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곽재식 미노타우로스의 비전

2018.04.30 23:5904.30

(* 이 이야기는 2012년 거울에 연재 되었다가 출간으로 삭제 되었던 글을, 출판사와의 계약 종료에 의해 다시 재공개하는 것입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비전

곽재식

1.

미영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말하는 목소리에는 한숨을 쉬고 난 다음에 생기기 마련인 굳은 결심이 있었다.

“이거 우리 하자. 보수도 나쁘지는 않네. 두 달 된 개 다섯 마리를 51페그B 행성으로 옮겨 주고 이 정도면 할 만하지 뭐.”

“예? 개를 우주선으로 왜 옮겨요?”

양식이 미영에게 물었다. 미영은 이미 마음으로는 착수했는지, 옮길 개들의 사진을 화면으로 보고 있었다.

“51페그B 행성은 이제 막 개척되고 있는 곳이라서 아직 유전자 조합기가 없대요. 그래서 동물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살아 있는 상태로 실어다 주기라도 해야 되는 거죠.”

“아니 그럴 바에 유전자 조합기랑 아미노산 프린터를 갖다주죠. 거기에 유전 정보만 골라잡아서 다운로드해 주면 아무 동물이나 태어나게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직접 동물을 갖다줘요?”

“유전자 조합기나 아미노산 프린터는 우리가 설치할 줄을 모르잖아요.”

“거기에 설치할 줄 아는 사람이 있겠죠. 행성 개척대가 있는데 그 정도 기술자 한 사람 없겠어요? 나도 한 두어 달만 파고들면 유전자 조합기 설치는 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그런 기술자가 없대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다. 하다못해 하다못해 이제는 무슨 개 파는 일까지 합니까. 무슨 우리가 우주의 개장수입니까?”

미영은 더 이상 의논하지 않으려 했다. 미영은 개 사진들을 훑어보기만 했다. 미영이 중얼거렸다.

“옛날에 20세기 중반 1960~70년대쯤에 나온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산 서부 영화들 중에, 그런 비슷한 역할 있잖아. 만주의 개장수. 김 이사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딱 그 배역이 떠올랐다고. 만주의 개장수.”

“그런 영화 중에 막상 진짜로 만주의 개장수가 나오는 영화는 없거든요.”

미영은 양식을 계속 쳐다 보지 않고 사진에 집중했다. 양식은 미영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손짓을 하고 ‘사장님’ 하고 부르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했다. 그 발 구르는 것이 일종의 춤처럼 변해 갈 즈음이 되어서야 미영이 흘깃 양식을 보았다. 양식이 미영에게 말했다.

“사장님. 진짜 개장수는 정말 아니잖아요. 우리가 가진 전문적인 특성에 맞고, 우리 사업이 처음에 목표로 했던 거에 맞는 일을 해야지…….”

“자꾸, 김 이사는 전문성이니 목표니 하는데, 김 이사가 한번 일거리 찾아 나서 봐. 그렇게 딱 맞게 찾아지는 게 있나. 우리가 딱히 가진 게 뭐 있어요? 그나마 이 우주선 하나 잘 움직이는데, 누가 개가 아니라 개밥을 팔아 달래도 지금은 돈 되면 가야지. 개장수 계약은 뭐 따내기 쉬운 줄 알아요?”

아닌 게 아니라 양식이 직접 나서도 개 배달 일보다 더 좋은 일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양식이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미영은 몇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정보로 몇 군데 연락을 해 본 결과 마침내 51페그B 행성 쪽에 있는 보수가 꽤 괜찮은 새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 얻은 일거리는 개 운반은 아니었다.

양식은 그 개 운반이 아니라는 새 일거리를 하기로 타협했다. 그리고 양식이 말했다.

“이번 건은 사장님이 따낸 게 아니라, 제가 거의 다 찾아낸 거나 다름없는 일 아니에요?”

