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은방장군

– 곽재식 –

1.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들은 이야기에 약간 내용을 덧붙이고 바꾸어 소설로 꾸며 본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다만 도시의 좁은 길을 떠도는 전설 정도로 여기면 될 것이다.

2.

병원에서 나온 직후에 나는 고릴라 떼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새로 나온 혹성탈출 시리즈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고릴라로 변장한 사람들이 줄지어 길가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나는 그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기다리던 분이신 것 같은데요.”

 그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사람들은 둘이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활달한 표정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키가 작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예?”

 “불안 증세나 초조감 있으신 분 아니신가요? 저희 쪽으로 오실 것 같았거든요.”

 “이게 뭔데요?”

 “저희는 정신 휴식법을 연구하고 또 적용하는 단체거든요.”

 내가 말에 대답하자 그 사람들의 얼굴은 다섯배쯤은 더 밝아졌다. 키 작은 사람이 팜플렛을 건넸다. “정신 휴식법”이라는 말과 함께 몇 마디 선전 문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은방장군”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게 무슨 짓인지 알아차렸다. 평소 같으면 나는 그냥 아무 말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따지고 싶었다.

 “또 무슨 종교 단체에서 나오신 거죠? 이런 짓 하지 마세요. 길거리에서 사람 붙잡고 이런 짓 하면 불법인 거 아니에요?”

 “아니오. 절대 그런 거 아니고요. 저희가 종교 단체 쪽하고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지금 이건 그냥 정신 휴식법 자체만 홍보드리는 거거든요.”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해놓고,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 절대 그런 게 아닌 것은 아닌 거죠. 약간은 그런 거라고 해야죠. 이렇게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면 뭘 어떻게 믿겠습니까?”

 “선생님, 정말 말씀 잘 하시네요. 사실 선생님 같이 좀 논리적이시고, 여러 가지 분야에 지식이 좀 있으신 분께 사실 저희 정신 휴식법이 정말 적용이 잘 되는 거 거든요. 불안감이나 초조감 때문에 문제가 좀 있으시면, 저희 정신 휴식법도 어떤 건지 한번 보세요.”

 그제서야 나는 조금 제 정신이 들었다. 이 사람들과 길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서서히 떠오른 것이다. 무슨 말이건 말을 주고 받다 보면 저 사람들은 뭐가 되었든 자기들 종교 단체로 끌어 들이려는 애를 쓸 것이다. 그렇게 말을 나누면 어쨌거나 피곤해지는 것은 내 쪽이고, 저 쪽은 아무 소득이 없다고 해도 적어도 자기들의 종교 활동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는 뿌듯함이라도 챙겨가게 된다.

 나는 손해 보고 있었다.

 “너무들 하시네요. 여기 병원 앞에서 이렇게 길 막고 서서 무슨 종교 선전하는 거, 인간적으로 좀 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병원 앞이 뭐가 너무 하시다는 말씀이시죠?”

 “큰 병원이니까 병원에서 무슨 이야기 듣거나 일 생겨서 분명히 충격 받거나 놀란 사람들 많을 텐데, 그 사람들 그 약한 마음 노리고 이렇게 종교 들이미는 거 너무 야비한 수법 같지 않아요? 지하철역이나 버스터미널 주변 같은 데서 이런 거 선전하시다가 요즘에는 아무도 안 들어 주니까 병원 주변으로 새로 개척하신 건가 보죠?”

 “아니오, 아니오, 선생님. 저희는 종교 단체가 아니에요. 종교 단체 쪽에서 저희 사업에 후원을 하시는 것이 일부 있는 것은 맞는데요. 저희는 정말로 이 정신 휴식법 이거 한 가지만 따로 사업을 하는 거구요. 뭘 믿으라거나 하는 게 전혀 아니거든요.”

 키 큰 사람이 말했다. 말을 하면서 웃었는데, 웃고 있으니 꽤 인상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 같기도 했다. 키 작은 사람이 나에게 건낸 팸플릿의 3페이지를 펼쳐 내가 보게 했다.

 키 큰 사람이 다시 말했다.

