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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공중부양

2012.04.28 00:1504.28

다음 내용은 지금부터 3년쯤 전에 내가 본 일을 적당히 꾸며서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다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그때 있었던 일 그대로 쓰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와는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 쓴 부분이 있다.


22층 옥상으로 들어섰을 때, 바로 눈앞에 들어 온 것은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여자 였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

"으- 어? 어?"

그냥 당황해서 나온 소리였다. 내가 처음 옥상으로 들어 설 때 기대한 것은 맑은 하늘과 충분한 햇빛에 오전 10시 30분 정도의 온도로 부는 바람 등등이었다.

그런 것도 있기는 했다. 빌딩 건물 속의 형광등 조명과 봄 날씨에 엷게 돌다가 말다가 하는 에어콘 바람 밑에서 갑갑하게 일에 시달리다가, 옥상에 나오니, 진짜 햇빛과 진짜 바람이 있기는 있었다. 이런 것은 바닷물 속에서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잠깐 수면 바깥에 머리를 내밀고 참던 숨을 몰아 쉬는 잠수부와 비슷하기도 하지. 하고 생각 해봤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리다 그친 비 때문에, 옥상의 시멘트 바닥에는 마르다만 맑은 빗물이 조금 고여 있기도 했다. 하늘에 떠 있는 덩어리진 흰 구름들은 어째 물먹은 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기도 했거니와, 역시 빌딩 내부에서 허우적허우적 하다가 잠깐 문 바깥에 나와서 잠깐 세상 모든 곳과 연결된 질소 70% 산소 20% 짜리 기체를 마주하여 숨을 쉴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고 느끼며 한 몇 분 있다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공상으로 빠져 볼까... 해야 했는데, 대뜸 햇빛, 바람, 구름. 그런 것에 앞서서 눈 앞에 툭 솟아 있는 모양이 먼저 눈에 뜨인 것이다. 잠시 동안은 뭐가 이상한 줄도 몰랐다. 똑바로 평평하게 펼쳐진 직선이 바른 난간. 견고하고 넓은 시멘트 바닥의 수평선. 안정감 있는 장면 가운데에 올라선 사람 형상이 있다. 그래서 눈에 확 뜨였을 뿐으로, 무슨 큰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놀래키는 덥쳐 오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람 소리에 빌딩 아래 먼데서 잠깐 뜻 없이 울려 퍼져 올라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한 풍경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그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처음에는 무슨 일하는 사람이나,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난간 위에 올라온 사람이라고 잠깐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살펴 보니 난간에 서 있는 여자는 갈색 스커트에 하늘색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구두굽은 높지는 않지만 좋은 바닥에서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걷는다면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려퍼질만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전혀 건설 작업이나 전기 작업을 하는 복장이 아니었다. 저 옷차림은 일반의 H라인 스커트인 것이냐, 혹은 너무 차려 입은 신입사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적당히 편하게 적응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캐주얼스러움"이 어느 정도 착염되어 있는 옷이냐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옷차림이었다. 저것이 고층 빌딩 외벽 청소 작업 작업복인지, 옥상 통신 기지국 보수 작업 작업복인지 따져 보게 만들 옷차림은 어니었던 것이다.

나는,

"위험합니다! 내려오세요!"

라거나,

"저기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라는 말을 했어야 마땅했고, 그렇게 말하려는 마음을 충분히 많이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빠르게 행동하기 전에 미쳐 예상 못한 광경을 보고, "이게 뭔가"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일 났다고 생각 하고 뭐라고 말을 하려니까,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다는 생각 때문에 빨리 뭐라고 말을 소리쳐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그리하여, 정신이 정리되고 언어가 갖추어져서 뜻있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그져 놀라서 그러면 안된다고 이상한 당황한 소리만 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으 워 어 어" 하는 소리는 아마도 생각하건데, 언어가 탄생하기전 오랜 우리의 선조들이 원시의 생활을 하면서 내짖던 소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그러한 영장류의 본성에 호소하는 감성이 전달 되었던지, 이 뜻없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난간 위의 그녀는 이쪽을 돌아 보았다.

"예?"

그녀는 내쪽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눈동자가 뚜렸하고, 얼굴이 분명히 보였다. 나는 얼굴이 핏기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놀라서 핏기가 없어져 가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저, 잠깐만. 잠깐만. 그... 거기서 그러시면 안돼요. 그러다 큰일납니다. 내려 오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 쪽으로 다가 갔다. 처음 두 걸음은 뛰어서 빨리 가까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이러다 갑자기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를 듯 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있는 쪽은 무서운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영역이어서, 함부로 가까이 가서 휘말리면 안된다는 느낌이 먼거리의 척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힘찬 첫 두 걸음과는 달리,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양으로 그녀 쪽으로 갔다.

"예?"

그녀는 다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쪽으로는 제가 처음 오는 거라서요."

나는 그녀의 웃음이 믿음직한 것인지 따져 보기 시작했다. 저 웃음은 농담의 결과나 기쁨의 표현, 친교를 위한 동작인가? 혹은 어색함을 감추려는 방어나, 아예 대뇌에 발생한 질병의 증상인가? 나는 그녀가 한 말을 돌이켜 보았다. "이쪽으로는 처음 오는거라"니? 지금 그녀를 보고 내가 방금 생각한 것과 전혀 걸맞지 않게 그녀는 꼭 빌딩 외벽 청소부나 옥상 기지국 설치 작업자처럼 말하고 있었다.

"일단 내려오시죠."
"여기 담당하는 분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그냥 이 건물에 입주한 회사 직원인데요. 여기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건데."
"예, 뭐...."

그녀는 그리고 잠시 말을 줄였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좀 있더니 이렇게 괜찮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예?"
"괜찮다고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다리를 좀 더 벌리고 똑바로 다시 섰다.

"잠깐만. 잠깐만.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일단 내려오시라니까요. 뭐하는 거예요?"

다시 내가 놀라서 말하는 소리에는 앞서 내었던 그 영장류의 원시외침이 50% 정도 섞여 있었다. 그녀는 나를 되돌아 보고 말했다.

"저는 이제부터는 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괜찮다고요."
"....?"

나는 대답도 못하고 이상하게 얼굴 표정만 바뀌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얼굴 표정이 온천이나 목욕탕을 표시하는 지도 기호 모양과 흡사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예? 뭐요? 뭘 할 수 있다고요?"

