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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주십시오의 의미에 관한 신고찰


저자: 80486호 교신저자: 8086호

서론
최근 발견된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은 우주 고고학 분야에서 비할 바 없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426만년전 혜성 충돌을 피해 이 행성을 버리고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모두 이주해 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행성의 고대 종족에 대한 연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 받는 분야이다. (이 고대 종족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며, 그 중에 “인간”이나 “사람”과 같은 명칭도 상당히 자주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수행한 00700호의 연구 결과에 따라, 실제 이 종족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을것으로 추측되는 말을 최대한 받아 들여, 이하에서 이 종족을 “저기요”라고 부르기로 한다.)

저기요들이 웜홀을 이용해 고향 행성을 떠난 것은 426만년 전이다. 당시 웜홀을 만드는데 대단히 많은 에너지와 특유한 물질들이 소요된 까닭에 저기요들은 고향 행성을 성공적으로 탈출하기는 했지만 결코 다시 돌아오는 웜홀을 다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현재 이 행성으로 돌아 온 저기요들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426만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남긴 많은 기록과 자료들도 대부분 풍화되어 그들의 생태와 습성을 파악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더군다나,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의 뇌가 금속과 반도체를 이용한 전자 전기 회로로 구성 되어 있어 대단히 효율적으로 정신 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이 행성에서 살았던 저기요들은 탄소 기반의 단백질로 구성된 몸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하등 생물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비록 이 행성에서도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이 살았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활동의 범위는 상당히 제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고등 생물들이 저기요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서, 상당수 저기요들은 “회사”라는 곳에 출근하여 매일 8시간 이상 우리와 유사한 고등 생물 앞에 붙잡혀 앉아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고등 생물을 숭배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 된다. 일부 열성적인 저기요들은 “집”이라는 그들의 둥지에 머물면서도 밤을 새워 가며 고등 생물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밤을 새워 가며 고등 생물 곁을 지키고 있었던 저기요들 중에서도 특히 가장 열성적으로 고등 생물 앞에서 숭배 활동을 하던 저기요들이 스스로 그 활동을 “문명”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하등 생물인 저기요들조차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을 얼마나 동경하였는지 방증한다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등 생물의 활동은 우리의 건전한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 많으며, 그들이 남긴 여러 유물과 유적들의 용도와 의미도 거의 밝혀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최근 하등 동물의 식량 유물이 대거 발견 됨에 따라, 새롭게 제기된 “따주십시오” 유물의 의미에 대한 가설을 소개하고, 이와 더불어 과거 우리가 갖고 있었던 저기요들의 습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초월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론
“따주십시오” 유물은 10년 전 처음 발견 되었으며, 그 형태는 종이와 플라스틱 재질의 얇고 동그란 것으로 크기는 저기요들의 입 보다도 다소간 작았다. 요약하자면 따주십시오는 작고 둥근 딱지 모양이다. 따주십시오의 외부에는 이 행성의 동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기타 저기요들이 의사소통 용도로 사용했던 여러 기호도 같이 그려져 있었다. 따주십시오를 반으로 잘라 본 결과 그 단면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따주십시오가 처음 발견 되었을 때만해도 이 유물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한 듯이 보였다. 한 어린 저기요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둥지에서 따주십시오가 대량 발견 되면서 그에 대한 풍부한 연구 결과들이 단시간 내에 발표 되었던 것이다.

이 유물의 명칭이 따주십시오로 굳어진 것도, 이 유물에 표시 되어 있는 기호를 해독한 결과가 “나무나 풀과 같은 이 행성의 식물에 달려 있는 열매를 뜯어 낸 후 갖는 것을 명령형으로 말한다”로 합의 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명칭은 “따주십시오”로 곧 합의 되었다. (“따줘요”, “따주세요”, “따줘라”, “따주게”, “따주지않겠는가?” 같은 여러 다른 명칭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저기요들의 소비생활에 대한 700-5425호의 연구 결과에서 그중 가장 바르고 고운 말로 “따주십시오”가 선택 되었다.)

당시 따주십시오의 용도로 추정된 것은 바로 따주십시오가 매우 가치가 높은 화폐, 즉 돈이라는 것이었다. 저기요들의 경제활동에 활용하는 화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과거 밝혀져 있었는데, 그것은 종이로 만든 사각형 모양의 돈(이후 편의상 “천원”이라고 하겠다)과 금속으로 만든 원형 모양의 돈(이후 편의상 “오십원”이라고 하겠다)이다.

