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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공화국

– 곽재식 –

내가 임시계약직에서 빠져 나올 기회를 얻었던 것은 “대동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기법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동법이 개발 되기 전에는 여기 사람들 전부 정말 괴로워했다. 예를 들어 어제 나를 찾아 온 뻥엔지니어링 대표만 해도 대동법이 아니었으면 지금 쯤 감옥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리님, 진짜 매번 정말 감사드리고요.”

 “무슨 매번이에요. 뻥엔지니어링 처럼 여기 입주하신 회사들이 잘 되셔야 저희 스타트업 지원 센터도 잘 되는 건데.”

 “그래도요. 작년에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거든요.”

 예전에 뻥엔지니어링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뻥엔지니어링이 이곳에 입주한 여느 회사 답지 않게 활기 차고 사무실이 깨끗하며 직원들이 건강해 보이는 것에 놀랐다.

 그 무렵, 이곳 스타트업 지원 센터에 입주한 회사들의 직원이란, 밤 새도록 일하고 머리를 감지 못해 기름에 굳은 머리칼을 한 모습의 같은 학교 친구 두 셋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도대체 우리도 왜 여기 있는 지 모르겠어요”라는 표정을 지은 채로 쭈볏거리고 있는 것이 흔한 모습이었다. 가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직원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때마침 집에 가서 씻고 왔기 때문에 머릿결이 좀 달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뻥엔지니어링은 달라 보였다. 스타트업 지원 센터의 직원이었던 나는 뻥엔지니어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간단하게 감사를 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이 왔던 영란 선배가 내게 말했다.

 “얘네들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요? 멀쩡해 보이던데요.”

 “그게 이상하잖아. 멀쩡해 보이잖아.”

 “멀쩡한 게 이상해요?”

 “우리가 점검 맡은 스타트업 회사 직원들 중에 멀쩡해 보이는 데 셋 만 대 봐.”

 201호에 입주한 회사에서는 두 시간에 한 번 씩 직원들끼리 싸우느라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202호에 입주한 회사의 대표는 잘 풀린 다른 스타트업을 격렬히 질투한 나머지 항상 “실리콘 밸리의 신화들” 어쩌고 하는 유튜브 소개 동영상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203호에 입주한 회사는 다들 곧 회사를 접기로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표와 직원 모두 회사 사무실을 고시원처럼 꾸미고 회사가 망한 뒤에 응시할 무슨 공공기관 입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204호에 입주한 회사 대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인도 탄트라 니르바나 명상에 심취한 나머지 우리가 찾아 가면 힌두어로 대답하곤 했다.

 205호에 입주한 회사 직원들은 언제나 하루 종일 종이학을 접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을 하는 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회사가 종이 접기에 적합한 종이를 개발하고 있는 회사라는 소문도 있었고, 회사에서 행사를 열려고 하는데 그때 장식하기 위해 만드는 종이학을 직원들이 접고 있는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회사가 빚을 너무 많이 졌고 직원들이 다들 보증을 서서 너무 위험해졌기 때문에 종이 학 천 마리를 접어 어디 영험한 바위 밑에서 불사르면서 제발 사업이 잘 풀려서 빚을 갚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그런다는 말도 있었다.

 “뻥엔지니어링이 그래도 지난번에 정부 지원금으로 1억원인가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좀 사정이 편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니야. 다들 그 정도는 지원 받지만 그런 거 받으면 원래 더 이상해 지거든.”

 “돈을 받으면 더 이상해져요?”

 “우리가 그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고.”

 영란 선배는 뻥엔지니어링이 받은 정부 지원금을 우리가 받았다고 치고, 그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따져 보자고 했다.

 “돈을 받으면 어디에 제일 먼저 쓸 것 같은데?”

 “일단 직원들 월급을 줘야죠.”

 “그렇지. 자, 그런데 직원들 월급을 최대 얼마까지 써야 하는 지 정해져 있단 말이지.”

 “그런 규정이 있어요?”

 “있어. 정부 지원금 타 먹고 일은 별로 안 하면서 돈만 많이 받아 간다고 지난번에 국회의원들이 도덕적 해이라고 막 따졌거든. 그래서 서울 거주 20대 월급 생활자 직장인 평균 월급 이상은 주면 안 된다고.”

 “뻥엔지니어링 직원들은 대부분 30대 아닌가요?”

 “그게 중요한 거는 아니잖아.”

 나는 직원들에게 지원금으로 줄 수 있는 월급 액수를 계산해 보았다.

