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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두산이 터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달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달리다가 숨이 차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었다. 아침에 시간을 내어 강변을 따라 달렸는데, 생각과는 달리 몇 발짝 옮기지도 못해서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출장 오는 짐 속에 굳이 운동화까지 한 켤레 챙겨 넣었는데, 운동화가 가방 속에서 차지한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만큼 뛰기가 힘들었다. 대학교 다닐 때 그녀와 같이 마라톤 도전 모임에 나갔던 생각만하고, 한 번 마음 잡고 경치 좋은 곳에서 상쾌하게 뛰면 그 때 그녀와 함께 뛰었던 것처럼 잘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만만해 했는데, 심장이 오그라든건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생각했던 것의 반의 반만큼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강변에 있는 나무 의자에 거의 반쯤 눕듯이 힘이 빠져 앉아서 나는 정신 없이 숨을 쉬었다. 정말 이렇단 말인가.


같이 출장 온 남박사가,


"꼭 출장와서까지 그렇게 운동하고 할 필요가 있어? 갑자기 운동한다고 해도 잘 되지도 않아."


하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그래도 운동하기로 결심했으면 하루도 건너 뛰면 안되지 않겠냐고, 다른 건 몰라도 뛰는 건 잘 할 수 있다고, 대학교 다닐 때 마라톤 도전 그런 것도 했었다고, 억지로 웃긴 이야기라도 하는 척 말했다.


나보다 3년 먼저 회사에 들어온 남박사는 "그래도 내가 세상을 살아도 며칠을 더 살았고, 그래도 내가 별 대단한 건 아니라도 먼저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게 있잖아"로 말을 꺼내기 시작해서, 별별 잡다한 아무 의미도 없는 사소한 것들을, 인간성, 인생관, 인간의 본성, 예절의 사회적 의미, 동서 문화의 대립과 같은 주제로 승화시키는 "조언"을 해주곤 하는 사람이었다. 남박사는 "작고 사소한 걸 내가 굳이 지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사소한 작은 게 정말 중요한 거거든"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맞거나 말거나, 그런 이야기로 남을 괴롭히는 것은 사소한 게 아니라 큰 잘못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기에, 남박사는 출장지에서 아침을 같이 먹지 않고, 또한 같이 나란히 지하철을 타고 회의 장소로 출발하지도 않는 것은 마치 큰 죄악처럼 여기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때 남박사는 "야, 그건 좀 어이없네"라고 꼭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어이 없다"는 남박사의 입에 붙은 말버릇이었다. 남박사는 좋건 싫건 즐겁건 괴롭건 하여간 일반적인 평균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일단 "어이 없네"라는 말을 꺼내고 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 있었다. 남박사는 걸핏하면, "진짜 정말 어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평소 남박사의 말대로라면, 이 사람의 인생에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그 문제의 "어이"라는 것이, 거의 있을 때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박사가 "어이 없다"고 말할 때 마다 정말 어이라는 것이 없다면, 남박사에게는 어이가 없는 것이 기본 상태이고 어이가 있을 때 마다, "음, 오늘은 어이가 살짝 있네"라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남박사의 "어이"를 최대한 붙들어 놓을 수 있도록, 요리조리 말투와 단어를 골라 외발 자전거를 타는 듯이 남박사에게 고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 아침에 일찍 혼자 나가서 아침 운동 좀 하고 바로 회의 장소로 가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는 그 과정에서, 큰 용기와 상당 시간의 갈등과 아량을 베풀어 달라는 비굴한 웃음까지 곁들여 아뢰어야 했다.


숨이 좀 가라앉고 나니, 눈 앞의 경치가 들어 왔다.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들이었지만 크고 울창하게 자라서 먼 곳의 숲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늑한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강을 따라 뻗은 오솔길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이 나무들은 동네 가로수 같은 친근함도 있었고, 아마존 정글 같은 신비함도 같이 갖고 있었다. 길을 따라 같이 흐르는 포토맥 강은 꽤나 넓었는데, 그렇게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주변에 고수부지나 둑이 없이 바로 발을 딛는 옆까지 강물이 들어와 찰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자연재해나 재해복구 같은 것에 대해서 아무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이 살고 있었지만, 그걸 보자니, 익숙한 한강 공원의 풍경이 생각나면서, 나는 괜히 "여기는 강물이 이렇게 길 바로 옆까지 들어와 있으면 비 한 번 많이 오면 끝장이겠네" 하고 생각해 보았다.


자리에 앉아서 숨을 몰아 쉬며 나는 귀에 꽂고 있는 음악을 바꿔 보려고 했다. 이어폰도 좀 고쳐 꽂았다. 대학교 다닐 때 그녀와 함께 뛸 때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뛰는 게 그렇게 자연스러웠는데, 오늘은 그보다 훨씬 헐렁하게 반쯤은 걷듯이 뛰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귀에서 이어폰이 자꾸 흘러내려 빠질 것만 같았다. 이어폰이 연결된 음악이 나오고 있는 전화를 켜보니, 전화 화면에 항상 나와 있던 표시가 유난히 눈에 들어 왔다. 달력에 빨간 표시가 있는 모양이 있었고, 그 날은 바로 다음주 토요일이었다. 바로 그녀와 나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 운동 잘 돼가고 있어? 난 벌써 1KG 뺐음!!


그녀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녀는 결혼식 때는 온갖 안만나던 친구들과 먼 친척들까지 다 찾아 올 거니까 좋은 모습 보여야 한다면서 살 좀 빼자고 했다. 그리고나서 그녀와 나는 벼락치기 식이요법에 결코 전문가는 권하지 않을 강도의 미치광이 같은 막운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미국에 출장을 와서도 아침에는 뛰는 걸 빠뜨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였다. 엊그제까지 아침 저녁으로 동네에서 요가를 하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에는, 보람차고 뭔가 착착 진행되는 느낌도 있었다. 그랬기에, 과감하게 출장 와서도 끊기지 않고 운동을 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생각보다 힘들어 고생중" 하고 답을 보내려다가, 전화 화면 한 켠에 나온 뉴스 속보 표시를 보았다. "백두산 분화". 속보인지 깜빡거리고 있었다.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계속 나오고 있어서,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작년부터, 백두산 분화에 대비해서 남북한 협력 계획이 전폭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극적인 남북화합이니, 몇십년만의 남북간의 민간 육로 여행 개시니 뭐니 어쩌니하면서 정치인들이 엄청나게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들은 북한에게 또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느니, 진행 과정에서 남북 협력을 업적으로 선전하는데만 급급해서 대통령이 바보짓을 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싸우기도했다. 그래서 한 반년간 TV 뉴스며, 라디오 뉴스며, 야구, 축구, 스케이트, 컴퓨터 게임 등등 별별 취미와 관련된 인터넷 게시판에서 온통 나라를 위해 열띤 목소리로 백두산 분화 대비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의견을 울부짖는 사람들이 워낙에 펄펄 들끓어서 백두산 분화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백두산이 5월. 봄에 생각보다 이르게 갑자기 분화해 버렸다는 소식이었다.


백두산이 불을 뿜어내는 사진과 영상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신기한 모습에 잠깐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곧 남박사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남박사와 만나기로 한 곳은 조지 워싱턴이 살아 생전 머물렀다는 포토맥 강가의 저택이었고, 거기까지 가려면 뛰어서는 아직 한 삼십분은 더 가야 했다. 미적거리다가는 도저히 제 시간에 그곳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 회의가 지겨워 질 때 즈음해서 뉴스는 틈틈히 살펴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 장소인 강변의 저택을 향했다.


조지 워싱턴이 살아 생전 머물렀다는 그 유서 깊은 저택은 모양도 별로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그렇다고 무슨 궁전과 같이 꾸며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냥 좀 커다란 헛간 처럼 생겨 보였다.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현대 이전의 역사와 관련된 가장 그럴듯한 유적지인 이곳이 고작 그냥 헛간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에 아늑하게 상당한 농지와 함께 자리잡고 있는 이 커다란 헛간 같은 건물 - 딸려 있는 농지에는 진짜 헛간도 있다 - 을 보았을 때, 건물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당혹과 실망을 무척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저택 앞에 지어져 있는 박물관 자료보존 연구관 건물에 허겁지겁 들어섰을 때, 건물 유리문 앞에서 먼저 와 있던 남박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정말 살기 좋고 이뻐서 정말 한국 돌아가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야, 우리 땡잡았어. 백두산 터진 거 들었지? 화산에서 쏟아진 화산재가 하늘에 다 퍼져 뒤덮혀서 그래서 그것 때문에 비행기가 못뜬데. 우리 여기서 한 2주일 땡땡이 치고 놀다가 돌아 가야 겠다."


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보지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임에 분명했다. 그녀도 바로 내가 놀란 그 이유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 때문에 화산재가 안개처럼 온통 하늘에 퍼졌고, 그래서 비행기가 닿지 못하고, 그 탓에 미국에 출장을 왔던 나는 내 결혼식에 못가게 된 것이다.



2.
내가 그녀와 통화를 하고 어두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이거 난감하네. 다음 토요일이면 결혼식인데" 하고 내가 혼잣말을 옆사람 들으라는 의도로 중얼 거리고 나서야, 남박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뭐? 정말? 그게 날짜가 그렇게 돼? 야, 이거 어떡해?" 하고 장단을 맞춰주는 말을 하였다. 장단을 맞춘다고는 했지만 남박사의 박자는 엇박자요 화음은 불협화음이었다. 나에게 이 일은 진심으로 걱정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박사는 뭔 술먹기 게임하다가 벌칙에 걸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듯한 재미난 일도 다 있다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전화 너머로 그녀는 그렇게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아-.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어.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 넘어가면, 또 하나가 이렇고. 또 하나 겨우겨우 넘어가면 또 하나가 이렇고."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다 말을 멈추고 말없이 울었다.


"아냐, 뭘, 왜그래. 괜찮아. 갈 수 있어. 원래 내일 모레 돌아가기로 했으니까, 좀 늦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간에 한 사나흘 늦어져도, 결혼식 전에는 갈 수 있을거야. 걱정마 괜찮아. 괜찮아. 갈 수 있을 거라니까."


나는 걱정말라고 그녀를 달래 보았다. 나는 문득 몇 달 전부터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런 대화를 무척 자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렇게 그녀가 울고 내가 달래는 대화들은 좀 참신하지 못하고 반복이 지겹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말로는 그녀의 말이 아니라고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나가 제대로 쉽게 풀리는 일이 없던 결혼 준비였는데, 막판에 아주 화끈하게 이게 뭐란 말인가. 나도 그런 생각이 확확 넘치게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전화 속의 그녀에게,


"괜찮아. 어... 내가 예전에... 음, 어... 태풍이나 그런 거 때문에 비행기 연착되어서 계획 바뀌고 그래서 난리 많이 쳐 봤는데,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결혼식 전에는 충분히 갈 수 있어. 괜찮아."
"어떻게? 내가 항공사에도 전화 해 봤고, 공항은... 공항에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아예 전화도 안되더라고. 그래서 공항 홈페이지에도 가 봤는데, 앞으로 2주 동안은 절대 비행기가 착륙도 못하고 이륙도 못한데. 인천공항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나라 다 마찬가지래. 일본까지 그렇다는데."
"분명히 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면, 그래도, 야."


내가 머뭇머뭇하고 있으니, 전화 저편의 그녀는 다시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즈음해서 그녀를 달래 줄 좋은 말을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뭐 딱히 새로운 대사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를 달래기 위해 심리적, 문학적, 경제적, 윤리적 별별 방식으로 치장된 갖가지 말을 만들어 그녀를 수백번씩 위로해 왔기에, 이제 더이상 뭐 떠오를 말이 바닥이 나서, 그녀를 달랠 말이라고는 아무것도 생각 나지가 않았다.


그 고생을 하면서 결혼식이 이제 바로 눈앞까지 왔는데, 갑자기 산이, 그것도 한반도에서 제일 큰 산이 갑자기 뻥 터져서 신랑이 못오게 되어서 작파날 판이라고? 그녀가 정말로 가엾고, 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나는 가슴이 막막해지는데, 나도 이제 더이상 뭐라고 어떻게해야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별 똑똑한 묘수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해 줄 좋은 말을 초조하게 이리저리 궁리하며 말없이 전화만 붙잡고 있어야 했고, 그러는 동안 그녀가 우는 소리는 계속 들려 왔다. 그것은 슬프게 우수가 퍼져 나오도록 우는 것도 아니고, 애절하게 심금을 울리는 여자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저 점차 더 서럽고 불쌍해져서, 부모 잃은 아이가 낯선 길 바닥에 주저 앉아 어쩔 줄을 몰라 그저 울 수 밖에 없는 그런 소리와 같이 들렸다. 결국 아무 위로할 말을 못찾은 나는 그녀를 달래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나도 전화통을 붙잡고 같이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국제 진공 보존 협의회 회의가 열리던 워싱턴 D.C. 교외의 한 박물관 저택에 딸린 회의실 문 밖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내 좀 울자, 전화 저 편에서 그녀가 펑펑 울다가 말했다.


"왜, 너까지 울어?"
"몰라요. 한 번 눈물이 나오니까, 계속 울게 돼서요."


이상하게 정신 없이 울다보니 나는 대학교 친구이고 동갑내기인 그녀에게 왜인지 모르게 높임말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생각도 하기 전에 전화 저편의 그녀는 더욱더 소리를 높여 울기 시작했고, 이렇게하면 회의가 진행이 안 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우리는 그러고 있었다.


울 때 울 더라도, 나는 일단 진공 보존 방식의 국제 표준에 대해 정밀 진공 펌프를 쓰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해 놓고 울어야 했다.


진공 보존 학회는 끝이 "학회"인 까닭에, 원래 우리 회사에서 참가하는 사람이란, 출장을 핑계로 이런저런 해외 유람을 즐기려는 "윗선"의 중역들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회사에서 참여한 회사들이 중심이 되어 토론을 하며 회의를 이끌어가고 있으면, 구석에 엎어져 잠을 자거나, 현지 지사 주재원들을 가이드로 괴롭혀 관광 할 궁리만 하다가, 회의가 다 끝나고나면, "역시 아직은 우리나라 수준이 선진국 수준과는 너무 차이가 나서 회의에 가면 할 말이 없다"거나, "토론, 발표, 이런 건 자유롭게 교육이 이뤄진 서양 사람들이 잘 하지, 주입식 교육만 이뤄진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은 그냥 아무말 못하고 구경만 하는 거지"라거나 따위의 핑계로 보고를 대신하는 것이 예전의 진공 보존 학회 회의였다.


그런데 얼렁뚱땅 그렇게 한 몇 년 보내는 사이에, 국제 진공 보존 표준 규격이 우리 회사 정밀 진공 펌프는 팔지 못하는 쪽으로 굳어지기 시작했고,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는 "선진국의 횡포"니 "다국적 기업의 독점"이니 하면서 부산을 떨었고, 결국 그 결과 이게 사실 선진국의 횡포와는 아무 상관 없이 몇 년 동안 학회에 와서 엎어져 자다가 돌아 가던 중역들이 아무 관심 없이 아무 말도 안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드러났던 것이다. 남박사와 나는 이제 마지막 회의에서 그걸 한 번 뒤집어 보고자 급히 "윗선의 지시"로 파견된, 대강이라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진공 보존용 펌프 연구원이었다.


회사에는 아예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온 유학 출신 연구원들도 몇 있었는데, 펌프 분야가 아니라거나, 소속 부서가 "이 일을 알아서는 안되는 부서"라거나 하는 이유로 다 배제되고, 난데 없이 남박사와 내가 임무를 덮어 쓴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진공 보존용 펌프가 아니라 가압 강도 실헙용 펌프를 연구하고 있었기에, 문화재 보존이라든가 유기물 산화-부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부랴부랴 대학 1,2학년생들이 볼 법한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진공 보존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정도의 제목을 가진 책을 둘이 붙잡고 볼펜으로 밑줄을 밤새 여러번 쳐 본 뒤에, 대충 내용을 알았다고 치고, 워싱턴 D.C.로 날아온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인간 답게 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우리는 겨우겨우 회사가 진공 보존 펌프 사업을 다 말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남박사가 꼭 해야할 이야기와 내가 꼭 해야할 이야기 두 가지씩만 정해서 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니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 회의에서 할 말은 몇 마디 해야만 했다.


나는 울다말고, 진공 펌프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곳에 들어가서 벌겋게 된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 좋은 얼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진공 펌핑이 정확히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유럽쪽 회사들은 X선 분광계로 공기 중의 질소를 확인하는 방법을 썼는데, 이 방법을 쓰면 우리 제품은 규격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X선 분광계를 쓰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측정을 하자고 주장을 했는데, 이번 회의에서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뒤집기 제안"이었다.


"X선 분광계 측정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 제품도 X선 분광계로 확인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지금까지처럼 우리 제품은 X선 분광계가 안맞아서 안쓰는 제품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많이 써야 되는 제품으로 봐야 합니다."


여기서 나는 말하다 말고 다시 그녀 생각이 나서 다시 이상한 흐읍, 으흑, 끕끕 하는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을 참았다. 그리고,


"그래서 뒤집기 제안이라는 겁니다. 보통 펌프를 다 돌린 다음에 제대로 진공 펌핑이 이뤄졌나 보기 위해서 X선 분광계를 써서 확인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 제품은 펌프를 돌리면서 동시에 X선 분광계로 확인을 할 겁니다. 그래서 계속 확인을 하고 보면서 펌핑을 해서, X선 분광계로 계속 보면서 진공 펌핑이 잘 이뤄졌다고 결과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작동시키다가, 딱 맞는 결과가 나오면 그 때 멈출 겁니다.


그러면, 우리 제품도 지금 유럽쪽에서 이야기하는 X선 분광계 확인에 의한 국제 문화재 진공 보존 규격에 맞힐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라고 다시 말했다.


그렇게,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 정말로 울기는 했지만 겨자를 실제로 먹은 것은 아니었다. - 결혼을 못할까봐 울다가 중간에 잠시 멈추고 회의실로 돌아가서, 진공 펌프 규격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하고, 다시 회의실 밖에 나와 계속해서 울기를 몇 번 반복 했던 것이다.


회의가 계속 되고, 중간 중간에 커피를 마시며 쉬는 시간이 지나고, 회의가 마무리 지어지고, 영국 말투를 쓰고 가짜 18세기 옷을 입은 가이드가 안내를 하는 저택 돌아보기 관광 행사도 끝날 동안, 나는 계속 머리 한 켠으로는 "결혼식에 못가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라도 결혼식을 미루는 걸로 해 볼까. 어떻게 잘 찾아보면 토요일 전에 한국으로 갈 방법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전망 좋은 강변 언덕에서 파란 잔디가 잘 깔린 아래로 여유로운 들판에 흐르는 강을 내려다 볼 때에도, 이곳에서 내려다 볼 때 어디까지는 매릴랜드 주이고 어디까지는 버지니아 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할 때에도, 뭔지 알 수 없는 영어로 중얼거리는 농담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남들 따라 허허 웃는 척을 할 때에도, 계속해서 머리 한 쪽으로는 결혼식과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점심 식사를 할 때가 되어, 미국 독립전쟁 시절의 옷을 입은 종업원들이 음식을 파는 그곳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박사는 다른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가, 벌써 몇 번이고 써먹었던 "저희 회사 저희 팀에, 제가 남박사이고, 또 여박사라는 분이 계신데, 재밌는 게, 남씨 박사인 저는 여자고, 여씨 박사되시는 그 분은 또 남자이시거든요. 그런데, 한국말로 남박사란 말은 남자 박사라는 뜻으로도 들리고, 공교롭게도 여박사라는 말은 여자 박사라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어서, 반대로 뒤집혔어요." 하는 이름 농담을 늘어 놓았다. 남박사가 항상 새로 만난 사람을 만나면 재미난 이야기랍시고 꺼내는 말이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몇 번이나 반복했던 농담인지. 아마도 고려시대 말에 이 농담이 생겨나 정몽주가 들었다면 벌써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농담이 끝날 때 즈음하여, 나는 전화에 나오는 뉴스에서 눈에 뜨이는 소식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백두산 분화 대책 협력 기구가 활동을 잘 해서, 인명 피해도 없고, 재산 피해도 극히 작다는 이야기들 사이에, "[수대]"라는 말로 시작하는 제목이 있었다. 제목 앞에 다는 말에 분류를 위한 말을 대괄호로 표시하는 것은 1990년대 PC 통신 시절, "말머리"라는 이름으로 생긴 것이었지만, "수대"라는 말은 이번에 쓰이는 말이었다. "수송대책"을 줄인 말로, 화산재 때문에 비행기가 움직이지 못하자 정부가 내어 놓은 대책에 관한 기사들이 바로 "[수대]"로 시작하는 뉴스였다.


뉴스를 이리저리 뒤질 동안, 남박사는 시차적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시차적응 이야기는 해외출장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요점만 놓고 보면 사무실에서 꾸벅꾸벅 존다는 것이었는데, 그 멍청스러운 모습에 대해 말하면서 남박사는 몇 번이고 "시차"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마다 꼭 무슨 자신이 제임스 본드의 임무라도 수행하는 듯한 영광스러운 표정이 되어 "시차 적응"이라고 늠늠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모양이 나에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남박사가 뭐라고 하건 더 중요한 것이 내 전화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 분화를 대비해서 남북 협의로 준비해 두었던 경의선 특급 열차를 내일부터 운행한다는 소식이었다. 백두산이 분화해서 화산재 때문에 항공 교통이 마비될 때를 대비해서, 육로로 서울에서 북한 땅을 통과해서 중국 북경까지 고속 특급 열차를 운행한다는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이나, 급하게 외국을 오가야 하는 사람들이 화산재가 없는 중국 땅까지 열차를 타고 나아가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서둘러 계속 웹사이트를 찾아보면서 정말로 일반인들도 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인지, 얼마나 걸리는 것인지, 어디서 예약하고 신청하는지, 허겁지겁 찾아 보았다. 내가 전화에 나오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 특급 열차는 중국의 협조로 운행될 수 있어서, "둥베이 특급"이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알아낼 동안, 남박사는 점심을 다 먹고 디저트로 나온 사과 파이를 다 먹어 없앨 때 까지도, "세트 뢰액" 거렸다.


"여기는 무슨 미국 전통 관광지에서 옛날 옷입고 서빙하는데, 사람들은 다 왜 멕시코 애들, 남미 애들이니? 인테리어랑 음식은 완전 조지 워싱턴 풍인데, 까만 멕시코 애들이 다니니까 확 분위기 깬다 야."


남박사는 그곳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히스패닉 할아버지를 보고 그렇게 감상을 말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가자고 했다. 남박사는 이 저택을 떠나서, 링컨 기념관이니 백악관이니 하는 워싱턴 D.C. 시내를 관광하면서, 복잡한 머리나 식혀 보자고 했다.


우리가 링컨 기념관 근처에 왔다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쪽으로 갈 무렵, 나는, 그 근처에서 무선 인터넷이 잘잡히는 곳을 찾았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만, 제가 혹시나 결혼식에 맞춰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볼 수 있는지, 예매 웹사이트 좀 보려고 하거든요. 둥베이 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잘하면 한국에 갈 수도 있어 보여서요. 미국 지사에서 나오신 이과장님도 계시고 하시니까, 일단 저는 여기에서 좀 알아보고 나중에 연락드리고 합류할 테니까, 먼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시면 안되겠습니까?"


남박사는 링컨 기념관과 백악관 근처에서 나에게 이런저런 각도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다가 틈틈히 "야, 그런데 비행기표는 구했어? 돌아갈 수는 있데?" 하고 물어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시간 맞춰 한 번씩 지어주는 것이 좀 지루해진 듯도 하였다. 그러므로 남박사는 그러라고는 하고, 박물관들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방향을 향해 떠나갔다.


조금 더 무선 인터넷이 잘 찾는 곳을 찾아 가다가, 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 장소 사이의 아무것도 아닌 엉성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아예 뒤편 쪽이 더 신호는 잘 잡혔는데, 그곳에는 오래동안 끌어오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완전 철수 작전을 벌이면서, 철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작게나마 시위를 하고 있어서 자리에 머물기 쉽지 않았다. 무선 인터넷을 쓰려고 전화를 들고 검색하는 동안,


"석유만 쏙 빼먹으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쿠르드족의 자유를 위해 미군은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하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말 걸기" 기능으로 전화에 메시지를 띄웠다. 나는 수소송대책에 대해 검색하려고 전화에 손을 하나 살짝 대자마자 수백개의 "자유 쿠르드 만세!" "이라크에서 빠지는 것이 정의는 아니다" 어쩌고 하는 말이 새까맣게 화면을 덮는 어찌보면 징그러운 광경을 보고 피하고, 채이고, 숨고, 잠시 사람들 사이에 묻히기 위해, "레드 넥 만세!" 어쩌고 하는 미국 해병대 구호를 내가 같이 따라하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빠져나와 좀 소란이 적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둥베이 특급에 대해 알아 보았다. 열차 표는 있었다. 그렇다면, 북경이나 천진 정도까지만 갈 수 있다면, 거기서 기차로 갈아 타고 의주와 평양을 지나 서울로 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한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걸리겠지만, 결혼식까지는 넉넉히 남은 시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됐다. 갈 수 있다. 나는 기뻐서, "둥베이 특급도 있고 하니까 어떻게든 갈 수는 있을거야 걱정마 울지 말고!" 하고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비행기 표를 사려고 보니, 화산재가 넓게 퍼지는 바람에 천진에도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었고, 북경도 곧 착륙 불가능 지역이 될 것처럼 보였다. 중국에서도 하북성 정도까지는 넘어 가야 화산재가 없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서안이나 낙양까지 가는 비행편은 많지가 않다. 화산재 때문에 동아시아의 온갖 비행편이 마구 잡이로 몰아쳐 꼬이는 형편에 서안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표가 있을 때까지 한 며칠 기다릴 수는 있다. 그런데 서안은 한국에서 머니까 그만큼 기차 시간도 더 걸린다. 그러면 토요일까지 도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는 그녀에게 괜히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내가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럴 때에 갑자기 다시 또 결혼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나 더 크게 실망할 것인가. 후회스러웠다. 둥베이 특급을 타면 서울에 갈 수 있다는 걸 알자마자, 나도 너무 좋아서 그냥 희망이 생겼다 싶을 때 섣불리 보낸 것이었다. 중국까지만 가면 한국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중국까지 갈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나는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웹사이트를 찾아 보다가, 이걸론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항공사와 여행사에 전화를 해보기 시작했다. 영어로 미국 항공사에 전화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말을 잘 못해 상대편에서 답답해서 퉁명스럽게 짜증을 낼까봐 겁이 났고, 처음 몇 통 뭔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로 어렵고 어려운 긴긴 통화를 하고 난 결과가 아무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로 맺어 졌을 때는 힘이 빠져서, 그냥 안 되나보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울던 목소리를 생각하면 그냥 그럴 수는 없었다. 전화 한 통을 더하고, 이상한 영어로 중얼 중얼 하고, 또 전화 한 통을 더하고, 지나치게 유쾌한 미국 성우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는 ARS 번호 누르기 안내하는 소리가, 묘하게 나를 조롱하고 겁을 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닥치는대로 후벼파 보면 어떻게든 결론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A부터 Z까지 목록에 나오는 모든 여행사와 항공사에 차례로 전화를 계속 걸어 보기로 하고, 그 아무것도 아닌, 길도 아니고 공원도 아닌 엉성한 무선 인터넷 잘되는 위치에서, 오래오래 계속 통화를 해 보았다. 몇 통화, 몇 십 통화째가 지나면서 전화 통화로 물어 보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는 마음은 확확 줄어 들었다. 그러나 결론은 달리 없었다. 화산재에 북경과 천진이 마비되면서, 한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중국사람들, 중국에 오가야 하는 사람들까지 다들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난리 였고, 미국에서 좁은 서안 공항을 이용하는 모든 비행편은 이미 자리가 없이 꽉꽉 들어 찼다는 것이었다.