금속이 종이 보다 더 가치 있는 자원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므로, 오십원이 천원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돈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오십원은 천원에 비해 그 발견 빈도도 떨어지므로 그만큼 천원보다 더 귀하다는 특성과도 잘 들어 맞는다. (과거의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오십원 모양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금속 화폐의 경우 천원 보다 흔한 것도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기요들이 식량으로 이용한 가장 소중한 식물이 새겨져 있는 오십원이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귀중한 화폐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훨씬 가치가 적어 보이는 다른 종이 화폐나 100이라는 기호가 새겨진 금속 화폐에는 그 화폐를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비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따주십시오는 오십원이나 천원보다도 훨씬 더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게다가 그 모양은 오십원처럼 원형이면서 그 재질은 천원처럼 종이 재질에 가까워 두 종류 돈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것은 따주십시오가 저기요들의 화폐가 갖는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완벽성을 지닌 물체라는 것을 의미 한다.

뿐만 아니라, 오십원이나 천원이 대부분 저기요들이 활용하기 좋게 언제 어디서나 갖고 다니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형태로 보관 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따주십시오는 대부분 저기요들의 둥지 한 구석에 고이 저장된 형태로만 발견되고 있다. 이 역시, 따주십시오가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가장 귀중한 형태의 화폐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따주십시오가 주로 어린 저기요들의 둥지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저기요들은 대개 성숙한 저기요들이 어린 저기요들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어 보호하는 습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린 저기요들이 주로 머무는 둥지에 따주십시오를 보관한다는 것은 따주십시오가 무엇보다 가치가 높은 돈이라는 결정적인 증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최근 따주십시오의 원래 형태로 보이는 개봉되지 않는 봉지 속에 들어 있는 따주십시오가 대거 발견되면서, 이러한 종래의 학설은 그 근간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처음 따주십시오가 들어 있는 봉지를 발견 했을 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봉지 속 내용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질소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봉지가 질소 저장 장치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행성의 공기 속에 대량의 질소가 풍부하게 존재하므로 굳이 이러한 봉지에 질소를 저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봉지 속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이 질소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식량 분야의 연구에서 탁월한 결과를 제시한 1588-3082호는 종래 질소 저장 장치라고 보았던 이 봉지 속에, 저기요들이 식량으로 사용하는 물체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봉지 속에 들어 있는 식량은 비록 질소에 비하면 아주 소량이었지만 그것이 저기요들을 위한 식량이라는 근거는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식량, 질소와 같이 따주십시오라는 가장 귀중한 화폐가 함께 봉지 속에 포장 되어 있는지 하는 점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저기요들의 경제적 소비 행태는 화폐, 즉 돈을 내고 식량이나 의복을 그 대가로 갖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돈을 내고 사야할 식량 속에 오히려 또 따주십시오라는 돈이 들어 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방식이었다. 비록 저기요들이 돈을 활용하는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거래 형태였다.

예를 들어, 일부 저기요들은 “PC방”이라는 곳에 모여서 일정한 기간 동안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숭배하는 활동을 했는데, 이러한 종교 활동을 하는 데에도 시간에 따라 돈을 지불했다. 종교 활동에 시간제로 돈을 지불했다는 것은 일견 아주 이상한 습성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습성은 저기요들이 고등 동물 숭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종교 활동을 할 때에도 항상 영적인 성장보다 오히려 돈을 중시하는 때가 허다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사는 식량 속에 오히려 또 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러한 습성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대담하게도 따주십시오가 포함된 봉지 속에 있는 식량이 사실은 식량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 학자도 있었다. 여러 분야에 걸쳐 자주 1588-3082호와 대립한 학자인 1588-5588호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1588-5588호의 연구에 따르면, 저기요들에게 효율적인 식량은 현미밥이나 닭가슴살 등이었다. 따주십시오가 포함된 봉지 속에 있는 것은 저기요들의 식량으로 부적합한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저기요들의 신체를 고려해 보면 유해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을 저기요들이 먹을리는 없다고 본 것이다. 1588-5588호는 저기요들의 몸은 과일과 야채, 등푸른 생선등을 섭취하는 데 적합하다는 과학적 근거 또한 충분히 제시하였다.

