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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One Day)



 그의 잠을 깨운 것은 소리였다. 얇은 벽 탓인지 아침마다 이웃집의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그의 방에 전해지는 것이다. 매번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어보지만, 이 가격에 이런 집을 얻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웃집의 소음이 들린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 또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안했다. 최근 지어진 집은 사생활이 철저히 보장된다던데 얼마쯤 하려나? 대출을 어느 정도 받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출근 전 마지막으로 스카우터를 꺼냈다. 고글과 손목용 터미널 디바이스로 구성된 스카우터의 정식 명칭은 ‘대인용 소통 장치(Interpersonal Network Scouter, INS)’이다. 귀에 걸치자 이음새가 느슨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수리를 맡기려면 시간상 주말이나 가능할 텐데. 그때까지 헐거운 부분이 버텨주길 바라며 전원 스위치를 켰다.
 - INS-N301이 기동되었습니다.
 - 인증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련번호를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터미널을 조작, 13자리의 암호를 넣자 다음 메시지로 넘어갔다.
 - 김현호님의 퍼스널 정보가 인증되었습니다.
 - ‘시큐어리티’ 모드가 발동 중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설정을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기계음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현호는 그제야 안정감을 느끼며 현관문을 나설 수 있었다.


 아침의 풍경은 여느 때와 같았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빗자루로 쓰레기를 모으는 청소부, 사나운 눈길로 벙긋거리는 옆집의 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달려가는 아이. 평범한 일상에 현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터미널을 조작하여 배경의 선명도를 높이는 대신 인물의 선명도를 낮추었다.
 그러다 문득 낯선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은 분명 발자국 소리였다. 설마, 다가오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무례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손바닥이 금새 축축하게 젖었다. 영역 체크를 살펴보았다. 사생활 보장 영역(Private Area)안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청력 감도 조절 상태를 확인했다. 문제 없었다. 혹시나 싶어 감도를 낮추려 조작하자,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경고 메시지가 들어왔다. 센서가 고장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시간을 내서라도 서비스 센터에 가봐야 하려나? 생각한 순간 스카우터가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구역 침범을 알려왔다. 현호는 무의식 중에 뒤로 물러섰고,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시야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보였다.
 브레이크 파열음과 함께 멈춘 것은 트럭이었다. 현호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분노가 솟구쳤다. 좁은 골목길에서 무슨 짓이냐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부어줄 요량으로 벌떡 일어섰다. 트럭의 운전사로 보이는 형체가 그에게 다가왔다.
 - 음성 언어가 포착되었습니다. 문자화 시키겠습니까?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란 그는 인물의 선명도를 높였다. 전체적인 모습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허름한 작업복. 구형의 초기 모델 스카우터.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얼굴. 운전수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인양 연신 주변을 돌아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음성 언어는 사과의 말로 짐작되었다. 왜 말로 말하는 걸까? 현호의 의아함을 알아챘는지 트럭 운전사가 스카우터를 사용했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죄송하다며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저, 사고 처리만은…… 부탁 드립니다. 회사에서 알면……]
 운전사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겁을 먹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전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합의금이나 벌금은 큰 타격이 될 것이다. 혹은 직업 자체를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 현재 시각은 오전 7시 30분입니다. 반복합니다. 오전 7시 30분입니다.
 지정된 시간을 알리는 알림. 이미 지하철 역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다. 그냥 넘어가자.
 [좋습니다. 중재자는 부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아니,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 지!]
 그는 거듭 거듭 머리를 조아려 사과했고, 마치 현호가 생각을 바꿀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 지금 상황을 녹화하시겠습니까?
 거절 버튼을 눌렀다. 아주 잠깐 후회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출근이 급했다. 역까지 얼마나 걸릴까 가늠해보았다.
 - 현재 위치를 측정 중입니다.
 음성과 동시에 지도가 눈 앞에 펼쳐졌다.
 - 현재 위치에서 지하철 역까지 최단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김현호님의 신체 상황과 폐활량, 평상시 운동량에 따라 결과를 산출하면 예상 소요 시각은 3분으로 추정됩니다.
 현호는 낮게 혀를 찼다. 34분까지 도착해도 개찰구와 플랫폼을 1분 안에 주파해야 하다니.
