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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문예창작과 에이스

2016.03.01 00:2503.01


…난 착각들을 혼내줄 진짜 언어를 쓸 거야.

<문예창작과 에이스> 

무대 
문예창작과 2학년 강의실
무대 왼쪽에 강단이 있고, 강단 옆에 강의실 입구가 있다. 
강단 앞으로 책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프롤로그
빈 강의실에 이청아가 씩씩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이청아 : 친애하는 제군들! 이 몸이 돌아왔다! 모두 방학 잘 지냈는가?!

강예진이 뒤에서 나타나 이청아의 뒤통수에 꿀밤을 먹인다.

강예진 : 그래! 과대님! 잘 지냈냐?!
이청아 : 글 쓰는 놈들 뼛속 까지 개인주의자들이야. 재섭서. 올해는 과대 안 해.
강예진 : 난 당연히 그런 거 안 하고. 글 쓰는 상놈들을 위해 봉사할 호구가 너 대신 누가 있을까? 
이청아 : 학과 사무실 공고 봤어? 자퇴한 애들 많아. 이학년만 남았는데, 그냥 다니다 졸업하지.
강예진 : 문예창작과는 4년제나 전문대나 모두 자퇴생이 많아. 예술 하기가 힘들지. 
이청아 : 예고 때도 그랬어?
강예진 : 그랬지. 열심히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니.
이청아 : 열심히가 뭐가 어려워?
강예진 : 모든 예술 중에 글 쓰는 놈들이 가장 상놈이고, 질겨. 더 끔찍한 건 이 놈들은 자기가 될 성 싶은 싹이라고 광신해. 쥐뿔도 없는 게 자존심은 하늘을 찔러. 그런데 손 떼고 나갈 정도면 어느 정도겠어? 
이청아 : 듣고 보니 그러네. 너 예고 나와 여기 전문대 온 거 보니.

강예진이 이청아에게 헤드락을 건다. 박건우가 흥분된 상태로 달려 들어온다. 

박건우 : 애들아! 이번 신춘문예에 나 고교 때 백일장 키드 중 하나가 당선됐어!
이청아 : 요! 건우! 잘 지냈어?
강예진 : 야 누가?
박건우 : 최송!
강예진 : 아! 이름은 들어봤어. 
박건우 : 고교 백일장 꼬마끼리는 한 다리 걸치면 다 브라더지.

김태훈이 핸드폰으로 전화하며 들어온다.

김태훈 : 어. 그래 당선 축하한다. 나? 열심히 쓰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그래 다음에 한번 보자.(전화 끊고)건우야. 너 나랑 처음 만났던 고교 백일장 때 삼등 한 최송 알지? 
박건우 : 그때 최송, 너한테 시 배웠는데. 역전 당했네. 내가 괜히 쓰리다.
강예진 : 너 훈장님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어. 애들 모아서 글 공부한다고. 
김태훈 : 괜찮아. 내가 시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도 되니까. 근데 이번에도 서정은이 또 장학금 가져갔더라.
박건우 : 걔 그렇게 잘 쓰지 못하는데. 문장 보면 내가 더 안정적이야.
김태훈 : 교수님들께 물어보니 가장 글 잘 써서, 장학금 준 거 맞대. 물론 공부도 잘해서 성적도 제일 잘 나왔고.
이청아 : 아냐! 나는 시 전문이지만, 걔 글은 소설이나 시나 둘 다 글이 아니야. 꽝이야.

강예진은 동의하지 않고, 휘파람을 불며 슬쩍 천장을 쳐다본다. 민동수가 강의실 입구에서 나타나 안경을 치켜 올린다. 이청아가 표정이 환해져 크게 짝! 하고 박수를 친다. 학생들 모두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한다. 민동수는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짝 다리를 짚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민동수 : 서정은 글은 소설이든, 시든 개연성 떨어지고 주제의 비약이 심해. 왜 그렇겠어?
이청아 : 암 그렇고말고, 민동수. 넌 네 소설처럼 똑똑해.
민동수 : 걔는 그냥 이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 문장은 민슬기가 다듬어 줬겠지. 걘 못하는 애들 잘 챙겨주니까. 박건우 그치?
박건우 : 어. 니 말이 맞어. 문장은 그럴싸해.
민동수 : 아니. 문장은 너보다는 절대 더 잘 써.
박건우 : 그래? 그렇지?
민동수 : 그래 알면 노력해.
김태훈 : 건우는 성실하게 노력 해. 네가 못 보는 거지.

민동수는 고개를 돌린다. 민슬기가 판타지 소설을 높이 들어 올리며 등장한다. 학생들 모두 인사하며 반가워한다.

민슬기 : 애들아 이것 봤어? 이거 올해 영화화 된 대. 굉장히 재밌어. 글 쓰면서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강예진과 이청아가 민슬기에게 달려간다. 민슬기가 한 사람씩 차례차례 안아준다.

민슬기 : 그래. 아가들 나도 보고 싶었어.
민동수 : 그런 거 쓰면 재능 허공에 버리는 거지. 그런 걸 쓰러 문창과까지 오면 안 돼지. 넌 그런 거에 낭비될 재능이 아니야.
민슬기 : 별 거 아냐. 무협지 백 권 보면 모두 나처럼 쓸 수 있어.
민동수 : 좋으면서 겸손은...너나 나나 장학금 한 번 받아야 하는데. 이 학교는 대체 장님인지. 서정은이 뭘 얼마나 쓴다고.
이청아 : 맞아. 너는 자격이 있지.

서정은이 들어온다. 

서정은 : 안녕? 잘 지냈어?
이청아 : 그래 왔니?

이청아가 몸을 휙 돌린다. 강예진이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한다. 남학생들은 가볍게 아는 체를 한다. 민슬기가 다가가 서정은을 안아준다.

민슬기 : 정은아. 방학 어떻게 지냈어?
서정은 : 졸업하자마자 바로 편입하려고, 학원 다녔어.
이청아 : (서정은을 흉내 낸다)학원 다녔어.

이청아가 강예진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귀에 입을 갖다 댄다.

이청아 : 쟤 교수들한테 잘해서 장학금 얻은 거야. 그런 걸로 줄 거면, 과대인 나한테 줘야지.
내가 작년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강예진은 팔뚝으로 이청아 목을 조른다.

강예진 : 너나 시 잘 써. 우리 중 가장 잘 쓰면 장학금 안 주겠니? 
이청아 : 쟤는 가짜로 잘 쓰는 거야! 진짜는 따로 있지! 

무대 암전.

누군가의 목소리 : 그럼 우리 중 누가 진짜로 가장 잘 쓰는데?

무대 밝아진다.
학생들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때 성효창이 들어온다. 성효창이 어색하게 손을 들어 왔음을 알리지만, 학생들은 지금 견제하기에 한창 바쁘다. 

1장
학생들이 책상을 모아 테이블을 만들었다. 테이블 위에 맥주 캔과 과자 안주들이 널려 있다. 

강예진 : 서정은은 어디 갔어?
민슬기 : 편입 학원 갔어.
강예진 : 4년제 대학 들어간다고 작가 되는 건 아닌데. 
민동수 : 서정은 못 쓰는 건 아니지만, 개연성이 희박하고, 캐릭터는 전형적이야. 밋밋해. 장학금 받을 정도는 아니야. 슬기야 넌 뭐 오는 거 없어?

민슬기는 대답하지 않고 과자를 집어 먹는다. 민동수가 박건우를 쳐다보자 박건우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다. 민동수는 만족스럽게 웃는다. 김태훈은 몸을 뒤로 빼며, 팔짱을 낀다.

