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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너울

 


갈매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2학년 유원탁은 매주 네 번씩 아주 매운 훠궈를 먹는 버릇을 들였다. 온갖 향신료와 소금이 든 탕에 버섯과 고기를 담가 먹으면서, 원탁은 기대수명을 대가로 지극한 행복을 얻었다. 사실, 50대에 위장에 문제가 생겨도 그때쯤이면 의학 발전으로 어떻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일주일에 네 번씩 훠궈를 먹어치우기에는 그의 지갑이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이었다. 훠궈를 위해서, 원탁은 용돈 이상의 수입이 필요했다.

대학생이 돈 벌 방법이야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유원탁은 쉽고 빠른 수입을 원했다. 그는 괜찮아 보이는 기획서만 있으면 조금의 돈을 던져 주는 공모전들에 수많은 계획서를 제출했다. 훠궈에 대한 그의 열망으로, 그는 수많은 말도 안되지만 얼핏 보면 그럴싸해보이는 이야기들을 써냈다.

수많은 허무맹랑한 기획서들은 서류파쇄기에서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았으나 그 중 하나는 5차산업혁명 창조미래 인문사회자연과학공학 통섭기술 융합대공모전에서 살아남았으니, 그 이름은 “깊은벗”이었다.

깊은벗은 유원탁의 드문 경험과 평범한 경험 몇 가지가 섞여 탄생한 기획이었다. 유원탁은 초등학교 시절에 학생 수가 단 5명인 학교를 다녔었고, 또래가 단 한 명도 없어서 조금 외로웠던 기억이 있었다. 대학에서 그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시대를 휩쓸고 있는 인공지능 수업을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학과 학회에서 그 갈피를 엿보았다. 또, 수강신청에 실패해서 교육학 전공을 울면서 교양으로 들은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경험들이 겹쳐, 그는 학생 수가 지극히 적은 초등학교에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위해 인공지능 대화봇 깊은벗을 설치하자는 기획을 냈다.

유원탁은 그 기획서를 쓰면서 자신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친구가 되어줄 만큼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술이 따라준다 한들 정서 발달에 정말 봇이 도움이 될 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깊은벗이라는 이름도 좀 촌스럽지 않나 했다. 하지만 유원탁에게는 훠궈가 필요했다.

일주일 동안 여러 공모전에 미친듯이 기획서를 써낸 다음에, 유원탁은 자기가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과외를 구했다. 다행히 요즘 부는 코딩 교육 열풍 덕분에 곧 유원탁은 훠궈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독한 향신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생활이 몇 주 지속되고는, 유원탁은 깊은벗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원탁은 깊은벗이 5차산업혁명 창조미래 인문사회자연과학공학 통섭기술 융합대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배추초등학교는 경상남도 남쪽의 섬이 많은 바다를 접한,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 지산군 양분리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고초등학교 양분분교이지만, 학교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 학교를 배추초등학교라고 부르고 있다. 1963년에 설립돼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배추초등학교에는 널찍한 운동장도 있고 2층짜리 건물도 있다. 한때는 그 운동장에서 여러 아이들이 공을 찼고, 2층짜리 건물에서는 교과서를 읽었다. 지금은 교직원 수가 학생 수보다 더 많은 학교가 되었지만.

두 명의 교사와 한 명의 시설주무관, 한 명의 조리사, 한 명의 4학년 학생이 있는 배추초등학교에는 낮에도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상위 기관에서는 어떻게든지 배추초등학교를 표고초등학교와 완전히 합치려고 했지만, 배추초등학교 소재지 주민들은 설문조사에서 항상 강경하게 반대했다. 이제 노인들만 남아 하루하루를 느지막하게 보내는 이 바닷가 동네에서 배추초등학교는 가장 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요일 오전 10시, 2교시 미술 시간이었다. 예체능과 영어 수업을 맡고 있는 배추초등학교의 분교장 성혜린은 방금 전에 자기 돈으로 마련한 60색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섰고, 배추초등학교의 유일한 담임 교사인 류승현은 널찍한 교무실의 자리에 앉아 지뢰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 류승현은 양분리에서 차 타고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지나 40분 거리의 작은 시에 있는 표고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 6학년 아이들의 담임 노릇을 했다. 처음 부임한 표고초등학교에서 수십 명이 넘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데 지친 그는, 아무래도 좀 작은 학교로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근처의 후추초등학교에 지원을 했다.

안타깝게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이 경상남도에 꽤 많았던 모양이라, 류승현은 후추초등학교에 발령되지 못했다. 경합에서 떨어진 류승현은 소원대로 작은 학교에 발령이 나긴 했는데, 지나치게 작은 배추초등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는 몇 달간 꽤나 술을 많이 마셨다. 부임한 첫 달은 꼬박꼬박 내던 적금을 미납할 뻔할 정도로 술에 돈을 썼다.

그래도 몇 달간 지내보니, 배추초등학교는 출퇴근 때에 절벽으로 떨어질까 무서운 도로를 타야 하는 것 빼고는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학교에서 몇 분만 나가면 섬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아름다운 남해 바다가 있었고, 아이가 한 명 뿐이라 일도 적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났고, 유일한 아이는 4학년이 되었다.

승현은 지난 1년간 비는 시간마다 여러 목적을 세우고 이뤘다. 최근 이 주 간 그는 윈도우에 깔려 있는 지뢰찾기가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열심히 했다. 남는 시간을 지뢰찾기에 모조리 투자하니 실력은 금방금방 늘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고급 난이도에서 마의 70초의 벽을 깨기 막 일보직전이었다. 승현은 살면서 그 정도로 집중한 적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오직 지뢰찾기 창만 보였다. 조금만 더 풀어내면 70초 안에 깰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그는 영웅의 심정으로 지뢰들에 하나하나 깃발을 꽂아나갔다… 고지가 코 앞이었다.

그때 본교에서 학교 메신저로 보낸 “위에서 공문 내려왔으니 확인하세요”라는 알림창이 떴고, 그는 실수로 지뢰를 클릭했다. 창에 빨갛게 칠해진 지뢰 하나가 드러났다. 패배, 걸린 시간은 67초였다. 그는 비통한 한숨을 쉬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 번 기지개를 펴고, 승현은 어떤 공문이 내려왔는지 확인했다. 경상남도교육청의 공문이었다. 깊은벗 어쩌고 하는 이상한 이름이 제목에 크게 떠 있었다.

“뭐야, 이게? 또 나라에서 융합 어쩌고 하면서 이상한 거 하나?”

승현은 1년 뒤에 아이가 5학년이 되면 코딩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가 기억났다. 학교에 있는 교사 둘 다 문과 출신인데 코딩은 무슨 코딩이야 하면서 갑갑한 마음으로 그는 공문을 읽었는데, 다행히도 공문 내용은 아직 코딩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었고, 그냥 황당한 소리였다.

“우리 학교에 학생이 너무 적어서 친구 봇을 설치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공문은 배추초등학교, 그러니까 표고초등학교 양분분교가 5차산업혁명 창조미래 인문사회자연과학공학 통섭기술 융합대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깊은벗 과제의 1차 현장시험 대상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알렸다. 배추초등학교가 현재 학생 수가 단 한 명인, 즉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학교여서 아동의 정서 및 사회성 발달을 위해 인공지능 친구를 이 곳에 설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주일 뒤에 기술자들이 배추초등학교로 파견된다고 했다. 공문 부록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술적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 위에서 이상한 짓 하는구만. 그리고 이걸 성 쌤한테 보내야지, 나한테 왜 보내는 거야.”

승현은 시계를 보았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한 25분 정도 남아 있었다. 다시 지뢰찾기를 할 생각도 들지 않고 해서 그는 인터넷에 깊은벗이라는 좀 촌스러운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깊은벗은 1년 정도 전에 긴 이름의 정부 주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유원탁이라는 한 젊은 컴퓨터공학과 대학생의 기획이었다. 기사 상단에는 상당히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약간 떨떠름한 낌새가 보이는 그 학생의 사진도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배추초등학교보다는 좀 규모가 있지만 어쨌든 교직원 수가 학생 수와 비슷한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더 많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과에 와서 자신의 긴 꿈을 실현시켜서 기쁘다고도.