 “자, 그리고 직원으로 이름만 걸어 놓고 지원금으로 월급을 타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다들 자기들이 이 일에 적합한 직원이 맞는지 증명을 해야지 월급을 받을 수 있거든. 그래서 학교 전공이랑, 졸업 증명서랑, 경력 증명서를 제출하고, 매일 무슨 일을 했는 지도 기록장에 기록해서 제출하게 돼 있어.”

 “그냥 아이디어가 좋아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시작한 스타트업인데 정작 지원을 받으려면 왜 전공이랑 학교 졸업 증명서를 센터에 제출하게 하는 건데요?”

 “어쩔 수 없잖아. 지원금 빼 먹는 가짜 직원을 가려 내야 하니까.”

 “그런데 졸업 증명서는 원본을 내야 되는 건가요?”

 “원본이어야 되지.”

 “여기, 뻥엔지니어링 직원 한 명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나왔는데 이 학교는 우편으로 졸업 증명서를 보내 주는 제도가 없거든요. 그러면 스위스에 비행기 타고 직접 가서 졸업 증명서를 떼어 와야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런 일을 해 주는 심부름 센터 직원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직원은 전에 일했던 회사가 망해서 없어졌는데 어떻게 그 회사에서 일한 경력 증명서를 뗄 수 있겠어요?”

 “그런 경우에는 ‘스타트업 지원 센터 지원금 자격 확인 지침’ 426조를 보면 되는데 말이지. 여기있네. ‘폐업 등의 사유로 경력 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전에 일했던 회사의 동료 직원 3인 이상의 자필 서명을 받은 임의의 확인서로 대체할 수 있다.’ 예전 회사 동료들 찾아 다니면서 나 전에 회사 다닌 것 맞다고 서명 좀 해달라고 해야 되겠네.”

 그리고 나서도 알아 보니, 지원금 지급 규정은 가지각색으로 빽빽하였다. 각각의 업무에 따라 어느 항목에 얼마의 비율로 돈을 써야 되는 지가 아주 세밀하게 정해져 있어서, 생각 없이 필요한 종목에 돈을 쓰다가는 지침 위반이 되기 십상이었고, 모든 돈을 쓴 내용에 대해서 영수증과 함께 증명서와 사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어서, 만들어야 하는 서류의 양도 대단히 많았다.

 게다가 지난달부터는 이 모든 것을 웹사이트에 입력하도록 “서류 제출 간소화 IT 시스템”이라는 것을 써야 하도록 바뀌어 있었는데, 공인인증서 프로그램의 충돌이 잦아 이 웹사이트를 쓰는 것도 무척 귀찮은 일이었다. 특히, 이곳 스타트업 지원 센터에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많아서 내부망의 보안 체계가 철저한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류 제출 간소화 IT 시스템의 복잡한 기능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 더 골치 아파졌다. 첨부파일을 잘못 올리면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기 때문에, 직원들은 첨부파일을 선택할 때 마다 달달 떨면서 마음 속으로 각자 신봉하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지원금 받고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요. 엄청 피곤하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렇다고 또 지원금을 안 받아 쓸 수도 없어. 왜냐면 아무리 그래도 서류 작업좀 많이 하는 대신에 지원금 받는 게, 진짜 사업 성공시켜서 돈 버는 것 보다는 쉽고 확률도 높거든. 그러니까 지원금을 받고 싶은 유혹이 크지. 그래서 지원금 받아서 쓰다 보면 이것저것 서류 작업하고, 지원금 따는 데 맞춰서 발표하고 보고서 쓰고 그런데 휘둘리고, 그러다가 막상 사업은 못하고. 그래서 사업을 못하면 더 지원금에만 매달려야 되고. 뭐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러면 도저히, 지금 뻥엔지니어링 직원들 같이 밝은 표정은 안 나올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해서 나와 영란 선배는 뻥엔지니어링에게 의심을 품고 정식으로 “지도 감사”를 실시했다. 우리는 뻥엔지니어링에게 장부를 제출하라고 해서 좀 더 깊이 파고 들어 보았고, 사흘 정도 자료에 붙어 있었던 결과, 영란 선배가 드디어 수수께끼를 풀었다.

 “얘네들 ‘품앗이’하고 있네.”

 “품앗이요?”

 문제의 힌트는 205호 입주 업체의 종이학이었다.

