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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냥 이 뭍(此岸)

2004.10.29 23:4710.29

  여자가 강을 건너노라 말하였을 때 사공은 놀랐다. 이 뭍과 저 뭍을 오가며 밥 벌이를 하는 처지라 이 뭍 말 사람도 저 뭍 말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런 사공도, 그 여자를 알았다. 여자는 비파를 잘 탔다. 천한 신분 사람들 사이에서 천한 옷을 입고 천한 머리를 하고 있어도 여자 목소리는 뉘보다 고왔다. 건달바도 긴나라도 가릉빈가도 여자 앞에서는 머릴 수그릴 거라고 말들 했다. 그런 과장된 칭송에도 이냥 부처님 노하실 터이니 그만 두시라 웃어 넘기는 속 좋고 이쁜 여인네. 그런 여자가 무엇 때문에 강을 건너는 것일까. 저 뭍 사람이 이 뭍 여자를 보러 오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이 뭍 여자가 저 뭍으로 건너는 일은 퍽이나 드물었다. 저 뭍은 이 뭍을 경멸하였으나 그래도 여자가 비파를 켠다 하면 이 뭍으로 사람이 모였고 배소를 손에 쥔다 하면 또 짜아하니 저 뭍까지 소문이 나곤 했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베갯머리에서 옛 이야기나 해 줄 적에 들어 본, 지명 낯선 말에서도 여잘 보러 오는 것이다.

  "무얼 그리 생뚱허니 보구 앉았시우? 안 들리우? 내사 이젠 때가 되었응게 이 강 건네다 달래는 게 아니우."

  사공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무슨 때가 되었느냐고. 답을 바라고 던진 말 아니어서 여자도 굳이 답을 주려고는 들지 않더라. 사공이 멋쩍어 손에 침을 퉤 뱉고 노를 턱 들려니까 여자는 먼저 배 위에 사내만치 큰 발을 턱 얹고는 요만한 보퉁일 바닥에 던진다.

  "자, 가우."
  "사흘 만에 잡는 논데 어딜 객을 하나만 태우라구 하슈? 섭하게스리."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배를 띄우라 재촉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어디 중한 환자 생겼든지 아니면 도망질을 놓는 이가 아니면.

  "가우. 이만 돈이믄 두엇 더 태우는 것보담두 한참 나은 건수 아니우?"
  "하이고. 웬 그런 돈을 다?"

  돈 욕심에 눈이 딱 뜨였다가, 사공은 다시 고갤 저었다.

  "에에이, 그래도 아니 되우. 아줌씨 사정이 어째 바쁜가는 내 몰라두, 사내 하나 여인네 하나 배에 둥둥 떠 당겼단 말 돌구 보믄 우리 마누라쟁이가 그만 내 사질 찢으려고 들 텡게."
  "흥."

  여자는 웃었다. 그리고 도적놈 발 소릴 들을 만치 큰 발로 바닥을 탕탕 치며,

  "그랴서? 갈 테유 안 갈 테유? 안 가겠담 내 헤엄을 쳐서라두 갈 터잉게 맴 가는 데루다가 해 보실테믄……."
  "아니, 아니, 갈 텡게 고정 하소. 마."

  앞섶을 활활 풀어 제치는 여자의 서슬에 질려 사공은 노를 들고 말았다. 물에도 살이 있으니 완고한 그 살 사이를 가만가만 헤아려 노를 담그고 물의 살을 제친다. 사람 결 모양 나무 결 모양 물에도 그리 맥이 있어. 어딘가에선 토닥토닥 물고기 튀는 소리처럼 물의 숨소리가 들리고 어딘가에선 상처처럼 터럭처럼 연꽃이 올라오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그래, 저 뭍에다 내림시롱 알아서 가시구랴. 보아허니 돌아올 맴두 아닌 모양임세, 내 내리다 놓군 다시 안 데불러 올티요. 돌아보도 아니할 터잉게 뒤서다가 불러두 온 소용이 읎을 것이우."

  여자는, 본디 자주 사람이 내리는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원했고 사공은 못 이겨 들어주면서도 볼멘 소릴 늘어 놓고 말았다. 여잔 답이 없다. 정말 이 뭍을 떠날 참인가 보다고, 사공은 생각했다. 여자가 부르는 노래도, 켜는 비파도 혹은 다른 악기 소리도 영 못 듣게 되었다. 안타까워할 사람들이 여럿 뇌리에 떠올랐지만 여잘 굳이 그리워 못 견딜 이는 하나도 없는가 보다 싶어 도로 처연해 졌다. 사공은 별로 슬프지가 않아 미안한 나머지 여자에게 자꾸만 말을 붙였다. 그때마다 여자는 웃음기 없는 거친 얼굴에 세월 지나며 깊어진 주름을 일그러뜨렸다. 도로 쏘아 붙였다.

