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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 곤륜

2014.09.01 00:0409.01

곤륜

 

 

하늘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녹음은 푸르고 싱그러웠고, 물은 계곡을 타고 흘러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생명을 퍼트렸다. 완연하게 따뜻해진 봄 햇살 속에 들짐승들은 번식기를 맞아 여기저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중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자연은 내버려두어도 제 스스로 자라고 결실을 맺는다. 마치 태곳적부터 삼라만상의 법칙을 품어온 듯 말이다.

저 멀리 시선을 돌렸다.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 오르고 있다. 그 아래 공동체의 모습도 보였다. 바위와 흙, 나무를 이용하여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은 간신히 비바람을 막을 정도였지만 짐승의 공격을 막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

사내는 사냥과 수렵을, 여인은 채집과 육아를 담당했다. 많은 착오 끝에 상한 음식을 멀리하게 되고 보존 방법을 고민하여 결국에는 저장법을 발견한다. 식물이 자라는 이치를 깨달았으니 조만간 농경을 시작할 듯 하다. 아직 말과 몸짓으로 의사 표현하는 시기지만 조만간 언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뿌듯한 광경인가.

눈을 더 멀리로 돌렸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 한 여인이 수풀딸기를 따는 중이다. 옆 나무 그늘 아래, 갓난 아이는 누운 채 바둥거리고 있다. 조금 더 눈을 돌렸다. 한 마리의 짐승이 보였다. 아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짐승은 삐쩍 골아 갈비뼈가 들여다 보일 정도였다. 짐작할 수 있었다. 짐승이 곧 무엇을 하려는 지를.

망설임은 길었다. 짐승은 몸을 움츠렸다가 순간 도약의 힘을 빌어 앞으로 내달렸고 흉포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순간 나의 망설임은 끝났다.

아이 앞을 가로막고 짐승을 노려보았다. 위협으로 족할 것이라 그리 여겼으나, 힘을 조절치 못했다. 짐승은 캐헹- 하며 숨 넘어가는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모로 쓰러졌다. 아뿔싸.

또 다른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미의 외침이었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니 모습을 드러내도 좋을 것이라 여겼다. 기억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그리 믿었다. 그러나 여인은 달랐다. 아이의 안위도 잊은 채 내 앞에 넙죽 엎드려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게 아닌데.’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실패를 뜻하는 붉은 문자가 눈 앞에 떠올랐다. 동시에 짧은 경보음이 울리고 주변을 감싼 푸른 풍경은 사라지며 차갑고 삭막한 방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뮬레이션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후다.

붉은 문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은하연방 제복을 착용한 교육 AI가 나타났다.

- 오퍼레이터 등록 넘버 NS-831E, 코드명 신농. 벌점이 부여되었음을 알립니다.

억양 없는 기계음이었다. 몇 번을 들어도 정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습니다. 재검토를 요청합니다.”

- 반론을 제기하겠습니까?

지적 생명체 앞에 본 모습을 드러낸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지적 생명체가 오퍼레이터의 모습을 보았다고 문제가 된 기록은 없습니다. 지구와 은하연방에 속한 행성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조우는 행성 창조 신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오히려 그들의 진화에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 반론에 대한 답변입니다. 화면을 봐주십시오.

화면이 다시 켜지자 삭막했던 우주선의 실내가 푸른 녹음이 우거진 초기 원시 행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인이 부복하여 조아리고 있던 정지 상태에서 아이를 노리던 짐승이 뒷걸음질치기 시작.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짐승이 굴로 들어가면서 화면이 멈춘다. 굴은 짐승의 둥지였다. 둥지 안에는 갓 태어난 새끼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미의 채취를 맡은 듯 제각기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먹이를 달라는 생존 본능의 행위였다.

아뿔싸.

신음처럼 터져 나온 좌절이 비명이 되지 못하고 목울대를 울렸다.

- 화면의 동물은 이 행성 고유의 종에서 자연 변이된 종입니다.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모두 죽어 신생 종은 번식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행성의 진화에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 종의 소멸로 파생되는 결과로 지적 문명의 발생까지 행성의 공전주기 142.46회 동안 지연됩니다. 오차 범위는 0.01~0.04입니다.

