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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

– 곽재식 –

그 전설적인 납량특집 TV프로그램은 지금은 어디서도 영영 구할 수 없다. 이상한 비밀스러운 사람을 통하면, 특수한 방법으로 제작된 동영상 파일을 받을 수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소문은 거짓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그 영상에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영상을 아는 사람들일 수록 이 영상을 다시 보거나 세상에 퍼뜨리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별 것 아닌 것 같았다. 그 감독이 흉가가 된 병원을 발견한 것이 프로그램 촬영 3주일쯤 전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 사람은 감독이라고 하기 보다는 연출자 지망생이라고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감독이라고 이름을 올린 영상이라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장난 같은 영상 몇 편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런 것을 만드는 일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자기가 연출했던 영상을 다시 돌려 보며 그래도 이 일 할 때는 재밌었지,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의 합이 실제 감독으로 일 했던 시간의 합 보다도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어떤 영상은 몇 십 번, 몇 백 번씩 반복해서 본 것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다 보면, 그때 여기에 배우로 나왔던 누구는 이제 어느 TV 연속극에서 괜찮은 배역을 맡아서 세상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 가고 있고, 그때 이 영상의 대본을 썼던 누구는 일찌감치 이쪽 일 관두고 시험 공부를 해서 지금은 무슨 번듯한 직함을 가진 직장을 얻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다던데. 뭐 그런 생각들이 계속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대체 나는 지금 이게 뭔가 싶어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이 치밀었다.

감독은 그래도 그런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런 괴로운 마음을 느끼는 것을 도리어 즐기게 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세상 사람 다 나보다 인생 잘 살고 있어서 나는 부럽기만하니 감히 내가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나마 나 자신 하나만은 비웃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러고 있는 건지.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어찌저찌 연락을 돌려 조감독 일을 하나 따냈다. 말이 조감독이지 감독이란 사람을 따라 다니며 온갖 잡일을 시종처럼 거드는 것이 그가 하게 되는 “조감독”이란 일이었다. 장비 운반은 물론이고, 자잘한 영수증 처리나 장부 처리도 했고, 운전 기사 노릇에 감독 담배 심부름이나 저녁 식사 장소 예약 같은 일도 하고 다녔다. 감독이 욕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감독은 관계를 해치기 싫어서 직접 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대신 나서서 욕해 주는 일을 맡기도 했다.

돈만 보고 해서는 결코 값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그래도 이 바닥에서 하나 둘 얼굴 알아 가고 이름 알아 가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지 않겠냐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한 두 해 이러고 살았던 것은 아니니까 이 감독이라는 사람, 그러니까 조감독도 사실 그런 기대가 부질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때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마냥 일거리 없이 그저 시간만 보내며 옛날 일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그래도 그 없는 기대를 마음 속에서 억지로 만들어 품어 보게 되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제는 그나마도 그렇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는 처지가 되어서, 그저 뭐든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 없는 충동이 갑자기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조감독 자리를 구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뭐든 조금이라도 돈을 버는 일을 해야 내 인생이 증명 된다는 생각. 세상에 무슨 일이 되었건, 조그만 것이라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뭐든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감독 일을 맡은 이 사람은 영화의 촬영지인 어느 지방의 소도시로 오게 되었다. 처음 사흘 간은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연출자는 참으로 지저분한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영화 화면은 그럭저럭 견딜만한게 만들어 나갈 줄 아는 인간이었다. 조감독은 스스로가 이 영화의 행주가 되었다는 결심으로 그 지저분한 것을 최대한 빠르게 닦아 가면서 그 판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밤, 술자리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세상이 다 그래요. 다 없는 것들끼리만 서로 죽어라 아웅다웅하면서 자기들끼리 쫓고 쫓기고 다니는 거야. 있는 것들은 우리처럼 이러고 안 살지.”

연출자는 그런 소리를 제 입으로 몇 번씩 주절거리며 술을 들이켰다. 조감독과 다른 사람들도 연출자의 장단에 맞추어 다같이 그 편을 들며 뭐라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연출자는 더 소리 높여 떠들면서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더 비판했고, 술도 더 많이 마셨다.