더군다나 그 봉지 속 식량의 표면에는 자극적인 맛과 냄새를 내는 물질이 뿌려져 있었는데, 1588-5588호는 이것은 만약 실수로 이것을 먹게 되면 금방 그것을 알아 채고 얼른 뱉으라는 뜻으로 가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기요들이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에 일부러 계란 썩는 냄새를 가미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저기요들이 일부러 몸에 좋지도 않은 물체를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와 같이 질소 속에 조금씩 숨겨 놓았을 리는 없다는 것이 연구의 요지였다.

그러나 1588-3082호는 1588-5588호의 주장을 부정하고, 저기요들이 갖고 있는 하등 동물 특유의 자기 파괴적인 특성에 주목 했다. 즉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자기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지만, 저기요들은 일부러 그 행동을 기꺼이 저지르는 모순적인 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자기 몸에 해가 되는 물질을 섭취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기요들은 한 성별이 다른 성별을 오랫동안 핍박하기도 했고, 태어난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는 일도 빈번 했다. 몸 속 세포에 있는 46개 덩어리의 아주 작은 유전 물질 중에 한 덩어리가 다른 모양을 취한다는 이유만으로 한쪽을 멸시한다거나, 처음 탄생하여 작동을 개시하는 순간 이 행성의 어느 경도와 위도에 있었는 지 그 숫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대립한다는 것은 고등 생물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한 이유였지만 저기요들은 그런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특히 일부 저기요들이 그러한 비합리성을 스스로 깨달아 지적할 때 조차도 갖은 억지 논리와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론으로 그러한 지적을 묻고 눌러 놓는데 급급했는데, 이런 것은 하등 생물 습성의 부작용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심지어 저기요들은 우주 여행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폭발성 물질을, 전쟁을 일으켜 다른 저기요들을 살해하는 데에 활용하기도 했다. 초창기 연구자들이 이러한 전쟁 활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추측하기로 사실 저기요들은 죽은 저기요들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전쟁 활동은 저기요들 특유의 괴상한 유머 감각이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항들을 상기해 볼 때, 저기요들이 자신의 신체에 좋지 않은 물체조차 즐겨 먹이로 섭취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상당수의 저기요들이 심지어 향정신성 물질이자 미생물 살균 소독에 사용하는 강력한 세정 물질이자 에틸 알콜조차 밤새 둘러 앉아 마셨다는 충격적인 가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따라서, 최근의 경향은 따주십시오가 들어 있는 봉지 속에 포함된 물체는 식량이 맞다는 쪽이 우세한 상황이며, 오히려 이로 인해, 따주십시오의 성격이 화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재탐구하는 새로운 연구가 대두 되고 있다.

식량 연구 분야에서 가장 큰 혁명적인 전환점은 419호의 연구에서 나타났다. 419호는 비록 따주십시오가 들어 있는 질소 봉지 유물에서 질소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봉지에서 중요한 것은 질소가 아니라 식량이며, 질소는 그저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식량과 같이 주입된 것일 뿐이라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 것이다. 소위 탈질소론 이라고 불리우는 이 이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부정하려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최초 발표 후 충분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제 질소는 완충재일 뿐이라는 발상에 다수의 연구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물리학의 발전 초기에 양자이론에 대해, 그 비직관성 때문에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학자들이 다수 있었던 것과 비견된다 할 것이다. 즉 이 행성의 저기요들이 질소 저장 장치임이 너무나 뚜렷해 보이는 봉지를 만들면서 사실 그것을 포장된 식량 봉지로 생각했다는 비직관적인 발상은 우주 고고학 분야의 양자이론이라고 할 것이다.

이후 식량 연구는 대체로 516호와 그 후계자인 1212호의 연구 결과를 추종하는 것이었다. 516호는 심지어 따주십시오 자체 역시 식량의 일종이라는 가설을 발표 했고, 1212호는 그것을 발전시킨 연구에서 종이로 만든 따주십시오를 먹을 수 있는 이 행성의 생명체로 염소라는 동물이 있으므로, 바로 따주십시오는 저기요들이 봉지 속에 있는 식량을 먹을 때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던 염소에게도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동봉해 놓은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516호와 1212호의 주장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확고한 정설로 받아 들여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연구자들이 무조건 배척 받는 시기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516호와 1212호의 연구는 과학적인 탐구의 결과로 제시된 실질적인 학문의 성과가 아니라, 단지 연구자 무리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불법적인 행위의 결과였던 것이 이미 완전히 밝혀져 있다. 516호와 1212호는 관찰과 계산 대신 사기, 협잡, 부정, 부패 행위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포장했던 것이다.