 스타트업 지원 센터 규정에 따르면 투자설명회 행사를 할 때에는 정부 지원금을 넉넉하게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작년에 “스타트업의 엑싯 전략”을 지원해야 한다고 어떤 장관이 열심히 떠든 결과 이것저것 규정이 더 생겼는데, 거기에 보면 스타트업이 투자를 많이 받아서 몸집을 일정 정도 이상으로 키우고 지원 센터에서 빠져 나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투자를 받을 기회인 투자설명회를 잘 하는 데 적극적으로 돈을 쓰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뻥엔지니어링은 투자설명회 행사에서 행사장을 장식하는 용도로 산다는 핑계로 205호로부터 “최고급” 종이학을 한 마리에 50만원씩 주고 사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지원금 액수 중 대부분을 종이학을 사는 데 써 없앴다. 그런데, 205호는 뻥엔지니어링과 짜고 있는 업체로 종이학을 만들 때 “최고급” 전용 색종이라면서 뻥엔지니어링에서 파는 색종이를 한 장에 49만원에 사들이고 있었다. 그 “최고급” 색종이는 그냥 보통 색종이를 종이학 접기 좋게 두어번 정도 접어 놓은 것 뿐이었다. 그러니까 뻥엔지니어링과 205호는 아무 가치도 없는 색종이와 종이학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49만원, 50만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종이학만 하나 씩 생기지, 의미 없는 짓 아니에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런데 명목상 색종이를 판 돈은 회사가 벌어 들인 매출로 생긴 돈이잖아.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지원금이 아니라 회사가 번 돈이라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두 회사가 작당을 하고 의미 없는 제품을 서로 팔고 사며 주고 받으면서 “투자설명회 용도”로만 쓸 수 있는 지원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매출액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품앗이” 수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뻥엔지니어링은 여러 용도로 쓰려면 제한도 많고 서류작업도 지나치게 복잡했던 지원금을 그냥 종이학 사는데 다 써서 없애 버리고 있었다. 대신에 종이학 만드는 회사에게 색종이를 팔아서 만든 돈으로 직원들 월급도 주고, 사무실 전기료도 내면서, 실제 원래 하려던 사업도 착실히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님, 지난 달에 위에서 규정이 새로 내려와서 이제 이런 식으로 품앗이 하는 걸 철저하게 금지한다고 되어 있거든요. 2회 이상 품앗이로 적발된 회사는 돈세탁으로 적용해서 형사 고발한다고 하고요.”

 내가 뻥엔지니어링 대표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말하자 그는 몹시 괴로워 했다.

 “그러면 이제 저희는 어떡합니까? 이제 막 사업이 자리 잡았나 싶어서 저희들 결혼할 계획이나 아이 낳을 계획도 세우고 그랬는데. 품앗이 못하면 저희 이제 사업 접어야 되는데요.”

 나와 영란 선배는 고민했다. 뻥엔지니어링이 망하는 것은 우리도 싫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정상으로 보이던 회사의 직원들을 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뻥엔지니어링을 도와 줄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영란 선배는 너무나 복잡한 지원금 규정을 개선할 방법 몇 가지를 찾아 내서 그것을 건의 사항으로 올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 스타트업 지원 센터의 지원금 규정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지시로 만든 것이라서 쉽게 바꾸기가 어려웠다. 아닌게 아니라, 건의 사항이 제대로 접수 되기도 전에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있던 사람이 먼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대신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낸 사람은 바로 나였다. 영란 선배가 그럴 듯해 보인다고 하자, 나는 뻥엔지니어링의 대표에게 그 방법을 설명했다.

 “여기 지원금 사용 규정을 잘 뒤져 보면 제42조 6항에, 직원들 간식비 지원이 있는데, 이건 사용에 제한이 적은 편이에요. 특히 우리 농산물을 재료로 직접 간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쓴다고 하면 별 고민 없이 거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그러면 저희 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간식만 그냥 많이 먹으라는 건가요?”

 “아니죠. 직원들에게 간식 재료를 사 주세요.”

 “그게 무슨 말인데요.”

 “요즘 떡이 영양간식으로 인기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뻥엔지니어링 대표는 바로 내 말 뜻을 알아 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후로 우리 지원 센터 업체들 사이에서 대동법이라고 불리운 수법이 탄생했다.

 즉 모든 정부 지원금은 전액 직원 간식재료비로 처리해서 쌀을 사는데 몽땅 써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직원들에게 월급 대신에 “간식 재료” 즉 “쌀”을 준다. 그러면 직원들은 이 쌀로 아마 떡을 만들어 먹을 것이다- 가 아니라, 직원들은 쌀을 인터넷에서 내다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단 지원금을 쌀 사는 것으로 쉽게 합법적으로 다 써서 없앤 뒤에, 나중에 쌀을 팔아서 현금을 만드는 수법이 바로 대동법이었다.

 공식적으로 뻥엔지니어링은 직원들 월급도 안 주고, 전기비도 안 쓰며, 출장비도 안 쓰는 회사로, 오직 간식으로 쌀만 사 먹고 있는 괴상한 회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자유롭고 넉넉하게 월급도 주고, 공과금도 내고, 기타 잡비를 쉽게 쓰고 있는 회사가 된 것이다.