뉴스 기사에서 영화 촬영 현장의 부도덕한 일들을 고발하는 것을 검색해 본다고 치자. 그 검색 결과에 잡히는 일을 대부분 다 행하고 사는 사람이 바로 그 연출자였다. 그런데 이 양반은 술에 취하자 한 차원 더 이상한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술을 무슨 세상의 상식이 사라진 다른 세상으로 가는 마법 물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뭔지, 술에 취한 이 사람은 갖가지 추한 말과 추한 짓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사람들은 그 짓거리를 구경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어떤 진솔한 사람의 심경을 드러내는 예술적 순간을 감상하는 것이라는 듯이 비실비실 웃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그 짓을 보고 비실비실 웃고만 있는 것이 더 노련한 태도인가 싶어 그것을 따라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 연출자가 말 하기 힘든 행패를 한 바탕 벌였을 때, 조감독은 깨달음을 얻었다. 혹은 얻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였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짓인가. 이것을 참으면서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나, 사회에서 남에게 맞춰 주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같이 썩고 같이 정신 나간 사람일 뿐 아닌가. 여기서 나가는 게 맞다. 때려 치워야 한다.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자신을 온통 둘러싸고 귀에다가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감독은 그대로 일어 나서 자리를 떠났다. 등 뒤에서 소리를 질러 부르는 것이 들렸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나 한 사람 손이 없으면 당장 내일 현장은 엉망이 되겠지. 하지만, 양심의 가책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일을 이 따위로 몰고 온 연출자가 만든 당연한 결과였다. 촬영이 좀 힘들어지는 것 정도는 저 사람에게 마땅한 처벌에 한참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이제 다시 하는 일이 없어져서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다면 “감독님”이라고 불리우게 된 어제의 조감독은 멍한 상태로 이 소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올 때에 촬영 때문에 며칠간 머물다 오겠노라고 했으니, 그보다 일찍 돌아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돌아 가면 왜 일찍 돌아 왔는지, 이런저런 개떡 같은 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그렇다고 설명하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숨어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감독은 이렇게 된 것, 이곳에서 휴가나 보내는 셈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며칠 버티다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밤 늦게까지 전화기나 텔레비전을 붙들고 있다가 잠이 들면 점심 때가 다 되어 깨어 났고, 적당히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 밥 먹고 숙소로 들어가면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더 흘려 보낼 구멍만 찾으면 빈둥거리며 하루 하루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기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멍하니 노는 게 일은 아니었으니까.

감독은 지자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곳의 명소나 공원 같은 곳에 잠깐 찾아가 보기도 했다. 크게 볼품이 있는 곳들은 아니었지만 다른 곳에 있는 비슷한 것들과 조금씩 다른 점은 눈에 뜨이기도 했다. 일 있는 사람들은 뭐든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할 만한 오후 시간에 찾아 가 보니, 텅 빈 곳이 많았다. 빈 공원에는 그곳이 환하게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햇살만 가득했다. 그런 곳에 혼자 찾아 가서 잠깐 앉아 있으면, 갖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

서울에 돌아갈 때가 다 되자, 감독은 근처의 산에나 한 번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럭저럭 경치가 좋을 것 같은 산을 찾아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힘들 것 같아서 관뒀다. 그러고나서는 길가 벤치에 한참 앉아 있기도 하다가, 그냥 정처 없이 근처 길을 괜히 걸어 보기도 했다. 한 방향으로 무조건 30분 동안 계속 걸어 가면서 뭐가 있는 지 보고, 30분이 지나면 다시 같은 속도로 돌아 온다. 그러면 하여간 1시간이 지나 있겠지. 그런 무의미한 계산이었다.

감독은 그러다가 한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요즘 초등학교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학생 수가 줄어 들어서 번듯한 건물에 비해 황량하고 고요한 곳이었다. 운동장 너머 멀리 버티고 서 있는 건물에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 지 몰랐다. 50명? 20명? 유난히 조용한 것을 보면 어쩌면 곧 유령학교가 될 곳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고, 그때가 몇 년 전인지 가늠해 보았다. 뺄셈의 결과로 나온 숫자는 컸다. 나이만 많이 들었다 싶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나. 그렇게 초등학교를 걷다 보니, 학교 담벼락에 이런저런 포스터를 붙여 놓은 것에 눈이 갔다. “불조심” “전기를 아껴쓰자” “교통사고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한 색다른 벽보가 눈에 보였다.

“주의 - 위험한 곳에 가지 맙시다.”

그것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내문이었다. 괜히 호기심 때문에 으슥한 산 속이나 인적 없는 공사장 같은 곳에 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감독은 그런 곳에 간 아이가 겪을 수 있는 불행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벽보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의 예시로 “폐쇄 병원”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글씨는 빨간 글씨로 무섭게 씌여 있었다. 귀신 나오는 곳이라는 소문이 도는 흉가라도 되는 지, 그 “폐쇄 병원”이라는 곳은 어린이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인 듯 싶었다. 담력을 겨루는 내기를 하거나 귀신 찾는 모험을 하겠다고 버려진 병원 건물에 들어 갔다가 낡은 건물의 계단이나 바닥이라도 무너지면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맞아 보였다.

그러나 감독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그 버려진 병원 건물을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을 확인해 보니 오늘 허비해야 할 시간은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곳을 구경해 보면서 괜찮은 이야기 거리를 찾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정말로 특출나게 무섭게 생긴 곳이라면, 나중에 그런 장소가 필요한 영화나 연속극을 찍는 팀과 같이 일할 때에 내가 그런 곳을 안다면서 나설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라도 뭐라도 시간을 보낼 새로운 방법이 있으면 싶은 상황이었다. 그냥 기다리기는 것은 너무 많이 했나. 이제,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감독은 버려진 병원을 찾아 보았고, 곧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학교 뒤편 길로 논밭 사이를 걸어 30분 정도를 걸어 가면 있는 산 기슭에 병원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기에 가는 것이 잘 하는 짓인지 아닌지 잠깐 감독은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민하는 중에도 발걸음이 먼저 움직여 감독은 들을 지나 숲 속을 향해 걷고 있었다.

병원 건물은 크지 않았다. 3층 건물이라 주변에서 높이만 높았을 뿐, 그저 약간 부유한 단독 주택 정도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다가가지 않고 잡초로 덮힌 곳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우뚝 솟은 느낌은 있었다. 건물 벽에 칠한 색이 바래고 또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져 있어서 회색 시멘트 빛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은 썩어 가는 생물처럼 보였다.