그녀는 지금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22층 빌딩 옥상 난간 위에 서서, 자신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말하는 분위기는 마치: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져 와서 지하철 역까지 어떻게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는 같은 건물의 직원이 있는데, 그 직원의 용모와 말소리에 혹하여 평소 이런저런 망상만 하고 있던 내가, 마침 용기를 내어서 어떻게 친해질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그러나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는 말은 적당하지 못한 것 같아서 미뤄 두고, 저는 다른 우산 있으니까 이 우산 쓰시죠 라고 하면서 하나 있던 내 우산을 빌려 주려고 하는데, 그녀는 "괜찮습니다. 저도 우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는 듯한 말투였다.

빗방울이 오후 햇빛과 함께 내리는 모습과 그 앞의 건물 입구 앞에 서서 웃는 표정은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아니, 우산이 어디있다고? 우산 없는 것 같은데? "우산이 있다"는 말은 "사실 우산은 없지만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 어서 10미터 바깥으로 사라지시고 이후로 두 번 다시 말 걸지 말면 좋겠습니다"라는 뜻의 완곡어법 표현인 것인지.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였고, 내가 권한 것도 우산을 써서 비를 맞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60미터 아래로 처박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움에 다소간 망설이기는 했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말을 더 해 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나니, 나는 "야! 니가 날긴 뭘 날아" 하고 따져 묻는다면 그것도 욱하는 마음을  생기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생각을 바꿔서 나는 일단 한 박자 쉬고 가 보기로 했다.

"그것도 좋은데. 꼭 거기서 위태롭게 서서 하지 마시고. 여기 내려 오셔서 하시죠. 여기 널찍하고 아무도 없고 좋은데. 내려와서 여기 바닥에서 그냥 날아 가셔도 되잖아요."

나는 내 앞의 바닥 공간을 가리켰다.

"아뇨. 그냥 이쪽으로 날면 되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몸을 움직인다. 나는 바로 그녀가 그대로 하늘 바깥으로 발을 디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어어" 하는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낸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일단 내려오세요. 내려와서, 저... 내려온다음에 하라고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진짜 괜찮아요."
"그런 거요? 뭐 어떤거?"

나는 그 말을 하고 후회 했다. 내가 "뭐 어떤거?" 라고 물어 본 것은, 마치,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말해 달라"

는 질문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된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왜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22층 옥상 난간 위로 올라 왔는 지, 그 모든 이유와 감정을 다시 되새기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나누고 있는 구구한 잡대화가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음을 깨닫고, 그대로 확 실행에 옮겨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아까 웃기도 하고 예상 외로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던 것과는 다르게 잠시 동안 말이 없이 가만히 있는 얼굴이었다.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눈동자에는 마르다가만 바닥의 물웅덩이가 반사 되어 보이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그녀가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을 끊어 먹자는 흐름으로 재빨리 뒤이어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 잖아요. 이 정도로 마음 먹으실 수 있으신 분이라면, 용기를 내서 그냥 세상 한 번 살아 보시죠."

말하고 나니 말했던 내 스스로가 다 반발심이 느껴질 만큼 무수히 많이 반복되던 회유의 대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중대한 시점에서 하는 말인데 이와 같이 통화중일 때 나오는 녹음된 반복 메시지나 다름 없는 품질로 느껴지는 아무 진심 없는 느낌 아니었나. "하면 된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한다."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 온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죄의 여부를 떠나서 물의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스럽다." 그런 것 처럼, "그럴 용기가 있다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 보라"니, 20세기에 이미 너무 지긋지긋해져서 이제 별로 쓰지 않는 말이 된 표현들 아닌가.

"그러니까, 제 말은...... 하여튼, 제발요. 일단 내려와 보시라니깐요."

반감만 부채질 했다는 후회에 덧붙여 말해 보았다. "그만한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차라리 살아 보라" 정도 말 한 번 주절주절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던져 버리겠다는 사람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무슨 어디 잡지에서 명언 한 마디 읽고 나서 멋있는 말 배웠다면서 뽐내려고 헛소리 한 마디 더 하는 것 같으니, 기껏해야 이 마당에 그 정도 대사나 주워 담으면서, 나 설득력있는 감동적인 대사 잘 하는 재치있다고 자랑하는 것 같이 보여서 짜증만 불러오지 않겠는가.

겁도 나고 당황도 하고 그러니까, 누구 다른 사람 안 올라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생판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디서 말을 잘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22층 난간 위에 올라와 있는 한 눈에 봐도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런 것은 전문가들 중에서도 정말 전문가들이 맡아서 해야 되는 일 아닐까. 아니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나보다는 좀 더 이런 일에 적합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구 하나만 옥상으로 더 올라 온다면 그 사람이 나 대신 말을 하고 나는 경찰서나 소방서나 뭐 그런데 신고를 하면서 좀 빠져 볼텐데.

"지금 제가 여기서 뛰어 내릴까봐 그러시는 거예요?"

그녀는 여전히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서 빌딩 아래쪽을 내려다 본다. 물이 괸 넓은 바닥을 비추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하늘색 빛이 다시 비친다. 나는 뭔가 일이 확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시야의 가장자리 부분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고 온몸에 털끝이 일어 서는 느낌 같은 것이 지나간다.

어쩔줄 몰라 말을 몇 번 멈추다 보니, 잠깐 나는 이게 무슨 불운인가 싶기도 했다. 그냥 사나흘에 한 번 하듯이 옥상에 바람 한 번 쐬러 나온 게 무슨 죄인가? 이이사가 새 분광전지 기술이 2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발표 자료를 만들라고 했을 때, "실용화 되서 판매 될 지 안 될지도 아직 모르는 분광전지를 가지고, 2조는 너무 심하다고." 조금만 현실적으로 쓰자고 대답했다고, 내가 얼마나 장황한 설교를 들었던가. 오늘 아침, 아직 출근한 지 별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가슴 속에 쌓인 답답함은 얼마나 늘어 났는지.

이이사는 한참 설교를 하다가 나에게,

"물론 생각이 깊고, 발상이 좋은 훌륭한 연구원인건 알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 생각은 또 다를 수도 있다고. 사회 생활을 오래 해 온 경험이라는 것도 있는 거고, 또 회사를 경영하는 관점에서 또 다른 방향에서 보는 다른 틀이라는 것도 있는 거거든. 꼭 내 생각이 맞고 남의 생각이 틀리다. 라고 생각하지 말고,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 라고 생각해 보란 말이야. 틀린 거 하고 다른 거는 우리가 말 하면서 자주 실수 하지만 같은 뜻이 아니 잖아. 꼭 다른 게 틀린 거는 아닌 거거든. 그 좋은 머리로 그렇게 이해 못하겠나?"