 대동법이 퍼지면서 처음에는 좀 어색해 하는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규정상 문제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 상부 기관에서 확인 되자, 삽시간에 거의 모든 회사가 이 수법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몇몇 언론에서 곳곳의 “스타트업 지원 센터”이 다달이 대량을 쌀을 싣고 왔다가 싣고 가는 풍경이 너무 이상하다고 해서 비리 폭로 비슷하게 취재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대동법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때였다. “만약, 대동법이라는 업계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해 단속한다고 하면 한국 스타트업은 다 죽는다”는 여론이 업계에 워낙 강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대동법은 건드리지 말라면서 소위 뜻 있는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여 저지했다.

 뻥엔지니어링의 대표는 이후 우리의 끄나풀이 되어 스타트업 사이에서 도는 새로운 소식이나 소문, 뒷 이야기 같은 것들을 정기적으로 알려 왔다. 우리는 그 정보를 듣고 힌트를 얻어서 지원금 사용에 비리를 저지른 업체를 잡아 내기도 했고, (예를 들어서 쌀 대신에 수입 농산물인 밀가루를 산다면 규정 위반으로 고발 되고 징역 5년에 처해진다.) 투자금이 모일 것 같은 유망한 회사 소식을 미리 알게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5호에 입주한 회사는 결국 자동으로 종이학을 접는 로봇 팔을 개발했다.)

 “이번에 말씀드릴 것은, 사실 저도 뭔지는 확신은 없는데요. 진짜 이상하긴 좀 이상하거든요. 얘네들이 일이 잘 되려고 이렇게 이상한 지, 안 되려고 이렇게 이상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서 뻥엔지니어링 대표는 옥탑방에 입주한 회사를 소개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DKB테크”였다.

 “뭘 하는 지 진짜 아무도 모르고요. 아직까지 매출은 없어 보이는데, 직원들이 전부 다 밤에만 출근하고요. 하여튼 이상해요. 어떨 때 보면 걔네들 실험실이 막 덜덜 떨리기도 하고요. 이상한 빛이 나는 거 같다는 말도 있고요.”

 그가 돌아가고 난 뒤에 영란 선배는 DKB테크의 회사 소개 자료를 찾아 보자고 했다. 나는 자료를 열어 보았다. DKB테크는 지지난달에 새로 입주한 회사였다.

 “회사 소개 자료에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핵심 기술이 뭐라고 되어 있어?”

 “’실린더형 광자 유도 글루온 맥놀이 간섭 기술’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저도 모르겠는데요.”

 “이 회사에서 개발 예정 상품은 뭐라고 되어 있어?”

 “’실린더형 광자 유도 글루온 맥놀이 간섭 장치’요.”

 역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아래에 적혀 있는 “목표 시장 및 지역”에는 “전 세계”라고 되어 있었고, “목표 고객층”에는 “전 인류”라고 되어 있었다.

 “얘네들 뭐야. 진짜 이상한데.”

 “일단 두 달 입주할 자격을 줬는데, 제품이 금방 와 닿지가 않고 잠재 고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시장성이 없다고 해서 다음 달에 재평가를 해서 내쫓을 거라는 계획이 올라와 있네요.”

 “그럴 만도 하네.”

 우리는 이메일을 보내 다음날 회사를 찾아 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DKB테크에 대해서 좀 더 조사를 해 봤는데, 대표, 직원, 투자자 모두 어째 분명한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누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서 만든 회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기꾼들 아닐까요?”

 “뭐, 그럴 수도 있고. 이 바닥에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다음날 아침, 이메일을 열어 보니 DKB테크에서 회신이 와 있었다. 대표가 보낸 메일로, ID는 “김첨지”였다.

 나는 이메일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저희가 출근이 늦어서 죄송합니다만, 밤 12시 이후에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혼잣말로 한 번 더 “진짜 수상하네”라고 중얼 거렸다. 영란 선배 역시 고개를 약간 움직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날 밤, 우리는 건물 옥상의 임시 건물로 올라 갔다.

 별빛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흰 달빛은 유난히 강해 보였다. 스타트업 지원 센터 건물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산 아래 휑뒝그레한 빈 땅에 덜컥 지어 올린 곳이었다. 밤이 되니 아무 다른 상점도 민가도 없는 주변은 빛 한 조각 없이 깜깜해졌고 근처 산 기슭에서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이상한 길게 우는 새 소리만 들려 왔다.

 “너무 깊은 밤 같다.”

 “그렇네요.”

