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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프로페셔널 킬러

2013.10.31 22:3210.31

프로페셔널 킬러

 

 


“네, 32세 살인청부업자 J입니다. 경력은 4년 됐고요, 지금까지 모두 스물세 번 의뢰를 받아서 스물세 명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덕분에 이쪽 업계에서는 체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믿고 맡기셔도 됩니다. 이 J, 반드시 죽여드립니다. 비용은 난이도에 따라서 상중하로 구분이 되고요, 전액 선불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만약 실패한다면 당연히 전액 환불해 드립니다. 이 부분은 일 시작하기 전 계약서 작성할 때 명시할 테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뢰부터는 할인도 적용되니까요, 제 일처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계속 의뢰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다른 살인청부업자들처럼 저 역시 1년 중 할인 행사 기간이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기간은 지났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의뢰는 직접 만나서 하셔도 되고요, 제 삼자를 통해서 하셔도 되고요, 이도 저도 불편하시면 그냥 전화나 이메일 이용하셔도 됩니다. 그럼 간략한 소개 및 방법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게 법적으로 30초만 넘으면 되는 거라서요.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시면 따로 자료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 그럼 용건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주부길은 얼른 한쪽 손에 볼펜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은 좀 더 귀에 바짝 붙였다. 살인청부업자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소리가 크지 않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살인청부업자와 통화하거나 직접 만나서 얘기할 때는 거의 소곤거리는 수준이다. 게다가 두 번 얘기하게 만드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니 상대의 소곤거림을 한 번에 정확히 듣고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일처리를 꼼꼼히 하겠다고 이것저것 되묻거나 하면 오히려 상대가 싫어한다. 게다가 질문하는 건 더 싫어한다. 최악의 경우 전화를 그냥 끊기도 한다. 주부길도 처음에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필요 이상으로 되묻고 쓸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전화를 건 사람도 인내심을 갖고 주부길의 말에 대구를 해줬다. 그러다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주부길은 영문을 몰라 휴대폰을 쥐고 한참을 기다렸다. 상대가 실수로, 아니면 급한 일이 생겨서, 혹은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부득이 전화를 끊은 줄 알았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고, 밥 먹을 때도 식탁 옆에 휴대폰을 놓았다. 잠자기 전에도 한 시간 가까이 휴대폰을 쳐다보다 단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 경험을 두세 번 겪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주부길에게 전화를 걸어 살인을 부탁했다. 그때에도 주부길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더 많이 되물었고 더 많이 질문했다. 결국 전화 건 사람이 참다못해 버럭 화를 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남 죽여달라고 말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던 사람 죽여달라는 건 어려운 얘기고, 어려운 부탁입니다. 게다가 당신 같은 사람한테 전화 걸기까지 며칠 몇 달을 고민했고요. 그러다 내린 결정입니다. 될 수 있으면 당신과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래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요. 어떤 식으로 죽이던,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생각하기도 싫고요. 그냥 제가 원하는 날짜 이전까지 당신이 알아서, 어떤 식으로든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아시겠어요? 제발 되묻지 마시고 질문하지 마세요.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지 마세요. 그럼 망설여진다고요. 그리고 지금 당신 때문에, 당신이 되묻고 질문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렸다고요. 이래서는 그 사람을 죽여달라 소리 못 해요. 도대체 당신은 직업이 뭔가요? 살인청부업자가 맞나요? 제가 잘못 전화한 건가요? 당신이 그 사람을 살렸어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주부길은 그제야 깨달았다. 되물으면 안 되고 질문하면 안 된다는 걸. 가만히 상대의 얘기를 듣다가 전화를 끊으면 된다. 마치 상대가 혼자 중얼거린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건 전화 통화에서뿐만이 아니다. 직접 만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때 튀지 않는 옷차림은 매우 중요하다. 화려한 옷차림도 금물, 남루한 옷차림도 금물이다. 누구라도 쉽게 말을 걸거나 길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의 거부감 없는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마주 앉은 뒤에도 되묻거나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상대가 초조해한다.
주부길은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갖다댄 채 상대가 입을 열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이때에도 절대 재촉하면 안 된다. 열이면 열 처음 입을 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심하면 금물이다. 딴 생각을 한다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상대의 얘기를 미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상대는 할 얘기를 다 끝마쳐버린다. 되물을 수도 없다. 도대체 누구를 죽여야 한단 말인가. 주부길은 그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상대가 직접 만나기를 원했고, 운 좋게도 죽여야 할 상대에 대해 다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무사히 죽였다. 하지만 계속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사람 죽일 수 있는 기회 잡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요즘은 널린 게 살인청부업자다.
