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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리부장이 사무실 임대료를 못낼 형편이라면서 미영에게 괴로운 말들을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15층이 통째로 물이 가득차 있는 늪으로 변해 버린 건물이 왜 이렇게 임대료는 비싼 것이냐고 미영이 분개한 것도 꽤 중요한 이유였다. 특히 그 15층의 늪에서 튀어 나온 비단 잉어가 뛰어 올랐다가 건물 바깥으로 나오게 되어 아래층, 미영이 있는 사무실로 툭 떨어진 것은 미영의 당황과 분노를 더욱 자극 하였다.

그리하여, 미영이 일단 임대료부터 막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일거리를 받아온 것이었다. 양식은 계약서 첫머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정말 우리가 애초에 사업 시작할 때 생각했던 일이 진짜 아니잖아요."

미영은 이번에는 양식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도 않아 잘 대답도 하지 않고 오직 분노의 열기만을 얼굴 표정으로 뿜어 내었다. 그렇지만, 양식이 진심을 담아 투덜거리면서,

"그래도 텔레마케팅은 너무 심하잖아요."

라고 말하자, 미영은 소리를 질렀다. 텔레마케팅은 아니라고. 이건 설문조사라고. 미영은 누군가를 저주하듯이 소리질렀다. 양식은 별로 보지 못한 격분한 미영의 모습과 높은 목소리에 다소 겁을 먹었으나, 그래도 반발심을 완전히 감추지 않고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커지는 대화를 한 동안 했으나, 결국 두 사람의 싸움을 프로레슬링 구경하듯 구경하는 비서와 경리부장의 모습이 발견되면서, 두 사람은 합의 국면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미영과 양식은 설문 조사 일을 맡아서 하기는 하되, 가장 어려워서 조금만 하고 끝내도 돈이 되는 것으로 딱 한 단위만 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2.
두 사람은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행성이고, 탐사선이 이전에 도착했던 기록도 있고, 살고 있는 주민이 있을 것 같기는 한 행성이기는 하되, 외딴 곳에 있고 거의 교류가 없는 잊혀진 무인도 같은 행성 한 곳을 맡아서 그곳에 가서 설문 조사를 하게 되었다. 미영과 양식은 은하수의 바깥쪽에 있는 한 행성에 도착해서, 그 행성의 커다란 강물 위에 우주선을 착륙시켰다. 혹시 도둑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두 사람은 우주선을 강물 속에 잠수시켜 숨겨 놓기로 했다.

우주복을 입고 나가면서 보니, 별다른 해충도 없어 보였고 공기와 온도도 적당한 살기 좋은 행성이었다. 날씨가 상당히 춥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행성의 적도 지역으로 이 행성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것을 생각하면, 조금만 북쪽으로 가도 급속 냉동 장치 내부처럼 굉장히 추운 곳이 있을 듯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도착한 적도 지역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쌀쌀한 날씨로 우주복 없이 평상복을 입고 서 있다면 견디기 어려운 정도로, 적당한 방한복만 입고 있어도 다닐 수 있는 온도였다. 아닌게 아니라 지구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파란 풀들과 침엽수림이 잘 자라나 있었다.

양식은 물바깥으로 나오면서,

"이만해도 화성보다는 몇천배, 몇만배 살기 좋은 곳인데. 지구에서 몇 광년 떨어져 있다고 이렇게 아무도 안 사는 땅이 됐네요. 아마 별 자원도 없고 적도 주변 조금 말고는 너무 추운 곳이 많아서 다른 좋은 행성에 비해서 딱히 좋을 게 없어서 처음에 한 번 탐사선만 왔다가고 아무도 안왔나봐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이 행성의 저항과도 같이, 강물 주변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미영과 양식 주변으로 화살을 쏘아 대었다.

미영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양식은 화살이 왠만히 강한 것이 아니고서야 입고 있는 우주복이 튼튼해서 튀겨 낼 태니 일단 안심하라고 달랬다. 미영은 일단 안심을 하자, 그래도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이제 설문 조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영과 양식을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만만치 않았다. 이 사람들은 머리에 새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모두가 말을 타고 있었다. 다들 말타는 솜씨와 활 솜씨가 뛰어 났다.

"원숭이들은 순순히 멈추어라. 우리가 너희들을 맞추지 못해서 못맞추는 줄 아느냐? 나는 서남군에서 가장 솜씨 좋은 '주몽'이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 놈들의 머리통 둘을 화살 하나로 꿰어 줄 수 있노라."