 밤 12시 정도면 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한참 활발히 일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서 대체로 이 정도 시간에 건물에 남아 있다고 해도 그렇게 밤이 깊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기계실과 창고가 있는 꼭대기층을 지나서 텅 빈 옥상으로 올라 오니 분위기가 달랐다. 이 건물은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나 실직자였던 사람들이 점점 미쳐가면서 환하게 온통 빛을 밝히고 있는 곳인데, 옥상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깜짝 놀랐다. DKB테크의 대표였다. 임시 건물에 들어서자 마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대표가 나타났다는데, 발자국 소리도 없이 불쑥 튀어 나왔다.

 “실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조명을 좀 약하게 해 두고 있습니다.”

 대표는 우리 놀란 표정을 보고 설명했다. 대표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너무 밝은 색으로 보였다. 얼굴에서 야광 시계 같은 빛이 나오는 듯 해 보일 정도 였다. 눈은 아주 엷게 눈웃음을 치고 있었는데, 그 외의 다른 모든 얼굴은 괴상하게도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주름이 없이 웃을 수 있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모자를 쓰고 있네.”

 영란 선배가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는 야구 모자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긴 했다. 그렇지만 대표의 머리카락은 인공적인 공예품처럼 보일 정도로 완벽했다. 오히려 뭔가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두상이 특이한지 아니면 머리에 무슨 붕대 같은 것을 감았는지, 모자 안 쪽에 뭔가 툭 튀어나온 것이 있고 그것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 상상하게 될 정도였다.

 대표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 가니, 두 명의 직원들이 더 따라 나왔다. 두 직원들 역시 대표와 비슷해 보였다. 다만 직원 한 명은 이상하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고, 나머지 직원 한 명은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를 잘 냈다.

 “이 쪽으로 앉으십시오.”

 대표가 말했다. 우리는 어두운 사무실 안에서 홀로 켜진 탁상 전등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출액 목표가 어떻고, 기술 개발이 어떻고, 지식재산권이 어떻고하는 매번 이곳 입주 회사와 나누던 이야기를 했고, 회계 자료 몇 가지와 투자 설명회 자료 몇 가지를 보면서 같이 내용을 검토했다.

 “저희들이 사실 이 기술에 대해서 다룬 지는 좀 오래 됐습니다. 저희들끼리 그냥 산으로 들로 떠돌면서 체계도 없이 하고 있었는데요.”

 대표는 자기 회사를 설명하다가 그게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킥킥 웃었다.

 “이번에 생긴 이 지원 센터에서는 정말 누구든 다 일단 사업 시작은 할 수 있게 지원해 준다고 하시기에, 저희들도 이렇게 지원했습니다. 이제는 저희들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좀 제도권 내에서 체계적으로 더 성장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영란 선배가 말했다.

 “이번에 퇴출 심사 대상에 올랐는데, 일단 퇴출은 피하셔야 하거든요.”

 “예, 저희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는 다시 한 번 웃었는데, 이를 드러내는 그 웃음이 어째 오싹했다. 대표가 이어서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 회사 기술이 널리 투자를 받기에는 일반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지적하는 부분을 봤습니다.”

 “예, 저희들이 보기에도 그 부분이 제일 심각해 보이거든요. 저희 지원 센터가 광범위하게 지원해 주는 곳이기는 합니다만, 또 그래서 아주 전문적인 분야를 이해하고 전문 기술에 특화된 센터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퇴출 심사 때 저희들이 자료로 제출할 시제품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제품은 저희가 원래 개발하려는 제품은 아닌데, 그래도 저희 기술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만한 제품을 한번 만들어 본 겁니다. 시제품을 보시고, 심사 이사회 이사님들도 저희를 퇴출 시킬 거라는 계획을 거두셔야 할 텐데요.”

 영란 선배와 나는 그 회사의 이상한 기운이 점점 불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더 앉아 있어 봐야 뭘 많이 더 알아 낼 것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그만하고 대충 정리한 뒤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슬쩍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대표가 다시 말했다.

 “아, 두 분께서도 저희 시제품 한 번 보시겠습니까?”

 대표는 다시 아까처럼 웃었다. 우리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궁금하기도 했다. 설명을 많이 들어도 도대체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이 회사의 일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던 것이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대표는 두 명의 직원들이 있는 좀 더 넓은 방으로 우리를 데려 갔다.

 그 방은 캄캄했다. 다만 창 바깥에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어서 탁자와 선반들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이게 저희 시제품입니다.”

 대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둥그렇고 길쭉한 것이 있었다. 색깔은 나무 같은 갈색이었고, 크기는 어떻게 보면 야구 방망이 비슷하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박격포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 안에는 잡다한 기계 장치가 가득 들어 있어 보였다.

 “시연을 한 번 해야 하는데......”

 “아직 충전 중입니다.”

 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오래 걸려요?”