  "뭐가 그리 아시고 싶은 게 많우?"

  사공은 그만 빈정이 상해 노를 힘껏 저었다. 물소리가 경패 소리처럼 울린다, 기실 그는 경패 소리 따위 들은 일 없었건만. 표대를 두른 선녀들이 나울나울 내리는 모양새로 봄 볕이 내리고 어느새 완연한 태양 아래 저 뭍이 보였다. 아른아른 자란 풀들은 물 올라 푸르고 가까운 땅은 붉고 싱싱했다. 무엇을 심어도 은혜로운 작물이 자랄 테다. 좋은 날씨, 좋은 땅, 좋은 바람과 좋은 볕이다. 좋은 물이다. 저 뭍은 이 뭍을 경멸했다, 뭍도 아니라고 수군거렸다. 저 뭍에 배를 대어 놓고 닳아진 손톱으로 팔뚝의 딱정일 떼고 앉았을 때 저 뭍 여인네들이 옹기종기 앉아 말하는 소릴 듣고 했다. 저 뭍엔 그저 괴물들이 오글오글 모여 살아선 이매망량 갈 곳 없는 원혼일랑 저 뭍으로 가느라 밤에 몰래 배를 탄다지. 달 어둔 밤마다 잘 대 놓은 배들이 감쪽같이 묶인 끈 풀고 물 가운데로 흘러 드는 건 다 귓것이 게 올라탄 탓이란 거여. 그리 수군대다 이따금 담이 제법 큰 여인네가 멀찍이서 돌을 던졌다. 여염 여인네들 팔뚝은 단이 검은 소매 사이로 유난히도 희고 가늘어 돌멩이들은 날아들다 말고 사공의 그림자 머리맡에 툭 툭 떨어져 구르곤 했다. 사공이 흘깃 시선을 돌릴라 치면 도깨빌 본 듯이 비명을 질러 대며 손나팔 만들어 물어 오는 것이다, 이보오 이 뭍 말에서 온 양반 어디 말을 좀 해 보시구랴 그 땅엔 정말 피 냄새가 나오 피에 젖어 사철 붉고 물에서는 사람 땀 맛이 나오 이매망량이 달 어둔 밤만 되면 빈 배를 타고 찾아 드오? 마마신이, 그 땅에서 아일 낳아 기른다더이다. 액운이란 액운은 죄 그 땅에 들러 사람 살을 파 먹는다더이다.
  사공은 상념을 깨치고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이 여자는 왜 이 뭍에 들었던 것일까. 이 여자는, 왜, 이제사 저 뭍으로 건너 가려는 것일까. 지닌 것을 모다 버리고 무얼 찾아 가겠다는 겔까. 애당초 기다리는 살붙이 하나라도 있었던들 이 뭍에 내쳐졌을 리 없으니 필시 홑몸일 게다. 이 뭍에 흘러든 다른 인생들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니, 그 살과 피를 까마귀 부리 아래에 두고 그 뼈를 바람 천 년 흘러 흙으로 돌리도록 하여도 돌아볼 이 하나 없는 몸이었을 테다. 이매망량 마마신이 손을 대어도 그 앞에 구명을 빌 이가 없는 몸. 기댈 데 없는 이들끼리 어깨를 붙이고 잠을 자고 이따금 배를 빌어 삼도 내(三途川) 를 건너듯 저 뭍을 밟았다. 땅은 자비롭고 물은 은혜로운 저 뭍, 인간들이 혈육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 뭍. 가을 하늘처럼 푸른 아청빛 기와를 나란나란 드리우고 둥근 돌로 담장을 짓는, 저 인간의 땅을 눈이 부셔하며 밟곤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어찌하여 저 뭍으로 가는 것인가.
  사공은 여자에게 노래를 청할까 생각하였지만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고개를 저어 청원을 삼켜도 한 꺼풀 의혹은 머리 꼭지에 들러 붙어 질척한 불쾌감을 주는 땀 모양 내내 정수리를 물고 있었다.

  "나루로 가지 말구, 저만치 딴 자리에 내려 주오."
  "그러소."