승현은 그 유원탁이라는 남자가 좀 대단한 학생이라고 감탄도 했지만, 한가하고 고즈넉한 학교에 이상한 인공지능 기계가 오는 것도 탐탁찮았다. 사실 그 깊은벗이라는게 진짜 어떤 형태를 갖춘 로봇인지 아니면 컴퓨터에 설치하는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지도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귀찮은 일이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가 유원탁과 깊은벗을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종이 울렸고, 곧 분교장 성혜린이 60색 크레파스와 그림 몇 장을 끼고 교무실로 들어왔다.

“류 선생, 이제 국어 시간이야.”

“아 네, 성 쌤, 그런데 나이스로 공문이 하나 내려왔더라고요. 뭐 깊은벗인가 하는 이상한 거 한다는데, 한 번 보세요. 쌤한테도 왔을 거 같은데.”

“깊은벗? 그게 뭐야?”

“인공지능 뭐라던데… 일단 올라갈게요.”

승현은 모니터를 끄고 학교의 유일한 교실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이 곳의 교직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아이를 혼자 두지 않았다.

성혜린은 배추초등학교의 분교장이다. 혜린은 성취욕이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라, 승진에 가산점이 부여되는 벽지 학교를 자원하여 돌아다녔다. 배추초등학교는 그녀의 4번째 초등학교였는데, 그녀는 이 바다를 낀 학교가 섬이나 산꼭대기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혜린은 또 분교장이라는 직함이 언젠가 교장이 될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

그녀는 교무실의 중앙에 있는, 한때 배추초등학교 교무부장이 썼던 자기 자리에 앉았다. 전자문서 시스템의 알림이 와 있었다. 승현이 받은 것과 받는 사람에 적힌 이름만 다른 공문이었다. 혜린이 문서를 읽으면서 느낀 황당함도 승현이 방금 전에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부록의 기술적 상세 보고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비슷했고.

“교육청에서 또 무슨 실험하네.”

혜린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그녀는 교육청에서 이래저래 골치아픈 소규모 학교를 살려보겠다고 시도한 수많은 정책들이 침몰해온 기나긴 실패의 역사와 오래 함께해온 사람이었다.

언제는 농어촌 학교 살리기를 위해 학교마다 교육 과정 특화를 해서 학생을 모은다 했고, 또 언제는 교육부랑 다른 부처랑 협업해서 젊은 청년 부모들의 귀농을 장려하기도 했다. 어디 대학교 학생들이 교육기부다 뭐다 해서 그녀가 일하던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했고, 어떤 대학생들은 또 와서 벽에다 이런저런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 수많은 계획들과 프로젝트들과 봉사들은 항상 한 번이 끝이었다. 뭐 관심을 늘리겠다, 최대한 학생을 늘려보겠다, 이 곳에 사는 젊은이들을 늘려보겠다 하는 약속들은 공허했다. 혜린은 자신의 두번째 초등학교였던 두부초등학교의 졸업식 겸 폐교식을 기억했다. 이제 섬동네에 살고 싶어하는 청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슬픈 일이었다.

혜린은 의자를 돌리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주무관이 넓고 텅 빈 운동장에서 무언갈 열심히 파고 있었다. 운동장의 척박한 모래땅까지 퍼져서 자라고 있는 잡초를 뽑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할 나인데, 기계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배추초등학교에 남은 유일한 아이를 생각했다. 어떤 소명이 있어 교사가 된 것도 아니고, 촌동네에 있는 학교에 온 것도 승진 욕심이 더 크지 교육을 나라 곳곳에 전파하려는 사명감에 불타 온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학교에 마지막으로 남아가는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친구가 없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결코 자신이 아이의 또래 친구가 되어줄 수 없음이 가끔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는 몇 분간 운동장에서 주무관이 일하고 쉬고 하는 모습을 보다가, 감상을 떨쳐버리고 다시 컴퓨터를 보았다. 이런저런 다른 작은 업무들이 있었다. 2시간 정도 지난 뒤에 승현이 교무실 문을 밖에서 열었다.

“성 쌤, 수업 다 끝났어요. 밥 먹으러 가시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근데 애는 어디로 갔어요?”

항상 점심시간만 되면 4교시를 했던 선생이 애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교무실로 왔는데, 오늘은 없었다.

“아, 어머님이 무슨 일이 있다고 시내로 데려가셔서.”

“그렇구만, 밥 먹자 밥.”

혜린은 모니터를 끄고 일어났다. 아주 작은 학교여도 급식은 당연히 했다. 큰 취사장이 있는 급식소도 있긴 하지만, 입이 많지 않으니 학교 사람들은 쓰지 않는 교실 하나에 모여서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급식조리사 이하령은 이 동네에 있는 몇 안되는 40대 청년 중 하나인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표고초등학교 영양사가 보내는 메뉴에다가 이런저런 자신만의 요리를 추가해 사람들을 대접하곤 했다.

밥을 먹는 교실 밖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승현과 혜린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리사 하령이 뭔가 잘 익고 있는 작은 용기들을 교실 중앙에 두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무관은 벌써 식판에 자기 밥을 떠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쌤들 오싰습니꺼? 오늘 갈치구이를 했네예. 함 드시보이소.”

하령이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둘은 인사를 하고는 각자 식판을 챙겼다. 아이 아버지는 선생들에게 음식을 떠 주고, 식판에 자기 먹을 몫을 담았다. 그 다음에 승현과 혜린이 서로 옆자리에 앉고, 그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하령이 앉았다. 조용한 사람인 주무관만 거의 식사를 끝마친 상태였다. 승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혜린 쌤, 그거 공문 쌤한테도 왔죠. 깊은벗인가 뭔가 하는 거?”

“아 봤지. 좀 특이한 실험이던데.”

“무신 일인데예?”

하령이 고개를 내밀면서 둘에게 질문했다.

“그게, 사실 저희도 지금 잘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 우리 학교에 애가 하나 있잖아요.”

혜린은 이 이상한 이야기를 어떻게 말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일단 자기가 이해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예.”

“그런데 원래 교육청에서 소규모 학교에 뭘 해줘도, 한 20명은 있는 데 해 주고 해서 우리는 별 거 없었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우리가 나라에 있는 학교들 중에 학생 수가 제일 적다고 해서 뭔가 하나 봐요.”

“그게 뭔데예?”

“뭐 인공지능이라나... 승현 쌤이 젊으니까 더 잘 알 것 같네요.”

승현은 뜨악한 표정으로 혜린을 바라보았다. 혜린은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로 그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갈치를 발랐다.

“어, 조리사님, 그게 말이죠. 어떤 대학생이 낸 기획인데, 소규모 학교에서 애들이 아무래도 친구가 없으면 외롭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막 인공지능 친구인가 하는 걸 여기에 설치한다는데, 그게 로봇인지 뭐 컴퓨터에 프로그램인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희가 지금 아무래도 애들이 친구가 있으면 좋은데, 컴퓨터 친구가 괜찮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좀 그렇네요.”

승현은 거의 뭐 숨도 안 쉬고 이야기했다. 하령은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더니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좀 누르더니, 화면을 돌리면서 한 마디 했다.

“그러니까 폰에 있는 이런 긴가예?”

폰 액정에는 마이크 모양과 함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어보고 있는 인공지능 조수 화면이 떠 있었다.

“아니, 조리사님이 저희보다 더 잘 아시네요. 저는 사실 그 기능을 안 써서. 네, 뭐 그런 거 같은 건데 잘 모르겠어요.”

승현은 약간 당황하면서 생각보다 하령이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촌동네 사람들이라고 이런거 하나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을 내심 했다는 것을 느껴서, 좀 승현의 마음이 뜨끔 하는 바가 있었다. 혜린은 “갈치가 괜찮네~” 같은 말을 주워섬기고 있었고.

“잘 된 것 같네예. 아무래도 저희가 애 크는 거 보면서, 근처에 또래가 없으니까 미안한 게 많았는데, 그래도 국가에서 뭔가 해준다는 거 아입니까.”

혜린은 그 말을 듣고 호기심이 동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럼 아이가 기계랑 친구가 되어도 괜찮으신 건가요?”