이청아 : 맞아.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소설가나 시인이 되는 거야. 우리가 여기 뭐 하러 왔는데? 잘 쓰려 왔잖아.
강예진 : 하지만 교수나 선생들은 자신한테 잘 하는 학생을 우대해. 예대나 인문계나 똑같아. 공정한 판단은 없어. 
민슬기 : 우리끼리 좋은 평을 해주는 게 어떨까?
강예진 : 도찐개찐끼리 평가하면 안 돼. 정 안 되면 엄마. 엄마들은 자기 자식들이 뭐 될지 안 될지. 다 알아. 다만 말을 안 할 뿐이야.
이청아 :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그럼 당연히.
강예진 : 니네 엄마가 된다 해도 내가 안 돼.
민슬기 : 이청아는 강예진 사부에게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구나.
강예진 : 학생들끼리 합평하는 거 문창과 교수들이 시간 때우는 가장 유명한 방법이야. 사법고시를 붙어봐야 판검사, 변호사 해보고 법대 학생들 가르치지. 소설, 시집 대신 논문 내고 박사 되어 우리 가르치는 거야. 자기들도 작가 돼 본적이 없으니 어디 찝어 줄지 모르니까 합평 시키는 거지.
박건우 : 맞아 사법고시! 우리가 어디 문예지나 공모전에 당선되면 객관적으로 잘 쓴다는 거 아니겠어?
민동수 : 이미 하고 있어. 넌 응모 안 하니? 
박건우 : 생각을 못 했지.
민동수 : 상상력 부재야. 졸업장에 소설가라 찍혀 나오는 줄 알아? 
김태훈 : 네가 정말 그렇게 잘 써? 내기하자. 

민동수가 김태훈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린다.

민동수 : 뭔 내기?
김태훈 : 올해 2학년 내내 문예지나 공모전 열릴 때마다, 돈 걷어서 가장 먼저 당선되는 사람에게 몰아주자. 
민동수 : 돈? 그런 내기를 내가 왜 할까?
김태훈 : 두려워? 
민동수 : 아니. 몰아주기에 소원 하나 들어주기도 넣자. 
김태훈 : 어떤 소원?
민동수 : 죽으라면 죽는 거.
김태훈 : 좋아. 나보다 잘 쓰면 죽으라면 죽지.
이청아 : 왜들 그래. 시나 소설은 다르잖아.
강예진 : 주관이 극에 달하면 객관이 돼. 어찌됐든 글을 잘 쓰는 거야.
민슬기 : 심사 위원들 자기 안경 따라 작품 뽑아, 당선 됐다고 객관적으로 잘 쓴다고 보기 어려워. 
강예진 : 그래도 일단 뽑혔으면 그 방향으로 보편적 동의를 이끌어 낸 거지. 글 쓰는 상놈들은 잘 쓴다는 타이틀 욕심 절대 못 버려. 문학도 세상처럼 서열 피라미드 구조고, 최상위가 에이스야. 너희들 진짜 욕심 없어? 너희들 글쟁이 아냐?
이청아 : 문예창작과 에이스. 이야. 호칭만 들어도 딱 가장 잘 쓰는 놈이겠네.

침묵. 하지만 모두가 솔깃 하는 분위기. 이청아가 맥주를 원샷 한다. 민슬기는 과자를 잘게 부스며 딴 짓 한다. 김태훈은 민동수를 쳐다보지만 민동수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박건우가 조용히 손을 든다. 모두가 천천히 손을 들어 동의를 표한다.

이청아 : 이런 욕심꾸러기들. 평소에 이렇게 잘 단합하지.
민슬기 : 난 사정이 안 좋아. 편입 안하고 취업 할 거야. 예술로 취업할 수 없고, 단지 여기서 추구할 뿐이야. 우리 같은 친구들은 여기 밖에 없어. 난 진심으로 나 아니어도 우리 중 누군가 잘 됐으면 좋겠다.
강예진 : 맞어. 한 기수 중에 한 명만 되도 엄청 잘 된 거다. 근데 진짜 욕심 없어?

민슬기가 강예진의 목을 장난으로 조른다.

김태훈 : 오늘부터 가는 거다. 문예 계간지들, 중순에는 대학 문학제, 문학상, 라스트는 신춘문예. 이 중 하나는 걸리겠지. 
민동수 : 좋아. 단 시, 소설 중 각자 잘하는 걸로 응모하는 거다. 종목 강요 없기. 이 조건 아니면 난 안 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청아가 취해서 자세가 흐트러진다. 테이블 위로 엉금엉금 오른다.

이청아 : 꺄하하! 내가 우리 문창과의 미친 에이스다! 봐라! 이 우매한 것들아!
마지막에 알리라. 
너희 모두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었음을.
나는 네가 떠난 날을 기억한다.
날개가 탄 줄도 모르고, 불길 속을 뛰어 놀았지.
처음으로 알리라.
너희 모두 전등에 불을 켜 나방을 유혹하던 
사형집행자였음을.
그러니 지금 이 시대를 사랑하라. 
강예진 : 이 년이 미쳤나? 갑자기 취해서 지랄이야. 니가 이태백이야? 자 여러분. 여기 시 못 쓰는 이청아를 올해도 과대로 추천합니다.

모두들 환호하며 찬성한다. 

이청아 : 니네 과대하기가 그렇게 싫니?
민동수 : 글쟁이가 글 밖에 안 보이지. 내 글쓰기도 바쁘다. 번잡스러운 건 패스.
민슬기 : 올해도 잘 부탁해!
강예진 : 그래 열심히 한다. 이기주의자들아.



2장
소설 창작 수업시작하기 전. 
학생들 자리에 앉아, 폰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있다. 
민슬기가 앞에 앉은 서정은을 터치해 주의를 돌린다.

민슬기 : 우리 문학계라는 거 조직했어.
서정은 : 그게 뭔데?

서정은이 몸을 기울이고, 민슬기가 서정은에게 속삭인다. 이청아가 서정은을 힐끔댄다.

서정은 : 정말? 나도 할래?
민슬기 : 이청아에게 신청하면 돼.

이청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떨어져 앉아있는 성효창에게 다가간다. 

이청아 : 저기 성효창 학생? 우리 문학계를 조직했어요.(에이 포 종이를 내민다)여기 적힌 공모전들에 지원하고, 건당 오천 원씩 모아 당선된 사람에게 모아주기로 했어요. 
성효창 : (종이를 받아든다)문예 계간지. 대학문학제. 문학상들은...
이청아 : 문학상들은 좀 쳐주는 메이저급으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당선된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에이스로 인정하고, 소원도 하나 들어주기로 했어요. 하실래요?
성효창 : 여기 마지막에 신춘문예라 써져 있는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예요?

서정은이 다가왔지만 이청아는 쳐다보지 않는다.

이청아 : 신춘문예는 신춘문예죠.
성효창 : 신춘문예 수십 곳은 되는데요. 
이청아 : 예? 그럼 책이 되는 메이저급으로.
성효창 : 작년 당선소설모음집에 스물두 곳이 실렸어요. 
이청아 : 엑?! 거짓말! 
성효창 : 실리지 않은 곳까지 합치면, 한 마흔 곳은 거뜬히 넘을 텐데. 예전과 달리 신춘문예 권위가 떨어져서 별의별 이상한 신문들도 신춘문예를 자처하고. 저기요?

이청아는 성효창의 말을 다 듣지 않고 폰으로 검색한다. 서정은이 말을 걸려 이청아에게 어필하지만 이청아는 폰 화면에 집중한다.

이청아 : 정말이네. 그래도 신춘문예는 신춘문예니까. 책이 되니까. 문학계 하실 거예요? 
성효창 : 전 그냥 졸업장 쓰려고 다니는 거여서 참여하지 않을래요.
이청아 : 예. 실례했어요.
성효창 : 1학년 때 과대의 시를 봤는데.. 

성효창은 이청아에게 더 말을 걸려고 하지만 이청아는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서정은이 따라오지만 쳐다보지 않는다. 서정은이 추월해 이청아를 가로막는다. 이청아는 서정은을 피해서 자기 자리에 앉는다. 정교수가 입장한다. 학생들이 수업 받을 자세를 취한다. 

정교수 : 자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소설 창작 강의를 하겠습니다.

조명이 반쯤 어두워진다. 확성기의 소음 같은 윙윙대는 소리로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 내용은 고장 난 앰프의 노이즈같이 들린다. 

민동수 : 꼬졌다. 
박건우 : 구리다.
민슬기 : 글을 글로 배우는 게 낫겠네요.
김태훈 : 아이고. 내가 시로 들어온 게 천만 다행이지.
이청아 : 다 끝나면 나 깨워.
강예진 : 니가 나 깨워야지. 내가 니 사부잖아. 