  돌이켜보면 그것은 여자가 아직 피지도 않은 매화 모양 상그럽던 연치였다. 그맘때 사공은 보퉁이 하나 안고 이 뭍에 내던져진 그녀를 처음 보았다. 죽은 사람처럼 옹송그리고 앉아 저 뭍만 하염없이 바로 보고 있는 그녀의, 흑단 같은 귀밑머리가 날릴 제 독기 서린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을 선명히 기억한다. 수리매가 달려들어 저 놈의 새까만 눈을 톡 쪼아 버려도 아마 울지 않을 거라고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여자는 먹지도 자지도 않는 사람처럼 이른 아침부터 샛별 뜨는 시각까지 하얗게 저 뭍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을 찾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기 시작하며 저 뭍을 바라보는 일 없어 졌지만 모두들 여자를 보면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주었더랬다.

  제 아무리 노랠 잘 허구 춤을 잘 춘들, 창기 계집인지라 맘에 맞는 사낼 낭군 삼을 수야 있겠나.

  한 번도 그녀 스스로 흘러간 이야길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그녀에 대해 알았다. 고개를 저으며 모두들 잊거라 그저 잊거라 말하였고 여자는 표정마저 지워진 듯이 허허로운 눈으로 주위를 비잉 둘러 보곤 하였다. 노래하고 춤을 추고 비파와 배소를 다루어도, 큰 북을 두들겨도 여자는 영 이 뭍의 사람이 아니었다. 목숨 붙은 인간이 도리천 너머에 오래 발 디딜 수 없는 것처럼 십 수 년이 흐르도록 여자는 이 뭍 인간일 수 없었다.

  "헤에, 이제사 저 뭍 가물가물하니 뵈는구먼."

  이 뭍엔 영 부닐질 못하더니 기어코 가실라는 구나, 하고 사공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 뭍이야 오갈 데 없는 목숨이며 유배를 온 사람이나 몇 붙어 사는 땅이지만 몇 번 해를 넘기면 그예 정 붙이고 눌러 앉곤 하였다. 떠나도 갈 데 없는 목숨이구 보면 새로 고향 꾸리는 게 두려울 건 또 무언가. 헌데도 여잔 떠나는 것이다. 받아줄 곳 있을 리 없는데도, 이왕에 받아줄 자리 있었으면 이 뭍까지 떨어지지도 않았을 터이니 필시 가족도 무엇도 하나 없을 터인데도. 그런데도 여잔 그저 떠나는 것이다, 보퉁이 하나 품에 안고 벌어 놓은 알량한 돈푼일랑 뱃삯이라며 훌훌 버리면서.
  이런 좋은 날에 십 수년 살던 뭍을 떠나는 여자다.
  그러나 자신이야말로 이런 좋은 날에 십 수년 살던 뭍 떠나는 여잘, 저 뭍에 전송하는 남자다. 그는 어깨에 힘을 넣어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물방울이 뱃전에 와서 부서졌다, 이따금 무지개가 살금살금 걸렸다. 자그만 무지개들이 대갓집 여인네들 스란에 넣은 꽃수처럼 조곤조곤 태어났다가 사공의 노 끝에서 피는 흰 거품처럼 조곤조곤 죽었다. 사공은 어째 어깨가 으쓱해 졌다. 귀중한 것을 전하는 사절처럼 괜히 가슴을 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검고, 길고, 거칠었다. 여자의 얼굴은 누르고, 나이 들고, 그러나 강단이 있었다. 뙤약볕에 길들고 한 겨울의 북풍에도 맨 살을 내 놓은 채 노랠 불렀던 여자다. 십 수년의 이 뭍이 그녀를 길렀고 그녀의 살에 갑옷처럼 세월의 살을 붙였다.

  "저 뭍은 말유, 아줌씨. 아실랑가 모르겄지만 저건 크단한 땅뎅이의 끝자락이란 거제. 이 뭍이랑은 영 틀리다구들 하드만유."

  이 뭍은 대하(大河)에 잘못 자란 혹. 하나의 섬이었다, 춥고 덥고 혹독한 땅으로 아무 왕도 이 뭍을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힘 없고 죽음 가까운 이들이 스쳐 지나고 이따금 정착하여 세월 보내다 일찍 죽곤 하였다. 여자도 사연 있어 이 뭍에 흘렀겠지, 허나 사공은 그리 묻지 않았다.

  "저그가 아줌씨 가는 데유?"
  "그렇소."

  짧게 답하더니, 저 뭍이 머지 않자 고개를 가만 들어 냉큼 말을 뱉었다.