도쿄나 오사카는 이미 화산재 범위에 들어가서 공항을 쓸 수가 없었고, 일본으로 들어가는 방법 중에 표가 있는 것은 오키나와 쪽으로 가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가려면 거기서부터 배를 타고 가야 했다. 그렇게 하면 해남도 크루즈를 타고 가야하는데 그러면 아무리 빠른 일정으로 가도 토요일까지 가기는 불가능했다. 홍콩이나 대만으로 간다음에 배편으로 부산으로 가는 방법도 찾아 봤는데, 대만에서 배를 타고 가서 토요일 전에 도착하려면 군부대에서 허락을 얻어 해군의 긴급 쾌속 운항편을 타야 했는데, 이미 지원자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홍콩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긴급 운항편이 언제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 아직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다리 아프게 서서 아무리 찾고 또 찾고 끝도 없이 뒤져 봐도 "넌 방법이 없음" "넌 망했음" 하는 결과만 나에게 계속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점점 더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저물어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방법이 없는 절망감, 망한 느낌이 더 화끈히 밀려 왔다. 겁이 더럭 났다. 마틴 루터 킹 연설 장소 쪽에서 보니 한국전쟁 기념비에는 기이하게 장식된 묘한 조명과 불빛이 도깨비 불빛처럼 묘하게 색을 내뿜고 있었다. 다리가 휘청휘청 비틀거리는 그 막막한 느낌, 암담한 울고 싶은 생각 속에서도, 어째 그 불빛의 모양만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는 생각이 어울리지 않게 가슴에 착 가라 앉듯이 느껴졌다.


일단 공항으로 가서, 더는 방법이 없으니, 한 번 직접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알아보자.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그 때 그녀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하자. 그 전까지는 좀 더 알아보자, 조금만 더 찾아보자. 지금 그녀가 이제 우리 어떻게 하냐고, 정말 나는 잘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밖에 안된다고, 그렇게 울고 있는 그녀가, 다시 힘을 내어 "정말로 그러면 토요일날 올 수 있는거야?" 하고 기쁜 목소리로 물어 보고, 웃음기 있는 옛날 목소리로 "기다리고 있을 게 조심해서 와"하고 말할 수 있도록, 다시 무슨 방법이 없는 지 조금만 더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알아보자.


나는 남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이과장님과 저녁까지 드시라고 하고 나는 공항에 한 번 가보겠다고 말했다. 남박사는 "공적인 일과 자신의 사적인 일을 분리해서 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초"고 어쩌고 하는 "나한테 도움이 되는 말"을 또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냥 때려치우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빨리 마무리 짓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기나긴 길이로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 주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8천4백2십6번"이라고 씌여 있는 번호표를 받았다. 받은 번호표가 1번부터 나눠준 번호표는 아니기를 간절히 세계의 신들에게 기도하면서, 나는 일단 저녁부터 먹으며 잠깐 앉아서 다리도 쉬고, 정신도 한 번 가다듬어 보기로 했다.


공항 외곽으로 나와보니, 넓은 주차장 사이에 타코벨, 웬디스 같은 패스트 푸드점들이 몇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타코벨로 들어갔다. 두 개를 하나 값에 준다는 제일 싼 타코 하나를 시키는 그 헐렁한 행동을 하면서 멕시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를 애절하게 다시 또 생각했다. 나는 "타고 어메이징 더블 콤보"라는 메뉴 이름을 발음하다가 그녀 생각이 확 밀려와 또 울먹 거리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막 무진장 보고 싶었다.


그날 따라 타코도 늦게 나온다 싶었다. 나는 심심하고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눈을 풀고 타코 메뉴를 차곡 차곡 읽었다.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만에 하나 만에 하나 결혼식을 미루게 된다면 미룰 수는 있는건가. 청첩장 보낸대다가 다시 다 연락을 해야 되나. 예식장 예약을 1주일 후로 최대한 빨리 다시 잡아야 하나. 뭐부터 해야 하나. 아무리 봐도 시간 안에 갈 방법은 없을까. 정말 결혼식 날짜까지 이렇게 이상하게 밀리면 진짜 안되는데.


답이 없는 문제를 부질 없이 생각하다가, 일단 머리를 잠깐 비워 보자고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고개를 흔들면 머리 속에 알갱이처럼 굴러다니는 생각이란 것이 통통 튀어 빠지기라도 할 듯이.


타코벨 매장 안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타코벨 매장이 전 세계에 얼마나 급격하게 많이 퍼졌는지 선전하는 포스터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었다. 나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타코벨 매장을 표시한 것을 보았다. 처음에 내가 결혼할 여자의 부모님이 방글라데시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내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욕을 하지도 못하고 당황해 하시던 얼굴이 기억 났다. 어머니는 에둘러서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해야하는 거라느니, 전에 사귀던 은영이가 더 낫지 않냐느니 하는 이야기를 긴치 않게 가끔 꺼내곤 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그녀의 집안이 이슬람교 교인이라고 말했을 때, 이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뭐라고 욕을 했던 것도 뒤이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열성적인 편은 아니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대부터 교회에 나가던 집안이었는데, 아들놈 하나가 교회에 얼굴 안비치는 것도 좀 생각에 걸린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슬람교도와 결혼을 한다니. "뭘 어디에 홀렸지, 정신 차려, 이 놈아"라고 말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시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걸 다 넘어 섰는데, 그 바다와 산을 넘고, 그 사막을 돌파했는데. 이제 고작 며칠 앞두고 이게 뭐란 말인가.


나는 지구본 모양으로 되어 있는 타코벨 매장 표시해 놓은 것에서, 미국 워싱턴 D.C.와 태평양과 서울을 바라 보았다. 나는 백두산의 위치를 보고, 이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라는 태평양이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고,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불을 뿜고 있는 이 모양이 얼마나 골치 아픈 대책 없는 모양인지 다시 한 번 보며 답답해 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뒤집기 제안" 어쩌고 하는, 발표 자료가 탁자 위에 내팽겨쳐져 이썼다. 이 망할 것이 다 뭐라고. 왜 내가 결혼 몇 주일 앞두고선 급하게 출장을  와서는. 뒤집기 제안 때문에 괜히 워싱턴 D.C.에 왔다가 속도 뒤집히고, 결혼판도 다 뒤집힐 판이지 않나.


한 숨을 한 번 내쉬는데, 타코가 나왔다고 해서 나는 발표자료 끝트머리로 지구본을 심술궂게 빙글 홱 밀쳐서 팽팽 돌게 해 놓고는, 타코를 받으러 일어 섰다. 그런데, 그 때, 돌아가는 지구 모양을 보면서, 나는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구는 둥글지 않은가?



3.
공항에서 확인해 보니, 과연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간다고 하면, 보통 태평양 방향을 통과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반대로 대서양을 통과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쭉쭉 계속 가보자는 것이다. 어떤가? 그렇게 해서 일단 유럽쪽으로 가고, 유럽 쪽에서 중국 쪽으로 지구를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듣기처럼 그렇게 얼토당토 않은 방법이 아니다. 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유럽쪽을 갈 때에는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날아가서 미국땅 알래스카를 거쳐서 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미국에서 한국을 갈 때 유럽쪽으로 가서 동쪽으로 지구를 반대로 돌아서 가는 것도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콜럼버스의 발상. 애꿎게 먹지도 못하게 계란 깨는 것 말고, 배타고 지구 반대쪽으로 가 본다던 콜럼버스의 메인 아이디어. 바로 그것이었다. 해볼만한 짓 아니겠는가. 비행편을 알아보니 유럽으로 가는 비행편은 널려 있었고, 유럽에서 중국쪽으로 가는 편은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가는 표가 싸그리 검색조차 되지 않는 것보다는 상황이 좋아 보였다. 좀 찾아보니, 터키 이스탄불까지만 가면, 이스탄불에서 중국 하북성 석가장으로 가는 임시 비행편에 자리가 좀 있어 보였다. 저걸 타면 어떤가? 그러니까, 우선 워싱턴 D.C.에서 영국 런던까지 가고, 영국 런던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석가장까지가면, 석가장에서 고속 특급으로 북경까지 가서는 거기서 둥베이 특급으로 의주, 평양을 지나 서울까지 가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목요일에는 도착할 수 있다. 충분하다. 가능하다. 길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막상 해보려니 망설여졌다. 일단 돈이 원래 비행기 값의 두 배에서 세 배는 들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은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런 황당한 방법을 써서 정말로 일이 될 지 어떨 지 겁이 났다. 괜히 억지로 억지로 안되는 일을 비틀어 벌이려고 하는 것 아닐까. 순리대로, 그냥 토요일날 못간다고 결혼식을 미루자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혼란과 비장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타코를 한 입 베어 물고 있으니, 그녀와 함께 청계천에 들어선 "세계 음식 축제" 어쩌고하는 제목의 볼품 없는 노점에서 사 먹은 타코 맛이 생각이 났다. 그때가 한참 집에서 방글라데시 출신이 어쩌니 이슬람교도가 어쩌니 할 때인데, 타코 먹고 나서 광화문 쪽으로 길 가다가, 갑자기 난데 없이 그녀가 갑자기 훌쩍거린 적이 있었다.


"왜 그래?"


서울 시장들이 취임초에 벌이는 얼토당토 않은 홍보성 행사 때문에, 급히 동원된 타코 장수라서 사먹은 타코 맛은 구두에 밟힌 만두에 과카몰 소스를 엎질러 놓은 맛이었지만, 그래도 타코 맛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자극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금희 선배가 그러는데, 결혼이나 출산이나 이런 큰 계획일 수록 너무 안 되는 일을 이렇게 억지로 억지로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힘들다고 힘들다고 그러더라고. 그게 힘들게 힘들게 억지로 억지로 넘어 왔다고 해도, 그게 계속 걸려서 가면 갈 수록 힘들어진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남들은 쉽게쉽게 넘어가는 일에, 나만 어렵게 넘어가면, 그게 참 피곤해지고 또 다른 일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모든 일은 다 순리대로 순리대로 중요한 일일 수록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광화문 앞의 높게 자란 가로수 앞을 걷던 날씨 좋은 낮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울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타코 씹는 동안, 계속 결혼해서 애낳고 살거라고 무리해서 대출 받아서 산 집이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 이자는 올라갈 것 같아서, 이거 돈을 어떻게 막아야 할 지 답이 안나오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이고 애인이고 다들 소리치고 울고 이게 다 왜이러나 하는 생각이 몰려 왔다. 옆에서 그런 말을 하니까 갑자기 나는 뭔가가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 열이 끓어 올랐다.


나는 화가 난 김에 그녀를 보면서,


"야, 뭐, 그래서 어쩌자고."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려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콧물을 흘리면서 우는 그 모습이 참 불쌍하기도 하고, 어째 좀 우습고 귀엽기도 해서, 그런 말을 못하고, 대신에,


"너, 혹시 결혼 앞두고 양다리 걸치고 있던거 정리하려고 그러는거 아냐? 나는 너하고 결혼해서 재미나게 살 생각하느라 바쁜데, 야, 넌 참."


하고 농담도 못되는 이상한 말로, 말에 담긴 뜻이라고는, "지금 네가 한 말은 농담으로 넘기고 싶다는 의사 표현" 밖에 안 되는 소리나 낼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말을 이어서 뭐라고 하려다가 말을 못하고 또 울었다. 영화로 찍었다면 상당히 슬프고 그럴싸한 장면이 나올 날씨 좋은 오후였만, 실제로는 길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지나가서 조금도 멋있지는 않았다.


"너 원래 되게 시원시원하게 뭐든 잘하고, 다른 사람이 비실비실하면 항상 절대 안흔들리는 믿음직한 기둥처럼 이렇게 잘 서 있어서 그래서 멋있는 게 매력 아니었어? 그런데 이렇게 맨날 울고 이러면 너 막 매력 죽죽 하락하는 거 아냐."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자, 그녀는 울음을 그치다가 마침내 살짝 웃으며 아직 코가 맹맹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믿음직한 기둥은, 웃기고 있네. 대학교 때 뒷모습 엉덩이 보고 반한 주제에."


그런 지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석가장으로 가는 비행편이 다 줄어 들어 몇 자리 남지 않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한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맞기는 맞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 한 번 굳게 확인하게 되는 진실이 있었다. 내가 대학교 때 그녀의 뒷모습 엉덩이를 보고 처음 그녀에게 빠져 든 것은 어김 없는 정확한 진실이었고, 또 한가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는 것이야 말로 순리이고, 결혼식에는 남편이 아내 옆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또한 순리라는 것은 정확한 진실이지 않은가.


3분 후, 나는 남박사에게 내 남은 일정을 전화로 이야기해 주었고, 신용카드가 산산히 부서져, 그 좋은 5월 봄날의 꽃가루처럼 흩날리도록 긁어 어마어마한 금액의 표를 산 상태였다. 이제, 나는 내 아내에게 돌아 가기 위해, 세계를 한 바퀴 돌아 가려는 것이다.



4.
워싱턴 D.C.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편은 저녁 비행기였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한숨 자는 게 좋을 것라고 생각했다. 비행기 안에서 평소 나는 무척 잠을 잘 자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도통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기내 인터넷 회선을 통해 이것저것 비행편에 대해 찾아 보다가, 중국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서 중국 비자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보았다. 아차 싶었다. 처음 둥베이 특급 기사를 보았을 때부터, 비자가 꼭 필요하다고 써 있었는데, 그걸 알아 보는 걸 깜빡 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이번에 중국-한국 사이에 다니는 둥베이 특급 탈 때 중국 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딱히 물어 볼 사람들이 없어서 나는 비행기 승무원에게 물어 봤는데, 내용이 복잡하기도 했거니와, 미국-영국간의 비행편이라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은 거의 없어서 승무원들이 알고 있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한국 분이 저희 팀에 아무도 없어서, 좀 오래 걸릴 텐데, 저희들이 여행 안내팀에 질의 넣어서, 답 오는 대로 손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기내에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다. 영국 비행기였으니, 분명히 한국 사람이 있다면 "영국식 발음은 특이한데 정말 어느 지역은 도가 지나치게 발음이 이상해서 알아듣기 힘들어", "Today를 발음하는데 말야..."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어디서인가 들려올 법도 한데, 그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기억해 보면, 둥베이 특급 이야기 처음 알아 볼 때, 간이 비자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야기이고, 영국 같은 제3국에서도 그 간이 비자를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가뜩이나 잠을 못자는 상황에서 더 잠이 달아 났다. 승무원이 답을 얻어올 때까지는 자고 있기도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비행기에 있는 개인용 화면에서 이런저런 영화나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언어별로 한 이백개쯤 되는 영화들이 끝도 없이 보였다. 그렇지만 전체 목록을 다 뒤져봐도 마땅히 볼 영화가 없었다. 재미가 없어 보인다든지, 재미는 있어 보이는데 싫어하는 배우가 나온다든지, 재미도 있고 싫어하는 배우도 안나오는데 두 번은 본 영화라든지. 수백개나 되는 목록을 두 번이나 훑었는데도 마땅히 볼 영화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고르는 동안 비자를 못 받으면 돈하고 시간만 날리게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영화 같은 것이 눈에 안들어 오는 것도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뭘 보나 고르는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났다. 그러고보면, 수백개씩 영화가 나열된 VOD는 거기서 무슨 영화를 골라서 보고 시간을 때우라는게 아니라, 왔다갔다 목록을 뒤지면서 시간을 때우라는 것이 진정한 목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더우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세계 항공사 공급률 1위라는 "글로벌 VOD"라는 제품이었는데, 대륙간 항공편에만 있다는 특선이랍시고 최신 동시 개봉작 영화 예고편이 걸핏하면 휙휙 튀어 나와서 사람 괴롭게 더욱더 시간을 끌고 있기도 했다. 예고편인즉, 제목부터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웨딩 코만도"라는 영화였는데, 테러리스트들이 결혼식장에 쳐들어와서 인질극을 벌이려 하는데, 공교롭게도 신랑 신부가 특수요원 부부였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관총을 갈기면서 싸워서 테러리스트와 예식장을 박살을 낸다는 내용이었다.


80년대 양리칭 나오는 홍콩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 여자 주인공이 웨딩드레스를 입은채 날아다니면서 기관총질을 하는 장면을 내세우는 게 예고편에 많이 나왔다. 한 여섯 번, 일곱 번을 반복해서 "웨딩 코만도"라는 제목의 예고편을 보다보니, 문득 지겨움을 넘어서서 묘하게 애정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내 결혼식은 테러리스트들도 없는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그녀 생각도 다시 많이 떠올랐다.


그러고 있자니, 승무원은 런던에서도 간이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는 유쾌한 답을 들고 와 주었다.


"봐라 되잖아."


나는 누군가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누구랑 다투고 있는 것처럼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난리를 쳐서 결혼한다고 이렇게 왔듯이, 이번에도 힘들것처럼 보이지만, 불리할 것 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꼭 날짜 맞춰서 갈 수 있을 거라니까.


그 때 즈음해서 마침내 영화도 하나 골랐다. 고른 영화는 "빽 투 더 퓨처 3"였다.


나는 원래 "빽 투 더 퓨처"는 1편이 진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빽 투 더 퓨처는 1이 재밌고, 2가 신기하고 멋있는 게 많이 나오는데..."
"맞아. 2편 끝날 때, 비오는 데 봉투 들고 갑자기 중절모 쓴 사람 나오는 거 진짜 멋있어."
"그런데 3편이 별로야."
"어. 아닌데."
"왜 2편이 1편 보다 더 재밌는게 맞나?"
"그게 아니라, 3편도 재밌어."
"에이, 아니지. 3편은 좀 별로지."
"아니라니까. 빽 투 더 퓨처, 1편 2편이 너무 재밌어서 3편이 좀 재미 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게 착각이라니까. 빽 투 더 퓨처 3편 만큼 재밌는 영화도 세상에 거의 없다니까."
"그건 좀 과장이 심하다. 너 빽 투 더 퓨처 빠 아니냐? 빽빠."
"야, 빽빠가 뭐야. 어감 진짜 이상하네.  3편도 진짜 마음을 비우고 그 영화 자체로만 보면 정말 재밌다니까."
"나는 옛날에 TV에서 어릴 때 빽 투 더 퓨처 1,2,3 연속으로 해 줄 때 죽 달아서 봤는데, 3편 보고 확 실망했는데."


예전에 나는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커피전문점 구석에 앉아서 전화에서 VOD로 불러서 빽 투 더 퓨처 3를 이어폰 한 짝씩 끼고 같이 본 적이 있었다. 그 날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정확히 애인이라는 관계가 된 시점을 정하기가 좀 애매하기는 한 데, 아마 그날부터, 우리는 서로 서로를 좀 중요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밀고 당기고, "왜 쟤가 갑자기 나와 저녁을 먹자고 하는 것일까?" "너무 할 일 없어 보이지 않게 이번 주 주말에는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을, 둘 다 멈춘 것도 바로 그 빽 투 더 퓨처 3를 본 날이었다.


"빽 투 더 퓨처 3편도 진짜 재밌어."


나는 대서양 어디인가를 날아가는 깊은 밤 비행기 안에서, 멀리 서울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향해 그렇게 애절하게 혼잣말했다. 88마일 속도를 얻기 위해 부산을 떠는 주인공들과 옛날 서부 영화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 흉내를 내며 재치를 부리는 마이클 J. 폭스. 옛날에 그녀와 함께 보던 것도 그대로 다시 생각 났다. 마이클 J. 폭스가 권총 결투 하는 앞에 서서 "사나이 답게 주먹으로 싸우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재밌어서 웃으며 좋아하면서 손뼉을 치며 즐거워 하던 모습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렇게 웃기지는 않았는데,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까, 흐뭇하다고 할까 뭐 그런 기분이 들고, 그녀도 참 더 귀엽고 예뻐 보이고 그랬다. 영화도 더 재밌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보러 다니던 영화들, 영화 볼 때 그녀가 손을 잡았던 때. 뭐 그런 생각만 계속 이어서 하다보니, 대서양은 지평선 저편으로 사라졌고, 나는 런던, 히드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밖으로 나서니 잠을 못자서 그런지 머리가 좀 띵했다. 화산재 이야기 처음 듣고 나서부터 울고불고, 날뛰고 돌아다니고 전화하고 했으니, 그 피로가 꾹꾹 눌러 담기듯이 몸에 쌓이는 느낌도 들었다. 느릿느릿 움직여 걸어 가 보니, 터키 이스탄불행 연결편은 출발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4시간 정도 더 시간이 밀렸다. 원래 4시간 간격이었으니, 8시간이 비게 되었다. 석가장행 비행편 시각을 보니, 전체 일정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여권에 도장을 받고, 낡고 좁고 어두운 지하 통로로 연결된 히드로 공항 터미널을 헤쳐서 피카딜리선 지하철역으로 갔다. 대사관에 가서 중국 비자를 받아야 했다.


피곤한 눈에 공항의 지하철 통로들은 괜히 더 낡고 더 어두워 보였다. 그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도 다들 나처럼 지쳐 보였다. 가끔씩 무리지어 다니는 여행객들이 서로 잡담을 하다가 웃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 웃음은 그 전체의 어둡고 피곤한 공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지하통로 형광등 불빛 사이에 할일 없어 잘게 씹어 놓은 빨대의 버려진 모양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깨끗한 새 차량 같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좁아 보이는 피카딜리선 지하철 자리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나는 졸기 시작했다. 머리가 더 아파올만큼 끝없이 지하철이 기어가서야 도심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나는 한국 대사관과 중국 대사관을 들러 간이 비자를 받았다. 지하철 시간이 생각했던 것 보다 꽤 오래 걸리기는 했는데,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여기 저기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이나 때우다가 공항으로 돌아가기로하고, 버킹검 궁전 앞을 거쳐서 하이드 파크를 지나 공원들을 걸어가 보았다. 한 공원에는 높고 곧게 자라난 가로수들이 흐릿하게 구름이 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가로수들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널찍한 큰 가운데 길을 사이에 두고 왠갖 관광객들이며, 어제 아침 나처럼 운동복차림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 오가고 있었다. 한국 사람도 있는지, "영국식 발음은 특이한데 정말 어느 지역은 도가 지나치게 발음이 이상해서 알아 듣기 힘들어", "Today를 발음하는데 말야..." 하는 이야기도 들려 왔다.


가로수 저편 한쪽 틈으로 멀리 국회의사당 시계탑, 빅벤의 시계가 보였다.


"시계 다시 맞춰야 겠네."


나는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 공원 가로수 그늘의 벤치에 잠깜 앉았다. 전화에는 미국 동부표준시와 서울 시각만 표시되고 있었기에, 나는 런던 시각도 추가하고, 빅벤의 시계와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았다. 시계를 한참 돌리고 있자니 얼마나 멀리 돌아왔는지 하는 생각이 새삼 다시 들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새삼 가로수 사이로 부는 봄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때마다 그 커다란 가로수 잎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흐린 날씨였지만 엷게 낀 구름 뒤로 햇빛은 강한지 나뭇잎 사이로 새는 햇빛이 반짝거리듯이 바뀌는 것 같아 보였다. 느긋하게 바람이 한번 왔다가 또 한번 사라질 때마다 그렇게 공원의 가로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냥 그녀와 같이 앉아서 별 일 없이 풀밭 위의 나무들이 바람 위에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남녀 쌍이 많았다. 손을 잡고 같이 걷다가 앞을 보고 걷는 남자의 옆얼굴을 보고 여자가 비뚤어지게 내려온 안경을 바로 잡아 주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열몇살 쯤 먹었을까 싶은 두 남녀학생도 있었다. 여학생이 개를 데리고 가고 있었는데, 개가 제 길로 가지 않고 뛰어다니자, 여학생이 무슨 재미난 말로 개를 다그치며 개에게 똑바로 가자고 했다. 남학생은 그런 학생을 지켜 보면서 보기 좋은지 얼빠진 녀석처럼 허허하고 웃었다. 그냥 저러고, 별것 없이 빈 풀밭에 선 나뭇잎 흔들리는 거나 가끔 보면서 살자고 결혼하려고 하는 건데, 참 쉽지 않았다.


뭐, 그게 그렇게 어려울 게 있는건가. 그냥 잠깐 이렇게 있어보자 하고, 한 딱 한시간 반쯤만 시간내면 되는거 아닌가. 하기야 풀밭 있고 나무 있는 동네를 골라 결혼하고 살 동네를 찾는 것부터가 보통 고난과 역경이 아니었다. 부인을 얻으려는 게 내 목적이었는데, 투자전문가, 금융전문가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었거니와, 누가 얼마씩 돈을 내어 집세를 어떤식으로 마련해야하는지 돈 쌓인 것 버는 것 닥닥 긁어 모으는 것도 골치 아팠고, 매 단계마다 그렇게 하는게 요즘 보통 일반적인 기준에 맞는건지 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마다 눈치 보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다.


최근에 결혼한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그나마 재작년에 결혼한 남박사에게 이야기를 꺼내서 한 번 무슨 말이든 한 마디 정보를 구해보면,


"그게 결혼하고 나서 계속 간다 너. 니가 아무리 아니다, 상관 없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외국계라고 하면 분명히 그런 시각이 있거든.


그러니까 꼭 그것만 갖고 무슨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잘 없겠지만, '저 남자는 왜 하고 많은 한국 여자들 놔두고 저런 여자와 결혼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나이 차이가 많나보다, 뭐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괜히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면, 니가 아무리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살다보면, 자꾸 그런 시선을 받다 보면, 이상하게,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부인이, 뭐랄까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부인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그런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 이게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한데, 부끄럽다고 하긴 사실 말이 좀 그렇고, 괜히 부인 부모쪽이 외국계라는 걸 말을 안하게 되고, 어지간하면 숨기고 넘어가고 싶고, 들키기 싫고 그런 마음이 들때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봐라. 그런데 그 때 집 마련할 때 여자 쪽에서 대 준게 남들 평균 보다 확 적다더라, 뭐 예단이 남들 평균 보다 없는 수준이었더라, 뭐 그런게 하나 있으면, 그런게 괜히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막 생각이 난다고. 그러면 손해 보는 느낌도 들고, 그러다보면 또 계속 싸우게 되고 막 그렇거든."
 
이런 이야기를 해 주니, 또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한 며칠 그런가 싶기도 하면서 더 뒤죽박죽 헷갈리기도 하고 엉망이었다.


멍하니 있다보니, 하이드 파크 쪽에서 뭐라고 정치인들 욕을 하는 영감님들과 학생들이 나타나 단상에 올라가 소리를 치며 연설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하필이면 내가 앉아 있는 쪽과 가까운 쪽이었기에, 시끄러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지 내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계 평등법" 어쩌고 하는 그 내용은 나는 전혀 모르는 사항이었지만, 꽤 열성적인 주제인지 모이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이윽고 근처 공원을 말을 타고 순찰하는 기마경찰이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순찰을 공연에 가깝게 하는 형태로 도는 경찰들이었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잘 관리된 좋은 말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었지만, 민감한 정치 사안을 두고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은 진지하게 지켜 보고 있었다.


"어으어!"


