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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의 어깨 두드리기

 

내가 순순산업의 기술 영업 일을 한다는 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때 그 일을 두고 “정말로 그럴 수도 있냐?”고 묻곤 했다. 짧게 대답할 때도 있었고 길게 설명할 때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나 스스로도 뭐가 맞는 이야기인가 싶어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요란하게 화제가 되었던 그 이야기를, 내 관점에서 내가 아는 한 정확하게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순순산업에서 가장 잘 팔린 제품은 순순가스였다. SN엔지니어링 어쩌고하는 아무 의미도 없는 회사 이름을 순순산업으로 바꾼 이유부터가 바로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잘 팔린 제품이 순순가스였기 때문이다. 순순가스는 그냥 가장 잘 팔린 제품 정도가 아니었다. 순순가스는 위대한 제품이었다. 순순가스는 우리 회사를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화시킬 정도로 잘 팔린 제품이었고, 이 회사에서 적당히 자리나 차지하고 있던 얼간이 같은 양반들을 일약 거룩한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걸작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순순가스는 우리 나라의 경제를 바꾸었고, 세계의 문화를 바꾼 제품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은 없다.

그렇지만 순순가스가 개발되어 나온 초창기에는 이런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술개발팀의 과장이었던 그녀 정도가 예외였다.

“이게 정말 부작용이 없어요. 이런 제품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나에게 이 제품은 잘만 팔면 정말 끝내 줄거라고 설명했다.

“이 가스를 마시게 하면, 동물이 갑자기 순해져. 그것도 한 번 순해지면 영영 순해진다니까. 그거 말고는 동물이 무슨 기능이 크게 떨어지거나 어쩌거나 하는 것도 없어요. 건강해. 그냥 순해지기만 한다니까.”

“그래서, 이걸 어디에다 팔아야 할까요? 고양이가 너무 사나워서 걱정인 애묘인들한테 팔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야. 애묘인들은 좀 아닐 거 같아.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좀 사나운 것도 나름대로 멋있는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럼 애견인이요? 맨날 물어 뜯기만 하는 개가 갑자기 순해져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게 만드는 가스라고 하면서 팔면 어때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별로 깊게 공감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그제껏 동물과 관련된 장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회사의 홍보팀은 광고라고는 아이돌 그룹 비슷한 젊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노래 가사를 바꾼 CM송을 부르며 화면 속에서 춤을 추게 한다는 것 밖에 알 지 못했다. 개 흉내를 내는 안무를 넣어 광고 영상을 하나 만들기는 했지만 내가 봐도 그래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개나 고양이를 위한 약은 그런 식으로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출도 쉽지 않았다. 유럽과 미국은 개나 고양이를 위한 약이라고 해도 허가를 받는 것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반대로 그 외의 노려 볼만한 시장이 큰 나라들 중에는 개나 고양이가 사납던 안 사납던 별로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또 약을 팔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조금씩 팔아 보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그것이 진정한 개사랑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고객들 사이를 휩쓸었다.

“개의 개성을 그대로 보듬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억지로 개를 아무것도 못 느끼는 로봇처럼 만드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는 발톱을 깎아 주는 일이나 중성화 수술처럼, 순순가스도 동물과 사람이 같이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선전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나운 개를 훈육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생계를 위해서 우리 제품을 나쁘게 말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하기야, 순순가스가 많이 팔리면 그 사람들은 모두 실업자가 될 판이니 어쩌겠는가.

그녀는 “순순가스는 정말 괜찮은 건데. 부작용이 없는데.”라고 한탄했고, 나는 서커스 하는 사람들이나 맹수 나오는 영화를 촬영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자나 호랑이를 순하게 만드는 용도로라도 한번 제품을 팔아 보려고 했다. 그 바닥에서는 그럭저럭 팔리기는 했는데, 제품 판매를 위해서 “이거 진짜 잘 먹힌다니까요”라고 말하면서 호랑이 입에 내 머리를 집어 넣는 시범을 보였어야 했기 때문에 별로 아름다운 추억은 못 되었다.

그리고 나서 한 동안 우리는 순순가스를 잊고 살았다.