“거의 다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름’이 없는 건 아니지. 왜냐면 김 이사는 일을 못 따냈고, 나는 따냈으니까. 그게 다름이잖아.”

미영은 웃음을 지었고, 양식은 51페그B 행성으로 가는 내내 별 구체적인 이유도 정해 놓지 않은 채 답답해 하고 있었다.

2.

어차피 갈 거 빈 우주선으로 갈 바에야 한 푼이라도 버는 게 낫다는 미영의 강변으로 미영과 양식은 결국 다섯 마리의 개도 같이 싣고 개척 중인 51페그B 행성에 도착했다. 미영은 감상에 빠져 있는 양식을 보고 이제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새로운 행성,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의 역사를 보라고 했다. 양식은 “우리가 이 역사의 첫 번째 개장수로 기록되겠죠.”라고 대답했다.

양식이 맡은 일은 한 백만장자가 행성을 개발하는 데 쓰는 로봇들에게 새로운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양식은 최근에 유전자 열쇠에 관한 것들을 많이 익힐 기회가 있었고, 마침 보안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는 것들도 많았기에 플레아데스 성단 쪽에서 새로 유행하고 있는 보안 프로그램을 들여와서 설치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나선 것이다.

양식과 미영은 이 행성의 모든 개발 산업을 소유한 백만장자를 만날 것을 기다리면서 고루하고 답답한 늙은이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을 고용한 백만장자는 유쾌한 젊은이였다. 양식은 별로 어렵지 않게 백만장자가 사용하는 컴퓨터들에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런데, 미영과 양식은 이 행성에 머물며 일하면서 이상하게도 이 행성 사람들이 지나치게 무모하고 겁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만장자에게 묻자, 백만장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어떻게 행운을 얻겠습니까?” 하고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일이 끝나자 양식은 미영에게 ‘사업은 저렇게 하는 것’이라며 자랑했다. 미영이 별로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양식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변하여 “하나의 사업이 또 다른 사업을 낳아 스스로 불어나는 마법을 진짜 사업가답게 보여 드리지요.”라더니, 백만장자를 다시 찾아가 그를 설득했다. 양식은 이 행성뿐만 아니라, 백만장자의 고향 집이나 별장에도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권했다. 백만장자는 그 말이 어느 정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믿음직한 부하 직원이자 친구인 로봇 조종사를 불러서 고향 집과 별장에도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일을 진행해 보라고 했다.

미영과 양식은 조종사와 함께 가는 길에, 백만장자 주변의 사람들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위험한 도전을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백만장자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무모한 사업을 벌였다가 파산한 사람도 많았고, 위험한 탐험에 나섰다가 죽은 사람도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아주 적은 몇몇은 그에 걸맞은 벼락부자로 성공하기도 했다. 백만장자 본인도 그런 사람이었다.

미영은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겁이 없이 인생을 입맛 당기는 대로 사는지, 놀라워했다. 양식은 이 사람들이 멋있게 사는 것 같다고 사뭇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백만장자는 그러면, 그 비법을 알려 주겠다면서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백만장자와 조종사와 미영과 양식은 우선 백만장자의 별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구의 대한민국 철원에 있는 한 산속 비밀 별장이었다.

3.

지구의 철원에 있는 백만장자의 비밀 별장에 도착해 보니, 별장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과 별장에 오늘 새로 배달된 미술품을 위해 미술품을 감정하는 미술학자가 먼저 와 있었다.

관리인이라는 사람은 40대 후반이었지만 꼭 20대처럼 생긴 남자로, 스스로도 부유한 취향과 그에 맞는 격식, 학식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백만장자가 워낙 부자이다 보니 백만장자에게 거액을 받고 고용되어 백만장자의 비밀 별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편 미술학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로 언제나 조금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밤새도록 포도주를 마시는 날 보면 결코 혼자서만 취하지는 않을 사람이었다.

