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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장난감 병정

2014.11.30 23:1611.30



장난감 병정



1.

미영은 기뻐 했다.


“우리가 BFB에서 사건 따 낸 거라고. 좀 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녜요?”


그러나 양식은 별 기뻐하는 기색 없이 서류를 계속 가만히 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BFB 같은 큰 회사랑 얽히면 잘 풀리면 좋은데, 잘못하면 걔네들이 뭐라고 그러는 지 알아요? ‘우리 같은 회사랑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당신네 같은 조그마한 회사에는 큰 선전이고 광고 아닙니까. 그만큼 당신네 회사들이 믿을만하다고 보증해 주는 역할까지 우리가 하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광고에 도움을 드리는 만큼 돈은 좀 팍팍 깎을 수 밖에 없는 거 이해해 주시죠. 사실 그렇게 파격적으로 싼 값 제시 안해주시면 저희가 당신네들처럼 작고 새로 생긴데 하고 갑자기 거래할 이유도 없고요.’ 그러면서 돈을 확 깎는다니까요.”

“그 말투랑 목소리는 또 뭔데. 누구 성대 모사 하는 거예요?”


양식은 누구 성대 모사인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서류의 다른 부분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것만 문제가 아니고요. 이거 일 내용을 봐도 우리가 회사 처음 시작할 때 생각했던 우리 사업의 목표랑 별로 맞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만하면 아주 상관이 없는 건 아니지. 거기다가 얘네들이 돈 깎아서 준다고 해도 이만하면 감지덕지라고. 이번 일 하는 거에요.”


미영은 말을 하면서 바로 우주선을 출발 시키기 위해 컴퓨터를 조작했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안될까요? 사장님.”

“왜,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진짜 이것보다 훨씬 더 이상한 일도 많이 했잖아요.”

“그 이상한 일을 이제 좀 제발 그만하자는 거죠. 저 원래 BFB 여기 별로 안좋아했어요. 식품회사들이 왜 회사이름 끝트머리를 F&B로 달랑 바꾸고 나서 뭐 엄청 대단한 새로운 변혁을 이뤘고 이제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는 신세대 업체고 세계적인 수준의 업체로 가는 길로 확 다가 왔다는 듯이 뿌듯해 하는 거 그거 너무 덜떨어진 유행 같잖아. BFB는 그 유행 다 끝난 후에도 그렇게 한 회사고.”

“아, 거 되게 투덜투덜하네. BFB에서 FB가 그렇게 싫으면 앞에 B에 애정을 가져 보라고요.”

“B는 뭐 약자인줄 알아요? B는 Bio 약자라고요. 자고로 시누이 많을 집에는 시집을 가지 말고, 바이오 자 붙은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말랬다고, BFB 엄청 불긴한 이름 아니에요?”

“무슨 그런 옛말이 어디 있어. 그리고 시누이 많은 집에 시집 가서도 잘 사는 사람 널렸어.”


양식은 뒤이어 대답하고 또 길게 회사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는 동안, 두 사람을 태운 우주선은 항성권을 벗어 났다.



2.

양식은 사건 자체에 대한 조사 보다는 먼저 일을 부탁한 BFB 회사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했다.


“BFB 옛날 일을 뭐하러 그렇게 들춰 봐요? BFB 싫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는 김이사만 해도 그제, 어제, 오늘 BFB에서 나온 음식 안 먹고 먹은 끼니가 한 끼라도 있어요?”

“일단 그래도 갑자기 우리 쪽으로 일 부탁한 거 보면, 뭐가 안 좋아도 안 좋은게 있어서 저랬을 거니까, 어떤 회사인지는 좀 더 세밀하게 캐봐야죠.”


양식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BFB가 이렇게 큰 회사로 자리 잡은 것은 역시 BFB의 첫번째 인기 상품인 “맛뿌리”가 초기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돈을 벌어 들였고, 그 개량판 제품이 지금까지도 큰 돈을 벌어 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맛뿌리가 인기를 끈 배경은 은하수 델타 사분면 개척시기에 벌어졌던 합성쌀 중독 사건이었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한 행성이 유난히 많은 델타 사분면이 개발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먼 행성으로 이주해 갔다. 그렇지만 원래 사람들이 먹던 입에 맞는 농산물, 축산물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고민거리였다. 새로 개척한 행성 표면의 광물에서 뽑아낸 원소로 합성 당분이나 합성 단백질은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좀 더 진짜 같은 음식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많은 회사들이 탄소 화합물로 곡식이나 과일, 고기의 질감과 비슷한 제품을 인공 합성하는 사업에 뛰어 들어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밥맛이 좋은 합성쌀을 만들기로 유명해서, “지구의 임금님표 쌀보다 한 수 위”라고 선전했던 “은하제국황제표 합성쌀”에서 문제가 터졌던 것이다. 절묘하게 밥맛 같은 느낌이 충분하면서도 조금 더 고소하고, 조금 더 달콤한 맛을 만들기 위해 집어 넣은 특수 조미료 중에 몸에 나쁜 성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장 먹는다고 해서 배가 아프거나 죽는 물질은 아니었고, 직접 몸의 세포에 해를 입히는 부분도 관찰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쓰던 조미료 성분이었다. 하지만, 그 합성쌀을 2년 이상 꾸준히 먹게 되면 먹은 사람의 발이 1, 2 cm 정도 커지는 기괴한 유전 변형을 일으켰다.