라고 말하는 부분에 이르더니, 갑자기 "다르다 와 틀리다 의 개념 혼동" 부분을 설파하는 부분이 스스로 굉장히 감격적이라고 생각 했는 지, 그 이야기를 운율에 맞춘 격정적인 어조로 설파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 동안 이곳저곳에서 워낙 "다름을 이해하는 관용"이니 어쩌니 하면서 많이도 보던 이야기에 별로 재미날 것도 없거니와 그걸 갑자기 무슨 큰 깨달음처럼 감동하라고 명령하듯이 길게 말하는 것도 싫었다. 문책당하며 설교 듣는 자체가 싫어서 그런 마음도 들기야 했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그 동안 "다르다"라는 말과 "틀리다"라는 말을 헷갈리거나 혼용해서 쓰면서 살아 온 적이 없었다.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이사 본인이야 이날 이후로도 매번 기자들과 인터뷰 할 때 마다 "전지이기는 하지만 분광전지는 지금까지의 전지와는 틀려요." 라고 하는 사람 아니던가.

다르니, 틀리니 하는 이상한 소리만 한참 듣다가. 결국 다시 분광 전지 기술의 가치가 2조원이라는 자료를 정말 만들어야 하나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채로 45분간 한숨 쉬다가. 그러다가 잠깐 숨 좀 돌려 보자고 옥상 공기나 한 번 쐬자고 올라 온 건데. 왜 별로 멀쩡하지 않은 표정으로 난간 위에 올라가서 곧 뛰어 버릴 자세를 취한 사람이 거기서 나를 맞아 주는 것인가. 나도 별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여유롭고 넉넉한 사람도 아니지 않나?

"저기요. 저. 그러지 마시고. 그냥 일단 한 번 오늘은 넘겨 보시죠. 이렇게 되면, 나중에 길에서 치우는 사람 하며, 길가다가 갑자기 위에서 떨어진 사람 보고 놀라서 경기 일으킬 마음 약한 사람하며, 나중에 그거 다 뒷처리할 사람들 고생하며... 여기서 이렇게 보고 말했던 죄로 경찰에 불려다니며 한참 조사 받을 제 고생하며. 그리고. 또, 어...

그렇죠. 그런 사고 생기면, 사고 방지 한다면서 여기 옥상 올라 오는 것도 막아 버릴 거거든요. 그러면, 제가 하루 회사 다니면서 가끔 여기 옥상 올라오는 게 유일하게 버틸만한 건데. 그것도 없어질 거 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일단 오늘은 그냥 내려 오시죠. 그리고 나서 다시 마음 고쳐 먹고 생각해 보시면 생각 달라지실 수도 있고."

나는 뭐든 말을 중간에 마치게 되면 그녀가 움직일 거라는 생각에 신세한탄처럼 말을 늘어 놓았다. 길게 말을 하면서 나는 나말고 누가 옥상 위에 올라와서 이 상황을 좀 도와 주기를 다시 한 번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 담배 피운다는 사실을 숨기는 여사원 같은 사람들이 몰래 담배 피우려고 옥상에 올라오는 일도 있었고, 멧집 좋은 5층의 한 남자 직원이 운동 삼아 22층 옥상까지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따라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오. 아녜요. 저는 정말로 날아 보려고 여기에 온거라니까요. 저도 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긴하는데."

그런데 그녀는 깔깔거리면서 좀 웃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그 웃음 소리는 절대 정상적인 자연이 원하는 웃음은 아니라는 확신감이 들었다. 그러자니 다시 아차 싶었다. 두 가지 중에 하나 아닐까 싶었다.

첫번째로 그녀는 무슨 굉장히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서 누구에게 따지고 누구에게 항의하고 누구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이런 일을 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청소와 미화에 어려움이 있으니 잠시 오늘의 일을 미뤄 달라는 나의 말은 오히려 그녀를 부추기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공감하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기는 커녕, 그녀가 생각하는 굉장히 심각하고 엄청난 어떤 문제보다 "옥상에 못들어오게 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더욱 감정이 치밀어 올라 바로 움직일 지도 모른다.

두번째로 그녀는 어떤 힘겨운 곡절을 겪었고 그 때문에 세상 살이가 굉장히 힘겹게 되었거나 먹고 사는 행동이 잘 되지 못할만한 큰 슬픔이나 심적인 타격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밥벌이하고 끼니 챙겨 먹으면서 목숨 부지 하는 작업들을 쉽게 연결해서 진행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걸 마치려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좀 내려와 달라는 내 부탁이 조금은 더 귀에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더 지치고 더 기운 빠지는 마음을 생기게 할 지 모른다. 잠깐 머뭇거리게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상황은 더욱 되돌리기 어려운 쪽으로 심경을 넘겨 버리지 않았을까.

에라.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뭐 지나가는 사람들 일 다 걱정하고 살아야 되나. 어떻게 해야 아는 지 모르게 되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이대로 돌아서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 스스로도 하늘을 날 수 있으니 괜찮다면서 그대로 두라고 하지 않는가. 그냥 돌아서서 가면서, 경찰서에 전화나 똑바로 한 통 하면 특별히 무슨 죄가 되지는 않을거다.

그게 맞는 행동일 수도 있다. 지금 이런 게 내가 원래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난간 위에 올라선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을 잘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괜히 내가 이 소리 저 소리 하면서 설치다가 저 사람에게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물러서고 신고만 하자. 그리고 다시 나는 저 아래 사무실로 가자. 낙천적인 웃음을 갖고 끈기 있게 매일 밤을 새서 열정을 불태우면서 과거는 잊고 미래를 위해 배고픈 것도 모르고 세상 다른 일도 모두 잊은 채 오직 주기적으로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에 대한 설교만 듣고 내달리라고 지시하는 저 아래 사무실로 돌아가 보자.

"저기요. 그냥 이렇게 하죠. 죽은 셈 치시죠."

나는 도망 가는 생각을 하다가 심장에서 뭐가 튀어 나왔는 지 그렇게 소리쳤다.