나는 갑작 뭔 귀신이라도 덥쳐 오나 싶은 이상한 느낌을 느껴, 놀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 났다. 보니, 내 뒤에서 다가온 말이 갑자기 얼굴을 갖다대고 내 팔에 머리를 비벼 대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느낌은 말 입에서 묻어나온 침이었다. 침이 흐르는데는 보통 "질질"이라는 부사를 쓰는데, 그 때 그 말은 "콸콸"이라는 부사가 어울릴 정도 였다. 열성적으로 아일랜드계 평등법에 대해 부르짖는 소리 가 울려퍼지는 와중에 그 기마 경찰의 말이 팔에다가 얼굴을 문질러 놀란 나에게, 경찰은


"이 녀석이 선생님을 좋아하나 보네요."


라면서 즐겁고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말도 안되는 웃는 표정을 보여주면서, 도망쳐 나왔다.


나는 공원 한쪽 구석에서 소시지를 구워 팔면서, 종이 상자안에 생선튀김도 파는 영감님에게 가서, 그 소시지로 끼니를 때우려고 했다. 마땅히 먹을 곳이 없어서, 그 영감님이 세워 놓은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먹고 있으니, 영감님은 예전에는 대영 박물관 쪽에서 이걸 장사를 했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는데, 뭐가 무슨 운 없는 사연이면서 또한 웃긴 사연이 있어 여기로 옮겨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영감님은 그러다가 일 때문에 왔는지 관광 때문에 왔는지 나에게 물어 봤고, 나는 비행기 시간에 틈이 남아서 시간 때우는 중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영감님은 그러자, 런던에 온 김에 본드 거리 버버리 매장에 가서 여자 친구나 부인에게 아무거나 하나 사주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거기 매장에서 이라크 철수 기념일 맞춰서 특별 할인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봄이나 초여름에 어울리는 스카프 비슷한 천 같은 것을 두르고 지나가는 국회의사당 여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도 저러고 다니면 엄청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영영 정확한 사연을 알 수 없는 소시지 파는 영감님 말대로 본드 거리로 가 보았다.


아쉽게도 본드 거리의 버버리 매장은 이라크 처루 기념일 특별 할인 행사를 파격적으로 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격표 숫자에 "파운드"대신 "달러" 단위를 붙여야 마땅한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왠갖 색깔의 스카프를 뒤적뒤적하다가 겨우겨우 하나 가격이 만만한 것으로 골랐다. 나는 그걸 들고 계산대로 가서 줄을 서 있었는데, 그 줄 서 있는 동안 이렇게 이상한 색깔로 살 거면 안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제자리에 두고 빈 손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에게 뭘 사줄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도중에 멈추니 아쉬웠다. 만약에 물건을 뭔가 사와서 그녀에게 주면, 그녀가,


"그렇게 고생해서 시간 맞춰 온다고 힘들었을텐데, 이런 건 또 무슨 시간에 이런 건 왜 사왔어."


라고 탓하는 말을 하겠지만 반대로 표정은 기뻐할 텐데, 그러면, 나는,


"시간이 없긴 왜 없어. 맨날 비행기 많이 갈아타고 그러니까 중간중간에 시간이 얼마나 지겹게 비던지. 잠깐 구경하면서 시간 보내다가 골랐지."


하고 여유롭게 대답할 대사까지 벌써부터 준비해 놓았는데. 아무것도 못사고 빈 손으로 가야 되다니.


나는 괜히 아쉽기도 하고 시간도 여전히나 많이 남았기에, 본드 거리를 따라 가면서 이런저런 의류, 잡화 매장을 하나 하나 다 뒤져 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말이 되는 가격에,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기란 참 힘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워낙에 이렇게 칙칙하게/우습게 생긴 걸 비싼 값에 사나 하는 마음이 드는 물건들만 왜 이렇게 많은지.


작은 거 하나 사는 것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또 갑자기 길거리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인 듯 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우산도 없는 나도 길을 같이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 이러냐, 왜 이렇게 일이 잘 안풀리냐 싶어, 나는 빗속에서 인상을 쓰며 헤매다가 도저히 더 젖으면 안된다 싶을 때가 되어 아무 가게로나 들어 가서 잠시 비를 피했다. 생각 보다 비는 많이 왔고, 결국 나는 그 가게에서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가장 막강한 비율로 할인을 한다는 - 그러나 최종 가격은 싱겁기만 한 - 그녀에게 줄 스카프를 하나 샀다. 해리포터 등장 인물이 그려진 기념품 비스무레한 것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읽어 본 적도 없고,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비오는 칙칙한 런던의 한 기념품 가게에 한참 서 있다 보니,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 났다. 그녀는 자기도 지금은 재미 없는 부분만 생각나기는 하는데, 어릴 때 해리포터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면서, 나에게 "해리포터의 재미"를 전파해 주려고 노력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 었지만, 그때 마침 그 생각이 났다. 그러는 중에, 영 마음에 안들지만 본드 거리도 다 끝나가고 있었고, 비가 그친 후에 더 뒤져본다고해도 더는 수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지하철을 탈 곳을 찾아 교차로 쪽으로 나아 가려는 데, 서점 몇이 붙어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꽤 큰 체인점형 서점과 소설책만 파는 작은 서점, 헌책도 같이 파는 서점, 서점 대여섯 곳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는데, 한 큰 서점 진열대에,


"20세기 말의 레트로-무비"


라는 80, 90년대 영화에 대해 자료와 화보를 잔뜩 실어 놓은 큰 책이 50% 할인 가격으로 나와 있었다. 표지에는 할리우드의 마이클 J. 폭스와 해리슨 포드와 홍콩의 성룡과 양리칭도 있었다. 양리칭은 비행기 안에서 봤던 "웨딩 코만도" 예고편의 배우처럼 웨딩드레스 차림의 비장한 표정으로 기관단총을 한 손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한 번 구경해 보고 가자 싶어서 서점에 잠시 들어가 보았다. "20세기 말의 레트로-무비"는 재밌어 보였지만, 이 마당에 싸들고 가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고, 가격도 50%로 할인했다고 해도 파운드화 환율을 생각해서 계산해보면 너무 비쌌다.


혹시 그녀가 좋아할만한 주제의 책이나, 비행기 타고 오가는 와중에 할 일 없을 때 읽을 잡지는 없을까 싶어 한 번 둘러 보고 나오려니, 할인 행사로 나온 고전 중에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눈에 들어 왔다.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80일만에 돈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 8일만에 도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결말에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 이건, 8일간의 세계 일주이건 두 사람 다 결혼하는 행복한 결말이 되어야 겠지.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자기 계발 - 처세술 서적이 잔뜩 있었다. 평소에는 관심 없는 분야였지만, 시간도 비었던 데다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건지, 이게 잘하는 짓인지, 나도 필리어스 포그처럼 아침마다 씻는 물 온도 조절을 소수점까지 정확히 하는게 이 난국을 돌파하는 묘수가 될 지 워낙에 답답한 마음에 한 번 그래 뭐라고 써 놨는지 구경이라도 해 보자 싶었다.


처음 눈에 뜨인 책은, "이기적으로 살아라" 였다. 무엇보다 제목을 잘 지어서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독일 사람이 쓴 이 분야 책의 고전이었는데, 이 서점에서는 아직도 제일 잘 팔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나쁜 남자가 성공한다"라는 책도 있었다. 그럴싸한 이야기이지 싶었다. 사람이란 자기는 착하고 남들은 나쁘다고 생각하기 마련 아닌가. 그러다보면, 주변 사람이 성공했을 때, 쟤는 나쁜데도 성공했다고 억울한 마음이 생겨서 마음 속에 새겨지기 쉽기 마련인데. 짠! 이 책은 그렇게 나쁘게 살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아,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


그러나, 그 바로 옆에는 "베풀지 않는 자는 패배자"라는 책이 있었고, 나란히 "작은 희생, 큰 승리"라는 책이 있었다. 순위를 보니 야비하고 치사하게 살라는 책만큼이나 잘 팔리는 책들이 바로 이 참고 살고 억울해도 묻어 두라는 책들이었다. 역시 말은 된다 싶었다. 사람이란 자기가 한 작은 선행이나 자기가 입은 고통을 크게 평가하기 마련 아닌가. 그러면 내가 왜 이렇게 부당한 나쁜 일을 당해야 하는 지 억울한 마음이 생겨서 마음 속에 새겨지기 쉽게 마련인데. 짠! 이 책은 그렇게 억울하게 있을 때 아무말 안하고 버티면 결국에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위로해 주고 달래 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그래, 내가 결국에는 잘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들겠지.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이런 도움 안되는 놈들. 나쁜 놈이 되란 말이냐 착한 놈이 되란 말이냐. 섞이고 혼란 스러운 이야기가 답답한 마음만 더 뒤죽박죽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바로 그 옆에 보니, 그 옆에 있는 책은 "젊은 그대여, 미쳐라!" 라는 제목 이었다. 웃기려고 일부러 책 진열을 이렇게 해 놓은 건지.


그 즈음 되니 공항으로 돌아갈 시각이 되어 있었다. 나는 지도를 보고 방향을 더듬더듬 찾아서 지하철 역으로 가서는 지하철을 탔다. 언젠가, 서점에서 들러서 그녀가 책을 사는 곳에 따라 갔다가 오는 길에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요즘 '긍정적 사고의 경이'라는 책이 그렇게 인기라며?"


그때는 내가 아직 그녀에게 청혼하기 전이었는데, 그녀의 그 말에 나는 심드렁하니,


"뭐, 광고 많이 하더라고. 저런 책이 왜 팔리는 건지."


하고 말을 하고 딴 생각을 했다. 딴 생각이란, 그녀를 집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고민하던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주택가에 생긴 이슬람교 사원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면서 소송을 걸었다는 뉴스를 보고, 어머니께서 "혐오시설이라는 말은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슬람교 사원 생기면 인도 동남아 사람들 계속 모일텐데 그러면 집값 떨어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라면서 맞장구를 쳐 준 것이었다. 일단 청혼을 하기 전에 적당한 핑계로 그녀와 함께 어머니랑 같이 식사라도 한 번 해보면서 일단 각오를 좀 하는 분위기를 잡아 봐야 하나 어째야 되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이다.


"야, 너 왜 내가 말하는 데 딴 생각해."


그녀가 지하철 안에서 다그쳐 물었다.


"아니, 뭐, 무슨 긍정적 사고가 딱히 무슨 경이로운 힘이 있겠냐?"
"왜, 그래도 긍정적 사고를 가지라는 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쓸데 없는 이야기지. 복권 번호를 고르는데, 꼭 될거야 꼭 될거야 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빌면서 찍은 번호하고, 안 될거야 안 될거야 하면서 망하라고 찍는 번호하고, 걸릴 확률에 차이가 나는 건 아니잖아."
"그거야 완전 그냥 찍기니까 그렇지."
"그러면, 주식 투자를 하는데, 이번엔 꼭 오를 거야 오를 거야 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빌면서 주식을 사면 오를 확률이 올라갈까? 그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하지도 않잖아?"
"오히려 그 반대로 이번에는 떨어질 거라고 치고 떨어지면 어떻게 할 지 대책을 세우지."
"그런데, 너네 회사에서도 그런다면서. 그나마 주식시장이 가장 이론상의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요소가 많다고."


그녀는 무슨 대기업 경제 연구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주택자금 모아 놓은 거 넣어 둘 때 돈 모으는 것에 대한 거의 강의에 가까운 일장연설을 해 준 바 있었다.


"그건 그렇기는 하네."
"그러니까 그렇잖아. 세상에 무슨 긍정적 사고가 좋은 결과를 빚고 삶을 좋게 하고 뭐 이런게 있겠어? 완전히 뒤집어 생각한거지. 좋은 일이 벌어질만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게 정상 아냐? 괜히 억지로 뒤집어서 망할 분위기에 울어야 마땅한 생각인데 억지로 억지로 긍정적인 척 하고 다니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이 망했을 때 충격감, 배반감은 더 커진다고. 그렇게 억지로 기분 좋은 척 하고 잘 될 거라고 잘 될 거라고 하다가 자꾸 안되면, 더 저주 받은 것 같고 더 슬프고 그렇다니까. 그러다가 정신병 걸리지."
"네가 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야."


그녀는 그렇게 웃으면서 말을 돌리려고 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말 나온 김에, 내가 생각해 본 것 중에 이런게 있어. 왜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아라.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라. 이런 게 유행하는 지 숨겨진 이유가 있는 거 같어."
"숨겨진 이유는 뭔데?"
"되게 부유하고, 아니면 되게 높은 자리에 있고, 이런 소위 성공한 사람, 사회 지도층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크게 거슬릴게 없이 살잖아.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명령을 하거나, 돈을 주면 주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한다고. 심부름 해달라면 심부름 시킬 사람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낸 사람 있으면 화도 낼 수 있고, 자기한테 높임말 쓰라면 높임말 쓸 거고, 격없이 대하라면 격없이 대할 거고. 세상 모든 일을 자기 돈 쓰고, 자기 권세를 써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딱 하나 마음 대로 못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 주변 사람들이 인상 쓰고 괴로워하는 건, 자기 마음대로 안 보고 살 수 없다고. 자유 민주 국가에서 자기가 힘들어서 힘든 표정 짓고, 괴로워서 징징거리는 데, 그걸 못하게 할 수는 없잖아. 예를 들어서, 내가 구청장이면, 구청 건물에 청소 상태를 바꾸는 거나, 어떤 부서에 몇 명을 배치해라 마라 이런 건 내마음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구청 직원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사는 지, 우는 표정을 짓고 사는 지, 이런 건 내 마음대로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거잖아.


그래서 이 놈들이 쓰는 수법이 이런 거라니까. 다른 사람들이 징징거리는 걸 보기 싫은데, 정말 힘든 사람 보고 "너 이제부터 즐거운 표정만 짓고 다녀" 이렇게 강제로 시킬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긍정적인 사고가 성공을 부른다" 어쩐다 해서, 그 징징거리는 사람들이 억지로 긍정적으로 웃는 표정을 자기한테 보여주도록 시키는 거지. 딴 사람들 인상쓰고 다니는 거 꼴 보기 싫으니까 이제 앞에서 밝은 얼굴만 하라고 강요하는 수법이라니까. 우리가 가진 마지막 우리의 자유, 부정적으로 괴로워할 자유마저 못 써먹게 하는 거. 그게 바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라 어쩌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권세 있는 사람들의 수법 아닌가?"


내가 지하철 안에서 그렇게 길게 어디다 대고 저주 하듯이 그렇게 주절주절 말을 하자, 그녀는, 꼭 지하철 안에서 자기 후배나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세상의 노련한 지혜를 알고 있다고 끝없이 길게 나불 대면서 설교를 하는 한심한 인간을 보는 표정을, 숨겨 놓는 표정을 하였다. 나는 내가 뭔소리를 한 건가 싶어 말 없이 있는데 그녀는,


"그런가?"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고나서 그녀는 나에게 덧붙여 말했다.


"그러면, 너는 나한테 완전히 푹 빠져 있으니까, 내가 너한테는 권세 있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너한테 바로 그 수법을 쓸 테니까, 너는 내 권세에 복종해서, 이제부터 나랑 있을 때는 항상 행복하고, 항상 긍정적이고, 항상 희망을 갖고 그래야 돼. 안 그러면 이 권세가 님께서도 마음이 안 좋을 테니까.


지하철이 히드로 공항에 다 도착할 때 즈음이 되어,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소식을 전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걱정마. 둥베이 특급 내일 탈 거고, 시간 맞춰서 중국에 갈 수 있어."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터미널로 가 보니, 왜인지 보안 검색대에 너무나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 오니 다 이렇지 싶어서, 한숨을 한 번 쉬고 그 뒤에 줄을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긴 줄이 줄어 들 줄을 몰랐다. 보안 검색을 진행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다.


"왜 이렇습니까?"
"테러 경고가 떠서 AAA급으로 검색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지나가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테러라니. 이스탄불은 테러하고는 거의 상관 없는 평화로운 관광도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이스탄불행 비행편을 두고 테러가 어쩌고 이야기를 하는 건지. 히드로 공항이라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왠갖 정치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인데, 시설은 아주 헐렁하게 낡았으니까. 제임스 본드 영화가 몇십편 동안 나오는 동안 권총, 자동차, 특수무기, 심지어 제임스 본드도 계속 바뀌었는데, 이 히드로 공항 시설은 1편때부터 이제까지 그대로 아닌가. 그래서 별 일 아닌 보안 검색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지 모를 일이었다.


멍 하니 줄에 서 있는 동안 시간은 잘도 지나갔다. 이제 곧 비행기가 출발할 시각이 다가오는 데도 나는 막막한 줄 한 가운데에 있었다. 몇 번씩이나, 이럴 줄 알았으면 쓸데 없이 서점이니 옷가게니 헤메지 말고 진작에 공항에 와서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이제는 도저히 더 시간이 지나면 안되겠다는 때가 되어,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이스탄불행 편에 지금 바로 타야 되는데. 여기에 있어서 이거 기다리다가는 통과를 못할 거 같거든요. 먼저 지나갈 수 없나요?"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상황이면 직원 동행해서 빨리 우선 통과하기도 하고 하는데, 오늘은 AAA 보안 검색이라서 안 되겠습니다. 지금 손님처럼 비행기도 못타고 밀려 있는 분들이 한 두명이 아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다"라는 말이 어떤 기분을 두고 쓰는 표현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저, 혹시 무슨 딴 방법 없겠습니까?"
"그냥, 지금 포기하시고 내일 비행기 타시면 어떻습니까?"
"제가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고 끝이 아니라, 거기서 다시 중국으로 가야 되는데, 중국으로 가는 비행편이 내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차라리 지금 포기하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포기하시면, 그래도 내일 비행편이라도 자리를 바로 알아 봐 드리고 숙소도 아마 항공사에서 구해드릴 겁니다. 나중에 비행기 못타서 돌아가시면 벌써 자리가 다 차서 그나마 안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마저 쌀쌀맞고 매정하면 더 속터지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그나마 진심으로 안됐다는 표정이기는 했다. 그러나 안됐다는 표정이 보안 검색을 해 주지는 못했다. 어째야 하나. 아까 시간을 확인한 지 채 2,3분이 안 흐른 것 같은데, 나는 초조한 마음에 다시 전화에 표시된 시각을 보았다. 역시 2,3분이 채 안흘렀는데, 그녀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신부가 부푼 가슴으로 신랑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에게 참 어울리지 않는 것, 보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애교 였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그게 전시 되고 있었다. 역시나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애교"스러운 대사 자체를 잘 꾸밀 줄을 모르는 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 문자 메시지를 읽고 이제껏 그녀와 주고 받은 다른 메시지도 괜히 몇 번 더 보았다.


시간은 무심히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내 앞 뒤에 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다시 고민해 보았다. 어째야 하나.


둘러보다 보니, 짐을 검색하는 X선 장비가 눈에 보였다. 짐은 자동으로 기계에 넣어 검색하고 있어서 거의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빨리 처리되고 있었다. 사람을 검색하는 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옷소매 구석구석 신발 구석 구석, 머리카락 사이 사이를 일일히 보안 검색대 요원들이 보고 있으니, 거기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 많은 사람들이 밀려 있는 것이었다.


나는 줄에서 빠져 나와 짐 검색하는 곳으로 갔다. 나는 내 짐에서 진공 펌프에 대한 "뒤집기 제안"을 설명하느라 가져 왔던 X선 계측기를 꺼냈다. 나는 계측기로 보안 검색대의 X선 장비를 측정해 봤다. 이 정도면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싸구려 건강검진용 X선 촬영 절반 정도의 방사선이었다.


"제가 지금 비행기 시간이 도저히 안돼서 그런데. 그냥 이 짐 검색하는데 제가 짐하고 같이 통째로 몸까지 같이 통과하면 어떨까요. 그냥 저를 짐이라고 치시고. 제가 여기로 통과할 테니까 기계로 바로 한 방에 검색하시죠?"
"뭐라고요?"
"내가 이 기계 속에 들어가서 통과하겠다니까요."


나는 팔 동작을 곁들여 설명했다. 직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한 자리 한 자리 높은 직위의 직원들이 다시 찾아 와 어떻게 해야 할 지 같이 의논하기 시작했다.


"저, 저 비행기 꼭 타야 되거든요. 이거 보세요."


나는 기계에 팔 한쪽을 집어 넣어 혈관과 뼈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면서 설득했다.


4분 후. 나는 런던에서 확보한 중국행 간이 비자와 해리포터 등장 인물이 그려진 스카프와 함께, 안락히 이스탄불 행 여객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한숨을 길게 쉬고, 자리에 있는 화면을 켜보니, "글로벌 VOD"에서 틀어주는 "웨딩 코만도" 예고편이 또다시 반갑게도 나오고 있었다.


 


5.
"그거 다 개소리예요!"


비행기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 자리 화면에 나오고 있는 공익 광고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무의미하게 이리저리 영화 목록을 뒤지다가 이제 서서히 졸음에 빠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그렇게 대뜸 말하길래 깜짝 놀랬다.


"예?"


지켜보니, 옆 자리에는 절묘한 향수 냄새를 듬뿍 풍기고 있는 한 40, 50즈음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골프 선수 이름을 따서 새로 나온 상표의 반팔 옷을 입고 있었는데, 풍채가 좋았는데다가 뭐가 즐거운지 싱글 거리고 웃고 있었다. 나는 개소리라는 단어와 저와 같은 웃음은 잘 연결되지 않아 잠시 어리둥절 해 있었다.


"그 광고 보세요. 하여간, 이 정부 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딱 그렇지. 뭐 광고라는게 어차피 술 광고에서 술 퍼먹으면 간 썩는다는 게 아니라 젊은 아가씨랑 멋지게 만날 수 있다는 거긴 하지만. 저건 진짜 개소리지."


옆자리에 앉은 사람 말을 듣고 화면을 보니, 화면에는 "아일랜드계 평등법"에 대한 홍보 내용이 나와 있었다. 대충 살펴 보니, 영국에서 아일랜드계 일부 계층이 부당한 차별을 받는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을 계승하기 위해서 평등법이 제정 되어서 아일랜드계 소외 계층이 부당한 일을 더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슬퍼 했다 기뻐 했다하는 광고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확확 바뀌는 표정이 지나쳐서 어째  정신 세뇌 작전에 대한 공포 영화 같은 맛이 있기는 했지만, 뭐, 공익 광고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광보 보는 사람들에게만 공익이 아니라, 광고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대충 만들고 제작비 건질 수 있는 공익스러운 광고가 아닌가 말이다.


별로 그렇게 개소리 같지는 않지 싶어 내가 되물었다.


"아일랜드계 평등법이 이상한가요?"
"평등법은 무슨 얼어죽을! 지옥에 가서 다 똑같이 불 태우면 잿더미나 평등할까. 저게 다 이번에 총리 된 놈이 인기 떨어지니까 하는 개수작인데. 이 보쇼.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 친구들 중에 아일랜드계들이 많은데. 저건 완전 사기라고. 차별을 막고 불평등한 사람을 평등하게 한다. 이건 좋지. 그런데, 왜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이 사람을 뽑아라 말아라, 정하게 하는건데. 이거 때문에 일자리를 얻을 사람이 못얻고 딴 사람이 실업자가 되거든."


나는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라서 다시 어리둥절해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어... 한국 사람인데요, 비행기는 미국에서 타고 왔고, 어... 그렇다고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은 아니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니, 그 사람이 말했다.


"난 영국에서 온 영국 사람입니다. 노팅검에서 왔습니다. 로빈후드 알아요?"
"예?"
"로빈후드, 셔우드 숲의 의적. 로빈후드 몰라요?"
"알죠."
"로빈후드가 바로 이 노팅검 근처에서 활약했다고 하거든요. 거기가 노팅검이죠."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은 아일랜드계 평등법 이라는 현재 시행 중인 영국 법률의 문제점에 대해서 줄줄이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나는 비행기 화면 중간중간에 나오는 광고에서 간만에 "웨딩 코만도" 예고편 말고 다른 게 나오길래, 좀 신기해서 그 아일랜드계 평등법이란 걸 잠깐 유심히 봤는데, 그 잠깐의 관심 덕분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열성적인 아일랜드계 평등법 해설을 듣게 되었다.


한참 흥에 올라 설명을 하다가, 내가 잠깐 관심을 보이니, 이 양반은 더욱더 기세가 오르는 지, 이윽고 스스로 질문도 하고 답도 해가며 긴긴 토론회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계 평등법의 최대 문제가 뭐냐면, 이게 이렇게 정치인들 선전용, 표 따기 용으로 법을 대충 만들어서 억지로 시행시키다 보니, 도리어 정말로 아일랜드계에도 피해가 되는 일이 크다는 거예요. 이거 아일랜드계 평등법 시행되면, 오히려 아일랜드계도 손해라니까. 그냥 엉뚱하게 이상하게 딱 그 법에 맞춰진 몇몇 특이한 사람만 공짜로 좀 먹는게 생기고, 나머지는 전부 다 손해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열성적인 그 사람의 이야기는 길게도 이어졌다. 어제만 해도 잠이 잘 오지 않아서 걱정이더니, 이제부터는 잠이 막막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양반에게 아일랜드계 평등법이 어찌 되건 말았건 간에, 그건 여기 사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이제 이곳을 떠나는 나는 잠을 좀 자겠다는 뜻으로,


"어휴,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중에 하품을 한 번 크게 하고는,


"어제도 비행기를 타느라 잠을 잘 못잤더니, 좀 피곤하고 졸립고 그러네요. 말씀 재밌게 하시고 배우는 것도 있는데, 갑자기 하품을 해서, 이것 참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며, 대화를 끊고 자려고 했다.


그러나 이 양반은,


"에이 피곤하면 졸릴 수도 있지."


하더니, 갑자기 지나가는 비행기 승무원에게,


"이보쇼. 여기 홍차 두 잔만 갖다 주쇼. 립톤 티백 하나 덜렁 던져주지 말고, 좀 진짜로 홍차 답게 우려낸 걸로."


하더니, 홍차를 두 잔 받아 오는 것이었다.


"이거 한 잔 마셔 보쇼. 잠이 싹 깰거요. 내가 여기 항공사만 계속 이용해서, 이제 마일리지도 많이 쌓였거든. 이번에 이스탄불 여행 가는 것도 마일리지로 가는 거지. 이게 골드 클래스 멤버가 되면 이게 좋아. 내 돈은 하나도 안들이고 순수하게 마일리지로만 갈 수 있거든. 골드 클래스가 안되면, 마일리지로 표를 사도 돈을 내야 된다고. 내가 왜 이 항공사만 이렇게 계속 골라 타면서 마일리지를 모으는 줄 아쇼? 뭐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 홍차 때문이예요. 그래, 뭐 별거 아닌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게 별 것 아닌거라도 여기 홍차가 딱 맛이 괜찮더라고."


나는 계속 떠들어대는 옆자리 양반의 흥취에 엮여 엉겁결에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런던에서 이스탄불에 오는 내내 이 양반과 대화를 하며 오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양반이 말을 하고 내가 들으면서 오게 되었다. "엄밀히 말한다"라는 말에 걸맞게 좀 더 엄밀하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이 옆자리 양반이 어떤 형태의 독특한 공연을 펼치고 나는 그것을 좀 재미없고 지루한 태도로 감상을 하며 온 형국에 가까웠다. 등장인물이 한 사람만 등장하는 연극이 1인극이라고 하면, 이렇게 관객이 한 사람만 있는 공연은 "1객극"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나. 뭐 그런 헛생각을 하며 버텨 보았지만, 이 사람은 무슨 특수한 동물의 힘을 심어 준다는 옥수수 과자라도 매일 먹는지, 어디서 그렇게 기운이 솟아나 쉴새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줄 아는지 몰랐다.