내가 순순가스를 다시 떠올린 것은 친구 돌 잔치에 다녀온 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찌저찌 정치 단체를 따라 다니다가 일이 잘 풀려서 한몫 잡은 친구는 여느 부유한 가정이 그러는 것처럼 여러 자식을 자랑스럽게 거느리며 자랑하고 있었다.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나의 삶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

이런 식으로 50년, 60년 정도가 지나면 친구는 자신의 부유한 유산을 자식들에게 분배해 주고 세상을 떠날 것이고, 가난한 나는 아무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날 것이다. 우리 세대는 다들 이렇게 살고 있으니, 아마 60년 정도가 지나면 가난한 사람들의 자손은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고, 세상에 살아 남는 것은 오직 부유한 사람들 뿐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라고들 했다. 100년 전 같았으면 더럽고 위험하고 천한 일을 시키기 위해 노예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했겠지만, 이제는 발달한 로봇들이 사람이 하는 모든 더럽고 위험하고 천한 일을 해내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호랑이 입 속에 머리를 디밀고, “보세요. 정말 순하죠?”라고 말하며 약을 파는 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빈부의 격차를 두고, 더 이상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채찍질하면서 군림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사라져 멸종될 뿐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넘치는 부유함을 복지 제도를 통해서 조금씩 나눠주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손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때까지 그럭저럭 버텨내게 하기만 해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면 드디어 청동기시대 이래 처음으로 빈부의 격차가 진정으로 혁파되어, 부유한 사람들만이 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는 돌잔치에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부자만 사는 세상, 그런 세상을 저희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바꾸는 기술이 바로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입니다. 저희 아이도 바로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에서 태어난 아기에요.”

그 친구가 소속된 정치 단체는 “가난한 여러분을 위한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단체에서는 배아 발달 장치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배아 발달 장치란 사람이 직접 임신할 필요 없이, 정자와 난자만 체취해서 기계 안에 심어 놓으면, 그 기계가 사람 역할을 하여, 거기에서 수정란을 태아로, 태아를 아기로 자라나게 만든다는 장치였다. 말하자면 세포 수준의 조작이 가능하고 태반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인큐베이터와 비슷했다. 처음 배아 발달 장치가 나왔을 때 학자들이 “쥐 없이 쥐를 기계에서 태어나게 했다” “소 없이 소를 기계에서 태어나게 했다”라면서 떠벌렸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한 동안은 잠잠했다. 그때만 해도 순순가스와 비슷한 꼴이었다.

배아 발달 장치가 장사가 안 된 이유는 장치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서 실패 확률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실패 확률은 25% 정도였으니까, 학술적으로 봤을 때는 놀라운 성과였다. 그렇지만 네 명 중에 한 명이 출생 과정에서 위험해지는 장치라면 사람에게 쓰기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덕지덕지 연결된 전자 장치와 정교한 기계 장치라서 가격도 대단히 비쌌다. 그러다보니, 대단한 기술이라고 떠들었던 것에 비해서는 장사 거리가 못 되었고 널리 퍼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 친구가 이야기 했던 것은 그런 전자 장치로 된 배아 발달 장치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새로 나온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였다. 그리고 그 친구는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라고 말했다.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저렴했다. 특히 안전성은 감격적이었다. 얼마나 안전하냐면 사람이 실제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 보다도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는 더 안전했다.

“이 멧돼지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 가난한 사람들의 자손도 널리 퍼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친구는 그리고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의 겉모습을 보여 주었다. 완전히 다른 기술 답게 겉모습도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더 이상 전선과 플라스틱 관이 달린 기계의 형태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것은 친구의 설명 그대로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사람의 태아를 품은 채 기를 수 있도록 장기가 개조 되어 있는 멧돼지였다.

개조한 멧돼지의 몸 속에서 사람 태아가 자라나 태어나게 하는 기술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대량 생산도 가능했고, 집단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했다. 친구는 이제 앞으로는 가난한 사람들도 평등하게 생식세포를 체취한 뒤 국가에서 이런 멧돼지에게 주입하면 그 자식을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을 사회에서 책임지고 길러 주는 방식으로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떠들었다.

그 정치 단체의 그런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당장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 없이 이 멧돼지는 장사가 잘 되었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사람의 질병, 부상, 사고도 빠르게 줄어 들었다. 처음에는 아주아주 특이한 사람들만 선택하는 것이 개조 멧돼지를 이용한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라는 느낌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점차 더 자주 눈에 뜨이게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어색하고 거북해 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냥 괜히 증오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이 “자연적이지 않다” 말하면서 거부하는 운동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동물의 몸을 사람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까지 막 써먹을 수 있냐며, 멧돼지들의 얼굴 표정 사진을 들고 하는 시위도 있었다.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는 “너는 멧돼지가 낳은 아이라서 코가 돼지코 될 거라지”라고 아이를 놀린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렇지만 결국은 시간 문제였다. 인구 집단 별로, 문화권 별로, 나라 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점차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 기술은 대중화 되고 있었다. 하기야, 당장 단군부터 곰이 낳은 자식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멧돼지라면 뭐 어떤가. 먼 옛날의 임금님들은 흔히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데,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 기술도 적당히 문화에 통합될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문화 통합이 지나치게 심하게 일어났다는 데서 생겨 났다. 누군가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로 사용한 멧돼지는 법적으로 “가축”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내서, 출생 수술 후의 멧돼지를 도축한 뒤에 그 고기를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멧돼지는 신비의 영약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비싼 값에 대단히 잘 팔려 나갔다. 특히 이런 멧돼지의 기름과 고기가 노화 방지나 피부 미용 효과가 있다는 소문은 거의 종교처럼 강렬하게 퍼졌다.