놀랍게도 활 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하는 말은 매우 알아 듣기 쉬운 표준어였다. 미영과 양식은 다시 놀랐지만, 정말로 화살이 쇳소리를 내며 우주복에 픽픽 부딛히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다시 첨벙거리며 물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활 쏘는 사람들 중에 우두머리는 옆 사람에게, 자기가 투구끈을 맞힐테니, 그래서 투구끈이 풀려서 투구가 벗겨지면 옆 사람에게 얼굴을 쏘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우두머리는 절묘한 솜씨로 미영의 우주복 헬멧 벗는 버튼을 정확히 조준해 활로 쏘아 맞혔다. 그 바람에 미영의 우부복 헬멧은 벗겨졌다. 그러자 우두머리 옆에 있던 활 쏘는 사람이 미영의 얼굴을 겨냥했다. 양식은 미영을 덥쳐서 몸으로 겨우 다음 화살을 막았다. 양식은 활 쏘는 사람들에게 "항복한다"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이리하여, 활 쏘는 병사들에게 붙잡혀 이 사람들의 근거지로 붙들려 가게 되었다. 미영은 낯선 행성에서 제대로 검사도 안하고 우주복을 벗었고, 거기다가 더러운 강물에 빠지기 까지 했으니, 곧 우주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우는 소리를 냈다. 양식은 미영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양식은 우주복에 달린 안전 감지기로 유전자 분석을 해서 특이한 세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면서 미영을 달래 보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병사들을 보자 아무래도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달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미영과 양식은 병사들의 집이 있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약간 높은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는 그 도시는 그 언덕들을 둘러친 산성 성벽 안에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지구의 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흰 옷을 주로 많이 입고 있었는데, 옷들은 제대로된 옷감으로 만든 것으로 무늬도 다양했다. 남자들은 주로 머리에 천으로 된 복두를 쓰고 있었고, 여자들은 머리를 여러가지로 땋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곧이어 미영과 양식은 커다란 기둥이 많은 큰 건물과 행랑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 갔다. 아마도 궁궐 같은 곳인듯 보였는데, 미영과 양식은 거기서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히면서 보니, 그 감옥의 다른 방들에는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이 여럿 잡혀 있었다. 그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지, 짐승 같이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병사들은 "다른 원숭이들과는 다른 방에 가두어두라"면서 별도의 감옥에 둘을 가두었다.

두 사람은 잔뜩 겁을 먹었다. 양식은 미영을 안심하기 위해서,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면서 이 상황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양식은 밝은 얼굴로 감옥 옆 방의 한 여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띈 얼굴로 친분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양식은 그 점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감옥 옆 방의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달려 들어 인사 하는 양식을 공격해 물어 뜯어 버렸다. 양식은 물린 손에서 피를 흘리며 감옥 구석으로 피했다.

미영은 양식의 손이 물린 곳을 어떻게든 치료해 주려고 살펴 보았다. 미영은 상처가 감염은 되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 안전 감지기로 검사를 해 보았다. 미영은 그렇게 상처를 검사하다가, 상처의 피에 묻어 있는 양식을 물어 뜯은 옆감옥 여자의 입술 세포가 묻어 있는 것도 분석해 보게 되었다. 그러자 미영은 놀라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을 마침 들은 병사 한 명이 다가 오면서,

"그러면 원숭이들이 사람인줄 알았냐?"

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 비웃음에 합세하듯이 양식의 손을 물어 뜯은 여자는 늑대와 아주 비슷한 긴 짐승 울음 소리를 내었다.


3.
두 사람은 병사에게 끌려 가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우주복의 감지기가 갖고 있는 분석기가 성능이 충분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두 사람과 같이 갇혀 있던 사람 같이 생긴 것들은 유전자 상으로 볼 때에 사람과는 꽤 많이 달랐다. 그 무리들과는 차라리 사람과 침팬지가 훨씬 더 닮은 것에 속했다.

그 무리들은 그런데 겉보기만은 이상하게도 사람과, 그것도 아름다운 사람들과 매우 닮아 있었다. 그러면서, 이빨과 위, 창자등 속은 사람과 아주 달랐다. 그 무리들은 소처럼 생풀을 뜯어 먹고 살 수 있었고, 동시에 독수리나 올빼미처럼 산짐승을 뜯기에도 좋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뇌의 용량은 무척 작은 편이어서, 어지간한 개나 고양이보다도 지능은 떨어져서 정말로 늑대와 비슷할 듯 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 무리들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선남선녀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그 무리들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원숭이들보다도 훨씬 더 야수 같은 동물들이었다.

