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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비야 란도는 9월의 가면축제에서 남편인 레도 아솔바를 만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가면축제는 온 도시의 기쁨이었다. 아직 여름의 뜨거움이 남아있는 햇살이 사라진 서늘한 밤이 되면 더위를 피해 꼭꼭 닫혀있던 문을 젖히고 평소보다 들뜬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거나 기괴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즐거움을 만끽했다. 설령 누가 어떤 가면을 썼는지 알았더라도 그 날은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예의였다. 개중에는 가난한 이가 있어 허름한 천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리기도 했지만 아무도 무시하지 않았다.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즐기려는 상류층 사람들이 종종 그런 차림새를 흉내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밤은 흥청망청 흔들렸다. 대부분의 부부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서지만 어느새 인파에 휩쓸려 서로를 잃고 다른 부인과, 혹은 다른 남편과 어울렸다. 축제의 밤이 끝나면 둘은 집 앞에서 흐트러진 매무새로 마주치고 서로에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 대신 밤새 같이 있었던 양 다정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서로에게 충실한 부부도 있었으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이 진짜 자신의 남편, 아내인지 옷과 가면만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들은 딸이 향수냄새와 불빛, 음식냄새가 어지러운 거리에 나가는 것을 금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일단 집 밖을 나가 인파에 섞이기만 하면 부모, 유모, 정숙한 미덕을 강조하는 신부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처녀들은 바느질하는 척하며 부모가 집을 나서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면에서 일찍 부모를 여읜 이비야 란도는 다른 처녀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축제날은 평소에 불운으로 느껴지던 현실도 뒤집어놓았다. 거기에 이비야는 말괄량이 축에 속하는 아가씨여서 정숙한 척 하느라 가면축제와 같은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단 한 명, 이비야를 어릴 때부터 돌봐오던 독실한 유모 나랴가 광란의 도가니로 나서지 못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줬지만 늙고 병든 나랴는 하루의 반 이상을 꾸벅꾸벅 졸며 지냈고 방금 전에 자신이 한 말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 날 이비야는 졸고 있는 유모의 바로 코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붉은 드레스를 갈아입으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한 자기방어책이 있었다. 나랴가 성인의 재래라며 존경해 마지않는 안델레코 신부가 약 10년 전부터 정체를 숨기고 가면축제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 아직 어렸던 이비야는 축제날 어른들 몰래 길가로 나섰다가 사람들에 휩쓸려 길을 잃어버렸다. 얼굴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훌쩍훌쩍 거리는 소녀를 재미있게 생각했는지 짓궂은 몇이 술을 권했고 그 자리에 있던 안델레코 신부는 이비야가 커다란 잔을 비우고 두 번째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직업적 도덕성이 분출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비야의 손을 이끌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줬다.

  "앞으로는 혼자 다니지도, 이런 곳에 나오지도, 술을 마시지도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안델레코 신부는 성당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설교를 길게 이으려다 꿀꺽 삼켰다. 그러나 이비야는 예민한 귀를 통해 그가 안델레코 신부라는 것을 알아본 뒤였다.

  "지옥에 간다구요?"

