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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해탈의 길

2023.10.02 00:0710.02


해탈의 길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이틀 전 무렵 부터였다. 갑자기 전쟁터에서 전투가 멈추었다. 경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갱단도 싸움을 멈추었다. 갱단과 싸움을 하고 있던 다른 갱단도 싸움을 멈추었고, 경찰과 싸움을 하고 있던 부패한 경찰 무리들도 싸움을 멈추었다. 남의 집에 침입하던 강도도 침입을 멈추었고,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의 돈을 빼앗으려던 학생도 돈 빼앗기를 멈추었다. 마찬가지로 쓰레기 같은 암호화폐를 만들어 사기를 치려던 사람도 상장 작업을 멈추었거니와 연예인의 얼굴 표정과 말 실수 한 마디에서 작은 흠을 잡아낸 뒤에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 짓인지 떠들어 대는 글을 올리며 기뻐하는 인터넷 사용자도 자기는 재치 있다고 생각하던 비난의 말들을 멈추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국회에서 지껄이며 말도 안 되는 제도를 실시하면 그것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부르짖던 한심한 정치인도 정치한다며 거들먹거리는 일을 멈추었다.

멈춘 그들은 대신 기쁨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큰 즐거움을 느꼈다. 어느 때 보다 밝은 기분과 이제야 모든 답답한 것들을 떨쳐 냈다는 상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거대한 자유였고 막대한 해방감이었다. 왜 지금껏 멍청하고 허황된 싸움과 쓸데 없는 분노에 그렇게 많은 삶을 사용했는 지,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허탈함은 짜증스럽고 후회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적인 허탈함이었다. 심하게 허탈한 만큼, 지금 이 모든 것을 깨우치고,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고양이 더욱 커졌다.

세계 곳곳에는 갑작스럽게 평화가 찾아 왔다. 갈등이 해소 되었다. 해묵은 대립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다툼도 끝을 맺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세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그 속에서 참된 삶을 찾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쁨과 즐거움의 상태는 모든 의구심의 해소로 이어졌다. 기쁨과 즐거움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인생에 걸쳐 자신이 찾고자 했던 것을 바로 지금 찾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기뻐하는 웃음소리, 즐거워하는 노래와 같은 흥얼거림으로 사람들 사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다음 날이 되자 이러한 변화가 세계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음을 사람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직후에 이러한 변화를 낯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전쟁터에서 적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장군들과 정치인들은 침략한 땅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병사들을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곧 무엇이 세상 사람들을 휘감고 있는 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과 자유와 해방감과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대한 느낌이었다. 둘째 날이 지날 때 즈음 세상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러한 변화를 모두 놀라면서도 감동과 환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셋째 날이 되자 거의 세계 전체에 이러한 변화는 모두 퍼지게 되었다. 심지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 조차 모든 괴로움과 불안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그들의 마음 속에는 웃음과 노래가 가득 찼다. 더 이상은 안타까울 것도 없고 울적할 것도 없었다. 이것은 술이 던져 주는 잠깐 무뎌지는 느낌이나 싸구려 농담으로 잠시 웃음을 웃는 감각과는 달랐다. 그저 잠깐의 쾌락이 뇌 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얻는 참된 성취의 보람과 같은 기분이었다. 혹은 오랜 시간 남을 돕고 성실하게 살면서 차근차근 쌓아 나간 덕 때문에 깊은 평안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은 짜릿하고 강렬한 감정도 같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것은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다 초월하여 이제야 그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생각을 모두가 다 같이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눈물을 흘리고 소리지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한 데 얼싸안고 어울리며 그저 이제야 모두가 다같이 느끼게 된 새로운 경지에 감사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은 무한한 행복감에 빠질 뿐이었다. 드디어 삶을, 인생을, 우주를,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을 모두가 깨끗하게 다 얻는 복되고 복된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이 엄청난 기쁨과 즐거움의 변화 속에서 세계적으로 많은 존경을 받던 한 사상가는 전 세계의 모든 매체를 통해 중계되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우주가 생기고 우주에 그 많은 다양한 물질이 생겨나고 그 물질들이 뭉쳐서 우주에 가득한 그 끝없이 많은 숫자의 행성들이 생겨나고, 수십억 년 동안 행성에서 생물이 탄생해 변화해 온 진화의 세월을 거쳐 사람처럼 생각하고 번민하는 생물들이 생겨난 그 엄청난 많은 일들이 우주에서는 일어 났습니다. 도대체 그 모든 일들은 왜, 뭐하러 일어난 것일까요? 그것은 아주 숭고하고도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라는 종족은 드디어 지성을 발전시킨 이해의 경지와 감정을 심화시킨 예술의 경지에서 그 거대한 계획에서 필요했던 어떤 수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와는 다르게 우리는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을 모두 같이 얻은 것입니다. 다들 아실 것입니다.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드디어 모든 것을 깨달아 새로운 경지에 오른 그 말로 할 수 없는 오묘한 깨우침을 모두가 느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듣던 수많은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새로운 우주의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의 문명이 도달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과 이론을 초월해서 갑자기 인류 모두가 다함께 이런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의 즐거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주의 가장 중심에 흐르는 진리의 거대한 흐름일 것이고 우리 인류의 정신은 이제 그 흐름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 선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죽어서 천국에 왔을 때의 느낌일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인류의 정신 문명이 우주의 심대한 계획에 따른 수준에 도달하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천국에 온 상태로 만들어 준 것 아닐까요?”

