났다. 이번 우주는 두 번째 우주보다 더 컸다.


 “단순한 무한대라기엔 너무 수상하단 말이야.”
 “주인님, 제 판단에 이런 우주는 앞으로도 더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험도는 점점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우주에 존재하는 최소 입자보다 더 작아졌어요. 이번 우주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 우주가 이보다 더 크면 버틸 수 없을 겁니다.”
 “방법을 찾아보자. 끝까지 가보자. 그래, 어쩌면 이것이 제퍼의 우주일지도 모르겠군.”
 “관문 우주론 말씀이세요?”


 쿼크리온은 즐겁게 웃었다.


 “맞아. 생각해봐.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뛰쳐나오면서, 지구에 처박혀 있었을 때의 모든 상식과 지식이 한번 뒤엎어졌어. 그리고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또 엎어졌지. 우리 은하를 나올 수 있게 되면서 또. 하나씩 관문을 넘어선 것 같지 않나?”
 “현명한 주인님 말씀대로라면 세 개의 관문을 넘은 것이군요.”
 “우리는 우주의 끝을 벌써 두 개나 넘었으니, 다섯 개나 넘어온 거야. 이런, 그렇다면 제퍼 증후군이 뒤집어지는 거군. 관문 우주론은 사실이었다! 무려 30억년이 지나서 너와 내가 증명했어.”


 렙티는 쿼크리온을 더 기쁘게 하고 싶었다.


 “주인님은 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귀여운 렙티. 너는 날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구나. 자, 다시 나아가자. 시간은 많아. 다음 우주에서도 우리가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을 너와 나는 반드시 찾아낼 거다.”


 이번 우주는 10억년이 지나서야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쿼크리온은 우주의 끝에서 만나는 완벽한 어둠을 관문이라 부르기로 했다. 10억년의 관문을 통과하며 렙티는 쿼크리온과 자신을 단단한 껍질로 둘러쌌다. 외부의 어떤 위험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쿼크리온과 렙티는 아홉 개의 관문을 넘고, 일곱 번째의 우주를 지나갔다. 증가 공식에 따라 10조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능한 렙티였지만, 우주의 존재에 사멸하지 않도록 쿼크리온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쿼크리온은 감각 기관을 모두 잃었다. 네 번째 우주에서 듣지 못했고, 다섯 번째 우주에서 말하지 못했다. 여섯 번째 우주에서 보지 못했고, 일곱 번째 우주에서는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나마도 렙티의 노력 덕이었다. 렙티가 쿼크리온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세 번째 우주에서 소거되었을 것이다.


 “주인님, 일곱 번째 우주도 끝났습니다.”


 10조년이 지나 열 번째의 관문에 돌입하며 렙티는 슬피 울었다. 쿼크리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덟 번째 우주가 찾아오면 저는 주인님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합니다. 늦지 않았어요. 돌아갑시다.”


 쿼크리온의 의식은 렙티의 말을 거부했다. 나아가자. 더 나아가자. 끝까지 나아가자. 반드시 너머에 뭔가 있을 거다. 렙티는 주인의 의지를 거역하지 못했다.


 “주인님이야 말로 제퍼 증후군에 시달리고 계세요.”


 10조년의 관문을 지났다. 여덟 번째 우주를 기다리고 있던 렙티는 보여야 할 우주가 보이지 않자 의아해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렙티가 조금 더 앞으로 갔다. 그러자 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 * * * *


 


 제퍼의 사후, 그의 친구가 그가 평생 소중히 여겼다는 책과 일기장을 인도받았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관문을 넘어, 나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빛과 마주했다. 그것은 태초에 신이 일컬은 최초의 빛이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진정한 우주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드넓은 빛의 바다는 영원하며 또 찰나에 사라졌다. 그 곳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거기에 나라는 우주가 존재하고 있었다.」


 페이지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은 책의 제목은 [소립자와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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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No Profile
    하산 14.11.30 21:35 댓글

    "인간의 표피" 라니...!  기발하고 탁월한 센스이십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을 본격적인 소재로 하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몹시 반갑습니다.

    제가 문피아에 연재하는 "대선과 빌리"에서도 양자역학을 소재로 등장시키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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