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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월척

2006.06.03 01:3106.03


드라마

월척  곽재식






"우리 오빠가 내 인라인 스케이트 어디 치웠다는데 못찾겠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돼?"

약속시간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그런 전화가 왔다. 그녀의 집이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로 미안해하는 목소리였다. 마침 요즘 중고차라도 차를 한 대 살까나 고민을 하고 있던 나는, 아파트에 빽빽히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우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제 만난지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 그녀와 나는 오늘 한강변에서 같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로 했다. 지금까지 만나는 동안, 저녁을 같이 먹고 영화를 보러가거나 무슨 공원에 놀러가기도 했고, 같이 백화점에 가거나 잠깐 점심 때 만나 팥빙수를 같이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같이" 무엇인가를 해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오페라를 보고 오는 길에 그녀는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이런거 참 하고는 싶은데... 나 잘 못타거든. 근데 못타면서 막 사람들 많이 타고다니는 한강 이런데서 혼자 엉성하게 있으면 좀 그렇잖아. 그래서 그냥 스케이트만 사놓고 계속 미루고 있어."

라고 했다. 나는,

"그래? 그럼 우리 다음 주말에 한 번 타러 가자. 내가 가르쳐 줄께."

라고 했다.

나는 국민학교때 잠깐 스케이트부의 에이스였던 탓에, 학부 4학년 때인가 두어 번 인라인스케이트 타보고는 스스로 완벽한 질주의 달인이라는 왜곡된 자신감으로 충전해있었던 것이다. 나는 약속을 잡은 그날 심야에, 무슨 행사 때 기념품으로 받았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꺼내서 지하 주차장에서 몇 번 타보고는 자신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그녀 앞에서 잘난척 하기에 적절한 솜씨로 부족함이 없겠구나. 핫핫핫.

그리하여 상쾌한 일요일 아침인 오늘, 반포에 있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로 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통 그녀는 모든 약속에 약 6분에서 11분 정도 먼저 미리미리 행동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거기에 익숙해 져서 약간 먼저 이곳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조금 늦겠다고 말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스케이트를 못찾는다기 보다는 분명, 처음 보여줄 운동 복장을 입은 모습을 좀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패션에 얽힌 시도를 하느라 시간이 추가 소요 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스케이트를 보았다. 가방 안에 스케이트를 두는 것보다, 가방에 스케이트를 잘 매달아 놓는 것이 뭔가 더 익숙해 보이고 많이 타 본 사람 같은 그럴듯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케이트를 꺼냈다. 스케이트 옆에는 뜻하지 않게 준비하게 된, 오늘의 또다른 핵심, 낚시대가 있었다.

대학시절에 유일한 취미생활로 재미를 붙였던 것이 낚시였거니와, 오늘은 반드시 제대로 된 물고기를 하나 낚아서 한 손에 들고는 기념촬영을 하나 해 가야할 필요가 있었다. 동작대교 아래쪽으로는 요즘 계절이면 그럭저럭 고기를 낚기에 괜찮은 지역이기에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었다.

다만, 그녀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동시에 낚시도 같이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려운데가 있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그녀를 만나고 처음 한 대화에서 들은 바를 종합해 보면, 사실 이건 좀 위험한 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손바닥만한 낚시 의자 위에 앉아 있을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독실한 강태공의 후예였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시간만 나면 혼자서 낚시하러 떠나는 아버지 때문에, 어릴적 부터 낚시란 비가정적이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사람이 좀 가정적이고, 이렇게 매사에 좀 신경써주는 데가 있고 이런 사람이 좋지... 맨날 '낚시 같은 거'한다고 혼자서 나돌고 이런 사람. 딱 질색이야."

이런 식으로 요약된다. 그런즉, 오늘의 낚시 계획은 그녀와의 관계에 집중해 생각해 보면 별로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를 충동질한 이유가 하나가 더 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좀 더 비장한 각오를 다지려는데, 그녀가 주차장에 나타났다.

"많이 기다렸지."

그녀는 어깨가 좁은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벼워 보이면서도 은근히 선이 잘 살아나 무척 그럴듯해 보였고, 또 그녀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을 때 얼굴 오른쪽의 주근깨와 여드름자국이 드러나는 것을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차피 오늘은 땀흘릴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평소와 같은 보호색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화장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 야. 너, 그러니까 무슨 대학생 같아 보인다."
"흐흐. 내가 좀 동안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헤벌레 하며 같이 웃고 있다가, 문득 "낚시"와 "동안"이라는 어휘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는 생각에 낚시대가 다시 생각났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황급히 가방을 닫아 낚시대를 숨겼다.

우리는 손을 잡고 강가로 나갔다. 동작대교 아래로 넓게 펼쳐진 땅에는 이곳저곳에 천막 같은 것도 좀 세워져 있고, 이런저런 운동하는 사람들이 쉬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탁 트이게 펼쳐진 저넓은 한강과 그 너머 멀리 아파트들과 시가지들도 보였다. 강건너 별로 알아 볼 수 있는 건물은 없었지만, 멀리 남산 타워는 눈에 들어왔다. 오랫만에 맑은 날씨라서, 간만에 파란 하늘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강변에 바로 붙어 있는 자전거 도로까지 내려오니, 철썩철썩 조용하지만 육중하게 강물의 물결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혹은 스케이드 보드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길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길은 여의도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펼쳐진 한강물이 흘러가는 것과 함께 보이는 저편 한강대교의 거대한 모습이라든가, 그곳을 지나가는 가족, 연인들의 모습도 참 정겹게 와닿았다. 옛날에 한강변에 나왔을 때는, 그 3급수 강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살짝 났는데, 그 동안 수질이 많이 개선 되었는지 그런 냄새도 거의 없었다. 요즘에는 바다의 연어들이 대거 한강 본류를 통해서 상류로 올라가기도 한다는 얼마전의 기사가 과연 설득력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 자전거 도로 바로 바깥쪽. 즉, 강물이 바로 닿는 그 곳에 약 7인에서 9인 정도의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조용히 강물의 출렁임을 응시하며 말없이 거대한 강물속 어딘가에 있을 한 마리 물고기를 상상하고 있는 그 모습. 그리고 그런 여유의 시간 속에서 고민거리나 삶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저 풍모. 복잡하게 이어지는 인생의 반추와 미래에 대한 설계로, 인간의 운치가 끝없이 흐르는 저 드넓은 강물과 일체가 되는 이 멋, 그 향취. 아아... 나는 당장에 바로 세월을 낚고, 인생을 담아두는 저들 중 하나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속도를 줄이고. 어, 너 지금 그 자세도 좋기는 한데, 조금 더 낮춰도 될 거 같으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인라인 스케이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쪽 눈으로 흘금흘금 보아둔 낚시 자리를 남이 채어가지는 않는지 그것도 봐 가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대로 했는데, 하는 걸 보니, 왠걸, 별로 나보다 잘 못타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사실 실력은 우리 둘다 비슷했는데, 그녀는 겸손이요, 나는 잘난척이었던 것이었다. 다만 국민학교 스케이트부 시절 연마해 두었던 몇가지 본능적인 감각이 있어서 얼핏 내가 약간 그럴듯해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뿐이지, 사실 뭐 내가 그녀를 가르치고 어쩌고 할 상황은 아니었다.