잡초를 해치고 건물 주변까지 가 보니, 건물 주변을 휘감아 놓은 철조망과 “출입금지”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입구 주변의 철조망은 끊겨 있는 상태였고, 입간판은 쓰러져서 잡초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누군가 뚫고 들어간 흔적이었다. 정말로 내기를 하려는 어린이들이 뚫고 들어가 본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입간판이야 애를 쓰면 치울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철조망은 제법 튼튼해 보였다. 저기에 통로를 뚫은 것은 작정한 어른의 솜씨이지 싶었다. 이렇게 외딴 곳에 빈집이 있으니, 여기에서 몰래 무슨 작당을 하려고 온 범죄자 따위가 한 짓일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겁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감독은 무서워 하기 보다는 반가워 했다. 만약 통로가 없고 출입금지 입간판도 제대로 세워져 있었다면,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어떤 법이나 규정을 어기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다 치워져 있다. 혹시 내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을 들어가는 곳이라고 해도, 나중에 나는 몰랐다고 할 수 있었다. 감독은 그러니까 그게 마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은 건물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뭔지 알 수 없는 동물의 말라 붙은 뼈와 잘라낸 돼지의 머리통이 뒹굴고 있었다. 처음 감독은 무척 놀랐다. 주차장으로 쓰던 그 잡초가 무성한 빈 터에 버려진 돼지 머리통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똑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널려 있는 다른 뼈들도 아마 비슷한 가축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뼈들 사이를 자세히 보니 부러진 칼 조각 같아 보이는 작은 쇠 파편도 몇 보였다. 어떤 것에는 피가 말라 붙어 있었다.

감독은 건물 외벽에 기대어 놀란 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이게 다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무속인이나 다른 토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주술적인 의식을 치른 흔적인 듯 싶었다. 그러니까 이 버려진 병원에 정말로 귀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 제사를 지냈다거나, 굿을 한 것 아닌가 싶었다. 굿을 하면서 통돼지를 들고 칼을 꽂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 기억이 났다. 아마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들었다면, 이런 흔적이 생길 법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철조망을 끊어서 통로를 뚫은 사람이 무슨 범죄단이라기 보다는, 귀신을 찾아 온 무속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해당한 시체를 몰래 묻어 버리려는 사람이나 빼앗은 돈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왔던 곳이 아니다. 그저 이런 곳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 귀신이나 사악한 저주가 있다고 믿고 거기에 엎드려 비는 사람들이 왔던 것이다. 거기에 대고 빌면서 자기에게도 예언이나 치유의 능력을 나눠 달라고 하는 좀 맛이 간 사람들 몇이 찾아 왔을 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감독은 그 흉칙한 광경이 오히려 안심이 되어 보였다.

더 안쪽으로 건물 깊이 들어가 봐도 될 것 같았다.

건물 입구의 문은 본래 유리문이어서 깨진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건물 안과 밖의 경계 근처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흉칙한 얼굴을 그린 종이 쪽지가 구겨진 채 버려져 있었다. 한편에는 부서진 인형이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인형 조각에는 짓밟히거나 불에 탄 흔적이 보였다. 역시, 누군가가 인형으로 무슨 주술을 시도한 흔적 같아 보였다. “여기에서 당신 인형을 불태우면서 칼로 찌르면 돼요. 그러면 여기 사는 귀신이 당신한테 붙은 귀신을 데려 가서 같이 살자고 할 거라고. 그렇게 해서 당신한테 붙은 귀신이 떨어지고, 당신 병도 낫는 거지” 그런 식으로 설명하면서 인형으로 귀신을 향해 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감독은 상상했다. 감독은 그런 행동이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오랫만에 남들을 비웃을 수 있어서 감독은 기뻤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대낮이었는데 그 안은 무척 어두웠다. 복도처럼 길게 뻗은 공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보이지 않는 끝은 그저 검은 어둠으로 보여서 그 속에 무엇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커멓게 벌린 죽은 사람의 목구멍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말 갑자기 뭔가 와락 튀어 나올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은 한 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내딛는 소리가 귀에 크게 들렸다. 감독의 다음 발걸음은 더 느려졌고 보폭은 더 줄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부서져 내리고 있는 벽면에는 더럽혀진 벽이 있어서 불에 그슬린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벽 자체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바닥에는 무엇인지 모를 검은 색의 알갱이 같은 것들이 뒹굴고 있었다. 오른쪽 방에서는 역한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오는 냄새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벽으로 다가 서자, 벽에는 낙서가 씌여 있었다. “누구누구 죽어라” “귀신 나온다 바보들아” 같은 낙서도 있었고, 세상 어느 낙서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욕설도 몇 마디 있었다. 거기 적힌 욕설은 그냥 단어 뿐이었다. 몰래 이런 곳까지 기어 들어 와서라도 남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고작 그 욕설 단어 몇 개가 전부인 불행한 인간의 작품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말 중에는 “1일째, 2일째, 3일째, 4일째” 같이 날 수를 헤아린 것을 써놓은 것도 있었다. 여기에 정말 무서운 귀신이 있고 그 사이에 있으면 뭔가 대단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 어떤 사람이 귀신이 자기에게 찾아 오기를 맹렬히 기대하며 이 집 안에서 생활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열흘이면 열흘, 백일이면 백일 정도를 기다리겠다고 작정하고 이 안에서 살았던 것 아닐까.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다 도중에 그냥 포기하고 나갔을까. 아니면 그러다 죽어서 이 안에서 어디 엎어져 있을까. 결국 자기가 원했던 것을 얻고 기뻐서 히히히 웃고 춤을 추며 돌아 갔을까?