-그 새 많이 죽이셨네요. 하긴 벌써 3년이 넘은 것 같네요. 그때는 고작 세 명 죽이셨는데요. 이젠 제법 능숙하게 사람 죽이시나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예전에 한 번 살인 의뢰를 드린 적 있던 사람입니다.
예전에 한 번 의뢰를 했던 사람! 그렇다면 두 번째 의뢰다. 할인 적용 대상자.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이쪽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서 재주문이 들어왔다. 이쪽 업계에 떠도는 속설이 있다. ‘5년 안에 재주문이 들어오면, 자신의 실력을 믿어도 된다.’ 주부길은 4년 만에 재주문이 들어왔다. 순간 주부길의 머릿속에 그동안 죽인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쉽게 죽인 사람도 있었고 어렵게 죽인 사람도 있었다. 죽이기 싫은 사람도 있었고, 기필코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도 있었다. 죽이기 전에 얼굴을 들킨 사람도 있었고, 서로 알고 지내던 같은 업계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 각오는 똑같았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럼 언젠가 기회는 온다. 물론 각오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전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그러니까 의사든 변호사든 교수든 연구원이든 펀드매니저든 영화배우든 대기업 CEO든 아나운서든 스포츠 스타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각오만으로는 안 된다. 자기계발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서 주부길도 일이 없는 때에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살인과 살인청부업에 도움이 될 만한 전문 서적들을 찾아서 읽었다. 한의학 서적도 읽고, 철학과 심리학 서적도 읽고, 미학과 예술 분야 서적도 읽었다.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시나 소설, 만화도 찾아서 읽었다. 깊은 감동을 받아서 도서관 화장실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이기도 했다. 물론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도 했다. 시체를 사다가 사람을 칼로 찌를 때의 감각을 꾸준히 유지했고, 누군가 “저 사람 죽여주세요”라고 의뢰할 법한 사람을 만나면, 일주일을 미행해 그 사람의 행동반경을 완전히 파악한 뒤, 마지막으로 장난감칼을 이용해 그 사람의 목을 찌른 뒤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전화 응대다. 일의 성사 여부는 여기에서 결정이 난다. 의뢰인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일단 경청. 집중해서 경청. 맥락을 이해하면서 경청. 정 궁금한 게 있으면 짧게 또박또박 강한 어조로. 그래서 주부길은 평소 보험에 가입하라는 전화를 받을 때에도 마치 의뢰인과 통화하듯 대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경청했다. 상대방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면 “네, 듣고 있습니다!” 하고 또박또박 강한 어조로 대구했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경청했다. 우연히 사고를 당해 입원하게 되면 치료비는 물론 일정 기간 동안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돈도 지급이 된다는 말에, 주부길은 자신의 직업을 밝힌 뒤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상대의 공격을 받아 다치게 되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치료비와 돈이 나오냐고 물었다. 물론 이렇게 길게 말하지는 않았고, 짧게 압축해서 또박또박 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면 상대는 당황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알아본 뒤 다시 전화하겠다며 끊었다. 물론 다시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주부길은 휴대폰을 쳐다보며 자신이 한 말을 곱씹었다. 어떤 표현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었을까 고민했다.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문학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러니까 다각도로 접근해서 고민했다.
이렇듯 주부길은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주부길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평소보다 더욱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역시 무뚝뚝하시네요, 주부길씨.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도 반갑거나 놀라워하지 않으시고. 왠지 프로답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그래서 주부길씨에게 전화를 드린 거지만요.
프로답다는 말에 주부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평생을 말하지 않고 살까 갈등하느라,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어금니가 으스러져라 깨물고 있었다.
프로. 누군가에게서 프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길게 말하면 프로페셔널. 프로페셔널 킬러. 폼난다. 살인청부업자와는 뭔가 격이 다른 것 같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전문직 느낌이 난다. 내일 당장 검은색 양복과 선글라스를 사자. 이제부터는 사람을 죽일 때도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프로페셔널 킬러니까. 뒷골목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니까. 아차, 그러고 보니까 내가 미처 생각 못 한 게 있었구나. 이제부터는 외국어도 배우자. 영어, 중국어, 일어. 일단은 이 세 개부터 배우자. 사람을 죽이러 외국에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 구사 능력은 필수다. 나는 프로페셔널 킬러가 아닌가.
-주부길씨, 부탁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저번에 죽여주신 분, 저희 아버지였어요. 말씀드렸던가요? 아, 아니지, 그 전에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아니, 했던가요? 모르겠어요. 아무튼 주부길씨가 네 번째로 죽인 사람, 그러니까 그 사람을 죽여달라고 부탁드렸던 사람이에요. 주부길씨는 프로시니까 이렇게만 말씀드려도 아시겠죠. 어쩌면 처음에 제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제가 누군지 아셨을 수도 있겠네요. 프로라면 왠지 그럴 것 같아요. 멋있어요. 프로페셔널 킬러.