미영과 양식은 팔과 다리가 쇠사슬로 묶인 채, 어두운 통로를 걸어가게 되었다. 미영은 사형을 당하러 가거나, 이 병사들이 숭배하는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 했다. 양식은 그런 생각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려고 했지만 미영의 말을 들으니 자꾸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어느 넓고 큰 건물의 중앙이었다. 두 사람 주변에는 호화로운 비단옷 같은 것을 차려 입은 남녀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가장 높은 좋은 자리에 황금으로된 왕관을 쓴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끌고 온 병사는 그 금관을 쓴 사람 앞에 정중하게 엎드려 절을 하였다. 갑옷을 입은 장군 하나가 나와서 금관을 쓴 여자를 여왕이라고 부르며 말했다.

"여왕 폐하, 여기에 진기하기 그지 없는 말하는 원숭이를 잡아 왔나이다."

그리고 장군은 두 사람에게 칼을 겨누며 "여왕 폐하 만세"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두 사람이 그렇게 외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렸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어떻게 말을 하는 법을 배웠냐, 저것들도 원숭이들이냐고 서로 물었다.

"여왕 폐하, 저희는 원숭이가 아닙니다. 저희도 폐하와 같은 사람입니다."

양식이 구구한 표정으로 장군과 병사들 사이를 파고 들어, 여왕 쪽으로 한 발 나아가며 말했다. 여왕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다만 고개의 방향만을 바꾸어 양식의 불쌍한 얼굴을 관찰했다.

장군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를 저 두 사람은 사람은 아무도 살지 않고 원숭이들만 살고 있는 강물 쪽에서 나왔으며, 옷차림과 머리 모양이 "하늘의 자손"인 자기들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원숭이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해서, 잠깐 착각해서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가, 원숭이떼들의 공격을 받은 일이 얼마나 많은 지 잊었냐고 장군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장군의 말에 동의하는 듯 했다.

그러자, 양식은 사람들에게 원숭이와 사람의 차이는 단지 머리 모양과 사는 곳의 차이가 아니라고 했다. 말을 하고 앎과 깨달음이 있는 심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양식은 뿐만 아니라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해보면 감옥에 있던 사람들과 자신들의 차이를 알 수 있고, 장군이나 여왕과 자신이 같은 종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양식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갖자 흥에 겨워, 유전자의 개념과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미영의 제지로 이를 멈추게 되었다.

장군은 원숭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법에 농락당하지 말라고 외쳤다. 하지만 여왕은 양식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여왕은 그렇다면, 미영과 양식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알아 내기 위해, 이 사람들에게 음악이나 노래를 연주하게 시켜 보자고 했다. 그러면, 정말로 사람이라고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수준인지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여왕은 두 사람이 연주할 악기를 고르게 해 주겠다며, 회의를 끝내고 여왕의 보물창고로 미영과 양식을 오도록 했다. 장군은 그렇다면 내일 장군이 데려오는 악사들의 음악과 미영, 양식의 음악을 서로 사람들이 견주어 보게 해서, 얼마나 사람다운지 한 번 보자고 했다.

미영과 양식이 보물창고에 가서 보니, 조금 겉모습이 다르기는 했지만 지구에서 보던 왠만한 악기들은 다 볼 수 있었다. 미영과 양식은 드럼과 기타 같은 것들을 골랐다. 양식은 여왕에게 자기들을 믿어 주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여왕은 양식을 비웃었다. 여왕은 단지 장군과 겨루어 이기기 위해서 장군의 반대편을 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왜요? 장군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요? 아니면 여왕 폐하께서 장군과 강제로 결혼이라도 하셔야 되는 건가요?"

여왕은 그러자 정말로 도대체 두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인 지 궁금하게 여겼다. 여왕은 이 나라의 정치는 민주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임금도 선거로 뽑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장군은 여왕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고 다시 선거를 하도록 해서, 자기가 임금이 될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왕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인기를 얻고, 장군을 못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여왕은 두 사람에게 먹을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의외로 이 나라 사람들은 불교 비슷한 종교를 믿고 있는지, 무엇인가를 죽이는 것을 나쁜 행동으로 생각해서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직 채소로만 된 음식들이 그다지 맛도 없게 나왔다. 양식과 미영은 음식 투정을 하면서, 동시에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안심해도 되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영과 양식은 노래를 연습하라며 둘만 남게 되자, 살아날 길은 확실한 감동을 주어서 사람으로 인정 받는 길 밖에 없다는데 동의하고 열심히 노래와 연주, 율동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미영과 양식은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고대 아시아인의 문화를 갖고 있게 된 채로 교류가 단절되는 바람에 이런 나라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에게 단순하면서도 호소력이 강한 현대 대중 음악을 들려주면 모두 신나서 열광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세상에 이 노래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라며 의기 투합해서 20세기 중반에 나온 유명한 록큰롤 음악을 열심히 연주하며 연습했다.