“그럼예. 선생님들도 애한테 항상 잘 해주신다 아입니까. 오늘은 혜린 쌤이 크레파스 60색 갖고 오싯따고 자랑도 하던데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십니더. 교육청에서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하시는 건데 뭐가 좋아도 좋겠지예. 그리고 요즘 티브이 뉴스서 보니까 인공지능 같은게 맨날 나오지 않는가예.”

하령은 세상을 별로 의심하지 않는 건강하고 굳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혜린과 승현은 “조리사님이 생각이 깊으시네요” 같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마음 속에서는 “교육청에서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하는 게 잘 되는 꼴은 정말 보기 힘든데...” 같은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곧 셋은 또 다른 구구절절한 사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배추초등학교의 가장 활기찬 시간은 이럭저럭 끝나갔다.


배추초등학교의 유일한 아이의 이름은 이유림이다. 남해안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받고 자라 경상남도의 작은 양분리를 떠나본 적이 없는 그녀는, 자기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또래 4학년 여자아이들보다 키가 한 뼘은 컸고, 피부가 놀랍도록 하얬고, 편식을 하지 않았다.

유림의 일과는 가느다랗지만 동시에 꽉 차 있었고, 아주 심심해 아무것도 못 할 노릇인 때가 없었다. 양분리의 선량한 어른들은 마을의 유일한 어린 아이인 유림을 지극히 아꼈다. 시골 동네에 꽤 많은 난폭하고 술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유림이 아주 어렸을 때 이미 간이나 신장과 관련된 여러 질병으로 세상을 뜬 것도 꽤 다행인 일이었다.

아이는 한국 아이들의 대부분이 누리는 것들을 알지 못했지만, 그만큼 다른 아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렸다. 학교에 있는 두 선생님 승현과 혜린은 유림에게 교사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관심을 쏟았다. 일주일 전에는 혜린이 60개나 색깔이 있는 크레파스를 자기 돈으로 사와서, 미술 시간에 유림과 함께 온갖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유림과 혜린이 그린 다음 아이가 집으로 가져간 그 그림은 유림의 어머니가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놓았다.

또 깨끗한 남해 바다와 섬과 산이 있었다. 승현은 가끔 “야, 오늘은 야외 수업 하자” 하고 말하면서 유림과 함께 작은 소풍을 떠났다. 바다 앞의 돌밭에는 갯강구가 좀 있긴 했지만, 바다의 은빛 물결이 거친 돌에 작고 수많은 포말들로 부서지는 꼴을 보는 것은 질리지 않았다. 교과서에 적힌 또래 친구와 이야기하는 법, 함께 하는 법들을 실생활에서 써 보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지만, 아이는 어른들 덕에 외로움은 몰랐다.

가끔 엄마나 아빠와 함께 시내에 나가기도 했다. 시내의 풍경이 삭막하니 뭐니 하는, 시골에 한 번도 안 살아 본 몇몇 도시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나가서 먹는 몇몇 음식들은 정말 새로웠지만,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조금 무서웠다. 동네에 젊은 사람이라고는 부모님과 선생님, 말 없는 주무관 아저씨 뿐이었으니까. 부모님이 언젠가 나이가 들면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게 될 거라고 말했는데, 유림은 그게 약간 기대되기도 하면서 사실 좀 무서운 마음이 있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 8시 30분에 언제나처럼 학교의 조리사인 아버지와 함께 등교한 유림은, 교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보통 이 시간에는 항상 담임인 승현이 맨 앞자리에서 앉아 컴퓨터로 뭔가 하고 있었다. 유림이 그에게 무얼 그리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면 그는 항상 “아 이게 지뢰... 아니, 뭐, 그런, 어른들이 하는 중요한 거란다.”하고 얼버무리곤 했다. 근데 그가 없었다.

유림은 교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시내의 아이들은 교무실로 가는 일이 약간 금지된 곳으로 가는 것 같고, 뭔가 그 곳의 공기도 무거운 곳 같고 하는 느낌이 있었겠지만, 유림에게 교무실은 그냥 어른 친구들이 있는 장소였다. 교무실 문 앞에 도달하자 문 밖으로 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 선생, 근데 이거 이름은 진짜 뭘로 지어주지?”

“아니 그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근데 유림이 슬슬 올 시간인데요.”

그때 유림이 교무실 문을 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승현과 혜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 둘은 교무실 중앙에서 뭔가 1.25m쯤 되는 길쭉하고 거대하고 위가 동그랗게 반구형으로 튀어나와있고 눈처럼 보이는 두 개의 커다란 렌즈가 달린 밥솥 아니면 원통형 공기청정기, 혹은 에어 프라이어 같이 생긴 것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밥솥 아래에는 바퀴도 달려 있었다. 또 보니까, 승현과 혜린은 지금까지 유림이 본 것 중에 가장 피폐하고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 유림이 왔네?”

혜린이 먼저 인사했다. 유림은 좀 큰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들고는,

“그게 뭐에요?”

하고 물어봤다.

혜린과 승현도 딱히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어제 수업 시간이 다 끝난 오후 2시 쯤에 학교에 기술자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들이닥쳤다. 아마도 비포장도로 위에서 꽤 흔들리면서 괴로웠던 것 같았다. 그들은 잘 포장된 여러 부품들을 교무실 중앙에서 한두시간 동안 이리저리 조립해서 눈 달린 커다란 밥통 같은 로봇을 만들더니, ‘깊은벗 컨피규레이션’ 앱이 설치되어있는 태블릿 하나를 주고는,

“이거 공문 부록에 있는 설명서 보시고, 태블릿으로 파라미터 설정하신 다음에, 부록에 있는 대로 보고서 작성하셔서 한달 뒤에 올려주시면 되거든요. 그리고 어느정도 충격을 상정해서 만든 거긴 한데 비싼 거니까 조심하시고,”

라고 말했다. 그러자 승현이 얼빠진 표정으로,

“저기, 파라미터가 뭐에요?”

하고 물었더니, 그 중 가장 어려보이는 남자 기술자 한 명이

“그건 다 설명서 보시면 나와 있거든요.”

하고는 모두 짐을 싸고 바람처럼 떠났다.

결국 승현과 혜린은 학교에서 밤을 샜다. 처음에 둘은 저번에 신경도 쓰지 않고 넘겼던 부록의 기술적 설명서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한글로 쓰여있긴 했지만 해독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래서 승현은 표고초등학교 다닐 적에 컴퓨터 교육을 하던 선생한테 연락해서 파라미터가 뭔지 물어봤다가, 함수 어쩌고 하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혜린은 이런건 직접 해봐야 한다고 태블릿에 있는 깊은벗 컨피규레이션 앱을 만지다가, 로봇이 영어로 뭔가 물어보기 시작하는 걸 보고는 포기하고 설명서에 적혀 있는 용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웠던 시간 끝에 둘은 힘을 합쳐 뭔가를 해냈다. 그러니까 그들은 “컨피규레이션에서 파라미터를 설정한다”는게 깊은벗 로봇의 일부 설정에 뭔가 써넣어 준다는 것으로 이해했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설정을 하니까 이 로봇이 눈, 아니면 렌즈도 깜박거리고 이런저런 소리를 내기도 했다.

비통과 탄식의 기술적 관문을 지나고 난 다음 둘은 깊은벗을 갖고 이리저리 놀기 시작했다. 그것의 기본 이름은 혜린이 이게 뭐냐고 꽤 투덜거렸지만, 어쨌든 “버시”라고 정해져 있었는데, 사람이 옆에서 “버시야!”라고 부르면 찰칵찰칵대는 소리를 내면서 “안녕, 안녕!”하고 답했다.

또 혜린이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자, “그런가?”, “그래! 그래!”, “그런 것 같아.”, “후이이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맞장구 비슷한 걸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버시가 놀랍도록 대답을 잘한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까 그냥 무슨 말을 해도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 척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확실히 시중에 나오는 인공지능 스피커보다는 멍청하게 느껴졌다.

“근데 이거 스스로 움직이긴 해요?”