 - 다음 급행 열차는 7시 55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서둘러야 했다.


 역에 도착하자, 전철이 막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서둘러 개찰구로 향했다. 자동으로 요금을 정산한 스카우터가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그의 신경은 오로지 급행 전철에 쏠려 있었다. 다른 이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달리 듯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플랫폼은 막 도착한 열차에 탑승하려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잘하면 탈 수 있겠다.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며 두 계단을 한 걸음에 뛰어내리자마자 바닥에 구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단에서 구르다니. 정말 재수없는 아침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픔보단 부끄러움이 앞섰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스카우터의 경고음. 쓰러진 여성의 모습. 자신이 저지른 일을 확인한 현호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여성의 대인 인식용 코드를 인식시켰다. 그리고 빠르게 사과의 메시지를 날렸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자신이 받았던 메시지를 그대로 적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문득 실소가 터질뻔했다. 그러나 여기서 웃었다간 낭패라는 걸 잘 알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선 여성은 현호가 두려운 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상대편에서 시큐어리티 모드를 해제하길 요청하였습니다. 승낙하겠습니까?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혹시나 하는 바람은 무참히 꺾였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기에 모드를 해제했다. 순간 현호는 벌거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현호씨. 세우 실업에서 근무하시는군요. 다행히 해바 보균자는 아니니 간단히 끝내도록 할까요? 중재자를 부르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길고 긴 메시지였지만 전광석화와 같은 타이핑 속도로 보아 무척 화난 듯 했다.
 [알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멈춰서 구경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건이 일어난 곳을 피해 삥 돌아가는 형편이었다. 마치 연관되면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호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 땀이 났다. 무례한 자라 손가락질하는 듯 했다.
 다행히 중재자는 빠르게 도착했고, 둘 사이에 멈춰 섰다. 빨간 등을 켜고 다가온 원통형의 기계. 오래 된 SF영화 속에서 등장한 기계와 비슷하게 생긴 중재자는 PA2(Private Area Arbitrator)라는 명칭보다는 R2D2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중재자가 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 김현호님께서 INS 코드 PJU485님의 ‘사생활 보장 구역’을 침해하셨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김현호님께서는 PJU485님의 요청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현호는 짧게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 퍼스널리티 법 위반을 인정하셨습니다. 김현호님은 PJU485님의 사생활을 침해하였으며, 그로 인해 PJU485님이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중재자가 여인에게 다시 물었다.
 - 넘어진 것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시겠습니까?
 여성은 빠르게 대답을 타이핑했고, 중재자가 현호에게 전달하였다.
 - 피해보상 청구 없음. 사생활 구역 침해에 대한 사건만 처리하도록 합니다.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 이번 위반에 대해 사회 봉사활동 8시간 혹은 벌금 10만원이 부과됩니다. 물론 이 위반은 법적인 규제가 없으므로 본 판결을 무시하여도 됩니다. 그러나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선택하시겠습니까?
 현호는 속으로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스카우터를 중재자에 접촉시켰다. 벌금이 부과되자 은행 잔고가 줄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창피한 줄이나 아세요. 그렇게 부주의하다니.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여성은 도도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현호는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플랫폼에 정차한 열차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열차에 올랐다.


 생각할수록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액땜이었다 치자 생각했다. 그래, 불행 뒤에 행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제야 마음이 좀 편해지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창 밖으로 낯선 풍경이 지나갔다. 노선도를 살펴보니 교외로 향하는 열차였다. 한번도 타본 적 없는 노선이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들뜬 기분이 들기도 했다. 교외로 빠지는 열차라 그런지 승객들도 적은 편이었다. 한번 더 갈아타야 하겠지만 상관없다. 계산해보니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이었다.
 벽면에 설치된 스카우터 전용 패널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 나왔다.
 - XX구역의 INS 공장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이로 인해 공장 지하를 지나던 가스관이 손상을 입어 XX동 일대의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경찰 당국은 INS 공장을 노린 테러리스트 A.INS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으며, 사건 해결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XX구역이라면 자신의 동네가 아닌가? 가스관이 폭파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게다가 테러라니.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뉴스는 계속되었고 화염에 휩싸인 INS 공장의 모습과 진화를 서두르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나왔다. 불이 점점 더 커지고 공장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비춰졌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더 이상 뉴스에 머물지 않았다. 옆 칸이 열리며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퍼스널리티 법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INS 반대 시위자들이었다.