 “저희 사업 내용도 무슨 우주의 창조나 죽은 뒤의 세계 같은 그런 엄청나게 거창하고 그런 종교적인 게 아니고요. 그냥 말 그대로 정신 휴식법, 그대로예요. 선생님. 왜, 몸은 단련하라고 헬스클럽도 많고, 몸은 쉬라고 사우나, 찜질방도 많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마음을 쉬게 해주는 서비스는 정말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바로 그렇게 몸을 쉬는 찜질방처럼, 마음을 쉬는 정신 휴식법을 알려드리고 또 같이 실습해 보는 그런 사업을 하고 있는 것 뿐이에요. 한번 내용을 보세요. 저희 정신 휴식법은 확실히 딱 그 값을 하는 거에요.”

 잠깐 나는 그 선전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곧 다시 반대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찜질방이 몸을 쉬는 곳인 것처럼, 이 ‘정신 휴식법’이라는 것은 마음을 쉬는 곳이다?”

 “그렇죠.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그런데 찜질하고 달걀 까먹으면서 몸 쉬면 그때 마음도 같이 쉬게 되는 거 아니에요? 마음 쉬는 게 그런거죠. 마음이란 게 몸하고 완전 분리 돼서 어디 따로 붕붕 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도 상처 받지 않은 투였다.

 “에이, 왜 이러세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막 불안하고, 초조하고, 너무 큰 일이 생기는 것 같고, 걱정이 자꾸 많이 돼고, 어쨌건 닥치는 큰 일을 해결하려면 일단 마음이라도 차분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안 될 정도로 자꾸 가슴 답답하게 생각이 쌓이고, 그럴 때, 찜질방 가면 확 풀릴 것 같아요? 사우나 간다고 가라 앉을 것 같아요?”

 결국 20분 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정신 휴식법을 가르쳐 준다는 사무실로 가고 있었다.

 자기네들 차를 불러 준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을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차에 태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하며 불구덩이에 내 몸을 내던질 지, 부정한 정신을 뽑아 내야 한다며 세척액을 코에 강제로 들이 부을 지 알게 뭔가?

 그래서 지하철에 발을 들여 놓기 직전에도 약간 주저하기는 했다. 지하철 역으로 걷는 내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듯한 기색을 느낀 것인지 키 큰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오늘 무슨 일 있으시긴 있으셨나 봐요?”

 “예, 회사에서 좀, 일이 있어서.”

 “회사요? 병원이 회사세요?”

 나는 CT 연구부의 직원이었다. 오늘 발표된 조직 개편에서 우리 부서가 통째로 없어진다는 발표가 났는데,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그 쪽으로 건강 보험이 맞춰 가고 있었고, 그러니 건강 보험 정책에서 빗겨 나간 우리 같은 연구 부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석 달 간 대기 시간을 거친 후에 직원들은 재배치나 명예 퇴직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재배치로 갈 수 있는 자리는 주차 관리나 병실 청소 자리 정도 밖에 없다는 것 같았고, 그나마 빨리 명예 퇴직을 신청하면 대기 시간 동안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월급은 준다고 했다.

 다들, “이제 어떡해요?” “야, 이거 이렇게 뒤통수 맞을 줄은 몰랐네”라면서 웅성웅성했다. 그 웅성웅성한 소리에 휩싸여 있던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너무 큰 일이 생기는 것 같고, 걱정이 자꾸 많이 돼고, 어쨌건 닥치는 큰 일을 해결하려면 일단 마음이라도 차분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안 될 정도로 자꾸 가슴 답답하게 생각이 쌓였다.

 그러다 뭐든 박차고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에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명예 퇴직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발표 후 세 시간 만에 회사에서 짐을 싸서 나온 것이다.

 내가 이 사람들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은 결국 그 될대로 되라는 심정 때문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이상하게 돌아 가고 있는 판에 어디가 어딘지 한 번 계속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이제껏 도대체 이 사람들을 따라가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 상상해보는 것조차 귀찮게 여겼지만, 오늘은 과연 이 사람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한번 보고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큰 사람이 말했다.

 “우선 저희 정신 휴식법은 기본적으로 시설 자체가 제대로 되어 있어요. 은방이라고 해서, 이렇게 은색으로 금속으로 되어 있는 방에서 정신을 휴식하시게 되는데요. 일단 이 안에 들어 가시면 느낌이 확 달라요.”

 키가 작은 사람은 나에게 팜플렛 5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은회색 빛이 나는 쇠로 된 꽤 널찍한 실내가 보였다. 마치 부자들의 보석을 보관해 주는 은행의 커다란 금고 안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고, 탱크나 잠수함의 내부를 깨끗하게 정리해서 몇 배 늘여 놓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좀 특이해 보이기는 했다.

