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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우제점

2022.06.01 01:4706.01

우제점


고조선 말에 동쪽 지역 먼 곳에 소 발굽 모양을 닮은 바위 봉우리가 있는 산이 있었다. 이 산은 궁벽한 곳에 있었고 산 주위의 다른 땅 밖에서 적이 침입하기에 힘든 위치에 있기도 했다. 그래서 산 주변 넓은 땅을 대부 한 사람이 다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높여 부르기를 그를 산대부라고 하였다.

산대부는 때때로 소 발굽을 구해서 그것으로 점을 쳤다. 소 발굽을 불구덩이에 집어 넣으면 발굽이 여러 모양으로 갈라지고 깨지는데, 그 모양이 어떠한가를 보고 산대부는 자신이 다스리는 땅의 운수가 어떠한 지를 알아 보았다. 더러는 주변 사람이나 자신을 찾아 온 사람의 운수에 대해 소발굽으로 점을 치고 결과를 말해 주기도 하였다.

하루는 산대부가 소 발굽 바위 봉우리에서 제사를 지낸 뒤에 엄숙하게 기도 하고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그의 궁궐 앞에서 다시 소 발굽 점을 치려고 하였다. 하늘에서 운수를 알려 주는 데에 감사하고자 사람들은 많은 음식들을 차려 놓고 있었고, 또한 음악을 연주하고 몸 가짐 하나하나를 모두 조심하고 있어서, 성의를 다하며 예를 차리고 있었다.

그 음악을 연주하다 잠깐 노래를 부르는 때가 있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 중에 노래를 잘 부르는 젊은 사람이 한 사람 끼어 있었는데, 노래의 곡조가 어렵고 기이한 데에도 그 소리를 잘 살려 특히 듣기 좋도록 노래를 불렀다.

산대부는 그런 노래를 들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노래를 듣고 그토록 마음이 움직인 것도 처음이었다. 

“노래 부른 자는 나와보라.”

산대부가 지시하자 노래 부르던 젊은 사람이 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곧 산대부는 그 노래 부른 사람에 대해서도 소 발굽으로 점을 쳤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들뜬 상태여서 점을 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점괘를 보는 데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신묘한 노래는 처음 들어 보는데, 어찌 큰 일을 이야기하는 점괘가 아니겠는가?”

산대부는 어떻게든 점괘를 깨달아 보리라 생각하고 궁리해 보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점괘가 나오면 어떻게 그 뜻을 헤아리는가?”
“정갈한 물 이외에 다른 것은 먹지 않고, 항상 절하고 기도하며 뜻을 풀이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부하 하나가 그와 같이 말했다. 산대부는 그 말이 옳다고 하고는 음식 먹는 것을 멈추고, 노래를 들을 때 느꼈던 놀라운 느낌과 점괘가 어떻게 어울려 있는 것인지를 알고자 궁리하기만 했다.

그러나 날짜가 지나도 산대부는 점괘로부터 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산대부는 나이가 많아 늙고 쇠약해 있었는데, 며칠 간 밥을 먹지 않으니 더욱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병이 들어 몸져 눕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노래를 들었을 때 왜 산대부가 그렇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지도 깨우칠 수 없었고 또한 그 후에 나온 점괘에 대해서도 깨우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대부는 이 들었는데도 억지로 절하고 기도하며 점괘를 풀이할 생각이 깃들기를 빌었다.

결국 그러다 대부는 몸이 크게 상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목숨을 잃기 직전에 너무 온몸에 아픈 곳이 많아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길게 했다. 그 중에 산대부는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부른 아이가 하늘이 뜻을 보여 준 아이이니, 그 아이가 다음 산대부가 되도록 하라. 또한 이제 온 세상이 물 밑으로 가라앉게 될 것인데, 그것을 막으려면 부지런히 산대부와 함께 사람들이 모두 소발굽 바위에 불을 지펴 연기를 일으켜서 운수를 바꾸는 길 뿐이다.” 