"결혼 안 했어요?"
"어... 예, 아니 아뇨. 그러니까 아니오, 결혼 안 했어요. 아직은."
"그러면, 내가 지금 결혼에 대해서 내가 인생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조언을 할 테니까 가슴에 잘 새겨 두쇼."
"예?"
"결혼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지켜야 할 사항이 뭐냐면,"
"예?"
"뭐겠소?"
"예?"
"결혼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지켜야 할 사항."
"예?"
"뭐겠냐니까. 맞춰 보쇼."
"모르겠는데요."
"바로, 하지 말라는 거요."


나는 비슷한 형식의 농담을 많이 들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다른 데서 들어 봤을까 예를 떠올리려고 해 봤지만, 잘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옆자리 양반은 자신의 이 농담에 대해 유쾌하게 한 번 웃고는 -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있어서, 나도 따라서 웃음이 나왔다 - 요청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해설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 인생은 끝이예요. 아니, 진짜 말그대로, 말 뜻 그대로 그냥 끝이예요. 결혼을 하면 인생에 더 이상 남은 단계는 없는 거예요. 굳이 따지자면 죽는 단계나 남았을까. 끝인 거예요."
"그건 좀 너무 심하네요."
"아뇨. 심각하게. 심각하게. 장난 치는게 아니예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냐고요."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좋소. 괜찮소.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그건 하여간 결혼을 하면 끝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뭘 하겠다, 뭘 해보겠다 생각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았을 거 아녜요? 뭐 뜻대로 될 때도 있고 제대로 안 될 때도 있지만 하여간 그걸 하려고 인생을 살았을 거 아녜요? 그리고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고 보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이건 별로 안 중요하다고 희생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결혼을 하면 그게 끝나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뭘 하고 싶다, 뭘 중요하다 이런게 일단 없어지는 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될까. 자식을 키우려면 뭐부터 해야 될까. 부부가 추한 꼴 안당하고 늙도록 버티려면 뭐 부터 해야 할까. 거기에 휘둘려서 살게 되는거요. 그러니까, 당신이 사는 당신 삶이 없어지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거, 어쩔 수 없이 안하면 안되는거에 치이면서 거기에 쫓기면서 사는 게 되는거요. 자기 삶이 없어지는 거요. 인생이 말 그대로 끝나는 거라니까.


막말로 말해서, 직장에서 도저히 견디지 못할만큼 짜증나는 상황이 되었다고 쳐요. 이건 일도 개판이고,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는데, 옆에서는 또 막 뭐라 그래. 화가 뻗치지. 말도 안된다 싶지. 확 때려치워? 암 때려치워야 마땅해. 때려치워야 돼. 그런데, 한 가지. 만약 결혼을 했으면 못 때려 치우는 거요. 마누라한테, '나 오늘 일 관뒀어' 그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일단 그 순간에 확 못 때려 치우는 거요. 자식 새끼까지 생기면 뭐 그런 생각도 한 번 못하게 되는 거지 뭐.


좀 와닿는 예로 말이예요."


그렇게 말하고, 이 양반은 전혀 와닿지 않는 자기 조카라든가, 아는 친구라든가, 처남이라든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 주기 시작했다. 길기도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는 "그런데 제가 토요일에 결혼하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이 주제를 끊고 싶기도 했는데, 워낙에 이야기가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잠깐 말할 순간을 놓쳐 버렸다. 한 번 말할 순간을 놓치니, 나는 곧 결혼을 앞두고도 이 양반이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이 양반은 도대체 집에서 무슨 일이 있길래, 이런 멀쩡한 계절, 멀쩡한 요일에 혼자서 이스탄불까지 항공사 마일리지로 여행을 떠나는지, 그래서 뭐가 맺힌 게 있는지,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잠 한 숨 못자도록, 영국의 날씨에서부터, 인도의 홍차 품종, 항공사들의 정책, 국제 유가의 동향, 유럽 역내에서 가장 길가는 여자들의 평균 외모가 뛰어난 국가에 이르기까지, 맥주까지 두 캔씩 곁들여 가며, 극히 다양한 교양에 대한 주제를 넘나들어야 했다.


이스탄불에 착륙할 예정이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을 무렵이 되자, 아직 한 한 시간 남아 있었지만, 나는 다 포기하고 중국 가는 비행기에서 편하게 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연결편 안내에 대해서 뭐라고 좀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좀 자세히 알아 두어야 겠다 싶어서 승무원 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저, 이스탄불 공항에서 연결편 타는 게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하고 묻기 시작하는 데, 그 때 또 옆자리에 앉은 이 양반이 다시 끼어들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공항도 깨끗하고 편하게 잘 지어 있고, 안내문도 다 영어로 잘 씌여 있고, 말도 다 알파벳으로 되어 있어서 터키말도 읽기가 편하거든요. 터기가 이슬람교 국가인데도, 여기는 말을 터키 고유 문자나 아랍어 문자로 쓰는게 아니라, 영어 같이 알파벳으로 쓴다고요.


그래서 알아볼 수가 있어요. 항공사 이름이 전부다 아랍어 글씨로 씌여 있다고 하면 알아보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데 터키에서는 문자 표기를 일단 알파벳으로 하기 때문에 하여간 알아 보고 대충 비슷하게 읽을 수도 있으니까, 이거 안 헷갈리거든. 그래서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혼자 찾아다녀도 쉽게 찾아다닐 수 있어요."


그 양반은 또다시 케말 파샤 장군이 어쩌니, 청년 투르크 당이 어쩌니 하는 터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엉거주춤하게 옆에 서서 내가 물은 이야기에 답을 해주려던 승무원은 이야기가 길어지자 한 번 만면에 큰 웃음을 한 번 지어 주고는 가버렸다.


이야기 하던 중에 화면을 보니, 또 무슨 광고가 나오지 싶었다. 나는 속으로 "제발 웨딩 코만도, 제발 웨딩 코만도"하고 말했다. 또 아일랜드계 평등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 양반이 다시 흥분해서 앞뒤자리 사람들도 시끄러워 잠이 깰 만큼 떠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일랜드계 평등법에 대한 공익광고 대신에 웨딩 코만도 예고편이 나왔고, 이 양반은 적절히 별로 열정 없는 어조로, "요즘 영화는 재미가 없어요." 하는 주제로 넘어가는데 그쳤다.


"연결편 시간이 좀 급해서 빨리 가봐야 겠네요.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핑계를 대고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그 양반 옆에서 도망쳤다. 아직 세 시간 정도는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지만, 심신의 안정을 취하려면 좀 멀어져야 했다. 어슬렁 어슬렁 공항을 둘러보니, 그 양반 말대로 터키어는 알파벳으로 표기를 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한결 쉬웠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 비행편인 중국 석가장으로 가는 비행편이 그렇게 찾기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 시각을 보니, 전화 통화를 할 만 했기에 나는 우선 회사와 부모님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그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둥베이 특급 있지? 일단 중국으로 갔다가 그거 타고 한국 갈 거거든. 지금 중국 가는 비행기 타기 직전이니까, 너무 걱정말고 기다리고 있어. 전 비행기가 조금 연착되기는 했는데, 그래도 목요일에는 도착할 수 있을거고, 좀 시간이 안 맞아서 어긋나도 금요일에는 도착할 수 있을거야,"
"그래, 어, 너 비자는 있어? 간이 비자 받아야 된다던데?"
"다 구했어. 걱정마."
"그래, 여기 뉴스에도 둥베이 특급 이야기 계속 나오는데, 매일 다닌다니까, 뭐, 금요일에는 도착할 수 있을거야."
"미안해. 이거 잘못하면 결혼식 딱 하루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오겠네."
"아냐, 뭐가 미안해. 화산이 터지는 걸 어떡하냐. 만약에 목요일이나 금요일 좀 넉넉하게 오면 어디 백화점에 가서 정장 한 벌만 사자. 지난 번에 어머님께서 결혼하면서 그래도 어디 예복으로 쓸 남자 양복 정장 한 벌은 맞춰 둬야 쓸모가 많다고 하셨는데, 그냥 넘어갔잖아."
"그걸 뭘 또 너는 마음에 두고 있냐. 어머니 말씀하시는 거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 마음에 두고 기억해 둘 필요 없어. 어머니도 그런 거 생각도 안 해. 뭘 그런 걸 그렇게 고민하고 따지냐."
"아니 뭐 고민을 하는게 아니라. 일찍 와서 시간이 나면, 그렇게 정장 한 벌 하자고. 그렇다는 이야기지."
"너 또 막 고민하고 우울해 하고 그러는거 아냐?"
"아냐."
"정말로?"
"야, 너가 화산재에 막혀서 못 오는 게 고민이지 다른 게 무슨 고민이 있겠어. 오기나 똑바로 잘 와. 또 어디 다치고, 고생하고 싸돌아다니다가 몸살나고 그러지 말고."


둥베이 특급이 매일 오가고 잘 다니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엊그제 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는 것은 더 다행이었다.


나는 중국 석가장으로 갈 비행편을 찾아 공항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전화기로 인터넷을 연결해 뉴스를 좀 찾아 보았다. 순조롭고, 잘 움직이고, 속도도 굉장히 만족스러울 만큼 빠르다고 했다. 뉴스 영상에는 꼭 어느 백인 외국인 한 명을 잡아서 "한국의 특급 고속 열차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하고 인터뷰 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야당 정치인 중에는 "졸속으로 급하게 추진해서 제도가 엉망이다"라고 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다. 중국으로 육로로 넘어가게 해 주기 위해서 북한에 임대 도로를 얻은 뒤에 남한 정부 예산을 막대하게 들여서 다 보수하고 확장한 다음에 육로를 개방해서, 자동차들도 대거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놨는데, 이게 제도가 정비가 안된 상태에서 빨리 개방부터 시키니까, 남한 쪽 돈들여서 만든 자유 통행 도로인데, 관리하는 북한쪽 교통경찰이 조금만 어긋나도 마구잡이로 벌금을 물리고 위법사항이라면서 잡는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돈 많이 내거나, 돈이 없어서 북한에 잠시 구류된 운전자들에게 억울한 점이 많고, 어떤 교통경찰들은 일부러 돈벌려고 단속을 부당하게 적용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덧글을 보니,


"얼마전까지는 자기네들이 도로 임대 사업을 하자고 난리더니, 백두산 분화 때문에 이번 정부에서 하니까 공을 가로채려고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그러네. 잘하는 짓이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많은 문제에 대해 건 수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북한을 통해서 중국으로 가는 도로를 이용하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거고, 그러면 일단 성공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라는 말이 있었다. 그렇지. 싶었다. 과연 믿고 싶은 말이었고, 그래서 더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그냥 도로에 차량이 저렇게 많이 들이닥쳐 오고가고 있을 정도라면, 둥베이 특급을 타고 열차편으로 서울까지 가는 것은 이제 충분히 일상화 되어 정착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별 어려움 없을 것이다. 안심해도 될 것이다. 이번 여정 중에 가장 어려워 보이는 부분인데, 다행히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즈음 서서히 드러나는 문제는 아무리 돌아봐도 중국으로 가는 비행편을 타는 터미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알파벳으로 알기 쉽게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혼자 아무리 찾아 봐도 내가 탈 비행기가 있는 곳을 알기가 어려웠다. 누구에게 물어 보면 좋은가 싶어 나는 안내원을 찾아 보려고 했다.


한참을 빙빙 돌다가, 그 와중에 나는 깨끗하게 새로 지은 공항 왼쪽 벽의 거대한 화면에 나오는 "웨딩 코만도" 예고편에 눈이 띄어 그걸 잠깐 보았다. 그게 다 끝나고 나니까, 비행기 안에서 VOD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면서, "글로벌 VOD" 광고가 나오고, 세계 각지의 공항들과 항공사들이 표시되었다.


"대륙간 항공편에만 웨딩 코만도가 나오는데."


나는 대형 화면에 나온 세계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 투르크 공항은 터키 영토 중에서 가장 서쪽 끝쪽에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와 연결된 바다 건너의 땅에 있었다.


"유럽?"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세계 지도를 멀리서 다시 보았다. 그러면, 지리적으로 아타 투르크 공항은 유럽 대륙에 속했다. 잠깐만.


"잠깐만!"


세계 지도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지도를 좀 더 보고 싶었는데, 다시 웨딩 코만도 예고편이 조금도 알아 들을 수 없는 터키어 더빙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켜서 세계 지도를 실행시켜 보았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도 유럽이고, 터키 이스탄불 아타 투르크 국제 공항이 있는 곳도 유럽이었다. 그러면, 유럽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당연히 "대륙간 비행편"은 아닌게 된다. 그런데, 왜, 왜 나는 아까 그 비행편에서 웨딩 코만도 예고편을 본 것일까?


"저, 지도, 이 근처의 지도 있습니까?"


나는 옆에 있던 한 청소부 할머니에게 손짓을 하며 물어 보았다.


"예, 선생님."


청소부가 가리키는 곳을 찾아서 이스탄불 지도를 하나 꺼내 펴 보았다.


아. 이스탄불에는 공항이 두 개가 있었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도시이고, 서울이 한강을 따라 남북으로 나뉘듯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서울에 강남과 강북이 있듯이 이스탄불에는 유럽 지역과 아시아 지역이 있다. 공항 하나는 아시아 지역에 있었고, 다른 공항 하나는 유럽 지역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시아 지역 공항에 있었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편은 2시간 후에, 유럽 쪽에 있는 다른 공항에서 이륙하는 일정이었던 것이다.


 


6.
잠깐 방심한 것이 문제였다. 혼자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빙빙 돌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냥 바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바로 달려야 마땅한 시간이었는데. 이스탄불 시내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한 시각이었다.


"제가 제 시간에 아타 투르크 공항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택시 기사가 영어로 답했다.


"글쎄요, 선생님. 만약에 차가 안 막힌다면, 선생님. 그러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선생님. 한 삼십분, 삼십오분 정도면 되니까요 선생님. 그런데, 만약에 차가 막히면, 선생님. 그러면 도저히 어렵습니다. 선생님."


택시 기사는 항상 선생님(sir)이라는 단어를 말 사이사이에 무척이나 많이 섞어서 말하고 있었다. 영어를 가르쳐 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가르쳤는지, 아니면 일하고 있는 택시 회사 정책이 말할 때 그렇게 말하도록 고객 응대 지침이 있는 지, 그것도 아니면, 터키어로 말을 할 때는 그런 단어를 많이 써서 말하기에 그걸 마음속으로 번역해서 말하다 보니까 저런 말이 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궁금하게 여기기에는 초조한 마음이 너무 심했다.


택시 기사는 최선을 다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이스탄불의 밤풍경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람처럼 내 눈 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몇 사람이 이루는 가정, 몇 백명이 아웅다웅하는 빌딩들이 다만 짧은 불빛의 작은 흔적만 남기면서 차창을 빗기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정도 시간이면 될 수도 있겠다 싶을 때에, 주변에 더 많은 자동차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택시의 속도는 따라서 늦어지기 시작했다.


"아-."


절로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자동차는 이제 가다가 서다가 하며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어느 고가 도로 위에 놓여 있었다. 창밖을 보니, 마치 강물과 같아 보이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낮은 산과 언덕에 온통 집들이 다닥다닥 가득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끔 우뚝우뚝하니 솟은 화려한 빌딩들이 있기도 했지만, 10층 내외 정도 되는 아파트들이 계속해서 갖가지로 이어져 낮은 산들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산들은 나무나 풀이 없이 온통 집들로 저 언덕배기 높은 곳까지 가득가득차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내가 무슨 크게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릴 때는 이런저런 위인전기도 많이 읽었고, 어디서 누구인가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큰 생각으로 대단한 일을 하는 창의력을 어릴 때부터 키워야 한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경지를 바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요즘에도 인터넷 기사나 책을 보다보면 어떤 위인은 무슨 특징이 있어서 업적을 남겼다느니, 어떤 위대한 사람은 무슨 독특한 특징이 대단했기에 이런 일을 해냈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내가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사극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나 뉴스에 나오는 멋있는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사이에 나오는 건강보험 광고나 국민연금 광고에 나오는 인기 하나도 없는 무명 배우가 대충 연기하는 "가족1" "남편2" "아들3" 정도의 인물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랑 같은 집에서 살면서 애 둘쯤 키우고, 회사 다니면서 돈 벌다가 조금씩 저축해서 노후 준비하고, 가끔 일요일 되면, 하다 못해 어디 근처 공원에서 가족끼리 고기나 한 번 구워 먹는 뭐 그 정도. 그 정도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저 거대한 빌딩의 주인이 되거나, 이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저 산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집들에 있는 저 많은 가족들, 저 작은 불빛 하나하나 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통 평범한 가족들, 그냥 적당히 큰 문제 없이 사는 가족들.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이렇게 골치 아픈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결혼식을 미룰 수도 있다.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갑자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안그래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결혼식인데, - 그러면 항상 정색을 하고 "뭐가 수군거리기는 누가 수군거려요"하고 말을 끝는 것도 이제 참 지겹다 -  마지막에 괜히 혹시 일정이 좀 이상해 져서 결혼식을 취소했다가 다시 하니 어쩌니 하면, 더 소문이 나빠 진다고."


일전에 내가 결혼식 날 잡는 거에 신경쓰는 거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니까, 남박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뭐 소문으로 결혼식을 하냐고" 하면서 농담 형식으로 반박하긴 했다. 그렇지만, 계속 느릿느릿 답답해져만 가는 이스탄불의 교통에 갇혀 있다보니, 그게 또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차가 해안도로 즈음으로 내려 왔을 때, 차는 완전히 멈추어 서서 꼼짝하지 않게 되었다. 차 뒤편으로만 점점더 차들이 몰려와, 이제는 거대한 차들의 공동묘지 사이에 하나 널브러져 있는 이름 없는 무덤처럼 휩싸여 있게 되었다. 어디서 알고 나타났는지, 멈추어선 밀린 차 사이를 오가면서 잡다한 군것질 거리나, 싸구려 물건 따위를 파는 행상들이 나타나 뭐라고 말을 하면서 차 사이를 오락가락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기사에게 다그쳐 물었다.


"왜 이렇게 차가 막힙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상하네요, 선생님. 선생님, 제가 라디오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선생님."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켜고 이리저리 맞춰 보기 시작했다. 방송 사이에서는 그리스 노래도 나오고, 인도풍인지 아랍풍인지 트로트랑 묘하게 비슷한데 무척 신나는 이국적인 음악이 나오기도 했다. 한 뉴스 방송을 찾더니, 택시 기사는,


"선생님, 뉴스에서 다리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스탄불에는요, 선생님. 아시아쪽 지역과 유럽쪽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가 두 개가 있는데요 선생님. 우리도 그 다리를 건너야 하거든요 선생님. 그런데 그 다리에 지금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네요, 선생님."


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두리번 두리번 하다가 도무지 꼼짝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택시 문을 열고 내려서 길 주변을 오가며 무슨 일인지, 어떻게 나갈 방법은 없는 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거 한참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나자, 택시기사는 보온병을 메고 뭘 팔러 다니는 아이를 한 명 불러 세웠다. 아이는 커피를 한 잔씩 팔고 있었다.


"선생님, 이게 터키식 커피입니다. 도리 없이 몇 십분은 기다려야 하니까, 선생님. 제가 대접할 테니 이 커피라도 한 잔 드십시오. 선생님."
"예?"


택시기사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차 밖으로 나와서 해안도로의 바닷바람이라도 쏘이며 커피라도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면, 제가 지금 여기서 택시에서 내려서 그냥 걸어서 다리를 건너가면 안되나요?"
"다리까지 걸어서요? 선생님, 걸어 가면 한 시간은 걸릴 겁니다. 선생님"


시계를 보니 한 시간씩이나 더 끌어서는 안 되었다. 아무래도 수가 보이지 않았다. 갑갑해서 나는 괜히 전화를 꺼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바쁜 마당에 뭔 커피냐 싶었지만, 그 택시기사 말대로 정말 아무 도리도 없어 보이는 이 마당에, 차 안에서 답답하게 있느니, 길에서 앞뒤라도 살피면서 있는게 낫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 바깥으로 나와, 커피잔을 받아 들었다.


"원래 가끔이렇습니까?"
"아닙디다, 선생님. 원래 좀 막하기는 하는데 선생님, 저도 이런 거는 처음 봅니다. 선생님."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길로 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아타 투르크 공항까지 가려면 다리를 건너서 바다 저쪽편까지 꼭 가야 됩니다. 선생님. 이제 뒤로 뺄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 지금 여기서 다리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날씨는 따뜻했는데, 꼭 강변도로 처럼 생긴 해안도로를 휩싸고 도는 바닷 바람은 유난히 강해서 좀 서 있으니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맛을 보니, 쓰기도 하고 아주 달기도 하고 어째 좀 탄 맛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커피인데 걸쭉하게 느껴지는 듯 하기도 했다. 터키식 커피라면 독특한 맛이 있어서 좋은 면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 정신으로는 소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커피를 코로 마신다고 한들, 그 독특한 맛을 음미할 확률이 더 낮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아, 정말, 안 풀리네."


택시에 등을 기대고 서서, 한숨을 쉬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있는 강변 산책로에, 파란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는 줄무늬 옷과 챙이 넓은 유쾌한 모자를 쓴 남자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 어슬렁 지나가고 있었다. 이 남자는 택시기사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택시 기사도 그 사람을 알아보며 소리를 질러 물었다. 손짓을 보니 도대체 여기 왜 이렇게 막히냐고 하는 것 같았다. 노래 부르던 사람은 길 쪽으로 다가 오면서 뭐라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노래 부르던 사람에게 손짓해서 자기쪽으로 와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이게 다 테러 때문이랍니다, 선생님"


하고 말했다.


"테러요?"
"쿠르드계 평등법이라고, 선생님. 최근에 생긴 터키 법인데요, 선생님. 그 법 때문에 테러를 한답니다. 선생님."
"쿠르드계 평등법이요?"


그 때 노래 부르던 사람이 우리 옆으로 왔다. 택시 기사는 커피를 한 잔 더 시켜서 그 사람에게도 주었다. 노래 부르던 사람이 말했다.


"쿠르드족, 쿠르드족 아세요? 이라크에서 미국도 철수하고, 영국도 철수하고, 다 철수하고, 또 한 번 뒤엎어져서 난장판 되고 하니까, 이, 이라크에 있떤 쿠르드족들이 터키 쪽으로도 몰려서 요즘에 난리였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야기 들어 보니까, 그거랑 관련해서 폭탄이 한 번 뻥 터졌거든요. 그런데 오늘 저녁에 다리도 한 번 폭파시킨다는 협박이 들어와서, 지금 그거 수색한다고 다리 막고 차마다 다 뒤지는 중이랍니다."
"그래서 다리를 못 지나가는 겁니까?"
"못 지나가는 건 아니고, 다 수색하고 뒤지고 끝나면 한 대씩 한 대씩만 보내고 있다 그러네요. 그러니, 이 많은 차들이 지나가기에 뭐 한도 끝도 없지요. 원래 이스탄불은 무슨 테러, 이런게 있는 데가 아닌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 사람입니다."
"차라리 서울이 남북한 전쟁 위험이 있으니까, 불안한 게 많지, 이스탄불은 진짜 아무 건이 없는데. 요즘에 괜히 그 쿠르드계 평등법이다 뭐다 정치인들이 갑자기 내세우는 바람에 이 난리 입니다."


남북한 전쟁 위험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둥베이 특급으로 남북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참 얼마나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는지 새삼스럽지 싶었다.


"이게 쿠르드계를 전폭적으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라서, 반대파에서 워낙에 저항이 많지만, 정작에 쿠르드족 사람들 중에도 이 법대로라면, 괜히 생색만 되고 멋모르는 사람들만 쿠르드족에게 유리하다고 하지, 사실상 쿠르드족 내쫓고 가두는 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이런 소리하면, 이 참에 쿠르드족이 더 뜯어내려고 괜히 엄살부리는 거라고 하면서, 쿠르드계 평등법이면 쿠르드족한테 정말 유리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참 난리 입니다.


이번 테러만 해도, 법안 반대파가 한다는 건지, 쿠르드족이 한다는 건지, 쿠르드족 법안 반대파가 한 다는 건지, 그것도 몰라요. 괜히 이런 건 생기니까 이거 뭐 장사도 안되고."
"장사요? 뭐 하시는데요?"


노래 부르던 사람은 싱긋이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제 부모님께서 어느 나라 분이실 것 같습니까?"
"예?"
"맞춰 보세요."
"터키 사람 이겠죠."
"그러면, 제가 물어 보지는 않았겠죠."
"맞춰 보시라니까요. 저는 어느 민족일까요?"


노래 부르던 사람은 그렇게 말해 놓고 짐짓 딴청을 부리던 노래를 갑자기 불러 제끼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가 커서 깜짝 놀랬다. 노래는 썩 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알 수 없는 외국어의 노래 가사를 듣고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
"빙고! 아버지께서 이탈리아 출신이고, 어머니께서 그리스 출신이십니다. 제가 노래하는 거 들어보면 딱 아실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작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조그마한 배를 몰아서 관광객을 태우고 보르포러스 해협 바다를 다니는 겁니다. 유람선 처럼요. 거기다가 제가 노래도 부르지요. 이탈리아에 베네치아 처럼요. 야, 이거 재밌는 직업인데.


그런데 오늘은 일이 없어요. 이거 뭐, 테러니 폭탄이니 이런 이야기하니까, 관광객들이 다리 근처에서 여기까지는 싹 사라졌으니 뭐."


그 부분을 듣자, 나는 놀라서 커피 잔을 내려 놓았다. 그 이탈리아-그리스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커피나 마시며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하고 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이 그 때 귀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러니까, 배, 배를 태워 주는 게 장사라고요."
"예."
"배, 배 맞죠?"


나는 팔을 움직여 바다 위에 떠다니는 배의 모양을 표현해 보았다. 팔을 앞뒤로 휘젓는 게 어떻게 배라는 뜻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급하고 서두르고 있어서 하여간 되는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저를 그냥 바다 저쪽편 까지만, 좀 태워다 주십시오. 그냥 빨리 건너가 주시면 됩니다. 제가 요금은 한 시간짜리 유람 요금을 다 낼테니까. 그냥 저쪽편으로 건너만 주십시오. 기사 선생님. 택시는 여기까지만 태워 주시는 걸로 하고, 제가 이 분 배를 타고 저쪽편으로 넘어가서 저기서 다시 다른 택시를 잡아서 가 보겠습니다."
"선생님,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선생님."


택시 기사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래 부르던 사람도 그럼 빨리 가자고 했다. 가려는 나를 두고 택시 기사는,


"이 커피 맛 좋은데, 선생님, 들고 가면서 계속 드시지 그러십니까? 선생님"


이라고 말했다. 나는 바쁘게 뛰어 가는데, 커피를 들고 가기는 그렇다 싶어 확 한 입에 다 털어 넣고 다 마셔 없애 버렸다.


그리고 노래 부르던 사람 뒤를 따라 걸어 가는데, 칼칼한 가루 같은 것이 목에 걸려 뛰어 가면서 마구 켁켁 거리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앞서 뛰어 가던 노래 부르던 사람은,


"어이쿠, 그 커피를 가라앉은 커피 가루까지 다 드셨습니까? 그건 보통 안 먹는 건데. 안 먹고 커피 잔 바닥에 남겨 놓는 건데."