다음날 미영과 양식은 궁전의 전각 앞에서 여왕과 장군, 많은 병사들과 많은 관리들과 일꾼들, 부자와 가난뱅이들이 보는 앞에서 밤새 연습한 노래를 열심히 들려 주었다. "원숭이들이 저렇게 과연 할 수 있나?"하고 많은 사람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했고, 미영과 양식, 두 사람들이 스스로 감동할만큼 노래 자체도 괜찮았다. 진심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즐거워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였다. 양식은 "우리의 승리"라고 기뻐했다.

그런데, 미영과 양식의 노래가 끝나자, 장군은 자기들이 데려온 "악사"들을 데려 왔다.

"화랑들을 불러오라!"

장군이 소리치자, 매우 화려한 옷을 입은 10대 후반의 남자 다섯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다섯명은 21세기 초 분위기의 아이돌 댄스 음악과 같은 노래를 하면서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미영과 양식은 그제서야,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게 무엇인 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심지어 장군의 반대편에 있던 여왕마저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 몸을 들썩일만큼, 다섯 화랑의 춤과 노래에 모두 휩쓸려 들었다.


4.
미영과 양식은 다시 끌려 가게 되었다. 그나마 어느 덩치크고 한심해 보이는 한 귀족 남자가,

"확실히 음악의 수준이 모자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숭이들이 할 수 있는 솜씨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원숭이들은 말도 못하고 가장 기초적인 도구도 쓸 줄 모르는데, 저들은 그래도 간단한 음악은 해내지 않았습니까?"

라고 의견을 내세운 덕택에, 두 사람은 다시 원래 있던 감옥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뭐, 그래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괜히 채찍질하고 이상한 무의미한 바퀴 힘들게 돌리고 그런 강제 노역시키지는 않겠죠 뭐. 큰 바퀴 돌리는게 무슨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그런 걸로 강제 노역을 시키겠어요."

그러나, 양식의 말과는 다르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나무 바퀴를 수십명의 죄수들이 달라 붙어 빙빙돌리는 곳이었다. 돌리는 것에 게으른 죄수가 있으면, 너울을 두른 여자가 지켜 보고 있다가 사정없이 채찍으로 내리치는 곳이었다.

미영과 양식은 어쩔 수 없이 바퀴를 돌리게 되었다. 미영은 갖가지 넋두리를 했고, 한 편으로는 여기서 무사히 살아나가기만하면 절대 아무것도 불평하지 않고 모두에게 착한 일만 하겠다는 말도 중얼거렸다. 그러는 중에 미영과 양식 두 사람은 사람들이 돌리고 있는 이 바퀴가 어떤 발전기 같은 것에 연결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동력을 사용할 방법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의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증기기관을 못만드는 사람들이 발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서 뭐에 쓰려고 하는 걸까요?"

양식의 말에 미영이 대답했다.

"이상한게 한 둘이야? 대포나 총도 못만드는 사람들이 노래는 어떻게 아이돌 댄스를 듣고 사냐고."

밤이 되자, 죄수들이 모두 대충 모닥불 옆에 널브러져서 잠자는 시간이 왔다. 양식은 주변 죄수들에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 지 물어 보았다. 죄수들은 이 나라에는 크게 여덟 가지 법이 있어서 "팔조금법(八調禁法)"이라고 하는 데, 그 중에 도둑질을 하거나 빚을 못 갚으면 그 벌로 여기에 와서 일정기간 동안 강제 노역을 하며 노비처럼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양식은 미영에게 "우리는 빚을 진 것도 아니고 훔친 것도 없는데 억울하다"고 따졌고, 어떻게 도망칠 방법이 없을 지, 갖고 있는 물건들을 모두 뒤지며 고민했다. 양식은 방법이 없다며 절망하는데, 미영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이 반짝였다.

얼마후, 양식은 지키는 너울 두른 사람에게 따졌다. 죄가 없는 데 왜 우리를 노예로 삼았냐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너울 두른 사람은 채찍을 휘둘렀다. 양식은 억울하다며 길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 지르는 것이 마치 늑대 울음 소리 비슷했는데, 또 늑대 울음소리라고 하기에는 어린아이들 동요처럼 재미난 곡조도 섞여 있었다. 다시 몇 대 채찍을 맞으면서도 양식이 또 그 소리를 내자, 어디서 멀리서 메아리 치듯이 그 소리가 다시 돌아오는 듯 하게 들리는 것이 있었다.