은하제국황제표 합성쌀 회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맞지 않게 된 신발값을 물어 주고, 예쁜발이 자기 매력의 원천또는 자기 애인의 매력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배상금을 물어 줬다. 그러고 났더니, 그만 이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 일 때문에 정부 당국은 식품 안전 관리를 똑바로 해야 한다고 연합정부의 국회의원들끼리 보기 멋질만큼 요란한 싸움이 벌어졌다. 식품 대란이라고 할만큼 식품들을 늘어 놓고 벌인 다툼은 격렬해서, 나중에는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길쭉한 과자를 상대방 의원의 콧구멍에 꽂아 버린다든가, 멀리 있는 국회의장을 공격하기 위해 탄산음료를 흔든 뒤에 내뿜어 얼굴을 적셨다. 그나마 그런 장면들은 그래도 비교적 덜 민망해서 여러 번 방송된 화면에 속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의 결과 충격적인 은하 식품 재료 특별 관리 제도가 새로 시행 되었다. 이 법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식품 회사와 음식점들은 자기 제품에서 사용하는 조미료와 재료의 성분과 양을 훨씬 더 명확하게 공개하고 신고해야 하게 되었다. 어떤 음식을 사면 그 음식에 뭐를 넣었는 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게에서만 사용하는 비밀 양념” 같은 것이 모두 까발려졌고, 은하계의 음식 맛은 모두 점점 비슷해져 갔다.


독특한 비밀 재료를 주무기로 하는 음식점들은 수도 없이 망했다. 정부에서 시행한 너무 과격한 법 때문에 음식점이 망했고, 수십년 동안 연구해서 내가 발굴해낸 나만의 비밀 양념이 정부의 법 때문에 하루 아침에 공짜로 세상에 다 알려져서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우는 소리도 하고 소송도 걸고, 초대형 우주선 도약 항법 항로를 우주 유영을 하며 막아 서서 시위도 벌었지만, 이미 국회에서 별별 미친 짓에 익숙해졌던 연합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단속을 밀어 붙였다.


그리고 음식 맛이 다들 비슷해지자, 음식점들이 음식 맛이 아닌 다른 것으로 경쟁을 하다 보니 혼란은 더욱 격렬해졌다. 처음에는 양을 많이 준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손님이 삽으로 밥을 퍼가는 음식점 따위가 유행했고, 나중에는 식품 회사들이 광고를 머리에 남게 하는 게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퍼져서 수영복을 입은 미녀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는 온천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이번에 나온 컵라면 국물이더라 하는 따위의 선전이 온갖 곳에 눈발이 흘리듯이 퍼져 나갔다. 이 2년 간, 이 사건은 여러 행성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 왔기 때문에 이것을 1차 은하계 식품 업계 대혼란이라고 한다.


이 혼란을 정리한 회사가 바로 BFB였다. BFB에서는 맛뿌리라는 조미료를 만들었는데, 맛뿌리는 화성에서 자라나는 미생물을 처리하여 만들어낸 조미료였다. 맛뿌리의 특징은 88가지 흔히 쓰이는 조미료가 섞여 있는 것 같은 형식이었는데, 음식에 넣기 전에 온도와 습기를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그 88가지 조미료 맛 중에 어떤 것이 얼마나 나타나는 지가 바뀐다. 예를 들어 맛뿌리 한 봉지에 물을 한 컵 붓고 40도로 2분을 처리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조리하든지 맛뿌리에서 온통 설탕맛만 나게 된다. 다른 조건으로 처리한 맛뿌리를 쓰면 그다음부터는 찜을 하던 국을 만들던 맛뿌리에서는 계속 짠맛만 나게 할 수도 있다.


즉 맛뿌리는, 정부 규정이 음식 재료는 정확하게 공개 해야 하지만 조리방법은 대략만 서술하면 된다는 점을 이용하는 제품이었다. 무슨 조미료를 썼는가, 하는 란에는 그냥 “맛뿌리 100%”라고 쓰면 된다. 대신에 맛뿌리를 몇 도 온도에서 어떻게 처리한 뒤에 쓴 것인지만 안알려 주면, 실제로 맛뿌리를 어떤 맛이 나게 활용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음식점에서 똑같은 맛뿌리를 사서 집어 넣는다고 한들, 어떻게 맛을 흉내내야 하는 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로서도 크게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정부에서는 사람이 먹어서는 안되는 위험한 성분을 음식에 넣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맛뿌리의 성분은 이미 충분히 안전하다고 검증이 된 것들로만 합쳐진 것이었다. 맛뿌리의 어느 측면을 어떻게 강조해서 맛을 만들어내는 지에는 수백만 가지 조합이 있을 수 있으니, 안전한 맛뿌리가 원재료로 쓰인다는 사실 자체 모든 음식이 똑같지만, 맛은 다들 다르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다.