  "나, 저 뭍에 두고 온 내 낭군을 죽이러 가는 거라오. 열 다섯 해 하고도 삼추(三秋)가 더 지났소. 이 뭍 말에 들 적부터 다짐 받아 온 거라오, 살아 있을 요량이믄 얼마든 죽이러 오라구."
  "낭군이?"
  "낭군이."

  한참만에 고개를 썩 젓는다. 목소리에 초조함인지 씁쓸함인지 모를 것이 묻었다.

  "아아니, 낭군 아니오. 천하에 썩을 놈이오. 응, 그렇소. 낭군 아니오."
  "있는 집 도령이우?"
  "낭군…… 낭군 아니라오. 이런 년 낭군은 아니오. 난 그저 그 놈 죽이러 가는 게요. 열 다섯 해 더 지내고도 살아 있으믄 남은 목숨을 이 년에게 준다고 하더이다. 내 받을 목숨이니 거두러 가는 것이오."

  저 뭍에 빽빽이 자란 풀과 억새와 나무가 있다. 바다가 의외로 가깝다 하여 소금기 내음이, 꼭 눈물 내음처럼 풍기는 저 뭍에 웬 사람이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꿈 자리 복잡한 데에 서성이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양 혹은 하마 꿈 안인 양 그 사람은 검은 옷을 차리고 붙박여 섰다. 배를 대기 위해 가까이 가서야 사공은 그것이 한 개 큼지막한 바위임을 깨달았다. 할멈들이 좋아라하여 눈시울 붉히며 떠들곤 하던, 그, 망부석 생각이나 하였다. 간 사람 잊질 못해 소매도 스란도 곱던 낯도 좋은 목청도 죄 버리고는 그래도 차마 떠나덜 못해서 이냥 돌이 되었다던가. 사공은 여자가 가리켜 보인 자리에 배를 대었다. 아무 것도 더 묻지 않았다. 어엿차 기합을 넣어 배를 최대한 가까이 대자, 여자 또한 아무 것도 더 말하지 않고 몽당 치마를 걷어 쥔다. 뱃전을 박찬다. 발목을 물에 적시고 풀에 긁히며 저 뭍을 디디고, 여자는 이쪽을 돌아 보며 웃었다.

  "고맙소."

  그 웃는 눈매를 보며 사공은 그녀마저 영 돌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하였다. 여자는 검정 돌 앞에 서서는 떠날 생각이 없어 뵌다. 사공이 노를 힘껏 저어 여자 표정을 읽지 못할 즈음까지도 여자는 도리어 제가 돌인 양 그리 서 있다가, 갑작스런 돌풍에 힘입어 목청을 돋구었다. 시원한 노랫소리가 바람인 양 한 자락 실려 든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일 테다. 여자는 흐느끼는 것처럼 목소리를 꺾고 자지러지게 웃는 것처럼 음을 내질렀다가 동댕이치듯 메다 꽂았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었더라, 고, 여자는 노래했다. 사공은 노를 저으며 조금씩 여자의 노래에서 멀어졌다. 다시 이 뭍으로 돌아와 배를 대고 매듭을 단단하게 지었을 적에 사공의 낡은 소매에 차고 찝찔한 것이 뚝 떨어졌다. 노를 젓는 일이 퍽으나 힘겨운 일인 탓에 한 번 왕복을 하고 나면 땀이 이리도 비 오듯 한다고, 사내는 묻는 이도 없는데 소리 내어 답한다. 훨훨 손사래를 치며 이리도 땀이 난다, 이리도 땀이 난다, 하고 외친다.

  ……사내놈이 영 못났더래, 서울서 내려온 잘난 벼슬아치였다는데 그만 저 여편네헌티 반해설랑 데불고 도망질을 놨다더만. 헌데 홀딱 잡히고 만 거여,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는 게지. 여잔 울고 불어쌌넌디 수가 있관데? 여잘 그만 변변찮은 시정배헌티 넘가 놓군 지 몸띵아리만 달랑 빼서 서울루다 올라가 버렸단 기여. 허기사, 천한 지집 반반한 낯짝이나 파묵구 살 건건인 아닌 게지. 보기 존 꽃두 열흘 보문 영 물린다구 말이제. 그 사내놈 뒷배경이라구 있는 기 하도 잘난 댁인지라 서울서두 기라성 겉은 댁 애기씨덜만 신붓감으루 나란히랴. 그런 작자가 어디 진심으루 천한 지집을 각시루다 거두었을까. 그저, 지집 몸만 서럽도록 되불었넝 게지.

