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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2010.05.28 23:5605.28

    1.
    나는 그날 아침 날씨가 개같이 춥다고 생각하면서 경복궁 북편에 서서 덜덜 떨고 있었다. 날씨가 얼마나 개같이 추웠냐 하면, 거의 개 중에서도 진돗개나 풍산개 급으로 추웠다고 할 수 있었다. 추위를 잊어 보려고 나는 계속 고민하던 것을 애써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기도 해 보았다.


    "남산을, 고유명사니까, 그냥 남산이라고 발음해야 하나? 아니면, 불어로 번역해서 sud montagne 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몇번이고, "남산", "sud montagne", "남산", "le sud de la montagne" 을 반복해서 중얼거려 보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도리어 대충 아무거나 골라서 말을 해도 된다고 별 걱정 안하던 문제였던 것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정말로, 남산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불어로 sud montagne라고 해야하나?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떨리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더욱더 남산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sud montagne라고 말해야하는지 고민은 계속 커져갔다.


    나는 서울에 올라온지 이제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학교와 목동 인근만 왔다갔다 하면서 다녔을 뿐 도무지 지리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 경복궁 북편을 옳게 찾아오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 목동 인근 지역조차도, 피겨 스케이팅 하다가 키가 계속 커버리는 바람에 중학교 때 그만둔 어느 학생 과외 공부 시켜주면서 돈벌러 다닌다고 걔네 집만 들른 것이라서, 나는 1년째 서울에 살면서도 지하철 노선 조차도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남산에 올라가는 길만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날 혹시나 헤메다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아침해가 뜨기도 한참 전에 일찌감치 집에서 나섰고, 덕분에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풍경에 도무지 길을 알 수 없어서 이리저리 헤메는 바보스러우면서도 기막히게 내가 예상한 바 그대로에 딱 맞아 떨어지는 행동을 한참 한 후에야 청와대 앞 이 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워낙에 일찍 나왔기에 나는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자니 몸 구석구석이 더 추워졌다. 며칠전에 내린 눈 때문에 길이 질척질척했던 것을 이렇게 많이 걷다보니 낡은 구두 사이로 이리저리 물이 새어들었고, 때문에 발이 좀 젖고 또 얼어붙어 발가락 하나하나가 얼음으로 쿡쿡 찌르듯 시려왔다.


    이쯤되자니 나는 오늘 아침에 내가 여기 나와서 벌이려는 일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뭔지 다시 생각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정말 시려운 것은 발이었는데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입으로 호호 불며 녹여보기 시작했다. 발이 시려운데 입김을 손에 불다니? 뭐 발이 아무리 시렵다고 해도 경복궁 뒤편에서 벨기에 국왕을 기다리다가 신발에서 발을 빼서는 발을 입으로 불어 녹인다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손을 녹이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다시 한번 그녀 생각이 한 번 마음속을 휘저었다. 나는 결국 혼자서 한숨을 쉬고 가만히 그녀 이름을 중얼거려 보게 되기도 했다. 지난 겨울에 벙어리 장갑 낀 손을 벗어서 발갛게 얼은 내 손을 감싸면서,


    "따뜻하지. 나 손이 찬 편인데. 오늘은 너 손이 너무 시려워보여서 내 손이 더 따뜻하겠다."


    하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귀에 선하게 들려오는 듯 했던 것이다.



    2.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때 수원에서 내 고향이었던 전라북도의 바닷가 동네로 전학을 오면서, 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누가 봐도 예쁘장하게 생긴데다가 공부도 꽤 잘하는 성실한 학생이어서 조그마한 이 학교에는 금새 "서울에서 온 전학생" 소문이 퍼졌고, 선생님들도 금새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어서, 언뜻보기에는 그녀는 꽤 예민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때였음에도 쉽게 썩 잘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따지자면 초끈이론이나, 당시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기묘한 알력관계에 대한 해석이나 비슷비슷한 정도. 어찌어찌하다보니 묘하게도 그녀는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고 혼자 다니게 되어 있었다. 지금도 도저히 나는 뭐가 어떻게 되어서 그런 구도가 생겼는지 납득할 수 없지만, 대략 눈치를 보기에는 우리 반의 양대 파벌이라 할 수 있는 지은이랑 친한 아이들이랑, 은영이랑 친한 아이들이 동시에 그녀를 멀리하기로 결정하면서, 급격히 온 학교의 아이들이 그녀와 "놀지 않는" 분위기가 굳어진 것으로 그저 대충 그 상황의 어렴풋한 윤곽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슬쩍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서 남학생들도 어딘가 그녀와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수작을 걸어보려는 남학생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눈에 외토리로 좀 울적해 보이는 그녀에게 한 마디 말을 걸면, 습관적으로 웃으면서 좀 안어울리게 명랑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참 어색하게 들리게 되고 때문에 "학교 매점에서 음료수 사달라"라든가, "지난 시간 너무 잠오고 졸렸는데 재미난 이야기를 해서 잠이 달아나게 깨워달라"라든가 따위로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 보는 정통파 수작걸기가 어딘가 민망해져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인 내가 등장하는 상황도 사실 별로 안 민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금 말하기 조차도 껄끄럽다만, 당시에 나는 반에서 "수학부장"이라는 말도 안되고, 굳이 말을 만들어 이야기해도 듣기에도 거북한 것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연은 시작된다.


    우리 학교에는 기막히게도 반마다 "수학부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괴기스럽게도 "수학부장"이라는 것이 학생회에 있어야 하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미래 인재를 위한 확실한 백년대계를 마련하겠다"면서 영덕대게 철 돌아 올 때마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대게찜 등껍질 처럼 마구 헤집어 뒤엎어버리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존재의 의미인 우리나라의 멋진 교육 정책 담당 정치인들의 아름다운 블루스 연주의 결과였다. 그 블루스의 서브장르인 즉 난리블루스여서, "지역별 과목역량 특성화 고교"라는 것이 1년전에 생겼고, 우리 학교는 왜인지 "수학과 역량 특성화 고교"라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덕택에 우리 학교에는 발음 조차 오묘하기 그지 없는 "수학부장"이란 것을 하나씩 마련해 두도록 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수학부장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 심지어 나는 수학을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 수학 교사가 수업준비를 할 때 칠판에 그래프 그리는 것을 도와 준다든가, 수업 시작 전에 칠판에 그날의 연습문제를 미리 써 놓을 필요가 있다면 그걸 써놓는 일을 하는 정도, 좀 성의 없는 교사들이 "지난 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하고 수업시작할 때 물으면, 수학부장이 일어나 "선생님께서 아무 학생도 들으려하지 않는 한국 부동산 정책의 고질적인 문제에 때문에 선생님 집값 떨어져서 괴로워 한다는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하시다가 반 아이들의 95%가 수면의 세계로 돌입하였던 대목까지 했습니다"라고 답해주는 것 정도가 역할이었다.