막 생겨나기 시작한 한 종의 소멸. 생태계의 고리는 매우 정교하여 한 지점이 빠져버리면 연쇄작용이 일어나 많은 사슬들이 부서지거나 변이되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행성이 가진 자가수복 기능에 의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시간은 매우 오래 걸린다.

행성 관리 연합의 최우선 지침은 간단했다.

오퍼레이터는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금한다.

오퍼레이터는 관리 행성의 진화에 영향을 줄 만한 인과 관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다.

나는 그 중 두 번째 규약을 어긴 것이다.

- 그 외에 적합하지 못한 복장으로 개입한 결과는 따로 기록하지 않았음을 알립니다.

이 또한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시뮬레이션 중인 가상 행성은 철저한 관리하에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자신이 입은 복장은 우주선의 일상복장이었기에 신화와 결부되지 않은 외계 종족의 등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대 지구의 문명에서 이와 같은 기록이 존재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킴벌리 산맥의 한 동굴, 우즈베키스탄 휘르가난에 있는 고대 벽화처럼 말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 고대 지구에도 나와 같은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 오퍼레이터가 있었단 말이다.

인정합니다. 결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 기록합니다. 가상 행성 가이아C8-9는 폐기됩니다. 오퍼레이터 등록 넘버 NS-831E의 은하연방력 49세기 곤륜 항해일 3일차 수련을 종료합니다.

오퍼레이터 헤드셋을 통해 좀 전의 기록이 은하연방 본부로 전송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이제 한 두 번의 실수가 더해진다면 오퍼레이터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

수련이 끝나자 테스트 룸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바람이 쐬고 싶었다.

 

다행이다. 전망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광활한 미지의 바다’. 지구의 고전 문학에서 우주를 표현하는 문장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바다에 나 홀로 내버려진 느낌. 절망도 슬픔도 기쁨도 머물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시공의 한 가운데 미아로 영원히 버려진 그런 기분 말이다. 공포와 경외가 공존하는 곳, 우주.

- 알려드립니다. 본 우주선은 지구 시간으로 3시간 34분 뒤 성간 초공간 도약을 할 예정입니다. 모두 충격에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프록시마 센터우리를 벗어나 다음 행성계를 향한 점프에 들어가는구나 싶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주세기를 맞이한 인류는 또 다른 지적 문명과 조우하게 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자신은 이번이 첫 성간 여행이기 때문이다. 도약 시 발생하는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우주 멀미라고들 부른다-은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감각이라, 불쾌하지만 견딜 만 했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랄 뿐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말을 섞을 기분도 아니고, 무엇보다 혼자이고 싶었다.

그러나 익숙한 체구의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여어, 또 실패했다면서?”

웃지마.”

내가 지금 웃는 얼굴이야?”

안 봐도 뻔하지. 나쁜 놈.”

어이, 말이 너무 심한데~ 자기, 나한테 왜 이래, 애정이 식은 거야, 스우춘 달링?”

내 주먹이 그를 빗겨 허공을 갈랐다.

어이, 친구. 그래서 파리 한 마리 잡겠어? 내가 한 수 가르쳐주랴?”

느글거리는 얼굴이 오늘 따라 더욱 보기 싫었지만 친구의 눈동자에 어린 걱정의 기색에 결국 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제이드의 제복에 새겨진 은하수 모양의 마크는 은하연방 소속행성 관리자 연합의 일원임을 뜻한다. 자신의 어깨에도 같은 마크가 부착되어 있다.

연합은 은하연방의 산하 기관이지만 별도의 독립기구로 취급된다. 모든 행성의 정치, 사회의 규약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존재며, 우주의 진화에 최우선으로 기여하는 임무를 하기 때문이다.

연합의 심볼 밑에는 EKO-001(Earth Kunrun Operator first project)이라는 글자가 작게 새겨져 있었다. 지구 첫 번째 오퍼레이터 프로젝트인곤륜을 뜻한다. 또한 우리가 탑승한 우주선의 함명이기도 하다.

동물 하나 죽였다고 벌점이라니 너무하단 생각 안 드냐?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말아. 대체 하지 말라는 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안 그러냐, 수천?”

오퍼레이터의 임무가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자원한 사람은 없었다.

행성 관리자 연합에서 파견되는 오퍼레이터는 원시 행성의 진화가 바른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되며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그만큼 임무 종료 후엔 여타의 직업과 비교할 수 없는 혜택과 명성이 따른다.