라고 말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나에게 물이라도 한 잔 줄까 싶어 서서 나를 돌아 보았다.


"아니, 아니, 빨리, 가자고요. 빨리 빨리."


나는 말도 잘 못할 만큼 커피 가루가 잘못 넘어가 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조금 도 시간을 지체하면 안되겠다 싶어 상관 말고 뛰어가자고 손짓을 했다.


그 노래부르던 사람의 배는 세 사람 정도가 타면 딱 맞을 작은 배로 휘발유로 돌아가는 엔진이 달려 있었다. 나는 배 위에 오르다가 잘못해서 바닷물에 한쪽 발을 좀 빠져 버렸다.


"비행기 타고 가면서 말리셔야 겠네요."


노래 부르던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뭐 이런 일까지 생기나 싶었지만, 그 양반이 말할 때, "비행기 타고 가면서"라는 말로 비행기 타고 가는 순간을 기정 사실로 치고 말을 하자, 나는 그래 이렇게 가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까지 제대로 맞춰 갈 수 있을 거다 싶어서, 잠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한쪽 발이 바닷물에 젖고 여전히 목은 켁켁거리는 채로, 나는 지쳐서 그 좁은 배에 눕듯이 기댔다. 파도에 따라 배는 울렁울렁거렸기에 뱃전에 머리를 베고 누운 나는 덜컹이는 바람에 머리를 아프게 몇 번 찧었다. 아파서 자리를 좀 잘 잡아야겠다 싶었는데, 이내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빠르게 배가 움직여 나가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반대편으로 쏠렸다.


바다 가운데로 나아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노래 부르던 양반은 이탈리아어로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타루치아, 오 솔레 미오 같은 전형적인 "노래하는 이탈리아 사람" 스러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점차 웃긴 가사로 흘러가는 노래들을 부르더니, 이윽고 자기 신세 한탄이 섞인 농담 조의 노래를 꽤 멋진 목소리로 흥얼 거리기 시작했다.


"유럽 1차 경제 위기 때, 아버지 이탈리아에서 나와 일자리를 찾으러 미국으로 아시아로. 유럽 2차 경제 위기 때 어머니 그리스에서 나와 일자리를 찾으러 미국으로 아시아로. 두 분이 만나서 행복한 살림을 차리고자 터키로 건너가니. 아뿔싸, 그곳은 사랑하는 내 고향 이스탄불, 아직도 유럽에 걸쳐 있는 땅이었으니, 나는 아직 가난하다네."


노래는 이리 저리 길게 이어졌고, 확실히 노래 부르는 솜씨는 썩 좋았고, 특히나 그 목소리가 시원시원 크고 넓게 울려서 다른 데서 들을 수 없겠다 싶기도 했다. 계속 듣고 있으니, 이것은 손님인 나에게 노래를 들려준다기 보다는 자기가 즐거우려고 한 번 이 저녁, 밤 바다 위의 흥취에 한 번 젖어보려는 노래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래가 이어지자, 나는 고개를 돌려 다리와 시내쪽을 바라 보았다. 바다 저쪽으로 솟아 있는 시내쪽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뒤덮여 환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대도시 답게 빽빽하게 들어찬 그 작고 큰 건물들 사이에 군데 군데 틈틈히 높은 첨탑과 커다란 둥근 지붕을 비누방울이 떠오르듯이 높게 솟아오른 옛날 아랍풍, 비잔틴풍 건물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기묘한 무늬와 이국적인 곡선으로 되어 있는 그 사원인지, 궁전인지, 어느 유적인지 모를 건물들은 도시 군데군데에 저마다 다른 특징의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달 좀 보십시오."


노래 부르다 말고 사공이 그렇게 말했다. 멀리 보이는 그 옛 건물 사이로 커다란 둥근달이 노란 빛을 뽐내며 떠 있었다. 그 빛이 둥근 지붕에 반사되어 흘러 내리는 것 처럼 보였다. 아마 어느 밤에 그녀가 하늘을 본다면, 한국에 있는 그녀도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겠지. 비행기 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 지나가는 중이 아니라, 언제, 언젠가, 여유로울 때 그녀와 함께 여기에 놀러와서 이렇게 밤에 같이 배타고 여유롭게 지나가면서 보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뭔지도 모르고, 그냥 지쳐서 배위에 엎어져서 지나가면서, 한 번 흘깃 보는 저 많은 옛 건물들을 저마다 이름과 사연을 알고 넘어가는 것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중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화가 깃는 술탄의 호사스러운 일화가 남아 있는 곳도 있을 것이고, 망해버린 천년제국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애절한 전설이 얽힌 곳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저 많은 건물들 미로처럼 얽히고 얽힌 통로 사이사이에는 동서의 왠갖 진기하고도 잡다한 물건을 팔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시장통의 왁자한 풍경이 있어서,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 같은 운치도 남아 있겠지. 그런 곳을 그녀와 함께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면, 하루 왠 종일 같이 다녀도 힘들 줄도 모르고 재밌기만 해서, 저녁이 되면 멋모르고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다리 아프게 된 걸 뒤늦게 알고 낑낑거리며 무릎을 두드리고 종아리를 주무르고 소란을 피우겠지.


처음에 그녀를 만나서 다닐 때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같이 가고, 같이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별것도 아닌 물건들을 파는 것을 보고,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 중대한 일이고, 커다란 사건들이 되어 주었다. 같이 소란한 길목을 지나면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화장품 파는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의견을 뭐라고 한마디 귀에 대고 나누는 것. 그런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아 보자면, 사실 재미 없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어떻게 잘 보여 보려고 의식도 많이하고, 좋은 관계로 잘 발전 시켜 보려고 한 순간 한 순간 동작 하나 하나에 신경도 많이 쓰고, 그래서 워낙에 긴장하고 워낙에 수줍고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작은 순간 순간들도 자꾸 새롭게 의식하게 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속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거기에 사로 잡혀서, 지루하고 별 일 아닌 잡다한 일들도 풀어야할 새로운 문제로, 모험해야할 신기한 상황으로 자꾸 자꾸 엮이는 것 아닌가.


재미 없는 이유라니. 여보쇼. 중요한 거는 나는 바로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 아뇨. 이게 그렇게 쉽게 굴러들어오는 일만은 아니다. 만나기 전에 기대도 되고 고민도 되고,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어색하고 이상해도 뭐가 뭔지 모르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던 그런 시간. 그런 시간을 같이 보냈던 그녀와 나는 결혼을 하게 된다는 건데.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것 아니냔 말이다.


그 즈음해서는 사공은 노래 부르던 것을 멈추고 어딘가와 전화 통화를 길게 하고 있었다. 아마 집이 었는지, 사공은 전화를 끊고 해협 반대편에 도착해서 나를 내려 주면서, 갑자기 이렇게 푸념해서 말했다.


"정말 집이 집이 아닙니다. 에효. 이게 자식을 키우기 전에는 인생이 뭔지 반에 반도 모르는 거예요, 이건 뭐, 옛날에는, 나는 인생에 별 것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하다가 피곤하면 집에 들어가서 쉬는 게, 그게 인생이라고 했죠. 그런데, 알고보니까, 인생은 일하다가 피곤하면 집에 들어가서 애들 보느라 시달리려 더 피곤한 거, 그게 인생이요."


나는 사공에게 인사를 하고 배삯을 주었다. 이 막막한 꽉 막힌 도로에서 나를 구해주고, 덤으로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분석결과를 전해 준 대가로 나는 꽤 넉넉한 액수를 주었다. 내가 다시 택시를 잡느라 이쪽편 도로에 막혀 있는 차들 사이를 뛰어 다니며 소리를 치며 헤메고 있으니, 사공은 차들 사이로 와서 높이 손뼉을 치면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택시기사 한 명이 사공을 알아 보았다. 사공은 그 택시를 타라고 손짓해 주었다.


이스탄불의 유럽쪽 지역으로 다리 있는 곳을 빠져나가자, 택시는 마음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닷가 길을 따라 달리면서, 점점 더 어두워진 깜깜한 밤하늘 속에 마치 하늘에 떠 있듯이 먼 밤바다에 줄지어 떠 있는 배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배들이 어디 즈음에서 어떻게 있는 것인지 정확히 보기도 전에, 워낙에 빠르게 달리는지라 바로 사라져 갔다.


이윽고, 아타 투르크 국제 공항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바쁘고 급한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여행지를 떠날 때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 근처에 오게 되면 느껴지는 묘한 아쉬운 기분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도대체 왜 드는 건가 싶었지만,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몇 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비행기 탑승구를 향해 달려가야 했다.


들어서면서 멀리서 보니, 아타 투르크 국제 공항은 표를 사기 전에 공항 입구에서부터 보안 검색을 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멀리서부터 살펴 사람이 없는 곳을 찾고는, 그곳을 목표로 잡고 재빨리 사람들 사이에 뛰어 들었다. 바퀴가 달려 끌려 오는 내 가방은 우당탕 거리며 구불러 다니는 통에 어딘가 깨져 나가지나 않았나 싶었고, 그러면서 그 가방을 붙잡고 있던 내 손목도 이리저리 비틀려 무척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가방을 다시 추스릴 시간 조차 급하게 느껴졌고, 나는 달려 가면서 한 손으로 넥타이핀과 허리 벨트를 풀고, 신발을 벗으면서 손으로는 가방에서 컴퓨터를 꺼내어 보안 검색대로 밀어 넣었다.


아슬아슬하지만 아직 시간은 몇 분 있었다. 빨리 뛰어가서 말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서, 나는 중국 하북성으로 가는 비행편을 찾으려 했다. 공항은 넓었고, 안내선은 복잡했고, 창구는 많았다. 안내 지도를 보고 찾아야 했다. 안내 지도는 또 어디 있을까. 왼쪽으로 가면 있을까. 오른쪽으로 가는 게 가까울까. 그때 눈에, 청소원들과 공항의 비품을 점검하는 관리직원이 타고 있는 트럭 역할을 하는 작은 전기차가 보였다.


"중국 가는 비행기. 중국 석가장 가는 비행기, 좀 태워 주십쇼."


다짜고짜로 그렇게 말했기에, 전기차를 타고 있는 관리직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표정이라면, 그 때 목에 허리 벨트를 걸고 양손에 동전과 전화와 컴퓨터를 주렁주렁들고 있고 팔목에 끌고 다니는 가방을 걸어 당기고 있는 내 몰골이 훨씬 압도 적이었다. 관리직원은 잠시만에 사정을 알겠다는 듯이, 바로 나를 태우고 공항 한 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분 남았습니까?"
"3분, 4분 정도?"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관리직원은 전기차에 달린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 주변의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고, 삽시간에 우리는 공항의 줄을 가로 질러, 어느 중국계 항공사 직원이 서 있는 곳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넓이 뛰기를 하듯이 전기차에서 직원 앞으로 단 번에 뛰어 내렸다. 그리고 그 탁자 위에 지갑과 동전 따위를 잠시 주르르 놓아두고 윗옷 안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 보였다.


"중국 석가장 가는 비행기. 비행기표. 통로쪽이나, 창가쪽이나, 뭐 아무거나, 빨리. 주세요."


중국계 항공사 직원은 얼굴을 쳐다보니, 무척 아름다운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그녀를 닮아 보이는 부분도 좀 있어 보였다. 왔다. 오고야 말았다. 어찌 되었건, 결국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제, 이제, 드디어 마지막 비행기를 타는 곳에, 마침내 드디어 도착해버린 것이다. 내 여권을 받아 든 항공사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여권과 컴퓨터 화면을 번갈아 보며 내 비행기 표를 처리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항공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죠, 손님? 지금, 방금 전에 탑승구가 닫히고 비행기가 떠났거든요."


 


7.
나는 식음료 교환권을 들고 힘 없이 물러나, 목에 걸고 있던 허리 벨트를 주섬주섬 바지에 다시 끼워 넣었다. 그 아름다운 중국 항공사 직원은 미모에 걸맞는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와 더 없이 부족함이 없는 친절한 태도로, 내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하북성으로 가는 비행편은 날아 갔으며, 다음 비행기는 금요일나 되어야 한단다.


"오늘 다리가 막혀서 시간에 못 오신 분들이 꽤 많아서, 지금 저희들도 다른 편으로 연결편 찾아 보려고 하고는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저희 영업시간이 이제 다 지나서, 일단 내일 7시에 다시 창구 열면 그때 저희들이 알아 봐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지금 드릴 수 있는게, 이 식음료 교환권 밖에 없어서, 죄송한데요, 우선 저녁 드시고, 근처 숙소나 공항에서 오늘 밤을 보내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와 주십시오."


항공사 직원은 그리고 나서, 터키어, 중국어, 영어, 그리스어, 아랍어로 설명이 적혀 있어서 지나치게 거대한, 공항 안의 식당에서 음식으로 바꿔 먹을 수 있는 식음료 교환권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속이 쓰린 건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나는 영혼 없는 유령이 바람에 쓸려 걸어 가며 귀곡성을 길게 우는 듯한 박자로 걸음을 옮겨 공항의 어느 식당을 찾아 천천히 움직였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신혼의 단꿈과 젊은이가 새롭게 출발하는 인생의 밝은 미래가 있었는데, 이제 내 손에 있는 것이라고는 식권 뿐이었다.


밤 시간이 깊어져 가고 있어서 왠만한 식당은 문을 다 닫아서 패스트 푸드점 한 두 곳과 "패스트"라는 말을 간신히 벗어난 듯 보이는 케밥 가게가 하나 공항에서 영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고 음식을 골랐다. 맛있는 것이나 재미난 메뉴를 고르려고 했는데, 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식권 가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모하는 식권 가격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자연히 고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숙명아닌 숙명처럼 먹을 메뉴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케밥 종류라고 하기에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쌀로 지은 "밥"을 괜히 마음 속에 떠올려서, 멕시코 음식 처럼 쌀밥을 어떻게 고기와 함께 쌈싸 놓은 음식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렇지만 나에게 나온 것은 제육볶음을 연상시키는 울긋불긋한 썰어넣은 고기 볶음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독특한 향기가 났지만,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먹어 보니, 맛은 있었다. 전에 그녀의 집에 가서 그녀의 어머님께서 해 주신 음식과 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님께서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해 주셨다. 나는 허허 웃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머님께 인사를 했는데, 그녀는 대뜸 내 웃음을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아휴, 엄마는! 이런 인도 음식 사람들 안 좋아한다고 하지 말라니까는."
"그래도 야, 그럼 손님 오는 데, 어디서 사다 놓은 음식만 내 놓는 것도 아닌 거 잖아."
"이건 아니잖아. 내가 지금 그냥 고기 사다 놓은 걸로 전골 같은 거라도 해 볼테니까. 이건 나중에 아버지 오시면 그때 먹든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뭔 짓인지 자기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치워 버리려고 하였다. 어머님께서 나 보는 앞에서 대판 소리를 칠 수도 없고,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나는 무슨 견딜 수 없는 생각에 밀리듯이,


"어이쿠, 아닙니다. 이거 되게 맛있어 보이는데요. 이거 한 번 맛이라도 좀 보면 안될까요."


라면서, 그 음식을 먹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나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특이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래도 맛있었다. 특이하다는 것도 아주 특별히 뭐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어머님께서 나를 생각해서 적당히 양념과 맛을 조절한 변형판 음식인 줄도 몰랐다. 그러나 원인에 관계 없이, 그 음식은 충분히 맛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음식이 맛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게 내가 먹고 있으니,


"정말 맛있어요? 입에 안맞는데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요."


라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그게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으므로,


"아니오. 아뇨. 정말 맛있습니다. 원래 이런 종류 음식 좋아하거든요."


라고 말하고, 그 맛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열성적이고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그 먹는 모습이 기뻐서 음식을 더욱 많이 주시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그러다가 음식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주춤하게 되면, 그녀는


"어휴, 억지로 먹을 필요 없다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고 있으니, 나는 "억지로 먹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열성적인 먹는 태도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기묘한 형태로, 희한하고 알 수 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고, 어떤 알력이 있고, 무슨 세력 균형이 있는 지 나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전쟁에서 평화를 가져 오려면, 하여간 나는 쉴새 없이 차려 놓은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나는 전혀 예상에 없었던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막대한 양의 음식을 배에 채워 넣어, 거의 몸을 가눌수 조차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큼 음식을 많이 먹어 본 적이 또 있는지, 아니 그 이후로, 무엇이건 많이 먹는 것은 안 좋다 싶어, 항상 뭐든 조금씩만 먹는 버릇마저 생긴 듯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다툰 이유는 우리가 결혼한 후의 가족 계획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집이며 애 키울 사람이며 걱정되는 점이 많아서, 좀 더 일하는 것, 돈 모아 놓은 것 형편 될 때까지, 한 2, 3년은 있다가 아이를 갖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이도 있으니까 더 늦어지기 전에 일단 결혼하면 아이부터 갖자는 의견이었다.


그녀는 자기 나이에 한 해 두 해 미루다보면 영영 아이를 갖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요즘 애 없이 사는 사람들도 널리고 널렸다고 그런 거 너무 생각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애 보는 사람 구하는 데도 정말 돈이 많이 들거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정 안되면 자기가 직장을 쉴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갑자기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면 안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 못하게 되기 십상이고 그러면, 나중에 한 5년, 10년 지난 다음에, 그 좋은 직장, 하고 싶은 일 하다가 갑자기 다 그만두고 주부가 된 게 후회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니까, 또 그녀는, 그래서 그때 되면 내가 너 탓할까봐 지레 겁먹고 비겁하게 그러냐고, 실망이라고, 또 뭐라고 하고...


대충 그 정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다른 것도 골치아픈 것 많은 데, 이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싶어 미뤄 뒀다. 문제는 이야기가 흘러흘러 그녀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애도 안 낳으려는 남자와 결혼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그럴 바에야 그냥 결혼하지 말고, 그냥 만나라는 이야기를 해줬고, 그녀는 뭔 말을 그렇게 하냐고 화를 낸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무렵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나의 어머니는 문득 그녀의 직장으로 혼자 찾아가 그녀의 점심시간에 점심을 한 끼를 먹으면서, 결혼 하고 나서 어머니는 손주를 봐 줄 생각은 없다고 지레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어머니에게 왜 나한테 이야기도 안하고 갑자기 남 일하는 데 찾아가서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따졌고,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이 자식 저 자식 등의 자식에게 하기에 매우 절묘한 욕을 섞어서 아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작정을 하려고 간게 아니고, 그냥 며느리 될 애랑 점심 한 끼 먹은 거고, 그러다가 이 말 저 말 하는 중에 잠깐 나온 이야기인데, 그걸 갖고 버르장머리 없이 소리를 지르고 대들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어머니께서는 또 무슨 배반감을 느끼기라도 하셨는 지, 갑자기 막 울먹이려고 하시고, 나는 또 나대로 잘못 설쳤나 싶어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아주 엉망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마당에 그나마, 방글라데시 음식을 왕창 내가 먹는 것 만으로 갈등을 일부라도 눌러 들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은 수단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일 이후로도, 우리는 혼수를 두고도 다투기도 했고, 직장이 가까운 곳과 집값이 오를 것 같은 곳 중에 어디서 살아야 하는 가 하는 문제를 놓고도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처음 예약했던 예식장은 망해서 문을 닫아서 다시 예약을 했고, 한복을 지으러 갔을 때는 우리가 골랐던 천이 아닌 다른 천으로 옷을 지어줬지만 더는 시간이 없어서 마음에 안드는 그 옷을 그냥 가져야 되기도 했다. 반지를 사고 나니 금값은 내렸고, 음식을 정하고 나니 무슨 가축전염병이 도니 어쩌니 해서 고기 요리는 다 바꿔야 했고, 야외 촬영을 하러 간 날에는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때늦은 눈이 내렸다.


그러다 그러다, 이건 뭐, 정말 뭐가 아닌건가 싶은 생각이 조금씩 들 때가 있었다. 따지고 보자면,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생기는 게, 그런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기운 없이 그녀와 마주하고, 그녀와 자꾸 다투고 어긋나고 나쁜 모습을 보고 보이고, 하다보니, 서서히, 그녀의 성격이 이런 사람인가, 그녀와 함께 살면 계속 이렇게 서로 갈등을 빚게 되면서 싸우고 살게 될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씩 그 벌레 같은 잡 고민들이 들러붙어 말그대로 벌레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이 이야기를 한 번 꺼내 봐야 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밤에 갑자기 그녀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었다. 결혼을 그만 두자고 갑자기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확 엎어버리자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훨씬 차분하게 한 번 생각을 다시 좀 해보면 어떤가 하는 것이었다. 잡아 놓은 날짜를 두고 무리하게 밀고 나갈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더 넓은 면에서 한 번 차근차근 다시 준비하고 생각해 보자고. 이게 이 정도로 이러면, 뭔가 좀 아닌거 아니겠냐고. 지금은 때가 좀 운이 아닌 때인 것 같다고. 서두를 필요 없지 않냐고, 그렇게 다시 돌아보고, 좀 더 준비가 되면, 다시 결혼 날짜 잡아보면 되지 않겠냐고, 그 정도 선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문제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는 데, 그 말을 하려고 망설이는데,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데, 무슨 말부터 하면 좋겠나 싶은데, 그런데, 그 때 그녀의 얼굴을 보는데, 그 표정이, 그 얼굴이.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번득 느껴졌다. 그 때, 그 기분이 참, 어찌나 착찹하던지.


나는 그녀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고, 그녀도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만난 곳에서부터 그녀의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잡고 좀 걸었다. 우리는 말도 없이 계속 그렇게 손을 잡고 밤거리를 끝없이 같이 걷기만 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많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계속 끝없이 걷기만 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케밥 파는 식당 자리 저쪽편에 그 아름다운 항공사 직원이 와 앉았다. 퇴근하는 길에 저녁이라도 먹고 가는 길로 보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마지막으로 그 직원을 찾아가 처절히 망한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 항공사 직원도 나를 알아보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괜히 뭐 아는 척을 하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기도 뭣했다. 그렇다고 뻔히 서로 얼굴을 기억하게 된 상황에서 얼굴을 까먹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척 있는 것도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음식에 양념이나 소스를 좀 더 뿌리는 동작을 하면서 항공사 직원을 안보는 연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케밥 요리 옆에 있는 향기로운 가루 같은 것을 집어서 케밥 위에 뿌렸다.


성심을 다해 가루를 뿌리고 있으니, 그걸 본 식당 주방장이 커다란 소리로,


"먹을 때 뿌리는 거 아닌데. 다 먹고나서, 다 먹고나서. 민트. 민트. 입. 냄새. 민트. 향기."


라고 소리쳤다.


내가 뿌린 것이 음식에 곁들여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조금 집어 씹어 먹는 것이라는 뜻인 듯 싶었다. 이를테면, 나는 다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먹는 수정과를 주요리인 낙지볶음에 부어서 섞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 주방장이 음식의 파괴를 막고자 경각심에 크게 말했기에, 모든 식당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보게 되었다. 당연히 항공사 직원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되도 않는 미스터 빈 싸구려 모조품 같은 형식으로 웃음을 지어 보인 뒤에, 부끄럽고 난감하여 예전 버릇대로 빠른 속도로 닥치는 대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무슨 이상한 깨 알갱이 같은 것을 하나 씹었는데, 그걸 씹자 활화산과 같이 매운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매웠다.


"훠어어어, 하아아아"


나는 입으로 바람을 빨아들이는 이상한 발음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혀를 식히려는 모습으로 급히 물을 들이켰다. 소용이 없었다. 양념이 없는 부분의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러나 양념이 없는 부분 조차도 미세하게 양념이 있기는 했다. 매운 느낌은 더욱더 강해졌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대안을 찾다가, 입가심으로 먹는다는 그 가루를 보고, 그 가루를 입에 한웅큼 털어 넣었다. 그러나 나는 재채기와 함께 코에서 그 가루가 기화하여 연기로 치솟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가루는 화끈거리는 성질을 가진 괴이한 것이었다. 매울 때 먹으니, 불쏘시개가 되어 더욱 불길을 드높이는 느낌이었다.


"물, 물 좀 주세요. 물이요. 얼음물."


나는 식당 종업원에게 괴로워하며 재차 물었다.


"얼음. 얼음물. 얼음물 없어요? 얼음?"
"뭐요? 예?"
"얼음물, 얼음물이요. 얼음."
"예?"


식당 종업원은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어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매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무슨 말이든 잘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난데 없이 청산별곡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미리도 괴리도 업시 - 매워서 우리로라. 얼음물 좀 주세요. 얼음물 좀.


"수우-"


나를 보고 있던 그 항공사 직원이 그제야 다가와서, 나에게 식당 종업원에게 통역 역할을 해 주었다. 항공사 직원은 "수우"라고 말했는데, 그게 터키 말로 물이라는 뜻이었다. 곧 터키 종업원들은 시원한 물을 내어 왔다.


"물은 수(水,shui)라는 발음이 중국어하고도 발음이 비슷한 점이 있어서 저는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 항공사 직원은 명랑하게 웃으면서 나를 도와 주었다. 역시 미모에 어울리는 좋은 친절함이었다. 나는 얼음 한무더기를 입안에 가득 물고 뺨에 동상이 걸릴 정도로 버티고 나서야, 혀가 추위에 마비가 되는 듯한 느낌으로 매운 맛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항공사 직원은 겨우 진정된 나를 두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확실히 손님의 날은 아니네요. 이렇게 고생을 많이하시고. 이런 거 보면, 손님이 중국에 오면 안된다는, 그걸 막는 무슨 하늘의 뜻인 거 아닐까요?"


그 친절한 직원이, 나를 도와주고 하는 그 가벼운 위로에 가까운 말을 듣자, 그러나 나는 다시 갑자기 욱하는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너무 매운 걸 먹어서 정신이 확 돌아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나는 다짜고짜, 좀 험상궂은 표정에 싸움을 거는 듯한 말투가 되어,


"하늘의 뜻이 막고, 뭐 그런게 어딨어요? 백두산이 터져서 비행기가 못가는 거는, 그거는, 뭐, 굳이 그게 뭔 뜻이라면 하늘의 뜻이라기보다는 그건 땅의 뜻이지. 뭐, 안그래요?"


라고 말했다. 항공사 직원은 영문을 모른채, 반은 겁에 질리고, 반은 여전히 친절한 웃음을 결사적으로 남겨 두면서,


"그렇긴 하네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 길로 일어서서, 다시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 했다. 갈 거다. 꼭 갈거다. 굳이 하북성 석가장이 아니더라도 둥베이 특급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는 지. 경유편이나 연결편을 이용해서 돌아 돌아서라도 가는 방법이 없을 지. 나는 공항의 항공사 부스들을 차례로 돌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이 늦어 하나 둘 항공사들은 철수하여 공항에서 떠나고 있었다. 가능성이 있는 한 항공사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복잡한 사정을 길게 찾아 보는 동안 더 많은 항공사들이 영업시간을 마치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업 마치고 문 닫는 항공사들 중에 나에게 방법을 찾아 줄 회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겁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밤은 깊어 가고, 공항은 점점 더 비어가고, 마음은 더 초조해져만 갔다.


그러나, 밤 11시 45분이 되자,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첫번째 방법은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향으로 가서,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중국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열차를 너무 오래타야 했기에, 토요일 낮까지 서울에 도착할 수 없었고, 러시아 비자를 받을 방법도 없었다.