자기 회사 음식의 맛을 반드시 지켜야 겠다고 생각하는 맛이 좋다는 회사들부터 맛뿌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맛뿌리를 쓰는 식품회사는 맛 있고 기술 있는 식품 회사라는 생각이 퍼졌고, 그렇게 되자 다들 그냥 맛있는 척 하기 위해 맛뿌리를 너도 나도 쓰기 시작했다.


BFB는 맛뿌리가 한 번 성공한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맛뿌리 안에는, 설탕맛, 소금맛, 후추맛 등등 88가지 맛이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맛뿌리를 팔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음식의 맛은 일곱 가지 미각과 34가지 기본 향취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모든 맛을 정확한 수치로 표현하는 표를 만들어 냈다. 나중에는 음식의 감촉과 질기고 부드러운 정도, 뜨겁고 차가운 정도, 처음 씹을 때의 맛과 나중에 입에 남는 뒷맛 등등을 구분하여 표시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음식맛을 41개의 특성치로 표현해 내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되자,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더이상 식물이나 동물에서 재료를 구하고 손질한 뒤에 굽거나 찌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일이 되었다. 음식에 필요한 영양분과 기본 재료를 3D 프린터에 넣어 음식 모양으로 그대로 출력하면서, 맛을 내기 위해서 적절한 특성치로 설정할 수 있는 신제품 맛뿌리를 같이 주입하면 그 맛이 나는 그 모양의 음식이 그대로 생겨 났다.


음식 전체가 비교적 균질한 재질로 되어 있는 비스킷, 도넛 따위는 초기부터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고, 덩어리진 부분과 아닌 부분이 나뉘어 있는 양념고기나 김치 같은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조금 힘들었지만 곧 대중화 되었다. 3D 프린터용 맛뿌리 4.0이 판매될 즈음 해서는, 냉면, 밀면 같이 더 복잡한 음식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재료가 2중, 3중으로 조합되어 다양한 형태로 엮여 있는 전골 같은 음식도 어렵지 않게 출력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3D 프린터에 탄화수소 모듈, 물, 맛뿌리만 집어 넣고 음식의 능력치 숫자들이 기입 되어 있는 소스코드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입력시키기만 하면 기계에서 완성된 가장 완전한 맛의 음식이 튀어 나오게 되었다. 요리사들,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음식 만드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실업 사태 때문에 다시 한 번 여러 행성들의 경제가 파탄이 났고, 그런 만큼 여러 행성들이 갑자기 떼 돈을 버는 일도 생겼다. 이것이 2차 은하계 식품 업계 대혼란이었다.


그러면서 요리사들의 역할은 새로 바뀌었다. 요리사들 중에 일부는 3D 프린터가 안전하게 작동되고 위생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주 역할인 “조리정비사”가 되었고, 일부는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맛뿌리 수치 조합을 여러 가지로 계산해 보며 답을 고민하는 “설정치 계산업자”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맛뿌리로 맛있는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동안 만들어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음식을 꾸며 내는 기술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교한 살아 있는 작은 아기곰처럼 생긴 곰고기 맛 만두 같은 것 따위가 유행했다. 아기곰 요리의 곰모양 만두에는 해초로 된 보들보들한 털까지 있었다. 사실은 진짜 해초가 아니라 그것도 해초맛이 나는 맛뿌리 넣은 탄소화합물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정교하게 음식 모양을 만드는 것은 점차 괴상망측해져서, 어떤 연예인과 똑같이 생긴 음식이 묘한 맛이 나는데 핥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송아지 모양으로 된 음식이 있는데 음식을 한꺼풀씩 잘라 먹어 보면 그 내부에 갖가지 뼈와 내장 모양까지 만들어져 있는 음식이라든지, 심지어 재료를 절묘하게 활용해서 실제로 움직이며 걸어 다니는 사슴 모양으로 된 쿠키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까지 생겨 났다.


좀 더 정상적으로 맛에 집중하는 경우도 실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초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는 고기에 양념을 배게 하기 위해 양념에 재워 놓고 숙성을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고기 내부에 양념이 균일하게 섞이는 방식의 음식을 출력해 낼 수가 있었다. 겉면에는 양념이 발려 있고 속은 양념과 상관 없는 맛이 나는 음식이 아니라, 모든 살결에 촘촘히 깊숙히 균일하게 양념 맛이 골고루 스며든 음식을 꾸밀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국물 맛이 면발 속 깊은 곳까지 박혀 있는 라면이라든가, 고기맛을 정말로 면과 같이 즐기며 맛보기 위해 면발 가운데에 가늘게 고기가 박혀 있는 우육탕면이라든가 하는 음식이 생겼다.


