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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죽어버리고 싶을 때면 귤을 생각했다.
 1997년 겨울. IMF 사태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던 시절이었지만 겨우 다섯 살인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분식집 뒤에 붙은 단칸방에서 이불에 발을 끼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내게 아빠는 손짓을 했다. 문간에 엉덩이만 붙이고서 아빠는 무릎 걸음으로 다가간 내 손을 끌어 귤을 하나 까 올려 주었다.


 맛있니?
 반달모양 귤 알맹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됐다. 좋네.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그리고는 자그맣게 덧붙였다.


 [아빠 갑자기 어디 좀 간다.]
 [어디 가는데?]
 [먼 미래에. 먼 미래…… 아빠가 꼭 가야 되는 데가 있어서.]


 우습게도 그것이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원체 바람 같던 아빠는 그 길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열 세 살이던 언니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엄마는 꼭 그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양 담담했다.
 다음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 집은 빚더미에 올랐다. 분식집은 통째로 남의 손에 넘어갔고 엄마는 얼굴이 까매서 돈을 꾸러 다녔다. 언니는 방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H.O.T. 포스터가 붙은 벽을 멍하니 올려다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너한테 뭐라 그랬니?]


 언니가 울다가 물었다.


 [먼 미래에 가야 되는 데가 있대.]


 나는 되풀이했다. 언니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고 엄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게 되물었다.


 [아빠가 귤을 줬어.]


 답하면, 엄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까칠한 입술이 벌어졌다. 누런 이빨이 귤 같았다.
 엄마는 귤을 좋아했다. 형편이 안 좋아도 하나씩 두 개씩 귤을 얻어 왔다. 딱 한 봉지씩 사 오기도 했다. 껍질이 얇고 알이 자잘한 귤을 까서 표면의 흰 거스러미까지 일일이 떼어낸 다음, 엄마는 그걸 쪼개 나와 언니에게 주었다.


 [맛있니?]


 아빠처럼 물었다.


 [맛있어.]


 엄마는 귤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웃어 주었다.


 [잘 됐다. 좋네.]


 아빠고 그렇게 말했다. 잘 됐다. 좋네.
 세 여자가 이고 지고 이사를 다녔다. 관악산 자락을 타고 깎아지른 경사를 타고 올라 신림동을 가로지르기도 했고, 노고산 쪽으로 돌고 또 돌다가 어떻게 100에 20만 원짜리 방엘 들어가기도 했다. 장판이 우그러진 자리를 꾹 눌러 보면 바닥이 울퉁불퉁한 거나 벽이 기울어진 게 어린 내 손에도 훤히 잡히는 집이었다.
 옆방에 할머니가 살기도 했고 대학생이 살기도 했다. 머리가 덥수룩한 대학생 오빠는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고 나가다 말고 나한테 먹던 과자 한 움큼을 덜어 주어서 좋았다. 몇 살? 물을 때 방긋방긋 웃으면서 일곱 살! 여덟 살! 대답만 커다랗게 하면 됐다. 털도 안 난 새새끼처럼 짹짹 울면 입 안의 붉은 부분이 엄마 아니라 오빠들의 맘을 자극하는지 부러 뜯지 않은 과자 봉지를 던져주는 날도 있었다.


 너네 아빠는 어디 갔노?


 집주인 아줌마가 물었을 때, 나는 ‘멀리. 외국에’ 하고 대답해야만 했다.


 먼 미래에. 가야만 하는 데가 있어서.


 그렇게 대답하는 건 아주 이상한 일이라는 걸 나는 금방 깨달았다. 머리가 굵고, 언니가 대학생이 되고, 내가 교복에 익숙해진 무렵엔 슬슬 불만과 증오가 의문만큼 속을 가득 채웠다. 방 두 칸짜리 반 지하 집은 서향이라 해질 무렵에만 얼만큼 볕이 들어설 뿐 하루의 반절 이상을 곰팡내와 습기와 동거했다. 축축한 장판을 눌러 보면 꼭 어디가 튀어나왔고 편평하지가 않았고 어디선 벌레가 튀어 나왔다. 문짝이 틀어진 싱크대를 닦는 엄마에게 나는 드디어 물었다.


 [엄마. 아빠랑 왜 결혼했어?]


 엄마는 돌아 보지도 않고 답했다.


 [저기 식탁에 귤 놔뒀다. 먹었니?]

 [아니. 엄마도 하나 까 줄까?]
 [그럴래?]