두번째 방법.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수단은 몽골 울란바토르로 비행기로 간 뒤에, 거기서 몽골 횡단 철도를 타고 중국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백두산 분화 대책이 나올 무렵에 제도가 바뀌어서 한국인은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몽골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토요일 아침에는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손에 주렁주렁 들고 다니던 넥타이 핀과 지갑을 케밥 식당에 두고 돌아다녔다. 그 친절한 항공사 직원은 그걸 나에게 찾아 주려고 나를 찾아 왔다가, 나와 같이 공항을 다니면서 통역 겸 안내 겸 해서, 한국으로 갈 길을 찾는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거의 텅빈 공항에서 몽골로 가는 마지막 비행편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그 항공사 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문제가 뭐냐면요, 손님, 이게... 몽골 횡단 철도 시각이 울란바토르행 비행기 도착 시간과 좀 어긋나요. 그래서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면 기차는 벌써 떠난 뒤가 되거든요. 딱 한 몇 십분 어긋나는 건데...  지금 계속 이야기 하면서 찾아 보니까, 억지로 방법을 하나 찾을 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일단 울란바토르에 가서, 거기서 TMB라는 고속버스를 타고 간발의 차이로 떠난 열차를 쫓아가는 수가 있기는 있어요.


이게 생각 대로만 맞아 떨어지면 열차가 중간에 좀 오래 서는 역에 있을 때, 따라 잡아서 열차에 탈 수도 있기는 할 거예요. 그런데, 이건 너무 번거로운데, 어쩌죠, 손님?"


아까 케밥 먹다가 매워서 괴로워할 때, 그 항공사 직원은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보기에는, 운명이라면 이런게 운명이다. 그 밤, 터키 이스탄불 아타 투르크 공항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몽골 울란바토르 행 항공편 자리에 앉아서, 나는 그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던 대륙간 항공편 특선 "웨딩 코만도" 예고편을 숙명처럼 또 보게 되었던 것이다.


 


8.
몽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아까 너무 매운 걸 먹어서 그런지, 배가 아프고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자리가 비행기 자리 중 가운데 자리라서 왼쪽, 오른쪽 사람들에게 비켜 달라고 하기가 번거로웠다. 게다가 그렇게 나가 봐도 화장실이 비어 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서,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그 깊은 밤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잠깐 잠깐 틈이 날 때를 기다리면서, 나는 화면을 조작해서 뉴스라도 좀 보려고 했는데, 또 이상하게 터치 스크린으로 조작하는 화면에 클릭이 잘 되지가 않았다. 낑낑거리면서 뉴스나 짧고 빠르게 넘겨 볼 수 있는 코미디 쇼를 보려고 하면, 자칫 엉뚱한 곳이 클릭 되고, 갑자기,


"웨딩 코만도-"


라는, 이제는 극히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가 흐른 후, 터키어 자막과 몽골어 더빙으로 나오는 웨딩 코만도 예고편이 튀어 나왔다. 나는 웨딩 코만도가 안 튀어 나오게 하기 위해, 화면에 표시된 취소 버튼을 손가락이 뜨거워 지도록 막 눌려 댔는데, 또 그럴 때는 버튼이 잘 안 눌려져서, 어떨 때에는 예고편이 다 끝날 때 까지 계속 취소 버튼만 누르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면, 괜히 다음 화면으로 바뀐 다음에 취소 버튼이 눌려져서, 갑자기 처음 화면으로 빠져 버려서 맨처음부터 조작을 다시 해야 하는 일도 몇 번이나 겪었다.


몇 번 당하고 나니, 어쩔 수 없다 싶어서 나는 기내 인터넷에 전화를 연결해서 전화나 들여다 보기로 했다. 기내 인터넷은 원래 워낙에 느리고 자주 끊기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이렇게 느린 인터넷은 더욱 화장실 가고 싶은 갈등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로 연락했다.


"지금 기차 타러 비행기 타고 가는 중인데, 좀 늦어져서, 토요일 아침 되면 서울에 도착할 거 같아.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곧 안있어 연락이 왔다.


"알았어. 기다릴께. 너무 무리하지 말고. 토요일 아침까지 못오면 그 전에 연락만 해주면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아냐, 이제 기차타고 갈 거니까 토요일 아침에는 꼭 갈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연락하고 나니, 나도 좀 불안해 졌다.


나는 뉴스를 뒤져 보기 시작했다. 외국 방송에서 짤막하게 둥베이 특급에 대해 소개 되고 있었다. 몇 천 사람이 둥베이 특급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반대 정치인들은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만 악용되는 둥베이 특급의 관리 부실"이라고 성토하는 모습도 나왔다. 북한 당국과 협조가 잘 안되어서 운행 규칙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심이었다. 어쨌거나, 저 정도면 좀 불편할 수도 있고,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 계속 잘 다니고 있다는 것 아닌가. 몽골에서 기차만 잘 타면, 그때부터는 주욱 열차로 계속 달려서 서울까지 갈 수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한 가지, 몽골 울란바토르에 내려서, TMB 라는 버스로 재빨리 따라가서 몽골 횡단 철도의 먼저 떠난 기차를 따라 잡는 대목 이었다. TMB는 제대로된 자료도 잘 없었고, 또 열 시간을 넘게 죽어라 달려대는 버스라니 자칫 길이라도 막히면 또 한 몇 시간 차이나서 기차를 놓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차피 잠 자기도 글렀다고 생각한 나는, TMB에 대해 알아 봤다. TMB는 중국과 한국에서 버스 운전을 하던 몽골사람들이 최근에 몽골로 돌아와서 운영을 시작한 것이었다. 워낙에 먼데서 먼거리를 움직이다 보니 몽골 횡단 철도는 앞 뒤로 시간이 어긋나기가 일 수 였고, 그래서 그 빈틈을 노리고 몽골 횡단 철도와 같은 경로로 내달리는 초장거리 버스 노선이 바로 TMB 였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미국제 중고 버스가 굉장한 속도로 곧게 뻗은 평지길을 지겹도록 내달린다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운영되고 있고, 특히 빨리 달리기로 정평이 나 있어서, 계속해서 타는 사람도 많아지고 노선도 점점 더 넓혀지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러면 몽골 공항에 내리면 어떻게해야 TMB 타는 곳까지 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만 십분, 이십분이라도 더 여유를 갖고, 진작에 미리미리 움직여야만 했다. 이제 더는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부터 다 시간 맞게 움직여야, 겨우 겨우 토요일 아침에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 일정이었다. 한번 삐끗하고, 딱 한나절만 어긋나도 결혼식 시간이 지나게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최대한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차를 갈아타기를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는 점심때였다. 나는 바쁘게 뛰어나와 공항 밖으로 나오려 했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비자가 잘 처리 되었을 지, 입국 심사를 할 때 좀 긴장 되기는 했지만, 문제 없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공항 문을 나섰다.


TMB니 몽골 횡단 철도를 알아보면서, 나는 몽골의 경치를 보고 넓게 펼쳐진 초원과 그 위로 높은 하늘이 펼쳐진 이국적이 광경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맨 먼저 느낀 것은 춥다는 것이었다. 5월이었는데도, 바람이 불 때마다 서늘하니 저절로 팔짱을 끼게 되었다. 하늘은 높다면야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따지고보면 원래 하늘은 높은 게 정상인 것이었다. 공항 건물은 그냥 보통 공항 처럼 생겼고, 공항 답게 평평한 곳에 있기는 했는데, 눈 앞에 나지막한 산들이 보였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봤던 뭐 초원의 나라나 이런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한국의 보통 공항 같았다.


별 특이한 게 없는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공항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나섰다. 그런데, 비행기 착륙시간과 딱 맞물려서 그런지, 택시를 잡기가 어려웠다. 나는 공항 저편 끝까지 가면서 택시를 찾아 다녔는데, 한참 동안 택시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도 예상했던 시간에 비해서는 꽤 일찍 와 있는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동안 워낙 당한 것이 있어서, 더 기분은 초조해져 가기만 했다.


주변을 돌아 보니, 사람들은 택시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보통 자가용 승용차를 세우고는, 그 운전자와 뭐라고 흥정을 해서 얼마간 돈을 줄테니 어디까지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그 차를 타기도 했다. 택시는 더 찾아 보기 쉽지 않았기에, 나는 나도 저렇게 차를 타야 겠다고 생각했다.


"저, 실례합니다. 제가 버스 타는 데 까지 가려는데요."


말을 하는데, 지나가는 차를 세워 흥정하는 데에도 어떤 요령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규칙이 있는 건지, 혹은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나는 잘 차를 탈 수가 없었다. 점차 시간은 예정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미리미리 진작진작 가서 기다릴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어떻게든 이제 1분 안에 차를 타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몇 번이나 계속 나는 거절을 당했고 - 사실 말이 안 통하니, 그게 거절을 당한 건 지 내가 괜히 운전자를 방해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 공항에 그저 발이 묶이는 느낌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길 건너편을 보니, 마침 중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한 여학생이 노란색 경차 한 대를 세우고는 뭐라고 흥정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그 학생 곁으로 가서 영어로 물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제가 TMB 버스 타는 곳까지 가는데, 같이 가도록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학생은 표정이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아이의 눈빛이었지만, 나는 어째 겁에 질려서 잠시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학생은 말없이 나를 좀 보더니, 이윽고 운전자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는 차 뒤로 가서 트렁크를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짐을 싣고 차 안쪽 구석에 들어가 앉았다. 학생도 뒤따라 탄 뒤에, 몽골어로 운전자에게 뭐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TMB 타는 곳까지 가달라고 좀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학생에게 이야기 하자, 학생은 대답 없이 운전자에게 뭐라고 한 마디 더 했다. TMB까지 가자는 말이지 싶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계획했던 시간보다는 2분 즈음 빠른 시각이었다. 차가 크게 막히지 않는다면, 한 시간 정도 버스 출발에 앞서서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안도감이 느껴져,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푹 쉬었다. 터키에서 몽골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못잤기에, 갑자기 확 피곤했다. 몸을 안쪽으로 깊숙히 편히 기대었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절로 입에서 새어 나왔다.


"휴- 여기는 또 뭐 이러냐."


내가 무심히 말하고 창 바깥을 보려는 데, 옆 자리의 학생이 한국어로 나에게 말했다.


"여기가 뭐 어떤데요?"


나는 놀라서 학생을 쳐다 보았다. 학생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쳐다 보고 있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어... 저... 엇? 뭐 이런 소리나 내고 있으니, 학생은 그 짜증을 톡 터트리는 눈짓을 한 번 한 뒤에 고개를 돌려 반대쪽 창문을 보았다. 나는 학생에게 물었다.


"어, 한국분이세요?"


학생은 나를 돌려다 보지도 않고 이야기 했다.


"몽골 사람이거든요."


나는 갑자기 친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얼빠진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한국말 엄청 잘 하시네요."


내 말에 학생은 아무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창 바깥 경치만 보고 있었다. 나는 멋적어 머뭇머뭇 하다가 고개를 돌려 나도 바깥 경치를 보았다. 비록 14살, 15살 먹은 아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압도 되어 있었다. 이 아이의 인도로 버스 타는 곳으로 가고 있었기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황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계속 그렇게 어정쩡한 분위기로 말도 없이 가다 보니, 나는 어색한 것을 견디기 어려워 졌다. 나는 한참만에 다시 그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제가 말을 좀 잘 못했는데요. 제가 무슨 여기 몽골이 특별히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게 다 이상하다는 거거든요. 제가 요 며칠간 일이 좀 꼬여서. 그러니까, 저, 혹시, 한국에, 백두산 화산이 터진 거 혹시 아시나요? 그러니까 북한 말이죠. 북조선. 거기에 산, 화산이요."


뭐라고 설명을 하려다 보니, 말은 점점 더 구구하니 잡다하기만 했고, 사연은 짧게 말하기 어려웠다. 학생은 한 번 힐끗 보는 듯 하더니, 다시 또 답답하고 재미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헛나왔어요. 정말 그런 뜻 아닌데. 그게 제가..."


학생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나는 짧게 설명도 못할 변명을 길게 늘어 놓을 분위기가 영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또 나란히 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이 없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갔다. 나는 굉장히 어색해서 자는 척을 해 보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는 혹시 잘못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했다. 어색함은 그 탓에 계속 이어졌다. 비록 경차이기는 했지만 자리 가운데에 칸막이라도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결국 다시 학생에게 말을 했다.


"저, 한국말은 혹시 어디서 배우셨어요?"


학생은 고개를 앞쪽으로 보고, MP3에서 이어폰을 꺼내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한국에서 일하실 때 만나셔서, 평택에서 좀 살았거든요."


내가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면서 대화를 이어 보려는데, 학생은 이어폰을 자기 두 귀에 꽂아 막고, 음악 소리를 키웠다.


나는 다 포기하고, 그냥 창 바깥이나 보기로 했다. 복잡한 거리에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약간씩 속도가 늦어질 때가 있기는 했지만, 심하게 막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차 같은 것이 지나가는 지, 길에는 전깃줄이 거리마나 낮게 깔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좀 낡은 집이 보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고풍스럽게 지은 듯 보이는 큼직한 유럽식 건물 같은 것도 보였다. 가다보니 아주 널찍한 광장 같은 것이 있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돌로 그 넓은 광장이 잘 단장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그 사이 사이에, 과연 내가 아시아 다운 아시아로 넘어 왔는지, 복잡한 길모퉁이에 시장이 자리잡고 있고, 그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 재료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스쳐 지나가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를 어느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다니며 점심거리? 저녁거리를 고르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한번 돌아보니, 내가 보는 이 풍경을 이 학생도 무심히 쳐다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어머니께 처음 소개 시켜 주었을 때가 잠깐 다시 생각이 났다. "정말 결혼까지도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로 한 며칠이 지나고 나서, 어머니께서는 스스로 무슨 다짐을 하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뭐... 요즘에는 워낙에 많기는 하니까."


그리고 한숨을 한 번 쉬시더니,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에는 혼혈이 워낙 많기는 하니까."
"걔는 혼혈은 아니죠. 부모님 두 분 다 방글라데시계 이시니까."
"내 말은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한국사람이죠."
"아니, 내 말은 태어날 때 부터 한국사람은 아니잖아."
"부모님께서 결혼 하시고나서 한국 국적 따셨으니까, 걔는 태어날 때부터 한국사람으로 태어 났어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냐? 그러니까 완전히 한국사람은 아니잖아."
"완전히 한국사람이죠. 제가 무슨 말씀 드리려는지 모르십니까?"


시내에서 차는 높다란 지붕에 처마가 날카롭게 올라간 마치 좀 뚱뚱한 탑처럼 생긴 커다란 기와집 건물 뒤의 길로 들어 섰다. 그 기와집 건물은 일단은 한국이나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간만에 볼 수 있는 "동양"스러운 형식이었다. 그러나 벽은 흰 색이고 기와는 불그스름한데다가 지붕 꼭대기가 높이 치솟아 있어서, 익숙한 모양은 아니었고 무슨 건물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거기서 조금을 더 가더니 차가 자리에 멈추어 섰다. 학생은 먼저 내리면서,


"여기요."


라고 짧게 말했다.


큰 길가에 여러 차들이 들어서 자리잡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라고, 커다란 광고판들이 세워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김 없이 광고판 중에는 "웨딩 코만도"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나는 운전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삯을 치르고는, 차표를 파는 사람을 바쁘게 찾았다. 예상했던 시각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온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서둘러서 좀 더 너른 시간을 찾고 싶었다.


"T.M.B. 요. T.M.B. 기차를 타고 가는 걸, 버스를 타고 쫓아가서 따라 잡는 거, T.M.B. 요."


나는 손짓 발짓으로 최대한 쉽게 표현하면서 차표 파는 사람에게 말했다. 차표 파는 사람은 가끔 한국 사람들이 TMB를 타곤 하는 지, 금새 알아 듣고, 노선도를 보여 주었다.


노선도를 보니, 구간별로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되어 있었다. 구간에 따라 달라지는 요금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목표로 한 지점까지 가면, 몽골 횡단 열차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제 시간에만 도착하면, 좀 빡빡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열차역까지 움직여 충분히 기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괜히 그런 생각이 드니,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서 2시간 정도 더 차를 타고 더 앞질러 나아가서 끝까지 가면, 시간상 몽골 횡단 열차가 도착하기 2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TMB는 열차보다 조금 더 뻘리 가고, 정차 시간은 더 짧으니까, 가면 갈 수록 열차를 더 앞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구역 뒤로는 열차가 정비를 하고 궤도를 한 번 수정하기 때문에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서, 더 시간을 벌 수도 있었다. 덜컹거리는 도로에서 버스를 타고 달리느라 좀 더 피곤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좀 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더 안전하다.


나는 더 안전하게 가리고 결심하고 노란색 구역까지 끝까지 가는 차표를 사기로 했다.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던 나는 차가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올라가서 텅빈 차에 앉았다. 아직 출발시간은 한참 남았기에 아무도 타지 않아서 나 혼자였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냥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알 수 없는 몽골어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아무 것도 없는 차안에만 가만히 있자니 좀 지겹기도 하고, 묘하게 그 덕분에 차가 정말로 제 시간에 가는 것인지, 내가 타려는 차가 맞는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괜히 다른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차 안에서만 가만히 기다렸다.


차가 출발할 시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차를 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이상 온 사람들은 저마다 같이 앉았다. 그런데, 혼자 온 사람들도 내곁에 앉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버스의 운전석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그동안 감지 않은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을 보니, 한 마디로 지저분했다. 지저분해도 아주 전폭적으로 지저분했다. 그래서 생각이 나기에 옷자락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아 보니, 그간 쩔은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과연 아무도 곁에 앉지 않을만 해 보였다. 한 세 시간 정도라도 시간이 나면 좀 씻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거의 다 탔을 때 즈음, 거진 마지막에 바로 나와 공항에서 같이 차를 타고 왔던 그 학생이 차에 탔다. 차에는 사람이 이제 꽤 많이 타고 있었으므로, 그 학생은 달리 앉을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학생은 내 옆에 앉았다. 학생은 나를 알아 보았다. 학생은 고개를 까딱 숙여 아는 척 하고 인사를 하는 듯이 하였으나, 표정은 결코 인사라는 행동의 일반적인 의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이게, 저 이쪽까지 가는 버스 맞죠?"


나는 차표에 씌여 있는 지명을 보여주면서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은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한 번 까딱 했다.


잠시 후 학생은 도시락 같이 생긴 종이 상자를 열더니, 거기에 있는 것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언뜻 보니, 그것은 만두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다. 만두 보다는 좀 크고, 꼭지를 아물어 놓은 부분이 크고 꼬깃꼬깃 좀 더 화려하게 되어 있었고, 노란색 빛깔이 도는 것도 좀 묘하게 보였다. 알 수 없는 음식이었으나, 냄새도 언뜻 만두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왜 저 음식에 이와 같이 관심을 갖는 지 스스로를 반성하다가, 속이 좋지 않아 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점이 생각 났다. 그러고보니, 무척 배가 고프고, 그 만두 같은 것이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학생은 딱 하나를 먹더니, 입맛이 없는지 더 먹지 않고 그 상자를 다시 덮어 두었다. 나는 학생에게 물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그거 어디서 사나요?"


내가 묻자, 학생은 나를 쳐다 보았다. 방금전에도 만난 사람이었지만, 아까 거울을 한 번 보고 나니, 나는 엉망인 몰골인 내 모습이 참 모자라 보이겠구나 싶었다. 학생은 대답하지 않고, 그 상자를 통째로 나에게 건내 줬다. 내가 엉성하게 그 상자를 받아 들고, 쳐다보니 학생은 고개를 흔들고,


"이제 차 떠나니까 못사요."


라고 말하고, 자리에 기대어 자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 곧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상자 속에 든 것을 집어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조금씩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벌써 몇 시간 째 잠을 못자고 끝도 없이 계속 싸돌아다니기만 했는지. 한 번 졸음이 오고, 자리는 꽤 편하다고 생각하니, 정신 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다행히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을만큼 오래도록 버스는 달려가야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빠져 나와 넓게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초원을 달린지 조금 지나지 않아, 나는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본 것이 꿈과 섞였는 지 어쨌는지, 완만한 언덕만 가물가물히 멀리 보이는 광막한 평원 저 끝에, 그 먼먼 벌판 한 가운데에 우뚝히 서 있는 커다란 거인의 석상 같은 것이 보이는 듯도 하였다.


그렇게 자고 자고 또 자고 쉬었다가 다시 자고 계속 자고 이렇게 많이 잘 수 있을까 싶을만큼 긴긴 시간을 차 안에서 자고나니, 버스가 도착할 곳에 다가가는 곳 즈음에 도달하였다. 주변 풍경은 처음 잠이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으나, 그 사이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내렸는지, 차 안에 탄 사람이 몇 없었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 학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학생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버스는 내가 내려야할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다.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내렸다. 나도 뒤늦게 주섬주섬 몸을 추스려 버스에서 내리고, 버스에 실려 있던 짐도 꺼냈다. 버스는 바로 어디론가 다시 길을 떠났다.


버스에 내리고 보니, 바로 비행기 안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상상했던 그대로의 몽골 풍경이 기막히게 펼쳐져 있었다. 짧게 자란 풀이 파랗게 덮혀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초원이 계속해서 멀리멀리 길게 길게 펼쳐져 있었고, 그렇게 아무것도 가로 막힌 것이 없으니 지평선 저쪽 끝에서 부터 반대쪽 끝까지에 이어져 넓은 하늘이 신비로운 파란색으로 차갑게 펼쳐져 있었다. 동서남북 어느쪽을 보아도, 어느 쪽은 저 멀리 조금 솟아온 언덕배기가 보이고 어느 쪽은 풀이 조금 드물어져 흙먼지가 휘날리고 있는 곳이 보이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사이를 우주를 배경으로 어떤 거대한 것이 슥슥 붓질이라도 한 것 마냥 온 하늘을 두고 시원시원하게 하얀 구름이 높디 높은 곳에서 흩날려 죽죽 뻗어 있었다. 요란한 것도, 정교한 것도 없이, 그저 아무것도 없이 몇 백 킬로미터 저 편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이 흘러가는 빈 풍경만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치명적인 문제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아주 아름답고 멋진 풍경만이 보일 뿐, 도무지 기차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9.
초원의 가운데에서, 저마다 이쪽 저쪽으로 흩어지고 아무도 없던 그곳에서, 나는 갑자기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왜 아무것도 없는 건가? 그 넓게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어디를 가면서 뭘 찾아본다든가 하는 생각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냥 어딘가에 내가 버려진 느낌이었다. 뭐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지도라도 찾아보려고 전화를 꺼내 봤는데, 신호가 약해서 인터넷을 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어디를 가고 말고 시간을 맞히고 놓치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눈에 안 띄고 길잃고 찬바람에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좀 풀리면서 걸음을 딛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안돼. 안돼. 침착하게. 침착하게. 나는 속으로 계속 돌이켜 보았다. 머릿속이 이리저리 헷갈리면서, 토요일에 아슬아슬하게 내가 올 줄로만 알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이며, 이제껏 그녀와 만나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이며, 기타 인생 살아온 날들의 여러 잡다한 순간과 평소에 결심하고 상상하던 것들이 이리저리 밀려 왔다.


일단 사람이 좀 있는 곳으로 가야 뭐라도 되리라 생각하고, 나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걸어 갔던, 언덕 방향을 향해 가보기로 하였다. 낮은 언덕배기였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한참 걸어가야 했다. 바람이 한 번씩 불 때마다 엄청 추웠고, 구둣발로 풀밭을 디디면서 가다보니 발과 바짓단에 흙먼지가 보얗게 묻어 나왔다. 그렇지만, 마음이 초조하다보니 발걸음은 자꾸 빨라지기만 했고, 그러다 보니 걸음이 자꾸 헛디뎌 질 때도 많았다.


언덕배기 너머에는 유목민들이 사는 집들이 몇 채 모여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집들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천막이었다. 천막을 중심으로 울타리 몇이 있고 가축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향으로는 멀리까지, 언덕 바로 아래쪽 아래 마다, 그런 천막들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었다.


다행히 누구라도 있구나 싶어서, 나는 우선 죽지는 않겠구나 하고 안심을 했다. 안심을 하자마자,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떨어졌으며, 대체 어떻게 시간 맞혀 서울까지 갈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가까이 보이는 천막에는, 어느 노인이 어디서 끌어오는지 천막 안쪽으로 이어지는 전기선을 연결하느라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노인에게 영어로 여쭈었다.


"기차역이 어디있나요?, 기차역이요."


노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노인은 갑자기 나타난, 지저분한 몰골의 먼지 뒤집어 쓴 겁먹고 초조해 얼굴 창백해진 외국놈에게 동정심이 생겼는 지, 관심을 갖고, "뭐라고?" 라는 뜻의 몽골어로 소리를 질러, 나와 대화를 하려고 했다. 나는 노인에게 다시, 이번에는 한국어로 말했다.


"기차 있잖아요. 기차. 칙칙폭폭"


나는 기차가 가는 소리를 흉내내며, "기차", "기차역"이라고 몇 번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저건 아니었다. 뭔가 내가 잘못 되었다는 확인이었다. 이럴 수가. 왜? 그리고 나서, 노인은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잘 보라는 투로, 언덕 너머 지평선 저 먼쪽을 가리켰다. 나는 유심히 그 쪽을 봤는데, 아무리 봐도 거기에는 그냥 초원과 황야만 계속 보일 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기차역이 없다는 건가? 나는 다시 이쪽저쪽을 다니면서 보이는 사람만다 이것저것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워낙에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있고, 뭘 찾아 볼 곳이 있고, 따질 것이 있어야, 찾아 보고 물어보고 고민이라도 하지, 이건 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을 헤메고 있으니, 공항에서부터 계속 같이 왔던 그 학생이 보였다. 그냥 중학생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극히 중요한 인사였다. 나는,


"여기요! 잠깐만! 이쪽이요!"


하고 높이 소리지르며, 그 학생을 찾아 뛰어 갔다.


"저, 죄송한데요."


학생은 교복에서 일하는 옷차림으로 갈아 입은 직후였고, 무슨 일을 하려는지 옷소매를 걷고 있었다. 학생은 나를 보았다.


"이제 그만 좀 죄송하시고."


나는 그 말을 일종의 반가운 환대로 받아 들이고, 간곡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제가 몽골 횡단 철도 타려고, 기차역 간다고 이쪽으로 왔는데, 이쪽에 몽골 횡단 철도 타는 역이 있는 거 아닌가요? 여기가 제일 먼쪽 구간이라서 노란색으로 노선도에 그려져 있는 거 보고 탔는데."


학생은 나를 한심하게 여기며 답하였다.


"노란색은 아직 철도 미개통 구간이라는 뜻인데."
"예? 예? 그러면, 그러면, 여기에 기차역이 없나요?"
"저 쪽으로 한 30 ~ 40 km 그 즈음 가면 자밍훗이라는 데가 있는 데, 거기에 몽골 횡단 철도가 서지요."
"예? 예? 30 킬로미터요?"
"40 킬로미터일수도 있고."


이게, 이게 뭔가. 나는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꺼내서 시간부터 보았다. 불과 3시간 정도가 지나면 자밍훗을 열차가 지날 상황이었다.