감독은 벽면을 따라 더 깊은 곳, 그 안쪽으로 걸어 들어 갔다. 어느새 걸음걸이는 더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어두운 곳을 조금 더 잘 보려고 작가는 휴대 전화의 불빛을 밝혀 보았다. 바닥에는 잡다한 것이 버려져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와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이었다. 음식물 찌꺼기에는 이상한 벌레들이 붙어 있었다. 감독은 난생 처음 보는 벌레들이었다. 그 옆에는 낡고 먼지 묻은 헝겊 조각과 구멍난 모자 같은 것 따위가 벽 아래에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감독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서 앞뒤를 살펴 보니, 감독은 그것이 사람이 머물다가 간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흔적은 무속인이나 신기한 것에 대한 환상에 빠져 찾아 온 사람과는 또 달라 보였다.

감독은 그것이 오갈 데 없는 부랑자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 건물은 지붕이 있고 벽이 있는 곳이었다. 길거리에 비라도 내리면 달리 비를 피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면 찾아올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고 비어 있는 곳이었다. 어지간한 비라면 공공건물 앞의 처마 밑에서 웅크려서 피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쏟아 붓듯이 밤새 내리는 비가 온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감독은 비에 젖은 부랑자가 이 건물로 허겁지겁 뛰어 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어두컴컴한 복도 속에 몸을 숨기고 깨진 창문 밖으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면서 방긋방긋 웃을 것이다.

다시 더 깊이 들어 가자, 감독은 이제 이 병원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뻗어 있는 복도 같은 구조가 있고, 그 복도 양 옆으로 방들이 있다. 1층에 몇 개, 2층에 몇 개, 3층에 몇 개. 다 합하면 열 몇 쯤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은 문이 닫혀 있었고, 어떤 방은 열려 있었고, 어떤 방은 문이 부서져 있었다. 감독은 함부로 닫힌 방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 안에는 봐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이 열려 있는 방이라면 한 번씩 흘겨다 보았다. 어떤 방에는 매트리스의 스펀지가 갈기갈기 찢긴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렇게 스펀지를 뜯어 놓으려면 두 시간 쯤은 온힘을 다해 쉬지 않고 그것을 집어 뜯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누가 이곳에 찾아 와 그 위에서 그런 짓을 했을까.

반대편 끝에 거의 다 도착해서 감독은 계단으로 향했다. 처음 건물에 발을 디뎠을 때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감독은 계단을 오를 생각이었다. 발로 계단을 몇 번 차 보았다. 계단은 튼튼한 것 같았다. 2층 위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감독은 궁금했다.

2층에 도착했을 때, 감독은 3층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소리가 많이 나지 않게 조심하고 있었다는 느낌도 같이 들었다.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심장이 벌컥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은 3층을 향해 물었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그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야 살아 남는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 누구 계세요?”

감독은 소리쳤다. 아무 답이 들리지 않았다. 감독은 무슨 답이 들려도 무서운 일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도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은 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 동안 정말로 무서워하게 되었다. 무슨 작은 일이라도 터지면 감독은 그대로 달려서 도망쳐 뛰어 나가버리게 될 것 같았다.

“...예”

오랫 동안 망설인 대답이 들려 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작고 뒤틀려 있었고,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세상에 들키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기 위해 이 건물에 들어온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는 보이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한 후에도 한참 동안 아무도 그 흔적을 찾지 못할 것 같은 곳을 찾아 온 것이 틀림 없었다. 감독은 무서웠다. 이곳에 있는 그것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라고, 세상이 막고 있는 일을 하라고 시킨 것 같았다.

감독은 그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감독은 너무 무서웠다. 이 건물 안의 그 온갖 것들이 온몸으로 머릿속으로 막 달려드는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지 말고 어서 나가세요. 저도 지금 그냥 나갈 겁니다. 저 나가고 나면 나가세요.”

감독은 그렇게 소리치고, 그대로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건물 바깥에서 감독은 다시 그 건물을 돌아 보았다. 건물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건물 안에는 사람을 제정신으로 못 버티게 만드는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있다. 감독은 그런 생각을 했다. 숨결이 거칠어질 때 마다 건물이 어질어질하게 움직이더니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대로 확 머리 위로 넘어 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었다. 그것은 지금껏 감독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여기에, 이 망한 쓰레기 건물에, 위험한 것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생각이 감독의 마음 속에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 마음 한 켠에 다시 기쁨이 생겼다. 자신이 드디어 뭔가를 찾아 냈다는 기분이었다. 무서움과 함께 뒤섞인 환희의 감정은 매우 묘했다. 온몸의 털이 뾰족뾰족 가시처럼 솟았다. 누가 감독의 귓속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마지막 행운이라고. 귀를 붙잡고 들러 붙어 따라 다니면서 그렇게 계속 속삭이는 것 같았다.