제이드의 푸념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들었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마치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굴지만 오퍼레이터에 임할 때의 제이드는 어디서든 빛나는 존재였다. 오퍼레이터일 때의 그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모두를 이끌었다. 그가 수석 오퍼레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어디서나 빛나는 존재.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웠다.

이러다가 오퍼레이터 자격을 박탈당하면 어떡하지.”

한숨처럼 내 뱉은 말이었으나 제이드는 당치 않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들겼다.

지구 최고의 식물 유전학자를? 그럴 리가 없잖아.”

솔직히 오퍼레이터에 발탁되었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을 때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인류의 신화를 보면 신으로 그려지는 오퍼레이터들은 모두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능력과 위트 혹은 매력을 가진 자들-그런 의미로 보면 제이드는 타고난 오퍼레이터다-이었다.

그에 비하여 작은 키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부스스한 검은 머리-마치 까치집을 방불케 한다-에 구부정한 어깨를 보라. 외모만으로 끝이 아니다. 소심한 성격에 주목 받으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낯가림. 어딜 봐도 호감 간다고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식물을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코드 네임도 신농이다. 동양 신화에서 인류에게 경작의 방법을 최초로 알려진 전설의 인물 말이다.

신이면서 사람 앞에서 나서서는 안 된다니 이게 말이 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보라고.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제 멋대로야? 나도 제우스처럼 소로 변신해서 절세의 미녀 에우로페와 한바탕 놀아도 보고, 황금 빗방울이 되어 다나에를 탐하고. 생각만해도……”

제이드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신이라니. 당치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최우선 지침에 어긋난 가장 큰 범죄였다. 어디까지나 중립. 우주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러나 연방 종족이 필요한 경우에 아주 약간의 사소한 개입 그것이 은하연방의 의지였으니까.

그럼 그렇지. 넌 항상 그 딴 생각만 하지?”

아아앗! 아파, 이스!”

어느새 다가온 이스가 제이드의 귓불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바람둥이 같으니. 행성 여자들을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다 기록할 테니!”

어이쿠, 새벽 별의 여신님께서 심기가 매우 불편하신가 봅니다만? 미천한 자가 미처 여신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노하셨다면 부디 용서를!”

그만 해! 이 멍청한 북구 바이킹 놈아!”

익숙한 광경이었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댄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래왔다. 가만. 오퍼레이터끼리 결혼이 허락되던가? 되겠지? 임무 규약에도 그러한 조항은 없었으니까. 하긴 신화만 봐도. 잠깐.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애인을 번갈아 갈아치우기도 하고 불륜도…… 망상은 그만!

수천, 괜찮아? 이야기 들었어.”

제이드에게 보이던 새침한 표정과 달리 이스의 표정은 다정했다.

. 아슬아슬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넌 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니까.”

그게 수천의 매력 아니겠어? 이러니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베길 수 있겠냐고.”

제이드가 불쑥 끼어들었다.

, 그러셔요. 여와님?”

그만! 항복! 제발 코드 네임으로 부르지만 말아주라.”

제이드가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코드 네임으로 불리는 일이었다. 오퍼레이터의 수석 지위자가 가질 수 있는 특권.

곤륜 프로젝트에 임하는 오퍼레이터는 약 백여 명. 마치 지구를 축소해놓은 듯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었다. 이들 모두 코드 네임을 부여 받았고,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것이 이름이 될 것이다.

왜 하필 여자 이름이냐고! 아니. 그것보다. 왜 하필 어려운 동양 신화인 거야. 이름 외우다가 머리 터지는 줄 알았다고!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있고, 북구 신화도 있고, 바빌로니아도 있고, 천주교도 있는데!”

그러게 누가 수석하래?”

이스가 제이드를 놀리기 시작했다.

연방은 왜 동양의 창조신화를 선택한 것일까? 은하연방은 가장 중립적인 형태의 신화라 선택했다고 했다. 더불어 물질이 아닌 정신을 중히 여기는 사상은 종족의 진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제이드. 혹시 지구의 오퍼레이터가 누군지 알아봤어?”

이스가 물었다. 제이드는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찾아볼만한 곳은 다 뒤져봤지. 어디에도 정보가 없어. 애초에 기록조차 없던 것처럼 깨끗.”