 “이 은색 쇠가 뭐길래 여기 들어가면 느낌이 다르다는 건데요?”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고요. 경험해 보시면 아실 거에요. 여기로 들어가시면 일단 기분이 딱 바뀌어요.”

 나는 이 방 안에 기분을 좋게하는 약물 같은 것을 미세하게 분무기로 뿌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왜, 카지노에서는 사람들이 더 도박에 열중하라고 신선한 산소를 일부러 실내에 공급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차피 사기 비슷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금속으로 거의 밀폐된 방을 만들어 놓고 마약 연기 같은 것을 살살 집어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그 정신휴식법을 배운다는 사람들은 이 오묘한 정신 휴식법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엷은 마약에 취하고 있는 것 뿐 아닐까?

 “저희 정신 휴식법 사업은 정말로 그냥 간단하고 합법적인 서비스 사업이고요. 정말 그게 다거든요. 무슨 약물을 취급한다든가, 이상한 물건을 강매한다든가 이런 쪽은 전혀, 정말 전혀 아닙니다.”

 키 큰 사람은 말을 하면서 “정말”이라는 말을 유난히 말을 썼다. 그래도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의심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침내 두 사람과 함께 지하철 문 속으로 들어 섰다.

 노선도에서는 항상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실제로 가 본 적이 없는 역이 우리가 내릴 곳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삶이 사실은 거대한 속임수이고,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곳 주변만 땅과 건물로 꾸며져 있고 그 사이에 다른 지하철역에 내려서 그 바깥으로 나가면 사실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빈 종이 같은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실은 거대한 동물원 같은 곳으로 이 모든 것이 아주 커다란 거인들이 인간들의 삶을 과학교재용 개미집을 관찰하는 것처럼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사이에는 역 바깥으로 나가 봤자 아무것도 없는 가짜역 같은 곳도 많지 않을까. 내가 향하는 곳은 바로 그 빈 종이 같은 공간이 튀어나올 만한 역으로 가장 어울릴 만한 역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에게 이 정신 휴식법이라는 것의 역사에 대해 주로 물었다. 이것이 언제 생겼고, 누가 개발했고, 하는 것들을 질문해 보았다.

 “방법 자체가 나온 것은 70년대라고 하는 거 같아요. 그때 저희 은방장군이라는 종교 활동을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요. 아니, 잠깐만요. 종교 활동하신 분이라고 바로 너무 거부감 가지실 필요는 전혀 없고요. 정말, 또 말씀드리지만 그 분하고 저희 정신휴식법 사업하고는 진짜 간접적인 관계 밖에 없어요. 그 은방장군이라는 분이 이런저런 종교 활동을 하시다가 정말 마음을 딱 잡아주는 그런 방법을 개발하신 거에요. 그래서 그 방법을 종교 활동하고는 별개로 떼어 내서, 마치 무슨 에어로빅이나 요가, 이런 것 처럼 저희 정신 휴식법으로 만든 거에요.”

 나는 이제야 이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싶었다.

 “결국 종교 선전 맞는 거네요.”

 “선생님, 우리, 요가 강사에게 요가 배우면서 무슨 고대 인도의 종교를 믿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에요. 완전히 분리 되어 있다니까요. 게다가 저희 정신휴식법은 은방장군님이 바로 창안하셔서 지금처럼 사업이 된 게 아니거든요. 은방장군님은 종교 개통이지만 거기서 정신휴식법을 개발해 내신 분은 가애리 총재님이라는 분이세요. 그러니까 정말 분리 되어 있다니까요.가애리 총재님은 정말 전설적인 분이시고요.”

 “가애리요? 그런 사람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요.”

 “70년대 말에는 청와대 쪽으로도 출입하셨어요.”

 “70년대말에 청와대라면, 확실히 무슨 이상한 종교인 같은 그런 사람 맞겠네요. 요즘 잡지 같은 기사에 말 도는 걸 보면 그때 독재로 돌아 가던 정부 상황이 진짜 개판이라서 별 이상한 종교 지도자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나 대통령 가족 주변에 자꾸 꼬이고 그랬다는 거 같던데.”

 “아니에요. 가애리 총재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세요. 이 분은 확실히 엄청나세요.”