지구의 대기권으로 돌입할 때, 백만장자를 돕던 젊은 비서가 별장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미영과 양식을 안내해 주었고, 미영과 양식은 이 젊은 비서가 무척 잘 웃고, 또 굉장히 잘 놀라고, 그런 만큼 웃음소리와 비명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구에 도착한 후 백만장자는 조종사, 비서, 관리인, 미술학자, 그리고 양식과 미영과 함께 비밀 별장에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음식을 내어 오고, 한 잔씩 모두 술을 마시게 되자, 백만장자는 오늘 별장에 들여온 미술품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이 물건의 특징은 이게 진품 중에서도 진품이라는 겁니다.”

백만장자가 보여 준 미술품이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었다. 한국의 국가 지정 문화재인 유물이었다. 모양이 똑같았지만, 신라 말의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새것처럼 깨끗해 보였다.

“신라 시대 때 유물이 이렇게 깨끗할 리는 없잖아요.”

양식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술학자만은 더욱더 놀라고 수수께끼에 당황하는 표정이 되었다. 미술학자의 당황하는 얼굴에 즐거워하면서 백만장자가 말했다.

“여기 역사는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테니까, 제가 아는 대로 설명 드리면 이렇습니다. 이 미술품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 부처라는 것을 빚어 놓은 것입니다. 미륵 부처는 말하자면 일종의 구원자 같은 것인데, 불교 전설에는 56억 7천만 년 후에 세상에 나타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모두 다 깨달음을 얻게 해서 모든 고민과 걱정, 삶의 고통들에서 다 벗어나게 해 준다는 겁니다.”

조종사는 백만장자가 다음에 할 이야기를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아무에게나 이런 비밀을 말하면 되겠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만장자는 그저 즐겁게 웃으면서 말했다.

“20세기 사극 영화 중에 보면, 원래는 고귀한 신분이었는데 갑자기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다가 꾸역꾸역 복수심을 안고 성장해서 세상을 뒤흔드는 영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셀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게 너무 유행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제작자들이, 멀쩡하게 귀족으로 호화롭게 자라났다는 기록이 있는 사람이라도 노예가 되었다가 돌아온 것으로 굳이 바꿔서 꾸민 영화나 TV 연속극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딱 그렇게 인생을 산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지구의 이 지역에서 살았던 궁예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이 미술품이 있던 시기에서 별로 멀지 않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인데, 전설에 따르면 원래 신라의 왕족이었는데 음모 때문에 도망쳐 숨어 살면서 노비가 되어 살았다가 점차 힘을 키워서 결국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궁예라는 사람에게는 혁명에 걸맞은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영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신라 사람들을 불교를 많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럽고 부패와 범죄 때문에 살기 힘들면 간절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렇게 괴롭지만 언젠가는 미륵 부처가 나타나서 모두를 다 구해 줘서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곤 했습니다.

그런데, 궁예는 이걸 뒤엎었습니다. 궁예는 막연히 가만히 있으면서 열심히 빌기만 하면 언젠가 미륵 부처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직접 사람들이 죄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악인을 징벌하고 제도를 고치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해서 현실적으로 좋은 나라의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미륵 부처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미륵 부처라는 겁니다.”

백만장자의 이야기가 그쯤이 되자 미영이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궁예는 결국 자기가 미륵 부처라고 생각해서 자기에게 반항하는 사람들 막 죽이다가 자기도 비참하게 죽었잖아요.”

미영이 백만장자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양식은 미영이 자기가 중심이 되어 해낸 사업이 아니꼬와서 초를 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양식은 미영을 말리고 백만장자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백만장자는 그냥 웃어 넘겼다.

“뭐 저도, 궁예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비서가 백만장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여간 그래서 이게 어떻게 해서 진품이라는 걸까요. 이 새것 같은 불상이 어떻게 신라 시대에 만든 거라는 건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습니다.”

백만장자는 다시 말했다.