승현이 먼저 그 질문을 던졌는데, 둘다 정말 정답이 궁금해져서 막 로봇 근처에서 뛰어다니고 일부러 손을 렌즈 앞에 갖다대기도 해고 온갖 짓을 해보았지만 로봇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15분간의 삽질은 혜린이 보고서 귀퉁이에서 “깊은벗 0.7에는 아직 로코모티브 모듈이 장착되지 않았으므로 직접 밀어서 이동시키시오.”라는 글을 보고야 끝났다.

“이거 완전 맞장구 치는 깡통이잖아. 이게 친구를 해 준다고? 이름도 구려.”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승현이 당직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수염도 못 깎고 교무실에 돌아올 때까지 혜린은 계속 로봇을 보고 있었다. 승현이 교무실에 돌아오자, 그녀는 캔커피 하나를 꽉 찌그러뜨리면서 몇 시간동안 로봇을 본 총평을 내렸다.

“성 쌤 안 졸리세요? 흐암.. 보니까 컨피규레이션에서 이름은 바꿔줄 수 있더라고요.”

“아 뭐, 나중에 수업 다 끝나면 자지 뭐. 이름 뭘로 짓지?”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승현이 먼저 한 마디 했다.

“아름 어때요?”

“그거 선생이 저번에 만나던 애인 이름 아니야?”

“...제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나 봅니다.”

“나는 한숨도 못 잤는데?”

하는 식으로 둘은 별 쓸데없는 만담을 했다. 그러다 혜린은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류 선생, 근데 이거 이름은 진짜 뭘로 지어주지?”

“아니 그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근데 유림이 슬슬 올 시간인데요.”

그때 바로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렸고 하얗고 잠을 잘 잔 유림이 나타난 것이다. 유림이 그게 뭔가 물어보자 둘은 로봇의 눈 아니면 렌즈를 바라보았다. 혜린이 먼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얘가 우리 유림이 새 친구야.”

“와, 친구라구요?”

“응, 근데 아직 얘 이름을 우리가 못 정해서, 이름을 정해줘야 돼.”

“왜 얘는 아직 이름이 없어요?”

유림이 다가와서 깊은벗의 몸통을 만져보았다. 깊은벗의 외장은 빛이 잘 반사되지 않고 약간 물렁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깊은벗을 만지자 로봇의 렌즈가 찰칵찰칵대는 소리를 냈다.

“그게 말이지, 여기 근처에 유림이랑 나이가 같은 아이들이 없어서 로봇 친구를 만들었어. TV에서 로봇 봤지? 그거야. 그런데 어른들이 만들 생각만 했지 무슨 이름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네.”

승현이 자상한 척 하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졸린 기운이 몰려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가 지어 줄래요!”

아이가 말하자 승현과 혜린이 서로를 바라봤다. “오, 여기까진 괜찮은데?” 하는 눈빛을 교환하면서.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지금 생각나는 것 있니?”

“튜비요.”

“튜비?”

“쌤, 유튜브 몰라요?”

배추초등학교의 두 교사는 이번에는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긴 유림도 당연히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혜린은 태블릿을 이리저리 터치해서 로봇의 이름을 튜비로 설정하고 앱 어딘가에 잘 숨겨져 있는 재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튜비가 찰칵찰칵하더니 한 마디 소리를 냈다.

“안녕, 내 이름은 튜비야!”

“와! 얘 진짜 말하네요!”

혜린은 이거 좀 지나치게 진부하고 뻔한 첫 마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승현은 이름을 바꿔도 막 이상한 소음을 내지 않고 정상적으로 자기 소개를 한다는 점에서 “아주 날로 먹지는 않았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 그럼 튜비랑 같이 수업하러 갈까?”

승현은 웃으면서 튜비의 윗쪽을 한 손으로 짚고 드르륵 밀었다. 혜린이 튜비를 다루는 앱이 달려 있는 태블릿을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런데 문턱에 바퀴가 턱 걸렸다. 그 꼴을 보고 승현은 “역시 날로 먹었네” 하고 다시 중얼거렸다. 승현은 태블릿을 겨드랑이에 끼고 로봇을 양팔로 감싸안아 들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안에 뭐 별게 안 들어서 그런 건지 둘 다인건지 로봇은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으면서도 가벼웠다. 그러는 동안 유림은 튜비한테 자꾸 조잘댔다.

“안녕, 난 유림이야. 유림!”

“안녕, 유림이, 유림이야?”

“아니, 유림이가 아니라 유림!”

“그래! 그래! 유림이!”

승현은 그 얼빠진 만담을 들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믿음이 더욱 줄었다. ‘그래도 아직 인공지능이 이 정도 수준이면 나중에 교사를 AI로 대체할 일은 없겠다’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그는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튜비를 교실까지 안고 덜렁덜렁 걸어가서, 유림의 자리 옆에 놓았다. 유림은 여기가 자기 자리니, 여기가 우리 교실이니 하면서 막 끝없는 이야기를 했다. 튜비는 끝없는 맞장구를 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 하나만 쓰는 교실인데 굉장히 넓네” 같은 식의 말은 하지는 않았다.

첫 시간은 수학 시간이었다. 유림은 수학에 꽤 재능이 있는 아이여서, 수많은 한국인들의 인생에서 첫번째 난관이 되는 나눗셈과 곱셈, 각을 아주 빠르게 이해했다. 아이는 4학년 1학기의 마지막 단원인 분수와 소수를 공부하고 있었다. 사건은 승현이 분수와 소수의 관계를 한창 칠판에 쓰면서 얘기하다가 일어났다.

“자, 그럼 분수 1/8을 소수로 만들면...”

“0.125.”

유림의 목소리도 승현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찰칵찰칵대는 소리가 들렸다. 튜비가 연습 문제의 해답을 즉각 제시한 것이었다. 교실에 있는 사람 둘이 로봇 하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잘했어 튜비야!”

유림이 환하게 웃었다.

“어... 튜비야... 잘했어... 그렇긴 한데... 음... 유림아, 잠시만.”

승현은 태블릿을 급하게 꺼내고는 ‘깊은봇 컨피규레이션’을 터치했다. 하지만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하루종일 뒤적여본 그의 기억 그대로, ‘질문 및 답변 활성화’ 같은 버튼은 없었다. 그는 비슷한 문제를 말로 이리저리 내 보았는데, 그 때마다 튜비는 즉각 답을 내놓았다. 승현은 고개를 유림이 안 보이는 쪽으로 돌리고 약간 한숨을 쉬었다.

승현은 비록 수업 범위를 초과해도 엄청 초과한 것이지만 꾀를 한 번 내 보았다.

“그럼 0하고 점 찍고 3이 뒤에 끝없이 계속되는 소수를 분수로 만들면...”

유림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튜비는 찰칵대는 소리만 내고 침묵했다. 이렇게 바로 해독하기 힘든, 초등학교 범위를 넘은 문제를 내면 튜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림이가 아무리 수학 시간을 좋아한다고 해도 무한소수의 개념을 4학년한테 가르쳐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쩌지? 유림아. 튜비가 말하는 족족 답을 내버리네.”

“만들어진지 며칠 안 됐는데, 튜비가 공부를 아주 잘 하는 것 같아요.”

“아니, 공부를 잘 하는 게 아니라....”

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하면 새로운 지식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습득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얘는 그냥 태어나면서 머릿속에 그런 프로그램을 박고 나오는 거잖아. 그러면 공부를 잘 한다고 할 수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유림아. 유림이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튜비가 다 대답해버리면 네가 배우기 힘들지 않을까?”

아이는 굉장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제가 공부가 안돼요?”

승현은 당황스러워서 졸림이 약간 가셨다.

“음, 로봇은...”

로봇이 애초에 날 때부터 할 공부를 다 하고 나왔다고 말하면, 분명히 유림이 “그럼 로봇이 잘하는데 왜 우리가 공부해야 해요?” 하고 굉장히 곤란한 질문을 할 것 같다고 직감했다. “공부를 잘 하고 성적이 다른 사람보다 높으면 좋은 것 아닐까?”라고 말하면 도덕 수업할 때 좀 민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음...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네. 일단 수업하자.”