조명 밝아진다.

정교수 : 소설은 산을 넘고, 또 넘는 작업이야. 학생 여러분이 힘들어 할 때마다 난 여러분이 소설가가 되어가는 구나하고 매우 좋아합니다. 
서정은 : 예.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정교수가 웃으며 퇴장한다. 학생들이 일제히 정교수 등을 향해 중지 손가락을 세운다.
민슬기가 민동수에게 간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다. 박건우가 다가가 헛기침을 한다.
민슬기는 박건우를 보고 말을 멈추지만 민동수는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민슬기 : 동수야. 건우 왔어. 우리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민동수 : 야! 어떤 방식이 맞냐? 미켈란젤로처럼 백지 안에서 형태를 찾아 패턴을 부여하여
글을 써서 백지를 지워나갈래. 아니면. 자 민슬기씨?
민슬기 : 아니면 다빈치처럼 배경을 밑바탕에 그리고, 스토리를 흐르게 하고, 등장인물로 색칠해서 백지의 자유를 누릴래?
민동수 : 너 잘 생각해 봐!
박건우 : 슬기야. 난 민동수 쪽이 맞는 것 같아.

민슬기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박건우가 가지고 온 소설원고를 내민다. 김태훈이 민동수를 쳐다본다. 민동수는 김태훈의 시선을 의식하고 일부러 팔을 크게 움직여 소설을 첨삭한다. 

민동수 : 넌 이게 문제야. 왜 상징을 뚜렷하게 못해? 뭘 말하고자 하는 건데?
박건우 : 그게 뭐냐면 주인공이 혼란을 극복하게 되는. 
민동수 : 난 그냥 입으로 내 의견 말하는 거다. 넌 소설로 말해야지.

박건우는 침묵하고, 민동수는 첨삭을 마치고, 돌려준다. 박건우가 돌아서서 자리로 돌아갈 때 민슬기가 따라 붙어 어깨를 찰싹 친다.

민슬기 : 괜찮아. 
박건우 : 미안. 난 네 방법도 괜찮았어.
민슬기 : 괜찮대도. 

박건우는 힘없이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김태훈이 다가와 박건우 뒤에서 목을 건다.

김태훈 : 야 임마. 난 널 고교 때부터 봐왔어. 나랑 같이 시 쓰자. 넌 화나지도 않아? 난 큰 형이라는 새끼가!

김태훈이 말을 하다가 민동수를 쳐다본다. 

김태훈 : 시 써서 뭐 먹고 살래? 한량 짓 하려 대학 다녀? 하니까 좆같아서 열심히 쓴다. 난 당선되면 당선 소감에 그 새끼 욕 쓸 거야.

민동수는 신경질적으로 찡그리며 고개를 돌린다. 이청아가 뒤에 앉은 강예진에게 말을 건다.

이청아 : 우리 학교가 전문대라서 이런 가? 종합예대나 경기예대는 교수진이 빵빵한데.
강예진 : 학교 강의에 만족하지 못해 외부 강의 찾아 떠도는 사람 많아. 세상에는 좆같은 새끼들이 선생질 하거든. 아카데미, 문학 강의, 소설작법, 드라마 스쿨. 종류도 셀 수도 없이 많지. 하지만 이 세상 어디든 나한테 맞는 스승은 없어. 나 민동수 고교 때 학원가에서 본 적 있어. 지는 독학으로 왔다고 우기지만. 넌 떠돌지 말고 내 말만 들어.
이청아 :(강예진을 흉내 낸다)내 말만 들어.

강예진이 이청아를 쥐어박는다. 서정은이 일어나서 민슬기에게 다가가 소설을 내민다. 민슬기가 서정은의 소설원고를 첨삭해준다.

민슬기 : 이번에도 잘 썼어. 결말이 아쉬워. 재밌게 봤어.
서정은 : 항상 고마워.

서정은이 이청아를 쳐다보며 자신의 소설원고를 흔든다. 이청아가 서정은과 시선이 마주치자 표정이 굳는다. 서정은이 다가간다. 강의실 입구에 정교수가 나타난다.

정교수 : 과대!

이청아가 서정은에게 약 올리는 미소를 보이고는 정교수에게 달려간다. 

정교수 : 과대 가서 편입자와 취업자 조사해 와라. 

이청아가 강의실을 돈다.

이청아 : 편입? 취업?
성효창 : 군 입대 할 거예요.
이청아 : 편입? 취업?
김태훈 : 박건우와 군대 가야지. 우리도 늦게 가기 싫어. 시 쓰며 한량 짓 할 곳이 여기 밖에 없는데. 졸업 후 군대 갔다 오면 소속되어 있는 곳이 없어 무서워. 하지만 중간에 휴학하고 갔다 오면 수업료 오를 것 같아서 졸업하고 갈 거야.
이청아 : 민동수야! 민동수야! 편입? 취업? 
민동수 : 졸업 전에 끝을 봐야지. 당선되면 훌훌 털어버리고 입대하고, 당선 못 되면 직업학교 등록할 거야. 그럼 군대 일 년 연장 되거든. 그럼 그 일 년에 전부를 걸고 반드시 소설가 된다! 지금 아니면 못 쓰는 글들이 너무 많아.
이청아 : 넌 정말 대단해! 소설가 아니고, 다른 뭘 해도 될 거야! 
민동수 : 아니! 난 소설가 아니면 죽을 거야.
이청아 : 그럼! 아무도 네 기백을 막을 수 없지. 너는 지금도 충분히 소설 잘 써. 
민동수 : 너 보는 눈이 있네?

이청아가 실실 웃기를 멈추지 않는다. 강예진이 이청아의 뒷목을 잡아끈다.

강예진 : 이 년아. 지나가는 참새의 보뭐를 봤니? 자뭐를 봤니?
이청아 : 그대는 편입? 취업?
강예진 : 몰라!
이청아 : 군 입대 셋. 소설가 하나. 몰라요. 하나. 슬기야. 너는 취업이지?
민슬기 : 어. 나 졸업한 선배가 세운 논술 학원에 가고 싶어. 학교와 연계 되서 매년 졸업생 뽑아 가는데 공고 나오면 꼭 알려줘.
이청아 :...그럴게.
민슬기 : 꼭 부탁해. 너만 믿을 게. 
서정은 : 난 편입이야. 그리고 너 치사하게…
이청아 : 그래! 너 편입일줄 알았어.

이청아가 서정은의 말을 끊고, 정교수에게 간다. 정교수는 이청아와 들리지 않게 속삭이다가 말한다.

정교수 : 그래. 알았어. 그럼 너는 취업이냐? 편입이냐?
이청아 : 에...저는. 아직.
정교수 : 넌 고생하니까 따로 챙겨 줄 테니 정해지면 말해라.

정교수는 퇴장하고, 이청아가 강단에 서서 모두의 주의를 끈다.

이청아 :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정교수님이 우리 문학계를 독려 하셔. 근데 아무래도 자기 성과와 취업률 때문인 것 같아. 우리 과는 등단도 취업률로 넘어간대.

학생들 야유한다.

민슬기 : 근데 맞아. 사년 제든 전문대든 요즘 다 취업률 높이려 해. 그래도 대학이니까 취업률이 중요해.
김태훈 : 여기가 직업학교냐? 대학의 본질은 학문 탐구야.
민동수 : 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모르냐? 요즘 취업으로 난리야. 세상과 단절되고 무슨 시를 써서 누구한테 보여 주냐? 
김태훈 : 그럼 시대성을 담았다는 소설 몇 권이냐 팔리냐? 요즘 대세가 누구냐? 

민동수가 고개를 돌린다.

김태훈 : 남의 글 읽지 않고, 자기 글을 세상에 내려고 해? 상도에 어긋나는 거야. 이청아 안 그래?
이청아 : 글쎄? 난 시 쓰는 여자라서. 소설 안 읽어.
강예진 : 좆나 이기적이네. 시집으로 한번 맞아 볼래?