 그 총재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만 해도 키 큰 사람은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말로 운동 기구를 파는 세일즈맨 같아 보이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총재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 수록 키 큰 사람의 말투는 바뀌었다. 이 키 큰 사람은 총재라는 사람을 무슨 동화책 속의 신선처럼 여기는 듯 보였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보니 역시 백지 같은 공간은 없었다. 대신 망해가는 커피 가게 체인점와 망해가는 분식집 체인점과 망해가는 치킨 체인점이 뒤섞인 서울시내 어디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지루한 지하철역 주변 거리가 나타났다. 생각해 보니, 이 정도라면 어떤 외계인이 장난으로 꾸민 동물원일지라도, 간단히 복사해서 만들 수 있는 별 만드는 데 힘들 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디를 가나 서울 거리가 비슷비슷해 빠진 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거인들이 만들어 놓은 동물원이라는 증거인 것은 아닐까?

 키 작은 사람은 안경점 옆의 계단을 가리켰다. 그 시멘트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가니, 그곳에 바로 “사단법인 정신휴식법 본부”라는 간판이 걸린 단체가 있었다. 간판 아래에는 커다랗게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힘찬 검은 붓글씨로 “매국 친일, 친미 세력 처단하여 민족 정기 드높이자!”라고 느낌표까지 빠뜨리지 않은 구호가 적혀 있었다.

 “사실 저희가 정치적인 입장이 강한 편은 아닌데요. 이번에 정신 휴식법 사업 키우시려고 정말 몸 바쳐서 일하신 ‘일꾼’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이 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이렇게 써놓으셨네요. 그런데 그 일꾼분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저희 정신 휴식법 사업이 이 정도로 커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어느 정도 또 무시할 수는 없거든요.”

 키 큰 사람은 나를 문 안으로 안내 했다.

 그 안에는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약물이 있는 느낌도 없었고, 그렇다고 요란하게 노래나 괴성을 지르며 종교적 광기에 빠진 격한 느낌도 없었다.

 문 안도 조용했고, 차분했다. 다만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 중에는 유난히 “민족 정기”나 “민족 자주” 따위를 강조하는 말들이 많았다. “강대국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세계 질서를 민족 대단결로 깨뜨리는 법”이라는 포스터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70년대 대통령과 이 단체의 창시자 무리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같이 찍은 사진들도 끼어 있었다. 아마 그 중에 누군가는 은방장군일 것이고, 누군가는 총재일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사이에 달라 붙어 어떻게든 대통령 일가가 뿌리고 다니는 세금을 빨아 먹으려던 인간이지 싶었다.

 포스터가 있는 복도를 지나니 조금 넓은 방이 있고 사람들이 바닥에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우리 그 방 바깥에서 창문으로 그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 분들이 지금 정신 휴식법을 받고 계신 겁니다. 한번 보세요. 보시면 아세요.”

 “그런데, 여기는 아까 보여주신 그 금속으로된 방은 아닌데요.”

 “거기는 요 다음 방인데, 거기는 ‘배운님’들께서 쓰시는 곳이에요. 배운님들이라는 게 뭐냐면, 이제 남들에게 정신 휴식법을 어느 정도 전수해 줄 만큼 배우신 분들에게 저희가 자격증을 발급해 드리거든요. 그 자격증이 있으신 분들을 저희가 배운님들이라고 불러요.”

 나는 찬찬히 모여 있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보고 있으니 도대체 정신 휴식법이라는 게 무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눈을 감고 귀에서 들리는 말을 듣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 말이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입니다.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보이는 세상이고, 당신의 귀에 들리는 것이 모든 들리는 세상입니다” 정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도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정신 휴식을 취한다고 감탄하고 있는 듯 했다. 처음에는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보고 있으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 살면서 마음에 남게 듣는 말이라는 게 보통 뭔가? “야, 너는 뭐 일을 그 따위로 하냐” 아니면,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재수 없게 해?” 정도 아닌가. 그런데 어쨌건 네 인생 정말 소중한 것이고, 너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니, 마음 속 한 구석에 자꾸 그 말이 비집고 들어 오는 것이다.