"너 잘 탄다. 뭘 잘 못탄다고 그러냐."
"이상하지 않어?"
"뭐가 이상해. 애들도 다 잘 타고 그러는구만."
"그런가."
"혼자 저기 까지 한 번 갔다 와봐."
"저기? 저기 어디?"
"저기, 저-기."

그녀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려고 눈에 힘을 주어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나는 여의도 방향을 대강 아무렇게나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부터, 내가 좋아하던 표정이었다. 원래 안경을 쓰는 데, 안경을 안쓰고 나와서는, 뭔가 잘 안보이는게 있어서 그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눈썹에 힘이들어가는 그 모습. 나는 사실 그녀의 그 모습에 반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그 모습은, 정말로 어쩔 때는 밤에 자려고 자리에 누워 있을 때, 괜히 생생하게 생각날 정도로 정말 보기 좋았다.

여기에 대해 대학시절 룸메이트인 내 친구 정재동은,

"걔가 눈이 잘 안보이는게 아니라 니가 눈이 삐었네."

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12회나 이어진 소개팅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전력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녀와만은 뭔가 무척 잘 풀리고 좋고 신나고 그랬던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쯤만해서도, 나는,

"진정한 인연이란 스쳐지나가는 눈빛과 오랫동안 이어진 진솔한 교감에서 피어오르는 것일 뿐. 소개팅이란 어색한 강제요, 불우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한심한 감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친구 결혼식에 가보다가 문득 이제는 더 이상 갈 친구 결혼식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또한, "내 옛날 여자친구"라고 지칭되는 사람을 떠올리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머나먼 "옛날 하고도 아주 머-언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사진들이나 한 줄씩 써넣은 것을 봐도, 사람이야기나 사랑이야기는 전무했고, 기껏해야 무슨 학회에 논문이 어쩌고, 무슨 과제에 어떤 연구원이 성격이 짜증난다느니 하는 이야기 따위 밖에 없었다.

"이러다가는, 나이가 들면 더 들 수록 더욱 더 연애하기 어려워진다는 저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나는 결혼도 못한 미친 과학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어림없는 프랑켄슈타인 패러디 영화를 보면서, 어울리지 않게도 나는 경각심을 느꼈다. 나는  마치 태공이 강변에서 나라를 일으킬 인재를 만나 눈이 번쩍 뜨이듯, 그렇게 사랑과 결혼에 대해 중대한 답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열심히 소개팅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오랫동안 죽어있던 연애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나는 대강 뭐 이상하지는 않다... 싶으면 아무하고라도 어떻게 잘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또한 너무나 어려웠다. 계속되는 실패 끝에 나는 깊은 실망감과 스스로에 대한 모멸심으로 자신감을 잃고 삶의 어두운 계곡으로 침전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런 자포자기의 소개팅이 계속되기를 12회에 이른 끝에 지금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다른 소개팅 12회와 달랐던 점은, 우리가 무척 달랐지만, 신기하게 아주 잘 통했다는 것이었다. 내 전공은 살균공학이었지만, 그녀의 전공은 서양사였다. 나는 이제 막 거대 식품회사의 연구원으로 취업한 사람이었고, 그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나는 The Beatles 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The Beach Boys 를 좋아했다. 저녁자리에서 엄청나게 따분하게 앉아 있다가, "오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하고 서로 사기치고 평생 두 번다시 연락안하기 쉬운 구도 였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살균공학에서 쓰이는 키메라프로틴은 그녀의 설명이 곁들여지자, 그 어원을 그리스 신화속, 영웅들의 무용담에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학교에서 만난 말썽쟁이 학생은, 대학원 시절 나를 영원할 것만 같던 짜증의 심해에 빠드렸던 한 선배에 대한 분노와 겹쳐졌다. The Beach Boys가 인기를 폭발적으로 얻다가 british invasion에 의해 위세가 꺾이던 그 순간을 우리는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했고, P.S. I Love You 와 Surfer Girl이 비슷한데가 있다면서, 서로 서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이럴수가. 이런 이상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우리 사이에는 농담의 즐거운 물결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서 항상 즐겁게 웃고 재미있게 서로에 대해 알아 갔다.

"네가 12번씩이나 계속 소개팅이 안되니까 아무것도 아닌데도 지금 너무 큰 의미를 두는거야. 별로 그렇게 잘 어울리는 거 같지도 않은데, 너무 좋은 쪽으로 꺾어서 생각하는 거 아니냐."

찬물을 끼얹어도 이렇게 덜덜 떨리게 끼얹을 수가 있나. 재동은 그렇게 말하며, 과연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나의 의심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의 한 지류마저 만난지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아 깨끗이 씻겨가고 말았다.

"그럼, 나 혼자 갔다 온다."

동작대교 아래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저-기"라고 지칭했던 곳을 나름대로 어딘가로 확정하고는 휑하니, 인라인 스케이트로 달려 사라졌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바로 이틈이다. 이틈을 타야 한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들고 내가 봐 두었던, 낚시 자리로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낚시대와 낚시줄, 기타 다른 장비들을 꺼냈다. 나는 마치 특등 첩보원이 눈을 감고 총을 조립하는 시험을 치르듯, 엄청난 속도로 낚시대를 조립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나서 내가 낚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기 전에 낚시 장비의 설치를 마쳐야 했다. 정말로 공기속에서, "후다닥"하는 글자가 쏟아지는 듯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옆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던 한 할아버지께서는 그런 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 보았다.

마침내, 나는 오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삶은 감자를 뭉친 떡밥을 꺼냈다. 그리고 시약병을 꺼내 피펫으로 PPGN426을 몇 방울 떡밥에 떨어뜨렸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승리를 위한 비밀병기인 것이다. PPGN426은 식품첨가물 연구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실험재료들로 만든 것으로, 만약에 정가로 약품을 사서 합성한다면, 오늘 뿌린 양만큼만해도 한 칠팔십만원은 될 법한 해괴한 물질이었다.

이 PPGN426 희석액 조금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학부 때 이후로 반경 10미터 이내에 접근도 해보지 않은 동물행동학 책을 열심히 독파했고, 수중물질확산 이나, 신경물질전달 에 관한 내용도 밤마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PPGN426을 설계한 대로 제조하기 위해서, 합성 실험에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회사 연구소의 마금희 양에게 근사한 프랑스 요리 를 사주며, 부디 조금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마금희 양은 프랑스 요리가 이러한 대가성이 있는 것이라는데 매우 실망한 듯 하긴 했으나, 그녀 특유의 솜씨를 완벽히 발휘해서 예상했던것보다도 더 순도 높은 많은 양의 PPGN426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PPGN426을 뿌린 떡밥을 의기양양하게 낚시 바늘에 매달았다. 옆자리에서 보고 있던 할아버지께서, 약품을 뿌린 떡밥을 더욱 더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 보았다. 현대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기술로 제조된 이 떡밥은 이제, 물속에 들어가면 대형 물고기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식욕을 자극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멋진 월척을 낚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가라앗-!"

나는 그렇게 실제로 목소리까지 내면서 낚시대를 단졌다. 낚시줄이 하늘을 향해 들렸다가 나아가 강물로 들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기세 좋고 흥분 되어서, 나는 낚시대를 던지면서 무슨 물속의 괴룡을 향해 장풍이라도 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낚시대를 던지고, 느긋하게 강물의 유유한 흐름을 즐겨야할 그 순간은 그러나 이내 또다시 후다다닥하며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다 보니, 어느새 돌아오고 있는 그녀가 보였던 것이다.