"?"
"그러니까, 이런거죠. 뜻대로 하신 거예요. 저 밑에 떨어 지셨죠. 그리고 지금부터 여기는 사후세계인거죠."
"예? 뭐요?"
"천당, 지옥 뭐 이런거 절이나 교회가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사후세계는 이렇게 지금 보시는 대로 이렇게 생긴 겁니다. 원래 살던 때 살던 세계하고 아주 비슷하게 생긴 세계죠. 지금 벌써 사망하신 후에요. 그런데 사후세계란 것이 어떤 거냐면 딱 죽는 동작을 하기 직전의 시기로 돌아 가서 다시 사는 거거든요. 물론 여기서 지내는 게 쉽지는 않죠. 여기서 지내는 거는 실제 살던 세계보다 더 고달파요. 그러니까, 사후세계가 일종의 처벌 역할도 하는 거죠. 뭐, 천당에 갈 거 생각하고 일 저지르신 건 아닐거고. 이제부터는 죽어서 사후세계로 돌입했다고 생각하고 지내시라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살아 계실 때 다 끝난 거예요. 지금부터는 그거하고 아주 비슷하게 생긴 사후세계로 순간이동 하셨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계속 지내셔야 되는 거라고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또 지껄였다. 역시 나는 전문가가 아니고, 별 설득력 없는 소리라는 후회가 곧이어 지진 후의 해일처럼 짧게 달라 붙어서 밀려 왔다. 지금 그녀가 "그러면 여기서 다시 뛰어내리면 또 어디로 가는데? 진짜 한 번 실험해 볼까?" 라고 따지면 뭐라고 대답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났구나 싶었다.

"자꾸 그러시네."

다행인지 뭔지 그녀는 발을 난간에서 떼어 놓는 대신, 다시 한 번 나를 보았다.

"자꾸 처음 머릿 속으로 생각한 이상한 생각만 하지 마시고. 놀란 마음 좀 가라 앉히시고. 한 번만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무슨 이상한 마음 먹고 여기 올라 왔다면 왜 아직 이러고 있겠어요?"

막상 일 저지르려니까 이런 저런 생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거 아뇨? 나는 감히 대답은 하지 못했다. 눈치만 봤다.

"정말로 저는 날 수가 있거든요.

여기 담장이 높고 난간도 높고, 올라오기 어렵게 철망도 하나 쳐 있잖아요. 사다리 같은 것도 없죠? 제가 만약에 날 줄 모르면, 일단 여기 난간까지 어떻게 올라 왔겠어요? 그렇잖아요? 요즘에는 왠만한 건물들은 이런쪽으로 다 안전관리를 하기 때문에, 막상 그런 마음 먹어도 시내 한 복판에 이런 빌딩에서 굳이 이렇게 올라 오기도 어렵다고요. 저는 날 수가 있기 때문에 날아서 여기로 올라온 거거든요. 안그러면 제가 이 난간까지 올라오는 것 부터가 어려울 거라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그녀가 저 높은 난간 위까지 어떻게 올라간 것인가 싶었다. 정말로 근처에 저 정도 높이를 쉽게 올라가게 도와 줄만한 계단이나 사다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난다고요?"
"예."

그녀는 고개까지 끄덕여 보였다.

"그러면..."

나는 잠시 무슨 말을 할 줄 몰라서 멈추었다. 말을 하는 사이에 조금씩 그녀를 향해 다가 갔더니, 벌써 그녀와는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다.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불안한 표정인 것 같기는 했다. 그렇게 얼굴을 보다 보니, 나는 그녀를 건물을 오가다가 몇 번 만난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녀를 언제 처음 봤는 지 생각도 났다. 옥상을 발견하기 전에는 답답할 때 마다 1층으로 건물 바깥으로 나와서 길거리를 한 바퀴 걷다가 들어오곤 했다. 그러다가 자리 비운 사이에 나한테로 걸려 오는 전화가 몇 통 있어서 이이사가 대신 전화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다시 돌아 오는 길에 나는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녀를 보았다. 그날 자리로 돌아갔더니 이이사가 "야, 내가 너 전화 심부름하고 있어야 겠냐."라면서 휴게실로 불러내서 한 바탕 기본 예의와 사회 생활의 경험에 대해서 짜증으로 배경음악을 깔아 놓은 강의를 들려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 그녀를 엘레베이터에서 처음 봤던 날이 기억 난다.

"그러면, 뭐 어떤거예요? 무슨 어떤 기적, 섭리, 영혼 이런 걸로 신비롭게 날아 간다는 거예요? 아니면 뭐 아인슈타인도 뇌의 몇 퍼센트 밖에 활용 못했는데 잠재된 능력을 개발했더니 날 수 있다... 뭐 이런 초능력 그런 건가요? 무슨 외계인의 조화나 우연히 얻은 신비한 운석 뭐 이런 식으로 날 수 있는 거에요?"
"아뇨. 아뇨. 그런 거 다 아니고요. 공중에 띄울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거죠."
"기술이 있다고요?"

그녀는 길게 망설이지 않고 바로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망설임이 없다. 그렇게 보면 내가 말할 때 마다 그때그때 무슨 핑계를 댄다고 지어내서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만하기도 하다. 내가 뭐라고, 지금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을 굳이 거짓말로 지어내서 핑계를 대고 있겠는가. 그냥 나 같은 것은 없는 셈 치고 하늘 저쪽으로 바로 두 다리를 옮겨 놓아도 될 것이고, "야! 꺼져!" 하고 홱 소리나 지르면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지 않겠는가. 갑자기 하늘을 날기 위해 옥상 난간 위로 올라 온 것이라고 꾸며댈 필요는 없었다.

나는 잠깐 다시 한 번 더 보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할 것들이 뒤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을 어떻게 저기에서 내려오게 하나. 내가 뭘 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저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정말로 날 수도 있는 건가. 식판에 받아 먹는 구내식당 밥을 다 먹고 나서 남은 반찬들을 국그릇에 담아 모을 때 그 국물과 양념들이 섞이는 모양으로 그런 여러 질문에 대한 답들이 흐려진다. 정신을 차려야 겠다 싶었다.

"그러면, 그러면. 기술이 있는 거면, 그게 어떤 거예요? 무슨 행글라이더나 낙하산 처럼 공기를 타고 활공하는 그런 걸 갖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재킷 하나를 더 입어야 훨씬 더 어울릴 그녀의 옷차림을 보았고, 꼭 얇은 외투처럼 가볍게 걸치는 날개 모양의 틀을 그녀가 등에 지고 종이 비행기처럼 부드럽게 바람을 타고 활공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니면, 제트팩이나, 무슨 휴대용 헬리콥터 같은 걸로 엔진 같은 걸 돌려서 나는 건가?"