"자밍훗까지 가는 뭐, 버스나, 택시나, 뭐 그런거 없을까요?"
"버스는 아까 우리가 타고 온 게 저녁 때 즈음되면 오는데, 그걸 타고 다음 정류장에 내리면, 거기에 여행 온 사람들 싣고 가는 차들이 있으니까 그걸 하나 얻어 타보면 되겠죠."
"저녁 때, 저녁 때요? 그러면 열차를 놓치잖아요."
"혹시, 뭐 운 좋으면 여기 사는 사람들 중에 차 가진 사람이 잠깐 돌아 올 수도 있으니까 찾아 보시던가."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언덕배기 위로 뛰어 올라가 보았다. 가리우는 것이 없으니, 버스가 섰던 도로가 멀리서도 잘 보였다. 혹시 얻어 탈 차가 지나지는 않을까 유심히 보았다. 초원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가물가물하게 이어진 그 긴긴 도로 이쪽편 끝부터, 저쪽편 끝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 보자. 방법을. 푸르게 펼쳐진 하늘, 그 아래의 넓은 초원. 그 가운데에 솟은 어느 언덕 꼭대기에서, 나는 한 손에는 전화를 들고, 다른 손에는 끌고다니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계속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의 장점과 단점을 한 번 나눠서 생각해보자. 장점은 일단 내가 어디에 있는 지는 알게 되었다는 거하고,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거하고, 전화는 된다는 거하고, 또 배가 고프지 않고 힘이 남아 있다는 거하고, 또... 일단 버스를 기다렸다가 탄 다음에, 간곡하게 기사에게 설득해서 최대한 빨리 가 달라고 하면? 안된다. 일단 버스가 오는 시간이 늦을 것이다. 그러면, 기사 전화 번호를 지금 알아내서, 전화를 해서 일단 빨리 와달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시간 맞춰 며칠에 한 두 번씩 보는 버스일텐데, 그런다고 해서 빨리 오지는 않겠지.


그러면, 그러면, 그렇지. 여기에는 아직 화산재가 없지. 그러면, 울란바토르에 적당한 데에 전화를 해서, 여기로 헬리콥터를 오라고 해보자.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아무리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끌어 올려 본다한들 돈이 없다. 아, 안되는데. 이거 뭐, 아무 방법 없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어도, 오늘 밤까지만 시간이 있어도. 뭐든 연결된 교통 수단이 있고, 도시가 있고, 사람이 있어야, 어떻게든 돌아 돌아서라도 자밍훗까지 가 볼 텐데 딱 끊긴 채 텅텅 비어 있어서 닿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문득, 저 뭐가 저 너머에 있을 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멀리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지평선 저 쪽에, 그 한 켠에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어느 막막한 대지 한 가운데에 아무도 오지 않은 곳에 홀로 어슬렁거리며 거닐고 있는 태고의 거대한 신비로운 괴수가 한 마리 있어서, 저 파란 하늘이 해가 지면서 붉게 변해갈 때에 하늘을 향해 한 번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 희미하게 귓가에 울린다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해도 아무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뭐가 보여야, 뭐가 있어야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이든 할 것 아닌가.


나는 시간을 한 번 확인 해 보았다. 전화에는 여전히 "토요일"이 붉게 표시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토요일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이 되어 있을 지, 그녀는 어떨 때 즐거워 하고, 그녀는 어떨 때 걱정을 하고, 그녀는 어떨 때는 화를 내는지, 나는 대강은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둥베이 특급을 타고 일찍 올 수 있다고 했을 때, 분명히 엄청나게 기뻤겠지, 그런데 그러다가 하루가 더 걸릴 거라고 하고, 또 하루가 더 걸릴 거라고 했을 때, 조금씩 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실망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면, 힘들게 길 찾아 오는 내가 혹시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까봐, 실망한 것을 드러내지는 않고, 그래도 괜찮다고 괜찮다고만 했을 거다. 그러다가, 이제 금요일 늦게야 올 거라고 하고, 다시 토요일 아침에야 오겠다고 자꾸 늦어지니까, 더 불길하게 여기고, 더 불안하게 여기겠지. 이러다가, 덜컥 토요일에 못 온다고 하지나 않을까 지금 겁내고 있겠지. 역시 계속 어렵게만 갈 수록 힘들게만 꼬여서 한 가지 쉽게 풀리는 일이 없다고 속으로는 한숨을 푹푹 쉬고 있겠지.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말을 못하고. 그 말을 듣고 나까지 그렇게 절망적이고 불운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정말 정말 절망적이고, 정말 불운한 게 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내가 들을 때는, 그냥 밝은 목소리를 지어 내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잘 조심하면서 오라고, 그렇게만 말하는 것이다.


다시 다시. 아까 그 학생 말대로, 학생 말대로 해보자. 차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찾아 보는 거지. 여기서 차를 가진 사람을 찾아 보자. 이쪽까지 오면서 차를 가진 사람은 못봤으니까, 저쪽으로 가면서 한 번 물어 보면. 지금 남은 시간이 3시간 정도니까, 두 시간 만에 차 가진 사람 한 사람만 찾아도, 빨리 달리면 기차가 오기 전에 자밍훗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언덕에서 뛰어내려와 그 학생이 있는 곳에 갔다. 학생은 저녁거리를 만드는 지, 불위에 걸어 놓을 솥을 들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저, 죄송한데요. 이쪽 편에 아시는 분 중에, 혹시 아까 말씀하신대로, 인근에 차 가지신 분 안계신가요?"


학생은, 내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좀 떨고 있기까지 한 - 사실 추워서 떨고 있기도 했다 - 것을 보고는, 내 얼굴을 빤히 잠시 쳐다 보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학생이 무슨 말을 해 줄 지 기대하며,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없어요."


그리고 학생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어" 하는 소리를 나는 잠깐 냈다. 그렇지만 곧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학생을 따라 가면서 계속 물었다. 학생들은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는 사이를 지나 걸었다. 나도 가축들 틈바구니를 걸었다.


"저, 제가 정말 꼭 기차를 타야 돼서 그러거든요. 제가 한국까지 가야 되는데, 그게 결혼식이 그때라서요. 기름값이랑 운전비랑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로 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좀 없을까요. 좀 상태가 안 좋은 차라도, 그러니까 오토바이나 트럭이나 뭐 그런거라도. 뭐 좀 없을까요?"


학생은 내가 결혼식이라고 말을 할 때, 내 몰골을 보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 닥치라는 눈으로 한 번 노려 보았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정말 간곡히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점은 진심으로 느꼈는지, 그 와중에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친근해 보일 수도 있는 표정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듯 하였다.


"그런데..."


학생은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정말 아무데도 없어요."


나는 안그래도 남지 않은 기운이 쭉쭉 더 빠져 내려 몸 껍데기만 팔랑팔랑 몽골 초원의 긴 바람에 흩날려 하늘 저쪽끝으로 휘휘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길게 울부 짖듯이 말했다.


"그러면, 도대체 여기에는 있는게 뭔데에에에에-"


나는 절규하며 눈물이라도 흘리려 했는데, 그때 갑자기 어깨쪽에서 이상한 물컹하고 차가운 것이 나를 덥쳤다. 그래서 나는 놀라서 절규니 뭐니 멈추고, 소리를 내며 움찔 물러 나왔다.


그 이상한 것이란, 바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한 마리 건장한 몽골 말이 입에 침을 흘리다가 얼굴을 내 어깨쪽에 갖다 비빈 것이었다. 그 모양을 보더니, 학생은 말을 겁내고 있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학생은 처음으로 나에게 장난스럽지만 웃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


그러한 사연으로, 나는 이제 3시간 후면 떠날 몽골 횡단 특급 열차를 놓치기 전에 타기 위해, 어느 중학생이 모는 말을 타고, 정신 없이 초원을 달려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말을 처음 타는 나는 말발굽 소리에 맞춰 말 안장 위에서 흡사 떡을 공모양으로 뭉쳐 던지는 듯이 마구 내동댕이쳐 졌고, 말에서 떨어지나 싶어 학생을 붙잡고 늘어질 때마다, 학생은 "야, 너때문에 나까지 떨어질 뻔했잖아"라고 나를 타박했다. 그때마다 내가 "정말 죄송한데, 내가 말을 탈 줄을 몰라서" 라고 하자, 학생은 "그냥 생각 없이 붙잡고 붙어 있지 말고, 말이 올라 갈 때 같이 올라 가고, 말이 내려 갈 때 같이 내려가게 이렇게 움직여야지"라고 다그쳤지만, 나는 도저히 그 이치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중간에 멀리 초원 가운데를 지나는 늪지와 개천이 보이자, 학생은


"저기 개천을 건너서 가면 빨리 가고, 돌아서 가면 늦게 가는데, 어디로 가나?"


라고 말했는데, 나는 엉망으로 말 잔등에서 뒹굴다가,


"빨리, 빨리"


하고 말했다. 학생은 "딱 한국에서 온 티를 내네." 하고 말하고는 말을 몰아 개천을 뛰어 지나갔다.


그 덕에 우리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썼고, 황무지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흙바람이 몰아쳐 먼지를 왕창 뒤집어 쓰기도 했다.


세 시간을 거의 꽉 채워 내달렸을 무렵, 철도 선로가 보이고, 한쪽 끝편에 달려오는 열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가 떠나기 전에 가야 했기에, 학생은 더욱 빠르게 말을 몰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을 빨리 몰때 "이랴 이랴"라고 소리치는데, 이 학생이 하는 말은 특이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는데,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는 굉장한 바람과 함께 흙먼지가 몰려들어 자지러질듯이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크 써, 마스크"


학생이 말했다. 학생은 천으로 입둘레를 막아 묶었다. 나는 마땅히 마스크처럼 쓸 것이 없어서, 뒤적뒤적하다가 그녀에게 주려고 산 해리포터가 그려진 스카프를 꺼내서 입 앞에 둘렀다. 열차를 향해 그러고 달려가는 우리 모양을 보니, 영락 없이 복면을 하고 달려드는 뭔 열차 강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기차 안 창가 쪽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 재미난 것을 보듯이 우리를 바라 보기도 했다.


마침내 자밍 훗 시내로 들어설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열차와 거의 나란히 같이 달리게 되었다. 열차 옆 면에는, 이제는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는 "웨딩 코만도" 광고가 붙어 있었다.


 


10.
지금까지 나는, 내가 출장 갔을 때 갑자기 결혼식에 제 시간에 못 가게 되어 놀랐던 일과, 고민 끝에 돌아돌아 결혼식에 시간 맞춰 오려는 계획을 세운 일과, 영국, 터키, 몽골을 거쳐 마침내 한국으로 이어지는 열차에 타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구나 생각할 만한 바람직한 결과와 같이, 그때만 해도 나 역시 그때 껏 이렇게 고생 고생 한 끝에 마침내 그 많은 역경을 다 극복하고 시간에 맞추어 드디어 결혼식에 도착하는 행복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결론을 생각했다.


말 중에 왜, "액땜"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골치 아픈 길이 말하자면 큰 액땜인 셈 칠 수 있다는 생각도 그 때는 들었다. 그렇게 먼저 한 번 고생을 짧게 하고 넘어간 탓에, 대신에 나와 그녀에게 앞으로 닥칠 더 큰 불운, 더 위험한 일이 사라지는 셈이 되었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웃어 넘길 수 있는 일, 언젠가는 재미 있는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혹은, 내가 그녀를 더 생각하게 되고, 그녀와의 관계를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도록, 이 모든 일이, 시험하고 돌이켜 보게 하는, 결국에는 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도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나면 흐뭇하게 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물론 그 때에도 불길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괜히 그런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방심을 하면, 어딘가 모르게 마의 손길이 슬쩍 뻗어와 다시 내 길을 가로 막고 발목을 잡아 챌 지 모른다는 이유 없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다 됐다고 해서 그저 풀어져서 늘어져 있으면, 뭔가 한 가지 놓친 것이 다시 확 일어 덥쳐 올 듯하다는 걱정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작은 것들부터 나를 조금씩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둥베이 특급은 자리가 가득차서, 나는 항공편 연계로 이미 지불을 했음에도, 꽤 높은 추가 예약비를 더 내어야 하는 특실 침대칸 외에는 탈 곳이 없었다. 나는 다른 자리가 없나 쏘다녔지만, 자밍훗에서 표를 예약하는 나에게 통역을 해 주던 그 학생이 차라리 특실 침대칸이면 잘 되었다면서 그걸 그냥 타라고 했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구간 열차에는 몇 해 전부터 온갖 나라 출신 소매치기들이 들끓으니까, 나같이 멋모르는 얼빠진 사람 같으면 방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좋은 침대칸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또 이러다가 갑자기 "여권을 잃어버렸네, 신용카드가 없어졌네" 하면 어쩔꺼냐고 말하면서, 떠나가는 나를 전송해 주었다.


신용카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신용카드도 문제였다. 신용카드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뭘 마음대로 먹을 수 조차 없었다. 기차 안에는 고풍스러운 탁자를 호사스럽게 놓아둔 좋은 식당차가 있었고, 내가 산 특실 침대칸에는 거기서 먹는 식사 한 끼가 딸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식당차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 받았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무슨 이유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면세품 살 수 있는 곳 외에는 열차안 모든 것이 마찬가지 였다.


여기까지 오는 데 나는 갖가지 나라의 현금을 모두 다 써 버렸고 남은 돈이라고는 10원 20원 가치의 동전만 수십개씩 쓸모 없이 쩔렁 거리고 있었다. 딱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식당차에서 극히 천천히 잘 먹으면서, 이제 뭘 먹나 싶어, 나는 기차 안에서 살 수 있는 면세품 목록을 뒤져 보았는데,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술 종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순수하게 술만 먹으면서 끼니를 때울 수는 없지 싶어, 나는 좀 더 정밀히 면세품 목록을 살펴 봤는데, 그나마 술 안주로 곁들여 먹으라고 넣어준 땅콩, 호두 같은 것을 봉지로 과자처럼 파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걸 여덟 봉지 사서 비상식량처럼 도저히 배고파 못 견디면, 먹기로 하였다.


나는 무엇인가 나를 쫓고 있기라도 하는 듯이, 아직 안심하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차 안 내 자리로 돌아와, 차근차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주요 지점과 까먹지 말고 따져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중국 비자를 다시 확인 받는 대목과 북한으로 들어갈 때 써야 하는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부분, 중국 안에서 성의 경계를 지나는 시간들 부터 시작해서, 주요 도시를 지나는 시각들이 몇 분 늦어졌고, 몇 분 따라 잡았는지 꼼꼼히 따져 보았다.


다행히 그런저런 궁리를 하기에 특실 침대칸은 좋은 곳이었다. 특실 침대칸은 좁은 기차 안 공간에 방을 꾸며서 방향과 배치가 좀 괴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잘 수 있는 침대를 놓고 작은 화장실과 샤워 부스까지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달리는 창밖 풍경이 보이는 모양은 썩 괜찮아 보였다. 무엇 보다, 샤워 부스에서 한 두 시간 붙어 있으면서 드디어 물에 젖고 진흙이 묻고 흙먼지로 뒤덥힌 며칠 묵은 몸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상쾌하였다. 다행히 씻으면서도 계속 시계를 확인해 보니, 기차는 시간을 어기지 않고 착실히 동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차는 아무런 비틀림도 없고, 작은 머뭇거림도 없이, 계속 달렸다. 한결 같이 끊임 없이 성실히 달렸다. 그렇게 가는 동안 풍경은 계속해서 변해 갔다. 높다란 빌딩들이 미래시대의 요새처럼 늘어선 유리탑이 빛을 발하는 도시가 지나갔는가 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밀밭과 콩밭이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강철 굴뚝과 큼직한 금속 저장탑이 숲처럼 가득한 공장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또 그러다, 막막한 먼 평원의 황무지를 따라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 저 멀리 희미한 지평선 끝에 닿을 무렵에는 바위산으로 솟아 있는 이상한 봉우리들이 보여서, 그 멀리 보이는 바위골짜기 사이에는 무슨 괴이한 것이 지금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다시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 했다. 게다가 그러고 있는데, 하필 오랫만에 남박사에게 전화가 와서는,


"토요일 아침에 시간 맞춰서 한국 도착할 수 있다고? 야, 그러면 너 바로 회사 출근하면 나보다 먼저 회사에 출근하잖아. 그렇게 출근하지 말고, 너도 좀 쉬다가 출근해라. 나만 화산재 핑계로 출근 안하고 미국에서 계속 있으면 좀 보기 그렇잖아. 어디라도 신혼여행 갔다가 출근하면 안돼?"


라고 했다. 나는 신혼여행은 화산재 때문에 진작에 취소 되기는 했지만, 피곤하기도 하니까 충분히 며칠 쉬었다가 출근은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박사는 매우 기뻐했고, 내가 한국에 가겠다고 멀리  돌아 다니며 고생한 것에 대해 걱정을 해 주는 말을 했고, - 그 걱정은 진심인 것처럼 들렸다. - 또한 조지타운 대학교 근처의 나이트 클럽에 갔는데, 서양 사람 보다 동양 사람이 워낙에 어려 보여서 자신은 대학생들과 잘 어울리느니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늘어 놓았다. - 그것 역시 아주 진심인 것처럼 들렸다.


문제는 그렇게 내가 토요일에 가는 것을 오히려 좀 두려워하는 남박사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 정말 내가 토요일 아침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확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토요일날 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사실로 보는 생각이 이렇게 가까이 똑똑히 자리잡았구나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마음이 느긋해져서, 나는 만사 어떻게 잘 되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 침대에 벌러덩 드러 누워,  누운채로 조금씩 덜컹거리는 열차의 흔들림을 기분 좋게 느껴 보기도 하였다. 마침 그때, 땅콩 봉지를 승무원이 가져 왔기에 나는 이제 먹을 것도 생겼고, 땅콩을 가져다 주며 승무원이 옷 종류도 면세품 가격이 좋으니 한 번 사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서, 옷도 한 벌 사기로 하였다.


"내몽골자치구를 지나면 이렇게 싼 옷은 안 팝니다. 지금 옷을 고르시면 저희들이 치수를 잰 뒤에, 다음 역에 미리 연락해서 도착할 때 맞춰서 옷을 줄이고 늘려서 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한 번 사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그녀가 금요일날 오면 새 정장을 한 벌 맞추자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좋은 새 옷을 한 벌 입고 나타나 보리라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온갖 냄새가 다 나는 더러운 것이라서 새 옷이 필요하기도 했다. 또 금요일날 그녀를 만나 옷구경을 가는 일은 토요일 아침 도착 일정으로 가는 지금은 아쉽게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기에 그렇게라도 어떻게 막아 서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치수를 재려고 열차 안에 옷을 다루는 사람이 있는 방에 가서 열차 안에서 치수를 재고 있을 때에는,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우선 나와 그녀는 토요일 아침에는 정말로 꼭 올 수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확인하는 대화를 몇 차례 거듭 이야기 하였다. 그러고 나니, 그녀는 결혼식 예행연습에 대해 이야기 했다.


"너도 없고 해서, 결혼식 예행연습은 그냥 안하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혹시 뭐 잘못 챙기고 지나갈까봐 좀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예행연습을 하려니까, 괜히 혼자 예행연습부터 하는게 이상하기도 하고..."


나는 그녀가 주눅이 든 듯한 목소리로 말하길래, 혹시 또 어머니나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넘겨짚고 그렇게 물어 보지는 않고, 그러지 말고, 원래 하기로 한 거니까 그냥 결혼식 예행 연습은 점검해본다는 의미로 적당히 한 번 해 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럴까 말까 망설이는 이야기를 좀 하다가,


"본 지 너무 오래 됐다. 보고 싶어."


하고 말하더니, 내 사진이라도 한 장 지금 찍어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는 다음 역에 도착해서 새로 산 정장을 받자 그걸 잘 차려 입고, 객차 앞에 서서 샤워부스 문에 달린 거울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기차 안, 해가 져 가는 무렵에 찍은 사진이라서 좀 어둡게 나오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지나가는 햇빛이 길게 들어와 얼굴이 조금 안 보이게 되기는 했다. 그래서 몇 장 다시 찍어서, 잘 나온 것으로 그녀에게 전화로 전송해 주었다.


얼마 후, 졸립도록 계속 한 길로 달린 기차에 햇빛은 점차 넘어져 지나가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기색이 찾아 오는데,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전화를 열어 보니, 거기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일전에 신부 화장 하는 곳에 같이 갔을 때, 신부가 피부가 어두운 편이라서, "색조 화장 칼라"하고 "머리 검은색"하고 "옷 톤"하고 맞히기 너무 어려운 편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나로서는 화장과 머리 모양과 웨딩드레스에 퍼부어 없애는 그 터무니 없는 고액의 신비를 현재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진 속 그녀는 그 신비에 걸맞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정말 보기 좋게 웃고 있었다. 좋은 웃음을 지으려고 카메라 앞에서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나는 또 울컥하면서 괜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그냥 조금만 기다리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어디 쯤인지도 모를 들판의 해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때는 한 몇 시간 동안 그렇게 내가 제 시간에, 토요일 아침에 그녀를 만난다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너무 당연히 믿고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 그렇게 너무 믿었던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화산재 때문에 돌아 온 이 일들이 더 나쁜일을 막기 위한 액땜이라는 생각처럼 근거 없는 생각이기는 하나, 지금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방심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꾸만 든다.


사실 벌써 그 때부터도 그러다 보니 문득 좀 너무 쉽게 풀린다 싶어 역으로 불안한 마음이 다시 생길 때도 잠깐 잠깐 있기는 있었다. 특히 요하를 건너 요동지방으로 건너 오자, 정말 화산재가 아직까지 하늘을 덥고 있는 것인지, 하늘이 어째 뿌옇게 이상한 구름이 높지도 낮지도 않게 깔린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 날씨가 이상해 보였다. 그러니, 다시 잘 챙겨 보자고, 잘 따져보자고 생각해서, 거듭 한 번 일정과 주요 통과 지점을 처음부터 돌아보기도 했던 것이다.


북한 지역을 통과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계속해서 반대파 정치인들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남한 자동차들이 북한 도로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는 있지만, 머무른 채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거나, 너무 요란한 모양으로 불쾌감을 주는 모양의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거나, 등등의 잡다한 제약들이 너무나 많은데, 도무지 상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들쭉날쭉한 기준이 적용 되고 있어서 억울하게 단속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중에 8톤 트럭까지는 되지만, 12톤 트럭은 "불쾌감을 준다"며 단속을 했고, 버스나 승합차 종류는 국산차는 허용해 주고, 미국차는 못다니게 막았으며, 다른 나라 차들은 미국차와 비슷하게 생길 수록 못다니게 막았다. 반대로 4인승 이하 승용차 종류는 국산차를 못다니게 막았고, 미국차를 다닐 수 있게 했다. 2인승 쿠페 차량은 못다니면서, 2인승 쿠페로 되어 있더라도 지붕을 덮은 컨버터블이라면 다닐 수 있고, 또 그 지붕을 벗긴채로는 못다니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이상한 규칙들을 어디 중앙 지령부에서 특별 지시라도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쿠페의 형태에 대해 아주 중대한 문제로 여기는 수뇌부의 결의가 있는 것인지 뭔지, 현장 교통경찰들이 결코 예외 없이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살펴 봐도 열차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타고 있는 둥베이 특급열차에서 북경 방면을 지난 이후에는 차 안에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전망차에 가보면, 한국말 소리가 여기 저기서 많이도 들려 왔다. 단지 교통수단에 자기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 만으로, 외국에서 모인 이 한국사람들은 이 일대의 공간이 한국인들이 협의하여 통째로 전세 낸 맥주집과 같이 여기는 성향이 있는 지, 매우 편안한 태도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 지르듯 대화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나 역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괜히 안심이 되고, 이렇게 버티고 있으면 흘러흘러 저절로 서울에는 문제 없이 갈 것 같다는 생각도 계속 들었던 것이다.


다만 열차가 중국 영토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갈 때는 다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뭐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한나절만 늦어져도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다시 잠깐 돌아 왔다. 특히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북한쪽 승무원들이 기차에 올라타고 이제부터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출입구를 밀봉해서 아무도 타지도 내리지도 못하게 막는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나는 다시 여권과 작성해 놓은 통행서류를 확인 해 보기도 했다.


압록강의 다리를 건널 때는 열차가 무척 천천히 움직였다. 벌써 몇십번씩 찾아본 철도청 공식 안내 웹사이트에서 압록강 다리 통과 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열차가 천천히 움직인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자꾸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지나 다시 열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침대 위에 점차 늘어지며 안심하기 시작했다. 열차 선로를 따라 세워 놓은 붉은 글씨의 표어들이 신기해 보일 때나, 모든 것이 널찍 널찍하고 큼직 큼직하여 환하니 뚫려 치솟아 있는 평양의 풍경을 볼 때, 한동안 창밖을 두리번 거리다가, 제 시간에 제대로 가는지 따지기는 했다. 그러나, 분명히 그때는 이제는 다 도착했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자꾸 돌아 보면서 후회를 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적어도 그 때 무슨 낌새를 눈치 챘다면, 하다 못해 그때 미리 그녀에게 연락이라도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그냥 여기 꼼짝 없이 머물러 있는데, 그녀에게 연락할 길이 없었다. 최소한 그때는 인터넷이 잡혀서 그녀에게 연락은 해 줄 수 있었다. 물론 그때 그렇게 미리 알기란 어려웠겠지만, 그때 이렇게 했다면, 그랬다면, 하고 자꾸 생각이 난다. 일이 이렇게 꼬일 수도 있다는 점을 대비하겠다는 생각을 그 때 조금 이라도 더 했다면, 그러면 그 때 어떻게 미리 그녀에게 통화라도 한 번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말 다 와서, 정말 다 와서 생겼다. 열차는 토요일 새벽에 개성 근처에 도착했고, 나는 초조하게 몇 백번이고 들여다 보던 전화의 시계에 내 결혼식 날짜가 오늘이고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을 침대차에서 보았다. 나는 침대차의 커튼을 열었고, 전화의 알람 시계가 빨리 일어나서 결혼하러 가라고 알리는 것을 보았다. 열차안에서 달리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었지만, 단숨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 나서 세수를 하며 보니, 창밖으로 갑자기 기차 곁을 따라가는 도로에 낡은 버스들이 여러 대 몰려 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의 대 수가 이상하게 많아 보였고, 색깔이 단순하게 통일 되어 있었으며, 일사분란하게 줄을 지어 가는 것 때문에 나는 좀 이상하다 싶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침대차 밖으로 나와 열차 통로를 따라 다니며 승무원들을 찾아 뭔지 한 번 물어 보려고 하였다.


한 승무원에게 말을 걸어 물어 보려고 하는 데, 다른 승무원이 말했다.


"이 열차는 안전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두 다 내려야 합니다. 저쪽 버스를 타고 걸 테니, 내려서 버스에 타십시오."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라서 뭘 더 물어 보려 했다. 그런데, 승무원은 바쁜지 비좁은 열차 안 통로를 빗겨 지나가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하러 물러 났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어벙벙하여, 이건 이상한데, 이건 불길한데, 하면서도, 그래도 버스로나마 옮겨서 가게 해 준다니,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 했다. 잠깐 지도를 보니, 이제 남한 지역까지는 불과 15 km 정도 밖에 남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면, 낡은 버스로 어슬렁 어슬렁 가도, 충분히 아침 시간에 갈 수 있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지금 보면 그런 생각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치밀어 오르자, 그 생각을 스스로 숨겨 보기 위해서, 잠시 가짜로 급히 지어낸 위안거리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투덜거리는 다른 사람들 소리를 들으며, 버스를 타러 가는 데, 마침 나에게 땅콩과 옷을 팔았던 승무원이 분주히 오락가락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래도 제 시간 안에 서울로 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 승무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버스는 서울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개성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예?"


나는 버스에 타다가 그 말을 듣고 놀라 돌아 보았지만, 버스 안에 탄 승무원들은 빨리 버스에 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경찰 옷인지 군복인지 제복을 입고, 챙달린 모자를 쓰고 뱃지를 단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왜, 왜 개성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 기차가 안전 점검을 할 때가 되어 그렇습니다."
"무슨 안전 점검을 갑자기 기차가 가다가 말고 중간에 서서 합니까?"