  안델레코 신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비야는 술에 취해서도 영리한 아이였다. 그녀는 안델레코 신부가 침묵하는 사이 부모님과 유모, 친구에게 가면축제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어휘를 총동원해 확고하게 맹세했다. 이비야가 성신과 성부와 성자를 끌어다 붙이며 하나님이 노할 짓을 하는 동안 안델레코 신부는 가면 속에서 수치심으로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이비야의 등을 집안으로 떠밀고 억지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처음 접해본 술로 인해 이비야는 제풀에 지쳐 잠들어 버렸고 안델레코 신부는 그녀를 현관에 자게 버려 두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 뒤로 안델레코 신부는 이비야를 보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시간은 훌륭한 약이어서 지금의 안델레코 신부는 고해실에서 이비야와 마주 앉으면 그때의 일로 농담을 할 정도로 융통성이 생겼지만.
  이비야는 드레스를 입은 뒤 그녀의 어머니가 쓰기 즐겼던 금색의 가면을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유모의 앞을 지나 밤거리로 나섰다. 드레스 밖으로 나온 이비야의 흰 목과 젊고 건강한 팔은 많은 남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비야는 여왕이 된 기분으로 춤을 추었고 가장 마지막 춤 상대가 되었던 것이 레도 아솔바였다.
  레도 아솔바는 좋은 집안에 더불어 천성적으로 재치와 우아함을 타고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많은 아가씨들이 그에게 말이라도 한번 붙여보기 위해 줄을 섰고 부모들은 그가 자신의 사위가 되기를 열망했다. 이비야 란도도 레도 아솔바를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레도 아솔바가 자신의 춤 상대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머리 속에는 짧은 축제의 밤을 좀더 즐겁게 즐기려는 생각뿐이었다. 이비야는 상대인 레도 아솔바도 무시하고 나비처럼 춤을 췄다. 한편 레도는 춤을 추는 내내 자신의 팔 안에서 쾌활한 동작으로 빙글빙글 도는 아가씨가 누구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말을 걸거나 에스코트 할 때도 깔끔한 매너를 선보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면 밑을 궁금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침내 이비야는 지쳐 쓰러질 정도가 되어 춤을 멈췄다. 그는 친절을 유지하며 한사코 거절하는 이비야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 레도가 빙그레 웃으며 불편하냐고 넌지시 묻자 이비야는 걸음을 멈추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으면 가세요. 지금쯤 유모가 깨서 절 찾고 있을지도 몰라요."

  레도 아솔바는 자신의 자존심을 밟아놓는 아가씨의 정체가 궁금해 참지 못하고 이비야의 가면을 벗겼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이비야는 예상치 못했던 무례에 참지 못하고 따귀를 때리기 위해 레도에게 가면을 벗을 것을 요구했고 그가 레도 아솔바라는 것을 알고 놀랐을 때는 얼굴 붉힐 사이도 없이 자신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갈긴 뒤였다. 이비야의 손이 어찌나 매웠는지 레도는 눈앞이 빙글 돌아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이 이비야의 입술에 키스하고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때 이비야를 찾아 나섰던 나랴가 둘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둘은 온 도시 안에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퍼짐과 동시에 결혼해버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사소한 걸림돌은 있었다. 아솔바 집안에서 이비야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과 축제에서 외간남자의 팔에 -물론 이 부분에서 레도가 분별있는 아가씨를 꼬드겼다는 나랴의 주장은 무시되었다- 안겨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그녀의 행실이 나쁘다고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안델레코 신부가 이비야에 대한 칭찬과 지지를 아끼지 않자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 안에서 이비야만큼 안델레코 신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규수는 없을 것이었다. 덕분에 나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무사히 결혼시키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이후로 이비야는 가면축제가 되면 예의 붉은 드레스를 입고 금색 가면을 쓰고 사람들에 휩쓸려도 놓치지 않도록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은 도시 안에서 가면축제를 온전히 함께 보내는 유일한 부부였다. 사람들은 신혼이 지나도 허용된 일탈을 즐기지 않는 이 부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사랑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특히 축제를 기다리는 처녀들은 아솔바 부부를 매우 좋아했다. 축제에 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 곧 누그러지는 기색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레도와 이비야가 축제를 함께 보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레도의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미아 바로아였다.