주부길은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을 찾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3년 전 혹은 4년 전 일들, 네 번째로 죽인 사람, 도대체 누구인가. 죽여달라고 의뢰한 사람, 도대체 누구인가.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프로페셔널 킬러는 그런 말을 안 한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 듣는 순간 이미 눈치챘습니다. 프로페셔널 킬러라면 당연한 겁니다. 자랑할 것도 못 되죠.”
기억력 훈련도 필요하구나.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도 부족하겠어. 초 단위로 쪼개서 일정을 짜야겠어. 내일은 아침 5시 59분 15초에 밥을 먹자. 식사 시간은 10분 20초. 아니, 너무 길다. 9분 20초.
-역시 알고 계셨군요. 괜히 부끄러워지네요. 꼭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에요. 음, 그런데 도둑질하다 들키면 부끄러울까요? 들켜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니, 말이 잘못 나왔어요. 도둑질을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려고 했던 거예요. 오해 없으시기 바랄게요. 누구든 말실수는 하잖아요. 간혹 어떤 사람은 말실수로 상대의 심리를 읽어내기도 하지만, 이번의 제 말실수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냥 가볍게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누구나 말실수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오해고 뭐고 없다. 그저 실수일 뿐. 그런데 그런 말실수를 갖고 심리를 읽어내기도 한단 말인가. 분명 도서관에서 심리학책도 읽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다. 처음 듣는 얘기지만 왠지 귀에 박히는 얘기다. 상대의 말실수를 통해 심리 상태를 읽어낸다. 프로페셔널 킬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위가 아닌가. 대부분의 의뢰인은 누구를 죽여달라고 부탁할 때, 어떤 방식으로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냥 언제까지 죽여달라고만 한다. 잔인하게 죽여주세요. 고통 없이 죽여주세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죽여주세요. 가족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죽여주세요. 대낮에 죽여주세요.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여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 킬러라면 의뢰인이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의뢰인의 말을 통해, 그러니까 말실수 같은 걸 통해서 읽어내야 한다. 아주 잔인하게 죽여주세요.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해주세요. 부디 한 번에 목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차라리 얼른 죽여달라고 애원하도록,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죽여주세요. 아니, 그렇게 죽여주지 마세요. 한 번에 목숨이 끊어지도록,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죽여주세요. 이런 걸 읽어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실수, 무의식적인 행동, 그 사람의 소지품, 옷차림, 습관, 기타 등등, 읽어낼 수 있는 건 많고 들을 수 있는 건 많다. 오직 의뢰인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나와는 거리가 있다. 프로페셔널 킬러는 말 이외의 것을 듣는다. 그게 의뢰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다. 그 말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 들리는 것만 들으려고 하지 말자.
주부길은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에 살짝 힘을 뺐다. 휴대폰을 움켜쥔 채 귀에 바짝 갖다댄다고 해서 의뢰인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눈을 감고 의뢰인의 말투에 집중하자. 말의 떨림이나 억양의 변화, 실언 등을 놓치지 말자. 거기에 바로 의뢰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그걸 들어야 한다.
-주부길씨, 먼저 궁금한 게 있어요. 저희 아버지, 그러니까 계속 자살 시도하다 번번이 실패하고, 실패할 때마다 저와 엄마에게 화풀이하던 아버지, 그런 사람도 막상 주부길씨가 죽이려고 할 때 겁에 질려 하던가요? 아, 혹시 이쪽 업계, 아니, 또 말실수를 했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니까 그쪽 업계, 그러니까 살인청부업자들 사이에서도 혹시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게 있나요? 죽일 때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같은 건 절대 입밖에 내지 않는다. 뭐 그런 거라도 있나요?
주부길은 그제야 전화 건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당시에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매번 자살에 실패하는 아버지를 죽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새삼스레 그 자의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죽고 싶어 한다기에 일부러 “당신을 죽이러 왔습니다” 하고 소개까지 했건만, 그렇게 살고 싶다며 매달리고 애원하고 저주하고 협박하고 매수하고, 마침내 실성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자살을 꿈꾸던 사람이 맞나, 설마 이 사람이 아닌가, 뭐 그런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실성한 틈을 타서 재빨리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런 건 없습니다. 물론 일부러 누구한테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지만, 간혹 의뢰인이 물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죽을 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는지, 특이한 동작을 취하지는 않았는지 뭐 그런 걸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음, 죽을 당시 겁에 질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의뢰를 받고 왔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잠깐 담배만 한 대 피울 테니, 담배 다 피우면 바로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고요. 숨이 끊어질 즈음에는 홀가분하다, 고맙다, 그런 말도 했습니다.”