남은 25분 동안 승현은 졸음과 당황스러움을 애써 참아가면서 분수와 소수의 계산을 이리저리 설명했다. 이거 나중에 너 시내 중학교로 가면 소금물의 농도로 엄청 괴로울 거야, 하고 어제부터 이야기하려고 준비해둔 말이 있었는데, 튜비가 말하는 족족 끼어들어 정확한 정답을 내놓아서 무슨 말을 하기가 무서웠다. 그래도 유림이 수학은 정말 재능이 있으니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 다른 과목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에 승현은 아이에게 말했다.

“유림아, 나 혜린 선생님한테 좀 잠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좀 일찍 마칠게. 혼자 있을 수 있겠니?”

“네, 튜비가 있잖아요.”

튜비는 자기 이름을 듣더니 찰칵찰칵 대는 소리를 내면서 “좋아, 유림이” 어쩌고 하는 말을 했다. 이건 그래도 좀 편하군 하고 승현은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태블릿을 챙기고는 교무실로 향했다.

승현이 교무실의 문을 열어보니 혜린은 교무실 중앙의 자기 자리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승현은 자신은 4시간 동안 새우잠이라도 잤는데, 유일한 동료 교사인 혜린이 한숨도 못 자고 있는 걸 보니 좀 안타까웠다. 깨우기까지 하려니 더 미안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기, 성혜린 선생님!”

“으어으... 뭐야... 아직 시간 10분이나 남았는데...”

혜린은 괴로워하면서 깼다. 승현은 자기 자리에 있던 캔커피 하나를 건네면서 말했다.

“그 뭐냐, 튜비 때문에 이야기할게 있어서요.”

“음... 뭔데...”

그녀는 커피를 까더니 꼴깍꼴깍 단숨에 들이켰다.

“걔가요, 수업 시간에 제가 애한테 무슨 질문을 던지면 지가 대답하더라고요.”

“걔가 대답을 하긴 뭘 해요.”

“수학 시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떤 문제만 내면 바로 답해요. 제가 애한테 1/8이 뭐야? 하니까 지가 바로 0.125래요.”

“그래?”

혜린은 그 이야기가 흥미로웠는지 어땠는지 졸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승현을 쳐다보았다.

“근데 그러면 솔직히 수업에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 컨피규레이션 그것도 봤는데 그거는 어떻게 조절할 수가 없이 알아서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네, 그럼 수업을 어떻게 해.”

“네, 그래서, 다음 시간 혜린 쌤 미술 시간이잖아요. 다른 시간은 어떤지 좀 같이 들어가보고 싶은데요.”

“그래 뭐, 들어와 들어와. 승현 선생 그림 잘 그려요?”

“그건 아니지만요.”

몇 분 후에 승현은 한 쪽 팔에는 태블릿을 끼고, 다른 쪽 손에는 60색 크레파스를 든 채로 도화지 다섯 장을 들고 가는 혜린의 뒤를 따라 교실까지 걸어갔다. 교실 문은 열려 있었는데, 열린 교실에서 튜비의 약간 어색한 목소리와 유림의 조잘대는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있잖아, 내가 어제 시내에 있는 치과에 갔는데...”

유림은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그 나이대 아이들이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튜비는

“그래, 유림이야. 재미있다!”

같은 시시껄렁한 답을 하고 있었다. 혜린은 그걸 듣고 발을 잠시 멈추더니 한 마디 했다.

“난 왜 약간 소름 끼치지.”

“어, 사실 저도 좀 그래요. 이거 진짜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둘은 그 두 마디를 나누고 교실로 들어갔다.

“어? 왜 쌤 둘 다 왔어요?”

“응, 튜비가 있으니까 이제 반에 두 명이잖아. 그래서 쌤들도 두 명 와봤어.”

혜린이 웃으면서 답했다. 유림은 그 말을 듣고 뭐가 좋은지 귀엽게 웃었고, 튜비는 뭐가 어찌 코딩돼있는지, 따라서 “헤헤헤” 하는 웃음 소리를 냈다. 옆에 얼빠진 채로 서 있던 승현은 그 말을 듣고 사실 좀 감탄했다. 확실히 이 사람이 경력이 나보다 있긴 하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미술 시간은 혜린이 특히 공을 들이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교사 아니면 화가가 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바람은 혜린의 돛을 교육대학교의 영어교육학과로 밀었다. 그래도 그녀는 꾸준히 미술에 대한 취향을 버리지 않았고, 20대가 끝날 때까지 미술학원 취미미술반도 열심히 다녔다. 교장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그녀가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 미술 수업 시간 뿐이었다.

승현은 그림에 딱히 취미는 없었지만, 유림 옆에 앉아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이런저런 색을 진하게 칠하니 잠도 좀 가시는 것 같았고 평온해졌다. 혜린은 서서 유림이 하는 것을 치밀하게 관찰하면서, 동시에 교탁 위에 있는 자신의 작품도 틈틈이 다듬었다. 승현은 그 작품을 보고 ‘와 이 선배가 이렇게 그림 잘 그리는 지는 몰랐네, 근데 크레파스로 저런 게 가능해?’ 하는 생각을 했다.

한 20분쯤 지나자 유림의 도화지 위에 뭔가 떠올랐다. 머리 위에 뭔가 감싸고 냄비를 들고 있는 남자의 그림이었다. 그걸 보고 혜린이 한 마디 했다.

“아빠 그렸구나?”

“맞아요 쌤, 어떻게 알았어요?”

유림이 웃으며 물었다.

“냄비 들고 계시는 거 보고. 매일 림이 아빠 밥 먹는 데 당연히 알아봐야지.”

“튜비야, 너도 내 그림 볼래?”

유림이 자신의 그림을 집어들고 튜비의 렌즈 앞에 흔들었다. 튜비가 찰칵찰칵 하는 소리를 내더니 한 마디 했다.

“참 예뻐요, 좋아. 잘했어 유림이야.”

“내 이름은 유림이가 아니라 유림이라니깐.”

승현은 놀라서 튜비를 바라보았다. 그림이라는 걸 알아보기는 하네. 아니면 그림을 볼래라는 말을 듣고 거기에 적당한 답을 적당히 한 건가. 혜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승현의 책상 위에 있는 그림과 비슷하지만 굉장히 끔찍한 무엇인가를 보았다.

“우리 튜비가 승현 쌤보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데?”

혜린이 말했다. 승현은 좀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하다가, 자기 앞에 있는 종이를 보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혜린이 몸을 약간 숙이고는 그에게 귓속말했다.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거 아니에요? 칭찬도 해주고 좋네.”

“아니 이게 방금 전 수학 시간에는... 좀 있다 제 수업도 한 번 참관해 보세요.”

승현은 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혜린은 빙긋 웃었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동안에 둘은 교실에 그대로 남아, 튜비랑 유림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때 혜린이 “류 선생, 교보재 안 챙겨와?”하고 말해서 승현은 급히 교무실에 가서 사회 교과서와 과학 교과서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둘은 유림과 튜비를 계속 관찰했다. 아이는 끝없이 조잘거렸다.

“쟤가 원래 저렇게 말이 많던가.” 하고 승현은 혼잣말을 하니, 혜린이 그걸 듣고 “그러게.”라고 지나가는 한숨처럼 말했다.

3교시는 승현이 담당하는 과학 시간이었다. 오늘은 지구와 달을 비교하는 아주 간략한 천문학 시간이었다. 관리가 완전히 안되어서 약간 지직거리는 종소리가 울린 다음에 그는 교탁 앞에 섰다. 혜린은 가장 뒷자리에 앉아 턱에 손을 괴고 하품을 하면서 튜비와 아이와 그를 쳐다보았다. 승현은 항상 해왔던 것처럼 교과서를 꺼내서 허리에 손을 짚고 좀 지루한 첫 부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오늘 단원은 지구와 달 비교하기에요. 저번에 우리 지구가 둥글다는 건 했었지? 그럼 이제 달의 크기랑 지구의 크기 이런걸 비교하는 걸 알아볼 거에요.”