“이건 시간 여행을 하는 기술을 이용해서 가져온 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이 모든 것이 점점 못마땅하다는 미영을 필두로 하여, 모두 다 믿을 수 없는 소리라고 피식거리는 웃음으로 겸손하고 예의 바른 야유의 뜻을 보냈다.

하지만 백만장자는 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여 주겠다면서, 몇 마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의 풍경이 신라 말의 어느 성으로 변하더니, 궁예가 이끄는 군사들이 몰려들어 전쟁을 벌였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비서는 다시 비명을 질렀고, 이번에는 미영과 양식도 그 비명을 따라했다.

겁을 먹은 양식은 시간 여행으로 우리를 신라 때로 끌고 온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그게 아니라 이것은 우리 모두의 정신을 조작해서 이런 환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대신 설명해 주었다.

곧 그 환상은 걷히고, 사람들은 다시 철원에 있는 비밀 별장에 와 있었다. 신라 시대의 군사들이 몰려든 소란 때문에 모두가 정신이 없었지만, 차차 정신을 차려 갔다. 그 사이에 저녁은 깊어져 있었고, 소나기가 내리는지 쏟아지는 빗소리가 났다.

그때 보니, 백만장자가 칼에 찔려 죽어 쓰러져 있었다.

4.

비 내리는 밤, 비밀 별장에서 조종사, 비서, 관리인, 미술학자, 미영, 양식이 있는 가운데, 집주인인 백만장자가 죽어 쓰러져 있었다. 양식이 설치한 보안 프로그램 때문에 비밀 별장은 경찰이 올 때까지 봉쇄되어 버렸다. 3시간 30분 정도 모든 사람들은 같이 이 집 안에 있어야만 했다. 서로서로가 자기들 중에 백만장자를 죽인 살인범이 있다고 의심하며 두려워했다.

미영은 그때까지도 양식에게 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영은 살인범을 밝혀 내는 일을 자신이 해내서 양식을 눌러 주려고 했다. 미영은 백만장자의 행적에 대해 조사했고, 백만장자가 조금 전에 보여 준 불상 이외에도 시간 여행으로 가져온 것과 같은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영은 이렇게 조사를 해 나가다가 범인을 짐작해서 극적인 동작으로 범인을 지목했다. 미영이 지목한 범인은 바로 미술학자였다.

미영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미술학자는 미술학자가 아니라 미술학자로 가장한 미술품 도둑이나 그 비슷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미술학자는 아주 보존 상태가 좋고 희귀한 미술품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훔치기 위해 미술학자인 척하고 온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미영의 짐작이 맞았다.

하지만 미술학자는 그 미술품들이 시간 여행 기술을 이용해서 가져온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골동품 거래에는 별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질이 너무 좋고 깨끗해도 문제예요. 이렇게 새것 같은 유물을 어떤 장물아비가 사려고 하겠어요.”

그러니 미술학자는 아무 물건도 훔치지 않을 생각이었고 당연히 백만장자를 죽일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죽이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미영은 실망했다. 하지만 미술학자는 적어도 시간 여행 기술은 확실히 진짜인 것 같고, 죽은 백만장자는 과거에서 가져온 물건뿐만 아니라, 미래에서 가져온 물건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미영은 범인을 잘못 지목한 부끄러움을 애써서 감추고 다시 조사를 계속했다. 미영은 관리인이 최근 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관리인이 백만장자를 몰래 몇 번 만났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