너울 두른 사람은 뭘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소리는 다시 한 번 더 들려 왔다. 그리고 점점 더 크게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 늑대 울음 소리 같은 것을 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원숭이들"이 다 같이 그 소리를 지르며 서로 서로에게 소리를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영과 양식은 의도적이고 주기적으로 울음 소리를 반복해서 내질렀다. 마침내, 감옥에 갇혀 있는 그 동물들이 모두 다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기 시작했고, 온 천하사방이 늑대 같은 울음 소리로 가득 차는 것과 같이 소리가 퍼져 나갔다. 동물들이 다같이 날뛰자, 감시하던 사람들과 병사들은 모두 당황하여 이리저리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든 성 바깥의 동물들까지 같이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뛰어 들기 위해 난동을 부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한바탕 성안이 정신 없는 큰 난리에 휩싸였다.

그 틈을 타서 미영과 양식은 뛰어 나와 탈출하려고 했다. 양식은 미영을 먼저 담장 밖으로 뛰어 넘도록 받혀 주었다. 미영은 담장 위에서 양식을 끌어 주려고 했지만, 이미 도망치는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온 병사들이 가까이 와 있었다. 미영은 양식에게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했지만, 양식은 미영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 쳤다.


5.
이튿날 혼자 남은 양식은 붙들려 와서 끌려 가게 되었다. 양식은 병사들과 많은 갑옷 입은 병사들, 귀부인들, 장군들, 그리고 여왕이 저마다 한 껏 멋을 부리고 가는 행렬의 한 귀퉁이가 되어 잡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언덕배기로 가게 되었다.

"정사암에 가서 너의 처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장군이 양식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양식이 물어 보니 정사암은 바위와 돌로 된 신성한 장소로 이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다같이 의논을 하는 장소라고 했다. 의논에서 결정이 나지 않으면, 그곳에서 하늘에게 물어 볼 수 있는데, 그러면 하늘이 대답을 내려 준다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항상 훌륭한 대답이 내려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나라의 많은 위기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답을 듣고 헤쳐 나갔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지금 궁전 한 복판에 있는 높은 9층탑 건물을 짓는 것은 설계가 매우 어려웠는데, 하늘에서 내려 준 답으로 건설에 성공한 것이라고 했고, 갑자기 큰 가뭄이 들어서 사람들이 고통 받을 때에도 하늘에서 내려준 답대로 해서 저수지를 건설하고 물길을 내어 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임금을 뽑기가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라든가, "원숭이들과의 전쟁"을 수행할 장군을 뽑기가 어려울 때 누구를 뽑는게 가장 좋을 지도 물어 본다고 했다.

양식은 여왕 옆으로 가게 되었을 때 따졌다.

"여왕 폐하께서는 장군처럼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니시리라 믿습니다. 무슨 하늘에 있는 용한테 비 내려 달라고 빌듯이, 음식 차려 놓고 마음속으로 열심히 빌면, 누가 마음을 무선으로 마법처럼 읽어서 옳다구나 하고 도와 준다 그런 겁니까? 그런게 어딨습니까. 그런 거 허황된 미신 같은 거 믿지 말고, 제 말좀 들어 보십시오. 저는 진짜 여왕 폐하와 장군 같은 사람들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니까요."

그 말에 여왕이 대답했다.

"무슨 말이냐? 어느 원숭이의 풍속에 음식을 차려 놓고 마음 속으로 비는 것이 있느냐?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 통신기로 하늘에 직접 통화 내용을 보내는 것이다. 송신기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세 가지 질문 밖에 하지 못하고, 전파로 전달되면 광속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늘 저편 1광년 떨어진 곳에 질문을 보내면 답을 받는 데 까지 1년이 걸린다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하늘에 똑똑히 우리 질문을 물어 보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 통신기로 하늘을 향해 정확히 전송을 하는 것이란 말이다."

여왕이 휑하니 지나가자, 양식은 더욱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정사암에 도착하자, 그 중앙에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놓은 장막으로 반쯤 가려져 있는 꽤 큰 금속 물체가 있었고, 엄숙한 의식을 치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 물체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신비한 노래와 춤이 이루어지고, 여왕이 주제하여, 하늘에 세가지 질문을 묻는 의식을 시작할 것을 근엄하게 공포하였다. 매년 하는 의식인지,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순간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큰 축복으로 여기는 듯도 하였다.

이후,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질문을 물어 봐야 한다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남쪽 지방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부터, 법을 개정하는 문제에 대한 것들, 새롭게 발견된 붉은 머리를 가진 새를 길들이는 방법을 물어 보자는 의견 등등 여러가지 내용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태양계의 크기에 대해 알고 싶다"든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 보고 싶다는 것과 같이 추상적인 것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토론을 거쳤고, 올 해 하늘에서 내려온 대답을 알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점차 좁혀 나가게 되었다.