    돌아보면 오묘한 것이, 참 별것 아닌 작은 것 때문에 조금 이쪽 방향으로 틀어진 것 때문에 인연이 생기는 것이구나 싶다. 말하자면, 1차함수의 기울기가 소수점 여섯자리에서 살짝 차이가 나는 두 함수라고 해도 1사분면의 오른편으로 꽤 많이 나가면 함수값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벨기에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출발할 때 방향을 1도 오른쪽으로 잡고 날아가느냐, 1도 왼쪽으로 잡고 날아가느냐에 따라서 10시간 후에는 대한민국으로 비행기가 올 수도 있고, 인도로 비행기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가 수학부장이란 것을 하고 있다거나 하고 있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 집에는 개집 지붕에 기와집 무늬가 새겨져 있다거나, 우리집에는 개집 지붕이 통나무집 무늬가 새겨져 있다거나 하는 정도의 문제였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시간에 배웠던 그래프를 이용한 부등식의 풀이를 배울 때 나왔던 숙제에 대해서, 지구에 사는 60억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나, 그러니까 주인공인 바로 나에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으면서 어쩌다보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던 그녀였지만, 나에게 숙제를 물을 때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밝은 말투로 말 해왔다. 그게 버릇인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그녀는, 그때 그녀는 외롭고 우울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걸 때 웃으면서 즐겁게 말하는 그 습관을 일부러 더 버티듯이 꼭꼭 지켰다고 한 적이 있다.


    하여간 당시에 이른바 우리 반의 "수학부장"이었던 나는, 그녀가 오늘 숙제가 뭐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면서, 그녀가 숙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로 이 부분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참,


    "그 말이 아니고, 그러니까 숙제가 정확히 뭘 하냐는 거냐면"


    같은 이야기만 여러번 하면서 쉬는 시간이 그냥 한 번 지나가 버렸다.


    "이번 시간 끝나고 다음 쉬는 시간에 내가 확실하게 이야기해 줄께."


    그래서 그렇게 말하고, 다음 시간인 세계사 시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한 시간의 이어진 세계사 시간 동안 나는 온통 그녀 생각만 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나. 뭘 어떻게 설명할까. 왜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이걸 이렇게 모를까. 그런 생각만 계속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는 그녀를 흘깃흘깃 쳐다 보았다. 그녀는 세계사를 가르쳐주시던 그 할머니가 아비뇽 유수니, 카놋사의 굴욕이니 하는 것 따위를 주절주절 말하는 것을 참 열심히도 듣고 있었다. 몇번 그녀를 보면서, 나는 얘가 좀 예쁜 게 아니라, 사실은 엄청나게 세상에서 제일 예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맞다. 돌아보면, 그 할머니의 세계사 수업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세계사 수업시간이 지나고 그녀와 다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녀가 전학 오기 전의 학교와 우리 학교의 수업 진도가 달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나는 "세상에 이런일이" TV프로그램에도 소개될만하게도, 무려 고등학교 수학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여자친구를 만들게 되는 대한민국 교육사와 연애사에 공히 길이 남을 기적적인 위업을 달성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좀 재미없지만, 팍팍하게 생각해보자면 사실 그녀는 전학와서 친구 없이 재미 없게 지내다가 친하게 지내게 된 녀석이 한 놈 걸렸는데, 그러다보니 이 녀석과 계속 더 친해지게 된 것이고, 하필이면 그 녀석이 남자다 보니 대충 남자친구처럼 삼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애틋한 사랑이라든가, 운명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외로움 때우기용 땜질 정도로 걸린 그냥 아는 놈팽이 정도로 요약될만도 하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 누구 말대로 온통 그녀 생각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바보 중에서도 A등급 바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멍청하다느니, 진짜 사랑이 아니라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안그래도 대하기 어색한 아이였는데, 좋아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더 어색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 더 친해질 수록 더 좋아하게 되니까 그만큼 더 멋있어 보이려고 더 어색해지려고 말한마디 할 때마다 더 긴장되는 그 기분을 그때 나처럼 느껴봤다면 바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뭐 바보면 어떤가. 온달은 을지문덕을 능가하여 고구려의 장군들 중에 가장 후세에 널리 알려진 장군이 되었고, 이반은 온 러시아에서 당해낼 자가 없는 무적의 사나이가 되었지 않냐는 말이다. 세상에 홍성대가 쓴 수학 교재를 들여다보면서, 그녀와 함께 이야기할 내용을 상상하고 가슴 설레게 되는 그 상황에서, 뭐 무슨 정상적인 논리가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아직도 선명하게 똑똑히 기억한다. 학교 보수 공사로 야간자율 학습 없이 일찍 집에 가던 그날. 저녁에 같이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고 있는데, - 그날 온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은, 세상에 하늘 색깔이 저럴 때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만큼 참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 정말 그때 표정, 그 얼굴, 그 좀 떨리던 그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 너무 어색하게 그러지마. 그럴 필요 없어. 나도 너 좋아해."


    그리고 나서, 얼굴이 발갛게 변하는데, 아. 정말로 어찌나 예쁜지.


    그날 난 뭐 "고맙다"고 하기도 좀 이상하고, 그런건 뭐 꼭 무슨 주택 대출금 승인 받은 뒤에 은행 직원한테 하는 대사 같은 느낌이니까, 그렇다고, 뭐 허장강 선생이 남긴 불후의 영화 대사처럼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할 수도 없고 해서, 그날 저녁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부끄러워서 서로 잘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같이 걸어내려가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괜히 좀 웃겨서 혼자 씩씩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먼저 온 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를 보고 괜히 손을 한 번 흔들어주니까, 버스 안에서 그녀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그 날 밤 그 때를 다시 기억해보면, 그건 바보 같은 것도 아니고, 웃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엄청나게 무진장 사랑스러운 거다.