-네, 역시 무슨 불문율 같은 게 있나 보네요. 의뢰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아프게 만들면 안 된다, 같은 거요. 저희 아버지는 절대 그런 말을 했을 사람이 아닐 테니까요. 안 봐도 뻔해요.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협박하고 그랬을 거예요. 그러다 실성했을 거예요.
당연히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챌 줄 알았다. 애초에 의뢰인의 말이 거짓이었으니까. 그 아버지라는 자, 자살을 시도하던 자가 아니었다. 상습적으로 딸과 부인을 폭행한 건 맞겠지만, 자살 시도자는 아니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었고, 그러니까 손목조차 깨끗했고, 죽일 당시 그 자의 호주머니에는 금연초와 은단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에는 한 달 일정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었다. 살고 싶어 발악을 하던 자였다. 물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다, 그러니까 죽고 싶은 자든 죽고 싶지 않은 자든, 막상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정말로 자살을 꿈꾸는 자도 막상 숨이 끊어질 즈음에는 괴로워할까요? 죽는 사람이 더 괴로울까요, 아니면 죽이는 사람이 더 괴로울까요? 주부길씨, 당신은 죽고 싶다고 느낀 적 없었나요? 죽이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아예 안 드나요?
질문이 도대체 몇 가지인지. 살인청부업자가, 아니지, 프로페셔널 킬러가 무슨 생과 사에 통달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지.
주부길은 잠시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거실 소파로 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들었지만, 만지작거리다 도로 내려놓았다.
“글쎄요, 몇몇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죽고 싶어 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다들 살려달라고 애원하더군요. 그렇지 않고 정말로 자살을 꿈꾸는 자라면 저와 만날 이유가 없겠죠. 그냥 혼자 알아서 죽으면 될 테니까요.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만, 아무튼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괴롭지 않습니다. 사람 죽일 때 괴로움을 느낀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죠. 저는 죽이지 못할 때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정반대네요. 그리고 죽고 싶다고 느낀 적도 없고요. 오히려 누구보다 살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살아야 누군가를 죽일 수가 있잖아요. 저는 제 일이 좋습니다. 적성에 맞아요. 하지만 프로페셔널 킬러, 아니 살인청부업자 중에 좀 특이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요. 그런 자들은 자기계발도 전혀 안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 죽이는 방법도 늘 똑같아요. 몇 년째 같은 칼로 심장만 찔러 죽이는 자가 있어요. 그런 건 시체만 봐도 살인청부업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일부러 변화를 거부하는 거라고. 같은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만이 진정한 살인이라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군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 자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자는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은퇴했어요. 은퇴할 나이도 아닌데 말이죠. 아직 현역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죠. 하루에 두세 명도 죽일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는데 말이죠. 이유는 간단해요. 일이 싫어진 거죠. 더 이상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게 된 거죠. 왜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왜 싫어진 걸까요? 그 자는 변화를 거부했어요. 늘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그래서죠.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에. 늘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심지어 그 사람 몸에 손도 안 대고 죽일 수도 있어요. 치사율 높은 독 같은 걸 이용해서 말이죠. 살인은 예술이에요. 창작이라는 뜻이죠. 매번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요. 그러니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야 합니다. 감각을 키워야 돼요. 그럼 싫어질 수가 없죠. 오히려 중독을 경계해야 할 만큼 빠져들게 됩니다. 저는 한 달 뒤에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의뢰인이 한 달 뒤에 죽여달라고 주문을 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그 자를 어떤 방식으로 죽일까 고민 중입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구상하듯이 말이죠. 십자가를 만들어, 거기에 매달 수도 있습니다. 몸속에 있는 피를 다 뽑아내서, 그 피로 시체를 붉게 칠할 수도 있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포르말린을 가득 채운 수조에 담가둘까요? 양팔을 잘라서 비너스처럼 만들까요? 두 다리를 묶은 다음 불에 태우는 겁니다. 그럼 살이 녹겠죠. 녹으면서 두 다리가 붙을 겁니다. 이때부터는 조금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할 텐데요, 어쨌든 솜씨를 발휘해서 다리 부분을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겠네요. 인어 탄생입니다. 살인은 간단합니다. 목숨만 끊어놓으면 되죠. 1, 2분이면 끝나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래 못 가요. 살인에 싫증이 나거나 아니면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고작 몇 사람 죽여놓고 은퇴하는 살인청부업자들 많습니다. 적성에 안 맞는다며 금세 포기하죠. 그런 자들 보면 한심해요. 아마 다른 일을 찾았다 해도, 또다시 적성 운운하며 금세 그만 둘 겁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요새 실업률 높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더 심한 것 같아요. 이유가 뭐겠습니까. 다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그런 겁니다. 이쪽 업계는 진정한 살인청부업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부족해요. 죄책감에 시달릴 시간 있으면 제발 자기계발에나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아,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저는 또 다른 살해 방법이 떠올랐네요. 보세요. 저는 이제 무의식적으로 살해 방법을 생각합니다. 이건 순전히 노력의 결과예요. 노력하면, 그게 곧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이 되는 겁니다. 또 다른 살해 방법, 궁금하시죠? 하지만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꽤 잔인하거든요. 아마 지금껏 제가 죽인 방법 중에 가장 잔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당신한테는 어떤 방식으로든 알려드릴게요. 말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사람 죽일 때 괴롭지 않습니다.”