 객차 안의 모든 스카우터가 이들에게로 향했다가 사라졌다. 당황은 이내 잦아들었고 승객들은 이들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시위자의 선두에 선 사람이 작동시킨 이상한 기계장치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스카우터의 화면이 갑자기 붉고 변하며 경고음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승객들은 일제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 경고, 경고. 해킹되었음을 알립니다. 시큐어리티 모드가 해제되었습니다. 스카우터의 기능이 한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무수히 많은 글자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 눈을 뜨자! 입을 열자! INS 반대!
 - 퍼스널리티법 반대! 우리는 인간이다!
 구호에 맞춰 시위자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따라 외쳤다.
 “눈을 뜹시다! 스카우터를 벗어버립시다! 말을 합시다!”
 “해바는 이제 없어졌습니다! 폭력은 사라졌습니다!”
 “상대편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눕시다! 소통합시다! 기계를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기능이 제한되자 주변의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덜컹거리며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 불안감에 부스럭거리는 소리, 무의식 중에 내뱉은 짜증스러운 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몰아 쉬는 숨소리, 그리고 시위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소리까지. 갑자기 들이닥친 무수한 소음과 눈 앞에 번쩍거리는 붉은 메시지들로 머리가 아팠다.
 해바(H.V.). 몇 년 전 발견된 미지의 바이러스(발견자의 이름을 따 해리슨 바이러스, 해바라 명명되었다)로, 발생하자마자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해바는 인간의 뇌에 침투,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을 가진 존재였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켜 사소한 말다툼으로도 주먹이 오고 가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이러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은 거대한 불꽃처럼 번져나갔고, 통제할 수 없는 폭력과 살인, 방화로 이어졌다.
 결국 치료제의 발견으로 해바는 수그러들었지만,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접촉만으로 옮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타인과 접촉하길 꺼려하고 대화를 거부했다. 이러한 결과가 사생활 보장 영역(Private Area)을 중시하는 현 세태를 만들었으며, INS의 개발과 동시에 관습화된 퍼스널리티 법의 생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위자들은 INS의 개발과 사생활 보장이라는 명분하에 소통이 단절되었으며,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객차 안은 공황 상태에 빠져 들었다. 승객들은 피하기 바빴다. 어떤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기도 했다. 어떤 이는 울면서 정신 없이 터미널을 두드렸다. 황급히 문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생각은 모두 같았다. 해바로 인해 겪었던 폭력의 공포. 자신이 그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치료제로 해바가 줄었다고는 해도 보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 모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INS의 사용은 필수였다.
 현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호의 염원과는 달리 피켓을 든 여인은 현호의 앞에 섰다. 개인 대 개인의 설득이 시작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송현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날씨가 좋네요, 출근하시는 길인가요?”
 스카우터를 착용하지 않은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INS로 사회가 병들고 있으며, 사람 사이에 정이 없어지고 있다고. 대화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짧은 문자로는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눈에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스카우터는 족쇄입니다. 기계에 의존하지 마세요. 스카우터를 벗고 대화를 나누……”
 다가서는 여인을 피하고자 현호는 뒤로 물러섰다.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밀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퍼스널리티 법 위반이다. 안 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현호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예상외로 세게 밀친 덕이었을까? 여인은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쿵 소리와 함께 객차 안은 놀람으로 정적에 휩싸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현호를 향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현호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달리는 객차 안에서 숨을 곳은 없었다. 낭패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현호를 구제하듯이 열차가 플랫폼에 정차하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객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빠져나갔다고 서로를 밀치며 문으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 퍼스널리티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폭력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만 존재할 뿐이었다.