"어, 왜이렇게 금방 갔다와."
"금방은 무슨, 나 진짜 멀리 갔다 왔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나는 어느새, 저 낚시대와 나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깨끗하게 분리하고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좀 어색하게 허둥대는 내 모습에 약간 의아한 듯 했지만, 특별히 빨리 다녀오고 싶어서 였는지, 숨이차서 헥헥대느라 별다른 말은 없었다.

"인제, 우리 같이 저기 저 여의도 까지 가보자."
"여의도까지?"
"어. 딴사람들 보니까, 보통 그 정도 많이 갔다 오는 거 같어."

나는 그 말에서, 그녀가 오늘을 위해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한강변의 코스를 미리 조사해 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낚시대를 홀로 두고 멀리 가기가 약간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잠시 묘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와 같이 좀 가긴 가야 겠다는 생각에, 나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어, 이게 누구야?"

그런데, 정말로. 이게 누군가. 갑자기 기이하게 생긴 자전거를 타고, 지옥 저편에서부터, 홍진표가 나타났던 것이다.

"야아-. 이렇게 입고 인라인 스케이트 타시니까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무슨 궉채이 선수 같으다."

홍진표는 그녀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잠깐만. 아니, "인라인 스케이트 타니까 정말 잘 어울린다"라. 저건 내가 그녀를 보면 하기로 궁리해 두었던 칭찬의 말 아니었던가. 내가 그녀의 모습에 넋이 빠지고 또 어영부영 낚시대 때문에 혼란되어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못했는데, 이 홍진표놈은 그 대사를 만나자 마자 날린 것이다. 한강변에 뻐꾹뻐꾹하는 소리가 낭랑히 울려퍼졌다.

"안녕하세요? 진표씨. 여기서 또 보네요. 와 신기하다. 자주 나오세요?"
"예, 뭐 매주 운동하니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으응. 같이 인라인 타러 나왔나 보네. 이렇게 한 번 타 볼래요."

홍진표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좀 지나치며 손짓해서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인라인 스케이트로 홍진표를 조금 따라갔다.

"자세는 참 좋은데. 속도 줄일 때 그 동작이 좀 틀린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인라인이 다 망가지거든."

홍진표는 그녀를 보면서 하필이면, 내가 오늘 아침에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동작이 무식하고 바보 같으며 잘못된 엉성한 기술이라고 지적하였다. 나는 부끄러움에 한강물 속으로 잠수하고 싶을 기분을 느꼈다.

정말로. 무슨 놈의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 놈은 이 드넓은 동작대교 아래에서 만나도 이렇게 피할 곳이 없단 말이냐. 어림없는 낚시 계획을 새운 것도 다 이 홍진표 놈 때문인데, 하필이면, 이 보기 싫은 녀석을 또 하필이면 여기서 만난 것은 무엇이냐 이 말이다.

지난 수요일 저녁 모임이었던가. 놈은 자기가 대학교를 미국 몬타나주의 어디서 다녔다면서 거기서 플라이 낚시를 했던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홍진표는 무슨 자기가 끼어들만한 주제의 말만 나오면,

"저, 몬타나 주에서 대학 다닐 때요..."

라면서 장황하게 별 대단할 것도 없는 기억을 무슨 굉장히 신기한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 늘어 놓는 것이 그 습성이었다. 그날도, 딱 그렇게 플라이 낚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황영금씨가,

"거기, '흐르는 강물 처럼'에서 브래드 피트가 낚시하던 데 아니예요."

라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자, 이 홍진표는 씨익 웃고는,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이렇게 하면, 옆 모습, 쫌 비슷하죠."

했던 것이다. 어깨 쪽에 근육 좀 잡힌 거 하고, 기름기가 느끼한 구렛나루를 제외하면 그 어떠한 유사점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이정희씨가,

"어머어머, 어떡해. 진짜 브래드랑 똑같다."

라며, 덩기덕 쿵더러러 흥겨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갑자기 홍진표와 브래드 피트는 실효적으로 동치라는 이상한 조건식이 그 자리를 지배하게 되었다. 곧 물흐르듯 이어진 분위기는 나의 그녀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여인네들이 갑자기 홍진표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로 굳어져 버렸다.

홍진표와 나는 애초에 충돌이라면 충돌이 많았다. 연구팀 팀장이 지나가는 말로 무슨 말 한 마디라도 하면, 그 말을 결코 어길 수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금과옥조 처럼 여기는 괴이한 분위기가 연구소에는 자리잡고 있었다. 가끔 연구팀 팀장이 뭔가를 착각해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팀장님, 그건 그게 아니고요..."하면서 정정해주고 좀 더 일이 빨리 돌아가도록 바로 잡곤 했다.

그러면, 홍진표는 불과 3개월, 즉 90일 먼저 연구팀에 들어왔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그리고 자기가 어딘가 자애로운 듯 보이려는지 약간 미소까지 덧붙여,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좀 부족해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제가 선배로서 말할 테니까, 그냥 기분나빠하지 말고 들으세요."

라면서 설교를 시작했다. 내용인 즉슨, 연구팀 팀장님께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며, 그렇게 행동하면, 앞으로 어떤 조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아주 기분 나쁜 어조로 욕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이놈아. 니놈 같은 놈하고 같이 지내는 자체가 이미 사회생활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거란다."

라고 나는 답하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짐짓 부드러움을 곁들이며 시작된 그 설교는 말미에 가서는, 자신의 선배로서의 근엄한 지위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연구팀의 위계질서는, 일의 효율이나 일의 목적, 과학적 진리나 연구의 가치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협박으로 치달았다. 홍진표는 이러한 화려한 논리의 도약을 마치 청둥오리떼의 비상하는 날개짓처럼 보여주고는,

"우리, 오늘 소주나 한 잔 하며 풀까요?"

라면서, 갑자기 향정신성 물질 투입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이상한 결론을 맺곤 했던 것이다.

홍진표가 스스로를 브래드 피트화 하면서 세상의 모든 낚시의 섭렵자이며, 자기가 무슨 "낚시의 신"인양 위세를 부리던 수요일 저녁. 나는 아니꼬움과 꼬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속터짐을 경험했지만, 그냥 고이 홍진표의 잘난척 스페셜 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낚시 자체에 대해서 도무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헛소리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것에 속이터져서, 그만 한 마디 하고야 말았다.

"피라미라는게요. 그렇게 물고기 크기 별로, 무슨 피라미, 피라미 아닌 물고기 이렇게 구별하는게 아니라, 물론 피라미가 쓸 데 없이 잡힌 물고기를 대표적으로 말하는 거긴 하지만, 사실은 피라미라는 물고기 종류가 있는거거든요. 그게 대표적인 2,3급수 어종이고요."

나 같으면, 갑자기 급격한 부끄러움을 느껴 얼굴이 붉어질 상황이었다. 혹, 진정한 낚시에 대한 사랑이 있는 자라면, 좀 더 낚시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왔다는 반가움을 느껴 더 많은 것을 물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홍진표는 교활하게도, 교묘히 말을 돌려, 내가 낚시에 대해 멋모르는 사람으로 몰아 버렸다. 그 결과, 홍진표의 좌우측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에이. 낚시 뭐 알아요? 학교 다니면서 맨날 공부하고 실험실에서 살기만 했을 거면서."
"낚시하다가, 낚시줄에 자기가 낚일라."
"인터넷 낚시 전문가 아니야?"