 하기야 세상에 무슨 득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체로 사람이라면 자기는 좋은 사람인데 세상이 나쁘고, 자기는 원래 괜찮은 편인 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믿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러니 자꾸 “그래도 된다” “하고 싶은대로 해라”라는 느낌을 주는 말들을 계속 들으면 어째 솔깃한 기분이 될 만도 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 눈을 감고 말 하지 못하게 하고 가만히 앉혀 두니 하여간 자꾸 혼자서 뭐라도 생각을 곰곰히 하게 되니 색다른 일을 했다는 느낌은 들게 된다. 인생 살면서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곰곰히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괜히 무슨 독특한 체험 같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정신 휴식법에는 확실히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있기는 있었다. 그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음침하고 무서운 쪽에 가까웠다. 이유는 나도 그때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나 비밀과 맞닿아 있는 이상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감돌고 있었다. 그 이상한 여러 감흥이 뒤섞여 있어서, 적어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 정신 휴식법이라는 것이 방청소나 설거지보다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맥 빠졌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금속으로 된 방을 보고 싶은데요.”

 “배운님들이 정신 휴식하시는 곳이요?”

 “예. 거기는 볼 수 없나요?”

 나를 그곳까지 안내한 두 사람은 난처해 했다.

 “거기는 은방인데요. 보통 처음 오신 분들께는 함부로 개방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그렇다는 이야기면 좀 특수한 상황이면 개방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그 둘과 논쟁을 벌였다.

 “그 쪽은 사실 저희 종교 단체쪽하고 좀 관련이 있는 곳이고요.”

 “왜요? 은방장군이 머무시는 곳이라서 은방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 보다는 은방에 그 분이 머무시니까 은방장군이라고 하는 거기는 한데요.”

 논쟁은 길어졌다. 그럴 수록, 나는 이 사람들이 은방장군이라고 부르는 그 고귀한 것이 얼마나 황당한 주술적 환상인지, 그것도 한번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조잡하게 꾸며 놓은 신상과 얼마나 가소로운 교리로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을 표현해 놓았을 지, 그 수준을 비웃어 보고 싶었다. 그 순간 생계를 잃고 쫓겨난 직장인에게 다른 사람들을 비웃어 보고 싶은 욕심은 상당히 간절했다.

 결국 나는 그 둘을 협박해서라도 은방 안에 들어 가고자 했다. 나는 내가 아직까지는 퇴사처리가 완료 되지 않은 병원 직원인만큼, 만약 나에게 은방을 구경시켜 주지 않는다면, 병원에 이야기 해서 병원 앞에서 홍보 활동을 하는 당신들을 무슨 핑계로든 쫓아 내도록 하겠다고 위협했다. 종교 단체의 과도한 활동을 억제하고 있는 시 당국의 규정을 이용하도록 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구체적으로 지적도 했다. 작년에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자기 종교 단체의 의식을 열렬히 수행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꼬이고 다녔던 병원 앞 거리의 사이비 무속인 몇몇이 있었는데, 바로 그런 식으로 그들을 쫓아냈던 것을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은방 안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은방으로 걸어 가면서 두 사람은 나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당부했다.

 “은방 안에 들어 가시면, 정말로 은으로 된 방이 그 안에 하나 있거든요. 그런데 그 안에는 절대로 들어 가시면 안됩니다. 그 안에는 가애리 총재님께서 은방장군님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장식이 있고요 거기에 은방장군님께서 깃들어 계시는데, 보통 사람이 함부로 은방장군님을 보면 그 분의 기를 다 받아낼 수가 없어서 죽는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절대 은방 속의 은방 안은 보시면 안돼요.”

 “보면 죽는다고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말 그런지 그냥 장난인지 다들 몰랐는데요. 실제로 작년에 함부로 은방장군님을 보면서 노래도 부르고 기도도 드리고 하다가 거의 죽게 된 분들이 계셨거든요.”

 “정말로 은방장군이라는 것을 보고 죽을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바로 일꾼님들이세요. 일꾼님들이 그 일을 당한 뒤에 은방장군님을 정말 깊게 믿게 된 거죠. 자기 생명마저 바로 뺏아 버릴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신 것이 은방장군님이니까요. 모든 것을 바쳐서 은방장군님과 가애리 총재님의 사업을 키우는 데 여생을 다 쓰려고 하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정신 휴식법 사업이 커지고 있는 거고요.”