그때 튜비가 그 특유의 찰칵대는 소리를 또 내더니,

“달의 적도 지름은 3,476.2km으로 지구의 0.273배에요. 또 이심률은 0.0554이고, 지구를 27.32166155일마다 돌지요. 삭망 주기는 29.530588일이고, 지구를 평균 초속 1.022km의 속도로 돌아요. 달의 탈출 속도는 초속 2.38km이고, 표면 온도는 평균 250 켈빈이에요. 대기는 극히 희박하지만, 헬륨, 네온, 수소, 아르곤과 미량의 메테인이 있어요. 한국 위키피디아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라고 말했다. 모두가 튜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승현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튜비를 지켜보다가는, 혜린에게 “이렇다니까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냈고, 유림은 튜비에게 동경 비슷한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혜린은 입술의 한 쪽만 올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튜비가 나보다 더 잘 아는 거 같네요. 나는 삭망 주기가 뭔지 모르거든. 근데 이건 진도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것 같은데...”

승현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튜비는 자기 이름이 들리니까 좋은 건지 뭔지 “헤헤! 헤헤!” 하고 웃었다.

“튜비 진짜 공부 잘 하는 것 같아요.”

“어... 근데... 머릿속에 인터넷을 달고 있는 건데... 어...”

제일 뒤에 앉아있던 혜린은 승현을 바라보면서 교실 바깥쪽을 엄지로 가리켰다. 승현은 그걸 보고 “선생님들 잠시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는 혜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니, 윗사람들 너무하다고 맨날 생각했지만 이건 좀 도를 지나쳤는데요. 쟤를 데리고 어떻게 수업을 해요. 방학 때까지 쭉 쟤랑 수업해야 하잖아요.”

승현은 조용히, 하지만 감정이 분명히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좀 그렇긴 하네. 그런데 어쩌지? 보니까 유림이는 쟤를 꽤 좋아하는 것처럼 뵈는데.”

“더 애착을 들이기 전에, 그냥 꺼놓고 어디 구석에 박아 뒀다가 나중에 보고서에 그냥 어찌어찌 써서 내면 안될까요? 수업을 못 하겠는데.”

“그랬다가 걸리면 우리 둘 다 좋은 꼴을 못 봐요.”

혜린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아니 그래도... 그럼 어떻게 해요. 제가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저도 교사고 수업이 중요한데, 애가 최우선인데, 애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이러는 거죠.”

“왜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뭐 어느 정도 간단한 문제면, 아니 꼭 뭐 문제가 아니더라도, 죄다 풀어버리는데, 애가 공부할 의욕이 생길까요?”

“그럼 한 열흘 정도 뒤에 애한테 물어보자고.”

“무얼요?”

“쟤가 계속 옆에 있어도 좋을지. 그 다음에 윗쪽에 알리든 뭘 하든, 사실 신경도 안 쓸 것 같기는 하지만.”

승현은 애가 로봇이랑 애착을 좀 형성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는 이대로 며칠만 더 있어도 유림이 로봇에게 질투를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왜, 아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다른 또래와 직접적인 성적의 경쟁을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절대 이길 수 없는 머리에 인터넷을 단 존재라면 질투감이 들 텐데, 그때 잘 구슬려서 끄자고 해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비열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조금 저릿거렸다.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데 재미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수업을 이 정도로 망쳐놓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혜린은 승현이 튜비에게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유림이 말을 이렇게나 많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꽤 인상적이어서 생각이 정리가 되지가 않았다. 사실 튜비, 깊은벗 자체는 인공지능 스피커보다 별반 나은 것 같지 않고, 상황을 인식하는 점에 있어서는 훨씬 나쁜 것 같았지만, 뭔가 덩치가 있고 눈 같이 보이는 렌즈도 두 개나 달려 있으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3~4교시, 과학과 사회 시간 동안 아이는 마냥 좋았다. 승현이 무슨 말만 하면 튜비는 주룩주룩 대답을 내보냈기 때문에 그는 계속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는데, 그 표정이 재미있었다. 사회 시간이 시작하고 20분쯤 지나고 나서, 그가 교통 수단의 발달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 튜비가 250년에 걸친 간략한 철도의 역사를 소개하자, 승현은 자존심이 상해서 입술을 약간 앙다물었다가, 한 마디 했다.

“튜비가 선생님보다 잘하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수업이 안되니까, 칠판에다가 쓸게.”

승현은 아예 입을 닫고 칠판에 모든 내용을 하나씩 판서하기 시작했다. 튜비의 이미지 인식 능력은 시시해서, 갑자기 글을 읽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업은 급격히 지루해졌다. 뒤에서 시트콤을 보듯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혜린은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유림도 칠판에는 거의 시선을 두지 않고 튜비의 반질반질한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칠판에 글을 다 쓰고 다시 앞을 본 승현은 그 꼴을 보고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쉬었다.

“왜 수업이 안되는 거에요, 쌤?”

유림이 갑자기 그렇게 물었다.

“아니,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데, 튜비가 전부 말해버리잖아. 누가 영화 보기도 전에 영화 내용을 다 말해 주면…”

그때 승현 목소리의 억양 때문에 그랬는지 뭔지 로봇이

“화내지 마, 친구야”

하는 목소리를 또렷하게 냈다. 그걸 듣자 승현은 힘이 더 빠져서, 교탁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고는 말했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자.”

하고 기지개를 폈다. 유림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기분이 내려앉았다는 걸 직감하고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침묵하면서 교과서를 읽었다.

곧 종이 울렸다. 점심 시간이었다. 승현과 혜린은 잠이 부족해서 식욕이 별로 생기진 않았지만, 식사를 하루 빼먹으면 조리사가 당연히 알아챌 수 밖에 없으니 좀 미안한 점도 있고 해서 밥 먹는 방으로 발을 옮기려고 했다.

“튜비도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그때 아이가 말했다. 자기 이름을 들은 튜비는 “그래, 그래” 하는 맞장구를 쳤다. 승현은 그걸 보면서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문장이 있으면, 저장되어 있는 수십개의 맞장구 패턴 중 하나를 자동으로 재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혜린은 이제 너무 졸려서 튜비고 뭐고 빨리 밥 먹고 자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유림은 스스로 튜비를 밀고, 문턱이 있는 곳에서는 튜비를 들어다 옮겼다. 아이가 들기에도 튜비는 크게 무겁지 않았다. 아이가 기다란 밥솥 같은 인공지능 로봇을 들어 옮기는 모습은 꽤 재미있고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고, 혜린은 엄청나게 졸린 와중에도, 이게 좀 똑똑한 인형을 가지고 노는 인형놀이랑 크게 차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들었다 놨다 하는 거 보니 튜비는 굉장히 안전해 보였고, 그래서 내일부터는 굳이 교사 두 명이 모두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승현은 지뢰찾기를 단 한 번도 실행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질투’, ‘경쟁’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거나, ‘질투의 심리학’이라든지 ‘라이벌을 이길 수 있는 경쟁의 심리학’ 같은 별볼일 없는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서 교무실에서 한참 읽었다. 유림에게서 튜비의, 사람보다 수천 수만 배 빠르게 계산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질투를 불러일으켜 둘의 사이를 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질투의 심리학’은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애인을 뺏어보려는 사람들의 헛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괴상한 책이었고, ‘라이벌을 이길 수 있는 경쟁의 심리학’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망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실상은 부하 직원들 불쾌하게 하는 것에만 유능한 40~50대의 중간관리직들을 위한 끔찍한 자위용 책이었다.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와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혜린은 승현이 괴상한 것들을 사서 읽으며 탄식하는 꼴을 보고는, 내심

“저게 뭐하는 꼬라지야, 누가 봐도 인공지능에 대해 질투하는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승현도 질투라는 키워드를 계속 보다 보니 자신의 꼴을 얼핏 자각하긴 했는데, 그걸 인정하면 너무 괴로워질 것 같아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사실 승현의 담당 과목이 튜비가 가장 답하기 좋은 과목들만 모아놓은 점도 있었다. 승현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을 맡고 있었고 혜린은 음악, 미술, 체육, 영어를 맡고 있었다. 도덕 시간을 제외하면 무슨 말만 하면 튜비가 부연 설명을 줄줄 쏟아내는 것이었다.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조금 읽자 튜비가 웹에서 작품 전문을 검색하더니 10분동안 낭독하는 사건도 있었다. 유림은 화사하게 웃었지만 승현은 그 날 판서를 하다 힘이 너무 들어가 분필을 세 개나 부러뜨렸다.