수석인 너라면 상위 기밀에 접근 권한이 있으니 혹시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모르니까 좀 더 알아봐. 다들 궁금해 한단 말이야.”

두말하면 잔 소리. 나만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맡겨두라고.”

행성 오퍼레이터에 대한 기록은 철저히 비밀로 취급된다.

생각해보라. 우주 여행이 가능해졌더니 갑자기 신을 만나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만큼 대단하거나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고 단지 앞선 문명을 지닌 하나의 종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겠는가? 수 차례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행성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은하연방은 각 행성의 오퍼레이터에 관련된 기록은 일급 기밀로 취급하도록 제정했다고 한다. 그 규칙은 엄격하게 지금까지 지켜져 왔다. 물론 온갖 추측과 루머들로 자신의 행성의 오퍼레이터 종족에 대한 것이 알려지고 있었고, 우리들 또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정보를 찾는 중이었다.

곧 성간 도약의 시간이 될 테니 난 이제 방으로 가야겠어.”

무슨 소릴. 멀미 때문에 그러지?”

제이드가 내 팔을 붙잡았다.

우주 멀미는 정말 싫어.”

이스도 몸서리 쳤다

이럴 때는 술이지! , 모두 모이라고 해! 내가 선장님 방에서 귀한 걸 뽀려왔거든? 오늘 다 같이 죽어보자고!”

그건 좀!”

반대하는 나.

야호! 찬성! 내가 얘들에게 알릴게! 식당에서 보자고 하면 되지?”

두 친구는 가볍게 내 의견을 묵살해버린다.

좋아. 다 오라고 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계획에 떠밀려 나는 반박 한번 해보지 못하고 떠밀려 식당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날 나와 동료들은 지구의 오퍼레이터에 대한 추측을 안주삼아 떡이 될 때까지 마셨고 우주 멀미보다 더 지독한 숙취로 몇 일을 고생해야 했다.

 

긴 성간 여행 동안 세 번의 시험을 더 봐야 했고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 초공간 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드디어 목적지 행성 여와에 도착한 것이다. 모두들 전망대로 몰려나왔다. 은하연방 지구분과 사무원, 오퍼레이터 예정자, 함선 승무원 할 것 없었다. 모두들 달라붙듯 투명한 외벽에 몰려들었고 곧 이어 사방에서 웅성거림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행성 가이아32-e. 지구로부터 480광년 떨어진 별. 골디락스 영역의 적당한 기온과 대기, 바다를 가졌으며 태양인 알파 별로부터 두 번째에 위치. 공존주기는 360. 하루는 24시간. 질량은 지구의 0.98. 중력은 지구와 유사한 0.99G. 단 하나 차이점이라면 위성이 둘이라는 점

이러한 정보가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금새 사라졌다. 상관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문자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신성함 같은 그 무언가가 말이다.

두 개의 달 중 하나는 모성 너머로 반쯤 몸을 숨긴 채 수줍은 듯 우리를 반겼고, 모성별은 깊고 짙은 푸른색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 또 다른 지구. 내가 살아갈 제2의 고향.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있는 곳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치솟았다. 여행 내내 품었던 회의와 공포가 의지와 희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할 수 있어.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얼굴에서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작스런 충격음과 함께 선체가 흔들렸다. 진동은 점점 더 거세졌다. 곧이어 위험을 알리는 붉은색의 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 위험. 위험. 외벽 파쇄. 1급 재난을 선포합니다. 위험 구역은 모두 차단되니지지직-

무슨 일이야!”

꺄아악!”

은하 폭풍인가?”

외계의 공격일지도 몰라!”

달랐다. 미묘한 멀미의 느낌.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다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우지끈하는 하는 둔한 진동이 느껴졌고, 동시에 전망대의 바닥이 기울기 시작했다. 모두들 패닉 상태가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문으로 달려 나갔다. 기울어지는 방안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자와 밀려드는 인파에 밟혀 죽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 자가 복구 불가. 복구 불가. 긴급 대피를 명지지직- 합니다. 우주선을 포기하. 포기합. …지지직- 지정된 위치. …지지지지직- 비상 탈출지지직- .