라며,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낚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나는,

"그게요. 저기. 제가, 어릴 때 부여에 살았는데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 백마강 거기서 낚시 이런거 많이 했거든요."

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 갑자기 사람들은 깔깔 웃으면서,

"오. 부여. 또 시골출신 한 명 탄생." - 탄생은 그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니란 말이다...
"시골에서는 다치면 된장 바른다면서요. 그러니까, 낚시도 시골식으로 하면 다 다르지 뭐."

라는데, 그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정착되도록 홍진표가 마구 나서서 이끄는 것 아닌가.

잠시 나 무시하기 시간이 지나가고 나자, 홍진표는 "제가 몬타나 주에서 대학 다닐 때" 찍은 사진이라며, 플라이 낚시 낚시 줄 던지는 사진을 몇 장 지갑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대체 왜 지갑에 항상 자신의 그런 사진을 넣어 휴대하고 다니는지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궁금하였다. 자랑용으로 항상 휴대하는 것인지? 그러나, 모두 그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위 "자연친화적인 와일드 내추럴 컨츄리 풍의 무드"를 예찬하기만 하였다.

그리고나서 모임을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홍진표가 나에게 퍼부은 그 많은 "선배로서 해주는 이야기인데" 하는 이야기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렸다. 그리고 그러한 분개의 결과, 곧, 식품첨가물 혁신 연구팀에서 개발 중이던 PPGN119 라는 물질이 머리에 떠올랐다. PPGN119는 수분속에서 유혹적인 향을 표출하는 물질이었는데, 이것을 조금만 개량하면 물고기를 끌 수 있는 떡밥용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제대로된 월척을 낚아서 사진을 한 장 찍어서는 나도 지갑에 넣어 들고다니다가 놈의 코 앞에 내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마금희 양이 힘을 합쳐 만든 물질이 PPGN426 이었다.

즉. 내가 오늘 한강변에 나오면서 낚시를 하리라 했던 결심은, 바로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브래드 피트 불법위조유사품 같은 놈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 그냥 그녀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편안하게 낚시를 하자. 낚시가 무슨 큰 죄라고. 일단 그녀와 함께 이 강바람을 맞으며 상쾌하게 이 길게 뻗은 길을 달리고. 그 다음에 같이 여유롭게 한담이나 하면서 고기를 낚아 보자. 아니면, 낚시는 나중에 나 혼자 나와서 언제 다른 날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낚시는 접고, 그녀랑 같이 시간을 보내도 손해 볼 것은 무엇인가. 그런생각이 들었다.

"계속 가봐요. 제가 봐 줄테니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가는 그녀를 따라가면서 홍진표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뭔가. 원래 저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면서 여유롭게 한강의 바람을 스치는 것은 나의 오늘 계획이었단 말이다. 나는 더욱더 낚시는 포기하고 그녀와 함께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굳건해 졌다. 나는 내 인라인 스케이트를 꺼내서 한 짝에 발을 막 집어 넣으려 했다. 바로, 그 때.

"여보게, 선생!"

하는 낚시 옆자리 할아버지의 긴박한 외침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낚시대의 찌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엇인가 무게가 있는 것이 걸렸다는 뜻이었다. 이내 흔들림은 더욱 커져서 낚시줄과 낚시대까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낚시대가 워낙 심하게 흔들리는지 낚시대가 옆으로 자빠질 듯하기까지 했다.

"어서, 잡어 잡어."

나는 바람처럼 몸을 돌려 뛰어 날아가 낚시대를 붙잡았다. 쓰러지려는 낚시대를 막 잡아채니, 낚시대가 휘어지며 강한 힘이 느껴졌다. 강물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 치솟는 활동력. 자연과 인간의 싸움. 바로 이 느낌이었다. 나는 양 손에 힘을 주어 낚시대를 잡아 당겼다. 이내 물 위로 물고기의 멋진 유선형 몸이 드러날 것이다. 할아버지가 옆에 붙어서 조절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멋지게 낚시대를 끌어 당겨 올렸다.

그런데. 이게 뭔가. 딸려 나온 것은, 교묘하게 미끼 떡밥만 빼어간 빈 낚싯줄이었다. 낚시 바늘만 휑하니 햇빛에 반짝 거렸다.

"이것이... 그렇게 무거운 놈을 낚으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

할아버지께서는 한바탕 낚시대를 들고 설치느라 흐트러진 내 자리를 보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잡았으면 아주 제대로 월척일텐데."

그리고 혀를 차시며 나보다 더 아쉬워 했다.

나는 다시 낚시줄을 감고 낚시대를 정돈하였다. 나도 그 물고기의 강한 힘을 이 손으로 느꼈기에, 과연 충분히 월척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쉬웠다. 바로, 이런 물고기. 이런 놈이 오늘 내가 노리던 것이었다. 이 놈을 낚아 들고 마치 낚시 잡지 표지 사진처럼 위풍당당한 늠늠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하나 찍으면. 그렇게만 되면, 홍진표 녀석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다시 그녀 생각이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미 그녀와 홍진표의 자전거는 저만치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언뜻 그녀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그리고, 홍진표가 "내가 몬타나 주에서 대학다닐때요..."하면서 또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는 성 싶었다.

"꼬였구나."

나는 힘없이 낚시 의자 위에 앉았다.

갑자기 낚시대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가 비할바 없는 낚시도취감에 빠졌던 나의 모습을 그녀는 선명하게 목도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싫어한, 이기적이고 재미없고 가정적이지 못한 모습의 한 표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그녀와 함께 한강변을 달리기로 해놓고, 몰래 낚시를 궁리한 것 아닌가. 진실함의 결여. 거짓된 속임수의 인상마저 남겼을 것이다. 게다가 업친데 덥친격. 하필이면 그 순간의 헛점을 저주의 홍진표에게 공략당하여, 지금 나의 그녀와 노닥거리고 있는 놈이 바로 그 홍진표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강물을 향해 한숨을 푹 쉬었다. 찰싹찰싹. 조용하고 경망스러운 물결소리가 귀에 들렸다.

"여기를 이렇게 잘 세워 놓아야, 힘이 걸려도 낚시대가 중심을 잃지 않는 거야. 이거 꽤 큰 놈 노리는 꾼인가 본데, 그럼 그만큼 공을 들여야지."

할아버지는 내가 물고기를 놓친 것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것인 줄 알고, 위로의 말 비슷한 것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낚시대를 재정비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나는 거듭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솜씨에는 노련한데가 있었다. 언뜻 할아버지가 잡은 고기를 보니, 실한 놈들로 꽤 많아 보였다. 한강에서 제대로 된 고기를 낚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데,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니, 단연 낚시의 달인인 듯 보였다. 나는 내 자리를 챙겨 주시고 있는 할아버지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짜증만 내고 있는 것도 좀 아니다 싶어서 말을 붙였다.