더 새로운 음식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연 재료로는 만들 지 못하는 맛을 가진 음식들도 생겨 났다. 혀에 주는 통증은 없지만 매운 맛의 향기는 극히 강렬한 풋고추라든가, 탄산음료처럼 톡톡 터지는 맛이 나는 케익이라든가, 치즈가 바삭바삭한 튀김 옷과 같은 재질이 되어 감싸고 있는 탕수육 같은 특수한 재질과 초현실적인 맛의 음식들은 몇몇 행성의 별미로 이미 은하수 델타 사분면에서는 유명한 것들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BFB는 막대한 돈을 벌었다. 맛뿌리 뿐만 아니라 음식용 3D 프린터와 그 부품을 생산해 전우주에 공급하는 회사로 커졌다. BFB는 소비자 제품 판매, 마케팅 능력에다가 화학, 전자 제품을 다루는 기술을 이용해서 옷, 가구, 비누, 화장품 같은 다양한 소비재를 파는 회사가 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BFB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그 경쟁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워낙 강하다 보니, 업계에서는 BFB가 참여하는 사업 분야의 경쟁 업체들을 모조리 망하게 하는 저승사자 같은 인상의 회사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해서 삽시간에 부자가 되는 마금희 같은 사람들과 BFB를 자주 견주었다. 마금희 스스로도 언제인가,


“BFB의 정밀한 음식물 섭취 감각 계산 능력은 다른 업자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막강한 힘이다. 30년 동안 한 가지 일만 단련한 제빵사 영감의 손맛이라는 것이, 결코 시공장성에 2.2 킬로미터에 걸쳐 자리를 잡고 있는 BFB 중앙 계산 서버가 계산해 낸 맛의 최적값을 당해 낼 수 없다.”


고 말한 적이 있었다.


반대로 BFB 사람들도 마금희와 종종 홍보 행사에서 같이 나타나기도 해서, 마금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BFB를 반대하기도 했다.


아직도 세상에는 예전처럼 땅에서 자란 재료를 손으로 가공해서 만드는 음식도 있기는 있다. 그런 음식들을 칼로 자르고 불로 데워서 만든다고 해서, 종종 불칼 식품이라고도 한다. 농작물이 풍부한 지구에서는 불칼 식품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고 다른 행성에도 불칼 식품을 파는 가게가 가끔씩은 있다. 가끔 재미 삼아 불칼 식품을 만드는 요리를 하는 것이 일종의 기이한 취미 생활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사진으로 찍으면 되지만, 굳이 사진과 똑같은 정도의 정밀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불칼 음식으로 인류가 되돌아 가야 한다고 열성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금희의 반대자들은 BFB 때문에 돈을 날린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불칼 식품을 지지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인간이 맛뿌리 3D 프린터 기계로 음식을 출력해 먹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선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은 지구에서 직접 우주선이 실어 온 쌀을 그릇에 넣고 쪄서 만든 밥과 달에서 직접 우주선으로 실어온 흙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기른 상추로 상추쌈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소개 했다.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가난한 쌈밥집 주인 부부야 말로, 거대한 BFB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용사라는 것이 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틀어 대는 광고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광고들은 대부분 실패였다. 더 자연스럽고 더 인간적인 다 같이 사는 방법이라면서 불칼 음식을 선전하고 있었지만, 모든 지구 생명체가 부족한 은하계의 많은 행성에서는 불칼 음식이야말로 사치스럽고 비싼 귀족의 호사로 들릴 뿐이었다. 산소를 만들어낼 미생물이 담긴 시험관 하나 실을 공간마저 부족한 경우가 있는 대우주 탐사선에서는, 우주 저 편으로 밭에서 뜯은 채소 따위를 신선하게 운반해서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란, 국이 짜다고 아침 밥상을 뒤엎었다는 식의 중세 시대의 귀신들린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BFB의 학자들과 그들의 컴퓨터가 보여 주는 정교한 계산의 결과는 언제나 훨씬 더 값싸고 훨씬 더 좋은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해서 더 잘 팔게 해 주었었다.


BFB 반대 운동은 음식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실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감 병정이 나타나면서 그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3.

두 사람이 도착한 행성은 고양이밥 별의 두 번째 행성이었다. 행성은 흰 눈으로 뒤덮인 조용한 곳이었다. 넓은 눈 밭에 착륙한 우주선에서 바라 보니, 멀리 눈 덮인 벌판 저편에 짧은 여름 동안 자라난 침엽수 숲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 숲도 모두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어두운 나무 그늘을 남겨 놓고 하루는 꼬박 걸어야 할 만큼 펼쳐진 그 숲 속에 누가 드문드문이라도 살고 있을지,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멀리서 봐야 알 수는 없었다.