 “아닙니다. 융합 에너지 회수분으로 거의 충분히 재충전이 되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다 되어 갑니다.”

 다른 직원이 말했다. 그러자 대표는 우리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조금 기다리시겠습니까?”

 영란 선배와 나는 무심코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 없이 그냥 가만히 서서 서로를 곁눈질 하기만 했다.

 그러고 있는데 대표가 말했다.

 “지루하시면 씨름이라도 같이 한 판 하시면 어떠실까요?”

 나는 대표가 한 말을 처음에는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대표는 그리고 웃었는데, 방금 한 말이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는 것 같기도 했고, “지금 샅바를 가져 올까요”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다.

 얼마 후, 직원이 다시 말했다.

 “이제 다 충전 되었습니다.”

 대표는 기뻐하며 그 시제품이라는 것 가까이로 갔다. 그리고 그 길쭉한 몽둥이 모양의 시제품 한쪽 끝을 잡고 시제품의 끝트머리를 벽 쪽의 빈 공간을 향해 겨냥했다.

 “이제 실험 해 볼 수 있겠네요.”

 대표는 우리를 돌아 보았다.

 “바람이 좀 셀 수 있으니까, 거기 있는 손잡이나 기둥을 붙잡으십시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보더니 영란 선배는 천장에 매달린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 붙잡는 손잡이 같이 생긴 것을 가리켰다. 그걸 잡으라는 뜻인지? 왜 내가 그것을 잡아야 하는지?

 대표는 들고 있는 시제품을 향해 말했다.

 “금나와라, 뚝딱”

 우리는 도대체 대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대표의 말을 듣자 오히려 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섯 사람이 서 있는 가운데 아무 말 없이 시간이 좀 더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표는 다시 우리를 돌아 보았다.

 “아, 이거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좀 잘 안 먹히나 보네요. 제 목소리 인식에 오류가 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목소리로 인식해서 제품을 구동해야지, 이 제품을 보는 고객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고객들이 정말 예전부터 꿈꾸던 그 자연스러운 방식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게 될테니까요. 그래서 음성 인식으로 작동하게 한건데. 아무래도 유저 프렌들리한 게 좋으니까요.”

 대표는 그리고 나서 그 시제품의 뚜겅을 열어 거기에 달린 버튼과 밸브 몇 개를 움직이며 조작했다. 그러더니 자기 직원에게 말했다.

 “음성 인식 말고 커맨드 라인 인터페이스로 그냥 실행시킬 수는 없어요?”

 “되기는 하는데, 그러려면 부팅을 다시 해야 되서요. 아까 저희들끼리 데모할 때는 잘 됐는데. 왜 이렇게 외부 분들 보시는 앞에서 데모하려면 하필 잘 안되는 지 모르겠네요.”

 “제 목소리를 인식 못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까 데모할 때 누구 목소리로 실행했어요?”

 사장이 말하자 다른 직원이 손을 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해보세요.”

 그러자, 그 직원이 말했다.

 “금나와라, 뚝딱”

 처음에 우리 둘은 이게 무슨 이상한 짓인가 했다. 나중에 영란 선배는 처음에 그걸 보고 그 몽둥이로 무슨 빛을 쏘면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로 무슨 괴물을 잡는 어떤 게임 같은 것을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조차 상상하지 못해 도대체 무슨 장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말이 끝나자 시제품이 소리를 내며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제품 앞쪽에서 파자작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방향으로 오로라 같은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그 시제품을 겨눈 곳을 향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무슨 냉각팬 같은 게 도는 가 보다 생각했는데 바람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더니 이윽고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온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강해졌다. 나는 천장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고, 영란 선배는 건물 기둥을 붙잡고 달라 붙었다.

 “핵자 결합 완료.”

 “열 에너지 흡수장 60%까지 올라갑니다. 70%, 80%, 정상 작동 중입니다.”

 “중성자 포획장 가동 중입니다. 정상 작동 합니다.”

 “방사선 수치 전부 정상 입니다.”

 “생성 질량 0.1, 0.2, 0.3, 순조롭게 증가 중입니다.”

 그 와중에도 직원들은 시제품에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 화면의 수치들을 읽으며 뭐라고 정신 없이 떠들었다. 뭐가 폭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는 겁이 덜컥 났는데, 바람은 불지, 기계는 번쩍거리지, 창문은 덜컹거리지, 사람들은 자꾸 떠들어 대지, 혼란스러움에 도통 정신이 없어서 나도 아주 꽥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한참 그렇게 요란한 소리로 주위가 흔들리더니 강한 열기와 함께 연기와 김이 벽 쪽에서 무럭무럭 피어 났다. 그리고 점차 그 연기는 걷혀 나갔다.

 “다 됐습니다. 한번 보시죠.”

