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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행성 대관람차

2015.08.31 23:3908.31

 아버지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직장이 월급 박한 곳은 아니었다고 했는데도 우리는 늘 넉넉하지 못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놀이공원에 설치 되는 대관람차를 설계하는 일을 했는데, 커다란 강철 덩어리에 수백명의 사람을 태우고 빙빙 돌아 가게 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인 만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아버지가 직장을 얻을 때만 해도 해도 우주 이민이 인기가 많던 때라, 관광지로 개발되던 행성들도 많았다. 아버지가 맡은 첫 사업은 달 기지에 건설하는 대관람차였고, 화성에 생긴 두 번째 대관람차를 설계한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는 발사되는 로켓 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이제 평생 할 딸 걱정은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124세이신 지금까지도 딸 걱정을 하고 있고, 그 딸의 딸과 딸의 딸의 딸들을 합쳐서, 걱정하고 있는 자손들의 숫자가 11명으로 늘기만 했다. 회사야 성장했지만, 도무지 아버지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볼 때 마다 미안해 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안타까워 하며 위로해 주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급이 우리에게 안타까워하거나 미안해 하며 올라가 주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문제는 오직 대관람차 설계하는 일만 평생 했는데도, 그 일을 하는 솜씨가 객관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대관람차 설계는 타고 있는 사람에게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돌아가는 속도와 형식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했고, 풍광이 좋은 곳에 경치를 보기 좋은 방향으로 건설할 수 있도록 설치 입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게다가 대관람차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구조물이기 때문에 그 모양이 스스로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미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비싼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 모든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잘하는 일은 사람이 타고 앉아 있을 때 그저 안전하게 돌아가는 대관람차를 만드는 것 뿐이었다. 이용객들이 다칠 가능성을 줄이고, 고장이 나지 않고 튼튼하게 회전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에만 아버지는 몰두했다. 설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으니, 안전에만 집중하다 보면 재미가 없거나, 좋은 경치를 볼 수 없거나, 멀뚱하니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대관람차가 되고 말았다. 점점 아버지를 찾는 곳은 줄어 들었고, 결국 싼 맛에나 일을 맡기는 업자가 되어, 구석진 행성의 초라한 대관람차만 만들며 평생을 보내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일거리를 찾아 이 행성, 저 행성으로 항상 아버지는 떠돌아 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나를 돌볼 수 없었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외계 행성을 돌아 다니며 조잡한 임시 거주용 캡슐에서 자라 났다. 나는 신광주 행성에서 처음 걸음마를 했고, 신대구 행성에서 처음 다른 아이와 싸우다가 울어 보았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세 번 정도만 같이 만났는데, 그때마다 나는 부부가 만나 서로에게 비참할 만큼 미안해 하는 장면만 보았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 만난다는 것은 어쩐지 슬픈 일이라는 느낌만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은퇴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가난했다. 다행히 어머니가 퇴직 군인 연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지구로 돌아가 수십년 만에 어머니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 가면서 아버지와 떨어져 지냈고, 이후로 금년이 될 때까지 아버지나 어머니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새로 행성을 개척하는 회사에 취직해서, 지구에 들를 기회도 없이 여러 행성을 돌며 일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지만, 바쁜 까닭에 누구건 가족 생각을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딱 한 번, 바다에 가라앉은 몰디브 사람들이 이주해 온 몰디브 행성에 출장 갔을 때, 우연히 아버지와 한 번 연락이 닿았던 적은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그 행성에 자기가 설계한 대관람차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시간이 남아 한 번 그걸 타 보기도 했는데, 1만 2천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 옆에서 돌고 있는 대관람차가 있었다. 물보라 위로 한참 올라갔다 내려 오며 돌아 가는 대관람차에서 폭포를 내려다 보면, 구름을 뿜어내는 거대한 용이 세상에 구멍을 뚫으며 내려 가는 것 같았다. 그곳은 유난히 안전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대관람차를 만들 수 없는 위치였고, 그 덕택에 아버지가 설계한 것 중에서 유일하게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이번 추석에는 마침 지구에 가 볼 만큼 긴 휴가를 얻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어머니 댁을 찾는 것이 직장을 얻은 후로 처음 가족을 만나는 길이었다. 그동안 영상은 서로 많이 교환했기 때문에, 얼마나 놀랄 만큼 그들이 늙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정말 지구에서 괴상해 보였던 것은, 은하계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어디든 널려 있는 높다란 초록색 나무들이나 길거리가 가득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었다. 영화에서 그렇게 자주 보던 것이었는데도 겁을 먹을 만큼 낯설어 보였다.