토론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문제들은 네 가지 였다. 첫번째가 농사를 망치고 있는 해충을 없애는 방법이었고, 두번째는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는 나이 많은 매우 학식 풍부한 학자 한 사람의 병을 고치는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피부에 반점이 생기는 열병에 걸린 유명한 어느 20세 미녀의 병을 고치는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네번째 문제는 지금 양식과 같은 괴상하고 위험한 "원숭이"가 나올 지경이 되었으니, 더 이상 원숭이를 소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전면 공격을 해서 멸종시켜 버리는 게 옳은지 아닌지 물어 보자는 것이었다.

논쟁이 많았던 문제는 학자의 병을 고치는 것에 우선권을 주어 이번에 하늘에 그 것을 물어 보는 것이 옳은지, 혹은 미녀의 병을 고치는 데 우선권을 주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학자를 구하자는 쪽이 우세했다. 학자의 병은 고치지 않으면 학자가 죽게 되는데, 미녀는 병을 고치지 않아도 죽을 가능성이 아주 크지는 않았고 다만 피부에 흉터가 많이 남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목숨이 더 위태로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으므로 학자를 구하자는 주장이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곧, 정사암에서 하늘에 문제를 묻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온 나라를 위해서 특별히 비일상적으로 취하는 조치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목을 받았다. 학자는 이미 학자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세상에 나누어 주었고, 지금 이미 노쇠하여 앞으로 더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더 좋은 지식을 나누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사회에 특별히 도움될 일은 없다. 그에 비해서, 미녀는 그 아름다운 미모로 앞으로 십년을 훨씬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과 영감을 줄 것이고, 그 미모가 영향을 끼치는 예술 작품과 광고물, 산업발전,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과 기쁨이 앞으로 매우 클 것이다. 그런데 그런 효과를 줄 수 있는 굉장한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피부에 흉터가 남으면 안되기 때문에, 사회를 전체를 위해서는 미녀의 병을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논쟁 끝에, 이번에 하늘에 물어 볼 세 가지 질문으로, 해충을 없애는 것과, 미녀의 병을 고치는 것과, 양식과 갇혀 있는 동물 무리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을 물어 보게 되었다.

양식에 대한 질문을 먼저 통신기로 전송하기 위해서 여왕은 양식의 모습이 촬영 되도록 정사암 가운데의 금속 물체 가까이로 가게 했다. 하늘에 양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금속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작동이 시작되는 것을 양식은 눈치챘다. 양식이 보니, 양식이 붙잡혀 있으면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열심히 강제 노역으로 바퀴를 돌렸던 것은 바로 이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1년 동안 발전기를 돌려 충전시키는 일이었다.

"알에서 태어나신 우리 선조의 이름으로 여쭙습니다."

여왕과 사람들이 주문과 노래처럼 같이 이야기를 하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양식은 이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에서 태어난 사람의 자손이라는 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시 양식이 자세히 살펴 보니, 바로 이 사람들은 저 금속 장치를 그 "선조"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양식이 그 장치 가까이에 끌려 와서 보니, 그 금속 장치는 땅에 파묻힌 우주선의 끝부분 같았다.

양식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경배하고 있는 틈을 타서 그 우주선으로 달려 들어 갔다. 병사와 장군들이 모두 놀라서 쫓아 왔지만, 신성한 물체 가까이에 오는 것에 그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껴 조금 머뭇거렸다. 양식은 그 틈에 우주선 안에 들어가 보았다. 매우 낡아 있었지만, 분명히 우주선이었다. 양식은 그 사람들이 작동시킨 것이 바로 우주선의 구식 전파 통신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장치들은 알아 볼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양식은 겨우 비상 탈출장치를 알아보게 되어, 그것을 작동시켰다.

양식은 우주선의 조종석에 앉은채로 튀어 나가서 몇 십미터 쯤을 날아가서 낙하산을 펴고 떨어졌다. 뒤에서 양식을 쫓아오는 병사들의 소리가 들렸다. 양식은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장했다. 언덕배기를 내려가고 성벽 옆을 지나 양식은 들판으로 달렸다. 그 즈음이 되자 말탄 병사 몇몇이 따라오기 시작하여 양식은 곧 잡힐 듯 하게 되었다. 민주주의 토론에 참여하던 나라 사람들은 누가 양식을 먼저 잡느냐를 두고 시합을 구경하듯 살펴 보게 되었다. 그러자, 장군이 직접 양식을 잡겠다고 말을 타고 나섰다. 그러자 여왕이 질 수 없다는 눈치로 자신의 백마를 타고 양식을 따라 왔다.