 대표가 말했다. 대표가 말하는 곳을 보니 쌀알 만한 노란 금속이 있었다.

 “6그램치의 Au가 생성 완료 되었습니다.”

 “에이유가 뭔데요?”

 내가 묻자, 영란 선배가 대신 떨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Au는 원소 기호로 금이지. 황금.”

 영란 선배는 천천히 벽 쪽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그 노란 금속을 집으려고 했다.

 “앗, 뜨거.”

 영란 선배는 손을 데었다. 그 작은 금속 덩어리는 매우 뜨거웠다.

 대표가 말했다.

 “아직 시제품이라서요 열에너지 흡수장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작동을 시키고 나면 만들어진 물질도 뜨겁고 주변 온도도 좀 많이 올라갑니다. 다음번에 지원금을 받으면 좀 더 개량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이게, 정말, 진짜 금이에요?”

 “예에?”

 영란 선배는 손수건을 꺼내 그 금속 덩어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그게 금 알갱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예, 맞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대표가 말했다. 영란 선배는 손에 든 것을 들고 옆에 설치 되어 있는 측정기기로 가져가서 그 무게와 부피를 측정하려고 했다. 나는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짓이냐 싶어서 따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기계가 금 알갱이를 총알처럼 발사해서 저기에 떨어졌다는 거에요?”

 대표는 웃었다.

 “아닙니다. 총알처럼 발사한다는 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원자에 운동에너지만을 더해서 전방으로 상대 위치를 이동시키는 장치고요, 우리 시제품은 없던 원자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허공에서 금을 나오게 했다고요? 그런 게 가능해요? 무슨 기술로요?”

 그 말을 할 때 머릿속에서는 그 알 수 없었던 이 회사가 갖고 있다는 기술 이름이 생각 났다.

 대표가 대답하기 전에 그 금속 알갱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던 영란 선배가 말했다.

 “이거 진짜 금이네. 순금이야. 순금.”

 나는 다시 대표에게 따졌다.

 “아니, 무슨 마술 같은 겁니까? 어떻게 눈을 속이는 건가요?”

 “큰 틀에서 보면 그렇기는 한데, 마술도 그렇고 저희 기술도 그렇고 일단 이 시제품에서는 엔터테인먼트 목적이니까요. 그런데 마술은 보통 있던 원자들을 그대로 옮기는 데 관찰자의 시선을 속여서 없던 원자가 생기는 것처럼 착시 효과를 주는 방식이고요. 저희 시제품은 실제로 없던 원자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없던 금 원자가 허공에서 생긴다니, 없던 금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는 건데요? 그러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거 아닙니까?”

 대표는 시제품의 안의 기계 장치들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표가 말했다.

 “아주 아무 것도 없는 데서 금 원자가 막 생긴 것은 아니고요. 공기를 이용하는 겁니다. 금이라는 것이 원자번호가 79인 원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양성자가 79개 있는 원자핵을 가진 원자가 금이거든요. 그런데 공기 중에 질소의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가 7개 있고, 산소의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가 8개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질소 원자핵 9개랑 산소 원자핵 2개를 합치면 양성자 79개가 되니까 금 원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물론 정확하게 딱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원자핵을 서로 결합시키다 보니까 이게 핵융합 과정에서 생기는 열이나 방사선도 빨리 제거를 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까 쉽지는 않은데요. 하여튼 원론은 공기 중에 있는 원자의 원자핵들을 핵융합 시켜서 금 원자핵으로 변환시키는 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나는 비명을 지르는 듯이 소리를 냈다. 그런데 확인을 마친 영란 선배가 내쪽을 돌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네. 가능해.”

 영란 선배가 대표에게 물었다.

 “다른 분야에는 어떻게 응용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일단 시제품은 대중들이 익숙한 것을 만들어야 지원을 계속 해주신다고 해서, Au 만드는 것 말고 Ag 만드는 기능도 있습니다.”

 영란 선배는 목을 좌우로 한 번 돌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뭔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는가 만은.

 “아니, 그냥 금 같은 거 조금 재미로 만들어 내는 이런 활용 말고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대표는 영란 선배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시제품을 향해서 말했다.

 “은 나와라, 뚝딱.”

 그러자 다시 폭풍이 몰아치고, 김이 피어 오르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기둥과 손잡이를 붙들고 매달려야 했다.

 다음날, 우리는 심사 이사회에 감사 의견서를 써서 올렸다. 의견서를 쓰는 동안에도 영란 선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람들 괴상하기는 한데 진짜 엄청나. 이 사람들이 산소랑 질소를 합쳐서 금을 만들어 내는 게 사실 핵융합이거든. 얘네들은 핵융합을 그냥 요만한 방망이 같은 기계로 그냥 마음대로 해내는 기술이 있다고.”