 넋이 나갔던 현호도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달리다시피 문으로 향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 와중에 헐겁게 걸쳐있던 스카우터가 바닥에 떨어졌고, 발 사이로 사라졌다. 당황한 현호는 스카우터를 찾으려 했으나 뒤에서 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곧 뚝,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결국 승객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쪽 렌즈는 이미 산산조각 났고, 테는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제 기능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카우터를 착용해보려 했다. 어쩌면 화면만이라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 보았다. 그러나 무정한 스카우터는 노이즈 낀 화면을 보여줄 뿐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현호를 스치듯 경찰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갔다. 시위자들이 차례로 연행되었다. 체포 당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퍼스널리티 법 반대와 INS를 거부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분통이 터졌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끌려 나오는 시위자들을 쳐다보았지만 망가진 스카우터가 멀쩡해질 리는 없었다.
 소란은 마무리되었고 철도청은 이번 사태에 대하여 사과의 방송을 내보냈다. 불편을 드린 점과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안전을 기하겠다는 메시지였다. 더불어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보상을 하겠다고 했지만 스카우터가 망가진 현호는 이러한 사실을 알 지 못했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INS 서비스 센터를 나오는 그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스카우터의 수리는 불가능했으며, 새로 맞추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INS 공장 화제로 인하여 퍼스널 정보가 입력된 터미널과 정보 연동할 수 없다고 한다. 백업 데이타를 이용하여 신형 INS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내일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개인 정보가 등록되지 않은 스카우터는 무용지물이었다. 스카우터없이 오늘을 보내란 말인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무슨 머피의 법칙 같았다. 생각할수록 짜증과 후회만 남았다. 상황을 되씹어보아도 이 모든 게 트럭 운전수 탓 같았다. 접촉 사고만 없었어도 뛸 이유도 없었으며, 넘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 중재자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사과 문자로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엉뚱한 열차를 탔고 시위자들을 만났다. 스카우터가 망가진 것도 다 그 소란 때문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억울했다. 벌금과 수리비. 여의치 않은 지출로 이번 달 생활비도 빠듯해질 것이다. 현호는 오늘의 불행이 이것으로 끝이었기를 바랬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상사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음을 이해하고, 시말서 없는 지각으로 처리해주었다.
 자리에 앉자 피곤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밀린 일을 시작하기 전에 뻐근해진 어깨 근육을 주무르기 위해 손을 올리자 터미널에 붉은 불이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옆자리 동료의 메시지였다.  스카우터가 없으니 일일이 터미널의 화상 단말기를 들여다 봐야 했다. 글자도 작아 한 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
 [김대리, 괜찮아? 불편해서 어떻게 해.]
 [고마워, 홍대리. 재수가 없었지, 뭐. 내일이면 스카우터를 구할 수 있다니까 참아봐야지.]
 [힘내. 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탁해. 도와줄 테니까.]
 홍대리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여기 저기서 위로의 메시지가 날라왔다. 수신 램프가 쉴 새 없이 깜빡였다. 화상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문자를 읽고 일일이 리스트를 찾아 답문을 발송하자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반응도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첫 반응은 연민과 동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변했다. 스카우터가 없는 그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화도 빠르지 못했고, 무엇보다 눈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동료들은 자연스레 멀어져 갔고 점점 더 접촉을 꺼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점심 시간이었다. 동료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현호는 알아서 자리를 피해줄 수 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살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차라리 휴가를 쓸까? 인사 고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샐러리맨의 비애였다.
 오후가 되어도 살얼음 같은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은 커질 대로 커져있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툭 하고 끊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 퇴근 시간이 되자 현호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누구보다 빨리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탈 순 없었다. 계단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도, 두려움을 가지고 피할 모습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자신도 피해자라고 설명할 방법도, 한다고 해도 들어줄 이도 없을 것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터미널의 불이 깜박였다. 수신 메시지였다.
 [현호야, 시간 되냐? 저녁에 좀 만나고 싶은데.]
 종석이? 왠 일이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무리였다.
 [오랜만이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은 좀 힘든데……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스카우터가 없어서 그럴 상황이 아니다. 미안하다.]
 [알아. 급한 일이야.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어. 너에게도 중요한 일이고.]
 안다고? 거기다 중요한 일? 나에게?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니? 무슨 말이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떨떠름했지만 실 없는 소리를 할 녀석은 아니었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연락을 끊었다.