감독은 몇 번이나 자빠지면서도 허겁지겁 그곳에서 달려 나왔다. 한두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감독은 기차 역으로 향했다. 서울에 일정보다 빨리 가느니 마느니, 서울에 가서 누구에게 뭐라고 설명하느니 하는 것은 이제 조금도 문제가 아니었다. 흥분과 기대가 끓고 있었다. 그것을 찾아 냈고, 저것은 분명히 대단한 것이다. 엄청나다. 엄청난 것이다. 기회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기회라고, 드디어 찾아온 기회라고 감독은 생각했다.

기차가 출발 할 무렵 비는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비 내리는 공간을 달리고 있으니 괜히 웅웅거리는 울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창 바깥으로는 어디인지 모를 산과 들과 나무와 숲들이 지나갔다. 그 풍경을 보는 감독의 정신은 아직도 그 건물 속의 온갖 것들과 같이 하고 있었다. 기차 옆을 시속 수백킬로 미터로 지나치는 비내리는 어두운 숲 사이에서도 무슨 마귀 같은 것이 언뜻 숨어서 기차 안의 감독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떨리고 숨이 가빠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모든 나쁜 것들이 빗속에서 축복의 노래를 불렀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장마철의 긴 비는 한 동안 계속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 다니는데 감독은 조금도 주저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독은 비 내리는 날씨보다도 훨씬 더 하찮은 이유만으로도 약속을 없애고 집 안에 틀어 박혀 있자고 결정하곤 했다. 하지만 감독은 이제 비를 맞는다거나, 발이 젖는다거나 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감독은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이 있었고, 그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은 아직 찾지 못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감독은 오히려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조급함은 더 큰 열정이 되었다. 감독은 그 어느때 보다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 태도였고 적극적이었다.

감독은 영화 학교의 동창으로 예전에 몇 번 같이 술에 취했던 친구 한 사람을 찾아 냈다. 감독은 그 친구가 자기 보다 돈만 조금 더 벌고 있을 뿐 몹시 한심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 친구를 불러 내서 간곡하게 자신의 기회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감독이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경건한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찬송하는 것과 같았다. 친구는 우쭐한 기분보다는 반대로 두려움을 느꼈다. 감독과의 대화를 빨리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아는 한 작가에게 감독의 이야기를 전달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감독은 작가에게 자기가 만들 것을 이야기해 주는 메시지를 썼다. 꿈꾸던 일을 현실로 느끼고 가깝게 느낄 수록 매사를 세밀히 철저히 보게 된다는 점을 감독은 깨달았다. 감독은 작가가 자신이 발견한 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번에는 세상의 땅 위에 이 뜬 꿈을 붙잡아 오고 싶었다.

감독은 대단히 신비롭고 놀라운 장소가 있다는 식으로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감독은 아주 썩 괜찮은 장소를 발견했으며, 그곳은 텔레비전의 여름 특집 공포 체험에 어울린다는 것 정도로 이야기를 설명했다. 감독은 그곳에서 자기가 느낀 것을 세밀히 설명하기 보다는, 그곳이 거리가 가깝고 촬영이 편리한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 두 줄 읽으면 누구라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텔레비전 쇼의 장면들을 예로 들었다. 흉가가 있고, 거기에 출연자들이 밤새 머물고, 비명을 지른다. 참신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흔한 것으로 쉽게 읽고 곧 잊을 수 있을만한 내용이었다.

작가도 그저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인지 감독의 그 설명을 잊을 수 없었다. 가까운 곳에서 간편하게 촬영할 수 있는 무서워 보이는 집이 있고, 그곳에서 그동안 자주 텔레비전에서 방송했던 납량 특집을 그저 적당히 하던대로 또 반복하면 된다는 이야기였을 뿐인데, 작가는 그 이야기를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문득문득 장면 속에 비치는 출연자의 놀란 얼굴과, 배경으로 섞어 넣는 무서운 음악이 어떻게 어울릴지 상상해 보곤 했다. 어느 방송국에서건 한 번 쯤은 이번 여름에 할만한 방송이겠지. 그런데, 그러니까, 그런 만큼 우리가 한번 또 해보면 안되는 것일까?

작가는 꿈 속에서 그 장소를 보기도 했다. 악몽이었다.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영화의 대본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그 외딴 집을 헤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끼워 넣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작가는 자기가 직접 애써서 나설 생각은 없었다. 감독의 제안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힘들여 일을 벌이는 것은 자신의 역할도 아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며칠 후 한 TV 방송국의 외주 제작사와 함께 했던 회의에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 회의는 방송국과 다시 한 건 더 계약을 하지 못하면 제작사의 존립이 위험해진다고 뭐든 아이디어를 꺼내 보라던 것이었다. 사실 그 회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 따위 제작사 얼른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차라리 미련이라도 갖지 않도록 빨리 다른 일거리를 찾게 될테니까. 그러니 다들 제작사를 살릴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는 의욕이 없었다. 의무적으로 한 마디씩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해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그저 하나마나 소용 없는 이야기, 옆자리 사람이 한 이야기와 비슷한 적당한 이야기를 한 마디씩 토해 놓을 뿐이었다.