미영은 다시 한 번 극적으로 범인을 밝혀냈다고 외치면서, 범인은 바로 관리인이라고 지목했다. 관리인은 백만장자가 아내를 죽게 한 원수라고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인은 그 말이 틀렸다고 했다. 아내가 죽은 것도 맞고, 백만장자를 따로 만난 일이 있는 것까지는 맞다고 했다. 둘이 관련이 있다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백만장자를 만난 것은 백만장자가 사람의 정신을 조작하고 새로운 가르침을 뇌에 집어넣는 뇌 조작 광선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기술을 이용해서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을 뇌에서 제거 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백만장자의 기술은 정말로 성공했기 때문에 관리인은 아내에 대한 슬픔을 바람직하게 극복했고, 덕택에 오히려 백만장자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을 뿐, 살인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미영은 또다시 실패하자 더욱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범인 찾기에 매달렸다. 미영은 조사 끝에 비서에게 백만장자가 맡겨 둔 중요한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영은 그 문서가 바로 백만장자가 갖고 있는 시간 여행과 뇌 조작 기술을 기록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영은 비서가 그 기술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백만장자를 살해한 것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절정 장면이라도 되는 것 같은 동작으로 비서를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그렇지만 비서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에 대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비서는 그 문서를 보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들었는데, 비서는 자기는 자기 인생이 바뀌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그 문서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영은 그 말이 사실인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그 문서를 다 같이 살펴보기로 했다.

그 문서는 시간 여행 기술과 뇌 조작 기술에 관한 것은 맞았다. 일단 미영은 기뻐했다. 하지만 역시 비서가 범인인 것은 아니었다.

5.

백만장자의 숨겨 둔 문서에서 그가 전하려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인간의 기술은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이미 안드로메다 은하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기초적인 시간 여행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마당이니, 100년 안에 시간 여행 기술은 어느 정도 쓸모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백만장자의 문서에는 앞으로 4만 년 후에는 시간 여행 기술이 완성되고, 150만년 후 정도가 되면 누구든 자유롭게 시간 여행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한편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개선하는 기술도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뇌를 조작하는 기술 자체보다도 어떤 것이 과연 정말로 도덕적인 조작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의논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실제로 쓰는 데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백만장자의 문서에는 5만 년 이내에 일반적인 기술은 모조리 완성이 되고, 앞으로 2억 년이 더 지나기 전에 역시 누구든 자유롭게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2억 8천만 년 후 쯤이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어떤 고민도 고통도 없이,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면서 가장 보람차고 가장 영예로운 삶을 부족함도 없이 끝도 없이 가장 훌륭한 상태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기술을 완성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백만장자의 문서에서 핵심은 그 다음 대목이었다. 이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선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런 좋은 시대가 오기 전에 고통스럽고 괴롭게 한 세상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 없어진 우리 같은 과거 시대의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 같이 여기까지 보았을 때 비서가 물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사람들이 기술은 발전해도 성격은 더 악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저희 할머니께서는 옛날 사람들은 순진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영악하고 나쁘고 인심 나빠졌다고 맨날 그러셨는데.”

관리인이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넓은 시간을 놓고 보면 인권, 자유, 평등, 평화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발전해 나간다는 게 사장님 생각이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강한 힘을 갖게 되는데, 그보다 더 빨리 착해지지 않으면 결국 사고를 크게 치게 되어 사람들이 멸망할 것이니까, 안 그렇게 되려면 기술이 발전해서 다룰 수 있는 힘이 세지는 속도보다 착해지는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이 뒤쪽 자료를 보면 이걸 나름대로 이론으로 증명하고, 이렇게 해서 인간들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 예를 들어서 누가 조금 욱하는 마음만 품어도 세계를 다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사람들이 모두 자유롭게 다루는 시대가 오면,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들 극히 빠른 속도로 착해지게 되는 수밖에 없다고 보신 겁니다.”

백만장자의 문서에 따르면, 그런 식으로 세상이 흘러가다 보면, 분명히 과거로 시간 여행까지 해서 역사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날 거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극히 선하고, 진정으로 삶의 모든 고통을 초월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시대 이전의 과거. 우리처럼 그저 한 세상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 없어진 사람들을 아주 불쌍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시간 여행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도 극히 행복하고 고민 없는 삶을 주려고 할 거라는 게 문서의 결론이었다.

미영은 소리 내어 문서를 읽었다.