 나는 까만 봉지에 든 귤을 하나 꺼냈다. 초록색 물이 덜 빠져 꼭 멍이 든 것 같다. 엄마 얼굴처럼. 어디 주방에 나가 일을 하는 엄마가 시비에 끼어들었다가 퍼렇게 멍이 들어 돌아온 날, 잘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모가 달려왔다가 울면서 하는 한탄을 했다. 초록색 멍. 초록색 귤. 초록색 소주 병. 이모는 끅끅 울었다. 가슴을 쳤다.
 너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너 학교도 그만두고 그 놈 따라갈 때, 그때.
 나는 방에서 잠결에 그걸 들었다. 이불 저쪽에 모로 누운 언니의 등이 어둠 속에서 떨린 것 같았다. 언니, 자? 나는 쪼그맣게 물었다. 문 바깥 주방에서 신문지를 깔고 마주 앉은 자매는 두런두런 밤을 새웠고 나는 어느 샌가 잠들어 버렸다.
 너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귤을 까서 하얀 실 같은 걸 꼼꼼하게 떼어 내고 반으로 쪼개 엄마한테 가져가 내밀었다. 엄마는 싱크대를 다 닦고 행주를 빨아 꼭꼭 짜 깨끗한 싱크대 모서리에 널어 놓고는 귤을 받아 한 개씩 한 개씩 입에 넣었다.
 아이고, 셔라.
 나는 능청을 떠는 엄마 옆에서 반 남은 귤을 먹지도 않고 물었다.
 엄마. 아빠랑 왜 결혼했어?
 그러자 엄마는 주름 잡힌 눈가를 누그러뜨려 웃고는 명랑하게, 꼭 스무 살 여학생처럼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아빠 청혼을 받아 주어서 이 세상엔 귤이 있는 거란다.]


 의외를 넘어 기가 막힌 대답에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엄마 장난해?]


 하긴 ‘먼 미래로 간다’며 가출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라면 아마 그 비슷한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네 아빤 말이지, 실은 도사란다.]


 점입가경이라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이지.


 [세상을 바꿀 만큼 대단한 힘을 챙겨서 하산했는데 엄말 만난 거야. 그래서 어느 날 내게 청혼을 해 주었지. 그때 가져온 게 귤이었어. 그때까진 귤이 없었단다. 세상엔 귤이 없었어.]


 젊은 도사—아빠는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수줍게 귤을 내밀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 귤이 처음으로 생기는 순간이었다고. 그러니 엄마 말에 의하면 귤은 적어도 1985년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게 된다.


 [말이 돼?]


 당장 조선왕조 실록을 뒤져도 귤이 나온다. 중국 삼국시대 어느 누군가의 일화에도 귤이 나왔던 거 같다. 그게 아니라도 좋다. 옛날 영화, 드라마, 책, 아무튼 널리고 널린 게 귤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멀리 안 가도 1984년 자료를 10분만 뒤져도 거기 귤이 떡하니 나올 거라는 데 내 용돈을 통째로 걸 수 있었다.


 [왜 말이 안 되니?]


 엄만 웃었다.


 [귤이 그 순간 생겨났어. 마치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처럼, 세상은 전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이 뒤집히고 바뀌고 부서졌단다. 그래, 그때까진 귤이 없었어. 네 아빠가 내게 청혼하기 전까지는.]


 맙소사.
 엄마는 착실한 여대생에게 주어질 수 있는 수 많은 밝은 미래를 때려치우고 자칭 도사와 결혼했다.


 [아빠는 정말 어느 미래인가로 갔을 거야. 그러니까 언젠가 만날 수 있어. 아주 중요한 순간에 우리들을 도우러 오시려고 간 거니까.]


 나는 표면이 마르기 시작한 귤을 내려다 보았다. 입 안에 한꺼번에 우겨 넣어 씹자 신맛이 훅 올라왔다.


 [너무 시어.]


 나는 엄마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당당하게 무신론자를 주장하던 사람이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 저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되뇌듯 모든 의아한 가설은 오히려 그 비현실성 때문에 완전히 놓을 수 없게 마련이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것도 반드시 그러하리라는 것만큼이나 검증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니는 알고 있었어?]


 그렇게 물은 것은 2008년 가을이었다. 언니가 직장 동료의 아이를 갖고, 배가 산더미만한 데 결혼식을 올린 해. 스물 세 살짜리 신부는 배를 감싸고 웃었다. 일견 찡그린 것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열 여섯 살의 나, 신부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휴대폰 카메라로 언니를 몇 번 찍었다.


 [아빠가 도사라는 거? 그럼.]
 [그거 믿어?]
 [믿고 싶어.]


 언니는 뱃속의 아이에게 들려주려는 듯 천천히, 조용히 말했다.


 [믿고 싶어. 우리가 아주 힘들 때 도와주러 오실 거라고.]


 나는 헛구역질을 하는 언니를 위해 밤새 귤을 잔뜩 까서 락앤락 통에 담아 왔다. 신혼여행은 무리해서 동남아로 간다는 언니에게 통을 건네주었다. 식을 마치고 머리 가득 실삔이 박혀 우스운 모양새였던 언니는, 진하다 못해 기괴해 보이는 눈화장을 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귤을 만들 정도로 대단한 도사라잖아. 그러면 참 좋겠어.]


 언니는 통을 꼭 안고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몇 개월 후에 태어난 아이는 예쁘게 컸다. 엄마도 나도 아이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살았다. 아이는 다른 애들과 비슷한 속도로 뒤집었고, 옹알이를 했고, 어음마아, 하고 첫 말문을 텄으며 한 해가 지나자 제법 걸었다.