 약속 장소는 한옥으로 지어진 요정이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나 의아해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홀은 없었다. 아마도 방들로 구성된 듯 하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스카우터가 대중화된 세상에 음악 소리라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었다.
 한복을 입은 여인이 국화가 그려진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문을 열자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종석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와라, 현호야.”
 현호는 깜짝 놀랐다. 느닷없는 말소리도 그렇지만, 스카우터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어…… 오랜만이다. 종석아.”
 반가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현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종석이 먼저 현호의 잔에 술을 채웠다. 둘은 말없이 잔을 부딪치고 한잔씩 기울였다. 짜릿함이 목구멍을 먼저 간질였다. 형언할 수 없는 향이 그 뒤를 뒤따랐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술임을 알 수 있었다. 실내 분위기나 정갈한 음식을 보더라도 꽤 비싼 곳이겠구나 싶었다.
 종석의 취향이 이랬던가?
 “2년 만인가?”
 “그쯤 되었겠다. 네가 국가 고시에 합격한 후로 못 봤으니까.”
 “미안하다, 하하- 좀 바빴다.”
 “무정한 녀석. 나라 밥을 먹더니만 변했어. 돈 좀 버나 본데?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 된 거야?”
 “이 형님이 신경 좀 썼다. 마음에 드냐?”
 “형님? 말은 똑바로 하자. 어째서 네가 형님이냐? 생일은 내가 더 빠르다.”
 시시한 농담이 오고 가고, 부모님 안부라던가 친구들 소식을 묻는 등의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말로 나누는 대화가 어색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대화는 술술 이어졌다.
 “그건 그렇고. 말해봐. 중요한 이야기가 뭐야? 나랑 관련이 있다니?”
 “설명을 하기 전에, 잠깐만.”
 말을 끊은 종석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썼다. 의아했다. 갑자기 스카우터라니?
 “김현호씨. 이제부터 하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길 바랍니다.”
 갑자기 종석의 말투가 달라졌다.
 “당신은 A.INS와 관계가 있습니까?”
 “무슨 장난이야, 종석아!”
 “장난 아니야. 친구로써 말하는데 너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날 믿어. 묻는 말에 솔직히, 거짓없이 답변하면 돼.”
 A.INS라면 테러조직이 아닌가? 그들과 관계가 있냐는 건 자신보고 테러조직원이냐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종석은 굳은 표정이었고, 대답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없습니다.”
 “그들과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체 무슨 일이야!”
 현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 질렀다.
 “그래, 말해주지! 그 어떤 사상과 신념일지라도, 그게 설령 옳다고 해도! 파괴와 폭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옳지 않아! 해바와 다를 바가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난 그들을 싫어해! 됐어? 됐냐구!”
 종석은 그제야 스카우터를 벗었다.
 “자자, 화 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너랑 나랑 오늘 끝인 줄 알아, 서종석!”
 “알았다니까, 설명할 테니까 일단 좀 앉아라. 그러니까 이건……”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자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종석이 설명을 시작했을 무렵의 현호 기분은 분노와 실망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났을 무렵엔 취기 따윈 날아간 지 이미 오래였다.
 “그렇게 된 거다. 이해해라.”
 “그러니까…… 지금 네가 나를. 정말. 취조했다는 거냐?”
 “다행인 줄 알아. 처음 네가 수사 대상에 올라온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윗선에 말해서 내가 조사하겠다고, 넌 그럴 놈이 아니라고 설득했단 말이다.”
 “단지 스카우터가 망가졌던 것뿐인데.”
 어이가 없었다.
 “뭐가 그래! 말도 안되잖아! A.INS의 일원인지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는 사이란 말이다! 내가 피해자였다고!”
 “그래, 그래. 네 입장에선 재수없는 일이지. 하필이면 A.INS 요원과 접촉 후에 후 스카우터 없이 역을 빠져나가는 정황이 포착되었으니. 덕분에 문제가 커진 거다. 포섭이냐, 동료냐. 물론 아닐 수도 있다는 보고도 올라왔지만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해라. 뉴스 봤지? 오늘 아침 INS 공장 폭파 사건.”
 “덕분에 내가 하루 종일 스카우터없이 지냈어야 했는데 왜 모르겠냐! 빌어먹을.”