참다 못한 제작사 대표는, “어떻게 그렇게 수동적으로만 생각하나? 우리 식구들이 같이 한 솥 밥 먹는 회사 생각인데, 좀 적극적인 태도로 이야기 못해요?” 하고 화를 낼 정도였다. 회사가 망할 시간이 눈앞에 다가 오니, 대표가 화를 내는 모양도 평소와 달라 보였다. 소리를 크게 지르며 열을 올리지도 못하고,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작가는 마침 며칠 간 생각하고 있던 감독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작가가 정말로 그게 이 제작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이 벌겋게 변한 제작사 대표의 꼴이 보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한 것 뿐이었다. 공포 체험 특별 프로그램, 흉가에 가서 하룻밤 머물면서 사람들의 겁먹은 표정을 화면에 잡아 온 세상에 내 보내자는 생각. 매번 보던 또 보여주는 이야기. 그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낄낄거리고 웃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같이 무서워서 조마조마해 하겠지.

작가가 이야기를 마치자 다들 그 생각을 시큰둥하게 여겼다.

“예전부터 너무 많이 보던 거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 그보다 더 나은 생각은 그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제작사의 대표는 결국 그 이상한 건물과 납량 특집 프로그램을 결론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대표는 그 이야기에 평생의 사업과 자신의 모든 삶이 다 걸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표는 사실 그 납량 특집 프로그램이 멍청한 생각이라고 여겼다. 차분하게 한 며칠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기만 해도 적어도 그보다는 더 나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표는 차분할 수도 없었고 며칠 간의 시간도 없었고 혼자서 조용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표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2시간짜리 납량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표는 작가를 통해 감독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대표는 감독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소식을 듣고 감독은 기뻐했다. 감독은 드디어 기회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형체 없는 유령과 같았던 기회가 이제 적어도 뼈다귀 모양은 갖추게 된 느낌이었다. 감독은 그날 저녁 대표를 찾아갔다. 감독은 몇 달만에 처음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몸을 단장했다. 그리고, 대표에게 자기가 본 건물이 어떤 곳인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설명했다.

대표는 감독을 보자마자 이끌렸다. 대표는 감독이 보여 주는 건물의 사진 몇 장을 보았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물의 구조를 상상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표는 사진 속의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 같았다. 감독의 말은 빠르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높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에는 정열이 넘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 수록 대표는 무서웠고, 또 건물의 모습을 볼 수록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대표는 이제야 자기가 모르던 아주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바로 여기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 같았다. 회사의 부도와 파산에서 몇 달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거기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무엇인가 더 중대하고 무거운 일이라는 환상마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이거 무슨 수로든, 정말 무슨 수로든 성공시켜요.”

대표는 지금껏 일하며 알았던 사람 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모두 만나보려고 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연출자, 선후배 관계로 엮여 있는 방송 엔지니어, 지난 번 영화에 출연시켰던 가수, 급할 때 돈을 빌려 준 적이 있었던 배우까지 누구든 찾아 다녔다. 이번에 할 무서운 쇼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라도 괜찮았다. 대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거리를 시체처럼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도 누군가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제안을 설명하는 발표를 할 때면, 무슨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기운을 내서 날뛰었다.

마침내 대표는 한 케이블 방송국의 프로듀서 한 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야심이 많지 않았던 그 프로듀서는 납량 특집의 내용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자신이 막아야 하는 인기 없는 방송 시간을 적당히 2회차 정도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대표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마지막 순간, 제작비 액수를 보고 프로듀서는 망설였다. 여전히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생각보다는 많았다. 망해가는 제작사와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감독에게 외주를 주는데 이 정도까지 멀쩡한 액수를 줄 필요가 있을까? 이 수상한 사람들이 제안한 공포물 대신 인기 냉면집 특집 같은 것으로 두 시간 쯤 별 무리 없이 때워도 괜찮지 않을까?

대표는 프로듀서의 생각을 짐작했다. 그러자 대표는 살짝 제안을 바꾸어 제시했다.

“저희 원래 기획은 일반인들을 경연 프로그램처럼 모아서 흉가에서 버티게 하는 건데요. 그런데, 이 계획이 아무래도 불안하시면, 일단 일반인 경연 프로그램으로 한번 촬영을 해 보고 정 재미가 없다면, 연예인들 모아서 흉가에서 버티게 하는 걸로 다시 제작할 수도 있어요. 준비한 것 그대로 이용해서요. 그런 것은 예전에 많이 보셨잖아요? 연예인들이 무서워하면서 소리지르고 울고 하는 것 보여 주고, 옆에서 그거 보고 웃는 다른 연예인도 보여 주고. 그거 인기 괜찮았잖아요. 그건 어느 정도 최소한 재미는 나올 거 같지 않으십니까?”

대표가 만들어낸 타협안에 프로듀서는 이끌렸다. 대표는 그 타협안조차도 오랜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술술 말했다.

어린 무명의 신인 가수들 남녀를 절반쯤 섭외하고, 반대로 이제 인기가 시들해져서 아무 방송에서도 찾는 사람이 없는 나이든 연예인들을 절반쯤 섭외한다. 양쪽 다 어떻게든 인기를 얻어 보려는 생각에 뭐든 바쳐서 애를 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들 열심히 반응할 것이고, 그러면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른 방송이라면 그 사람들로 좋은 결과를 만들기는 힘들겠지요. 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누군가를 웃기거나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방송은 달라요. 이 방송은 그런 좋은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에요. 무서움에 떨고 두려워서 절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울고 웃는 방송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비명을 지르는 방송에서는 제 값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방송 제작은 결정되었다. 프로듀서의 제안대로 우선 일반인 경연 프로그램으로 먼저 촬영을 해 보고, 만약 결과가 나쁘면 연예인들을 섭외해서 다시 촬영하기로 했다.