그러자 거기에 대해 대답해주는 이야기가 가히 절묘하였다.


"72시간 운행마다 종합 안전 점검을 하기로 훈령 규칙이 내려와 있습니다. 개성역에서 출발할 때는 아직 72시간이 안되었고, 지금 이 자리가 정확히 72시간, 안전 점검을 하는 시간이라서, 이 때 안전 점검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점검이 끝날 때 까지는, 열차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점검이 끝나고 열차가 움직일 때까지, 여러분을 개성에 있는 대기실에 모셔서 편안히 기다리시도록 하려는 겁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항의하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경찰 같은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그렇다고 미안해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한숨을 푹 쉬더니 버스 바깥으로 나갔다.


한참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다가 다른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사정 설명을 하고,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사과를 하기도 해서, 겨우 진정이 되자, 슬금슬금 버스는 출발을 하려고 하였다. 나는 이게 뭔가 싶어 다시 탄 그 경찰 같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난처하고 불쌍한 표정을 만들겠다고 결심까지 한 후, 물어 보았다.


"그런데, 저, 이 차로 개성으로 안가고 그냥 바로 서울쪽으로 가면 안됩니까?"
"이 차는 도로순찰계 차량이라서 상업 운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비상 대피 용도로만 쓰고 있습니다."
"저, 그러면, 개성에 가서 얼마나 기다리면 다시 출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녁까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아니, 그러면, 저... 제가 개성역에 가서 다른 열차로 갈아 타고 서울까지 가면 안되겠습니까?"
"선생님, 안 그렇습니다. 개성역에서 이 특급 열차는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게 없잖습니까?"
"그래도 상황이 이런 상황이니만큼 어떻게 꼭 필요한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그렇게 함부로 사람을 태우고 말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제가 차를 빌리거나 뭐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까?"
"승용차 말입니까? 선생님이 직접 운전 하십니까?"
"예. 승용차. 제가 운전하고요."
"남조선 사람이 승용차를 빌리는 데는 평양 도로 사무소에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평양에 제가 전화로 연락을 해서..."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전화를 켜 보려고 했지만, 열차 바깥에 나오자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고, 인터넷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쨌거나 전화야 다른 곳에서도 쓴다고 가정을 하고,


"... 평양에서부터 빨리 전 속력으로 이쪽으로 차가 한 대만 와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처리하고 기사 구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걸려도, 제가 꼭 좀 일찍 서울에 가야 해서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렇게 하면 이 도로에 와서 멈춰 서서는, 선생님을 실어야 하지 않습니까?, 상업 차량이 이 도로에서 멈춰 서면 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시속 5 km 이하로만 움직여도 그 때 바로 붙잡습니다."
"그렇게 무조건 법을 어기는 걸로 처리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윗선의 지시입니다. 지금 백두산 때문에 워낙 급하게 길을 트기는 했습니다만, 길에 마음대로 서서 다니게 하면, 간첩들은 어떻게 하고, 도망치는 죄수들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몰래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작당을 하고, 함부로 서서 엉뚱한 소리를 사람들에게 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윗선 지시 대로, 저희는 멈추면 위법으로 봅니다."
"아니, 저, 그러면, 그러면 제가 여기에서 지나가는 남한 차를 불러 세워서, 그걸 한 번 얻어타고 가 보겠습니다.
"아 자꾸 왜이러십니까, 선생님. 그냥 포기 하십시오. 이건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남한 차를 불러 세우면, 세우는 게 되잖습니까. 남한에서 올라와서 이 전용도로를 돌아다니는 것은 자유이지만, 시속 5 km 이하로 속도가 내려가면, 위법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저희랑 가셔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 경찰 같은 사람은 지구상의 여느 공무원 답지 않은 끈기 있게 친절한 말투로 나를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랬으면서도, 자꾸 내가 조르고 달라 붙자, 지겹다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버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의 마무리다.


여기서, 이렇게, 정말 다 와서, 거의 다 와서, 나는 이렇게 허무하게 멈추어 서 있다. 떠들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버스에 모두 올라타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없고, 지금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는 생각 조차도 없이, 그저 멍멍하니 쳐져 있다. 나는 낡은 버스 자리에 앉아, 희뿌연 썩은 날씨의 하늘이나 풀린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다.


타고 갈 차는 구할 수 없고, 내가 타고 가던 기차는 점검을 해야 한다는 데. 어떻게 무슨 수로 가겠는가. 갑자기 하늘에서 뭐가 확 날아와 나를 채어 가기라도 한 다면 모를까. 아니면 엄청나게 힘이 센 사람이 나를 대한민국으로 여기서 확 던져 버린다면 모를까. 뭘 어떻게 하겠는가. 화산재 덮힌 하늘을 빗겨 돌고, 바다도 건너고, 산도 넘고, 사막도 뚫고 왔지만, 세상에. 윗선의 지시라니. 윗선의 지시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토요일 아침 8시. 맥이 풀려 취한 몽상처럼, 눈 앞에 짜증내는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과, 텅 빈 아침, 아무 이름 없는 논밭 사이의 한 길의 모습이 비틀비틀 무너져 내린다.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가 왜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나 싶어 불안해 하면서도, 예식장에 가서 혼자 이것저것 둘러 보고 준비 하면서, 5분 간격으로, 10분 간격으로, 내가 오지 않았을까 자꾸만 전화를 들여다보는, 그런 모습만 눈물겹게 계속 생각이 난다.


이 5월의 공기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고, 나는 그 공기를 피해 곧 얼굴을 어딘가에 파묻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붙이고, 뿌연 하늘을 보니 그 사이에 손톱 만한 틈이 있어 파란 하늘이 보인다. "정말, 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말을 중얼 거린다.


 


11.
진짜,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다고? 진짜, 와아아아....


 


12.
나는 자리에 반쯤 누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말하던 그 "뒷모습 엉덩이 보고 반했던" 때부터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스 앞자리에 있는 경찰 같은 사람에게 말했다.


"시속 5 km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내 두 다리로 그대로 뛰기 시작 했다.


"어이, 선생님. 뭐하십니까? 얼른 차에 타십시오. 다른 데로 가시면 안됩니다."


나는 돌아 보지 않고 말했다.


"속도 줄이면 위법 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계속해서 텅빈 도로 위에 걸음을 내딛어 뛰어 나갔다.


불과 15 km. 15 km만 가면 대한민국 관할 구역까지 지날 수 있었다. 뛰어서 가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한 번 마음 먹고 뛰어가면, 그것도 최저선이 시속 5 km 라니 적당한 속도로 힘이 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뛰면, 한 번 가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게 차나 비행기나 기차나 뭐나 아무것도 없어도, 그저 이 몸으로, 두 발로 뛰어서라도 가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아직 아침 8시. 점심 때 시작하는 결혼식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가자. 결혼식장에, 시간 맞춰서, 가자.


나는 채 1 km 도 뛰지 않아 온몸이 지쳤다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둥베이 특급을 타고부터는 좀 편하게 쉰 편이라 어느 정도 기운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평소 체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해가 조금 더 올라갈 수록 5월 햇빛은 문득 문득 덥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구두 신은 발로 양복을 입고 뛰는 것이 전혀 걸맞지 않아서 무릎이나 발목이 아픈 듯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좀 쉬려고 보니, 뒤에서 교통경찰 역할을 하는 도로순찰계 대원이 속도 단속용 측정 장비를 들고 아주 천천히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 오고 있었다. 도로순찰계 대원은 나를 보고 무전기로 뭐라고 한참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더니,


"5.2 km 밖에 안나옵니다."


하고 외쳤다. 시속 5 km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바로 붙잡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괴로워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번 질러 봤다. 그러나 속도를 떨어 뜨릴 수는 없었다. 기운을 짜내어 뛰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2 km, 3 km 전진해 나갔다.


그러다보니, 구간 구간을 지날 때 마다, 나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어딘가로 열심히 무전기로 연락을 하는 대원들이 계속 하나 둘 눈에 보였다. 결국 이들은 내가 시속 5 km 아래로 처지면, 바로 벌금을 물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를 붙잡기 위해 뒤따라 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한참 가다보니, 그야말로 "진풍경"이 연출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뻗어가는 고속도로의 한 가운데에서, 어쩐 일인지, 양복 정장을 입은 온 세상을 향해 욕을 하며 열을 내고 있는 사나이가 천천히 뛰어 가고 있고, 그 앞 뒤를 도로순착계 대원들 수십명이 떼를 지어 휩싸고 가면서, 계속 끊임없이 속도 측정기로 속도를 쟤고 있었다.


시속 5 km 정도면 그래도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오르막길도 나오고 오래 달리게 되고 하니까, 갈 수록 이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안 될 거, 가다가 정 안되면 멈춰 서서 붙잡히고 벌금 내고 쉬고 저녁에 가면 되니까, 정말 힘들어서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으면 그 때 포기하고 멈추자. 그런 생각을 마음 속으로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 갔다. 이제 도저히 힘들어서 안되겠다 항복하고 붙잡혀서 벌금내자, 하는 마음이 드는 데, "그래도 조금만 저기까지만 더 가보고", "열 셀 때 까지만 더 가보고" 하는 마음이 연거푸 계속 반복되면서, 나는 달려 나갔다.


처음에는 숨이 많이 찼다. 그 다음에는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리가 아팠다. 그러다 그 다음에는 괜히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다는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나서는,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느라 이러고 있는 지 이유도 뭣도 잘 모르면서, 그저 힘들어 미치겠네, 미치겠네 하면서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비유하는 말들이 잠깐 떠올랐는데, 아 빌어먹을 세상 왠갖 것들이 괴롭혀 다투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왜 나 자신하고까지 뭐하러 싸워 좀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내면 안되나. 별별 생각이 꼭 누구에게 따지듯이 휙휙 지나갔다.


오전 11시가 좀 되지 않아서, 비무장지대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 오던 그 많은 도로순찰계 대원들이 일제히 차를 돌려 나를 포기하고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풍경은 내 착각인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헛것이 보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때 그 지역 상황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뿌연 구름이 이곳저곳에 아직 흩어져 있었지만, 하늘은 확실히 파랗게 개여 있었다. 5월다운 햇빛이 오랫만에 쏟아지고 있어서, 아스팔트 바닥은 그 빛에 뜨거워져서 열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날씨 좋고 따뜻하고 기분 좋고 즐거운, 그냥 화산재랑 아무 상관 없는 5월 날씨 같기만 했다.


나는 아직도 혹시나 싶어 양복 정장을 입은 채로 구두가 너덜거리도록 뛰고 있었다. 마침내, 서울로 갈 수 있는 첫번째 대한민국 역인 도라산 경의선 역이 보이기 시작 했다. 그런데, 그 역의 제일 앞쪽, 북쪽 끝에, 가장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뭔가가 보였다. 뛰어가면서 보니, 그것은 도라산 역, 북측 진입로 방향을 보고 쪼그리고 앉아서 내 쪽 방향을 보고 있던, 다름 아닌 그녀였다.


 


13.
도라산 역이 눈에 보이자 다리가 휘청거렸고 곧장 어디 엎어져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를 보니 놀라서 다시 더 빨리 달리게 되었다. 그녀는 한참 울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항상 어느 멋있는 학자나 괴력의 추진력으로 팀을 이끄는 연구원으로만 생각 했기에, 그렇게 한쪽 방향을 계속 보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쪼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주 심하게 안 어울려 보였다.


멀리서 내가 뛰어온 것을 보자, 그녀는 내가 멀리 보일 때 부터 무슨 말도 없이 소리만 좀 더 높여서 계속 이어서 울었다. 그녀 앞에 다가간 나는 앉아 있는 그녀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거기서, 갑자기 그렇게 그녀를 보니 좀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또 굉장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랫만에 보다보니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쉽게 말을 못 시작하고, 뛰느라 힘이 들어, 몰아 쉬는 숨소리만 크게 입에서 나왔다.


몇 번 크게 숨을 쉬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어?"


그녀가 한참 더 울다가 간신히 짧게 대답한다.


"너가 안 와서요."


그리고 다시 울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그녀는 연유를 알 수 없는 높임말을 쓰며 대답했다. 내가 그녀에게 물어 본 뜻은 왜 괜히 여기까지 와서 제 시간에 오지도 않는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냐는 그런 뜻이었는데, 그녀는 그냥 당연히 오면 안 기다릴 텐데 안 오니까 기다렸다는 말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오전 11시였으니까, 결혼을 하려면 예식장까지는 급하게 서둘러 가야 겠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차를 타고 가자고 이끌었다. 그녀의 손을 잡을 때, 팔을 뻗어 그녀의 손 가까이로 다가가서 손을 잡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 그 손에 마침내 닿는 시간이 흐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되었다. 그녀는 일부러 힘을 주어 내 손을 한 번 꼭 잡았다. 나는 앞으로 어지간하면 다시 팔을 뻗어 이 손을 잡을 수 없는 거리 밖으로는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예식장에 거의 도착하자마자 바로 옷을 갈아 입고 바로 예식장 가운데로 입장해 가야 했다. 그 바쁜 와중에, 하객들을 맞이 하고 있던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시면서,


"야, 너는 왜 연락이 안돼? 이게 뭐야? 북한까지 가서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얼마나 놀랐겠어."


라고 말하시며, 내 등짝을 몇 십 차례나 후려 갈기셨다. 나는 난감하여,


"어머니, 장인어른하고 장모님 보시잖아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진정해 주실 것을 부탁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다시,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참, 정말,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참. 그래, 왔으니 다행이다. 왔으니 다행이야."


하고 신세한탄식으로 말을 길게 하려 하시다가 "그래, 밥은 잘 챙겨 먹었어?" 라고 내가 지나 온 상황을 조금도 상상하지 못하신 질문을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아들 욕을 하시는 60이 별로 멀지 않은 그 조그마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예식장에 입장할 때까지 한참 마음에 남았다.


신랑 입장 하기 직전에 나는 그녀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물어 보았다.


"너 예행 연습 했잖아. 뭐 조심 할 것 없어?"
"별 거 없고, 주례 선생님 말씀하실 때에, '파뿌리'라는 말이 나올 때 정신 잘 차린 다음에 '예'라고 대답만 똑바로 하면 돼."


우리의 결혼식은 사실 그렇게 대단히 멋있는 결혼식은 못 되었다. 주례를 맡으신 대학시절 교수님께서는 마라톤은 곧잘 하시는 분이셨지만, 말씀을 멋있게 하시는 분은 아니셔서, 주례가 상당히 길면서도 심심했다. 그런데 식장 바깥에서는 대조적으로 "식권은 어디에 내고 밥을 먹어야 되냐?"고 묻는 소리가 끊임없이 서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리드미컬하게 들려 왔다. 이상하게 엄숙함과 소란함이 뒤섞이는 가운데에, 결혼식장에서는 자리에 앉지 않고 뒤에 서서 구경하는 것이 좀 멋있어 보인다는 이상한 유행이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것인지, 결혼식장 뒤편에만 사람들이 몇 겹 서 있고, 정작 의자에는 텅텅 빈자리가 많아, 자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왔다갔다하면서, "뒤에 서 있지 말고 앞에 앉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곤 하였다.


"신랑은 신부를 맞이하여,"


교수님께서 나에게 주례로서 묻기 시작 하셨다. 예식장 앞에 나와 서 있던 나는 남들이 들리지 않게 한 번 심호흡을 해 보았다.


지난 며칠간 한 생각이지만, 사실 그녀와 결혼해서 그녀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거나, 무슨 최고로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거나 그런 장담을 할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런 장담을 못해서 좀 초라해 보이고 재미 없어 보여도, 그런 펌핑을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는 동안 가면 갈 수록 크고 작은 걱정거리와 사소하고 중요한 골치거리들만이 점점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기쁜 순간은 잠깐이고, 매일 매일이 지나갈 수록 답답한 마음과 울적한 심경과 싸워 나가야 할 세월이 점점 더 많아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지금은 그녀를 향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이 심혈관의 프로판 가스통과 같은 내 마음조차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고, 문득문득 우리가 서로 다투고 서로 지겹게 여길 때가 오고, 가끔씩은 "'이럴거면 결혼은 왜 했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한결 같이 사랑하며,"


나는 살짝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앞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바닥 쪽만 보고 있었다. 면사포에 가려 얼굴이 정확히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인가 부끄러운지, 좀 마음이 떨리는지, 그녀의 얼굴은 아주 살짝 상기 되어 붉은 빛이 돌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서, 그저 숨쉴 때 마다 아주 가늘게 떠는 모양만 보일듯 말듯 느껴지는 듯 하였다. 그런 그녀를 휘감고 있는 어떤 압도적인 고요함이 나를 사로 잡아, 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를 붙잡아 이끄는 그런 기분이 느껴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할 것을 맹세 합니까?"


파뿌리. 그녀가 주의하라고 해 주었던 국어 은유법 예제문의 최고봉이 귀에 번쩍 들려 온다.


결코 내일이 어제보다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짐작일 수 있다. 당장 진짜 내일부터 나는 왠갖 출입국/세관 항목에 다 얽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아야 할 판이라는 연락을 오는 길에 받기도 했다. 어림 없이 영국에서 산 해리포터 그림이 있는 스카프는 원래 가격이 워낙 높아, 특별 관세 대상 품목으로 지목 당했고, 갑자기 여행 경계 지역으로 설정된 터키를 들린 일도 문제가 되었으며, 몽골에서는 가축이 있는 곳에 가서 그곳을 흙을 뒤집어 썼다는 점이 방역 문제가 되었고, 중국을 지나면서 땅콩을 먹다 들고 뛰다보니 해외에서 씨앗을 들고 들어온 셈이 되었다는 점도 문제 였으며, 미국에서 출발해 북한을 통과한 덕에 무슨 국가정보원에서 나온 방첩요원들이 인적사항 조사를 한다고도 했다.


어쩌면,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 오기만하는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 번 저질러 보려고 한다. 아직 어린 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설레는 생각만으로 혼자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던,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뭐 하여간 대단한 행운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 행운이 주어져 있다면, 너와 함께 겪는 고난은 언제나 해 볼만한 도전이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역경은 항상 새로운 모험이지 않겠냐고.


나는 대답했다.


"예."


참고로, 첫번째 고난과 역경이 예상 보다 빨리 찾아 왔다.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는 그녀에게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하며, 긴 시간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그러다 문득 우리 신혼여행도 못가게 되었는데 일단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웨딩 코만도 라는 영화 알아? 그거 재밌어 보이던데."


라고 말하며, 기대가 가득한 눈빛을 가득 보여 주었다. 뭐, 나는 그냥 두 말 않고, 아내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나섰다. 막상 영화를 보면 의외로 대단한 명작일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 2011년 가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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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 No Profile
    Megabrand 11.05.28 16:00 댓글 수정 삭제
    와!!!!! 눈물이 쏙 나왔습니다 ㅠㅠㅠㅠㅠ 정말멋진 단편이에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
  • No Profile
    깨다래 11.05.28 22:03 댓글 수정 삭제
    악!!!!!!!
    결혼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예요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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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1.05.29 10:06 댓글 수정 삭제
    Megabrand/ 즐겁게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깨다래/ 저는 첫 자 쓸 때부터 결말을 알고 쓰니까 아슬아슬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은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다쓰고 나니 저는 저 "웨딩코만도" 영화 내용이 괜히 궁금해졌습니다.
  • No Profile
    쑤우 11.05.29 14:46 댓글 수정 삭제

    아... 곽재식님 ㅠ_ㅠ b
    남박사의 이름 개그도 재미있었고
    (저는 성이 '소'씨라 육사를 나와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고 온갖 고초와 노력 끝에
    대장으로 진급하더라도 '소대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성씨라..)
    이야기 중에 제 이름과 닉네임 비스무리한 게 나와서
    지극히 주관적인 재미를 더욱 느꼈어요.


    '달팽이와 다슬기'때부터 보여주셨던 다문화가정에 대한 따스한 시각과 성찰도 돋보였고

    밀도 있는 구성과 그 와중에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스토리텔링의 여행기 감명 깊게 감상했습니다~!

  • No Profile
    이기환 11.05.30 16:51 댓글 수정 삭제
    이번 작품 대박입니다.

    엄청 몰입해서 봤네요 감사합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1.05.30 19:28 댓글 수정 삭제
    쑤우/ 좋은 단편선을 만드는 데 앞장 서 주신 것이 아직도 황송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기환/ 격려 감사합니다. 이어서는 조금 더 짧고 경쾌한 이야기를 한 두 편 만들어 보겠습니다.
  • No Profile
    수려한꽃 11.05.31 01:59 댓글 수정 삭제
    와, 정말 감동적인 결말이네요ㅠ 산전수전 다 겪은 끝에 해피엔딩이 찾아오니 읽는 저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1.05.31 20:11 댓글 수정 삭제
    수려한꽃/ 감사합니다. 결말은 "달과 육백만 달러" 때부터 자주 사용하던 좋은 결말이되, 모든 것이 아주 좋지는 않도록 적당한 지점을 겨냥해서 조정한 수준으로 잡아 보았습니다. 이렇게 맞춰 두는 것이 더 재미난 이야기를 짜기에 좋다는 생각에 자주 빠집니다.
  • No Profile
    슴컹크 11.06.01 11:44 댓글 수정 삭제
    도라산 역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네요.
    몽골의 말타는 쉬크한 소녀 캐릭터가 인상 깊었어요. 츤데레 조력자 역할을 든든이 하네요.
    읽다보면 길이가 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주인공의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느라 읽는 사람도 덩달아 같이 다닌 것 마냥 심신이 피곤해져요. ㅎㅎ 특히 마지막에 결혼식 날짜와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분명치 않아서 조마조마하면서 봐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No Profile
    노드 11.06.02 16:18 댓글 수정 삭제
    와아.....이야기의 재미는 갈등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갈등이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글은 처음이네요. 머피의 법칙 최종완성본을 보는 느낌입니다ㅋ
  • No Profile
    곽재식 11.06.02 21:53 댓글 수정 삭제
    슴컹크/ 딱히 눈물을 의도한 대목은 아닌데 드디어 주인공이 승리하는 대목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사실 맨 마지막 결말 연출을 어떻게 할 지 고민스러웠는데, 쓰다가 자연히 나온 소재들을 엮어서 부드럽게 맞춰지는 것으로 집어 넣는 식으로 맺어 봤습니다.

    노드/ 갈등이 너무 계속되기만 하면 주인공에 대한 흡인력이 떨어질까봐, 앞쪽의 복선이 뒤쪽으로 연결되고 주인공이 제 꾀에 제가 걸리고 하는 식으로 갈등이 연속으로 나오되 한 줄로 엮일 수 있도록 노력해 봤습니다.
  • No Profile
    데모닉 11.06.05 00:03 댓글 수정 삭제
    와우....
    매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중간에 멈출수 없는 흡입력이라니...대단합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1.06.06 10:19 댓글 수정 삭제
    1인칭 주인공 시점, 근미래 배경에 연애 이야기를 주로 쓰다보니 비슷한 느낌이 많이 나나 봅니다. 모살기, 지진기나,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 광개토왕릉비 만록편 http://gerecter.egloos.com/4983524 , 같은 제 사극은 더 다른 느낌이 나니 한 번 구경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 No Profile
    샤유 11.06.06 18:50 댓글 수정 삭제
    걸작이군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 No Profile
    날개 11.06.07 20:38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대단하네요. 읽고 나서 정말 온 몸이 지친 느낌이었어요. 'ㅁ'/
  • No Profile
    gerecter 11.06.07 21:52 댓글 수정 삭제
    샤유/ 감사합니다. 저는 후반부를 조금 더 다듬고 약간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해야 좋지 않겠나 하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날개/ 초반에 묘사와 진행이 두텁고 느리고, 중반 이후로 갈 수록 난관이 겹치기 때문에 좀 빠르게 묘사해서 잘 읽혀 나가게 해봤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몇몇 부분에는 흠결이 보여서 후반부에 내용이 적은 부분을 조금은 보충할 구석이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들고 다니던 가방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 부분이라든가, 뭐...
  • No Profile
    - 11.06.29 15:47 댓글 수정 삭제
    읽는 내내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해피엔딩!!!!!!!!!!!!!!!!'을 외쳤습니다. ㅠㅠ 좌절하는 대목 나오는 순간순간들마다 젭라!!!!!!! 앙대!!!!!!!!!!!!!!!!!! 이러면서 제가 여주라도 된 듯한 느낌 ㅠㅠ 최고네요
  • No Profile
    곽재식 11.06.30 22:18 댓글 수정 삭제
    사실 위 이야기에서 노린 것 중에 하나가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에게 독자가 동일시하도록 해서, 갈등배경인 인종을 무심코 무시하면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무척 힘이 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 No Profile
    소다 11.07.30 14:58 댓글 수정 삭제
    이거 읽고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ㅠㅠ
    전세계를 넘나드는 대서사시.
    주인공들에겐 늘 불운이 닥치지만 결말은 항상 따뜻하네요 ㅎ
  • No Profile
    곽재식 11.07.31 11:2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중간에 80일간의 세계 일주 언급되고 하는 부분에서는 50년대 영화판 80일간의 세계일주 주제곡 가사도 좀 생각나고 해서 그런 감상도 집어 넣어 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전 글 중에 "황야의 무직자"라는 것에서 미국을 무대로 헤메면서 여행하는 것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걸 범위를 더 넓게 한 모양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번 이야기가 현실감이나 갈등면에서도 더 간단하면서도 좀 앞서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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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11.09.05 17:45 댓글 수정 삭제
    소문은 들었지만 뒤늦게 보았습니다. 정말 걸작입니다. 초대형 스케일의 지구횡단소설! 단권으로 출판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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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1.09.06 08:37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거울 선배 작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더 의욕이 솟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저도 단권으로 출판하는 기회 갖게 되도록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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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MM 13.04.26 13:27 댓글

    우와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아름답네요!! 왜 계속 눈물이 흐르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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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쑤우 13.05.03 23:21 댓글

    곽재식 님께서 예전에 트위터에 올려주셨던 - 직접 그리셨다는 - 그림인데 이 단편과 너무 잘 어울려서 첨부해봅니다.



    JaesikKwak약 6시간 전몇 년 전 터키 이스탄불에 출장 갔다가 그렸던 그림. 오늘 우연히 발견해서 올려 봅니다. http://pic.twitter.com/yeewflwN






















    * 뒤늦게 이런 걸 발견해서 추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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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바람 13.05.12 11:54 댓글

    우와~ 대단해요!!!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이네요. 이렇게 결혼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겠다"는 맹세 같은 건 필요없겠어요. 일생 서로 아끼며 살아갈 것 같아요, 행복하게.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 들었어요. 결혼을 앞둔 청년들 또 아는 부부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이야기.^^ @e_aca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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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3.06.03 08:00 댓글

    쑤우/ 저 때 일하고 사건으로는 크게 관계 있는 일은 없었는데, 이스탄불 풍경 묘사는 기억하는 대로 한 번 해 봤습니다. 평소에는 무척 평화로운 관광, 상업 도시 느낌인데 최근 며칠 사이에 또 험한일이 많아져서 뉴스에 눈이 갑니다.


    실바람/ 응원 감사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들도 있고, 약간씩 분위기 다른 이야기들도 더 있으니, 또 다른 이야기들도 재밌게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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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3.06.03 08:02 댓글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표제작으로 책에 실려서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71101X ) 다른 단편소설 네 편과 함께 묶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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