멧돼지를 식용으로 이용하는데 대한 반대는 조금 더 거셌다. 특히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자기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초등학생 정도가 되자, 그런 어린이들 중 몇몇이 이런 멧돼지들의 식용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회사들은 자기네들은 절대로 육가공 업체와는 거래하지 않으며, 출산 후에는 바로 멧돼지를 안락사시킨 뒤 화장한다고 광고하는 것이 흥행한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그렇게 무의미하게 멧돼지를 도구로만 활용한 뒤에 의미 없이 안락사시키고 태워서 재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멧돼지의 생명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주장 하기도 했다. 차라리 사람의 음식이 되어 다른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식량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뜻 깊은 일이며, 오히려 그 멧돼지의 죽음에 대해 여러 사람이 더 감사하게 하는 기회로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회사 영업팀 사람들은 바로 그 때 순순가스를 떠올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조금만 잘 풀리면, 이런 상황이 순순가스를 어마어마하게 팔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대로 였다. 곧 출산한 멧돼지를 집에서 키우며 같이 살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사는 농촌과 교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그런 움직임은 먼저 생겼다. 멧돼지를 개나 고양이처럼 집에서 같이 기르고, 온 가족이 이 멧돼지를 가족의 한 사람처럼 여기면서 지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멧돼지는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서, 온순하게 사람 집에서 같이 살기가 매우 힘든 동물이었다. 멧돼지와 같이 살겠다며 한껏 고양된 표정으로 웃음지으며 말한 선량한 표정의 사람이 얼마 후 멧돼지에게 공격 당해서 부상 당했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언론이 가장 좋아한 이야기 거리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결정적인 문제에 대한 아름다운 해답이 있었다. 바로, 멧돼지의 뇌를 조작하여 단번에 온순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던 우리 회사의 순순가스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 회사 사람들은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도 적극적으로 홍보 했고, 멧돼지와 같이 사는 삶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 동안 우리 회사도 조금은 동물을 위한 약을 파는 방법에 친숙해진 상황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영업사원들이 순순가스를 들이 마신 멧돼지를 껴 안고 “가족보다 고마운 가족”이라고 친한 마음을 표시하는 사진을 무수히도 찍으면서 다녔다.

멧돼지를 키울 공간이 집안에서 나오지 않는 편인 도시에서는 은퇴한 멧돼지를 단체로 풀어 놓고 기르는 거대한 농장을 만들었다. 인구가 줄어 들어 통째로 빈 마을이 되어 버린 산골 몇 군데를 커다랗게 묶은 구역을 정해서, 빈집을 깔끔하게 고친 뒤 멧돼지들이 사는 단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순순가스를 마신 멧돼지들을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여 멧돼지들의 도시로 옮겼고, 그 후에 이 멧돼지들이 팬더보다, 나무늘보 보다, 더 평화로운 여생을 즐길 거라고 선전했다. 정부에 대량으로 순순가스를 납품하는 길이 뚫리자, 우리 회사 직원들 역시 이제 평화로운 여생을 즐길 것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좀 더 지난 즈음이었다.

징조가 전혀 없었던 사건은 아니다.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를 혐오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널리 퍼지고 인구의 재생산이 부담 없이 단순화되면, 그만큼 무책임한 부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람들이 자체 조사를 해 본 결과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가 보급된 이후, 후회하는 출산과 아동 학대가 더 늘어 나고 있다고도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강했다. 부모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줄어 들고,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도리어 아동 학대는 결국 줄어 들거라고 주장하는 쪽은 더 많았던 것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의 말이 옳은 지와 관계 없이, 이원이라는 사람의 부모는 자식을 학대하는 축에 속했다. 이원은 태어난 지 이제 1년이 갓 지난 사람이었는데, 부모는 이원에게 위험한 폭력을 행사했다.