    그날은 학교 보수 공사가 있었고, 저녁놀이 보기 좋은 날이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따져보자면 신승훈이 또 새 앨범을 발표한 날이었고, 세계적으로 따져보자면 안트워프의 다이아몬드 회사 두 곳이 합병을 결정한 날이었던 그런 하루 였다. 그 단 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그날 하루 전까지의 삶과 완전히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그녀를 다시 보면서 가슴은 콩닥콩닥 더 뛰고, 더 어색하고, 더 많이 설레서, 더 긴장되었지만, 이제는 조금도 불편하다거나 괴롭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것도 좋기만했다. 그러니까, 장나라나 구혜선이 나오는 연속극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어제까지만해도 예쁜 여자주인공에게 어떻게든 친해져보려고 한심하게도 수학문제 따위나 들이대는 어정쩡한 웃긴 놈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당당한 남자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나고나면, 좋은 기억만 남아서 실제보다 지나간 옛날일은 더 좋게 기억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항상 현실은 힘들고 추억은 더 아름답다고 한다. 그 말은 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와 같이 보낸 시간들은 굳이 좋은 기억을 빼고 나쁜 기억을 찾아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뭐하러.


    괜히 토요일 아침 일찍 전화해서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하면,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잠이 깬 듯 아직 잠이 덜깬 목소리로 잘했다고 하고. 내가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고 더 자라고 전화 끊으려고하면, "아니 아니 전화 끊지마" 하고는 별 말도 없이 그냥 하품하고 기지개 켜는 소리만 한참 듣게 하던 것이라든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같이 떡볶이 먹을 때 옷에 양념 튀었다면서 "어머니 빨래하느라 고생하시는 것도 모르지" 하면서 한 번 꾸짖고는 휴지를 떼어서 닦아주던 것이라든가. 늦게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밤공기가 선선할 때 가만히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여름날 팔빙수 사 먹을 때 자기는 팥빙수 안에 있는 떡 좋아 한다면서 골라먹는다거나. 그냥 한 순간 한 순간. 그녀와 함께 있던 시간들은, 재미있고, 기분 좋고, 즐거웠다.


    광복절에 우리도 여름인데 휴가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고는 그녀와 나는 항상 학교 갈 때마다 지나쳐 걸어가곤 하는 바닷가에 갔다. 언제나 보는 곳이었고, 같이 그곳을 걸었던 것도 수십번도 넘는 곳이었지만, 그날 그녀는 "정말로 바캉스 온 것 처럼" 이라고 하면서 멋을 부려 옷을 차려 입고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며 김밥이랑 과일도 싸왔다.


    그녀가 만들었던 김밥은 좀 크고 약간 짠 듯 했지만, 뭐 그때까지 먹어 보았던 크고 짠 김밥 중에서는 가장 맛있었다. 그녀는 매운탕이라도 끓이게 바다에서 뛰어들어 상어라도 한 마디 잡아 오라고 농담을 했고, 나는 쓸데없이 몸으로 웃기는데 목숨거는 코메디언처럼 참 바보스럽게도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그녀를 웃겨보려고 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과일을 깎았고, 나는 우적우적 깎아 주는데로 배가 터지도록 다 먹어 치웠다. 나는 그녀에게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학교 가는 길가의 문방구에서 장난감 같은 오천원짜리 목걸이를 사서 그녀의 목에 걸어 주었고, 그녀는 "역시 난 우아한 매력이 있어서 보석이 잘 어울린다"며 웃어 주었다.


    좀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가당치도 않게 유치한 일로 서로 냉랭하게 지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도 그렇게 그때 그녀를 만났기 때문에, 그 때만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의 등록금이 몹시도 넉넉한 숫자여서 로그를 씌워서 비교하는게 편리할 정도라는 것을 확인한 뒤, 국공립 학교 중에 가고 싶은 곳을 골라보자니 도무지 실력이 되지 않고. 그런데 중학교 때 나 괴롭히던 7반 반장 녀석 보다 한 번 공부 잘해보고 싶었는데 번번히 쳐지기만 하고. 따지고 보면 누구나 고민하는 고3 때 겪었던 일에, 우울하니 재미없게 툴툴거리고만 있을 때. 그런 때.


    나는 중얼중얼 못난 소리만 하면서, 옆에 앉아 있는 그녀는 뭐 괴로운 소리 듣는 인형인냥 한참 앉혀두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앉혀 두었을 때. 그때 그저 아무말 없이 한참 있다가 가만히 내 입을 맞추었던 그녀의 그 긴긴 찰나. 정말로 흘러간 옛날 노래 가사처럼, 그녀는 내가 길을 잃고 헤멜 때 집으로 돌아가도록 이끌어 주었고, 그녀는 내가 영혼을 팔아 버렸을 때, 악마를 찾아가 극성스런 인터넷 쇼핑몰 고객처럼 악마에게 반품해달라고 윽박질러서 내 영혼을 다시 되사오던, 그런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산에 올라갔던 것이 수능시험을 치고 내가 면접시험을 치른다고 서울에 왔을 때였다. 이미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능이란 시험치는 날 뚜껑 열어 봐야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7반 반장 따위는 저 멀리 고향 바다의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 볼만큼 시험을 잘 쳤고, 면접시험 정도야 어떻게 되든 합격은 정해져 있었다. 한편 일찌감치 그녀는 특차로 전주에 있는 학교에 합격하였는데, 마침 이모네 댁에 놀러가곤 하던 때랑 비슷하다고 그 겨울에 나와 같이 서울에 왔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울 구경을 하겠다고 경복궁이며, 청계청이며, 시청 앞의 스케이트 타는 곳이며를 돌아보았고, 쓸데없이 KOEX몰에 가보기도 했고, 잠실에 가서 롯데백화점에 가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골 학교에서 놀러온 장난스런 학생처럼 행동했던 것인데, 그러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 야경이 어디가 좋냐고 했더니, 그녀가 어릴 때 남산에서 봤던 밤 풍경이 좋았다는 기억에 오게 된 곳이 남산이었다.


    KOEX몰에서 신기하게 생겼으니까 한 번 먹어보자고 했던 햄버거가 터무니 없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어서 우리는 예산을 확 초과해 버렸기에 케이블카를 타지 못하고 걸어서 남산에 올라가야 했다. 걷다보니, 힘들어서 내가 그녀를 잡아 준다고 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같이 손을 꼭 붙잡고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와보니, 시원하게 트여있는 경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안전철망으로 막혀 있었고, 그나마 철망에는 왜인지 수백, 수천개의 자물쇠가 달려 있어서 제대로 철망너머를 볼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그 자물쇠란 것들을 가만히 보니까, "S loves L" 이라든가, "우리 사랑 영원히" 같은 글씨들이 씌여 있었다. 연인들이 올라와서는 혹은 짝사랑에 빠진 중학생들이나, 가수 팬클럽 같은데서 와서는, 자물쇠가 굳게 엮여 있는 것처럼 그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자물쇠를 하나씩 걸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한참을 두고 수백, 수천 쌍이 다녀가다보니, 어느새 안전철망이 가득 자물쇠로 뒤덮혀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유럽이나 남미 어느 즈음의 나라에서 비슷한 명소에 생겼던 풍습이 일본이나 미국 어디즈음에 퍼졌고, 그걸 남산에 찾아온 아이들이 따라하던 것 때문에 유행처럼 퍼진 일이지 싶었다.