주부길은 잠시 호흡을 고르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아니,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질문이 여러 가지이기는 했지만 모두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도 있었다.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둥 살인은 예술이라는 둥, 그런 말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비겁하거나. 아니면 장난이 좀 심했거나. 그렇더라도 주부길이 한 얘기가 농담은 아니었다.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살인청부업자를 경멸했다. 사람 죽이는 걸 망설이는 자를 혐오했다. 무엇보다 한두 번 살인을 한 뒤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손을 씻는 자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들은 왜 자기 앞날을 모를까. 저렇게 손을 씻고 떠난다면, 조만간 자신이 타깃이 된다는 걸 왜 모를까. 한두 명 죽이고서 떠나면 안 된다. 이왕 떠날 거면 적어도 몇 년은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떠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타깃이 되더라도, 그 낌새를 눈치챌 수 있다. 그런 감을 익히는 데만 적어도 3, 4년이 걸린다.
실제로 주부길이 여덟 번째로 죽인 자는 전직 살인청부업자였다.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3개월. 고작 한 명을 죽이고는 겁에 질려 살인청부업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탈퇴하겠다고.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협회 가입비는 돌려받지 않겠다고. 물론 협회에서는 아쉽지만 그러라고 했다. 회원이 줄면 회비가 줄어든다.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다음 호 회보에 탈퇴한 사람 명단을 적어넣는다. 가입했던 날짜와 함께. 실적과 함께. 물론 새 출발을 응원해 주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협회도 알고 있다. 그렇게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그 자가 타깃이 된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은 많다.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고, 그냥 죽여보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냥 죽여보고 싶지만 직접 죽일 용기는 없고, 그래서 살인청부업자에게 연락해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경우가 참 많다. 이때의 타깃이 바로 탈퇴한 전직 살인청부업자다. 그중에서도 가입하자마자 탈퇴한 전직 살인청부업자. 전직 살인청부업자를 고르면 그만큼 죄책감이 덜 든다. 그리고 경력이 일천한 자라면 성공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사람을 직접 죽일 용기가 없는 자들은 편의점에서 회보를 구입해 타깃을 정한다. 그런 뒤 살인청부업자에게 의뢰를 한다.
-회보에 보니까 살인청부업자가 된 지 3개월 만에 탈퇴한 사람이 있네요. 실적은 딱 한 명 죽였고요. 이 사람으로 할게요. 죽여주세요.
주부길은 그러겠다고 한 뒤 의뢰인이 정한 시간에 그 전직 살인청부업자를 죽였다. 당시 나이 열네 살. 살인청부업자의 길로 들어서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의뢰를 받은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 미성년자를 살해해 달라는 건 불법이지만, 그가 살인청부업자 혹은 전직 살인청부업자라면 상관없다. 죽여도 된다.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는 전직 살인청부업자의 수가 꽤 된다. 당연히 가입 몇 개월 만에 탈퇴를 하면, 다른 살인청부업자의 타깃이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모를 리 없지만, 탈퇴를 하기로 마음을 먹을 즈음부터는 자기가 타깃이 되리라는 걸 망각한다. 망각하지 않으면 탈퇴를 하지 못하니까. 죽음의 공포보다 죽였을 때의 공포가 더 크니까. 그런 자들이 탈퇴를 하니까. 하지만 주부길은 아니다. 그에게 살인청부업은 천직이다. 살인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
열네 번째 의뢰에서는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다. 주부길의 실력을 시기한 다른 살인청부업자 P가 또 다른 살인청부업자 H와 짜고 주부길을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계약서를 작성한 뒤 행해지는 살인은 합법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다. P가 주부길에게 전화를 걸어 살인을 의뢰했다. H를 죽여달라는 의뢰였다. 그때 P는 주부길에게 H를 죽일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정해주었다. 주부길은 P가 정해준 날짜와 시간, 장소에서 H를 죽여야 했다. 물론 그 사실은 H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부길이 그 시간에 그곳에 나타나면 H가 먼저 해치울 작정이었다. 하지만 주부길에게 살인 의뢰를 할 때 P는 이미 실수를 했다. 죽일 시간과 장소. 새벽 4시, 석촌호수 앞 유명 커피숍. 시간과 장소를 듣고 주부길은 감이 왔다. 함정이구나. 이미 그곳에서 죽은 살인청부업자가 있었다. 꽤 실력 있는 살인청부업자였지만,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려다가 도리어 본인이 당했다. 새벽 4시 조금 넘은 시각, 석촌호수 앞 그 유명 커피숍에서. 주부길은 그 일을 떠올리면서, 틈틈이 심리학책 읽은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덕분에 늘 의심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주부길은 P의 전화를 끊고 나서 며칠 뒤 H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H를 죽였다. 망설임 없이 칼로 목을 수차례 찔렀다. 찔린 곳에서는 피와 음식물이 함께 쏟아졌다.