그리고 곧 산대부가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며 울었다. 또한 산대부가 말한 대로, 노래를 잘 불렀던 사람을 다음 산대부로 모시기로 했다.

새로 산대부가 된 젊은 사람에게 신하 하나가 와서 말했다.

“산대부께서 세상을 뜨기 전에 말씀하신 것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일을 멈추시면, 하늘이 노하여 우리가 사는 땅이 모두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하셨으니, 일을 거르시면 안 됩니다.”

부하들, 학자들, 장군들, 나이든 사람들, 높은 사람들, 힘이 있는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새로 뽑힌 산대부는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가 소발굽 바위 근처에 땔감을 모아 크게 불을 지피는 고된 일을 했다.

산대부는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어 모시는 높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의식과 예의를 모두 따르며 바위에 불을 지피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산대부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몸을 혹사하며 오직 불 지피는 일에만 매달렸다. 

하루 하루가 지나갈 수록 산대부의 행색이 힘겨워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부께서는 그러다 몸을 상할 것입니다. 부디 쉬어 가며 일하십시오.”

라고 했다. 그러면 산대부는 두려워 하며 소리치기를,

“내가 이 일을 멈추면 온 세상이 다 바닷물 밑으로 잠겨, 우리는 다 목숨을 잃을 것이요, 앞으로 영영 사람이 살 땅이 없을 것이다. 내가 몸이 다 부서지고 모두 불탄다고 하더라도, 내 일을 게을리 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계속 그렇게 큰 바위에 불을 지피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일을 할 때 들어 가는 땔감도 많았고, 의식을 치르는데 필요한 음식을 구하고 기름을 같이 태워 없애는 데에도 재물이 많이 필요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산대부의 일이 멈추면 세상이 모두 물에 잠긴다고 믿고 있었으로, 모두가 산대부의 불 지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무릇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부께서 하시는 일을 돕지 않고, 우리가 불을 피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모두가 망할 것이니, 힘들다고 해도 멈출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사는 것이 힘들고 다른 일로 바쁠 때에도 산대부가 하는 일에 드는 재물을 바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은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굶주리는 일도 많았고, 또 그 사이에 힘이 빠져 병들어 목숨을 잃는 사람, 돌볼 사람이 없어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나, 설령 굶주려 죽을지언정, 사람들은 말하기를,

“비록 나는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굶주려서 침을 흘리다가 죽게 된다고 하지만, 대신에 대부께서 하시는 일이 멈추지 않아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일은 피하고 있으니, 비록 내 죽지만 뜻 깊지 아니한가?”

라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25년이 흘렀을 때, 이런 산이 있다는 사실이 고조선의 도성에 머물던 장군들에게 알려졌다.

“이것은 우리 임금을 높이지 않는 일이고, 욕되게 하는 일이다.”

장군들은 그렇게 의논하였다. 곧 장군 하나가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장군은 산대부를 사로 잡고 소발굽 봉우리 산 주변의 땅의 사람들이 모두 고조선 임금에게 복속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산대부와 그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아무리 괴롭혀도 좋고, 우리를 노비로 삼아도 좋으나, 부디 이 바위에 불 지피는 일은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불 지피는 것을 멈추면 세상이 모두 물에 가라앉아 버립니다.”

군사들이 검을 꺼내서 다스리려고 하고, 또한 몽둥이로 무수히 때렸으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바위 봉우리 곁의 산대부와 그 부하들은 버티려 했다.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이 많아, 그 일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참 피를 튀기며 싸운 후에야, 산 위에서 25년간 끊이지 않고 해 오던 불 지피는 의식을 멈추었다.

패하여 묶여 있는 산대부가 말했다. 산대부를 이기고 이 지역을 복속시킨 장군의 부하, 비장 한 명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겨 망할 것이오.”

그러자 비장이 깔깔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 돌 위에서 불을 피우면 땔감이 없어지고 재가 생길 뿐이지 그 일을 백년, 천년을 한들 달라지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을 하면서 너희는 그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고 있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산대부가 다시 물었다.