“언젠가 이 모든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너무나 쉬워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이 극히 풍요로워지게 되면, 그 사람은 불쌍한 과거의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과거 사람들의 정신을 자기 시대의 낙원으로 데려가게 될 것이다. 먼 시간이 흐르면 그런 엄청난 일도 간단히 할 수 있는 뛰어난 힘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16세기의 위대한 학자에게 전기는 하늘의 꾸짖음과 같은 어마어마한 천둥 번개였지만, 20세기에는 꼬마 어린이들도 전화를 걸어 대양을 건너 통화할 줄을 알게 되듯이, 우리는 상상하는 것을 꿈도 못 꿀 대단한 기술이 몇 천만 년, 몇 억 년 후에는 생길 것이다.”

문서의 그 다음 대목은 과연 과거로 시간 여행을 와서 사람들을 구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이었다. 백만장자는 그게 바로 56억 7천만 년 후라고 보았다. 심지어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백만장자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상세한 사연을 들었다고 했다. 그 증거로 시간 여행 기술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들과 정신 조작 기술을 배웠다고 기록해 두었다. 지금으로부터 56억 7천만 년 후가 되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데 성공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 사람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와서 역사가 지나는 동안 지금껏 있었던 태어나서 살고 죽었던 그 모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다 찾아다니면서 그 모두의 정신을 다 낙원과 같은 미래 세상으로 옮겨 거기서 영원히 지내게 해 준다는 것이다.

백만장자의 문서에는 그 미래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미래 세상으로 사람을 옮겨 가는 지도 설명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과거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시대에서 보람차게 살도록 하기 위해, 각자 인생을 사는 동안에는 미래 사람이 끼어들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했다. 하지만 죽어서 사라질 순간이 되면, 바로 그때 이 미래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은 그 정신을 미래로 데려간다고 했다.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위대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건 모든 사람을 다 구해 준다고 했다.

이 다음 대목은 양식이 소리를 내어 읽었다.

“그렇게 지구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최대한 행복한 삶을 줄 수 있을만큼 그만큼 그 사람은 넉넉한 기술과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57억 년이 뒤쳐진 우리로서는 감히 어렴풋 짐작도 하기도 어려울 만큼 그 사람의 기술과 힘은 넉넉할 것이다.”

가끔씩은 인생이 끝나기 전에 시간 여행을 온 미래 사람을 가끔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미래 사람의 발달된 사상, 철학, 정신을 배우게 되어, 드디어 세상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십 억년 후의 미래 사람은 그 동안 발전된 지식의 결과로 그 모든 삶의 고민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고, 그것을 아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기술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은 그 미래 사람의 설명을 들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문서의 마지막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사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에 이르면, 미래의 그 사람이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가 모든 것을 깨닫고 지극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벌이다가 망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꿈을 좇아 새로운 일을 하다가 지금의 일상생활이 망가질까 봐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어떤 도전도 어떤 시도도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미영이 고개를 혼자 끄덕끄덕 하더니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하게 일한 거네요.”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제야 백만장자와 그 동료들이 성공한 비결을 알 수 있었다. 백만장자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퍼뜨렸기 때문에, 백만장자와 함께 51페그B 행성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도전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되거나 일찍 죽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그 사람들은 미래의 그 극히 선한 사람이 시간 여행을 와서 구해 줄 것을 믿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개소리가 어딨나.”

백만장자의 문서를 다 보았을 때, 조종사가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야 말로 그 어떤 절정보다 화려한 절정에 걸맞게 미영이 말했다. 조종사가 범인이라고.

6.

애초에 미영은 구식으로 조사를 해서 범인을 밝혀낼 생각이 없었다.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을 양식이 설치해 두었으니까, 그 보안 프로그램 기록을 분석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추적하려고 했다. 미영은 그 분석을 실행하는 동안 범인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끈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분석 결과를 봐도 공격 행동이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유전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제가 프로그램 설치는 잘 했어요. 진짜로요.”