H를 죽인 뒤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가 주부길을 불렀다. 돌아보니 죽은 H의 아들이었다. H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혹시 살인청부업자 J씨신가요?”
“그런데요.”
“아버지한테 이번 의뢰에 대해 얘기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걱정도 하셨어요. 어쩌면 J씨가 이번 의뢰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도리어 아버지가 J씨한테 당할 수도 있다고요. 왜냐하면 J씨는 늘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는데, 때때로 심리학이나 철학, 정신분석학 책도 보는 것 같고, 그런 사람은 사소한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을 텐데, 이번에도 P라는 사람이 시간과 장소를 지난번과 똑같이 정했다고요. 그래서 아버지는 반대하셨는데, P라는 사람이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대요. 그 사람은 책 같은 거 전혀 안 읽거든요.”
“그렇다면 의뢰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면 제가 반격할 것에 대비해 뭔가 조치를 취해 놓던가. 하지만 H는 전혀 그러지를 않았어요. 오히려 무방비 상태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어요.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어딘가 이상하죠. 아버지는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시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조금 전에 식사하시면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온 것 같군’이라고.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죠. 이제는 압니다만.”
“제가 침입한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네. 아버지는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도 계속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던 건가요, H는?”
“네.”
“왜죠? 아니, H는 왜 죽기를 기다린 거죠? 혹시 알고 있나요?”
“아니오, 모릅니다. 죽기를 바라신 건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이유는 모릅니다. 단순히 죽기를 바라신 건지, 아니면 J씨 손에 죽기를 바라셨던 건지, 전혀 아는 게 없어요. 어쩌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셨을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직접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어요. ‘나는 프로페셔널 킬러가 아니다. 이류에 지나지 않아. 나는 늘 내게 살인 의뢰가 들어오는 게 두렵단다. 적성에 안 맞는 걸 직업으로 택했어. 너는 그러지 마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늦더라도 말이다’라고요. 그런 거 보면 아버지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가끔은 다른 살인청부업자들의 실력을 부러워하시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언젠가는 저들 손에 죽을지도 모르지. 저들은 프로페셔널 킬러들이니까’라고도 하셨어요. 물론 그들 안에는 J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영광이군요. 이제 당신과의 대화는 그만 끝냈으면 합니다. 가서 H의 시체를 수습하세요. 아들의 도리는 해야지요. 잘 있어요.”