우주선은 이미 여기저기 파괴되고 불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들 최우선 대피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미 수 많은 사상자들로 복도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어지러웠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비상 탈출 포트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떨리는 손으로 조작버튼을 눌러 모선으로부터 배출되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힘으로 내려쳐진 듯 반으로 휘어져 동강나버린 모선의 모습. 그리고 마치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은 거대한 어둠이 우주선을 집어 삼키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것은 심지어 위성 중 하나마저 집어 삼키는 듯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아니다. 말이 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다시 본 순간 그것은 마치 환상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잘못 본 것인가?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부서진 모선은 행성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고 비상 탈출 포트가 연신 발사되었다

나는 저 중에 제이드가 있기를, 이스가 있기를,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탈출 할 수 있길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존재했다. 투명 외벽을 두들기며 살려달라 외치는 들리지 않는 비명이, 우주선의 폭발에 휩쓸리고 밖으로 튕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누군가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나만 살겠다고 저들을 버린 것 같은 죄책감이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한동안, 아주 한참 동안을 오열했다

그리고 나의 탈출 포트도 여와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포트가 무사히 행성에 내려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나갈 수 없었다.

대기 구성 성분을 확인해보고 지형을 확인했다. 무선 감시 로봇을 가동하여 원경까지 철저하게 조사한 후 위험이 없다는 것을 재차 삼차 확인 한 후 겨우 탈출 포트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행성 여와는 봄이었다. 사족 보행을 하는 짐승들의 모습과 푸르르게 자란 식물들을 눈으로 보니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물밀듯이 몰려 들었다여와의 데이터는 연방의 것과 조금 달랐다. 수목의 생태도 대기의 함유량도 심지어 지형의 형태도 말이다. 약간의 오차였지만 중요한 것은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통신 장치가 고장 난 상태였다. 어차피 곤륜 프로젝트가 가동되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지금쯤 은하연방의 구조함선이 출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기운이 났고, 몇 번의 계산 끝에 모선이 떨어진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긴급 구호 물품을 챙겼다. 살아남으려면 모선을 찾아야 했다. 즉시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선까지 가는 동안 몇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여와엔 연방 기록대로 지적 생명체가 존재했다. 그들은 이제 막 촌락을 꾸미고 무리 사냥을 이룬 시기였다. 아직 농경시대는 열리지 않은 듯 했다. 아쉬웠다. 만약 오퍼레이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저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토양의 질을 살펴보니 곡식을 심고 자라는데 문제 없었다. 풍요한 땅이었다.

어디에도 탈출 포트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무사히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 나 뿐이란 말인가? 그 많은 포트들은 어디로 갔던 말인가? 더불어 간혹 금속으로 보이는 것들의 낡은 잔해도 발견할 수 있었다. 보고서에 선 문명이 있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달의 존재였다. 분명 두 개여야 할 달이 하나뿐이었다. 자전 주기상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의문은 점점 더 커졌지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우주선은 세 동강이 난 채로 높은 산의 꼭대기에 처박혀 있었다.

문을 열 필요조차 없이 처참한 형태였다. 기이하게도 우주선은 오래된 듯 낡아 보였다. 골조는 휑하게 뚫려 있고 풍화된 흔적이 역력했다. 식물과 짐승이 제 집으로 삼은 지도 오래 된 듯 하다.

그러나 희미하게 남아있는 문자는 분명 곤륜이었다.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무언가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브릿지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코드 네임 여와, 제이드가 남긴 기록이었다.

모든 기록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그의 운명을, 곤륜호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읽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 첫 번째 기록

모선이 추락했다. , 신이시여. 제발 살아남은 사람이 있기를.

 

- 다섯 번째 기록.

우주선의 많은 부분이 파손되어 복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한낮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스도 수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일까? 수습한 것은 몇 십구 되지 않는다. 시신조차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다. 어딘가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 믿는다. 비상 탈출 포트의 수가 부족하다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 아홉 번째 기록

구조 신호를 발사했지만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 고립무원의 처지다.

내일은 더 멀리 나가볼 생각이다.

 

- 열네 번째 기록.

은하 연방의 보고서와는 달랐다. 이 행성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관리해야 할 지적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 스물 한 번째 기록.

추락한 지 벌써 xx일이 지났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 뿐인 것 같다. 제기랄.

아직도 구조 신호에 대한 답은 오지 않는다. 대체 왜? !