"할아버지, 굉장히 많이 잡으셨습니다."
"뭘. 요즘에 가만 보면, 민물하고 바닷물이 막 엉킨다고. 그래서 바닷물이 좀 올라온다 싶으면, 김포 넘어까지 올라와. 그러다보니까, 이게 고기들이 정신을 못차리는 것이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기 다른 사람들 보다도 훨씬 더 많이 잡으셨는데. 낚시하러 다니신지 꽤 오래 되셨나 봅니다."
"한 오십 육십년 되었지."
"야. 그럼, 열몇살 때부터 낚시하러 다니신 겁니까?"
"그게, 6.25때, 우리 부대가 이북에 청천강있는데 까지 나갔을 때라고."
"6.25때요?"
"그 때 미군이 덜 따라붙는 바람에 밥하고 반찬하고 보급 나오는게 영 시원찮았다고. 그래서 이게 강 어귀에 물고기 잘 모이는데, 가서는. 그 때 우리 쓰던 작전용 다이너마이트가 있었어. 그걸 라이타로 불 탁 댕겨서는 물에 퐁-당 빠뜨리면. 이게 한 잠시 지나고나면, 퍼엉하면서 물이 홀랑 다 뒤집어 진다고. 그러고나면, 이게 물에 기절한 물고기가 온통 둥둥둥둥 뜨는거야."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습니까?"
"그게 그렇게 해서 부대 사람들이랑 저녁에 구워 먹으면 참 맛이 있다고. 그때 그 청천강에 다이너마이트 던질 때 부텀 내가 물고기 잡는데 재미를 들인거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빈 낚시 바늘에 떡밥을 꿰고, 또다시 비장의 PPGN426을 몇 방울 뿌렸다. 찌와 추를 다시 잘 손본 뒤에 낚시대를 다시 강물에 던져 놓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각자의 낚시대 끝을 가만 바라보면서,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계속 말하였다.

"그러면, 6.25때 어느 부대에 계셨던겁니까?"
"내가 6사단 있었지."
"6사단이면, 김종오 장군 휘하의 그 6사단 말씀이십니까?"

이 할아버지는 역전의 참전용사인 듯 하였다.

"김종오 장군 아는거야?"
"예. 그 춘천지구 방어전 유명하잖습니까."
"그 김종오 장군이, 그래도 일본군 출신이라고, 가끔 말들도 많고 그랬다고."

그러면서 할아버지께서는 6.25때 그 피튀기는 전선의 무용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대학원 살균공학 연구실 시절에 한 번은 해군 원양 식량 연구팀과 같이 연구를 한 적이 있던, 나는 한국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많은 이야기들에 대해 큰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무용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고향이 충청도 부여라고 하셨다. 이 분은 퇴각하다가 고향 마을 근처를 지날 때, 그 고향을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갈때의 비통한 느낌이라든가, 혹은 다시 반격에 성공하여, 한강을 넘어 서울에 진입할 때의 감흥에 대해서는 스스로 감동까지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북한군의 T-34전차가 강물에 처박히게 되면 어떤 상태로 변한다든가, 혹은 물에 젖은 로켓포탄을 재빨리 사용할 수 있게 정비하는 법 등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때에는 아무도 모르는 고급정보를 알려준다는 어떤 자부심까지 갖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M1소총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M1 소총이 낡고 간단해 보여도 얼마나 좋은 총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실 쯤이 되자,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 점심 때를 지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러는 동안에도 2마리 쯤의 물고기를 더 낚아 올리셨는데, 나는 계속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무용담 밑천도 바닥을 드러낼 때 쯤. 바로 그 때 쯤 해서, 나는 내 낚시대의 찌가 흔들리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크다. 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닌게 아니라, 낚시대를 당기는 힘이 정말 강했다. 이번에는 낚시대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에 내가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힘, 그리고 어려풋 느껴지는 그 물속의 중량감은 대단하였다. 이것은 아주 큰 물고기라서, 정말로 뭐 몇십 센티미터짜리 물고기로 기록되면서 정말로 낚시 잡지에 실릴 만한 정도라는 상상까지 들 정도였다.

놈은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교묘하게 물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 하였다. 낚시 바늘이 걸린 것일까. 놈이 이번에는 미끼를 깊게 문 것일까. 낚시줄이 마구 풀려나가기도 하고, 다시 되감아지기도 하면서 긴박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당기다가 당기다가 못하여 나는 힘이 모자라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낚시대가 둥근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대단한 무게 였다. 꼭 낚시 바늘이 무슨 바위틈에 끼어 있는 듯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거다. 이 놈만 낚으면 모든게 끝난다. 나는 갖은 힘을 다 모아 손을 움켜 쥐었다. 보다 못한 할아버지까지 내 낚시대를 거들었다.

"아. 놓쳤다. 놓쳤다. 아."

할아버지께서 먼저 알아보고 탄식하셨다. 곧, 힘없이 낚시줄이 물을 튕기며 올라왔다. 이번에도 빈 낚시 바늘만 허공에 있었다. 영리하고도 교묘하게 떡밥만 발라 먹은 것이었다. 아주 대단한 월척이었는데. 잡기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누가 믿어주리.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커졌다.

"혹시 이 놈이 어룡이 아닌가 싶네."
"어룡이요?"
"왜 그런거 있잖어. 큰 강이나, 깊은 연못이나 이런데는 왜 용이 되려는 잉어가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나이 오래 묵은 큰 물고기 말일세. 수십년 묵은 잉어, 백년묵은 붕어 이런거 말이야. 그런 놈이 또 영물이라고. 그래서 이게 거진 사람 비슷하게, 아니면 무슨 산신령 비슷하게 이게 이렇게 생각을하고 그런다고. 그래서 이렇게 사람을 놀리고 이럴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해설하셨다. 어룡이든, 네스호의 네시든 간에, 어쨌건 잡혀서 사진을 찍어야 홍진표놈에게 자랑을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나 혼자 어룡을 만난게 아니라, 무슨 쥐라기 공원에 갔다왔다고 한들, 또 놈의 몬타나 어쩌고 하는 이상한 유머감각에 휘말리면 아무 재미도 없는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증거물. 사진이 필요했다.

두 번째로 월척을 놓친 이 허탈한 마음이 가실 쯤 되자, 그제서야 나는 홍진표 놈에 대한 생각에서 홍진표가 지금 그녀와 함께 사라졌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의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니 그게아니라,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녀는 어디까지 갔는지 이제는 짐작조차할 수 없었다. 시간은 어느새 벌써 점심시간도 지나고. 어쩌면, 그녀는 홍진표의 손에 이끌려 지금쯤 여의도의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여유로운 휴일의 오찬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짓인가. 소중한 애인은 제일 싫어하는 적수에게 넘겨주고, 나는 반나절 동안 삶은 감자 떡밥이나 좋아하는 민물 어류나 따라다니고 있었다니.

나는 전화를 꺼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안 낚시하고 있었다는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영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여간해서는 빼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떡밥을 꿰어서 대강 낚시대를 던져 놓고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아버지, 제 자리좀 조금만 봐 주십시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 했다.

여전히 정다운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뭔가를 타고 가기도하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모습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서로가 서로에게 친근한 한강변의 사람들 모습이 왠지 야속하게 보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면, 아무리 내가 낚시를 하고 있기로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아직도 저쪽 어딘가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인라인 스케이트 강의를 하고 있을 홍진표와 함께 말이다. 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햇빛이 비치는 트인 강변을 걷다보니, 잠깐 눈이 부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못먹고 못마시고 물고기 잡으러 강물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어처구니 없게 그녀를 혼자 홍진표에게 딸려 보낸 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짓이라는 쪽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니, 배고픔이나 목마름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걸음이 좀 더 빨라질 뿐이었다.