    나는 차라리 올라오던 도중에 중간중간 보던 경치가 훨씬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좀 헛수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철망에 가득 걸린 자물쇠들 때문에 도무지 경치라 할만 한 것을 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멋있는 야경을 보려고 힘써 여기까지 올라왔건만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모르긴해도, 나는 거기에 올라가서 그녀와 함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커다란 도시의 불빛을 같이 볼 순간을 어떤 의미를 두고 깊게 기대했던 것 같다. 그녀는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고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는 졸업하면서 만나기 어렵게 되지 않겠나 하는 걱정을 나는 하고 있었다. 애써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가서 한 번 다시 고민해보자 하면서 덮어두곤 했지만, 잠깐 시간이 생길때마다 그 걱정은 떠올랐다. 틈틈히 짧게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 때마다 자꾸만 이제 곧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무슨 결론이 어떻게 날지 겁이나서 그런 말을 차마 그녀에게 꺼내서 하기가 겁이 났다. 그녀도 우리가 졸업한 후에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히 지꾸만 그녀의 왼손을 쥔 내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의 손을 꽉 움켜 쥐고 있을 때, 그저 사람이 북적거려서 시끄럽기만한 남산 꼭내기 풍경에 실망한 내가 좀 멍하니 서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우리도 자물쇠 하나 걸어 놓자."


    나는 잠깐 한 2,3초 멍하니 있다가, 괜히 그녀의 얼굴을 피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여기 자물쇠 파는 데 없는데. 내려가서 사와야 할 거 같은데."
    "그럼 가위 바위 보 해서 지는 사람이 사오기"


    나는 그녀가 가위 바위 보 할 때에는 항상 처음에는 보를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바위를 냈다.


    "내가 좋은 자리 찾아 놓을 테니까, 빨리 내려가서 사와. 늦으면 나한테 혼나."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어둠에 가려 얼굴 표정은 어떤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남산 위에서 아래에 있는 어느 자물쇠를 팔만한 곳을 찾아 뛰어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30분? 어쩌면 1시간? 내려올때는 힘들어서 그렇지 금방 내려갔다 올라올 것 같았는데, 어째 가는 길부터가 그렇게 짧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돌아올 때 즈음해서는 너무 많이 시간이 지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별로 그럴 까닭이 있지도 않았는데, 기다리던 그녀가 어디인가로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어딘가로 가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비슷한 것도 있었고, 어디까지 왔느냐고, 아직까지 자물쇠 못 샀다면 그냥 오라고 전화라도 한통 할 것 같은데 전화도 없는 것도 좀 이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어두운 길을 뛰어다니면서 숨이 차 헉헉거리고 있는데, 문득문득 그러는 틈마다, 잠깐잠깐 짧은 순간마다, 이제 내년에는, 다음 겨울에는 그녀와 내가 어떻게 될까. 떨어져서도 변치 말자고 해볼까. 아니면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란다고 먼저 뭐라고 해볼까. 대체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을 계속. 끝도 없이. 그 생각만 하면서 몇 시간씩 그냥 시간 보낼 수 있을만큼 계속 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도록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작은 가방이나 일기장에 사용하는 조그마한 자물쇠를 하나 들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금방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가 말한대로, 자물쇠를 걸어 놓을 좋은 자리를 보러 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을 것이다. 말없이 어딘가로 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는데, 나는 괜히 그녀가 그냥 없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더럭 무서워졌다.


    한참 동안 돌아다니다가 나는 수없이 많은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철망에서 좀 떨어진 곳에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이름을 부르고 그녀에게 뛰어갔다.


    "여기, 사왔어. 뭐 좀 멋있는게 없더라. 여기 이런거 장사해도 장사 될만하겠구만."


    나는 그녀에게 자물쇠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자물쇠를 본다고 고개를 돌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 섰다. 그렇게 해서, 위에서 비치는 전등 불빛 속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까만 머리칼에 괜히 더 어려보이는 척하는 머리핀을 꽂고 있던 것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자, 그 예쁜 눈이 빨갛게 되어 아직까지도 흠뻑 눈물에 젖어 있었다.


    "너 울었어? 야, 왜 울었어?"


    나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몇 번 물었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하다가, 그냥 나를 쳐다보다가 잠깐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하기만 했다. 그녀는 내 손에서 자물쇠를 받아 들고, 또 뭐라고 하려다가 말을 멈추었다.


    "왜그래? 뭐 때문에?"


    나는 그냥 나도 갑자기 와락 울음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그녀에게 다그쳤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그녀가 말했다.


    "나랑 헤어져도, 나 잊으면 안돼. 니가 나 잊으면 나도 그때 너 바로 너 잊을거야."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농담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나 진짜 더럽지. 콧물 정말 많이 난다."


    그녀는 그리고 돌아서서 철망에다 우리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우리는 몇 발짝 떨어져서 같이 우리 자물쇠를 쳐다 보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자꾸만 가리는 틈사이로 우리는 다른 수많은 자물쇠 사이에, 좀 작고 허름하고 약해 보이는 우리 자물쇠를 쳐다 보았다.