마침내 감독은 그 소도시의 버려진 건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제작진들을 잔뜩 이끌고 눈이 부시게 환한 전등을 밝히면서 건물로 들어 갔다.

그렇게 들어 가니 건물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달라 보였다. 원래부터 아담한 건물이었지만, 여럿이 들어 가서 제대로 밝히고 보니 건물은 더 작아 보였다. 게다가 어둠 속에 가려 있던 구석구석이 왁자지껄한 사람 소리에 그대로 드러나자, 으슥하고 축축한 느낌은 확 사라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낙서와 이상한 모양의 쓰레기들도 사람들이 둘러 싸고 조사할 때에는 그저 방송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안될까 하는 잣대로 평가 받는 상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감독은 여전히 처음 이 건물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환한 빛에 드러난 새로운 모습 중에는 더 섬뜩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여러 사람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나누는 가운데 보면 그만큼 더 무서워 보이는 것도 있었다. 세세하게 살펴 볼 수록 다시 새롭게 또 더 이상한 모습이 드러났다.

감독은 차근차근 방송을 준비해 나갔다. 우선 조명과 카메라를 어디에 설치할 지 정했고, 어두운 건물 안의 야시경 촬영 장비는 어떻게 달아야 할 지를 정했다. 1층, 2층, 3층의 공간 중에 어떤 곳이 개성이 있고, 어떤 곳이 화면에 담길 가치가 있는 지 고민했다. 사람들은 건물 구석구석을 다니며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고, 감독은 밤새 그 사진을 보면서 누가 어디쯤에서 어디로 뛰어가며 소리를 지를 지 상상했다. 밤마다 감독의 악몽 속에서 그 많은 사진 사이를 온갖 형상의 망령들이 뛰어 다녔다.

한편 동시에, 제작진은 다른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일단 이 버려진 건물에 대해 적법한 촬영 허가를 얻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고, 경찰에서는 건물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혹시 촬영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주 제작사의 대표는 시청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방송 앞부분에 짧은 내용을 집어 넣으면 이 지역을 홍보하고 놀러 오라고 선전하는 TV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다고 대표는 설명했던 것이다.

이곳에 찾아와서 시장의 음식점 몇 곳을 돌아 다닌 뒤에, 지역 문화재 한 두 군데 앞에서 출연자들끼리 교통수단이나 점심식사 내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집어 넣는 다는 이야기였다.

“괜찮지 않습니까?”

이런 텔레비전 방송이 도대체 이런 지역의 관광 홍보에 무슨 큰 도움이 되는 지 어떤지는 대표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청 사람들은 실제로 관광 홍보를 잘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관광 홍보를 위해서 뭘 했다고 남기기 위한 실적에 관심이 있었다. 텔레비전 방송 협조는 괜찮은 실적이겠지. 50분 동안 여기에 무너져 가는 흉가가 있다고 소리치는 방송이라고 해도, 그 전에 10분간 장터에서 파는 팥빵과 300년전에 죽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사당이 있는 동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니,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다.

대표는 허가를 따낸 뒤에 감독을 불러 건물의 어디까지를 화면에 담을 지를 의논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업자를 불러 안전진단을 했다. 버려지고 낡은 건물이지만 진단 결과 대체로 별 문제 없이 멀쩡하게 서 있는 건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적당히 낡아 보이는 곳에 아무 뜻 없이 쇠파이프를 세워 기둥처럼 천장을 받치게 설치해 두었다. 쓸모 없는 짓이었지만 다들 무엇인가 조금 더 믿음직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감독은 바닥에 떨어진 동물 사체와 쓰레기들 중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치울 지도 정했다. 버려진 인형들은 대부분 남겨 두기로 했다. 몇 개는 장소를 옮겨서 배치해 두기로 했다. 주위를 가리고 있던 잡초 중에 일부를 정리하기도 했고, 불을 가져와서 일부러 바닥과 나무에 그을린 자국을 조금 만들기도 했다. 그 버려진 건물을 감독은 더 원하는 대로 가꾸었다.

준비 중에 제작진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일반인 출연자를 뽑는 일이었다. 꽤 높은 상금을 걸고, 반드시 그 상금을 따야만 하는 절박한 일반인들을 방송에 나오게 해야 했다. 절박함이 중요했다. 이 무서운 건물 안에서 밤새 잠들지 않고 동이 틀 때까지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리한다.

“아무리 볼품 없는 집이라도 일단 처음 몇 분만 견디고 나면 달라지는 일은 없잖아. 그거 버티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그냥 서로 졸지 않기 경쟁이 되는 것 아냐?”

그 건물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그 건물을 보고 나면 그렇게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촬영을 하겠다고 건물을 에워싸고 북적이고 있고, 틈틈히 쏟아지는 환한 조명이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이 건물은 무서웠다.

촬영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촬영에 넋이 빠져 있는 감독의 마음 한 켠에도 얼른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불안한 것이 있었다.