암전.
핀 조명 켜지고, 성효창이 홀로 서 있다. 성효창은 학생들이 책상에 놓고 간 소설 원고들을 읽어본다.



3장
시 창작 수업 시작 전.
이청아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걷는다. 서정은을 그냥 지나친다. 민슬기가 서정은의 돈을 받아 대신 내준다. 이청아는 불만이지만 민슬기의 미소를 보고 마지못해 받는다.

이청아 : 벌써 중간고사도 끝났는데, 우리 계속 안 돼. 공모전 졸라 어렵네.
강예진 : 사람이 하고 싶은 거 어떻게 다 하냐? 그럼 누구나 작가되지.
이청아 :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어?
강예진 : 열심히 하고 있어. 넌 내 말만 들어. 다른 말 듣고 시 쓰지 마. 

이청아가 폰을 들여다본다. 

이청아 : 애들아! 올해도 우리 학교 물망초 문학 제 연대. 과 홈피에 공지 올라왔어! 

학생들이 폰을 꺼내 본다.

이청아 : 이것도 내기에 넣을까?
민동수 : 작년 선배들 꺼 보니 대단한 거 없더만.
김태훈 : 시는 그럴 듯 했어. 김혜정 선배는 작년에 문예지 최종심까지 올랐어. 
민동수 : 지방지였어. 지방지는 작가들끼리 쳐주지도 않아. 작가들끼리 급이 있어.
등단한 친정이 격이 떨어지면 말도 안 섞어.
이청아 : 이런 뭐만한 리그는 급이 아니지. 애들아. 이건 뺀다.
강예진 : 애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느 분야나 일등하기 어려워. 일등도 해본 사람만 해.
난 네가 일등 하라고 시 가르치는 게 아냐. 

시 창작 교수가 등장한다. (정교수가 물고기 가면을 쓴 것이다.) 학생들 자리에 앉아 수업 받을 자세를 취한다.

시 교수 :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물고기에 관한 시를 씁니다. 호호. 시험 대체 과제입니다. 점수에 반영되니 잘 써주세요. 기시감 있게 쓰지 말라 하는데 심사위원들은 자기들이 못 알아먹으면 뽑지 않습니다. 이미지를 만들려 하지 말고, 조합하는 안전 빵으로 가세요. 호호. 이미지 뚜렷한 객관적인 자연물 묘사, 다음은 독특한 해석, 마지막 연은 주제를 써서, 다 읽으면 주제를 띄우는 의도로 쓰세요. 물고기는 자연물이고 자연물은 무조건 사색이나 긍정적으로 가야 합니다. 시는 비극으로 쓰면 안 됩니다. 자연은 탈락시키기 힘든 보편적인 주제입니다. 호호. 이 방식이 공모전에 당선되는 스탠다드입니다. 다 쓰시고 과대에게 제출하세요. 과대는 학과 사무실에 맡겨주세요. 그럼 이만.
김태훈 : 질문 있습니다! 사람마다 털어놓는 방식이 다릅니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곡을 하며 웁니다. 왜 비극으로 쓰면 안 됩니까?
시 교수 : 학생 시인이예요?
김태훈 : 맞는 말, 고운 말만 쓸 거면 왜 시를 씁니까?
강예진 : 야. 야. 김태훈. 하지 마. 안 통해.
시 교수 : 그래야 시인이 되니까요. 뽑혀야 뭐라도 되는 겁니다. 학생.

시 창작 교수가 퇴장한다. 김태훈이 박건우에게 가서 시집을 펼쳐 보인다.

김태훈 : 자 저 양반은 저 양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시를 쓰자. 시어에 길들여지면 안 돼. 이 시집은 종합예대 극작과 학생들이 쓴 시야. 극작과 학생들은 대사를 쓰기 위해, 이미지를 함축시키려 시로 단련한대. 같이 읽어 볼까.
강예진 : 기죽을 거 없어. 저 양반 스승이 모던니즘 자연파야. 자기 계파 따라가는 거야.

김태훈이 시집을 읽기 시작하고, 서정은과 강예진이 같이 듣는다. 이청아가 시를 쓴다. 

이청아 : 음. 그럼 라스트는. 오 보라. 이 아름다운 비늘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것이야 말로 생명의 신비로다. 아닌가? 항구 바람에 펄럭이는 눈동자와 날 푸른 갑옷이 낫나? 사부 잘 썼지? 
강예진 : 야! 너 뭐 하는 거야?!

강예진이 강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물고기를 들고 돌아온다. 학생들 놀란다.

이청아 : 미쳤어?!
강예진 : 자 봐! 이 징그러운 비늘과 흐리멍텅한 눈동자를! 이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진짜 시야. 너의 언어야. 학점? 그게 중요해? 숨 쉬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남의 숨이 아닌 네 숨을 쉬어야 해.
비굴한 타협을 거르지 않은 너의 언어를 반성해. 주류를 따라가는 노예근성을 토해. 반성해야 좋은 시인이 돼. 넌 내 말만 들으라고! 다른 곳에서 검댕이 묻혀 오지 마!

강예진이 물고기를 내동댕이치고, 달려들어 이청아의 시를 찢어 버린다. 이청아가 비명을 지르자 성효창이 벌떡 일어난다. 이청아가 민동수를 쳐다본다. 민동수가 강예진을 구석으로 데려간다.

민동수 : 왜 그래? 
강예진 : 니가 스승에게 당했던 짓을 박건우에게 하듯. 나도 똑같이 나쁜 짓을 했어.
민동수 : 원래 스승 틀에 찍히고, 우리도 틀로 찍고 다 그런 것이야. 그리고 난 독학이야.
강예진 : 거짓말 마. 넌 티가 너무 나. 그리고 여기는 자유로울 공간이야. 박건우한테 그만 독재해.
민동수 : 거짓말은 너나 하지 마. 여기도 학교야. 물망초 공모전 당선자는 분명 글로 뽑히는 게 아닐 거야. 예술 학교나 일반 학교나 똑같지.
강예진 : 그럼 넌 여기 왜 있어?
민동수 :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 왜냐하면 난 목숨을 걸었거든.
강예진 : 웃기지마. 뻣뻣하면 부러져. 부드럽게 휘어. 
민동수 : 너 먼저 휘세요. 너 네 언어를 위해 순교할 생각이잖아?
강예진 : 순교 아냐. 난 살기 위해 떠나는 거야. 

암전.
교실은 텅 비어 있다. 핀 조명이 김태훈과 박건우를 비춘다.

박건우 : 방학 때 뭐할 거야?
김태훈 : 우리 큰 형 그 새끼가 나 등록금 안 주겠다고 하잖아. 그 새끼 가게에서 쎄 빠지게 일했는데도 이 지랄이야. 살아남으면 돌아올 게.
박건우 : 같이 군대 가야지. 
김태훈 : 걱정 마. 브라더. 계획대로 꼭 같이 동반입대 한다. 세상에 시 쓰고, 소설 쓰는 한량들이 많은 줄 아냐? 우리 밖에 없으니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 

김태훈이 주먹을 내민다. 박건우가 주먹을 부딪친다. 퇴장한다. 성효창이 아무도 없는 것을 살피고는 조심스레 들어온다. 교탁 위의 시 원고들을 살펴본다. 무심결에 펜을 꺼내 첨삭하려다가 멈춘다. 수첩을 꺼내어 뭔가를 적는다. 이청아가 갑자기 나타난다. 이청아는 놀란 성효창을 무시하고 교탁 위의 시 원고들을 걷어간다. 

성효창 : 괜찮아요?

이청아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퇴장한다. 



4장
방학 전.
이청아가 민슬기에게 웃으며 다가간다. 장난스럽게 찰싹 때린다.

이청아 : 이 못된 이등아! 

민슬기가 이청아를 안는다.

민슬기 : 이등해서 미안. 여기서 울어.
이청아 : 엉엉. 나도 열심히 썼는데. 애들아! 과 홈피에 물망초 문학제 수상작 올라와 있어! 이등 민슬기. 일등 서정은. 

학생들이 폰을 꺼내 본다. 