“네, 안녕히 가세요. 잠깐이지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아 참,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혹시 J씨의 진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네, 그렇군요. 주부길씨는 사람 죽일 때 괴로워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 아버지 죽이셨을 때도 마찬가지셨을 테고요. 하긴, 저도 주부길씨한테 아버지 죽여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괴로운 감정 같은 건 없었으니까요. 그런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 손으로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은 건 괴롭지 않았어요. 늘 몸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는데, 그래서 한여름에도 저는 늘 긴 옷만 입고 다녔어요. 긴 팔 티셔츠에 긴 바지.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저는 치마 입은 적이 없어요. 제 다리가 참 예쁘거든요. 하지만 담배자국에 칼자국에 피멍에, 어휴, 상태가 그러니 다리가 아무리 예쁜들 어쩌겠어요. 가려야지요. 실은 아버지한테 매 맞는 것보다 그게 더 분할 때도 있었어요. 예쁜 다리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자랑하고 막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까요. 그래서 엄마한테 하소연한 적도 많았어요. 엄마도 안타까워하셨어요. 예쁜 다리 못 보여줘서 속상하겠다면서요. 하지만 요즘엔 마음껏 드러내고 다녀요.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나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짧은 반바지 있잖아요, 그런 것만 입고 다녀요. 히힛, 얼마나 웃긴 줄 아세요? 남자들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요.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들 너무 귀여워요. 그러다 저랑 눈 마주치면 화들짝 놀란다니까요.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남자들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심지어 여자 친구랑 같이 있으면서도 제 다리를 그렇게 쳐다봐요. 그럴 때는 좀 난처하기는 해요. 그 여자 친구가 저를 아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거든요. 자기 남자 친구를 노려봐야지 왜 저를 노려보는지 모르겠어요. 다리도 안 예쁜 게 말이에요. 그런 애들은 칼로 다리 그어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다리가 안 예뻐서 치마는 못 입을 테니까요. 얼굴을 그어야죠. 엄마도 그러셨어요. 다음에는 그런 애들 있으면 칼로 얼굴을 확 그어버리라고요. 아니면 볼펜 같은 걸로 눈알을 찔러버리든가. 참, 엄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언제 주부길씨랑 통화할 일 있으면 꼭 고맙다는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아버지 죽은 이후로 엄마가 너무 행복하대요. 제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여요. 태어나서 이제야 행복을 찾았으니까요. 사실 엄마는 저보다 더 불행했어요. 엄마는 외할아버지한테도 맞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엄마의 아버지요. 제가 아버지한테 학대당하듯이 엄마도 엄마 아버지한테 학대당했어요. 칼, 담뱃불, 철사, 음식, 아, 음식은 있잖아요, 엄마가 입맛이 없어서 밥을 안 먹겠다고 했더니요, 엄마의 아버지가 억지로 밥을 먹였대요. 그것도 두 시간 동안이나요. 토하고 먹고 토하고 먹고,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엄마 아버지한테 학대당하다가 집에서 도망치듯 결혼했어요. 하지만 변한 건 없었어요. 결혼 한 달 만에 또다시 학대는 시작됐으니까요. 심지어 임신 중인데도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어요. 배를 걷어차기도 했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아요? 하마터면 제가 못 태어날 뻔했다니까요! 엄마 뱃속에서 죽을 뻔한 거죠. 사람들한테 다리 자랑도 못 해보고 골로 갈 뻔했어요. 아 참,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엄마한테 물어봤죠.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어요. 임신 중일 때 아버지가 배를 차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했느냐고 말이에요.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아버지가 배를 차는 건 어떻게든 막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요. 배는 차지 말라고, 다른 데를 차라고 애원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요. 혹시 그렇게 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그런 생각 안 했는데. 배 차면 배가 아프고, 얼굴을 차면 얼굴이 아프고, 어딜 차든 나는 똑같이 아팠으니까.’ 그러더라고요. 이거, 엄마 맞나요? 그 말 듣는 순간 화가 확 치밀더라고요. 그래서 하마터면 컴퓨터 키보드로 엄마 얼굴을 후려갈길 뻔했어요. 하지만 참았죠. 전 아버지하고 다르니까요. 물론 참는 게 힘들기는 해요. 국이 짜거나 그러면 냄비째로 엄마 대가리를 부수고 싶죠. 아마 그런 감정은 주부길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봐요. 사람들은 다 그런 충동 느끼지 않나요? 하지만 그럴 때도 저는 어쨌든 참았어요. 스스로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를 때리지 않다니, 난 정말 훌륭한 딸이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죠. 아 참, 주부길씨 혹시 지금 몇 시죠? 네? 벌써 오전 열 신가요! 가만히 있을 때는 시간 되게 안 가더니, 주부길씨랑 얘기하다보니까 시간이 금방 가네요. 전화 통화하길 잘한 거 같아요. 덕분에 긴장도 풀렸고요. 기다리면서 좀 초조했거든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 때문에요. 훗, 제가 지금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르시겠죠?