    그날, 지하철에서 그녀와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1년 후에, 1년 후에. 여기서 우리 자물쇠 앞에서 다시 만나보자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유치한 이야기를 한 거 아닌가 싶어서, 말하면서도, "아니다, 아니다 그건 너무 신파극 같다." 하면서 그냥 말을 다 하지 않을 기색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어페어 투 리멤버", "러브 어페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영화들을 이상하게 버무린 이야기를 뭔가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대충 짜내서 들려주었을때, 굳이 그때 괜히 잘난 겉멋에 그건 좀 이상하지 않냐고 정신나간 잘난척을 하는 녀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녀석은 여기 이 수학부장에게 분수 약분하는 방법이나, 통분하는 방법 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그럴께. 난 그렇게 할꺼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날이 지나고도 우리는 졸업식때까지 한참 같이 지낼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말이 꼭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마지막 말인 것 같은 기분에 푹 빠져서 그렇게 말했다. 1년후 돌아오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그동안 그녀가 결혼해서 쌍둥이를 나았다든가 하는 소식을 듣더라도, 갑자기 전쟁이라도 터져서 서울이 적군 수중에 들어가고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꼭 그 날, 거기에 가 있을 거라고 혼자 참 불타오르도록 다짐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지금, 이 추운 겨울날 아침에 내가 아침부터 이렇게 떨면서 서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주가, 1년전 그녀를 만나겠다고 했던 날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도대체 내가 왜 그러면 남산으로 가지 않고, 엉뚱하게 청와대 앞쪽인 경복궁 북편으로 이렇게 헤메면서 찾아온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남산 가는 길은 헤멜 필요도 없다. 남산 가는 길은 환하게 잘 안다. 몇 번이나 올라가 봤는지 모른다. 우리 자물쇠가 거기 잘 걸려 있는지, 밤에 너무 어두우면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요렇게 조렇게 계산도 많이 해 두었다. 다행히 날씨도 폭설이나 혹한으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추운 것도 아니었다. 1년 동안 연락했다가 혹 기대와 다르면 어떤가 하는 것을 겁내는 멍청한 생각 때문에 직접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결혼을 했다거나 쌍둥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소식은 결코 들은 적이 없었다. 서울은 아직 멀쩡한 대한민국의 영토였고, 내 두 다리도 어느 때 보다 건장했다.


    그런데 벨기에 국왕 때문에 말썽이 생기기 시작했다. 벨기에 국왕 폐하께서 그녀에게 반해서 뭔 옛날 동화에 나오는 마왕처럼 그녀를 납치해서 남산위에 솟은 탑에다가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설마, 그런 엉뚱한 일 때문에 벨기에 국왕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따지고보자면, 세계 경제 불황부터 이야기 해야하는데, 대충 짧게 설명하자면, 우리 정부가 세계 경제 불황을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 무슨 일을 열심히 하는 듯한 인상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EU와의 경제 협력으로 위기를 타계한다는 정책을 잔뜩 펴 놓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대통령, 총리, 여당 당수,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한심한 정치인 여섯명 등등의 인간들이 줄줄이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설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세계 경제 불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일을 잘하는 정치인이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많이 설치고 다니는 정치인이라는 오묘한 생각을 TV에서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통령은 "브뤼셀에서 가장 심하게 설치고 다니기 챔피언"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브뤼셀 왕궁에서 벨기에 국왕을 초청해서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운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해도, 내가 뭐 초콜렛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별히 스머프에 감명을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벨기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벨기에 국왕이 방한 한다는 이야기 조차도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언뜻 벨기에 국왕 셋째 딸 얼굴 예쁘다고 사진 띄워주는 기사에서 봤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벨기에 국왕에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벨기에 국왕과 우리 대통령이 함께 남산에 올라가서 서울의 야경을 본다는 것이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느 때 처럼, 남산에 우리 자물쇠가 제대로 있는지 점검차 갔다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수많은 자물쇠들 때문에 경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벨기에 국왕의 방문을 맞아, 자물쇠들이 달려 있는 철망을 모두 철거해서 없애버리고, 새롭게 안전 철망을 세운다는 것이었다. 자물쇠들이 걸린 철망 때문에 경치가 잘 안보이니까 경치 잘보이라고 그 많은 자물쇠들과 철망을 모조리 갖다 버린 다는 것이다.


    벨기에 국왕과 대통령이 올라가서 "아름답지 않습니까?" "..." 어쩌고 하는 몇마디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우리 자물쇠가 수백, 수천개의 다른 사람들이 걸어 놓은 자물쇠와 함께 잘려나가서 버려지고, 결국 어느 철제 재활용하는 공장 불구덩이 속에 내던져진다는 것이다. 이제 다음 주면, 그 앞에서 그녀를 만나는데. 나는 거기에 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할 거라고 분명히 나는 그녀에게 약속했었는데.


    그리고 그 결과 그 다음에 내가 한 생각이야말로 도대체 지금 생각해 보면 해괴한 결심이었다. 나는 무슨 수로든, 내가 나서서 벨기에 국왕이 야경을 보기 좋게 하려고 남산의 자물쇠들을 걷어내는 철거 작업을 직접 손수 막아내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사실, 자물쇠가 걸린 안전 철망이 잘려져 나가 버린다고 해도 그녀와 내 약속이 그것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 자물쇠는 거기 없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냥 가 있었으면 되었다. 그게 아니면, 그 시간 즈음에 남산 올라가는 적당한 길에서 그녀가 오는지 기다리면서 문자메세지를 보내도 될 일이었다. 아니 그냥 나는 전화를 해서 그녀에게 우리 자물쇠가 잘려서 버려지니까 자물쇠가 없더라도 남산의 어느 즈음에서 만나자고 말 할 수도 있었다. 하다 못해 꼭 남산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내가 그녀에게 "그럴께. 난 그렇게 할꺼야."라고 말할 때, 그때 나를 보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꿈속에서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것이 무슨 정신나간 낭만주의의 폭주인지, 어린 소년이 자기 사랑이 아름다웠다고 과시하면서 자랑하기 위해 벌이는 연극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1년전에 내 굳은 그 마음 먹었던 대로 지난 1년 동안 상상하고 기억하던 그녀를 다시 만나는 그 순간 그대로를 한 번 펼쳐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결코, 아무것도 아닌 장난 같은 우스꽝스러운 짓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오랫만에 매우 별이 잘 보이는 겨울밤에 추운몸을 녹이며 한참 은하수의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롭게 빛나는 겨울철 별자리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긴긴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밝아올 즈음이 되면 그 많은 별들이 다 사라질거라고 다 사라질거라고 생각이들 때, 그 때 괜히 어느 빛나는 행성을 향해 기도를 해 본다든가, 그렇게 환하지는 않지만 어두운 밤 공간에 떨어져서 혼자 빛나고 있기에 결코 다른 별들 보다 어두워 보이지 않는 별에게 그녀의 이름을 붙여본다든가, 하는 일들을 하게 되는, 그런 순간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난 이틀밤낮을 고민하고 준비한 끝에, 나는 우리 대통령과 벨기에 국왕이 오늘 아침 나서기로 되어 있는 이 청와대 앞, 경복궁 뒤편에서 벨기에 국왕에게 나아가서, 남자 대 남자로 정중하게 부탁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그나마 최대한 가능성있는 방책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로 고민한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고른 장소와 시각이 바로, 이날 아침, 청와대 앞 이곳이었다. 그 수십명의 경호원들과 달라붙어 있는 취재진들과 갑자기 뛰어드는 괴상한 인간들을 피하기 위해 평생을 조심해야하는 그 국왕이라는 양반의 직업이라는 겹겹의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이래저래 여러가지로 짜내고 고안해낸 그 당시의 절박한 내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계책들이 조마조마하게 가슴속에서 쿵쾅거리며, 과연 이게 말이 되는 짓인지 뭐하는 짓인지 마지막까지 안절부절하지 못했던 그런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경찰들이 먼저 앞으로 서고, 한참 만에 경호원 몇몇들이 청와대 앞으로 걸어나왔다. 아, 뭐하는 건가. 그냥 돌아갈까. 이게 다 뭐하는 거라고. 그리고 멀리서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대통령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그런 자리이기는 했지만, 지금 대통령이야말로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나라 역사의 햇수가 지금의 두 배가 될 때까지 살아도 아직 건장할 불사조와 같은 수명을 누릴 사람이었다. 지난 몇년간 왠갖 매체에서 대통령 욕하는 장면들을 수없이 끝없이 보여 주었고, 별별 적나라한 대통령의 얼굴 표정을 나역시 끝도 없이 다양하게 보아왔기에, 멀리서도 웃으면 오히려 인상이 더 이상해지는 특유의 우리 대통령 얼굴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대통령 바로 옆에서 여러가지 사진을 보며 기억해 둔 안경 쓴 늙은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왕이었다.