현호의 투덜거림에 아랑곳없이 종석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 공장을 폭파시킨 인물도 너와 만났었다.”
 “뭐라고?”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어리둥절했다. 테러범과 만났다고?
 “하얀색 1.5톤 트럭과 부딪칠 뻔 했지? 시간상으로 보면 아마 아침일거다.”
 “그게 무슨 상관…… 그러니까 그 트럭 운전사가 테러범이란 말이야?”
 “그래. A.INS 소속 행동대원이었다. 그 자를 만나고, 송현아, 그녀까지 만났으니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거지.”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불안해 하던 운전사의 모습이 기억났다. 동시에 현호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잠깐! 트럭과 부딪칠 뻔 한 건 어떻게 안 거야?”
 종석은 답변하지 않았다.
 문득 무언가 현호의 뇌리를 스쳤다. 미국 수사 드라마에서나 보던 모습. 차량 내비게이션을 통해 위치를 추적하던.
 “…스카우터구나.”
 종석은 답변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긍정이었다.
 “그건 개인 사생활법 위반 아니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추적하고 탐지하는 건 불법이잖아!”
 “국가 안보는 어떠한 법보다 최우선이다. 우리나라는 전시 국가야.”
 “말…도 안돼.”
 현호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과 함께 과거의 사건이 떠올랐다.
 20세기말, 영국의 기자가 쓴 ‘누군가 엿듣고 있다’라는 기사 속에 등장하는 에셜론(ECHELON). 미국과 영국은 전면 부인했지만, 일부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되는 시스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통신 정보감시망. 만약 에셜론이 실제로 존재하고 정부에서 민간인들까지 감시하고 있다면? 더군다나 모든 소통이 말이 아닌 문자로 이루어지는 지금이라면?
 “…설마 위치 추적만이 아니라 문자도 모두 기록되는 건 아니겠지?”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생활을 기록하고 감시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본 적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금 버젓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이건 말도 안 돼. 네가 일하는 곳이 대체 어디길래?”
 종석은 머뭇거렸다.
 “말해도 모를 거다.”
 결국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없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정부에 속고 있다는 거였다. 정부는 얼마든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아니 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눈에 선했다. 알려야 하지 않을까?
 “현호야.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오늘 난 필요 이상으로 말했다. 하지만, 난 오늘 너와 만날 걸 부정할거고, 더 이상 정부에서 널 주목하게 하지마. 이건 친구로써 해주는 충고다.”
 입 닥치란 소리군. 어차피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협박이었다. 오히려 정부에서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주목하고 감시할 것이며, 결국에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의 혼란을 알아챘는지 종석은 가만히 술잔만 기울였다. 머리 속에선 온갖 시나리오가 써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럼 난 이제 테러리스트 혐의를 벗은 거냐?”
 “일단 그런 셈이지.”
 “네 말만 듣고 믿어준단 말이야? 그것 참 편리하네. 아니 대단한 친구를 두어서 고마워해야 하나?”
 심사가 뒤틀려서인지 저절로 비꼬는 말투가 나왔다.
 종석은 품에서 스카우터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건 몇몇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스카우터야.”
 “특수한?”
 “키를리안의 사진기에서 착안한 기능인데, 생체 에너지라고 들어봤지? 기쁨이나 슬픔, 분노라던가 하는 감정을 느끼면 사람들이 가진 오오라가 변해. 긴장하고 있다, 땀을 흘린다던가 하는 것 같이 신체 변화가 민감하게 변화하는 걸 색깔로 볼 수 있지. 그 정도만 알아둬.”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라는 건가? 그것도 대상자가 탐지 당하는 것도 모르는?
 “취조하듯이 물어서 미안했다. 이해해라.”
 증거를 제출하면 혐의가 벗겨질 거라고, 걱정 말라고 종석은 위로했다. 그러나 현호의 마음은 복잡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안도와 불시에 심문을 당했다는 더러운 기분 중에 어느 쪽이 우세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문득 또 하나의 소문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었지만, 이 상황까지 오고 나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나만 묻자.”
 ”뭔데?”