얼른 그녀를 찾아야 했다. 나는 아무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태연히 그녀를 대하면서 오후시간은 그녀와 정말 보람찬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혹은 오전에 혼자 낚시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좀 더 걸어가니, 자전거 도로 옆으로 거대한 교각들이 나타났다. 머리 위로 한참 높이 꽤 넓은 강변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각과 교각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자전거 도로는 더 아늑해 보였다. 고가도로의 그늘이 자전거 도로 위에 드리워져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약간 어두운 그늘진 자전거 도로는 기나긴 고가도로를 따라 길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 아래를 걷고 있으니, 어두움 때문인지 주변은 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다리 아래 그늘진 강변에는 고운 흙이 물에 밀려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찰싹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도로를 빠른속도로 달리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라든가, 연인이나 가족끼리 가만가만 이야기를 하며 웃는 소리가 살짝 울리면서 더 선명히 귀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홍진표도 지금 분명히 계속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걸고, 또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홍진표 스스로 "카리스마 말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주장하는 그 녀석의 말솜씨는, 따지고 보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신입사원 연수에 참여해서 놈을 처음 보았다. 연수원에서의 첫날이었던가. "장기자랑"이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신입사원들이 돌아가면서 무대 위에 올라가서 코메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흉내내곤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저마다 당당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그게 무슨 자신의 사교성을 증명하는 일종의 면접시험이라고 생각해서 인지, 모든 사람들은 굉장히 즐겁게 웃고 떠들었고, 온힘을 다해서 별 웃기지도 않은 모창에, 성대모사에, 웃긴 춤에 몸을 던졌다. 그러면 하나도 안 웃긴데도 서로 엄청 웃어주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게 소위 "동기들간의 '단합'을 다지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별로 공감이 가는 시간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도 내 차례가 와서, 나는 설운도 창법으로 "Cheek To Cheek"을 부르는 고전적인 나의 레파토리를 반복했다. "In a river or a creek" 하는 가사를 부를 때, 예상했던대로 많은 웃음이 터져나왔으므로, 무난하게 그 자리를 넘길 수 있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그 시간에 같은 신입사원이었던 홍진표가 그 쇼 시간의 사회 및 진행을 맡고 있었다. 그 때 홍진표는, 남자 신입사원은 무조건 면박주고, 여자 신입사원은 무조건 추켜세우는 잡다한 언어유희를 남발하였다. 놈은 나에게는 "정말 설 선생님이랑, 비슷합니다. 가발 하나 맞추셔도 되겠습니다" 따위의 말을 덧붙여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연수원에서는, 어디서 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상한 소책자 암송에 들어 갔다. 거기에는 "21세기 글로벌 리더쉽을 이끄는 네오제내레이션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슨 전투 구호나 군가처럼 큰 목소리로 복창하며 서로 리드미컬하게 소리지르는 시간이 자리잡혀 있었던 것이다.

내용을 살펴 보자면, 우리들이 입사한 이 회사는 엄청나게 좋은 회사고, 그 회사의 엄청나게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무지무지 자부심을 갖고 일해야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무슨 매스게임 비슷하게, 조를 짜서 서로 돌아가면서 "네오제내레이션 인재"의 품성에 대해서 외치는 순간도 있었고, 율동을 하면서 걸어다니며 뭔가 구호를 복창하는 것도 있었다.

재미도 없었거니와 한심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더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 짓을 하면서 그 많은 신입사원들이 아주 재미있고 보람찬 듯하다는 태도를 연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부는 이런 짓을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아주 자랑스럽고, 선발된 인재들의 진정한 멋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선봉은 홍진표였다. 나는 장내에 울려퍼지는 타오르는 행진곡을 끄고, 마이크를 붙잡고는, "여러분 제정신으로 돌아 갑시다"라고 소리를 다 지르고 싶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인텐시브 멘탈 트레이닝 IMT"이라는 신입사원 교육프로그램은 무려 1개월간이나 계속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1개월 동안, 태어나서 수십년간 배우고 익히며 만들어진 내 자아의 인격이 무너져 내릴 듯하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그 때, 들은 것이 바로 "현장 실습"이었다. "현장 실습"은 "인텐시브 멘탈 트레이닝" 대신에 한 4개월 정도 동안 말단 부서에 시간제 직원으로 배치되어 업무 보조를 하는 것으로 연수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현장 실습은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현장 실습을 하면, 이 "인텐시브 멘탈 트레이닝"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친해지고 인맥을 형성할 기회도 없어진다는 생각에 모두가 기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장 실습은 입사 성적이 낮은 신입 사원들이 잘려서 할당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인텐시브 멘탈 트레이닝 IMT"를 거친 사원들은 현장 실습을 거친 사원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의/목표는/세계일류다!"를 외친 후에 아침 밥을 먹기 시작하는 이 맛이 간 학습활동을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나는 당장에 현장 실습을 자원했다.

나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 배치되었고,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나온 조미료를 삼겹살 구워 먹을 때 뿌리면 정말 맛있다면서 시식을 담당하는 시간제 사원이 되었다. 시장통 같은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시식하는 사람들에게 조미료를 팔고, 덩달아 삼겹살까지 파는 그 일은 흥겨웠다. 다리가 무척 아프긴 했지만 꽤 재미있었고, 또 왠지 내 적성에도 아주 잘 맞는 듯도 했다.

무엇보다도, 바로 그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조미료 장사를 하던 시간에, 소개팅으로 만났던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은 하늘이 내려준 우연이었다. 그녀가 출퇴근 하는 학교가 근처에 있었기에, 그녀는 장보러 갈 일이 있거나, 뭔가 살 것이 있으면, 그 백화점에 종종 들르곤 했다. 가끔 전화연락을 주고 받거나, 문자메세지만 오고 갈 뿐, 소개팅으로 만난 후에 만나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를, 나는 삼겹살 구우면서, "어머니, 이거 진짜 맛있죠? 한 번 사보세요. 이거 뭐, 해봤자 영화 볼 때 사먹는 팝콘 값 밖에 안되잖아요"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어, 요즘 연수 받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예. 현장 실습 요원으로 나와서요. 저는 연구원인데, 일단 본격적으로 일 시작하기 전에, 회사 상품 일선에서 팔고 소비자 반응 보고 하는 것도 경험해 보는 거죠 뭐."
"야. 신기하다. 여기서 이렇게 볼 줄은 진짜 몰랐다."

그녀는 정말로 반가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자리를 양념 불고기 파시는 김 여사님께 부탁드려 놓고는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들은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와 그녀는 서로가 매우 잘 어울리는 한 쌍이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시간이 잘 가는 관계는 처음이라는 데에도 동의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무려 12번의 소개팅 실패만에 이루어진, 감격의 순간이었으며, 나로서는 연구소 현장 배치가 3개월 정도 늦어진 것과 맞바꾸기에 충분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녀를 지금 나는 놓치고, 혼자 한강변을 헤메고 있지 않은가. 고가도로 아래 교각 옆을 떠돌고 있던 무슨 오리 종류 하나가 꽥꽥 소리를 냈다. 그리고 물소리를 한 번 내고는 표표히 날아가는 데 마치, 나를 한심하다고 비웃는 투였다.