민동수 : 문단 나눔이 잘못 됐어. 화자도 너무 자주 바뀌어.
박건우 : 나랑 별 차이 없네.
이청아 : 이건 소설이 아니야. 그냥 의식의 흐름이야. 쳇. 삼등이나 가작까지 해서 나까지 상 주지.
김태훈 : 좋겠다. 또 장학금 타겠네. 근데 시는 왜 한 편도 안 뽑아?
강예진 : 물고기 양반 안경에 안 들면 다 떨어지는 거야. 시인들 자기 계파 따라가는 게 유별나지.

서정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정은 : 할 말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줘. 나도 듣고 배우게. 혹시 이해 안 가는 점 있으면 직접 와서 물어줘. 뭐든 대답해 줄게.

학생들 아무도 대답 안 한다. 이청아는 폰을 들여다보며 서정은 소설을 계속 읽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 자신에게 놀란다. 주위를 둘러봐 누군가 봤는지 살핀다.

이청아 : 애들아! 정교수님한테 연락 왔는데 방학 전 제출 과제로 단편 소설 써서 내래.
다 쓰고 교탁 위에 놔두면 내가 거둘게.

학생들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지만 종이를 꺼내 쓴다.

강예진 : 제군들. 정말 너무 열심히 한다.

서정은이 민슬기에게 가서 소설을 보여준다. 민슬기가 첨삭한다.

서정은 : 고마워 네 덕분이야. 
민슬기 : 네 소설 재미있었어. 나도 보람을 느껴.

박건우가 소설을 들고 민동수한테 향한다. 민동수가 박건우 소설원고를 받아 첨삭한다.

민동수 : 우리 이번 문예 계간지 가을 호에 도전한다. 너 쓰고 있지?
박건우 : 어 니가 말한 대로 잘 쓰고 있어.
민동수 : 내가 시킨 대로 네가 잘 쓰면 예심 통과했겠지. 나 여름 호에 예선 통과한 거 김태훈에게 말했어?

김태훈이 깜짝 놀라 민동수를 쳐다본다. 학생들 사이에 오- 하는 작은 환호가 퍼진다.

박건우 : 아직 아니.
민동수 : 말해. 곧 깃발을 꽂는다고. 이거 내가 어제 완성한 건데 연구해봐. 이 구성대로만 쓰면 돼.

박건우가 민동수에게 소설원고를 받고 돌아선다. 민슬기가 박건우를 잡아 끈다.

민슬기 : 무지개가 뭐야?
박건우 : 응? 한 줄기 나무인데 일곱 색깔의 깃털이 있어.
민슬기 : 그건 은유야. 사람에게는 언어적성이 있어. 네가 무지개의 성질을 설명하면 환유. 하지만 네 대답은 명백한 은유야. 넌 시인이 될 사람이야. 왜 소설가가 되려고 해?
박건우 : 되고 싶으니까.
민슬기 : 언젠가 네 색깔을 찾을 거야. 너무 낙심해 마.

박건우가 민동수 눈치를 보지만 민동수는 못 들은 척 한다. 박건우가 자리로 돌아간다.

민동수 : 야 민슬기 나랑 얘기 하자. 
민슬기 : 무슨 얘기?
민동수 : 너 괜히 희망 주지 마. 누군가는 노래 부르지 만 누군가는 부를 수 없어.
세상은 그래. 헛된 희망 주지 마.(면도칼을 꺼낸다)이거 보여? 우리 중 누군가가 나보다 잘 쓰면 난 죽을 거야. 아무도 내 각오를 따라 올 수 없어.

김태훈은 민동수의 말을 듣고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민슬기가 민동수의 면도칼을 잡아 주머니에 넣는다.

민슬기 : 만약 내가 당선된다면 내 소원이 뭔지 알아? 이 경쟁을 시작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난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어.
민동수 : 네가 아무리 착해도 세상은 너한테 절대 양보하지 않아. 세상은 판타지 소설이 아냐.
민슬기 : 세상은 그래도 난 우리 애들을 믿어. 너는?
민동수 : 내가 옳다는 게 증명된다면 나도 믿어. 
민슬기 : 그래서 난 더더욱 열심히 쓸 거야. 내가 당선되길 빌면서. 

민동수가 대답 없이 소설 쓰기에 열중한다. 민슬기가 이청아에게 간다.

민슬기 : 청아야. 혹시 학원 취업 공고 나왔어? 작년에는 이맘때 나왔거든.
이청아 : 어 그게 말이야. 글쎄다. 그게..어찌 됐냐.
성효창 : 그거 제가 우연히 들었는데, 학원 사정으로 미뤄졌대요. 
이청아 : 오? 그래요. 그런가 보다.

민슬기가 성효창을 빤히 쳐다본다. 성효창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김태훈이 강예진에게 간다.

김태훈 : 야. 너 저 새끼. 아니 민동수 예심 통과한 거 알고 있었어?
강예진 : 신경 쓰지 마. 네 언어를 찾아. 시뮬라르크 같은 복사된 언어 말고 네 언어에 집중해.
김태훈 : 그렇게 쓰지 않으면 심사위원들 못 알아먹어. 처음에 당선되려면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은근슬쩍 드러내야 심사위원들은 내가 다 알지라는 착각으로 뽑아. 
강예진 : 난 착각들을 혼내줄 진짜 언어를 쓸 거야.
김태훈 : 공모전 하나도 지원 안 했으면서 자신만만하네. 아무도 그렇게 쓸 수 없어.
강예진 : 떠나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지. 나는 곧 떠날 거야.
김태훈 : 너는 떠나니? 나는 도망칠 거야.

강예진이 놀라지만 김태훈은 쉿 하며 강예진을 조용히 시킨다. 김태훈이 강예진에게 조용히 들리지 않게 소곤댄다.

이청아 : 자! 방학 동안 공모전을 위해 돈 걷는다. 모두 지갑 오픈!

이청아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돈을 걷는다. 서정은을 그냥 지나친다. 서정은이 이청아의 옷자락을 잡고 뒤돌아 세운다. 돈을 내민다. 

서정은 : 받아!
이청아 : 그래!

이청아는 건성으로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암전.
핀조명이 성효창이 비춘다. 성효창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교탁 위의 원고들을 살펴본다. 수첩에 뭔가를 적는다. 김태훈이 조용히 다가와 어깨 너머로 성효창의 수첩을 본다.

김태훈 : 뭐야. 너도 열심히 하고 있었네.
성효창 : 누구? 아니야. 난 아무 것도 아니야.
김태훈 :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없어. 좆도 아닌 새끼는 있지. 나 군대 간다. 나 큰 형한테 얹혀사는데 장사 잘 안 된다고 그냥 군대 가래. 사년 제 애들은 이학년 때 가잖아. 우리는 졸업하고 가고. 걔들은 졸업하면 돌아올 곳이 있는데 우리는 없어. 끈 떨어진 연이지. 어디서 누구랑 시, 소설 얘기 할까? 다 부질 없는 한량 짓이야. 차라리 지금 군대 가는 걸 다행이라고 좋아해야 되나? 아니다. 이상한 얘기해서 미안하다. 
성효창 : 이상한 얘기가 소설이 되고, 시가 되지. 우리는 이상한 얘기하러 온 사람들이잖아.
김태훈 : 고마워. 왜 진작에 너랑 친하게 안 지냈을까? 나 실은 도망치는 거야. 민동수 걔 예심 통과했다며. 걘 내가 봐도 될 것 같아. 내 눈앞에서 누가 나보다 잘 쓴다는 월계관을 쓴다는 걸 볼 수 없어. 민동수가 무슨 소원을 빌지 두려워. 
성효창 : 아직 패 다 안 깠어.
김태훈 : 패 까기 전에 접는 거야. 박건우가 나대신 시를 써줬으면 하는데. 그랬으면 좋을 텐데. 박건우를 잘 부탁해. 이거 내 시 습작물 인데 전해줘. 

성효창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시 원고를 받아 든다. 김태훈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성효창이 악수를 받아들인다. 둘은 악수하다가 서로를 끌어당겨 어색하게 포옹한다.