“나에게 대부 자리를 물려 주신 전의 대부께서는 점을 치시기를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하셨소.”

비장은 다시 크게 웃었다.

“소발굽이 불에 갈라지는 것은 그냥 불길이 이지러지는 데 따라 이렇게 되기도 하고 저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니, 아무 뜻이 없는 일이다. 소발굽 점이라는 것은 저녁에 어느 동네에 가서 술을 먹을까 하는 것 따위를 정할 때에 재미 삼아 보는 것이지, 어찌 소발굽 점을 보는 것 따위로 세상의 흥하고 망함을 알 수 있겠느냐? 너에게 소발굽 점에 대해 알려 준 옛 대부는 오래 동안 밥을 굶으며 기도를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한 말이라고 해도 신통한 하늘의 뜻이 아니라, 그저 몸이 약해져 헛것을 보고 한 소리일 뿐이다.”

그 말을 듣고 산대부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기침이 나왔기 때문이다. 산대부는 한참 기침을 하고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그래도 굳은 표정으로 다시 따졌다.

“예전의 대부께서는 나에게 대부 자를 물려 줄 때에, 노래 하나를 듣고 너무나 이상하다고 하시어, 문득 큰 일이 났다고 했소. 그래서 그때부터 궁리 끝에 나에게 대부 자리를 물려 준 것이오. 그게 어찌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시오? 하늘의 뜻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비장은 산대부를 한참 바라 보더니,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것은 그저 네가 그날 노래를 참 잘했기 때문이다. 왜 한 평생을 쓸모 없는 일을 하며 보냈느냐?”

그리고 비장은 산대부의 앞을 떠났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는 사악한 술수를 사람들이 믿게 만든 일의 우두머리이다. 그 죄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임금께서는 너그러우니, 다른 부하들은 대부분 모두 풀어 줄 것이다. 단, 너는 우두머리이며 이렇게 패하여 붙잡히고도 머리를 숙일 줄 모르니, 내일 밤 처형될 것이다.”

산대부는 밤이 지나고 다시 낮이 되고 또 낮이 다 지나도록, 혹시 온 세상이 갑자기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가 싶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산대부가 처형 당할 때가 왔다. 

군사들은 싸움에서 이기고 나쁜 사람들을 잡았다는 이유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잔치가 끝이 나면 산대부를 처형할 모양이었다. 산대부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한켠에는 잔치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 쓰는 공후라는 악기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여 내 평생 저런 악기를 한 번 연주해 보는 것을 꼭 해보고 싶었소. 그런데 평생 다른 일만 하며 살아야 했으므로 악기를 한 번 만져 본 적이 없소. 한 번만 다루어 보아도 되겠소?”

그 말을 듣고 군사 하나가 공후를 산대부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산대부는 몇 번 현을 튕기며 소리를 시험해 보았다. 시험을 하며 악기에 대해 알아 가는 것 같더니 얼마 안 되어, 곧 그 자리에서 곡을 하나 지어 냈다. 그리고는 공후를 위해 방금 만든 곡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대단히 아름다워 주변에 있는 군사들이 모두 말을 멈추고 그 연주를 들었다. 연주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는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한 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자가 엉뚱하게 산 꼭대기에 불을 안 지피면 세상이 다 망한다는 소리를 믿지 않고,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면 그 사이에 얼마나 좋은 곡을 많이 지으며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연주가 끝나자 산대부는 예정대로 처형 당했다. 

이후로는 아무도 산 봉우리 바위에서 불을 지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대대손손으로 이어진 그 지역 사람들의 후예 중에는 수 백년,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이제 곧 세상은 물에 잠겨 모두 망하게 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 2022년, 서초에서

댓글 2
  • No Profile
    윤새턴 22.06.08 17:08 댓글

    공후라는 악기를 처음 듣고 찾아보니 굉장히 이국적인 생김이라 놀랐습니다. 읽은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2.07.01 22:09 댓글

    감사합니다. 고조선 시리즈는 좀 비슷한 패턴으로 가는 경향이 있네요. 다음번엔 다른 배경,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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