  레도 아솔바는 이비야의 엉뚱한 구석이 있는 쾌활한 성품을 좋아했다. 하지만 레도의 예상과는 달리 결혼한 후에도 그녀의 성품은 누그러지지 않아서 그에게 약간의 두통을 안겨주었다. 이비야는 꽤 알뜰하고 훌륭한 주부였지만 행동은 여전히 철모르는 처녀 같았다. 바느질과 자수를 하느니 물건을 산다는 핑계를 대고라도 밖에 나가고 싶어했고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남편이 자신을 연인처럼 숭배해주기 바랐다. 이비야가 연인이었다면 분명 레도는 그녀의 아담한 손발과 잘록한 허리를 찬양했겠지만 불행히도 이비야는 그의 아내였다. 그는 연인처럼 구는 아내에게 약간의- 아주 약간의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집안의 하녀 중 입이 무겁고 일솜씨가 뛰어난 미아 바로아를 아내 같은 연인으로 두고 있었다. 미아 바로아는 검은 머리카락에 큰 손발을 지닌 여자로 일솜씨 외에는 눈에 띄는 구석이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솔바가의 신사인 레도가 그녀를 연인으로 선택했다는 것뿐이었다. 미아는 이비야의 남편에 대한 도덕성과 이상, 이러한 아내의 비위를 맞추려는 레도로 인해 축제일이면 홀로 집안에 남아 바느질을 하거나 청소를 하고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녀도 옷을 차려입고 축제에 나간다면 축제일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겠지만 불행히도 레도는 그녀가 홀로 축제를 즐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아는 때로 이비야 마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레도와 미아의 관계는 집안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레도는 이비야가 그것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비야는 그런 면에서는 고집이 세고 이상주의적이었다. 그녀의 완강한 자존심은 남편에게 신이 허락한 아내 이외의 여자가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느니 눈을 가려버릴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레도는 미아와의 관계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비야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고해성사를 통해 이 비밀을 융통성 많은 안델레코 신부와 공유하고 있었다. 어쨌든 아내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레도는 가면축제를 몇 달 앞둔 어느 날 저녁, 이비야가 이렇게 말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여보, 난 물고기가 될 거예요."

  그 날, 이비야는 언제나처럼 하루동안 사용할 식료품을 검사하고 남편이 입을 옷을 고르고 하녀들에게 맡기기 어려운 고가의 집기들을 손수 닦는 등 모범적인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일상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남편의 무릎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이비야가 읽고 있던 책은 레도가 가져다 준 것으로 세상의 온갖 신기한 이야기를 모아둔 책이었다. 바다 건너 새로운 대륙에 산다는 배에 입이 달린 식인종과 범선을 한 입에 삼키는 고래, 수백 수천 년에 걸쳐 부활을 기다리는 이집트의 미이라등 이비야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이비야는 그 책을 이미 끝까지 읽은 상태였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은 두꺼웠고 언뜻 훑어보기에도 화려한 솜씨로 그려진 펜화가 들어 있었다. 이비야가 처음 그 책을 받았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던 것은 고래와 미이라의 그림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고래의 반질반질한 피부를 훑으며 '이렇게 커다란 물고기도 있군요'하고 감탄하자 레도는 웃음을 지으며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라고 정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그림 속의 고래에게는 커다란 비늘이 달려 있었다. 때문에 이비야는 레도의 설명에도 아랑곳 않고 그것이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과연 저 커다란 바다 물고기의 입에 배는 맛있을까? 거대한 비스킷 같을까? 이비야는 과자를 씹을 때마다 즐거운 상상에 사로잡혔다. 한편 미이라의 그림은 이비야에게 혐오감을 자아냈다. 관속에 누운 미이라는 붕대가 반쯤 풀려 보기 싫은 까만 팔과 두 개의 구멍으로 남은 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비야는 그것이 인간이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레도는 그런 책으로 이비야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의 외출을 막는 데에는 책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독서를 막지 않았다. 이비야는 숲 어딘가에 요정의 원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늑대인간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문명화된 도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레도 아솔바는 아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이번엔 인어로군'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되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물고기가 될 거요."

  이비야는 평소처럼 고개를 젖히고 웃는 대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대고 있던 머리를 떼고 남편을 보았다.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으로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레도는 언제나와 같이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이비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득 깨달은 그 날은 변화의 첫날이었고 그녀는 어떤 누구도 느껴보지 못했을 종류의 예감에 휩싸여 침묵했다. 이비야의 머리 속에서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자신의 몸에 일어날 변화가 빠르게 감지되었다.  

  "당신,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했죠?"

  그녀는 남편의 바짓단에 묻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물었다. 레도는 건성으로 그래, 라고 대답했다. 이비야는 눈을 크게 뜨고 남편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인간의 조상은 물고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레도 아솔바는 이비야가 잠들면 미아 바로아의 방에 가기로 마음먹고 밤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아내의 목소리에 담겨진 절박함을 읽어낼 수 없었다.

  "여보."