그에 반해 혜린의 수업 때에 튜비는 꽤 좋은 친구였다. 혜린이 동요 제목을 제시하면 튜비가 그걸 찾아서 재생해 주기도 했고, 미술 시간에는 뭐 딱히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만든 걸 보여주면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체육 시간에는 튜비가 운동장에 나갈 수 없으니 튜비가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또, 튜비는 영어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영어 시간에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들려준 영어를 한국어로 이해하거나, 자기 이름 비슷한 발음이 들려오면 “그래, 그래”하면서 기계적인 웃음소리를 내고는 했다. 또 좀 센 억양의 발음이 들려와도 “네가 좋아하니 나도 기뻐”라든지, “화내지 마, 친구야” 같은 말을 가끔 하기도 했다.

승현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인공지능과 사람을 이간질시키는 법에 대해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또 며칠 간 지뢰찾기를 포기하고, 점심시간이 지나 유림이 집에 갈 때마다 ‘깊은봇 컨피규레이션’ 앱의 가장 깊숙한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고급 설정에 들어가니 무슨 흉악한 코드가 그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는 ‘코딩초보 Python 5일만에 마스터하기’ 같은 책을 사 읽었다. 그는 임용고시 칠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신을 보면서 왠지 이상한 뿌듯함도 느꼈다.

그런데 깊은벗이 아무리 학부생이 훠궈 먹고 싶어서 기획하고, 기술자들이 “뭐 이런 걸 위에선 선정하냐” 하고 궁시렁대면서 여기저기서 따와 얼기설기 만든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그것은 꽤 많은 돈이 들어간 프로젝트였고 첨단기술의 흔적이 많이 묻은 하나의 공학적 작품이었다. 또 그 얼기설기 만들어지고 이제 막 테스트가 시작된 역사 때문에 깊은벗은 사용자 친화와는 아주 거리가 먼 상태였다. 그러니, 평생 코딩과 먼 삶을 살아온 사람이 며칠만에 설정을 능숙하게 조절한다는 것은 그냥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승현은 좀 더 깊이 들어가보려다가 ‘선형대수학과 머신러닝을 함께 시작해 보세요’라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는, 선형대수학이라는 단어의 육중한 무게감에 짓눌려 그 날 코딩도 때려쳤다.

튜비가 너무 똑똑하니까 유림이 질투를 하게 되어서 사이가 알아서 멀어질 것이라는 승현의 추측도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이는 튜비가 승현이 무슨 말만 하면 완전히 정확하게 대답하고, 자기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주는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튜비를 만난지 이틀만에, 아이는 수업이 다 끝나자 집에도 튜비를 가져가고 싶어했다. 승현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설득하려다 도저히 4학년 아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괜찮은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해서, “선생님이 안된다면 안된다는 거야” 같은 말을 했다. 아이는 울었고, 그 날 밤에 승현은 집에서 혼자 술을 많이 마셨다.

승현이 튜비를 질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는 아이가 안그래도 또래와 놀 기회가 없는데 기계랑만 노는 것이 걱정이었다. 왜, 안 그래도 요즘 아이들이 학원만 돌아다니고 맨날 집에서 오락만 한다고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지 않은가. 승현도 표고초등학교에서 담임 노릇을 할 때 몇 몇 아이들이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로 컴퓨터만 보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담임으로 책임지는 유일한 아이를 나중에 시내의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아무 문제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유림은 튜비를 집에 들고 가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새로운 대화의 창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어른들은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었지만, 아무래도 모든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혜린도 승현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을 튜비는 들어주었고, 맞장구도 그럭저럭 쳐 주었다. 아이도 이것이 대충 맞장구만 쳐주는,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는 인형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림은 튜비 위에 상상의 친구를 덧씌웠다. 대답만이라도 할 줄 아는 뼈대가 있으니 아이의 상상력은 더 넓은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어느 때에 튜비는 무슨 문제도 풀 수 있는 척척박사 친구였고, 어떤 때에는 언제나 교실에서 자신을 기다려 주는 요정 친구였다. 깊은벗을 기획한 사람도, 만든 사람도,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도 기대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바였다.

승현은 자기가 혜린 몰래 지뢰찾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승현이 요새 지뢰찾기에 열중하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뢰찾기도 때려 치우고, 배추초등학교에 발령난 지 몇 년 만에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자, “이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 뭔가 결여되어 있어도, 다른 부분에서 괜찮은 지지가 있으면 탄성 있게 회복하는 것을 보아왔다. 혜린은 유림도 그렇게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만 승현이 너무 괴로워하는 게 그녀에게 참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승현은 괴로워하고, 유림은 즐겁고, 혜린은 튜비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승현 때문에 약간 미안한 기분이 드는 하루하루가 지나던, 어떤 수학 시간이었다.

승현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가 두 눈 달린 밥통 앞에서 조잘대고 있는 거 보고 짜증이 치솟아올랐다. 당장 그 밥통을 집어들어서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는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조곤조곤 말했다.

“림아, 수업 시간이야. 앉아야지.”

“화내지 마, 친구야”

그는 튜비가 자신의 높아진 목소리를 듣고 자동으로 그 반응을 하는 걸 듣고 화가 더 났다.

아이는 최근 며칠동안 류승현 선생님이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그 이유가 튜비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마냥 순수하기만 하고 세상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를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른들이 애써 숨긴 표정과 분위기를 읽고 눈치채는 것은 숨쉬듯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물었다.

“쌤, 왜 그렇게 튜비를 싫어해요?”

승현은 잠시 깜짝 놀랐다가, 그렇게 내가 티가 나나 하고 생각했다가, 하긴 내가 며칠간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그럴만 하지 하고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가, 또 그걸 애가 눈치챌 정도면 진짜 저게 얼마나 날 짜증나게 하는 건지 하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자기는 원래 후추초등학교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왜 이런 깡촌으로 튕겼는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인생의 우연들이 막 눈 앞에서 스쳐가고, 그런 모든 우연들이 악의적으로 설계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왠지 화를 주체할 수 없고, 하지만 자기보다 수십 살 어린 애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너무 어른스럽지 못하고 교사가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너무 자기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게 서러워지고, 교육청은 왜 하필이면 평소엔 신경도 안 쓰다가 갑자기 이런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막 차올라서,

“아니, 내가…”

하고 한 마디를 토해내듯이 말하고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끼고, 마구 훌쩍이다가, 얼굴을 손에 묻고, 교탁에 팔꿈치를 괴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너무 끊임없이 흘러서 그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내가, 내가, 저것 때문에, 난생 모르던 코딩, 코딩도 배웠는데...”

그는 코딩이 남기고 간 깊은 상처도 막 생각이 나고, 소리내서 울면서도, 이게 애 앞에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튜비가 그 울음 소리를 듣고는 “울지 마, 울지 마” 하는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내기 시작했는데, 승현은 그 소리를 듣고 더 펑펑 울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우는 건데.

유림은 지금까지 어른이 자기 앞에서 그렇게 펑펑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이게 장례식 같은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이 많이 우는 데라고 알고 있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또 항상 따르던 사람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어서, 아이는 또 아이대로 정말로 당황했다.

튜비가 계속 “울지 마, 울지 마” 하는 소리를 냈는데, 승현이 그 말을 듣고 번뜩 유림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생각났다.

“봐, 저게, 응? 응? 어른들이 다, 유림이한테, 친구, 만들어 주고 싶어서, 만든 건데. 봐, 이게 진짜? 그래? 계속 울지 마, 울지 마, 이런 말만 하잖아.”

승현은 얼굴을 손에서 떼내 들고, 손으로 튜비를 가리키면서,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튜비는 억양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화내지 마, 친구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봐, 그러고 보니, 이제야, 이제 알겠다 선생님이. 봐봐, 계속, 똑같은 말만 하잖아. 어떻게 해, 어떡해, 유림아, 쟤는, 다, 그냥 입력된 대로 말하는 거잖아… 쟤가 이름만 말하면 그래, 그래 이러는 거야. 봐봐, 튜비, 튜비.”

“그래, 그래.”