 나는 두 사람이 들려준 사건이 공교로운 우연을 오묘한 이치로 착각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동네 서낭당 나무를 베어 낼 때에 마침 번개가 치면 서낭당 나무의 귀신이 분노해서 번개를 내렸다고 지어내는 소리와 다를 법 없다고 짐작했다.

 “은방장군님을 보시면 일꾼님들께서도 처벌을 따로 내리실 지도 모릅니다.”

 키 작은 사람은 나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속으로는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은방 안에 들어가서 본 광경은 나로서도 상당히 압도될 정도로 엄숙하였다.

 흰 한복을 갖춰 입은 정갈한 복장의 남녀들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아까와는 달리 온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때로는 흐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기도문인지 그들의 고해인지 아니면 괴상한 미친 기쁨에 들뜬 환호인지는 분간할 길이 없었다.

 방의 모습은 사진에서 본 반짝거리는 장면과는 달랐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방 전체가 다 쇳덩이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방은 앞쪽 벽만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그 금속은 말처럼 은도 아니었다. 회색으로 빛이 나기는 했지만 광택이 약하고 울퉁불퉁해서 좀 지저분해 보였다.

 그런데 그 벽의 좁은 틈이 열려 있었다. 바로 그 안이 은방 속의 은방, 바로 이 모든 멍청한 자들이 섬기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있는 곳이었다. 그 틈은 반쯤 열려 있는 입술 같이 나를 유혹했다. 나는 그 안을 보고 싶었다. 은방장군이 실제로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기를 뿜고 있다는 그 한 없이 덜 떨어진 상상력을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속으로 깔깔 웃어 보고 싶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금속 벽면을 향해 걸어 갔다. 엎드려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정신 휴식에 팔려 내가 바로 옆을 지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딸깍, 딸깍 하는 묘한 금속음이 들렸다. 귀신이 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금속 벽면의 틈이 내 앞으로 점차 다가올 수록 점점 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마지막 몇 걸음은 달리듯이 빠르게 내딛었다.

 마침내 금속 벽면의 틈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거기에는 솜씨 부족한 신도가 그저 믿는 마음으로만 만든 것 같은 투막한 금속 인물상이 있었다. 돌하루방과 비슷한 그 인물상 밑에는 만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때 딸깍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딸깍거리는 소리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들을 만큼 잦아 졌고 커졌다.

 나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지 알 수 있었다. 가방 속에서 나는 그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것을 끄집어 냈다. 병원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온 방사능 측정용 가이거 계수기였다. 나는 다시 금속 인물상에 새겨져 있는 이름을 보았다. 그 이름은 KAERI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KAERI는 가애리가 아니라 한국 원자력 에너지 연구원,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라는 뜻이었다. 70년대말 대통령이 암살된 후, 주인 없는 청와대 자리에서 사람들이 이것저것 저마다 값진 것을 하나씩 챙겨 나올 때에, 어떤 괴팍한 인간이 독재자가 몰래 보관하고 있던 핵무기 재료를 집어 들고 나온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인물상은 높은 순도의 플루토늄 덩어리였고, 그 쏟아지는 방사선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사람들이 병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은방, 그러니까 납으로 만든 차폐판으로 둘러친 그 방에서 당장 도망쳐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내 주위로 넋 빠진 표정의 일꾼 넷이 걸어 왔다. 병 든 생명의 끝에 다가 서서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그들은, 죽음 뒤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의 가장 신성한 것을 내가 침범했다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확실히 성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손이 움켜 쥔 도구들이 나를 지압하고 마사지 해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 2017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곽재식
댓글 4
  • No Profile
    도스까라아스 17.06.01 00:57 댓글

    코마츠 사쿄의 '보미사'가 떠오르는 구성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금방장군도 기대해도 되나요(?)

  • 도스까라아스님께
    No Profile
    곽재식 17.06.01 11:46 댓글
    오래간만에 정말 반갑습니다!! 거울에서 또 종종 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마츠 사쿄 소설은 재밌게 읽은 게 몇 있습니다만 "보미사"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제 궁금합니다.
  • No Profile
    여진석 17.06.05 09:09 댓글 수정 삭제

    청와대에 거울로 만든 방이 있다는 루머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여진석님께
    No Profile
    곽재식 17.06.06 18:59 댓글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결말 없이 시작했는데 쓰면서 대상 혹성탈출 시리즈 중에 하나에서 나왔던 소재를 가져와서 결말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끝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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