우주선 착륙장 앞에는 2,3층 되는 건물들이 늘어 서 있는 시가지가 있었다. 길은 좁고 거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들은 모두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벽과 바닥은 깨끗했다. 반짝이는 구슬과 밤이면 색색깔 빛을 뿜을 전구로 장식되어 있었고, 드문드문 치워 놓은 눈들이 여기저기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털옷을 입고 지나 다니는 사람들은 얼굴은 추운 기온에 발갛게 되어 있었지만, 눈동자는 모두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싸 놓은 선물 상자가 가득 진열된 가게에는 장난감 병정도 진열되어 있었다. 장난감 병정은 움직이고 있었다. 끊임 없이 걸어 다녔다. 그 걸어 다니는 모습은 재미있고 즐거워 보였다. 가게에서는 장난감 병정이 갑자기 성공을 거둔 놀라운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훤칠한 선남선녀의 컴퓨터 그래픽 영상으로 장난감 병정 회사의 창업자들의 이야기가 극화되어 있었다.


장난감 병정 회사를 차린 사람들은 원래 시공장성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시공장성에는 우주를 상대로 큰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의 서버가 많이 설치 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느날 그 회사에서 해고 되었고, 시공장성을 떠나게 되었다.


홍보 영상에 따르면, 그들은 몰인간적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금속 덩어리인 시공장성에서 살면서, 비인간적인 삶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문에 더 평화롭고 더 인간적인 삶을 찾아 그때까지만 해도 머나먼 변두리 행성일 뿐이었던 이 곳 고양이밥 별의 두번째 행성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시공장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설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곳이고, 이 행성은 몇 십년전까지 인간하고는 몇 천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서 있으면서 우주가 생긴 이래로 인간하고는 아무 상관 없던 행성인데, 시공장성은 비인간적인 곳이고, 여기는 인간적인 곳이라고?”


누군가 그 홍보 영상을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인간에게나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홍보 영상의 배우를 보면, 그 비웃는 것이야 말로 무례해 보였다.


장난감 병정 회사의 창업자들은 많은 돈도 없었고, 최고 수준의 계산용 컴퓨터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것, 자연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가장 중요한 밑천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자연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그 이상에 따라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장난감 병정”을 만들어 냈다.


장난감 병정은 총을 들고 걸어 다니는 손바닥 보다 조금 작은 인형이었다. 알록달록하게 색칠되어 있는 겉모양은 어떻게 보면 나무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도자기 같기도 했다. 고전적인 모양이면서도 선 몇 개로 표현한 얼굴 표정이 밝게 웃는 모습은 언제나 밝고 반갑고 따뜻하고 친근해 보였다.


장난감 병정은 전원 장치가 있어서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가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다. 최신의 수많은 자동 장난감들은 말을 하고 다양하게 표정을 바꾸고 날아 다니거나 물 속으로 잠수를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장난감 병정들은 그런 다채로운 기능들은 없었다. 그런 복잡한 기능을 할만한 고성능 컴퓨터가 탑재된 기계가 아니어서 가격도 저렴했다.


그렇지만 장난감 병정은 점차 많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화성의 한 부유한 영화배우가 자기 딸이 장난감 병정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번 떠든 뒤로 장난감 병정의 판매량은 급증했다. BFB가 장악하고 있던 어린이 선물용 장난감 시장에서 BFB의 제품들을 모두 앞지르고 장난감 병정이 1위를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나서 BFB의 장난감들이 하나 둘 망해서 없어져 버리고, 그 자리를 여러 색상, 여러 모양의 장난감 병정들이 차지하는 것은 잠깐이었다.


어린이들은 장난감 병정의 움직임을 좋아했다. 장난감 병정은 말 한 마디 못하는 장난감이었고 할 줄 아는 것은 걸어 다니는 것이 거의 전부였지만, 그 쉼없이 걸어 다니는 움직임이 정말로 자연스럽고 재미있었다. 주변 환경을 보고 익히고, 어린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움직였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었다. 말을 듣는 것처럼 움직일 때도 가끔 있었지만 아닐 때가 더 많았다. 매우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멍청하고 영문을 모르는 척 실수할 때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성실하고 착해 보이는 얼굴로 걸어 다니는 이 작은 병사 인행이 자꾸 실수하고 고생하는 행동을 많이 하면, 묘하게도 갖고 노는 사람에게 불쌍해 보이기도 했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놀라게 하기도 하면서 더 애정을 생기게 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움직이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갖고 노는 사람의 목적에 맞게 움직이려는 BFB에서 만든 장난감 보다, 이 조금 멍청하고 조금 말을 안듣는 장난감 병정이 더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BFB에서도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패배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장난감 병정의 전체 매출액이라고 해봐야, 맛뿌리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대는 BFB에서 보기에는 잔돈에 불과했다. BFB는 막대한 자금과 풍부한 계산 서버의 용량을 모두 동원해서 장난감 병정을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BFB는 장난감 병정처럼 일부러 멍청한 척 하고, 일부러 말귀를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있는 장난감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마음에 들만큼만 멍청한 척을 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인공지능이 필요 했다. 자체 내장 컴퓨터로 그런 계산을 하게 하려면 너무 고성능 부품이 필요해서 장난감 가격이 너무 비싸졌고, 그렇다고 시공장성에 있는 중앙 인공지능 서버와 접속을 하게 하려면, 번거롭게 허가와 보안 장치를 설정해야 했다.