“저것 봐… 쟤는 심지어 내 목소리랑 림이 목소리랑 구분하지도 못해. 그리고 수업 때도 쟤가 다 먼저 말해버리는데… 림이가 어떻게 공부해 그러면… 나는 그게 진짜 걱정돼서… 쟤는 그냥 기계라니까. 사람이 아니야…”

승현은 눈물이 조금씩 멎었다. 도저히 수업을 지속할 기분이 아니어서 그는 칠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댔다. 튜비는 계속 찰칵대고만 있었다. 유림이 일어나서 승현에게 다가와 승현의 어깨를 탁탁 치더니 어른스러운 척을 하려고 짐짓 낮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선생님, 울지 마요.”

“미안해, 림아…”

“있잖아요.”

“응?”

“왜 기계랑 친구하면 안돼요?”

“그야…”

유림은 그의 말을 끊고 한 마디 더 했다.

“그리고 선생님도 튜비 보고 계속 저거가 아니라 쟤라고 하잖아요.”

승현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아이의 눈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허’ 하고 크게 소리를 냈다가, 말을 짜내서는,

“나중에 림이 졸업하고 나면,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야 될텐데, 거기에는 친구들이 많단 말이야. 우리 유림이, 나이 같은 아이들이랑 노는 법을 배워야지. 학교가 그러려고 있는 건데.”

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림이 더 목소리를 낮게 깔아서, 스스로는 되게 어른스럽게 느껴졌겠지만 다른 어른들이 듣기에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말했다.

“에이, 쌤들이 잘 가르쳐주고 있잖아요.”

그는 유림이 원래 이렇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저거 아니고 쟤라고 말한 거, 무슨 뜻으로 말한 거니?”

승현은 유림에게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나 하고 물어보았다.

“쌤, 쌤이 튜비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쟤라고 하는 거죠. 기계한테는 저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러네.”

승현은 이번엔 왠지 민망해서 눈물이 더 나는 것 같았다.

“그리구요, 저도 쟤가 계속 하는 말만 반복하는 거 알고 있어요.”

유림이 튜비를 가리켰다. 튜비는 렌즈를 그 둘을 향한 채로, 항상 내던 찰칵찰칵 하는 소리를 또 내고 있었다. 저 찰칵찰칵대는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승현은 순간 궁금했다.


혜린은 종도 치지 않았는데 승현이 교무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종이 고장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수업이 끝나기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승현의 얼굴과 눈이 시뻘개져 있었다.

“뭐야, 류 선생, 로봇이랑 싸웠어? 무슨 일이야?”

그러자 승현은 코를 훌쩍이면서 헤헤 웃었다.

“아뇨, 뭐.”

“울어?”

“네, 애 앞에서 울었어요. 그래서 빨리 마치고 왔어요. 수학은 알아서도 잘 하는 애니까.”

혜린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니, 뭐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요?”

“유림이가 저보다 더 성숙한 것 같아요.”

승현은 교무실의 빈 자리 중에서, 혜린의 자리와 가까운 자리 하나에 걸터앉더니, 수업 시간에 유림과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튜비 때문에 너무 짜증이 솟구쳐서 집어 던지고 싶었는데, 갑자기 튜비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화가 났다가, 애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으니 그게 눈물이 되어서 터져나왔다고. 혜린은 몸을 그의 쪽으로 당기면서 그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승현은 울면서 유림에게 신세 한탄을 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기계랑 친구하면 왜 안되냐더라고요.”

이 말을 하면서 감정의 앙금이 터져나왔는지 눈물을 몇 방울 더 흘렸다. 혜린은 승현에게 물티슈를 몇 장 뽑아 건네고는 물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튜비 보고 쟤라고 그러면서, 왜 기계보고 쟤라 하냐고.”

“유림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네, 기계한테는 저거라고 하는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 말이 틀리진 않더라고요. 우리가 컴퓨터 보고 쟤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승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컴퓨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렇지.”

“네, 그런 거죠.”

“류 선생 말 들으니까, 약간 소나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생각나네.”

“예?”

“아니, 사람들이 막 그런 표현을 쓰잖아요. 굳건히 서 있는 산이라든지, 소나무 같은 사람이라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식물이 뭐 의지가 있어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산도 그냥 있는 것 아니야.”

“네, 그런데 그게 왜...”

혜린은 승현한테 말 끊지 말라고 인상을 살짝 찌푸린 다음 계속 말했다.

“근데 그런데 사람들이 막, 소나무가 사람인 것처럼, 소나무가 굳건히 서 있다고 말하잖아. 사람이 소나무처럼 기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렇죠 뭐, 그런데 그게 그냥 그렇게 느껴지니까, 비유적인 표현인 거 아닌가요.”

“그래요, 그 그렇게 느끼는 거, 그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확 드네.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람을 애써 발견하려고 하는 게 사람인 것 같다구. 말이 좀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림이가 계속 하는 말만 반복하는 거, 안에 전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대로 말한다는 거 자기도 알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게 건강한 거 아닌가. 사람 같은 면을 발견하는 모습도 있지만, 동시에 림이가 완전 그 생각에만 빠지지 않는다는 거니까.”

혜린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교육부에서 그런 거 다 생각하고 인공지능 대충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보낸 것일까요?”

“그건 말도 안 되지.”

혜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냥 교육부에서 얼기설기 해 놓은게, 어쩌다 보니 꽤 인간적으로 된 거고요.”

“그렇지.”

승현은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고는 생각에 빠졌다. 아직 수업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혜린은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제 보고서 가라치자는 말은 안하겠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승현이 튜비를 좋게 생각해준다면 혜린한테도 좋은 일이었다. 자기 수업 시간에는 튜비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승현은 똑똑한 사람이니까 튜비를 두고 수업하는 법도 잘 익히겠지. 느슨히 흘러가는 배추초등학교의 하루하루에 생기던 문제가 아주 깔끔하게 풀려나가는 것 같아서 혜린은 뿌듯했다.

“자, 그럼 유림이한테 튜비 끈다는 말 안 해도 되는 거지, 류 선생?”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던 승현은 깜짝 놀라면서,

“아, 네.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그걸 보고 혜린은 더 기분이 좋아졌다.

“튜비 덕에, 20년 뒤에 유림이 노벨상 받는 로봇 공학자가 되어있을 지도 모르겠네.”

승현은 그 말을 듣고는,

“나중에 림이가 우릴 기억해서 시상식장에서 우리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네요.”

하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로봇 공학은 노벨상을 받는 분야가 또 아닌 것 같네.”

혜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깔깔대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쨌든 덕에 코딩도 배웠으니, 나중에 림이 5학년 되면 류 선생이 실과 시간에 코딩 가르치면 되겠네. 잘 됐네.”

승현은 갑자기 눈물이 또 날 것 같았다.

그 동안 유림은 교실에 남아 튜비한테 류승현 선생님이 닭똥 같은 눈물을 뽑는 것이 정말정말 놀라웠다는 이야기, 어제 어머니와 시내 치과에 갔던 이야기, 튜비의 찰칵찰칵 대는 소리가 카메라 소리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튜비는, 그 속의 전자 회로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계산을 하면서, 매일 들려주던 대답 패턴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쨍쨍한 햇빛이 남해 바다에 정박된 배 몇 척과 배추초등학교의 교정을 달구고 있었다.

댓글 4
  • 앤윈 19.01.31 17:31 댓글

    귀여운 이야기고 작가는 명랑하게 말하는데 슬프네요…….

  • 앤윈님께
    글쓴이 너울 19.01.31 19:50 댓글

    기획 의도는 "기술이 모든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이다"였는데 쓰니까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 같네요.

  • No Profile
    쁘로프박사 19.02.01 13:06 댓글

    갑자기 막 초등학생 된 사촌 생각이 나는데 요새 걔가 유튜브에 빠져 살더라고요.

    마냥 탐탁치는 않았는데, 말을 들어보니까 걔가 부모님이랑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많고 유튜브에서 본 동화책도 곧잘 찾아 읽어보더라고요(물론 e북으로지만).

    우리 때랑은 다르지만 저런 식으로도 교육이 이루어지는구나 싶더라고요.

  • 쁘로프박사님께
    글쓴이 너울 19.02.01 14:36 댓글

    제 조카들도 유튜브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보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눈살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영상과 시각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차후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시각적 컨텐츠를 만들어낼지 생각하면 그것도 참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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