나는 무릎을 반쯤만 가리는 그녀의 스커트 길이를 보고, 무릎 바로 위쯤에 어떤 추진 장치가 있는 모습을 생각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작은 엔진이 연기를 내뿜고 주변의 먼지가 잔뜩 휘날리면서 그녀가 서서히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나는 것은 아니고 무슨 사이보그 장치 같은 걸로 엄청나게 센 힘으로 높이 뛰어오르고 높은 데서 뛰어 내려도 부드럽게 견디면서 착지하고 그런 쪽인가요?"

나는 그녀가 옷 안에 강철과 완충장치가 갖가지 전자장치로 연결될 로봇 관절을 갖고 있어서, 시멘트 바닥에 금을 가게 하면서 박차고 뛰어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다 아니고요. 이렇게 멀리서 작용하는 반발력으로 공중으로 붕 뜨는 거죠."

그녀가 대답하고 나니, 나는 다시 좀 침착해져야 겠다고 생각 했다. 나는 상담자도 뭣도 아니다. 내가 지금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큰 득이 될 일이 있겠는가. 내가 무슨 소리를 하건 "굳게 마음 먹고 강한 의지로 이겨내 봐"라고 쉰소리나 하는 잘못된 구식 조언보다 뭐가 더 나은 건가 싶었다. 지금 사람에게 질병이 들어 와 누워 있는 병자를 보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호통치면서 겨우 "정신력으로 이겨내라" 따위의 이야기나 하는 것. 그런 얼치기 사람 잡는 선무당의 잘못된 조언 이상의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쨌거나 지금은 굉장히 내가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니까, 창공으로 날아오르기 전에, 소방관이나 경찰관이나 의사나 하여간 전문가랑 이야기부터 먼저 꼭 해보라"고 하고 나는 이제 빠지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고 잠깐 그녀를 살펴 보니, 혹시 정말로 그녀는 그녀가 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된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어떤 아저씨에게 "저는 날아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기 보다는 혹시 잠깐 전의 일과 앞뒤 상황 분별도 혼란스러울만큼 어지러워져 있는 그런 상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반발력은 어떤 반발력인데요? 무슨 반중력 같은 건가요?"

나는 그녀가 나에게 둘러 대려고 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날 수 있다고 착각을 해서 저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봤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나는 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굳이 산타클로스가 세상에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해서 밝혀 주는 열네살 먹은 삼촌 같은 행동을 하는 기분이 언뜻 들기도 했다. 그러니 곧 이게 무슨 엉성한 태도인가 하는 생각도 다시 들었다. 역시 내가 다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별 달리 표정이 바뀌지도 않는다. 목소리도 더 무거워지도 않고 더 가벼워지지도 않았다.

"반중력이면, 보통 이야기 하는 건 암흑에너지를 끌어 오는 걸 말하는 건데. 그건 지상에서 비행용으로는 아직 쓸 수가 없죠. 저희 쪽에서도 그걸 아예 연구 안하는 건 아닌데, 이제 겨우 새 이론이나 가상 실험이나 뭐 그런 단계니까. 얼마전에 구체적으로 실용화 논문도 나오기는 나왔는데, 딱 그 처음 아이디어 나온 단계니까.

무슨 옛날 영화나 만화에 나온 것처럼 차고에서 일하는 과학자가 갑자기 혼자 신기한 새로운 이론을 개발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뚝딱뚝딱해서 타임머신도 만들고 우주선도 만들고 뭐 이렇게 정말로 뭘 만들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이론이 나온 다음에도 여러 단계를 거쳐서 여러 조직과 여러 회사가 힘을 합쳐야 실제로 쓰이는 뭐가 나오는 거지."

나는 이제 그녀가 난간에서 내려오나 보다 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맞죠. 암흑에너지 활용 논문 나왔다고 해서 사람이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기술이 지금 나왔다는 건 정말 이상하죠.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 이론 논문을 내고 나서, 특허청 앞마당에서 자기가 스스로 디지털 카메라도 만들어서 이웃 나라 여행 갔을 때 퀴리부인 사진 찍고 다녔다 뭐 그런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회사 다니다가 배운 버릇대로 그렇게 말을 마치고 말미에 "허허허" 하고 멍청한 웃음까지 덧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웃음이 붙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쓰는 건 그게 아니고 자기장을 이용하는 거거든요. 상자성 자기장 유도 빔이라고 몸에 자력을 걸어서 자석이 밀어내는 힘을 이용해서 붕 띄우는 거죠."
"예?"

나는 다시 말을 멈추게 되었다. 내가 말하지 않는 동안 바람이 불면서 그녀를 뒤로 밀듯이 그녀의 앞을 바람이 지나갔다. 그녀의 옷자락이 날렸고, 머리카락이 날려서 그녀는 잠깐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바람을 막았다.

"사람 몸이 자석에 붙고 뭐 그런 것도 아닌데 자력으로 밀고 당기고 뭐 그런게 되나요?"
"상자성이라고, 수소 원자 상자성의 반발력을 이용하는 건데. 사람 몸에 물이 많잖아요. 그게 다 H2O니까, 수소가 많은 거거든요. 이게 상자성이 있어서 잘만하면 자력 현상을 일으키게 할 수 있있거든요. MRI 같은 것도 그렇게 찍는거고."
"MRI는 엄청 센 자석 쓰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럼 사람을 하늘에 띄우려면 이 바닥이랑 길가에 온통 다 자석을 깔고 무슨 초전도 현상 그런 거 장비도 막 시내에 엄청나게 토목공사 하듯이 좍좍 깔아야 그 정도 힘 나오고 그래야 맞지 않나요? 그렇게 길 바닥 다 엎어 가면서 공사하는 거 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요. 무슨 민자 지하상가 세운다고 몇 번 엎는 거나 봤지, 그런 장비 갖다가 깐다는 건 없었는데."
"그냥 다른 기술 하나도 안쓰면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러면 실용화가 안되죠. 상자성 유도 빔이라고 자기장 렌즈 효과를 이용해서 레이저 포인터로 한 점에만 빛을 보내듯이 딱 좁은 공간에만 집중해서 쏘아 보내는 그런 식으로 하는 거에요. 이 건물 둘레에 빔 프로젝터는 몇 개 세워 놨거든요. 그걸 조종해서 저한테 쏘게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저 아래편에 접시 안테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전에는 그냥 그게 이 건물에 입주한 회사 임원들이 심심해서 시간 때울 때 영어 공부 한다는 핑계로 외국 방송 틀어 놓고 졸기 위한 위성 방송 수신 안테나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안테나에 통신사나 방송사 표시가 그려져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무슨 이상한 전자기파에 관한 새로운 장비처럼 보일 법도 하기는 했다.