BFB의 직원들은 어떻게 장난감 병정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했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함부로 남의 제품을 분해해 연구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장난감 병정에는 보호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불법적인 방법을 쓴다한 들 알아 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주 특수한 장치를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BFB는 최고의 기술 회사 BFB의 자존심을 걸고 어떻게든 장난감 병정을 이기기 위해, 소송을 걸어서,


“장난감에 어린이에게 위험한 물질이 들어 있으면 안되므로, 철저히 내부를 검사해야 한다.”


는 주장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정부 기관을 통해 장난감 병정의 내부 구조를 대략 살펴 보기도 했는데, 그다지 많지 않은 전자 장치가 있었을 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모두 지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되어 있을 뿐이었다. 결코 인간 어린이를 홀리는 텔레파시를 내뿜는 다른 은하계의 외계 기생충이 있지도 않았고, 은하수 저편에서만 생산되는 특수한 반도체로 만들어진 컴퓨터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BFB는 장난감 병정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아예 마금희는 BFB가 애써 장난감 병정 같은 작은 분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BFB의 경쟁력은 충분히 튼튼하다. 일부 상품의 점유율 하락은 특수한 비정상적인 상황의 결과일 뿐으로, 거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BFB의 반대자들이나 마금희의 반대자들은 그 말이야말로, 패배한 BFB가 비굴하게 패배가 별것 아니라고 감추려고 하는 말일 뿐이라고 비웃으려 했다. 좀 더 감동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어른들은 그저 혀끝에 맛있고, 돈으로 봤을 때 싼 음식을 먹기 위해 BFB의 음식, 맛뿌리의 맛에 길들여져 그것만 좋은 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하지만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들은 아직 진정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순수한 어린이의 눈에는 컴퓨터가 계산해내서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BFB의 장난감이 아니라, 자연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장난감 병정이 더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자연의 승리이고, 따뜻한 인간의 가슴의 승리이다.”


고양이밥 별 두번째 행성에서는 그런 말들을 유난히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행성에 도착한 두 사람에게는 그런 말 정도를 듣는 것 이상이 필요했다. 두 사람이 해야하는 일은 장난감 병정 공장이 있는 이곳에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장난감 병정의 비밀에 대한 정보를 캐내 오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눈이 오는 동안 가게 안에 머물러 있기로 했고, 그곳에서 스스로 장난감 병정을 사서 갖고 놀아 보기도 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장난감 병정 공장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다. 한 사람은 공장으로 가는 열차와 우주선들을 확인해 보면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 지, 어떤 전공과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지 살펴 보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시내의 음식점과 술집을 거닐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했다. 밤이 길고 추운 이 행성에서 “나이 든 사람의 지식과 경륜을 흠모하는 것 같은 젊은 여자”를 연기하자, 그 옆으로 자석에 쇳가루가 붙듯이 엉뚱한 방향으로 자존심이 강한 남자들이 달라 붙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언덕배기에 있는 커피 가게의 창고에서 만났다. 난로에 불을 밝힌 옆에 앉아 손을 녹였다. 두 사람은 창밖으로 보이는 눈에 덮힌 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덮힌 차를 마시려고 입김을 불자, 그 입김이 바람에 가끔 덜컹이는 유리창에 서렸다. 두 사람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장난감 병정이 추운 바닥에서 난로 옆을 걷는 모습을 같이 보았다. 한 시간 동안 난로 옆에서 이야기한 결과, 그들은 장난감 병정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기차가 고개 길을 지나 긴 터널을 지나고 나자, 넓은 눈밭이 멀리 펼쳐져 있는 평평한 땅이 나타났다. 어느 쪽을 보아도 끝없이 눈밭이었다. 가끔 멀리 나무가 모여 있는 것 보일 때도 있었고, 눈을 덮어 쓰고 삐죽하게 솟은 집 지붕들이 몇몇 모여 있는 작은 마을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계속 그저 흰 눈밭이었다. 창밖을 몇 분 내다 보고 있으면 눈이 부셔 아플 정도로 흰 눈 뿐이었다.


지겨운 눈밭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평원은 조금씩 높아져 가는 오르막이어서, 얼어 붙어 번쩍거리는 호수를 지나고 나자, 언덕 아래의 땅이 환하게 눈이 들어 왔다. 높다랗게 솟은 시커먼 빛에 가까운 나무들이 촘촘하고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숲 안으로 한참을 기차가 달려 가서야, 정거장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장난감 병정을 만드는 공장으로 들어 갔다. 직원 가족들에게 홍보 행사를 하기 위해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둘은 공장으로 들어 갔다. 회사의 행사 담당 직원이 그저 관광객인척 하는 두 사람을 안내했다.