그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과 같은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는 같은 생각이었다. 바로 이것이 가장 진정하고도 가장 극치에 도달한 행복인 것이다.

그러나 한 광고 회사에서 최신 유행을 감지하기 위해 가동하고 있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헤븐GPT는 그 사상가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계산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헤븐GPT는 세상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 누구도 삼각김밥 포장 방식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한 좋은 답조차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인류 모두가 드디어 모든 것을 깨달았다며 날뛰고 좋아하고 있지만, 실제로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새로운 지식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없었다.

헤븐GPT는 대신 공기 중에 이상한 성분 물질이 조금씩 퍼져서 세상에 모두 들어 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이상한 물질을 빨리 접하기 어려웠던 밀폐된 잠수함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나 우주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 변화에 가장 늦게 빠지게 되었다는 점도 알아 냈다. 헤븐GPT는 곧 공기 중에 3일 전부터 퍼지기 시작한 이상한 물질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헤븐GPT는 지구 바깥 우주에 머무르고 있던 소형 기계 장치가 그 이상한 물질을 지구에 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헤븐GPT는 소형 기계 장치에 오고 가고 있는 통신을 잡아낼 수 있었다. 통신에서는 소형 기계 장치를 보낸 주체가 어느 외계인 종족임을 밝히고 있었다.

통신 내용은 대략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는데, 그 시작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지구를 비롯한 모든 태양계를 다 폭파시켜 버리면 됩니다.”

헤븐GPT는 이 통신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저 좋아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은 헤븐GPT가 출력하는 “광고를 위해 꼭 파악해야 할 시사 동향” 정보 같은 것은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 헤븐GPT는 계속해서 너무나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우주 물체의 통신을 계속해서 감지해서 알리고자 했다.

“태양계를 다 폭파시키면 그 순간 태양계의 생명체들도 다 파괴될 텐데, 지구인들이 모두 다 한 순간에 파괴되어도 정말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지구인들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굉장히 지능이 떨어지는 하등한 생물입니다. 약간의 지능과 감정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지능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정도를 하는 것 정도고 일부 훈련을 시키면 미분 적분 정도를 하는 지구인도 생기기는 합니다만, 다들 싫어하는 분위기죠. 고작 미분 적분 정도도 감당을 못하는 지능입니다. 엄청나게 하등한 수준이죠. 그게 한계입니다. 감정이라고 해도, 그냥 기분 나쁘면 싸우자, 기분 좋으면 친구하자, 뭐 그 정도지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감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신경 반사에 가깝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지구에 사는 다른 동물들, 예를 들면 돌고래나 문어와 별 차이는 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걸핏하면 서로서로를 향해 ‘개 같다’고 많이들 표현하거든요. 우리들의 지성이 100이라면, 문어는 0.001, 사람은 0.01 정도입니다.”
“0.01이면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초공간도약 항법에 꼭 필요한 우주 도약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태양계라는 이 쓸데 없는 지역을 폭파시키는 데는 별 다른 고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길을 하나 새로 뚫으려면 이것저것 철거하고 밀어 버리는 게 생기지 않습니까? 여기 사는 생물 정도면 별로 희귀한 것도 아니고 보존 대상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생물도 아닙니다. 그냥 폭파하면 되죠. 이번에 새로 통로가 확보되면 교통 효율이 12%는 향상될 거거든요.”

"12%면 꽤 크네요."

우주에 떠 있는 소형 기계 장치들은 그리고 나서 태양계를 단숨에 모두 폭파하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했다. 통신은 이어졌다.

“그런데, 지구를 파괴해 버리려면 그냥 바로 다 파괴하면 되지, 뭐하러 지구인들에게 지구인들의 뇌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행복감을 뇌 신경이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약품을 왜 3일 전에 살포한 겁니까?”
“아시잖아요? 요즘 우주 건설 위원회 위원들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나름대로 하등한 생물이라도 어느 정도의 권리는 넓게 보장해주자는 너그러운 생각이 요즘 많이 퍼져 있죠. 그래서 동물복지 차원에서 그런 약품을 좀 뿌려 준 거죠. 특히 이 태양계에 사는 지구인들 문화를 그대로 따라한 겁니다. 지구인들은 자기들이 잡아 먹을 동물들을 도살하기 전에 각별히 편안하게 살게 해주고 고통 없이 생명을 빼앗으면 복지를 잘 챙겨줬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대로 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은 이제 모두 폭파당해서 다 녹아버리면서 생명을 잃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데도 지금 같이 완전히 저희 약품에 취한 상태에서는 그게 무슨 우주의 심오한 발전에 따른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고 자아와 의식을 잃어버리는 더 초월적인 상태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들 좋다고 여길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헤븐GPT가 포착한 통신은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뚫기 위한 이번 폭파 작업을 하기 직전까지 지구인들 전부에게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화성에 사는 미생물들과 유로파에 사는 연체동물들에게는 각각 많은 영양분을 흡입하는 즐거움과 촉각세포로 따뜻함을 느끼는 즐거움을 최대한 극치로 주기로 했지요.”


- 2023년, 용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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