    막상 왕의 얼굴을 보면서부터는 무슨 고민이나 생각이 별로 많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앤트워프에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크레인에 매달려 있을 때 나를 매달고 있는 줄이 팽팽할 것처럼, 아주 긴장해서 온몸이 당겨져 있는 듯 했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판단을 하기 보다는, 그 때부터는 지금껏 생각하고 고민한 그 행동이 그냥 흘러나오는 것처럼 그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왕이 다가오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왕과 대통령의 시선을 보고 있었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보고 있었다. 대통령이 손으로 청와대 바깥쪽 경계와 경복궁 북쪽을 가리키기 시작했고, 무엇이라고 이야기했고, 왕이 감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흐뭇하게 웃어 보인다. 왕이 다시 무엇인가를 묻는다. 바로 지금. 정확히 이 순간이다. 내가 기다렸던 때이다. 좀 과장하면 그 동작은 아르덴 삼림의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굶주린 늑대가 멀리서 움직이는 사냥감을 보고 도약하듯 했다.


    나는 정확하게 계획했던 대로 움직였다. 수십명의 기자들과 더 많은 경호원들이 애워싸고 있는 왕이 있는 쪽을 향해 나는 뛴 것이 아니었다. 내 계획은 그것이 아니라, 바로 그 대각선 반대 방향에 세워져 있는 청동상과 그 청동상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청동으로 되어 있는 북을 향해 뛰는 것이었다. 나는 한 달음에 청동상까지 달려 갔고, 오늘 아침에 오자마자 연습했던 것처럼, 한달음에 청동상을 기어올라갔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대통령과 왕의 눈이 청동상을 기어오르는 나를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 있는 힘껏 청동북을 때렸다. 종소리도 아니고 북소리도 아닌 깊고도 맑은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계속해서 청동북을 때렸다.


    이 청동북은 대통령의 팬클럽에서 돈을 걷어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예전에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 선거하던 무렵에 "노사모"라는 사조직 팬클럽이 활동하면서 정치인 팬클럽이 설치면서 선거운동 비슷하게 도와주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인들 사이에 굳건한 정치습성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심지어 남북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서 이북의 김정일 아들들도 자기네들 팬클럽을 서로 키우면서 경쟁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판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 대통령도 선거 때는 큰 팬클럽이 여럿 거느리고 있었고, 각자 팬클럽의 두목들은 그렇게 하다가 대통령이랑 친해지면 국회의원 한자리 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서로 더 열성적인 팬클럽인척하려고 같은 대통령 팬클럽끼리 싸우기도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4대 팬클럽 두목들이 서울시의원자리를 각자 나눠갖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합의하면서 이 팬클럽들이 하나로 합쳐졌는데, 그러면서, 팬들에게 돈을 뜯어다가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것이 바로, 이 청동으로 만든 북, "신문고" 였다.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말을 잘 듣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라는 뜻으로 준 선물이었는데, 대통령이 당선 되면서 자랑한다고, 신문고가 대충 어울리는 고궁의 뒷편이자, 청와대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청동상과 어울리게 꾸며서 함께 세워 놓았던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왕에게 자랑스럽게 자신의 팬들이 준 선물이라고 이 청동북 신문고를 설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신문고라는 것의 유래를 설명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겠지만, 아마 조선시대의 영조 임금에 대한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조 임금이 행차에 나섰을 때, 신문고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신문고를 두드린 사람을 불러다가 그 억울한 사연을 듣고 왕이 직접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자신도 그런 태도로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면서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얽힌 재미난 전통적인 이야기를 하는척 하면서 잘난척을 왕창왕창하는 것이 우리 대통령의 생각 아니겠는가 이말이다.


    바로 그런 자랑하는 이야기가 끝나는 그 순간을 노려 나는 신문고에 올라가 북을 쳐야 했다. 너무 처음부터 북을 치고 있으면 대통령이나 왕이 보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나를 끌고 나갔을 것이고, 왕이 별 관심도 없을 때 혼자 북을 쳐 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 대통령이 저 북은 억울한 사람들이 치는 북이고 대통령인 내가 그 사연을 듣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운운하면서 설명하고 벨기에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관심을 가졌을 때, 그 순간 내가 북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대통령이 말한 순간이라면 북 친 사람, 그 억울한 사람을 말하자 마자 강제로 끌어내리기는 매우 민망하지 않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요즘 대통령은 "별로 민주적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언론의 시각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신문고"를 두들기는 사람을 남의 나라 왕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경찰들을 시켜서 끌어내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 "아닐 것이다"에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왕에게 영조 왕 때의 것을 베낀 신문고를 가리키며 잘난척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정확하게 맞춰서 북을 때려야만 했던 것이다.


    "저... 저... 저기."


    북을 때리고 있는 내 앞으로 대통령의 비서관 영감님 한 분이 걸어오셨다. 난 재빨리 그 사람의 표정과 좀 떨어져 있는 벨기에 왕과 우리 대통령을 보았다. 비서관 영감님이 머뭇거리고 있는 "저... 저기..." 란, 나를 뭐라고 호칭할 지 몰라서 헤메고 있는 듯 보였다. 평소 같으면 나 같은 사람을 보고, 그냥 "야!" 라고 불렀겠지만, 지금은 국민을 가까이서 존중하는 자상한 대통령의 비서인 척 해야 하는 순간이었고, 내가 좀 늙어 보이기만 했다면 아마 "선생님!" 이나, "아저씨!"라고 불렀을 텐데 이 비서관 영감님 아들뻘 정도 되는 나이였으니, 그렇게 부르기도 좀 이상했을 것이다. 이 비서관은 "옛날에 회사 중역실에 있을 때 같으면 그냥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듯이 고객님이라고 부르면 될텐데" 라고 고민하며 난감해 하는 듯 보였다. 결국, 이 비서관은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이렇게 나에게 말했다.