  이비야는 도움을 구했지만 레도는 언제나 그랬듯이 친절하고 사려 깊은 남편의 태도로 그녀의 손에서 흘러내린 책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비야는 체념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녀의 눈에는 가시처럼 변한 손가락과 그 사이에 자리한 물에 젖은 피막이 보이는 듯했다.
  그날부터 이비야는 문을 꼭꼭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레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간 계속된 이비야의 은둔이 주일에까지 이어지자 그로서는 이유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성당 신도석 앞쪽에 위치한 아솔바 집안의 지정석 한 곳이 휑하니 비어 있는 것이 사람들과 안델레코 신부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부인이 어딘가 편찮으신지 묻는 사람들의 질문 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레도는 이비야의 방문에 노크했다. 레도는 몇 번 부드러운 설득을 해보았으나 이비야는 침대에 누워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미소만 지었다.

  "내가 물고기가 되면 바다에 풀어줘요."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큰 물고기로 자라서 배를 와작와작 씹어 먹으려는 거지?"

  "네. 와작와작."

  레도의 농담에 답하는 이비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레도 아솔바는 아내가 이토록 심한 변덕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비야의 방을 나오는 레도에게 미아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알아채신 건 아닐까요?"

  "글쎄, 그냥 꾀병처럼 보이지만."

  레도는 고개를 저었다. 미아 바로아와의 사이를 눈치챘다면 이비야의 성격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하기보다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당장 따지고 들어야 옳았다. 레도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비야가 공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비야 란도는 공상으로 인해 두문불출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환상은 밖에 대한 끝없는 동경에 있었고 언제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레도는 도시 사람들의 호기심과 제멋대로 떠돌 소문을 예상하며 두통을 느꼈다. 그는 미아에게 이비야를 적당히 잘 돌볼 것을 부탁하고 사람들에게 이비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대한 변명을 궁리했다. 미아는 꾀병이라는 레도의 말에 드물게도 싫은 기색을 비쳤다. 그 동안 이비야 란도는 그토록 싫어하던 바느질에 몰두했다. 그녀가 만드는 것은 새로운 붉은 드레스였다. 이제껏 배운 모든 솜씨와 정성을 다하는 드레스는 완성되면 도시의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것이 분명했다. 이비야는 자르고 주름을 잡고 꿰맸다. 장신구를 고르고 리본을 달고 진주를 붙였다. 그녀는 곧 바늘을 잡기도 버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도 아솔바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이 완만히 변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중 눈치 빠른 하녀는 이비야가 임신하거나 병에 걸렸거나 둘 중 하나라고 결론을 내리고 의사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물고기가 된다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으로 들렸기에 레도는 도시에서 가장 고명한 의사인 73세의 베토 페라 박사를 불렀다. 베토 페라는 이비야가 방에 틀어박힌 지 일주일만에 그녀를 진찰할 수 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가서 그 방이 매우 어두운데 놀랐고-그는 밤눈이 어두웠다- 맥을 짚기 위해 더듬거리며 잡은 이비야의 손목이 차가운 데에 놀랐다. 베토 페라가 보기에 이비야 란도는 임신이 아니었다. 병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의심 가는 것이 없었다. 베토 페라는 따뜻한 것을 잘 먹이라는 애매한 처방만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비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토 페라의 뒷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남편의 도움을 포기한 이후로 그녀는 물고기가 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한번 체념하고 나자 그녀의 낙천적인 정신은 상황을 즐길 것을 명령했다. 그녀가 방에 틀어박힌 것은 오로지 레도 아솔바가 변화하는 그녀의 모습에 느낄 혐오감 때문이었다. 몸은 점차 사지가 퇴화해 형태가 뭉그러지고 운신이 힘들어질 것이다. 차츰 숨을 쉬는 것이 고통스러워지고 차가운 피는 차가운 물을 원할 것이다. 눈꺼풀은 투명해지고 체모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머리카락. 이비야 란도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숱 많은 다갈색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이비야는 베개에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뺨에 가져갔다. 아마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비야의 걱정거리는 고통이 아니라 몇 달 뒤에 다가올 가면축제였다. 그때쯤이면 그녀는 충분히 물고기화한 다음이어서 붉은 드레스를 입지도, 가면을 쓰지도, 남편의 손을 잡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가면축제에 남편을 홀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비야의 변화는 그녀 스스로가 생각한 것처럼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녀의 몸에는 비늘이 돋아나지 않았고 아가미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은 물 속을 헤엄치기보다는 공기 중에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레도는 이비야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아주지도 않았다. 그는 밖으로 돌아다니던 이비야가 얌전하고 수줍은 아내가 되어 집안에 들어앉았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물론 신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안델레코 신부에게는 이비야의 꾀병에 대해 말해두었다. 신부는 가정을 축복한다는 명목으로 저택을 방문했지만 이비야에게서 별다른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방안에 있다 뿐이지 매우 쾌활했다. 안델레코 신부는 미사에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자리를 떴다.
  미아 역시 처음에 안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녀는 레도와 안델레코 신부, 두 남자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보지 못하는 주인마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아는 이비야의 느린 변화에 충격을 받았지만 레도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꾀병을 부리며 단식을 하는 마나님의 장난에 오기가 나서였다. 미아의 눈에는 이비야가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어린아이같이 보였다. 더군다나 레도는 그런 이비야에게 진력을 내며 미아에게 더한 관심을 쏟아주었다. 원래도 공공연한 사이였지만 이비야의 눈이 집안 곳곳에 미치지 못하는 지금, 미아가 집안의 안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아는 몇 번 정도 이비야를 보러 가라고 레도의 등을 떠밀 수 있었지만 레도의 미소에 이내 포기했다. 마침내 미아가 마님이 음식을 감추고 있는 것도 꾀병을 부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바싹 마른 여인이 예전의 이비야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입가에 어린 쾌활한 미소뿐이었다. 미아는 두려움에 떨며 레도에게 마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마님께서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그 말에 레도는 웃으며 괜한 걱정이라고 했지만 미아 바로아는 다시없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레도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이비야를 찾았다. 방문을 열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선 그는 할말을 잃었다. 수척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도 그녀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비야의 팔은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았고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고 있었다. 끝없이 물을 마시는 데도 입술은 하얗게 갈라져 갈증을 호소했다.