양식은 온힘을 다해 도망치다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양식은 강물 앞까지 다가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었고, 뒤에는 병사들과 장군, 여왕이 있었다. 양식은 어쩔 수 없이 물 속으로 몇 발짝 걸어 들어 갔다. 장군은 비웃음을 보였고, 여왕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식은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하늘이시여, 저를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양식이 다음 걸음을 딛자, 양식은 강물 위를 신비롭게 걷고 있었다. 마치 강물 아래에서 물고기나 자라가 받쳐 주기라도 하는 것과 같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왕은 극히 놀랐다. 마침내 여왕은,

"하늘에서 내려준 답이다."

라면서 말에서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그를 따라 많은 다른 사람들도 같이 물 위를 걷는 양식에게 절을 하였다. 그렇지만 장군과 몇몇 병사들은,

"원숭이들의 속임수일 뿐이오."

라고 외치고는 양식을 뒤쫓아 강물로 들어 가려고 했다. 그러자, 양식은 물 위로 조금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곧이어 놀라는 장군과 병사들에게 강물을 튀기는 물벼락이 쏟아졌다. 물위를 걷는 듯하게 강물로 걸어 들어 왔던 양식을 물속에서 받치고 있었던 것은 미영의 우주선이었던 것이다. 미영이 조종하는 우주선은 양식을 그 위에 실은 채 높이 날아 올랐고, 양식은 거기에 매달린 채 비명을 질렀다. 우주선은 물보라를 일으켜 장군의 옷을 흠뻑 적셨다.


6.
우주선에서 다시 미영을 만난 양식은,

"죽을 뻔했다고요."

라면서 헐떡거렸다. 양식은 저 사람들이 자기는 알에서 태어난 선조의 자손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미영은 그러자 그 말이 정확히 맞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사람들은 아직 초광속 우주선이 상용화되기 이전 시절에 발사한 탐사선에서 나온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다시 말해서, 먼미래에 혹시라도 지구가 멸망해서 인간의 문명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행성들을 향해서 인간의 생식세포들을 보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생식세포를 실은 우주선들은 수십년에서 수천년 동안 날아가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면 생식세포를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수정란이 만들어 지도록 자동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낯선 먼 외계의 행성에서 깨어난 이 아기들은, 우주선에 같이 실어 보낸 컴퓨터 자료와 로봇들의 설명을 보고, 인간의 문화를 계승하는 마을을 그 외계 행성에 건설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이런 우주선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도착하여 그대로 폐기 되었고, 몇몇은 아직도 낡디 낡은 구식 우주선 엔진의 미약한 불을 뿜으며 우주의 허공을 꾸역꾸역 날아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이 행성에 도착한 것은 그중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우주선이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날아 오느라 자료가 손상이 되는 바람에, 기술문명을 수록한 자료의 상당수를 잃어 버리게 되었고, 일부만 남게 되었다. 그 바람에 다채로운 세계 각국의 문화도 대부분 상실되고 고대 왕정과 민주주의가 뒤섞인 몇 나라의 문화만 보존 되었다. 대중 음악에 관한 내용은 정확하게 교육될 수 있는 경지였지만, 화약 무기나 내연 기관 엔진에 대한 기술은 완전히 상실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우주선에 실린 생식세포가 수정란이 되고, 그것이 자라서 태어난 아기들이 그 남아 있는 문화와 자료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섞어서 일구어낸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식세포를 실어 와서 깨운 동물들 중에 손상이 되어 제대로 탄생시키는데 실패한 것도 있었다. 그게 바로, 겉모습은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유전 구조와 내부는 사람과 상당히 거리가 먼 그 "원숭이"라고 불리던 동물들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사실 사람들의 곡식을 훔쳐가고, 사람의 아기를 공격해서 잡아 먹는 무서운 해충 같은 동물인 셈이어서, 그 동물들을 몰아내는 것이 이 나라의 굉장히 중대한 문제 중에 하나였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이 나라의 풍습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전력을 다해 멸종시키기도 했을 만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이 저 옛날 우주선에 남아 있는 통신기로 연락하면 누가 대답해 주는 거에요?"

미영이 묻자, 양식은 통신화면을 하나 불러 왔다. 이렇게 도착하는 데 성공해서 문명을 일구어낸 후손들은 통신기를 작동해서 지구로 전파를 보내게 되어 있었다. 인류의 문화를 다른 행성에 퍼뜨리는데 성공했다고.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성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는 사이에, 우주에는 초광속 우주선이 보급되고, 은하계 곳곳에는 동사무소들과 시청들이 생겨 나게 되었다. 그런 즉, 옛날 우주선에 달린 전파 송신기로 보낸 신호는 이 행성에서 1광년이 조금 모자란 곳에 떨어져 있는 한 행정 공무원의 출장소에 잡히게 되었고, 그 출장소를 맡은 공무원 담당자가 대대로 날아온 전파에 대한 답변을 전송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진작에 구조대를 보낸다거나 아니면 무슨 전문가들을 보낸다거나 해야 되는 거 아녜요? 사람들 숫자도 많던데."