5장
방학 날 빈 강의실에서. 
강예진이 자리에 앉아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청아는 책상들 사이를 떠돌다 칠판에 낙서한다.

이청아 : 나 사실 취업 공고 미리 물어봤는데, 그거 한 명 밖에 지원 못한대. 그래서 숨겼어.
없는 집 살림에 기둥 뽑아 대학 왔는데, 편입한다고 또 돈 달라고 어떻게 말해?
강예진 : 본인 살겠다고 하는데 누가 욕하겠니? 종합예대나 경기예대도 취업률로 들볶이니까
교수들이 평가 거부 한다고 플랜카드 걸었어.
이청아 : 내가 널 실망시켰지?
강예진 : 이리와 앉아.

이청아가 강예진 옆 책상에 앉는다.

강예진 : 내가 널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 스승이 널 가리키고 있어. 나 예고 때 아주 좆같은 새끼가 있었어. 이제 막 대학 석사 따고 고용강사로 온 놈이었는데. 그때는 선생님이라니까 대단하게 보였지. 칠판 위에 대나무 회초리 걸어놓고, 무조건 모던니즘 자연파 시만 쓰게 했어. 웬 줄 알아? 지 스승이 자연파니까. 그때 고교 백일장 심사위원이 그 놈 스승이었거든. 스승에게 보답하기 위해 매일 자연물 예찬만 했어. 다 우리 백일장 당선을 위해서라며. 이렇게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내 혀가, 내 펜 끝이 거세돼. 대들 수도 없어. 그 새끼는 시집 내고, 문예지에 친정 둔 시인이거든. 이 바닥은 당선 된 놈들이 왕이야. 먼저 된 놈들이 지망생들 거세하는 곳이 이 바닥이야. 어떤 스승이든 지들 틀에 맞춰야 돼. 시가 아니라고 하면 시가 아니야. 넌 내 말만 들으라고. 
이청아 : 넌 내 말만 들으라고.
강예진 : 맞아. 그렇게 가르쳤어. 지금 너와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세상 어디를 가도 해처럼 그 놈이 떠 있다. 여기에 그 놈의 부재가 가득 차 있어. 난 시인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야. 
공모전 한 번도 안 냈어. 당선 됐다고 그 놈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게 아니야. 여기서 널 가르치면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네. 내 언어를 찾아야겠어. 아름다운 시어를 쓴다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닌데, 그 새끼는 정말 유별났어. 난 그림자를 그려 해가 있음을 알릴 거야. 밝은 말은 충분히 썼어. 강요 받지도 않고, 시달린 적도 없는 내 언어를 찾을 거야. 세상을 떠돌며 무사 수행 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이청아 : 그럼 나는? 나는 누가 가르쳐?
강예진 : 지금 안 가면 내가 널 잡아먹을 거야. 다음에는 회칼을 가지고 올지도 몰라. 그 선생 새끼처럼 널 거세할 거야. 
이청아 : 그래도 좋아. 가지마.
강예진 : 날 위한다면 불쌍하고 멍청한 이기주의자들을 위해 2학기에 또 과대 해줘. 다들 지들 글만 봐. 서정은 글 잘 알지? 너도 문창과 일 년은 다녔잖아.

이청아는 묵묵히 있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강예진 : 문창과 바보 이기주의자 꼬마들 너무 열심히 해. 자 난 내 언어 찾으러 떠난다. 아주 멀리 떠날 거야. 언젠가 연락할 게.
이청아 : 갈 때 가더라도 시 한 수 남기고 가.
강예진 : 네가 바로 내가 남길 시야.
이청아 : 그럼 네 모험심을 조금만 섞어줘.

강예진이 종이와 펜을 꺼내 시를 쓴다. 



6장
2학년 2학기 개강날
이청아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이청아 : 김.예.진 독한 년 자퇴하고 떠나 냐? 휴학하지.

박건우가 안을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들어온다.

이청아 : 요! 건우! 어떻게 지냈어?
박건우 : 그냥 지냈어. 넌 잘 지냈어?
이청아 : 거지같았어. 강예진은 멀리 떠났어.
박건우 : 태훈이에게 들어서 짐작하고 있었어. 너 괜찮아? 
이청아 : 뭐가?
박건우 : 이제 혼자잖아?
이청아 : 사람은 원래 혼자야. 강예진 쿨 한 거 있었잖아. 사부한테 감염 됐나 봐.
박건우 : 넌 강하네.

성효창이 들어온다. 이청아와 어색하게 인사한다. 박건우에게 다가간다.

성효창 : 이거 김태훈이 너한테 전해 달랬어.

박건우가 김태훈의 시 원고를 받는다. 

박건우 : 고마워. 난 떠나 보낼 용기가 없었어. 난 공고 나와서, 주위에 글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고교 백일장 때 우연히 태훈이를 만나고 난 태훈이에게 많은 걸 의지했지.
성효창 : 내가 부족하지만 너를 돕게 해줘.
박건우 : 내 얘기 다 듣고도 그런 말 할 수 있을까?

박건우와 성효창이 들리지 않게 소근거린다. 성효창이 크게 놀란다. 서정은과 민슬기가 팔짱을 끼고 사이 좋게 들어온다. 이청아가 소란을 피우며 민슬기 품에 안긴다.

이청아 : 자기야! 보고 싶었어! 잠깐만.(폰을 받는다)예. 지금 갈게요. 조교 언니가 불러서 실례.

이청아가 나갔다가 잠시 후 들어온다.

이청아 : 어떻게! 애들아! 민동수 자살 시도해서 지금 병원에 있대. 손목 잘못 그어서 이제 오른 손 못 쓴대!

이청아가 오열하며 주저앉는다. 민슬기가 이마를 짚고 휘청인다. 서정은이 이청아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려 한다.

이청아 : 이거 놔! 니가 왜 돌아온 거야! 진짜 잘 쓰는 애가 돌아와야지. 너 같은 사이비가 왜 돌아왔어? 네가 떠났으면 좋겠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이청아가 주머니에서 문학계 돈을 꺼내 서정은 얼굴에 던진다. 

박건우 : 진짜 잘 쓰는 건 나야! 민동수 그 자식은 문예지 가을 호 심사에 오르지도 못 했어! 난 최종심까지 갔지!
민슬기 : 너 뭔가 알고 있니?
박건우 : 그 새끼한테 전화 걸었지. 니가 키우던 개한테 물린 기분이 어떠냐고? 넌 평생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뭘 해도 안 될 거라고 해줬어. 왜인지 알아? 동수가 반대한 구성으로 써서 됐으니까! 그때 그 새끼 뭐라 했는지 알아? 아무 말도 못 했어. 근데 난 다 들었어. 그 병신새끼 울고 있었어!

이청아가 박건우한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이청아 ; 같은 글쟁이끼리 꼭 그래야 속이 시원했냐?!
박건우 : 복수야! 글 쓰는 사람은 글로 사람 잡아먹어. 어제 잡아먹으면 오늘 잡아 먹힐 줄 알아야지!

학생들이 이청아와 박건우를 떼어놓는다. 이청아 주저앉아 운다.

박건우 : 그 새끼가 나대지 않았으면 김태훈 떠나지 않았어! 그 병신이 우리를 갈라놨어! 이제 난 혼자야. 누가 내 형제가 될 건데? 누가 내 곁에 설까? 

성효창이 흥분한 박건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이청아 : 서.정.은!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서정은 : 너 내가 그렇게도 싫니? 내가 뭘 어쨌다고?
이청아 : 너 때문에 이 경쟁이 시작됐어. 네가 잘 쓴다는 거짓이 우리 모두의 불행이야.

민슬기가 서정은 곁으로 와 손을 잡아준다. 

서정은 : 니네 진짜 열심히 한다.

서정은이 민슬기 손 뿌리치고 밖으로 나간다.



7장 
이청아가 강단에 서 있다. 학생들 책상에 앉아 폰을 보거나 뭔가를 쓰고 있다.

이청아 : 잠깐만! 집에 가지 말고 공지 좀 들어줘. 애들아! 이제 내년에 졸업인데 졸업 문집에 들어갈 시나 소설 한 편씩 교탁에 제출 해죠. 내가 편집위원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청아 : 나도 하기 싫어. 니들은 내 말만 씹으면 되니까 편하겠다. 