  "맙소사."

  레도가 그것을 끝으로 침묵하자 이비야가 천천히 말했다.

  "말했죠. 물고기가 된다고."

  말하는 이비야의 목에서 큐큐거리는 숨소리가 흉하게 들려왔다. 레도는 아내의 입술만큼이나 하얗게 질렸다.

  "페라- 페라 박사님을 다시 불러야…."

  "병이 아니에요."

  하지만 레도 아솔바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창문을 열어 젖혀 햇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그는 그제야 이비야의 바싹 마른손에 들린 바느질감과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실꾸러미, 천조각을 보고 하녀들을 불러모아 꾸짖었다. 그는 미아 바로아를 시켜 이비야에게서 억지로 바느질감을 뺏었다. 이비야는 손을 뻗었지만 곧 포기하고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레도는 베토 페라를 불러 진찰을 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베토 페라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병입니까?"

  레도 아솔바가 물었다. 베토 페라는 대답하는 대신 레도의 얼굴을 살폈다. 이비야 란도의 몸에는 여전히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베토 페라가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으나 73세가 되도록 볼 꼴 못 볼 꼴 다 본 그도 인정할 수 없는 가정이었다. 베토 페라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대답하는 대신 지병을 핑계삼아 레도 아솔바의 집을 떠났다. 베토 페라는 레도 아솔바가 이비야 란도를 굶기고 학대했다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페라 박사가 종종걸음으로 저택을 뜨자 레도는 미아를 불렀다.

  "어째서 이렇게 될 때까지 말하지 않은 거야?"

  레도의 추궁에 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꾀병이라고 생각했어요."

  레도는 분노했지만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터라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비야 란도는 그날부터 밝은 빛과 하녀들의 끊임없는 보살핌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녀는 손끝하나 마음대로 까딱할 수 없었다. 레이스 단만 정리하면 마무리 단계였던 드레스를 떠올리며 이비야는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내 바느질감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지만 미아 바로아는 주인님의 명령이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비야 란도는 눈에 띄게 힘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표현에 따라서 물고기로 변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고 수분을 잃은 몸이 미라처럼 변해갔다. 보다못한 미아 바로아는 레도에게 말해 바느질감을 가져와 자신이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아가 보기에도 안타깝도록 예쁜 드레스였다.