그 대답은 통신화면에서 나온 공무원이 대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그게 저희쪽 관할은 아니고요. 또 저희가 나서서 하려면 아무래도 인력하고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까. 저희는 그냥 수신된 민원에 대해서 답변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은 새롭게 전송된 질문들에 대해서 인터넷 지식 검색 사이트를 검색해서 답을 찾아다가 초광속 호환 통신망으로 회신해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11세기경에 이미 지구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고도로 조직화된 관료제 공무원 사회가 형성된 이후로, 이것은 천년여가 지나는 사이에 인간이 어떤 한 방향으로 진화 되어서 종의 특질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양식은 지친 사람의 푸념처럼 주절 거리며 말했다.

"이거 뭐 어디 신고라도 하든가 신문사 같은데 말이라도 해야지. 이런 동네가 다 있다고. 은하 인권 위원회에라도 이야기를 하든지."

양식은 계속 중얼댔다. 그렇지만, 미영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면서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미영은 공무원에게 부탁들 해서 대답을 중지하게 했다. 그리고 우주선을 이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사암 상공으로 움직였다.

미영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하늘에서 여러분께 답변을 드립니다."

그리고 미영은 인터넷에서 지식 검색을 해보고 그 결과를 말해 주었다. 무슨 나무 열매와 무슨 꽃의 즙을 내어 약을 만들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학자 노인의 병과 미녀의 병을 고치는 방법을 모두 대답해 주었다. 또 곡식에 주는 물의 양을 조금만 줄이면 된다고 병충해 퇴치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미영은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이 서비스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매우나쁨은 0점 매우 좋음은 5점으로 해서 평가해 주십시오?"

라거나,

"그 밖에 건의할 사항이나, 기타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묻기 시작했다. 양식이 말했다.

"설문조사 끝까지 하시는거에요?"
"이 고생을 했는데 돈은 벌어 가야지."

미영이 대답했다.

어리둥절해 하면서 대충 대답하는 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양식이 미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 동물들 없애야 된다 ... 그거는 답 안해주셨어요? 그 동물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처럼 생겼어도 사실은 사람도 아니고, 유전적으로 차이도 많이 나고,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해로운 동물이라고요. 주택가에서 뱀이나 쥐 없애듯이, 싸악 없애야 되는 거 아니에요? 겉보기에 그럴듯하고 보기 좋게 생겼다고 해서 그냥 살려 둬야 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미영은 설문조사 결과가 다 입수된 것을 확인하자, 우주선을 행성 바깥으로 날아 가도록 조작했다. 양식이 보기에 미영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자꾸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결국 행성 대기권 바깥에 도착할 때 쯤이 되어서, 미영이 양식에게 대답했다.

"소원은 세 가지만 들어 주는 거잖아."


- 2012년, 과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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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쑤우 12.10.20 15:47 댓글 수정 삭제
    경리부장도 같은 회사 직원인가요?
    그렇다면 직원수 성장률 100%의 전도유망한 회사네요~ ㅎㅎ

    아지발도 이야기로 시작해서 호락논쟁(인물성이론), 화랑, 정사암, 8조금법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에피소드였네요
    주몽을 칭하던 자가 물 위를 걷던 주몽의 일화처럼 따돌려지는 걸 보니 묘하게 수미쌍관 형식 같기도 하고 ㅎㅎ

    여왕 위에 군림하는 행정편의주의와 일선관료제의 폐혜를 풍자하는 클리셰적인 대사도 인상적이었어요 ㅎㅎ

    미영과 영식이 싸이의 말춤을 추었다면
    '원숭이를 닮은 무리 둘이 말을 형상화하는 가무를 추었다'라고 기록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까요? ㅎㅎ

    세 가지 소원의 영원한 난제 - 소원을 추가하는 것이 소원! - 는 안 나와서
    반전이 없던 게 반전이었네요 ㅎㅎ
  • No Profile
    곽재식 12.10.21 11:10 댓글 수정 삭제
    고대문명에 나오는 이상한 사람이나 신이 외계인을 나타내는 거라는 게 SF물 단골 소재인데, 그러고보면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신화가 냉동 수정란, 냉동 생식세포의 형태로 수천년 거리의 먼 외계행성에 사람을 보내는 방식과 말이 비슷해지는 면이 있어서 이렇게 한 번 꾸며 봤습니다.

    몇 편 더 시리즈 이야기 선 보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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