양식은 미영과 몰래 대화하면서 이해가 안 된다면서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미영은 조금 더 생각을 하더니 다른 방법이 있다면서,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서 미영은 증거를 찾아냈고, 이번에는 그 확실한 증거를 갖고 조종사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1985년에 나온 《페노미나》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 보다 보면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하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양식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미영은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영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식사하다 묻은 흔적으로 유전자를 분석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 중에 조종사는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유전자 열쇠 보안 프로그램에 정상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영이 추궁하고, 경찰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오자 조종사는 자기가 왜 백만장자를 살해했는지 털어놓았다.

“저놈이 앞도 뒤도 안 보고 겁내는 것 모르고 달려드는 미친 무리들을 몰고 와서 사업에 뛰어드는 통에 우리 가족이 망했단 말입니다. 51페그B 개발 사업은 저희 가족이 원래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망할 것도, 죽는 것도 안 무서워하는 그놈들이 와서 우리를 경쟁에서 이겨 버렸습니다. 저놈 때문에 우리가 망한 겁니다. 저는 도대체 저놈이 무슨 재주로 그랬는지 궁금해서, 저놈의 조종사로 들어가서 놈을 가까이에서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저놈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고 있더란 말입니다.”

조종사는 백만장자가 정신 조작 기술이나 시간 여행 기술을 알아낸 것까지는 사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먼 미래의 누가 우리를 구해 줄 것이라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모조리 헛소리라고 했다. 조종사는 소리 질렀다.

“무슨 말로는 할 수 없는 심오한 깨달음, 그런 게 어딨습니까? 사람 뇌 안에 전두엽 42번 신경군에 음이온이 많아지면 그 사람은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측두엽 6번 신경군에 음이온이 많아지면 그 사람은 자기가 뭔가 엄청난 것을 알아냈다는 깨달음의 기쁨을 자극받게 됩니다. 그게 끝입니다. 깊은 수행과 공부를 해서 말로 알 수 없는 엄청난 우주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연마한답시고 미친 짓 하다가 뇌를 다쳐서 전두엽 42번, 측두엽 6번 신경이 망가져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냥 괜히 자기가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느낌만 느끼는 겁니다. 그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냥 돈 겁니다.”

그러면서 조종사는 자기가 증명해 보이겠다면서 비서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고 한참 비서를 쳐다보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더니 갑자기 비서의 입속으로 초소형 로봇을 집어넣었다.

그 로봇은 비서의 몸속으로 들어가서는 비서의 뇌로 들어가서, 조종사가 조종하는 대로 뇌의 신경을 자극한다고 했다. 조종사가 낄낄거리며 전두엽 42번과 측두엽 6번을 입력하자, 조종사의 미치광이 같은 소리에 겁을 먹고 떨고 있던 비서는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띄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중에 붕 떠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표정이 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양식은 도대체 왜 조종사의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가 아닌지 물었다. 그러자, 조종사는 즐겁게 웃어 대더니 대답했다.

“그게 멋진 겁니다. 나는 그놈이 하는 황당한 소리, 미래의 누가 시간 여행을 해서 모든 사람을 구해 준다는 소리를 비웃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어봤습니다. 사람이라면 아이건 어른이건 멍청한 사람이건 다친 사람이건 다 구해 주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다 구해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 미래에서 오는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려고 한 겁니다.

저는 유전자 조합기로 소와 사람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소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괴물들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래서 그냥 소인데 미세한 세포 몇 가지만 사람과 같은 소도 만들어 보고, 소와 똑같지만 눈동자만 사람 눈인 소도 만들어 보고, 조금 더 사람과 비슷한 소, 그보다 조금 더 사람과 비슷한 소, 사람과 소의 중간인 동물, 사람에 가깝지만 뇌는 소의 뇌를 가진 동물, 온갖 종류를 다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 자신도 내장과 근육, 뇌의 일부분까지 여러 곳을 소처럼 생기게 한 소와 사람의 중간 상태로 변형시켰습니다. 이 애매한 여러 가지 섞인 동물들 중에 어디까지를 사람으로 보고 그 미래의 대단한 사람이 구해 준다는 겁니까? 아마 헷갈려서 고생 좀 할 겁니다.”