계속 귓가에 울리는 조용한 한강의 물결 소리. 서울 이곳저곳을 정신 없이 오가며 도시의 하루하루를 보낼 때, 1천만의 사람들이 저마다 이 도시에 가득하여 그렇게 쉼없이 오가고 있는데. 그런 때에도 언제나 항상 이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강물은 이렇게 숨어서 계속 작은 물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니, 나는 괜히 복잡한 심정으로 이리저리 고민하고 짜증낸 것이 참 멍청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참을 걸으며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나는 다시 자전거 도로 멀리 저편을 보았다. 그런데,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눈에 익은 형체가 있었다. 그리고 눈꼴 신 형체도 하나 있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그녀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자전거를 탄 홍진표 였다.

"어?"

그녀는 스쳐 지나가면서, 나를 보며 그렇게 극히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뒤따라온 홍진표는 분명히 내가 눈에 보였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모르는척 하는 듯 했다. 그녀는 홍진표가 사 준 것인지, 얼린 생수를 한 손에 쥐고 있었고, 홍진표 역시 같은 생수를 자전거에 달고 가고 있었다. 그녀는 뒤를 한 번 돌아보며, 멈추려는 듯 하였으나, 뒤에서 홍진표가 자전거로 밀어붙이며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영 부영 하는 사이에 저만치 멀어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홍진표는 그녀의 허리께에 손을 얹으며, 밀어주는 건지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허리에서 하체로 이어지는 그녀의 몸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평소 남자 연구원들만 있는 회식자리에서 홍진표는 회사의 여사원들 중에 누구는 어디 사이즈가 얼마고, 누구의 어디를 만져보면 느낌이 어떻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대화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놈이었다. 나는 홍진표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저 자식이."

나는 갑자기 열받아서, 다시 동작대교쪽으로 돌아서 막 뛰어서 쫓아갔다.

그러나 벌써 몇년째 연구실에만 박혀 있던 형편없는 체력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가는 놈의 속도에 근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참동안 마구 뛰어갔다. 주변사람들이 낚시꾼 비슷한 분위기로 터벅터벅 걷던 사람이 갑자기 발길을 돌려 뛰니까 눈에 뜨이는지 꽤 많이들 쳐다 보았다. 그 시선을 인식하고 나서야 나는 뛰는 걸 멈추었다. 괜히 막 뛴 덕에, 쓸데 없이 땀만 나고 숨만 차고 얼굴에 열기만 확확 차 올랐다. 그러니까 더 분노스럽고 열 받았다.

괜히 한참 뛴다고 난리를 친 덕에 기운이 빠져서 나는 터벅터벅 힘없이 걷게 되었다. 뛰어서 기운이 빠진 것도 있겠지만, 오늘의 상황 때문에 기운이 빠진 것이기도 했다. 멍청하기도 하지. 그 물고기 잡아서 사진 찍어서 자랑하는게 다 뭐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이런 거냐. 지금이 무슨 수렵과 어로에 의존하던 구석기시대도 아니고.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미 사냥한 거 자랑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원시적인 일로 남았거늘.

그러나, 왜 또 그 입질의 미묘한 순간의 재미는 어쩌란 말이냐. 막상 물고기와 힘을 겨루는 그 손에 힘이 들어가며 깜짝 놀라는 느낌. 온몸의 반사신경을 동원해 낚시대를 휘둘러야 하는 그 재미를 또 맛보게 되자, 이상하게 나는 이 낚시의 묘미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강변을 되돌아 걸어오면서, 낚시와 그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상황을 곰곰히 돌이켜 보게 되었다. 정재동이 언젠가 말한대로, 나는 그녀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워낙에 소개팅 실패를 많이 하다보니까 조금 잘되는 듯 싶은 것에 매우 공을 들이고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흔히들 세상에서 "매력적인 여성 직업"으로 꼽고 있는 교사에다가, 실제로 얼핏 겉모습을 본다하면 그녀는 꽤 보기 좋았기에, 그 주변의 눈에 "괜찮아 보일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그녀와 같이 다니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도 그와 비슷할 지 몰랐다. 우리는 언제 만나도 항상 즐겁게 같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사실 그녀가 그냥 재미있어 주는 척하고, 가끔 시간을 잘 포착해서 웃어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사실은, 건실하게 인생을 살아온 듯한 한 사람이, 꽤 연봉이 높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더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 나타날때까지는 이 사람을 붙들고 있어보자. 하는 계산에서 나온 그냥 별 의미없는 행동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이 들자, 나는 좀 우울해 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내 스스로 줄기차게 소개팅 실패하면서 겪지 않았는가. 이런 사람 만나는 거 사실 쉬운일이 아니다.

어딜가서, 이렇게 나랑 잘 맞고, 착하고, 생각 바른 그런 사람을 또 찾겠는가. 지금까지 계속 실패하지 않았는가. 아니, 다 필요없다. 당장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늘 그녀와 같이 한강변을 달리겠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기분 좋고 상쾌했냐는 말이다. 그녀를 놓쳐서는 안된다. 오늘 내가 왜 낚시 따위에 그토록 혼을 빼앗겼는지, 어줍잖은 경쟁심과 자존심싸움에 왜 붕어 들고 사진 찍을 계획에 정신이 팔렸는지. 그냥 솔직하게 그녀에게 다 말하련다.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백배사죄하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라도 제대로 잘 해보자. 그렇게 나는 다시 결심을 하였다.

고가도로 아래의 그늘을 나오니, 멀리 내 낚시 자리가 보였다. 한참 전에 도착한 듯 보이는,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미, 낚시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 하는 미래가 생생히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차디찬 한심함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홍진표가 기대어, 뭐라고 계속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물 저편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홍진표가 말을 함에 따라서 뭐라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답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놈의 대화에 말려들어가는 듯 보였다. "저 얼간이 같은 놈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홍진표에게 오세요." "진표씨, 사실 진표씨가 오늘 정말 멋져 보였어요"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재빨리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어느새 오후 시간도 늦게 지나서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해는 서녘으로 저물고 있었고, 그 서쪽 햇빛이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내 눈에 가득 들어와서 또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의 뛰다 싶히 하여, 나는 그녀 옆에 돌아왔다. 낚시대는 아직 제대로 잘 자리잡고 있었다. 홍진표가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저녁때 한강 보면 강물이 참 보기 좋죠. 이렇게 서봐요. 내가 사진 찍어 줄께."

홍진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돌아보니, 저녁 햇빛을 받아, 한강물의 물결이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련히 그림자가 지는 다리들이 보이고, 멀리 높은 아파트들과 빌딩들이 저녁 햇빛을 가득 받고 있어서 과연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을 찍기가 좀 어렵긴 하겠으나, 저녁 빛을 받는 한강을 배경으로 그녀를 찍는다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

홍진표가 세워 놓은 그녀를 두고 사진기를 들자, 사진에 방해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갑자기 그녀 옆에서 한 두걸음 피하고 말았다. 그녀 곁에 다가가다 말고, 내가 뒷걸음질을 치자, 그녀는 알아보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면서 그녀도 그 저녁 햇살이 비치는 한강변의 풍경을 바라 보았다.

"어, 저기. 잠깐만."

그녀는 나를 보고 잠시 놀라더니, 말을 하려다 말고,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가져온 자기 사진기를 꺼냈다. 그리고 홍진표와, 갑자기 나타나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는 사진기를 들고 어떻게 말할까 잠시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하더니, 홍진표에게 자기 사진기를 내밀며 말했다.