작가는 여러 직업과 연령을 가진 다양한 구성으로 총 여섯 사람을 뽑자고 했다. 감독이 정해 놓은 촬영할 지점을 모두 화면에 담기 위해서는 그 정도 사람들이 적당할 거라고 했다.

감독도 거기에 동의했다. 출연자들에게는 각자 자기가 머물러야 하는 장소가 있고, 한 시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제 자리로 돌아 가야 하는 의무를 주는 것으로 규칙을 만들자고 했다. 그러다가 서로 마주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방안을 들여다 볼 기회도 생길 것이다. 서로 마주친 출연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때 뭔가 또 더 재밌는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러려면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을 출연 시켜야 한다. 무서움을 견디면서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버티는 장면에 어울리는 사람, 서로 만났을 때 재미난 반응을 할 만한 사람, 덜덜 떨면서 어두운 빈 복도를 걸어 다니는 장면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아야 했다.

상금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얼마 있지 않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서 무서움을 참아 보겠다는 나이 든 사람도 있었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왼쪽 눈이 멀어 버리는 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을 벌겠다는 간절함으로 도전에 나선다는 젊은 사람도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을 몇 번 겪은 후에 성격이 이상하게 변해 버려서 아무것에도 무서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무슨 차를 장기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신경을 차 성분이 막고 있어서 남들 보다 훨씬 더 차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요술사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중에서도 무슨 수로든 반드시 상금을 타내겠다는 결심이 굳은 사람들 여섯을 추려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자기 특성을 제일 잘 드러낼 수 있는 모습으로 옷을 입고 꾸미고 나오라고 하는 겁니다. 일부러 우리가 꾸며주지 않고요.”

사람을 뽑는 계획은 생각은 맞아 들었다. 이 절박하고 애처로운 사람들 여섯을 모아 두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쁜 느낌이 그들 사이를 빙빙 돌고 있는 듯 했다.

마침내 촬영 당일 저녁이 되어 모두가 모였다. 감독은 카메라로 건물을 비추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자기 손으로 촬영하는 영상 속에 지난 시간 동안 항상 머릿 속에 머물던 건물의 모습이 담기는 것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독은 잠깐 병든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흥분한 감독은 하얀 손들이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지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감독은 땀으로 젖은 눈꺼풀을 몇 번 꿈쩍거렸다. 그제서야 눈 앞은 다시 맑아졌다. 서쪽 햇살에 그림자가 지는 건물의 검은 윤곽이 다시 선명해졌다.

그리고 여섯 사람의 출연자들이 건물 입구에 줄을 섰다. 다들 눈빛이 어두웠다. 밝게 웃고 있는 어느 깜찍한 출연자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합시다.”

감독이 말하자, 출연자들은 모두 건물로 들어 갔다. 다들 자기가 있어야 하는 방으로 차분히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출연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 설 때, 감독은 자신이 그 건물에 들어서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 마다 느꼈던 그 공포가 다시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맨 먼저 경연을 포기하고 울면서 뛰쳐 나올 것으로 제작진이 짐작하고 있는 출연자 한 사람은 이미 단단히 겁을 먹어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출연자들의 모습과 숨소리가 미리 설치해 놓은 카메라에 잡혀서 제작진의 화면에 나타났다.

자리를 잡은 출연자들은 저마다 방법대로 오늘 밤을 버티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앉았고, 어떤 사람은 벽에 등을 기대었다. 어떤 사람은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고개를 돌리고 손을 까닥거리는 운동으로 신경을 돌리려고 하는 것도 같았다. 죽어도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그 모습은 흔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감독이 보니, 그들의 반사된 눈동자가 야간 촬영용 카메라에 잡혀 하얗게 빛나는 모습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 보였다. 이 건물이 그대로 무덤이 되었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한데 진흙 속에 묻혀 있는 것 같았다. 감독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리고 감독은 준비해 두었던 보조 연기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연을 하고 있는 여섯 명의 출연자들은 이 보조 연기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 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은 그저 이를 물고 움찔거리면서 밤새 가만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수동적으로 출연자들의 모습을 촬영하기만 할 계획이 아니었다. 보조 연기자들은 세심하게 준비한 귀신 분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속에 뛰어 들어 출연자들을 놀래킬 계획이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공포를 더 주입할 것입니다! 그 놀라 날뛸 모습을 화면에 담아 내면, 그게 바로 이 건물의 가장 깊은 바닥을 보여 주는 방법이라고 감독은 생각했다.

줄지어 서 있는 귀신 모습의 보조 연기자들을 보고 촬영하는 사람들은 잡담을 모두 멈추었다.

귀신들이 침묵 속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다음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전하는 사람마다 여러가지로 이야기가 나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막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감독이 심장이 멈춰서 죽어 버렸다고도 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때 바로 건물이 무너지며 모든 촬영이 중단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고도 한다. 지금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그 여러 이야기들 중에 이 모든 것의 끝으로 가장 잘 알려진 한 가지 이야기일 뿐이다.

건물에서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르며 뛰쳐 나온 것은 귀신 가면을 뒤집어 쓴 보조 연기자들이었다.

이겨서 상금을 따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던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이 먼저 겁에 질려 도망치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연이 시작 되자, 참가자들은 하나 같이 저마다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귀신으로 꾸미기 시작했던 것이다. 히히히.

— 2017년, 테헤란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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