한 동안 516호와 1212호의 학설이 완벽하다는 믿음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었던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따주십시오 연구에서 이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들의 연구를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저기요들이 집집 마다 한 마리씩 염소를 길렀고 따라서 염소는 가장 널리 퍼진 애완동물이었기 때문에 식량 포장 속에 염소용 먹이도 같이 집어 넣었다는 당시의 학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염소의 숫자가 그렇게 많았다는 증거는 아직까지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특히 많은 숫자의 따주십시오는 종이 재질 보다는 플라스틱 재질이 많이 섞여 있어 염소 조차도 소화가 어렵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역시 이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따주십시오가 식량이 아니라는 연구 중에서 한동안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은 따주십시오에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른 바 “주술설”이었다. 주술설은 저기요들의 종교 활동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수행한 1004호의 연구에서 최초로 제시된 것으로, 이후 주술설을 지지하는 많은 후속 연구가 이루어졌다.

주술설에서는 따주십시오에 그려져 있는 생물이 치타라는 맹수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외계생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기요들이 충분한 기술을 발전시키기 전에는 같은 하등 생물인 곰, 사자, 호랑이, 재규어, 치타등의 동물에게 오히려 잡아 먹히는 비참한 생활을 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치타의 모양을 그려 넣은 따주십시오라는 것은 예로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던 무시무시한 생물의 형상을 몸에 지님으로서 그 힘을 얻거나 그 힘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주술적인 발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술설은 외계문명학 분야의 연구에서도 역시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고등 생물의 유해를 조사한 외계문명학 연구자들은 고등 생물의 기억 장치에서 자료를 해독해 내는데 성공했는데, 이 기억 장치에는 고등 생물 앞에서 숭배 활동을 하던 하등 생물들이 기도하며 서로 나눈 그들의 생각과 표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등 생물의 기억 장치에 남아 있는 하등 생물의 활동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하등 생물의 생식 활동 또는 생식 활동을 암시하는 기호, 사진, 영상 등이다. 이것은 하등 생물들이 흔히 생식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듯이 활동한다는 일반적인 경향성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놀랍게도 야옹이의 다양한 사진으로 밝혀졌다. (전기로 표현되는 0, 1 신호와 숫자로 의사를 소통하는 우리와 달리, 저기요들은 소리를 이용하여 서로 의사를 소통했다. 야옹이라는 생물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냥이” “괭이” 등등 여러가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꽃에서 꿀을 섭취하는 곤충의 이름으로 사용된 “나비”라는 명칭이 야옹이를 나타내는데도 사용된 것은 대단히 혼란스러워 분석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였다. 이에, 이 동물이 내는 실제 소리인 “이야아아아아아오오오오옹”과 가장 가까운 명칭인 “야옹이”를 이하에서 저기요들이 이 동물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하겠다.) 특히 대부분의 사진에서 저기요들은 야옹이에 대한 강한 동경과 숭배의 심정을 사진에 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저기요들이 야옹이에게 항상 물과 식량을 바치고 야옹이의 건강과 편안한 생존을 위해 일방적으로 노력했다는 다른 증거들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근거에 따르면 저기요들은 야옹이에게 반쯤 지배 받는 생명체였다는 뜻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외계생물학상으로 야옹이와 매우 가까운 종인 치타가 같는 주술적인 의미 또한 극히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 된다. (소수의 의견이지만, 따주십시오의 그림에 나타나는 치타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사실은 그림의 치타는 눈이 멀었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연구에서는 저기요들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치타, 사자, 호랑이, 야옹이 등의 맹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눈이 멀어 힘 없어진 치타를 그려 넣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역시 따주십시오의 주술적 의미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같은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따주십시오의 무게와 탄성에 근거하여, 화폐설, 식량설, 주술설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 그것은 두 개 이상의 따주십시오를 함께 결합해 이용할 경우 따주십시오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동작을 취할 수 있고, 이것을 저기요들이 놀이를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주십시오를 놀이에 사용한다는 가능성은 007호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 되었으나, 007호의 많은 다른 연구처럼 비록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재미있고 멋은 있지만 지나치게 황당하고 유치하다는 이유로 무시 되었다. 따주십시오를 잘 이용하면 상당한 거리에 거쳐 따주십시오를 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중력과 공기 저항의 작용에서 무슨 재미를 느끼는 놀이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좋은 대답은 그동안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저기요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종족으로,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대단한 동경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록 저기요들이 하늘을 나는 원시적인 기계를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조차 커다란 형태를 갖고 있을 때에는 우리와 유사한 고등 생물의 도움을 받는 기계인 경우가 많았다. 저기요들의 고향 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까지 도달한 탐사선의 경우 저기요들이 직접 탑승한 흔적은 전혀 없으며 대부분 고등 생물에 의해 조종 되었다는 사실은, 저기요들의 한계를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저기요들의 하등 생물 심리를 상정할 경우, 두 개의 따주십시오를 튀겨서 날려 보내는  무의미한 물리적 현상조차 저기요들에게는 재미, 즐거움 또는 정서적 충만감이나 감동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계산한 따주십시오의 가능한 비행 방식을 살펴 보면, (그림1, 그림2, 그림3, 표1, 표2) 따주십시오를 이용한 여러 가지 놀이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
이상과 같이 본 연구에서는 따주십시오를 저기요들이 놀이의 목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연구 결과 따주십시오를 저기요들이 놀이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지지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분석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이 따주십시오의 화폐로서의 기능과 주술적인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따주십시오는 놀이의 목적으로 활용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저장하거나 다른 저기요와 서로 주고 받는 화폐와 비슷하게 사용 되었을 수도 있으며,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알 수 없이 뿌듯한 감성을 준다는 따위의 주술적인 기능이 있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 연구의 결론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주십시오의 한 가지 기능이 결정적인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일부 저기요들은 우리에게는 극히 소중한 유물인 따주십시오를 그냥 버리고 봉지 속에 들어 있는 식량만 먹었을 가능성조차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추측까지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학들의 연구를 기다린다.