서정은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나간다. 서정은은 책상에서 모든 책을 꺼내 가방에 담는다. 잠시 생각하다가 책을 다시 꺼내서 쓰레기통에 전부 버린다. 강단에 선다.

서정은 : 너희들 모두 잘 들어! 나 실은 수능 봤어. 결과 잘 나올 거야. 이제 여기 때려 칠 거야. 사 년제 대학에 갈 거야. 니들 전문대 나와서 편입해봤자 평생 편입 꼬리표 매달고 살아. 그리고 글 배워서 뭐해 먹고 살래? 너희는 방향을 잘못 잡았어. 너희는 삶에 지쳐갈 거야.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것들, 함께한 시간들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난 정말 행복할 거야. 안녕. 잘 있어라! 난 절대 이 방향으로 눈길 주지 않을 거야. 남은 시간 계속 열심히 해라.

서정은 뒤돌아서 칠판에 시를 쓴다.

- 너희들 손끝은 시지푸스가 되어 평생 감당 못할 바위를 굴릴 것이고,
구원 받으려 천국을 쳐다보나 프로메테우스는 너희를 무심히 지나갈 것이다.
너희들 눈 캄캄해져 앞 못 볼 때,
빛 때문이 아니라 가슴에 사랑이 없어서라는 소리를 듣고 
손끝으로 눈물을 흘릴 거다. -

서정은 한 걸음 물러서서 시를 쳐다본다. 

서정은 : 안녕. 나의 아름다움이여. 

서정은 퇴장한다.
성효창이 입장한다. 성효창이 시를 보고는 옮겨 적는다. 이청아가 나타난다.

이청아 ; 갔어요?
성효창 : 아주 간 것 같아요.

이청아가 시를 읽는다.

이청아 ; 그러네요. 시도 제법이네. 서정은은 소설이 메인인데 왜 시를 썼을까?
성효창 : 누군가에게 한 방 먹이려고...쓴 것 같은데. 소설 쓰지만 시도 잘 쓸 수 있다고...너보다. 

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힘없이 자기 자리에 앉으러 간다. 가다가 뒤돈다.

이청아 : 저기 우리 나이도 동갑이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 편하게 할까?
성효창 : 그럴까?
이청아 : 그러자.

박건우와 민슬기가 들어온다. 둘은 시를 보고 놀라 멈춰 섰다가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정교수가 들어온다. 학생들 수업 받을 준비를 한다. 정교수가 칠판의 시를 무심히 지운다.

정교수 : 자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소설 창작 강의를 하겠습니다.

무대가 반쯤 어두워진다. 사이렌 울리는 소리 같은 강의가 시작된다. 

이청아 : 이제 쓰는 것에 지쳐 간다.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돼?
민슬기 : 청아야. 지치지 마. 조급해하지도 말고. 인생 제 페이스대로 흘러가는 거야.
박건우 : 사년 제 간 백일장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이 학년 쯤이면 다른 과로 넘어가거나 취업 지망으로 정리 돼. 그때부터 소설, 시 쓰는 거 그냥 생활이지. 작가 되려는 건 아냐.

사이렌 강의가 멈춘다. 무대 밝아진다. 정교수가 분필을 바닥에 던진다. 

정교수 : 니들 왜 이렇게 호응이 없냐?! 니네 문학계인가 뭔가 그럴싸한 것도 이제 안 하잖아. 왜 그런 것 같아?
이청아 : 왜인데요?
정교수 : 니들이 다 열심히 안 한 탓이지. 원래 글 쓰는 거 힘들다. 난 너희가 힘든 모습을 볼 때 이제 소설가가 되어 가는 구나하고 뿌듯하다.
이청아 :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쓰신 소설이 뭐예요?
정교수 : 제목이 저 푸른 소나무에 걸린 비둘기는 언제 날아갈까? 오늘 갈까? 내일 갈까? 란다. 한 번 읽어볼래?
이청아 : 그거 어디 발표하셨어요? 문예지? 신문? 인터넷?
정교수 : 너 왜 그러냐? 내가 너 안 챙겨줘서 불만인 것 같은데. 니가 부탁한 학원 자리 나왔다.
민슬기 : 학원 강사 모집 공고 나왔어요?!
정교수 : 민슬기 니 자리가 아니다! 과대는 학교생활 우수자이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마땅히 챙겨줘야지. 이렇게 애가 덤비잖아. 슬기양은 조금만 참고 기다려요. 알겠지?
민슬기 : 언제요?
정교수 : 과대는 따라 나와라. 얘기 좀 하자.
민슬기 : 청아야?

정교수가 입구로 간다. 이청아가 따라 간다. 민슬기가 부르지만 이청아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정교수 : 취업하면 지금 학기 중에 나가야 해. 수업도 안 받고 좋지? 니들 휴강하면 좋아하잖아. 너 어차피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나가서 빨리 돈 버는 것도 괜찮지.

사이

이청아 : 우리 중 누가 가장 잘 쓰는지 전 끝까지 알아야겠습니다! 반드시 에이스를 뽑을 겁니다!(침묵)취업 지원자로 민슬기 학생을 추천합니다.

이청아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민슬기가 이청아를 바라보다가 폰을 꺼내본다. 정교수의 호출이다. 입구로 가서 정교수와 들리지 않게 이야기를 나눈다. 정교수 퇴장. 민슬기가 달려와 이청아를 껴안는다.

민슬기 : 고마워. 난 너를 믿었어. 우리 애들을 믿었어.
이청아 : 내가 더 고마워.
민슬기 : 뭐가?
이청아 : 우리를 믿어줘서.

암전
핀 조명이 빈 강의실의 성효창을 비춘다. 성효창이 교탁 위에 놓인 졸업 문집 원고들을 살펴본다. 수첩에 뭔가를 적는다. 민슬기가 뒤에서 나타나 몰래 다가와 성효창 어깨너머로 수첩을 본다. 성효창은 깜짝 놀란다. 민슬기가 웃으며 원고를 내민다. 

성효창 : 교탁에 내는 거예요.
민슬기 : 너한테 주는 거예요. 자 받아. 김태훈이 다 말했어. 너라면 알지 않아? 우리 중 누가 제일 잘 쓰니?



8장
어둠 속
이청아의 목소리 :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려줘. 우리 같이 할 얘기가 있어.
무대 밝아진다.

이청아: 박건우. 이미 늦었지만 미안해. 네 아픔을 이해했어야 하는데... 
박건우 : 아무도 내 아픔을 이해 못 해. 그럴 수 있는 사람 지금 군대에 있어. 그래도 네 얼굴 볼 면목이 없어. 네가 민동수를... 
이청아 : 더 깊게 들어가지 말고 끊자. 각자 아끼는 사람이 다르니 다시는 꺼내지 말자.
박건우 : 역시 강예진의 제자야. 쿨해. 마지막으로 너한테 화낼 때 보니 난 정말 시인의 자질이 있다.
이청아 :(박건우를 흉내 낸다)누가 내 형제가 될 거냐? 미안하다. 누나여서.

이청아와 박건우 함께 낄낄대며 웃는다.

성효창 : 그런데 할 얘기가 뭐야?
이청아 : 누가 잘 쓰는지 결판 봐야지. 아직 공모전 끝나지 않았어. 신춘문예하자.
박건우 : 이미 십이월 초 넘었잖아. 응모기간 끝났어. 모든 신문사들 닫았어.
이청아 : 아니야. 요즘에 신춘문예 권위 떨어져서 개나 소나 신춘문예한대. 그렇지?
성효창 : 그렇기는 한데.
이청아 : 내가 알아봤어. 우리청춘 신문이라고 구독자는 오십 대만 까지만 받고, 신춘문예 지원자는 서른 살까지 받는 희한한 신문사가 있어. 거기는 성탄절까지 원고 받는데.
박건우 : 엑?! 그럼 언제 심사하고 발표해?
이청아 : 일월 일일. 그러니까 신춘문예지.
박건우 : 세상에 별 요상한 신춘문예도 있네.
성효창 : 어딘지 알겠어! 거기는 시 다섯 편이 아니라 한 편만 넣어도 되고, 소설은 단편, 중편 같이 심사해. 요상한 신문사지. 잘 찾아보면 다른 요상한 곳도 분명 있을 거야. 
박건우 : 너무 열심히 한다. 힘들지 않아?
이청아 : 실은 물망초 공모전에 서정은과 민슬기 뽑힌 게 가장 잘 써서가 아니라, 편입 지원 우수자와 취업 지원 우수자 밀어주려고. 예술학과도 일반 학과랑 똑같지. 