  그랬지. 여인네들끼리 삯바느질이나마 모여 하면서 여자에 관해 그렇게 떠들었지. 사공은 저 뭍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가느다랗게 바늘 눈을 뜨고 물안개 뿌윰한 그 너머 바라보아도, 이제는 여자도 돌도 보이지 않았다. 강 건널 참인데 안 가냐고, 그예 강변에 나온 이들이 줄을 지어 물었다. 사공은 머뭇거리고 사공의 아내는 도끼 눈을 떴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허둥허둥 나섰다 오시더니 어데서 도깨비헌티 홀맀다 오싰나, 어째 온 객 앞에 두구 아픈 뱅아리 맹키로 그래 졸고 있는거야요? 아내가 캐물었다. 사공은 찬 물을 한 바가지 퍼 띠를 두른 머리통에 그대로 끼얹었다. 머리카락을 툭툭 털고, 튀는 물방울로 흰 바닥을 적시고, 침을 뱉았다. 밥 한술 뜨고 가야제, 배가 곯아 어디 노 젓겄나. 사공이 우렁하게 외쳤다. 어정어정 걸었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듣는다. 아내 지청구가 유난히 길고 지리하게 이어졌다, 사공은 부서진 갓모자 모양 어깰 늘어뜨리고 만다. 햇볕이 머리를 태울 것처럼 허공에서 타오른다. 시야에 어린 것마다 흐르는 물에 한 겹 비쳐 보는 양 아즐아즐 휘청인다.

  그 시정배 신랑이란 놈이나마 제대루 된 놈이 아니었대나. 그만 이러구저러구 사연이 구구절절 길어설랑은 그만 사낼 죽이구 저두 죽으려다 죽어지질 못허구 이 뭍에 툭 던져진 거랴. 그만 죌 지었구 보믄 죽일 법두 헌디 죽이진 않었어, 또. 통 죽을 팔자가 아닌 모양인지.

  하나가 떠들면,

  예로부터다가 죽겄다 죽겄다 하구 이 물구 댐비는 사람은 핑안히 데불고 가는 법 없는 거여. 저 하늘은 말여, 응, 갈아 논 칼 맹크로 시푸릉께 꼭 고로쿠롬 서슬이 서 가지군……. 에이그 그저, 서슬이 저래 퍼래 논께 어디 봐 주소 한다고 가련타 봐 주는 기 있넝가.

  하고 다른 하나가 받았다. 겨울이었던가, 눈이 푼푼 내려 이어 올린 지붕마다 집집이 흰데 여러 사람이 혀를 차며 떠드는 소릴 들었다. 들었더랬다. 사공은 노를 쥐고 다시 강을 건넜다, 해가 정수리를 비춰 따가운 볕에 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매로 차양을 만들어 드리웠다. 정해진 나루에 닿는 동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물은 용의 비늘처럼 빛을 쏟았다. 땀에 절어 나루에 배를 대고 객을 내려준 후 사공은 한동안 그늘을 찾아 쉬었다. 잠 사이로 꿈이 비집고 들어왔는데 무슨 색이었는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깨는 순간 잊었다. 그 사이 하늘 가득 어지러운 구름이 끼고 바람이 거칠어 졌다. 취색 나뭇잎이 소낙비 같이 쏟아졌다.

  여즉도 그 벼슬아치 낭군님을 못 잊소, 하였더니 못 잊는대. 아니 잊을 테면 어찌할 참이냐고, 이제 죄인 몸으루 되어 저 뭍엔 머리에 서리 내리구나 나갈까 싶은디 어찌할 참이냐구. 그리 물었더니 알 재간 없대. 허면 왜 아니 잊냐구 했는데 또 그냥 고갤 저어. 더 묻는다구 울 여잔가 하여 재차 물으믄 노랠 부르기두 허구 춤을 추기두 허는데 그저 보는 사람 맴이 아려서 오래 보덜 못할 구경인 거라. 그저, 이 뭍 사람들 오래 못 사는 건 죄 그 여편네 탓야. 그 여편네 노랠 듣구 춤 보믄 수명이 바짝바짝 타선…….