“장난감 병정은 초전도 컴퓨터칩도 없고, 도약 통신을 이용한 시공장성 서버 접속 장치도 없이 만들어집니다. 일부 전자 장비를 사용해야 하기는 합니다만 최대한 자연적인 재료로 만들어 집니다. 장난감 병정의 특별한 점은 비싼 부품이나 최첨단 기술의 장비가 아니라 순수한 사람들의 열정과 아이디어 뿐입니다.”


행사 담당 직원은 장난감 병정과 어울리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백화점의 안내원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동화 속의 공주처럼 아름다웠다. 답을 하기 이상한 질문인지 알면서도,


“왜 이렇게 아름다우신가요?”


라고 물어 보고 싶을 정도라고 생각 했다.


두 사람은 숲의 나무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공장 이곳저곳을 보았다. 어떤 숲의 나무들은 지나치게 깊숙하게 공장 내부로 들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장난감 병정을 색칠하고 다듬고 포장하는 시설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구경이 벌써 끝난 것인지, 아직 한참 남은 것인지 궁금해할 때쯤, 두 사람은 직원과 함께 잠깐 점심 식사로 샌드위치를 먹었고, 이 행성의 특산물이라는 맛 좋은 과일을 먹었다. 그러나 과일을 먹은 두 사람은 잠이 드는 것처럼 정신을 잃었다.


두 사람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둘은 숲 사이에서 성벽처럼 치솟은 건물의 방안에 있었다. 두 사람은 나무 의자에 묶여 있었고, 뇌를 들여다 보기 위한 장비에 강제로 연결되기 직전이었다.


여전히 친절한 태도였던 직원이 말했다.


“여러분이 드신 것은 이 행성의 특산물 과일이 아닙니다. 그냥 특이한 맛이 나도록 맛뿌리를 넣어서 3D 프린터로 찍어낸 것입니다. 그 안에 사람을 잠들게 하는 약이 들어 있었던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러분이 BFB에서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풀어 달라고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직원은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엉뚱한 자기 이야기를 먼저 말했다.


“아마 BFB에서 저희 장난감 병정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보내서 저희 기술자들을 암살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BFB의 사악한 음모에 당할 만큼 정의의 힘은 약하지 않습니다. 두 분 암살자들은 저희 기술자들의 암살에 실패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암살이라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직원의 말하는 태도를 듣고 혹시 저 직원이 로봇은 아닌가 싶었다.


두 사람의 뇌 속을 헤집어 놓을 기계가 다가 오자, 그들은 그 기계가 바로 주식회사 염라대왕에서 쓰던 제품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아마도 이 직원은 “BFB의 음모”라는 것을 캐내기 위해 두 사람을 기계 속에 들어가 영영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지치도록 헤메게 할 참인 것 같았다.


마땅히 싸울 무기도 없었다. 빠져 나올 도구도 없었다. 손에 잡힌 것이라고는 장난감 병정이었다. 가방에서 장난감 병정을 꺼내자 장난감 병정은 재빨리 걸어서 기계 속으로 먼저 들어갔다. 기계는 두 사람 대신 장난감 병정을 붙잡고 먼저 동작하기 시작했다.


“왜 기계가, 사람이 아니라 장난감을 붙들고 움직이지?”


직원은 당황해서 기계를 중단시키려고 했다. 그렇지만 장난감 병정과 기계가 이상하게 움직였는지, 기계는 떨리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직원은 더 놀랐다. 그틈을 이용해서, 두 사람은 묶인 것을 풀고 도망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무렵 어찌된 일인지 대략 상상할 수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다른 부서들의 직원들과 어느 회사에서나 볼 수 있는 총무팀, 회계팀, 인사팀의 서류뭉치와 컴퓨터 사이를 뛰어 다니며 둘은 도망쳤고, 마침내 공장 속에 들어 와 있는 숲으로 숨어 들 수 있었다.


공장의 중앙에 자리 잡은 숲은 단순히 중앙에 숲이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 자연적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 전부인 공원이 아니었다. 공장의 중앙 숲은 그저 공원이 아니라 과연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다. 넓은 숲에는 조직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사육시설이 있었고, 그 사육시설로 꾸며진 숲의 나무들 마다 다람쥐들이 살고 있어서, 수십만 마리의 다람쥐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저기를 보세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다 자란 다람쥐가 실려 가는 입구가 있었다.


장난감 병정의 설립자들은 주식회사 염라대왕에서 해고된 장기 이식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상태의 다람쥐에서 그대로 뇌와 장기와 신경들을 꺼내서 그대로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유지시켜서 인형 속에 집어 넣었다. 장난감 병정 속에는 살아 있는 다람쥐의 뇌와 장기와 신경들이 뻗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뇌와 신경은 장난감 병정의 눈으로 보고 있었고, 장난감 병정의 모터를 다리 대신에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은 바로 살아 있는 다람쥐의 뇌와 장기들을 그대로 빼내서 장난감 속에 옮겨 움직이는 것이었다.