  "이걸 입고 주인나리와 같이 축제에 가시려고요?"

  미아는 최대한 병자를 향한 질투와 슬픔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비야는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미아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축제일… 난 물고기가 되서 물에 들어갈 거야. 그러니까 그건 네가 입어."

  이비야의 눈은 기묘한 빛으로 반짝였다. 미아는 생선의 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되어 오싹해졌다. 미아는 재빨리 드레스로 시선을 옮겨 바느질에 전념했다. 그런 미아를 이비야는 약간의 심술과 즐거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드레스가 완성된 날, 미아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물빛 천을 장만했다. 미아 바로아가 만든 것은 비늘무늬가 잡힌 잠옷 한 벌이었다. 그녀는 조개껍데기 모양의 목걸이와 귀걸이도 구해두었다.
  마침내 축제의 밤이 되었을 때 이비야는 인간이라기보다 좀더 낯선 무언가로 보였다.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가죽 밑으로 뼈가 비치는 몸. 이비야는 괴로운 표정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잠들어 있었다. 말도 거의 없어져서 단음절로 내뱉는 것은 물이 전부였다. 레도는 한숨을 쉬었다. 집은 텅 비어있었다. 미아 바로아를 제외한 하인과 하녀들은 모두 놀러 나간 뒤였다.

  "마님도 예쁜 옷이 입고 싶으실 거 같아요."

  미아는 레도에게 만들어둔 옷을 건넸다. 레도는 말없이 잠옷을 쳐다보고는 부드럽게 이비야를 불러 깨웠다. 밖이 시끄럽기 때문인지 안은 더욱 조용했고 이비야의 숨소리가 잠시 멎나 싶더니 부스스 눈을 떴다. 레도가 옷을 들어올리자 이비야는 곁에 서있던 미아 바로아를 쳐다보고는 눈을 깜박여 고개짓을 대신했다. 레도는 잠옷과 장식을 이비야에게 걸쳐주었다. 이비야의 손가락이 잠옷을 스치고 지나가며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어렸다. 그녀의 바싹 마른 몸뚱이는 잠옷의 물결무늬로 인해 진짜 한 마리 물고기처럼 보였다. 레도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당신을 바다에 놓아주는 대신이야."

  이비야의 미소가 짙어졌다. 레도는 미아 바로아의 도움을 받아 물이 너무 차갑지 않도록 온도를 적당히 맞춘 뒤 이비야를 안아 욕조에 앉혔다. 물에 젖은 잠옷이 찰박거리는 레도의 손짓에 맞춰 하느작 흔들렸다. 물 속에 들어가자 조금 편해졌는지 이비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무언가를 묻는 듯 레도를 향해 움직였다. 레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물고기야."

  이비야 란도는 입술을 조금 움직여 단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레도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되뇌었다.

  "와작와작."

  이비야는 휴, 하고 숨을 내쉰 뒤 눈을 감았다. 그녀의 편안한 표정을 확인한 레도 아솔바와 미아 바로아는 욕실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이비야는 자신의 흉한 숨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문 너머에 함께 서 있을 레도와 미아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 이비야는 몸에서 천천히 힘을 빼고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수면이 약간 흔들렸을 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욕실을 나온 레도와 미아는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미아 바로아는 레도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이비야가 부탁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잘 틀어 올린 뒤, 금색 가면을 썼다.

  "이제 축제에 가요."

  드레스는 이비야보다 키가 큰 미아에게도 매우 잘 맞았다. 레도는 우울한 기분을 잠시라도 떨치기로 마음먹고 미아의 손을 꼭 잡았다. 현관문을 열자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밤의 희미한 빛 아래에도 또렷한 색깔의 옷들이 서로 부대껴 휘감기는 것이 보였다. 그 속으로 한 걸음 내딛자 매년 보이는 낯익은 옷의 남녀에게 의례적인 축제의 인사말이 쏟아졌다. 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축제의 밤이 끝나도록 서로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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