그 부모들이 언제나 비열하고 사악했던 것은 아니다. 그 무렵 이원에게는 새벽에 갑자기 깨어나 주변을 걸어 다니며 놀고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를 부모는 참기 어려워 했다. 한번 잠이 깨면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는 그들은, 새벽 마다 깨어나 시끄럽게 구는 이원을 보면 가끔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바로 그런 어느 밤이었다. 멧돼지들의 도시에서는, 그곳에 살던 한 멧돼지가 마침 울타리의 적당한 곳을 딛고 올라가 탈출하는 일이 생겼다. 순순가스로 처리한 멧돼지들은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마침 이 멧돼지의 눈 앞에 너무나 간단히 탈출할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났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멧돼지는 넓게 펼쳐진 들판과 불빛이 반짝이고 있는 도시를 마음껏 뛰어 다녔다. 도시의 색다른 냄새를 즐기며 거리를 산책하던 멧돼지는 이윽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거기에서 멧돼지는 베란다 아래 화단을 초원처럼 달렸고, 어린이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기암절벽처럼 오르내렸다. 주차장의 트럭을 몇 차례 들이 받으며 힘겨루기 장난을 치고, 또 깜빡하고 잠그지 않은 수도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서는, 마침 열려 있던 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멧돼지는 어느 집 앞으로 걸어 갔다. 곧 멧돼지는 이원과 그 부모가 살고 있던 집의 창틀로 뛰어 올랐고, 방충망을 부수고 방 안으로 들어 갔다. 격분하여 소리지르며 이원에게 다가가고 있던 그들도 잠시 고개를 돌리기에 충분한 움직이었다. 달빛에 갈색 털이 반사되는 모습과 그 우람한 네 다리가 보이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 지 알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멧돼지는 이원과 부모 사이에 끼어 들었고, 부모를 자빠져 물러나게 만들었다.

순하디 순한 이 멧돼지는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앞에 압도되어 있는 두 사람의 어깨를 그 커다란 다리로 툭툭 두드려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후에 240킬로그램짜리 산짐승 앞에 널브러져 속눈썹이 길다란 꿈뻑거리는 그 커다란 눈을 보고 있으니 꼭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중에 이 사건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은 이 멧돼지가 바로 다름 아닌 이원이 태어난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멧돼지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은 신비한 본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믿는 바탕에는 순순가스가 동물적인 성향을 어떤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막연한 감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태아와 멧돼지가 공존하는 동안, 멧돼지도 사람의 영향을 받아 뭔가 변한 것 같다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퍼뜨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술팀의 그녀는 순순가스는 “전혀” 부작용이 없으며,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고, 멧돼지가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은 아마 시끄러운 아기와 어른의 소리를 들어서 거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러하다. 멧돼지가 들이닥친 후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와 경찰이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은 바들바들 떨면서 벽면에 바짝 붙어 있었고, 이원과 멧돼지는 세상 기분 좋게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 2017년, 테헤란로에서

(이 글은 창비 문예지 문학3 2017년 3호에 실린 소설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린 것 입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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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atter 18.01.16 14:24 댓글

    생체형 배아 발달 장치는 정말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섭네요 ㄷㄷㄷㄷ 장치가 돼지인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사람하고 유전적으로 비슷하다는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만, 최소한 IS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사병 생산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가스를 처리한 멧돼지가 지능을 가진다는 묘사 때문에 주토피아의 프리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간에 혹성탈출 같은 거 하나 끼워 넣으면 3부작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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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곽재식 18.01.17 07:59 댓글

    MadHatter/ 사실 돼지 장기를 인간의 몸과 호환시키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소설이니까 적당히 상상해서 한번 꾸며 봤습니다. 기왕 상상해서 쓰는 것, 결말은 조금 더 화려했으면 저는 더 좋아했겠지만 지금 정도도 대충 마무리는 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끝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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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이 18.01.18 14:59 댓글

    순순가스 이름이 너무 귀엽습니다. 신기술 도입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관료적 대처, 현실적인 적용모습,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 같은 것들이 우왕좌왕 그려지는 게, 어떻게 보면 귀여운 풍자극 같기도 하고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할 때의 그 멀리서 본 관점이랄까요. 작가님 소설을 볼 때의 제 웃음 포인트입니다 호호호 앞으로도 활발한 작품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바둑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01.19 17:50 댓글
    재밌겠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보기 즐겁고 웃음이 나는 소설을 쓰는 것은 언제나 꿈꾸는 것인데 요즘은 약간 너무 한 패턴으로 굳지 않나 걱정도 합니다. 뭐 그래도 당분간은 나쁘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비스무레한 수법, 종종 더 보여드리게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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