 “사기 아닐까요?”

 “어제 우리가 많이 살펴 보면서 점검도 많이 했잖아. 사기는 아닌 거 같아.”

 “그러면 이제 금을 엄청 많이 만들어서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습니까?”

 “금이나 은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얘네들은 핵융합을 옥탑방에서 220V 가정용 전원에 꽂아서 하고 있다니까. 저 방식으로 핵융합을 하면 전기도 그냥 무진장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전 세계, 전 인류에게 공짜 전기를 막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핵융합이요? 그거 수소폭탄 원리 아니에요?”

 “그렇네. 저런 에너지를 이용하면 무기도 만들 수 있겠네. 어지간한 수소폭탄 보다 훨씬 더 세고 크고 작고 그리고 무지무지 엄청엄청 싸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쟤네 들 지금 스타트업 지원 센터 ‘힘내라 청춘 희망 지원금’ 1차분으로 저 걸 만들어낸 거잖아. 핵무기 하나 만드는 돈의 만 분의 일도 안 들었을 텐데.”

 그렇지만 우리는 서류에 그 마지막 내용은 일단 빼놓기로 했다. 우리 스타트업 지원 센터는 무기를 개발하는 곳은 아닌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일전에 군사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호신용 스프레이를 개발하는 회사 한 곳이 퇴출 되기도 했으니까.

 “모르기는 해도, 보통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것하고는 아주 완전 다른 무슨 이상한 이론을 이용하는 장치일 거야.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핵융합을 잘 조절해서 간단하게 마음대로 일으킬 수가 있겠어. 무슨 광속을 초월해서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는 원리라든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원리 같은 걸 이용하는 게 아닐까? 이거 엄청난 기술이야. 어디서 이런 기술이 나온 거지?”

 영란 선배의 들뜬 목소리를 듣자 나도 흥분해서 감사 의견서에 더욱더 좋은 말을 때려 넣어 썼다. 아주 독창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이며, 기술의 파급효과도 아주 크고, 경제성도 매우 높게 예상 된다는 말도 썼다. 만들어진 시제품의 경우, 대중들이 쉽게 기능과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라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 후, 우리는 심사 이사회에서 내어 놓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시제품이 국내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나, 해외 사용자들은 문화적인 차이로 그 사용법과 의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해외 사용자 입장에서는 인터페이스의 직관성 및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사용자 경험의 감동 자체가 훨씬 떨어질 것으로 판단 됨. 따라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고 제출한 해당 기업의 신청서와 합치되지 않음. 이에, 해당 기업의 퇴출을 결정함.”

 결과를 보자 마자, 나와 영란 선배는 허겁지겁 옥상으로 뛰어 올라 갔다.

 올라 가 보니, 이미 방을 비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방을 청소한 뒤에 던져 놓은 것인지 빗자루 세 개만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 2017년, 테헤란로 에서

댓글 7
  • No Profile
    pena 17.05.01 08:42 댓글

    도깨비의 이과적 환생이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7.05.01 16:22 댓글

    오래간만에 반갑습니다! 처음에는 제목도 안 정하고 도깨비 이야기로 갈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늦은 밤, 신비로운 알 수 없는 신생 회사라는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다가 점차 이렇게 모양을 잡아 나가다 보니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 No Profile
    NTV 17.07.26 01:41 댓글 수정 삭제
    그러니까, 이 작품부터 쭉 위로 올 여름 납량특선인거죠?
    환상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미 호러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 NTV님께
    No Profile
    곽재식 17.07.27 05:55 댓글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공화국"을 납량특집이라고야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는 그냥 즐거운 이야기였고요. 일부러 그렇게 기획한 것은 아닌데, "은방장군"과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는 연달아 납량특집이 되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약간 분위기를 바꿔서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한 SF물로 한번 가 보려고 합니다.

  • No Profile
    청야 18.03.16 19:12 댓글

    아니 처음에 퇴출됐다는거 보고는 이것도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처럼 웃프고 뒷목잡는 얘기인건가 했는데, 마지막까지 읽어보고 다시 제목을 생각하고는 깨달았어요ㅎㅎ

  • 청야님께
    No Profile
    곽재식 18.03.18 22:04 댓글

    슬픈 느낌과 뒷목 잡는 느낌을 느끼셔도 충분합니다. 결말도 결말이지만, 대동법 이야기만 해도 무게 있는 느낌 아닌지요?

  • 곽재식님께
    No Profile
    청야 18.03.19 12:38 댓글

    그렇네요..하도 이쪽 바닥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한건 기본으로 깔고 넘어가게 되어버렸네요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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