미술학자가 말했다.

“징그럽네.”

“그런데 정말 애매하긴 하네요.”

비서가 말했다. 비서는 관리인의 응급처치로 겨우 로봇을 토해 내고 깨어났다. 그러자 조종사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애매하긴요! 애매할 것 없습니다. 애초에 미래에서 와서 사람을 구해 주는 그런 것은 없다니까요. 다 그놈의 개소리란 말입니다.”

마침내 경찰이 도착해서 조종사가 붙잡혀 갈 때, 미영이 조종사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죽일 것까지는 없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틀렸다는 것을 증명만 해도 되었던 것 아닙니까.”

조종사가 마지막으로 대답한 말은 이러했다.

“그놈에게, 그놈한테 직접 그런 게 없다는 걸 알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놈이 죽을 때, 죽으면서 그렇게 죽어 봤자 아무도 시간을 거슬러서 찾아오는 놈도 없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미래의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놈이 직접 알고 그놈이 진저리 나게 무서워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7.

스산한 비밀 별장에서 다들 흩어져 헤어져 나올 때, 이미 비는 그쳐 있었다. 무겁게 낀 구름들만 급히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모양이, 하늘에 생긴 커다란 산맥이 막대한 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선에서 미영이 양식에게 말했다.

“옛날이야기나 전설 같은 거 보면 먼 옛날에 처음 세상에 있던 것이 굉장히 대단하고 엄청나고 그래서 그 맨 처음에 있는 자를 숭배하고 기도해야 된다 이런 게 많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면, 처음 있었던 게 대단한 게 아니고, 먼 미래에 아주 나중에 나타나는 사람을 굉장히 대단한 걸로 엄청난 걸로 받들어 모셔야 될 거 같네요.”

양식이 대답했다.

“그래서 원래 젊은 사람들이 무섭고, 후배들이 더 똑똑하고 많이 배우게 되는 걸 존경할 줄 알아야 된다고 하잖아요.”

미영이 양식을 쳐다보자, 양식은 짐짓 고개를 돌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면서 덧붙였다.

“뭐, 그래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좀 더 대단하게 여기고 잘 대해 줘야 된다는 거고.”

— 2012년 8월 씀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곽재식 고양이 그림 그리기 유토피아4 2018.12.01 889
곽재식 로봇 살 돈 모으기6 2018.11.01 2251
곽재식 이상한 가면 여우 이야기3 2018.10.01 1109
곽재식 비행접시의 지니5 2018.09.01 1084
곽재식 2백세 시대 대응을 위한 8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 컷 앤 세이브 시스템 개발 제안서4 2018.08.01 2686
곽재식 이상한 용손 이야기12 2018.07.01 6940
곽재식 단군굴 2018.06.15 1778
곽재식 지상 최대의 내기 2018.05.31 3616
곽재식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미남들의 행성2 2018.04.30 1161
곽재식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 2018.04.30 713
곽재식 미노타우로스의 비전 2018.04.30 574
곽재식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3 2018.04.30 1306
곽재식 로보타 코메디아 (본문삭제)2 2018.04.01 5382
곽재식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9 2018.02.28 47030
곽재식 초전도 행성4 2018.02.01 2007
곽재식 멧돼지의 어깨 두드리기4 2018.01.01 1308
곽재식 기억 밖으로 도주하기 2017.12.01 998
곽재식 종속선언서2 2017.10.31 3446
곽재식 종말 안내문11 2017.09.27 1447
곽재식 텔레파시 삼단계 2017.08.29 713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