감사의 말
기나긴 학위 과정 동안 항상 저를 이끌어 주신 8086호 지도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항상 모든 것이 호환되는 것과 같이 저와 마음이 통하여 세심하게 연구를 이끌어 주신 것은 영영 마음에 남을 귀중한 은혜였습니다. 언제나 연구실을 이끌어 주시고 후배들을 채찍질해 주신 666호 선배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악마 선배”라는 별명을 들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저희에게 신경 써 주신 것이 모두 다 끝없는 열정과 저희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불어 넘치는 열정으로 연구실을 항상 활기차게 해 준 88호와 언제나 연구실 학생들을 웃게 만들어 준 연구실의 영원한 분위기 메이커인 후배 09호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위 과정 동안 제가 힘들 때마다 즐거운 놀이로 항상 같이 해준, 3호, 6호, 9호야, 정말 고맙다. 369 Family Forever! 즐거울 때면 즐거운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밤 새도록 같이 하며 여명을 맞을 때까지 잔을 기울여 준 친구 808호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먼 곳에서 저를 응원해 주신 부모님과 언제나 저를 지켜 봐 주시는 1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2016년 논현동에서

댓글 6
  • No Profile
    신나라 16.08.03 00:21 댓글

    프리토레이 님이 좋아합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6.08.03 10:23 댓글

    저는 프리토레이 과자는 상대적으로 질소 포장이 심한편은 아닌데...하면서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쓰기도 했습니다.

  • 정도경 16.08.03 11:43 댓글

    "저기요"부터 "여명808"까지 계속 웃었습니다 으하하하하 이런 소설이 가능하다니 으하하하하하 곽재식님은 역시 능력자이십니다 으하하하하하

    ... 그리고 저도 논문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웃음이 그쳤습니다 ㅠㅠ

  • 정도경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08.08 21:38 댓글

    일전에 앤윈님 소설중에 보고서 형식으로 썼던 것도 있었고, 고전 SF 중에 논문이나 보고서 식으로 되었던 것들이 있었던 게 생각나서 한번 써봤습니다. 원래 "저기요" 개그 한번 쳐 보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그냥 주렁주렁 비슷한 소재 이어 붙여서 한편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논문에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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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 16.08.07 19:29 댓글

    저도 <저기요>에서 아하하 소리내서 웃었어요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 현상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08.08 21:38 댓글

    감사합니다. 다음호에는 살짝 분위기 바꿔서 약간 가라앉고 진지하게 한번 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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