나는 다시 그녀가 서 있는 난간 위를 보았다. 그녀는 처음 보았던 그 위치에 그대로 계속 서 있었다. 햇빛이 그녀 앞으로 비추고 있었고, 그림자는 그녀의 등뒤로 떨어 지고 있었다. 지금 저 위치에 서 있으면 아래 쪽에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빌딩의 점점 좁아지는 모양 때문에 가려서 잘 안보일 것 같기도 했다. 그렇거니와 좌우에 이 정도 빌딩이 계속해서 연이어 늘어서 있는 이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굳이 바쁜 길가의 빌딩 꼭대기를 올려다 보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맞은편 빌딩 중에는 우리 빌딩을 내려다 보는 높은 빌딩도 몇 있으니 그 빌딩에서 이 장면이 내려다 보일 가능성은 있을 수도 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그러면 누가 신고를 하고, 지금쯤이면 급하게 근처 파출소에서 경찰관 한 둘 쯤은 달려 올라올 수도 있을텐데. 계속해서 내가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이상하게만 흘러 간다는 생각이 들자,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다른 사람이 나타날 지 초조해 지기도 했다.

나는 난간의 높이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높기는 높은 높이였다. 하지만 요령껏 붙잡고 낑낑거리면서 올라간다면 못올라설만큼 그렇게 심하게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꼭 저 위에 올라가서 뛰어 내려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 고생을 하면 옷도 더러워 지고 손에도 먼지가 묻을 것이다. 그녀처럼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올라가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그냥 뛰어 내리기 위해서 저 위에 올라 간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녀가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거기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 제가 그냥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할께요.

제가 여기 옥상에 딱 왔는데 지금 이렇게 난간 위에 서 계시니까 일단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확 놀랐거든요. 지금도 사실 그 놀란 마음이 별로 다 안 없어졌어요. 그런데 일단 저보고 안심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니까, 저도 뭐 그러면 일단 다른 말씀은 안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또 어떻냐면, 정말로 무슨 위험한 상황이 아닌거 같으면, 이렇게 옥상에서 한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만났으니까 그냥 인사 정도 하고, 통성명 정도 하고 그런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잖아요. 여기 옥상에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불 빌려 주다가 한 마디 두 마디 하게 되고 그러다가 친해지는 사람들 있는 것처럼, 뭐 그 정도로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는 것 정도는 해도 될 거거든요."

나는 이 정도 이야기 했을 때 그녀가 한 마디 정도 대답을 할 줄 알았다. 예를 들어서, "예." 라든가 "그렇죠" 같은 짧은 말을 하든지, 아니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든지 해야 부드럽게 흘러 가는 대화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그 표정 그대로 였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상자성 유도 빔으로 사람을 공중에 띄운다고 했는데, 그런 장치를 쓰면 분명히 이 건물의 전자기기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상자성 유도 빔 실험을 하기 전에 경고문이나 주의 공지, 협조 공문 같은 것이 몇 차례 나 돌아야 맞지 않겠는가? 갑자기 사람을 공중에 붕붕 띄울 정도로 강한 자기장에 잘못 휘말려서 윗층 사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라도 망가지면 어쩌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런 주의 공지나 안내문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애초부터 믿기 쉽지는 않았지만, 믿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나는 간신히 차분하게 말하고 있던 것이 다시 점점 흩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잡아 보겠다고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말투를 정돈해서 말을 이어 보았다.

"그래서 그냥 어떤 실험을 하는 거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어느 회사, 어느 기관에서 일하는 누구다, 그 정도 간단하게 서로 이야기나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상태에서는 제가 너무 겁도 나고, 마음이 안정이 안되니까요, 잠깐만, 잠깐만 거기서 내려 오셔서 말씀 계속하시면 안될까요?"
"지금 대기 중일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다리 한쪽을 허공으로 디뎠다.

"워어어-"

나는 놀라서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난간에 걸터 앉았다. 22층 꼭대기에 있는 두뼘 밖에 안되는 난간 위에 있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 떨림이나 이상한 동작 없이 난간 위에 앉았다. 나는 잠깐 힘이 쭈욱 발밑으로 꺼지듯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이미 나는 그녀로부터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서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앉게 되니 다시 겁이 확 났다. 조금 잘못 움직이면 그녀가 확 몸을 틀어 버릴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녀와 이야기해 봤자 무슨 도움도 되지 못할 거고 나도 엉뚱한 일에만 엮이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다시 들었다.

"누가 봐도 이게 위험하고 놀랄만한 일인데, 이걸 무슨 안내해 주는 그런 보조 연구원이라도 같이 옥상에 올라와서 시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시내 22층에서 실험하는 데 그런것도 없이 하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놀라잖아요."

그녀는 두 손을 들어서 얼굴 앞으로 가져 가더니 자기 손바닥을 잠깐 들여다 보았다. 그게 무슨 행동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2,3미터 높이에서는 애저녁에 실험 다 했고, 공터나 실내 실험실에서도 다 실험했거든요. 이번에는 도심 지역, 복잡 지형에서 실험한다고 한 건데. 이렇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니까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뭐 애초부터 여기서부터 출발하려고 한 거는 아니니까."
"그러면 무슨 미리 놀라지 말라는 통지라도 주변 일대에 좀 돌렸어야 하지 않나요?"
"돌리긴 돌렸죠. 보셨을텐데."
"안내문을 돌렸다고요?"
"그런데 뭐, 다들 바쁘니까 어디 공지사항 이런 걸로 띄워도 잘 안보잖아요. 건물 엘레베이터 LCD 화면에 띄우면 제일 많이 보기는 하는데, 거기 띄우려면 또 건물 임대하는 회사에 돈 엄청 내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날 수 있다는 거죠? 상자성 유도 빔으로."
"한번 보시겠어요?"

나는 당장 시연을 하겠다는 그녀에게 급히 손을 휘저으면서 "아니"라고 말렸다. 나는 유심히 다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그런 공지가 있었는데 내가 놓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그 정도 일 같으면 소문도 났을 것이고, 나도 놓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내가 잠깐 말이 없자, 그녀는 다시 건물 저쪽 편의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바람이 꽤 세게 부는 지 벌써 아까 떠 있던 구름들은 다 지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어찌 되었건 그녀의 저런 표정은 정말 이상한 표정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뭐든 다 귀찮다는 표정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 심하게 부끄러워서 멀리 도망쳐 버리겠다면서 눈을 질끈 감아 버리기 직전의 표정 같기도 했다.