  또 뉘 물었더래. 혹여 그 낭군 만나믄 어찌 하느냐구. 그랬더니 여잔 울지도 웃지도 않고 춤도 노래도 없이 이냥 묻더래. 하던 일 얌전히 하믄서 손길 늦추는 일두 없이 이러구저러구 살믄서 묻더래. 글쎄, 어쩔까요, 밉고 또 미워 가슴팍에 칼 하나 알량하게 품었다 다시 뵈면 그 붉은 마음 내 몫을 내 달라 외칠까요. 외치믄, 그 가슴에 칼 꽂으믄, 그럼 그 지나간 마음 내 몫이 보일랑가요. 난요, 그냥 그 사낼 죽이구만 싶어요. 그 사낼 죽이구 난요, 천하에 나쁜 년이 되어설랑…… 천하에 으뜸으루 고약한 요부년 되어설랑…….

  여자는 띄엄띄엄 이야기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고 울음은 곧 깨문 입술에 막혀 목 안으로만 잦아들고 이내 더욱 거칠어졌다.

  ……그래설랑 온 세상 사람들이 낼랑 두고 욕하고 손가락질 해 가지구선 침 뱉었으문 속이 풀릴까 싶어요. 침 뱉구, 시퍼런 칼루다가 요 내 모가질 달랑 쳐 주었음, 그랬음 속이 풀릴까……. 그럴까 싶어요. 밤에 자리 누우믄 고만 생각해 버리는 걸요. 누가 날 좀 죽여 주지 않나, 누가 날 좀 죽어지게 해 주셔선 새루다가 나비루다가 맹글어 주지 않을랑가. 그래 생각해 버리는 거야요.

  사공은 날이 갤 때까지 어디 볼만 한 지붕이라도 찾아 쥔 붙여 보자는 사람이 있어 그 무리에 묻어 나섰다. 구들장이 유난히 찬 집에 얼굴이 유난히 검은 사내가 방을 보아 주고는 마침 찬거리가 났다며 장아찌 한 사발에 보리밥을 내 왔다. 보리라도 제법 고봉인 걸 받게 되니 송구하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몇 명의 객이 나름 떠들더니 겉옷을 벗어 덮고 아무렇게나 잠들었다. 사공은 눈을 붙였다가 흔들어 깨우는 주인의 목소리에 깨어 바깥으로 나섰다. 만경(晩景), 지는 해는 어미 소가 갓 낳아 놓은 새끼 소 만치나 붉다.

  어쩔까요, 어쩔까요.
  이 강 건너 이 뭍 너머 저 뭍에 닿아도, 십 수 년이 무색하게 흘렀어도 품은 칼 바래지를 않는 것을. 푸른 하늘 서슬이 여즉 살아있어선 잊지도 죽지도 못하는 것을. 처음 이 뭍에 던져질 적에 꼭 열 다섯 해를 기약하였거니와 하마 스무 해가 되어 간답니다. 전전반측 몸을 다시 뉘며 검은 밤 희게 새우길 며칠이었던가요, 꽃 피고 다시 꽃 져서 저주 받은 이 뭍에 자그마나마 열매 열길 몇 번이었던가요. 그 낭군 숨을 앗고 이 년 숨을 놓아 죽음 자리나마 머리 나란 놓이기를 바랐더랍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딸년 되어서요. 헌데 어찌하여서입니까. 비로소 약조한 해가 되어 하늘보담도 푸르고 찬 검을 늘어진 젖무덤에 품어 만나 뵈러 가옵거니 눈 앞 흐린 것은 나이 탓 아니요 가슴 매운 것은 증오 탓 아닌 것을. 아, 차라리 돌이 되셨으면. 그 낭군 차라리 돌로 나시어 이 년 칼에 베이지 아니 하시었으면.

  사공은 객을 받아 강을 건넜다. 건널 적에 잠깐 여잘 내려 주었던 자리를 먼 발치서 보았다. 갈대는 우거졌고 나무는 드문드문 자랐고 풀이 물 쪽으로 머리채 드리워 흐느적대는데 검은 돌도 여자도 지운 듯이 없다. 여자가 오래 섰다 노래 한 자락 구비구비 펼쳤던 꼭 그 자리에 노을 빛이 발그라니 떨어졌다. 그 날 노을은 유난히 사붉었다, 그러나 아무의 피도 아니며 아무의 눈물도 아닐 것이다. 사공은 끄덕끄덕 노를 저었다. 여자를 태우고 오던 길처럼 사공의 노 끝에서 허탕한 여울이 지고 물방울이 퉁겨 홍예(虹霓)가 핀다. 피었다간, 이내 진다. 홍예도 여울도 가 없는 것. 그러나 이름 없고 이유 없어도 삶이란 그저 살아지게 마련이겠다.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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