"저기, 먼저 좀 우리... 우리 같이 찍어 주세요."

그리고 나를 쳐다 보며 내 옆으로 한 발짝 더 다가 왔다. 그리고는,

"오늘, 우리, 처음 같이 뭐 해보기로 한 날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진..."

하고 말을 하는데. 그녀는 원래 별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을 제대로 잘 맺지를 못하고 있었다.

홍진표는 그녀에게 받아든 사진기를 들고 약간은 덜떠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가까이 서 있는 그녀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짝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녀도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 표정이 참 미안한 마음에 사무치게하는 모습이었다. 오늘을 나는 왜 이렇게 망쳐 버린 것이냐.

그녀에게 뭐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나는 말을 더듬더듬하며,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시 내 낚시대의 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의 요동은 점차 심해졌고, 급기야 그토록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던 낚시대 전체가 부서질 듯 마구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놈이었다. 오늘 벌써 몇 번 나를 유린한 바로 그 월척. 대어 였다. 이번에는 내가 워낙 깊이 떡밥을 잘 꿰어 놓았기에, 놈이 쉽게 미끼만 빼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렴. 아무리 영리한 물고기라도 그래 봤자 물고기 머리 아닌가. 그 정교한 퍼즐 같이 끼운 미끼를 빼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놈이 깊게 걸려든 것이지 싶었다. 놈은 계속 낚시줄을 당기며 미끼를 빼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나 큰 놈인지, 놈은 스스로 물결을 일으키는 듯도 했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힘껏 저 낚시대를 잡아 당기면. 바로 그렇게만 하면. 저 굉장한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 잉어일 수도 있고, 아니면 큰 향어라거나, 매우 희귀한 거대 붕어 일 수도 있어 보였다. 나는 당장에라도 낚시대로 뛰어가 온힘을 다해 저 놈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고 싶었다.

이내 놈이 미끼를 빼내는데 성공했는지, 움직임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놈이 수면가까이로 드러나면서, 그 거대한 덩치를 보이기 시작했다. 언뜻 보니, 은백색이나 회색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주아주 큰 듯 싶었다. 저걸 낚아내면, 정말로 낚시 월간지의 표지를 장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아니, 정말 굉장히 큰 물고기처럼 보여서, 단지 신기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강 생태계에 대한 어떤 중대한 정보를 줄 수 있을 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떤 기록이나, 역사에 등재되어 놀라운 일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들 정도로 정말 낚고 싶은 큰 물고기였던 것이다. 지금 뛰어 들어 낚시대를 잡지 않으면, 이제 막 그 순간은 사라질 참이었다.

내가 다시 낚시 찌에 시선이 사로잡혀 낚시대 쪽을 보자, 내 옆에 어색하게 서 있던 그녀도 그 쪽을 보았다. 그녀는 낚시대와 줄의 움직임이 안경을 쓰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에 힘을 준 채 유심히 낚시대 쪽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나는 낚시대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면으로 홍진표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예. 저희들 오늘 사진좀 잘 찍어 주세요. 뒤쪽에 한강에 햇빛도 잘 비치고 좋네요. 이렇게 빛이 들어오는 사진이라도 잘 찍는 법, 옛날에 몬타나 주에서 대학 다닐 때 익혔다고 했죠?"

홍진표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아무 생각도 안하였다. 그리고 가만히 사진기를 보며 그냥 그녀와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기만 했다.

그녀는 그녀의 사진기 렌즈를 보고 있는 나를 한 번 쳐다 보는가 싶더니, 내 옆에 붙어서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섰다. 홍진표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 하였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기를 들고 렌즈 조절 버튼을 조작하였다.

사진을 찍는 찰나. 갑자기, 첨벙거리는 큰 물소리가 들렸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물이 확 튀기며 쏟아져 내렸다. 우리 뒤로, 내 낚시대가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 엄청나게 큰 것이 강물에서 솟구쳐 올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 위 하늘로 힘껏 뛰어 올랐다.

아마도 그녀가 있던 곳과 내가 있던 곳 사이를 오늘 하루 종일 물속에서 재미있게 구경하며 떠돌았을 그 놈은, 놀랍게도 장난스런 눈빛이 가득한 돌고래였다. 그 놈은 붕어일까 잉어일까 생각하며 내가 짐작했던 크기보다 몇 배나 더 컸다. 아주 아주 잠깐 동안만 나는 돌고래의 눈을 보았다. 그래도 그 눈빛에는 평생 먹어보지 못한 맛나는 요리를 세 번이나 맛보게 해 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여유 있는 농담을 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녀석의 눈에는 그런 놀리는 웃음이 있어 보였다. 돌고래가 한강 물 속에서 뛰어 올라, 해질녘의 하늘을 한 번 도는 그 아름답고도 멋진 광경을, 한강변을 뛰던 그 많은 사람들과 또 많은 낚시꾼들은 모두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현재 내가 지갑속에 넣어두고 있는 사진에는, 튀는 물방울을 맞으며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나와,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며 하늘을 가르고 있는 나보다도 더 큰 돌고래와,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가 있다.


- 2006년, 도쿄 아카자카에서

*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옛 오페라 가수의 이름에서 무작위로 따왔습니다. 따라서 현실의 비슷한 이름이나 같은 이름의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PPGN은 "마술피리"의 등장인물인 파파게노의 약자에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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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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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6.06.07 09:36 댓글 수정 삭제
    아, 이런 게 드라마군요.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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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彬 06.06.20 22:32 댓글 수정 삭제
    죄송하지만, 이거 왠지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단편소설과 내용이 비슷한 것 같아요. 한 소년이 배를 타고 소녀와 파티(맞나;)에 가는 도중에 배에 낚시대를 설치하죠. 하지만 소녀는 낚시를 따분해해서 소년은 낚시에 애써 관심이 없는 척 하지만 커다란 고기가 걸려 소녀와 물고기중 갈등하던 찰나 소녀를 선택했지만, 소녀는 소년을 두고 다른 소년과 함께 가버렸고 그 소년은 그 물고기를 아쉬워했다-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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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彬 06.06.20 22:58 댓글 수정 삭제
    태클거는거...는 아니고요, 내용이 비슷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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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6.07.03 13:04 댓글 수정 삭제
    낚시라는게 "먹을 걸 구한다"라는 원초적인 데가 있는데다가 낚시중독-인간관계소홀 이라는게 워낙 널리 사용되는 소재다 보니 겹쳤나 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래저래 결말은 정 반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개해 주신 이야기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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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TA 06.07.06 02:49 댓글 수정 삭제
    어제부터 작가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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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6.07.06 07:02 댓글 수정 삭제
    시작은 언제나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g_short&no=314 부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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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야 18.03.22 13:19 댓글

    보호색이라니ㅋㅋㅋ이런 찰진 비유때문에 정말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계속 빵터집니다ㅋㅋ근데 정말 돌고래는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있죠ㅎㅎ똑똑한 개구쟁이 어린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ㅎㅎ소리도 왠지 꺄르르 하는것만같고ㅋㅋ

  • 청야님께
    No Profile
    곽재식 18.03.22 20:53 댓글

    제가 이 소설에 애정이 좀 있는데, 좀 뻔하고 별 대단한 아이디어도 없고 유치한 소설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즐겁고 유쾌하고 정이 가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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