 “설마 해바를 군에서 만들어서 퍼트렸다는 소문이……”
 사실인 거냐? 라고 묻고 싶었다.
 “야야, 그런 루머를 믿는 거야, 설마? 그런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치자, 세상이 망하기밖에 더 하겠어?”
 “치료제까지 만들었으니까, 제어만 잘하면…… 어쩌면?”
 “그래서? 해바로 인해 이득 본 나라가 있는 것 같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해바가 발견된 후로 전 세계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세계 경제는 빠르게 급락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국가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무역을 주로 하던 국가들은 줄줄이 도산, 결국 유럽 경제의 몰락과 유로화의 폐지, 원유가의 폭등에서 이어진 실물 경제의 급등은 결국 서민 경제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마치 도미노처럼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 국가들은 강대국인 A국을 의심하기도 하였으나 가장 많은 수의 폭력이 일어나고 사상자가 많았던 국가도 A국이었다. 그만큼 감염자들도 많았고 해바의 치료제가 만들어진 이후로도 사후 처리에 수백억을 쏟아 붓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휘청거리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INS 개발과 사용은?”
 “뭘 묻고자 하는지 알겠는데, 대답은 아니다야.”
 사실일까?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진실이라 해도 정부는 INS를 이용한 셈이다. 결국 사람들이 알아서 스스로 올가미를 뒤집어 쓴 격이었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오히려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주는 거냐? 그냥 날 불러다가 심문하면 되는 일이잖아.”
 “그건……”
 종석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죄책감? 자괴감? 무어라 딱히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답답했다고 해두자. 나도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길 바래. 무리겠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현호는 해줄 수가 없었다. 종석도 굳이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자,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 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이나 마시자.”
 종석이 밝게 웃으며 현호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종석은 세상 돌아가는 일이라던 지, 다른 친구들 소식을 묻는 등 사소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했지만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는 쉬이 바뀌질 않았다. 결국 몇 병의 술병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안주는 거의 그대로였다.


 현호는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스카우터가 없는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택시 기사의 눈초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다 잊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기억날 뿐이었다.
 기계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취기도 사라졌다. 지끈거리며 아프던 머리가 조금은 가라앉은 듯 했다.
 헤어질 때 종석이 건넨 상자를 열었다. 그의 말대로 스카우터가 들어 있었다. 모델 넘버 N401. 조만간 출시될 거라 알려진 신형 모델이었다.
 - 스카우터가 없으니 불편하지? OS도 업그레이드해뒀고, AI기능도 추가된 거라 쓸만할 거다. 네 퍼스널 정보도 입력된 거니까 인증 절차만 거치면 돼.
 스카우터를 쥔 손이 아파왔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뜨겁고 쓰라렸다.
 현호는 재빨리 스카우터를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 이러할까? 차라리 판도라의 상자면 나을 텐데. 희망이라도 있으니까.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한 말이 고장 난 레코드 판처럼 되풀이 될 뿐이었다.
 - 난 오늘 너와 만날 걸 부정할거고,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해주마. 그리고 더 이상 정부에서 널 주목하게 하지마. 이건 친구로써 해주는 충고다.
 쓴웃음이 나왔다. 스카우터가 없는 대화였던 이유조차 의심되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있는 친구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스카우터가 없는 자신을 배려해서라고도 생각했다.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인가?’
 오랜 친구를, 하물며 도와 준 사람을 의심하는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종석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세상에 알릴 수도 없었다. 설령 알린다 해도 누가 믿어주겠는가? 부정하면 그뿐이었다.
 불현듯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전 처음 본 여자. 낯선 그녀의 얼굴에 서려있던 신념과 자신감이 부러웠다.
 - 기계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녀는 알고 있을까? 왜 말하지 않는 거지? 말했다면 믿었을까? 정말 A.INS 테러리스트일까? 현호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무슨 상관인가. 손을 뿌리친 것은 자신이었다.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자신은 신형 스카우터를 착용하고 출근할 것이다.
 현호는 잠자리에 들면서 스카우터를 최소한으로,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눈을 감자 이윽고 세상은 어둠으로 점점 짙게 물들고 정적으로 가득해졌다. 날이 밝기 전까지 밤은 언제나 이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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