 내가 어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는 사위들과 손녀 사위들을 한 방 가득 모아 놓고, 인생을 똑바로 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외할머니는 처음 잠깐 나를 못 알아 보셨다가, 이모부 이야기를 듣고 서야, “정말 제 애비 닮았다”는 말로 처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났는데, 두 분은 추석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요즘 추석 달을 보면서 달에서 만든 송편을 먹는 게 요즘 유행이라며, 달 기지에 들렀을 때 사온 송편을 꺼내 드렸다. 우리 세 사람은 오래간만에 만난 것이 어색해서, 짧은 말로 간신히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두 분이 두 대의 요리 로봇과 함께 음식 장만을 마치자, 외할머니는 저녁을 먹자고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나는 두 사람을 찾아 다녔다. 외할머니는 그 둘은 저녁때는 매번 그렇게 안 나타날 때가 많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먼저 밥을 먹고 집 밖으로 나가 보았다. 집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집 뒤 언덕 위를 보니, 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나는 두 사람 옆으로 올라 갔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나를 보고 꼭 닮은 표정으로 같이 웃어 보였다. 어머니는 옆 자리를 내어 주며 내게 앉으라고 했다. 부부는 서쪽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구름이 흘러 가는 하늘과,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저녁 풍경을 보았다. 지구 대기 특유의 현상인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저녁놀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저녁놀 빛은 하늘을 절반 가까이 뒤덮어 영영 다시 파란 빛은 돌아 오지 않을 것처럼 선명해졌다가, 보라색 하늘에 별빛이 나타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내가 가족들 앞에 섰을 때, 한 평생 유독 천천히 돌아 가는 대관람차만 설계했던 그 노인은 해가 서쪽으로 다가 가고 있는 지평선을 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제 우리 같이 여기 앉아서, 지구가 천천히 돌아 가는 모습을 보자고 말했다.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가족은 그 날 아주 오래간만에 같이 앉아, 보름달이 서쪽 하늘로 떠나갈 때까지 밤을 지샜다.

- 2015년, 김포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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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No Profile
    Megabrand 15.09.01 19:27 댓글

    뭔가 짠 하네요.. 아버지.. ㅠㅠ

  • No Profile
    곽재식 15.09.01 19:55 댓글

    이게 원작이 있는데, 제가 돌리는 "140자 소설"이라는 트위터 계정에 올렸던 다음 트윗이 원작입니다. 이쪽이 더 깔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기는 합니다: ( https://twitter.com/gerecter2/status/554589851459141632 ) 평생 대관람차를 설계한 사람이 은퇴하고 휑한 벌판으로이사했다. 그는 거기서 흔들의자를 놓고 지평선 방향을 보고 앉아서 해돋이와 구름과 저녁놀과 뜨고지는 별들을 하염없이 가만히응시했다. 누가 찾아갔더니 옆자리를 내어주며 같이 앉아 지구가 도는걸보자고했다

  • 곽재식님께
    No Profile
    슴컹크 15.09.02 16:57 댓글

    헉! 140자 소설이라는 "원작"이 있다는 걸 알고 읽으니 또 새롭네요. 140자 소설의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시적으로 느껴져요!

  • 슴컹크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09.02 20:35 댓글

    140자 소설이 쓰다보면 시 같은 것이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음 것도 시 같은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s://twitter.com/gerecter2/status/441442738488094720

    하늘에서는 축복처럼 매일 음식이 비가 내리듯 내린다. 땅에서는 거품이 솟아 나는데 그 안에는 가장 신선한 산소가 가득 들어있다. 가끔 세상이 뒤집어지지만 나는 안전하고, 그 후에는 모든것이 깨끗이 새로워진다. 오늘에야 깨닫는다. 나는 어항속의 물고기.

  • No Profile
    김옥희 15.09.04 11:28 댓글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써주시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좋아요! 우주여행하고 다른 행성으로 이사가는 시대의 대관람차 설계자 라니... 

    너무 낭만적이예여 ㅠㅠ 어뜨케 이런 생각을 하시징...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아름다운 그림 같아서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거울에서 작가님 글 보고 너무 좋아서 작가님 책도 얼마전에 다 샀어여!! 앞으로도 좋은 글 오래오래 써주세요! ^^!!

  • 김옥희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09.04 22:52 댓글

    책을 모두 사 주시다니, 대단히 감사한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부지런히 노력해서 꾸준히 계속해 나가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옥희님 같은 이런 덧글 덕에 심야에 힘이 나서 기뻐하며 또 뭔가 더 써봐야지 의욕을 갖고 타이핑을 해 나가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앞의 슴컹크님도 지적해 주셨지만, 이번 건은 140자 소설이 시적인 맛이 있어 더 나았는데 괜히 일부러 길게 잡아 들인 것 아닌가 약간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만, 환상적이고 나른한 배경이 더 산다는 느낌은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 No Profile
    비몽 15.10.30 00:03 댓글

    행성도 하나의 관람차였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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