 [아빠는 귤을 만들었잖아.]


 언니가 흐느끼며 그 말을 다시 입에 올렸을 때는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였다.
 2012년 봄.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 광장을 비추는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병원 로비를 메웠다. 언니는 구겨진 신문지처럼 몸을 접고 울었다.


 [분명 이 순간을 위해서 아빤 가 버리셨던 거야. 그렇지, 그렇지?]


 아이가 쓰러졌다.
 잘 놀고 잘 걷고 잘 먹던 아이는 짧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길을 가로지르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툭 치였다. 차의 본네트 위를 덱데굴 굴러 팔팔 끓는 아스팔트 위로 팽개쳐졌을 때 아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아빤 지금 돌아오려고 가신 거야! 그렇지!]


 먼 미래로 간다던 아빠가 귤을 만들어 냈듯 아이를 살려주리라 믿고, 언니는 버텼다. 아이는 십 수 번의 수술을 거치며 달을 넘겼고 여름을 맞기 전에 죽었다.
 아빠는 오지 않았다.
 나는 더워진 귤을 만지작거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땐 귤이 없었단다. 귤은 네 아빠가 내게 청혼하는 순간부터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거란다.
 엄마의 그 노래하듯 경쾌한 음색이 떠올랐다. 언니는 혼절해서 울며 실려 나왔다. 아이를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한 날 언니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엄마와 다퉜다. 나는 귤을 까서 락앤락 통에 가득 담아 두 사람 옆에 서 있었다.


 [아빤 안 왔어! 아빤 안 왔다고!]


 애가 죽었는데. 그만 죽어 버렸는데.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
 언니는 울며, 울며, 울며 내 품에서 통을 빼앗아 냅다 던져 버렸다. 깨진 통이 헤벌어지자 안에서 귤이 굴러 나왔다.
 오렌지색으로 물든 반달들.


 [진정해라. 네 슬픈 맘 내가 왜 모르니. 그렇지만…….]


 엄마는 몸을 굽혀 귤을 주우려다 털썩 주저 앉았다.
 아이고.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오랜 세월 고생하느라 삭아 버린 팔다리가 엄마의 의지를 배반했다. 엄마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고,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자조하려다가 엄마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엄마 병원 좀 가 봐요.]


 내가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가서 큰 병이면 늦었지. 병 없으면 맨 소용이 없다. 그러니 안 가련다.]


 엄마 말이 맞았다.
 엄마 말이 언제나 맞았다. 아빤 돌아오지 않았지만 엄만 언제나 귤 껍질을 까며 아빠를 떠올렸다. 당장 죽어 버리고 싶을 때 귤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끝내고 싶을 때 귤 껍질을 벗겨내면서 ‘그때는 귤이 없었지’ 하고 중얼거린다고.
 모든, 죽고 싶은 순간에 엄마 곁엔 귤이 있었다.
 보험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사표를 낸 후에 돌아오다 쓰러진 엄마는 눈을 뜨지 못했고, 나는 아이의 죽음으로 경황이 없는 언니를 대신해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어린 계집애가 눈이 퉁퉁 부어 엄마 곁에 붙어 앉아 있으니 병원 사람들은 안쓰러운지 여러 가지로 돌봐 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같은 병실 아줌마의 남편이 물었다.
 귤…… 귤이요. 오렌지 말구, 귤.
 귤은 흔했다. 흔해서 금방 쌓였다. 초록색 멍이 든 귤. 껍질이 얄팍한 귤. 구멍이 송송 난 곰보투성이 귤이 새콤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내내 눈 감은 엄마 곁을 지켰다.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그때는. 그때까지는 말이야.]


 웃음짓던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귤 껍질을 벗겼다.
 언니는 그 귤 치우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언젠가 엄마가 눈을 뜨기를 기대하며, 마치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던 엄마의 십여 년 인생처럼, 과연 그게 뭔지도 모를 흥분에 몸을 맡긴 채 귤 껍질을 벗겼다.


 나는 생각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지도 모른다고.
 나는 울며 생각했다.
 엄마는 죽을 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나는 귤 껍질을 벗기며 그 상큼한 과육의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솟는 침을 삼키며, 다만 기다린다. 그 날이 오기를. 귤이 없었던 세계가 뒤집힌 순간처럼 모든 것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달라지고 그리하여 남은 긴 생애 붙들고 떠올릴 어떤 기적을.
 그때는 귤이 없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청혼하기 전의 세계에는 이 작고 말랑말랑한 과일이 존재한 적 없었다. 아빠는 엄마 손에 귤을 쥐어 주었고 그것이 ‘귤’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웃었다.
 웃었을 것이다.
 언젠가 당신을 떠나 귤과 함께 그리워할 남자를 향해서.


 [맛있지?]


 아빠는 묻고,


 [맛있어요.]


 엄마는. 나는. 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잘 됐다. 좋네.]


 여기 귤이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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