"몇 번 오다가 가다가 뵌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저희 건물에서 일하세요?"
"아뇨. 여기서 일하는 것은 아니고. 여기 전자파 실험 대행해주는 업체 있잖아요. 거기 쪽에 일 맡긴게 있어서, 자주 왔다갔다는 했죠."
"그러면 어디 회사 쪽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정부쪽? 혹시 무슨 군사 기밀 이런 쪽이신가요?"
"아직 저희 기술 보도 자료 나오기 전이니까, 그런 걸 일일히 밝히기는 좀 곤란하고요."
"그러면 정부쪽은 정부쪽이신가보네. 그러면 전공은 어떻게 되시나요? 어떤 거 공부해야 이런 거 할 수 있는 거죠?"
"양자제어학 전공이기는 한데. 양자제어학이 이쪽 분야랑 딱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고."

구체적인 답들이었고, 역시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지만, 밝히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는 것하고, 양자제어학 이야기를 한 바로 다음에서 말이 멈출 때 갑자기 고요해 지는 것은 역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저, 정말 일단 내려오셔서 조금만 더 이야기하시면 안될까요."

멀리서 계단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도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누군가 올거 같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부탁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움직임 없이 그대로 난간 위에 앉아 있기만 했다. 나는 그냥 이대로 빠르게 달려 가서 그녀의 팔이나 다리를 잡고 확 끌어내려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거리가 약간 먼 듯 싶었다. 조금만 재빨리 움직이면 단숨에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한 걸음, 반 걸음 차이로 그녀가 먼저 놀라 움직일 수도 있는 위치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제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는 싱긋 웃었다. 소리도 없이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억지로 만들어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크게 병들었고 그래서 정말 무섭게 되었다는 것이 가슴 속으로 훅 밀려 드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내멋대로 단정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대하고, 함부로 누구를 구하고 되돌리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에 다시 혼란 스럽기도 했다.

그때 내가 잠깐 생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후배에게 배운 것, 선배에게 배운 것 각각 한 가지 씩 꼽아 보자면 이러하다. 후배에게 배운 것은, 요즘 신입사원들, 특히 여자 사원들은 정도가 강한 것이나, 예상과 달라서 조금 놀라운 것이 있으면, 그것을 표현하는 수식어로 꼭꼭 문법 규칙처럼 "대박"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우와, 대박이다"라고 하고, 무척 재밌는 영화를 보고나면, "야, 진짜 대박이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감탄사로 다른 말과 결합시키지 않고, 그냥 "대박"이라고 말을 할 때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대-"를 길게 말하고, 뒤에 짧게 "박"하고 붙이는 듯이 "대애애애박" 하고 말을 한다. 이런 말을 자주, 널리, 즐겨 사용 한다.

두번째로, 내가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보통 열등감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자존심을 표현하는 형태라는 사실이었다. 열등감은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라서 자존심과는 반대인 것 가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오히려 거기서 다시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박과장은 내집마련을 하지 못했고 별로 좋지도 않은 집에서 세살이를 한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 특히 번듯한 동네의 그럴듯한 집에서 사는 이이사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낀다. 그런데, 박과장이 자기 주거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이이사 보다 훨씬 학문적, 기술적으로 박과장 자신이 더 뛰어나고 회사에도 공헌도 많이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더 충실한 사람이기에, 모든 면에서 이이사보다는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뛰어난 보상을 받는 것이, 옳고, 정의롭다는 그 생각 때문이라고 본다. 박과장은 자신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중대한 공헌을 하는 두뇌를 갖고 있는 자신이야말로 이이사의 집과 같은 집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박과장 집의 보증금으로는 이이사 집의 화장실 타일만 사기에도 어려웠다. 박과장은 세상이 불공평하고 자신은 부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그것이 집에 대한 박과장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런게 내가 선배들을 보면서 생각한 결론이었다.

지금 22층 난간 위의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두 가지를 생각 했다. 그녀는 생소한 말투로 말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녀 나이에 어울릴 법한 말투를 조금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어울릴 듯한 다른 어떤 말투의 흔적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계속 거침 없이 대답을 들을 수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제대로 연결되지 않게 쥐어 짜서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 그렇게 보였다. 나는 지금 그녀가 쓰는 말과 그녀가 말하는 태도가 결코 정상 상태는 아니라고 추측했다. 지금 그녀의 말과 행동은 분명히 평범한 작업이나 성실한 업무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심경이 왜곡되고 판단이 흐려지고 심신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 있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지금 어떤 식으로든지 그녀의 자존심을 내세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아마 그녀의 전공이 양자제어학이라는 것 정도는 정말일 것이다. 그녀가 양자제어학으로 실제로 사람을 공중에 띄우는 연구를 한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어떤 정부 기관에서 비밀 연구를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멈춤 없는 거침 없는 설명은 거기에 어울린다.

하지만, 아마 그녀는 그렇게 일을 하면서 어떤 좌절감을 느낄만한 일에 휘말렸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고, 그녀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진지하고 심각한 연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야에서 그 모든 삶의 노력이 방해를 받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혹은 오래도록 높이 높이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던 행렬로 살아 가다가, 어느 날, 어느 달, 어느 해를 보내면서 그런 것들이 어처구니 없이 단숨에 실패해버리는 큰 사고나 큰 실수를 겪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노력해 보지만 어떻게 해도 되돌려지지 않아서, 견딜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끝에, 그녀는 옥상의 난간 위로 올라오게 된다. 하늘 아래에 있으면서 잠깐 시인인냥 감상에 젖으면서 그래도 그런 감성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낫고 더 멋있고, 하다 못해 더 특이하고 그래서 세상에 더 희소한 귀중한 것이라는 그런 감상 속에라도 잠깐 숨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하늘에 떠오르고, 내키는대로 바람을 가르며 마음껏 다닌다는 자유롭고 위대한 심상을 계속해서 동경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되는 게 없어서 보잘 것 없는 신세지만 그래도 "넌 망한 신세지만 꿈이 있으니까 그 꿈을 위한 열정 때문에 대단한 것으로 멋있게 보일 수 있다. 꿈꿈꿈꿈"거리는 괴상한 허영심을 불어 넣어 주는 것만이 목표인 성의 없는 가사로 된 유행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누군가가 선물해 준 "꿈" "날개" "비상" "내일" 이런 단어만 지겹게 가사에 흩어져 있는 노래를 수백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런 노래가 힘을 준다고 믿다가 결국 22층의 허공에 다리를 올려 놓으려고 온 것이라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아니, 저 잠깐만."