    "구...국...국민님! 저, 거기 올라와 계시지 마시고 내려 와서 저에게 무슨 이야기인지 말씀해 보세요. 제가 대통령님께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다 이제 가장 큰 문턱을 넘었다 싶었다. 나는 곧장 비서관 앞으로 내려와서 두 발짝 즈음 더 걸어가서는, 왕의 얼굴을 바라다 보았다. 둥그런 금테 안경. 넓적한 턱. 흰 머리. 어찌 보면 도저히 겉으로는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사람인듯도 보였고, 어찌 보면 굉장히 박식하면서도 마음은 넓은 너그러운 할아버지인듯도 보였다. 그러나, 언제 경호원에게 끌려나갈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벨기에 왕의 관상을 볼 시간은 없었다.


    나는 벨기에 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접은 종이를 펼쳐 최대한 큰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엉터리 불어 발음에, 고등학교때 쓰레기처럼 배운 불어 문법을 그나마 최대한 무슨 암호문 짜맞추 듯 짜맞춰 만든 문장으로 되어 있는 내용을 왕을 향해 읽기 시작했다.


    나는 왕에게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1년만에 남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 만날 장소로 1년전에 안전철망에 걸어 놓았던 자물쇠 앞을 택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런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두었던 자물쇠가 왕과 대통령이 오늘 저녁에 볼 야경을 가린다는 이유 때문에 잘려나가 버려질 지경이라고 이야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폐하, 비록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아뢰어 올리는 것 조차가 송구스러운 무례이오나, 폐하께서 지금 가련히 무릎을 꿇은 한 미천한 젊은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오라, 폐하 또한 저와 똑같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이심을 잊지 마시고, 부디 잠깐이나마 그 사랑하던 기억으로 생각해 주시옵소서, 저희 자물쇠를 그대로 두실 수는 정녕 없사옵니까.


    내가 조악한 불어로 그렇게 마구 읽어대면서 말하는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통역관은 대통령에게 그대로 번역해서 전하고 있었다. 우리 대통령은 잠깐 당황한 듯 하기도 했고, 좀 짜증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왕의 눈치를 잠깐 보았고, 그리고 왕이 나름대로 나의 이야기를 신경써서 듣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우리 대통령은 따지고보면 기회를 잡고 눈치를 보는 실력 하나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대통령은 또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이상한 시위하는 학생 녀석이 해괴한 기회를 잡아서 튀어나왔다고 지레짐작하고는 짜증을 내다가 이내 표정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것. 나름대로 이야기할만한 이야기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금새 표정을 바꿔서 껄껄웃는 유쾌하고도 관대한 표정으로 벨기에의 국왕을 바라보며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의 표정이 밝은 낯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때, 통역이 말했다.


    "폐하께서 오늘 저녁에 방문할 남산이라는 곳에 지금 이 사람이 말한 것과 같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젊은 친구가 사정이 묘하게 되었는데... 폐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대통령이 웃으며 묻자, 왕은 직접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수행하고 있던 주한 벨기에 대사에게 불어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다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주한 벨기에 대사가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안전철망에 걸려 있는 자물쇠들 때문에 경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 자물쇠들을 다 잘라 버리기 보다는, 그냥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그 의자 위에 올라가서 철망 너머로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대통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관 하나가 이야기 했다.


    "벨기에에서는 국왕이 대사급 외교관을 통해서 말을 전할 때, '하교하다'라는 말을 써서 전달하면, 정식 국제조약의 형태에 준하는 두 나라간의 협정 형태를 의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에는 국제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거, 정식으로 오케이하려면 국회에서 동의도 해야 되는 형식입니다."


    대통령은 그런 것 따위 신경써서 지금 화기애애하고 낭만적인 기사거리가 생기는 것을 망치지 말라는 눈치를 주었다. 대통령은 벨기에 국왕을 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나를 보고도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왕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나를 잡아 일으키면서 어깨를 툭툭한 번 쳐주고는 왕과 함께 느긋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면서 대통령은 비서에게 가볍게 말했다.


    "뭘 걱정하나, 지금 여당이 다수당 아닌가? 지금 국회 열어서 오늘 저녁까지 통과시키라고 하세요."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벨기에 대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왕에게 속삭거려 주었다. 왕은 역시 예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한 번 더 웃었다. 왕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Au revoir, Monsieur amour" 정도였다. 됐다. 됐다. 성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3.
    헤어진 여자 친구와 1년만에 다시 만날 정표인 자물쇠를 위해서 왕과 대통령을 만난 대학생의 이야기는 기가 막힌 뉴스거리가 되었다. 나는 TV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이 "가슴 따뜻해지는" "아름답고 예쁜" 어쩌고 하는 말로 치장해서 우스꽝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을 귀가 따갑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수천배는 많은 욕설들과 비아냥 거리는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럴듯한 뉴스거리에 정치인들은 저마다 한 몫씩 끼어들고 싶어서 였는지, 이 문제 하나에 만큼은 놀랍도록 기막히게 여야가 단결했다. 국회에서는 "벨기에 국가 원수를 위한 남산 의자 설치 조약" 비준 동의건을 9분 43초만에, 날림처리 중에서도 초음속 제트 전투기의 날려가는 모습과 맞먹는 속도로 잽싸게 날림처리 해 주었다. 이에 곁들여 청와대에서는 팬클럽에서 만들어준 신문고 청동상을 슬그머니 청와대 구석으로 옮겨 놓는 앙큼한 행동도 잊지 않고 그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렇지만 정작 나도 그녀도, 우리가 만나기로 한 그날 남산의 우리 자물쇠 앞에는 가지 못했다. 그날 남산에는 우리를 구경하고 중계하려고 마음먹은 19개 언론사의 각종 기자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33개의 카메라가 남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기에 경찰 병력을 동원해서 통제를 해야 할 만큼 많은 숫자의 각종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으며, 그 구경꾼들에게 자물쇠나 벨기에에 관한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들까지 몰려들었고, 결국에는 심지어, 자기들이 대통령과 왕 앞에서 자물쇠를 걸어 놓고 1년만에 만나려고 한 이야기를 말했던 그 연인이라고 사칭하는 사람들도 여섯쌍이나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곳에 갈 수는 없었다.