갈곳 없는 두 사람을 직원들이 좇아 와 몰아 세우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망연한 마음에 하늘을 보자, 은하계의 중심에 가까운 이 행성에서는 훨씬 더 많은 별들이 반짝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맥동하는 자기장 때문에 초록색 오로라가 반짝거리며 지나갔다. 장난감 병정을 만드는 이 직원들은 곧 둘을 붙잡을 것처럼 다가 왔다. 직원들이 켠 등불이 사방에서 환하게 빛났다. 그 직원들의 눈은 두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두 방금 떨어져 녹기 직전인 눈송이처럼 하나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우주선이 나타났다.


“등불 불빛을 보고 겨우 찾았어요.”


회사의 비서였다. 두 사람은 황급히 우주선을 타고 도망쳐야 했다.


고요한 밤하늘의 별빛으로 가득차 있던 밤하늘을 직원들은 올려 다 보고 있었다. 그 올려다 보는 점점 무표정해 지는 얼굴 위로 또 여느 밤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날아 도망치던 세 사람은 그때 우연히 우주선 안에 떨어진 막 새로 만들어진 장난감 병정을 보았다. 비서는 솜브레로 은하계에서 가져 온 장치 켰다. 동물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장난감 병정을 올려 놓자, 장난감 병정은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기계에서는 계속해서 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 2014년, 한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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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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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 14.12.01 07:09 댓글

    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보통 sf하면 이름에서부터 생활상까지 전부 외국인의 그것이 굉장히 익숙한데 곽재식 님 글을 보면서 그게 딱히 당연하진 않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은하제국황제표 합성쌀에서 빵 타졌네요. 그러면서도 정부에서 만화나 영화계에 요구하곤 하는 소위 한국적이라는 좀 빈정상하는 추레함이 없어서 정말 좋은 듯.

    그나저나 현대보다 까마득하게 먼 미래의 사람들이 의외로 융통성이 없군요. 자연스러운 움직임 뭐 그 까이꺼 그거 열어다가 안에 회로 중에 언어 감지기 7번 코일같은 거 뭐를 망치로 두어번 정도 두들겨 주면 다 해결되고 불쌍한 람쥐들이 희생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너무 슬프네요. 여튼 간에 마금희도 염라대왕 주식회사와 더불어 레귤러 등극인가 보군요.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좋습니다. 주인공 콤비는 이런 거물들의 해결사 노릇도 엄청 하는 거 같고 또 그게 잘되다 보니 계속 그런 쪽 의뢰만 들어오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 자기네 사업의 본분으로 돌아갈 날은 요원한 듯.

    아참 이전에 단 blue1234란 닉네임의 독자는 접니다. 여기는 곽재식님 글 보러만 가끔 오는 곳이라 전에 가입해서 덧글까지 달아놓고도 까먹고 또 가입을 해놨더라구요. 다중인격놀이한 것도 아니니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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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4.12.01 11:47 댓글

    동화스러운 분위기로 꾸며 보려고 한번 해 본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맛뿌리 이야기랑 장난감 공장 이야기의 비중 조절이라든가 분량조절을 좀 더 잘해야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반가운 덧글 감사드리며 한해 남은 마무리도 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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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라 14.12.08 00:33 댓글

    장난감 병정은 영화 로보캅 2의 케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영과 양식의 모험이 계속돼서 반갑습니다.

    "맥주병"또는 "주정뱅이 철학자"의 안부도 궁금합니다.

  • 신나라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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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4.12.08 20:12 댓글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소설집 냈던 온우주출판사에서는 흔히 "맥주탐정"이라고 부르던 인물이고, 제 이야기 중에서는 유일하게 영상화된 작품이 있는 주인공이기도 합니다만, 나름대로 시리즈 낸답시고 냈는데 주인공의 성격과 개성이 분명히 안 사는 것 같아서 한동안 저는 접어 두고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꼭 한 편은 한 번 써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관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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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별빛 14.12.21 00:36 댓글

    와. 갑자기 생각나서 들어왔는데 새 소설이 있었네요.

    지구의 임금님표 쌀이라던가, 맛뿌리라던가.

    재미있는 설정이 좋네요.

    맛뿌리로 인해 요리사들의 직업이 변화한다던가 하는 것도 그렇고요.


    비서는 솜브레로 은하계에서 가져온 장치 켰다->비서는 솜브레로 은하계에서 가져온 장치를 켰다 아닌가요? ^^;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

  • 바람별빛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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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4.12.21 05:38 댓글

    감사합니다. 다시 차분히 하나하나 또 읽어보니 이놈의 오타는 왜 이리도 많은지. 죄송합니다. 다음번에는 오타율 0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요리사들의 하는 일이 완전히 바뀐다는 설정은 듀나님의 소설 "일곱번재 별"("나비전쟁"이라는 단편집에 수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외계인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맛을 보고 직접 느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무의미하고 수치와 계산으로 조합해서 외계인들의 입맛에 적합한 별별 괴이한 재료와 양념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든다는 발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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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새턴 20.01.30 00:53 댓글

    이 시리즈에서 이렇게 뒤끝 안 좋은 이야기를 보게 될 줄이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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