사이

이청아 : 서정은 사실 잘 썼어. 우리가 서정은을 미워한 것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해서. 질투에 눈이 멀었어. 눈이 멀어서 남의 글 안 보고, 우리글이 최고라 생각했지.
박건우 : 내가 안 되면 너도 안 된다는 놀부들이었지. 나도 잘한 거 없어.
이청아 : 나란 사람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 서정은을 사랑하고 싶어. 걔한테 뱉은 언어를 나한테 씌우고 싶어. 
성효창 : 분명 다 용서 할 거야.
박건우 : 서정은 얘기 들었어. 종합예대에 실기 보러 갔대. 백일장 친구가 실기 시험 진행 도우미 하는데 지원서 정리하다가 봤대. 나한테 우리학교 자퇴했냐고 확인 전화 걸었어. 
이청아 : 무슨 과야? 
박건우 : 당연히 문예창작과지.
이청아 : 우와! 정말 열심히 한다. 나 열 명 모아도 서정은의 절반도 안 될 거야. 우리도 열심히 하자.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동기들 전부와 같이 끝을 보자.
성효창 : 어떻게 모두 다 와?
이청아 : 녀석들 떠나지 않았어. 여기 우리와 함께 있어.



9장
12월 겨울방학 전 날.
강의실에서 이청아가 책상에 우체국 갈색 봉투를 늘어놓고 있다. 
박건우와 성효창이 들어온다.

이청아 : 요! 건우! 요! 효창! 왔어? 빈손으로 오지 않았지? 
박건우 : 효창이랑 같이 김태훈 시 중에서 뽑았고. 민동수가 전에 연구하라고 준 소설.
난 시 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소설 썼어. 민동수와 내 얘기를 썼어.
이청아 : 그래 잘했어. 다 토해내지.
박건우 : 아니 평생을 가도 다 토해내지 못할 거야. 아니 안 할 거야. 내가 평생 지고 갈 거야.

이청아가 박건우를 안아준다. 민슬기가 들어온다.

민슬기 : 점심시간에 빠져 나오라고 혼났네. 학원도 은근히 빡빡한 직장이야.
이청아 : 슬기야! 월급타면 나 맛있는 거 사줘.
민슬기 : 우리 아가부터 맛있는 거 먹여야지. 그러려고 힘들게 일하는데. 당선 되면 소원은 정했지?
이청아 : 글쎄올시다. 너는?
민슬기 : 우리 모두 다시 만나길. 내가 되면 당선 소감에 적을 거야. 삼 년 뒤 오늘 여기서 다시 모이자고. 
이청아 : 왜 삼 년이야?
민슬기 : 남자 애들 군대 갔다 오는 거 감안해서 정했어. 
박건우 : 나도 같은 거 빌어도 될까? 난 그때까지 용서받을 용기를 준비하겠다고. 나도 당선 소감에 적을 게.
민슬기 : 그래 주면 고마워.
이청아 : 나도 같은 거 빌래. 나도 당선 소감에 적을래. 우리 모두 헤어질 때 모습 변하지 않고, 옛날처럼 다시 만나길. 
성효창 : 난 따로 빌게 있어. 미안. 
민슬기 : 괜찮아.
이청아 : 자 그럼 내가 우체국에서 봉투 사왔으니 한 명씩 원고를 줘.

이청아가 책상에서 봉투를 뒤적이는 사이. 성효창이 박건우와 민슬기에게 가서 들리지 않게 속삭인다. 박건우와 민슬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청아가 봉투를 준비하자 민슬기가 먼저 원고를 건넨다.

이청아 : 좋아. 민슬기 뭐 썼어?
민슬기 : 소설.
이청아 : (이청아가 봉투에 넣으면서 호명)박건우. 김태훈. 민동수. 다음은 강예진의 떠나기 전 모험심. 나의 미친 패기. (성효창이 건넨다. 이청아 넣으면서 호명)성효창. 다음은...서정은. 그때 칠판의 그 시지?

성효창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청아 : 고마워. 내가 했어야 하는데. 성효창. 너는 뭘 썼어?
민슬기 : 청아야 미안한데. 나 원장님한테 연락 왔어. 회의 있어서 빨리 들어가 봐야 해. 졸업식 날 보자. 애들아 미안.
이청아 : 잘 가. 졸업식 날 보자! 내가 잘 접수할게.
성효창 : 걱정 말고 들어가. 
박건우 : 수고해. 다음에 또 보자.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해. 잘 살아.

민슬기가 퇴장한다. 이청아는 박건우의 인사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린다.

이청아 : 건우야?
박건우 : 나 졸업식 날 안 와. 졸업 전에 입대 해. 김태훈 빨리 따라잡아야지. 잘 있어. 우리 중 누군가가 당선되길 빌어. 그래야 또 보니까. 안녕.

박건우가 도망치듯 달려 나간다.

이청아 : 박건우! 박건우!
성효창 : 잘 가. 

사이

성효창 : 나도 이만 갈게. 청아야. 수고해줘.
이청아 : 잠깐 넌 뭘 썼어? 시야 소설이야? 
성효창 : 평론.
이청아 : 평론?! 그럼 네가 보기에 우리 중에 누가 가장 잘 써?
성효창 : 너.
이청아 : 내가?
성효창 :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사이

이청아 : 아니 글 말야. 우리가 읽고 쓰는 이미지와 사유, 애태우는 단어와 앓아 눕는 문장들의 조합 말이야. 누가 가장 잘 쓰냐고.
성효창 : 너. 너는 우리 과 바보 이기주의자들을 아끼니까. 사랑하니까. 민동수를 좋아하니까.
넌 네 시처럼 순수해. 나도 네가 쓴 시가 되고 싶어.

사이

이청아 : 고마워. 미안해.
성효창 : 문학계로 모은 돈. 민동수 치료비로 갖다 줘. 아까 우리끼리 얘기 끝냈어. 내 소원은 그가 예전처럼 건강해지는 것이야. 그에게로 가서 우리가 열심히 했음을 알려줘. 안녕. 너희 중 누가 당선되면 또 보자. 그런데 난 내가 되길 바래.
이청아 : 잠깐 기다려! 

성효창은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간다.
이청아가 계속 부르지만 이미 성효창은 없다. 이청아는 폰을 꺼내 문자를 보낸다.

이청아 나레이션 : 
-나 그대에게 줄 것은 우쭐거리며, 
고마워 라는 가식과 벼락같이 내리는 울음이었다. 
떠나는 그댈 잡지 못해 미안해하면서도, 
누굴 만나러 갈 핑계가 생겨 하마같이 웃는 나는 
죄인 같은 죄책감에 속상해 하는 미소를 지었다. -

막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이청아가 손에 든 폰 액정 불빛만 빛난다.



에필로그

입학식 안내 방송 :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희 학교는 이 년제 전문대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취업률과 명문대에 높은 편입률을 자랑합니다. 전문대학 평가에서 작년 최우수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교수님들의 뛰어난 지도 아래, 올해 우리청춘 신문 신춘문예에 저희 학교 문예창작과 출신 학생이 당선됐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THE END 

여기 실린 시는 다 형편없는 시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이 작품은 극작가 박찬규님의 졸업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2016년 2월 졸업한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댓글 2
  • No Profile
    개돌개 16.05.22 01:56 댓글

    재밌게봤습니다.

  • 개돌개님께
    No Profile
    유이립 16.05.22 19:03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겪은 모든  힘든 일이 다 사라지는 것 같고, 매우 행복합니다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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