그때 나는 정말로 누군가 뒤쪽 계단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녀가 갑자기 다시 난간 위에서 일어 서려는 것을 본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놀라고, 허둥댄다. 옥상에 오는 사람은 전화 통화로 잡담을 하고 있고, 그 목소리는 담배 피우러 올라 오는 이이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쪼그려 앉은 모습이 된다.

나는 한 발자국만 더 내딛어 손을 뻗으면 그녀를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나는 두려워 한다. 내가 엉거주춤 손을 뻗는 사이에 그녀가 저 아래 까마득한 자동차와 보행인들의 방향으로 멀어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곧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한 자만에 빠져 있었는 지 바로 다시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저 내가 재수생이던 때, 내가 취업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때 그 얼마간의 기억을 가지고, 그걸로 세상 사람 누구의 마음이건 알 수 있다고 함부로 내려다 보았던 잘난척이 부끄러워서 어디 멀리로 도망가고 싶어 진다. 내가 지금 무서워하며 겨우 난간 위의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하고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을 역겹게 생각한다. 무슨 구원을 갖고 어딘가에 나타나는 영웅인냥 행세하다가 똑바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고작 귀찮아서 슬쩍 도망가고 잊으려고 애쓰는 것은 가장 비겁한 죄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나는 그녀와 예전에 처음 말을 나눈 적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 났다. 처음 회사에 출근 했던 날 아무것도 모르고 누구에게나 인사 잘 하는 사람이 되야 겠다는 생각만 있어서 처음 건물에서 만난 그녀에게 인사를 했던 때가 있었다.

"근무시간에 땡땡이 치고 밖에 나왔는데, 그러다가 이런데서 바람쐬러 나온 상사한테 딱 걸리면 대박 민망하죠?"

그때, 겨우 소리나 지르며 주저 앉을 재주 밖에 없는 나에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몸을 더 숙이며 그 손으로 내 팔목을 낚아 채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눕듯이 몸을 난간 아래로 떠밀며 두 발로 바닥을 굴렀다.

고개를 돌리자 길 맞은편 빌딩 24층의 유리창이 보였다. 거기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는 사람이 없던 도로 위 높은 곳의 허공이, 바로 저 허공을 가로지르는 어떤 고공의 길만 있다면, 이곳 옥상에서 건너편 건물 24층 사무실의 유리창으로 나아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공중의 다리와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가뿐한 힘처럼 뛰어 오르고 우리는 솟아 올라 옥상 바닥에서 멀어지게 된다. 흩어진 구름의 파편이라도 있는 지 젖은 것 같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귓가에 멀리서 없어져 버리는 것 같이 여러 가지 소리가 멍멍하게 들린다. 막 철문을 열고 옥상으로 걸어 나와 아무도 없는 텅빈 바닥을 보는 이이사가 보이고, 저기 하늘 저편에 날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길가의 많은 행인들이 보인다. 우리는 공기속을 미끄러지면서 하늘을 가로 질러 반대편 빌딩까지 날아 간다. 마치 천사들이 등 뒤를 밀어 주는 것처럼 우리는 기분 좋게 떠 다닌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 중에는 잠시 차를 길가에 세워 두고 우리를 올려다 보는 사람들도 있다. 힘 빠졌을 때 창바깥 저쪽을 내다보는 지쳐 있는 사무직 남녀들의 시선으로만 이어져 있던, 이 길가 이곳저곳 많은 빌딩의 15층에서 40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창가에 붙어서 우리를 쳐다 본다.

그녀와 나는 편안하게 공중을 지친다. 나는 빠르게 활공하는 속도 때문에 건너편 빌딩 유리창에 부딛히지는 않을까 겁을 내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속도를 조절하여 우리는 빌딩 유리창 바로 앞에 멈춘다. 그녀는 빙글빙글 돌며 조금 더 올라가서 열 수 있는 창문이 있는 층까지 올라 간다. 우리는 그 창문 앞에 바짝 다가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바깥에서 유리창을 두드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리창에 가까이 붙여 두었던 회의실 원형 탁자 위로 사뿐히 걸어 들어 갔다.

그 날이 지나고 난 후에 나는 그녀와 다시 말을 해 볼 기회는 없었다. 두 달 쯤 뒤엔가, 지하철 역에서 멀리서 걸어 가던 그녀를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것이 전부다. 그때에도 그녀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데, 가까이 가서 분명히 알아 보려고 했을 때, 그녀는 어디인가로 가 버려서 알 수가 없었다.


- 2012년, 등촌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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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No Profile
    쑤우 12.04.28 21:06 댓글 수정 삭제
    박새별 양의 우린 날 수 있어요 랑
    이한철 씨의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
    마지막 부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어떤 진실이 있었는지 궁금하구요~
  • No Profile
    곽재식 12.04.29 10:20 댓글 수정 삭제
    결말 부분은 위에 씌여 있는 이야기와는 달리 다음 네가지 정도를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애매해 보이려고 해본 것입니다.

    첫째로 여자주인공은 날수 없었고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붙잡아 끌어서 난간에서 내려오게 했다.

    둘째로 여자주인공이 뛰어내렸고 추락했다

    셋째로 여자주인공이 스스로 마음을 돌려서 내려왔다

    넷째로 여자주인공이 나는데 성공했는데 그 후에 두번다시 못 만난 이야기가 아니라계속 알고 지냈다거나 여자주인공이 유명인사가 되었다
  • No Profile
    쑤우 12.04.29 13:27 댓글 수정 삭제
    아~ 그런 식으로 열린 결말이었군요.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라 어떻게 된걸까 궁금하기만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이 안 났는데
    친절한 코멘터리 감사합니다 :)
  • No Profile
    곽재식 12.04.30 18:01 댓글 수정 삭제
    돌아보니 열린 결말의 여운이나 아련함을 잘 보여주는 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나오는 "뒷부분은 실제와 다르게 바꿨다" 라는 소개 부분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야기해서, 뒷부분의 하늘을 나는 장면 부터는 실제와는 오히려 정반대의 서글픈 공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히는 식으로 해볼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또 오히려 그쪽으로만 너무 몰려 보일까봐 지금 정도로 해 두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 자연스러운 수법으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열린 결말의 다른 가능성이 눈에 띄어 보이도록 꾸몄다면 좋았겠다 싶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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