    그 후, 19년이 지났다. 19년 동안 남산은 많이 변했다. 그날의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서울 시장은, 사람들이 사랑의 증표로 걸어 놓은 자물쇠들을 경치 보는데 방해된다고 잘라 없애 버리는 작업을 중지 시켰다. 대신에 벨기에 왕이 올라가서 경치를 보았던 높이와 비슷한 높이로 바닥을 더 높여서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안전철망 너머로 경치를 볼 수 있도록 공사를 했다. 그리고, 높아진 바닥에 새로 한 겹 더 안전철망을 둘렀다.


    3년여만에 새로 두른 안전철망도 남산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놓은 자물쇠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다시 그 많은 사람들의 자물쇠 때문에 경치가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울 시장은 다시 한 번 더 바닥을 한 층 더 높이고 새로 안전 철망을 두를 것을 계획 했다. 이런식으로 19년 동안 남산의 바닥은 8차례에 걸쳐 높아졌고, 아홉겹이 된 안전철망에는 4백2십6만개의 자물쇠들이 걸려 있게 되었으며, 그 때 벨기에 왕이 딛고 올라섰던 의자는 "왕의 의자"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관광객들이 사진찍는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이제는 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물쇠를 걸면서 겹겹히 끝도 없이 높아진 이 산꼭대기는 전설적인 장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몇십년간 자신들의 사랑을 약속해온 남산은 전세계의 신혼부부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 덕분에 이제는 전세계에서 찾아온 연인들 때문에 너무 빠른 속도로 자물쇠들이 가득 들어차게 되는 것이 걱정거리가 되어 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전에 실린 기사에 나온 계산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추세이면 20년 후에는 남산의 높이만큼 많은 자물쇠들이 쌓일 것이라던가. 그 기사 제목이 "산은 높아 봤자지만, 사랑은 끝이 없다" 였지 싶다.


    19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싱가포르 유학 시절에 만난 한 인도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아내가 서울에 있는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산에 대해 물어 봤을 때, 나는 그게 내가 벌인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아내는 인도에서도 그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하다고 무척 신기해 하면서, 이렇게 유명한 사람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며 싸인 해 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혼인신고서며 전입전출신고서며 같이 쓰는 신용카드에 얼마든지 씌여 있는 내 싸인을 나는 또 해주어야 했다.


    그 날 그 사건 이후에 나는 그때 그녀를 세 번인가 더 만났다. "야, 너 그때 완전 너무 심하게 오바였어. 무슨 니가 마왕에게 붙잡힌 공주 찾으러 싸우는 기사니 뭐니. 그냥 전화해서 케이블카 내리는데 앞에쯤에서 만나자고 하면 되지 그게 뭐야. 무슨 영화주인공도 아니고 동화주인공도 아닌 것이. 아주 민망해서 혼났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벌써 몇년이나 지난 후였는데도,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얼굴이 닳아올라 멋쩍어 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를 보던 그 눈동자를 잠깐 곁으로 돌리더니 좀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멋있기는, 진짜 멋있더라."


    어느새, 벌써 까마득한 일이 되었고, 이제는 그때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도 왕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세월로 훌쩍 건너와 버렸다. 지금 나는 다시 불어 닥친 불경기 때문에 고민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고, 그나마 여유가 생길 때면 가끔 다문화 가정의 사회적 평등 문제 모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정신없게만 흘러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바쁘게 오가는 사이에 문득 서울 시내에서 남산 위쪽을 올려다 볼 때면, 생각 날 때가 있다. 그날 경복궁 앞에서, 무슨 오기였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벨기에 왕과 마주 보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겠다고 말했던 그 때. 나는 세상 그 어떤 나라의 어떤 왕보다도 더 강한 사람이었다고. 그녀에게 나는 그렇게 할꺼라고 맹세하고 정말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온통 내 마음이 빠져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던 그녀를 믿었던, 그 때는, 내가 왕이었다고.



    - 2009년,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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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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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슴컹크 10.05.31 11:58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자물쇠철거를 못하게 했는데 결국 당일날 여자친구와 만나지 못했으니 이건 해피엔딩이 아닌 걸까요?

    지나가는 얘기인데, 둘이서 KOEX 몰에서 먹었던 햄버거는 왠지 크라제 버거일 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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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1 14:50 댓글 수정 삭제
    순 해피엔딩이야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주 덧글 달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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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쑤우 10.06.01 14:54 댓글 수정 삭제
    곽재식님이야말로 21세기 최고의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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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o 10.06.02 11:39 댓글 수정 삭제
    아주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저도 왠지 가서 자물쇠를 달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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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2 13:15 댓글 수정 삭제
    쑤우/ 가능하면 22세기까지 무병장수하여 정말로 그렇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습니다... 격려해주시는 덧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pico/ 오늘 휴일이고 날씨도 좋고 한데, 친하게 지내시는 분 계시다면 한 번 나들이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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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03 12:29 댓글 수정 삭제
    우오오 이런 이야기 좋습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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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3 21:19 댓글 수정 삭제
    이런 류의 이야기는 여러편 써 보았으니, 마음껏 더 읽어 주시면 저도 또한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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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03 22:49 댓글 수정 삭제
    아 그나저나...종종 <네>라고 적으실 걸 <너>라고 적으시더라고요.

    네가, 를 너가, 로 적으신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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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4 08:59 댓글 수정 삭제
    애들이라서 애들 말투로 한번 써 보았습니다. 이런 게 출판할 때 넘어가면 수정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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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04 16:08 댓글 수정 삭제
    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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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희 10.06.10 23:04 댓글 수정 삭제
    이거, 타로카드 22제에 실렸던 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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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11 01:34 댓글 수정 삭제
    이걸 기억하셔서 알아보시는 우상희님께서야 말로 진정한 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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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10.06.24 01:00 댓글 수정 삭제
    본의 아니게 관광사업에 이바지했군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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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8.11 17:26 댓글 수정 삭제
    으헙 전 좀 씁쓸하군요..흙 저의 핸드폰 메인 화면에는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되어 있지요. 근데 정말 재밌게 잘 봤어요>.<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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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Ringo 10.08.20 02:08 댓글 수정 삭제
    너무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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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a 10.11.12 13:48 댓글 수정 삭제
    한글 배워둬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네요.
    조형미와 함께 부드러운 터치네요.
    캔버스가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좀 거친 배경인데도
    잘 어울려서 보는데 재미있었어요.
    작가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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