훗, 주부길도 따라서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천천히 불을 붙이고, 천천히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알아요. 벌써 대화가 끝난 게 아쉽기는 하지만, 당신이 무슨 얘기 하는지 알아요. 오전 열 시. 의뢰인이 시간까지 정해 주었나 봐요. 당신, 살인청부업자가 된 건가요? 그래서 저를 죽이러 온 건가요?”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부길은 다시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혹시 제가 첫 번째인 건가요. 이거 참 안타깝게 됐군요. 이제 막 살인청부업자가 돼서 첫 번째 의뢰를 맡았는데, 그게 하필 저라니 말이에요. 단 한 명도 죽여보지 못하고 당신이 죽게 됐으니 말이에요. 말했잖아요. 저, 도서관에서 책 읽는 남자라고요. 심리학, 철학, 정신분석학, 이런 것도 읽지요. 무슨 말인지 아나요? 전 상대방의 말실수를 놓치지 않아요. 당신은 몇 가지 말실수를 했어요.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어요. 뭔지 알아요? 주부길, 제 이름 말이에요. 전 어느 누구한테도 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어요. 협회에서도 제 이름은 몰라요. 살인청부업자들은 다들 닉네임을 사용하니까요. 그건 당신도 알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제 이름을 불렀어요. 주부길씨라고 말이지요. 물론 처음엔 저도 몰랐어요. 재주문이라는 생각에 잠시 흥분해 있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고, 그제야 알게 됐죠. 당신이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전 아무한테도 제 진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말이지요. 물론 단 한 명, 제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해요. 그리고 당신한테 저를 죽여달라고 의뢰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요. 제가 죽인 살인청부업자 H. 그 자의 아들이잖아요. 그 사람,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일 줄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 하필 당신한테, 당신 같은 초짜한테 의뢰를 하다니, 그 사람도 참 어리석군요. 저 같은 프로페셔널 킬러를 상대로 당신 같은 초짜를 고르다니 말이에요.”
-와, 주부길씨 대단하신대요! 통찰력이 놀라워요! 반할 정도로 감탄했어요!
주부길의 말을 끊고 갑자기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덕분에 주부길은 정신을 잃을 만큼 깜짝 놀랐다.
“뭐, 뭔가요! 갑자기 그렇게 목소리 톤을 높이면 어떡해요! 그것도 제가 말하는 도중에 말이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 놀라셨나요? 죄송해요. 정말 감탄했거든요. 완벽한 통찰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대단하세요. 하지만 통찰력은 그 살인청부업자 H의 아들, 그러니까 주니어 H씨가 더 뛰어나네요. 주니어 H씨가 그랬어요. 주부길씨, 주부길씨 하고 이름 부르면, 분명 주부길씨가 눈치를 챌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살인청부업자들은 본명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 주니어 H씨도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 아버지가 살인청부업자였으니까요. 그래서 이름 갖고 장난을 쳐본 거예요. 예상대로 들켜버렸네요. 주부길씨는 역시 프로페셔널 킬러다우세요. 어쩜 이렇게 통쾌할까요. 당연히 현관문도 확인을 하셨겠지요? 누군가 문을 열었다 닫은 흔적도 발견하셨을 테고요. 제가 열었다 닫았어요. 어휴, 그런 건 너무 고전적인 수법 아닌가요. 이 부분에서는 솔직히 좀 실망했어요. 요즘은 현관문에 센서만 연결하면요, 누가 문 열면 자동으로 휴대폰이 울린다고요. 그런 시대에요. 그런 시대에 주부길씨는 현관문에 테이프를 붙여놓다니요, 이러면 주부길씨 한 사람 때문에 이쪽 업계 사람들 전부 오해를 받게 돼요. 신기술을 거부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어쨌든 그래서 주부길씨는 제가 지금 그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서 아마 주부길씨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 거고요. 거기에 앉아 있으면 집안 전체를 관찰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집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벽 쪽에 있는 맨 왼쪽 소파에 앉으면 집안 구석구석이 한눈에 다 들어오더라고요. 훌륭한 배치였어요. 아주 훌륭한 배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주부길씨는 프로페셔널 킬러예요. 저는 초짜 살인청부업자고요. 당연히 제가 집안에 숨어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초조해하기보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시겠죠. 집안 전체를 관찰할 수 있는 바로 그 소파에 앉아서 말이에요. 제가 어디에 숨어 있나 일일이 집안 곳곳을 뒤지지는 않을 거고요. 물론 제 예상은 적중했죠. 지금 주부길씨는 소파에 앉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그런데 말이죠, 그 담배 혹시 테이블 위에 있던 거 아닌가요? 맞죠? 저런, 그렇다면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담배, 주부길씨가 거기에 놔둔 거 맞아요? 아니라면 이거 큰일인데요. 실은 제가 놔둔 거거든요. 물론 주부길씨한테 선물로 주려고 놔둔 건 당연히 아니죠. 죽이려고 놔둔 거죠. 필터에 뭘 좀 발라놓았거든요. 그 독 이름이 뭐였더라. 청산가리보다 훨씬 더 위험한 거라고 하던데. 주부길씨 혹시 독에 대해 좀 아세요? 청산가리보다 레벨 높은 독이 뭐가 있을까요? 아이 참, 그런데 왜 아까부터 계속 제가 뭘 물어봐도 대답이 없으세요? 잔인한 살해 방법 알려주신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알려주시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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