 

- 쉰 세 번째 기록.

빌어먹을 은하연방 같으니!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중략)

 

기록은 계속 되었다.

연방 정부와 구조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분노와 광기가 점점 제이드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제이드가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괴로웠다

그런 와중에도 제이드는 행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기록을 남겨 두었다. 대기의 구성 성분. 수목의 생태. 토질의 성분 함유량. 모든 데이터를 볼수록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 일흔 아홉 번째 기록

추락할 때 입은 부상이 심해졌다. 이런 부상쯤은 감기와 다를 바 없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느낀다. 오퍼레이터를 위한 배아줄기 세포 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도 없다. 유전공학 구역은 다행히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의료 시설이 있는 구역은 흔적조차 없으니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긴, 불멸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는 혼자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내가 유일한데, 말을 걸 상대조차 없는데. 결국 미쳐버릴 게 확실하다. 어쩌면 죽음은 나에게 구원이 될 지도 모르겠다.

 

- 아흔 첫 번째 기록.

신이 되기로 했다. 오퍼레이터의 배아줄기 세포를 모두 사용할 생각이다.

인류의 DNA를 기반으로 생명체를 만들고 진화하도록 이끌 것이다. 신께 맹세코 완벽한 종족을 만들어….. 아니지? 내가 바로 신이 되면 되지 않는가? 그래, 나는 신이 되겠다!

만약 내가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 나중에 이 곳에 올 연방 새끼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뿐. 내 이름은 분명 최악의 기록으로 남겨질 테지. 히죽. 무슨 상관이야? 은하연방 따위 개나 처 먹으라고!

 

안 돼!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야, 제이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밀고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생명의 창조는 은하연방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 사항으로 발견되는 즉시 관련 종족은 모든 연방의 적으로 취급된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 지구가, 인류가 무사할 리 없다.

아직 기록이 남아있었다. 제발 그가 그만 두었기를, 이 미친 짓을 생각만으로 그쳤기 바라며 남은 기록을 재생시켰다.

 

- 아흔 여덟 번째 기록.

모든 것이 끝났다. DNA 정보가 행성의 진화 고리에 스며들었다.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다. , 신이시여.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입니까!

 

일말의 희망이 사라졌다.

은하연방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지구는 인류는 끝장이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다 깨달았다. 오로지 나 뿐이다. 누군가 기록을 뒤진 흔적은 없어 보였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떠올랐다. 제이드가 남긴 모든 것을 지우면 된다.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연방이 조사한다 해도 물증이 없다면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삭제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제이드의 음성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멈췄다.

 

- 백한 번째 기록.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누구도 내가 확인한 이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내가 믿고 있던 사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믿을 수 없지만 데이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떻게? 혼란스러웠다.

결과적으로 난 신이 되었다.

인류를 창조한 신 말이다. 왜냐고? 여기가 바로.

 

이 것이 마지막 기록이었다. 조용히 삭제 버튼을 눌러 모든 기록을 지웠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마지막 단어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이드가 남긴 유산도 결코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결코 은하연방력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었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겠지만 곤륜은 분명 원시 지구로, 나는 그 보다 훨씬 뒤의 시간으로 점프한 것이다. 내가 보았던 검은 어둠이 원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희미한 멀미의 감각은 분명 초공간 도약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흡수당하던 상황은 분명 사건의 지평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직 풀지 못한 우주의 신비라 여기기엔 너무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지구의 오퍼레이터가 누구였는지 알게 되었다. 이 비밀은 영원히 지켜질 것이다. 후대의 내가 궁금해 할 것을 생각하니 멈출 수 없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미친 듯이 한참을 웃었다.

한줄기 희망은 존재했다. 나처럼 누군가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그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우주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오퍼레이터 프로토콜에 명시된 대로 곤륜호의 외형을 변형하는 것이다. 이제 우주선은 거대한 산의 일부가 되어 세 개의 봉우리의 형태로 보일 것이다.

이제 만나러 갈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내게 물을 것이다.

- 천인이시여.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두 글자를 말해줄 것이다.

내가 타고 온 우주선의 이름이자 동양 신화가 시작된 곳, 그 신비한 산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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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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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a 14.09.02 02:25 댓글

    외계인이 사실 신이라는 이야기 좋아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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