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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혜 고요하고 거룩한

2015.12.31 19:2812.31

고요하고 거룩한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인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아니라느니, 혹은 베들레헴의 위치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느니 하는 소소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거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죠. 그러니까 그 수많은 논란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해서 당장 저 때문에 공의회가 한 번 더 열리거나 이단심판관이 이 머나먼 동방까지 저를 잡으러 오지는 않을 겁니다. 가톨릭 사제들이 그렇게 잘생겼다면서요? 이왕 누굴 보내 주실 거면 바티칸 달력에 나오는 그런 분으로 보내 주십사. 아니. 교황님, 이게 아니고요. 아무튼 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해마다 이 시기면 공연장에서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가 있죠. 캐롤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헨델의 음악.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초연은 1742년입니다. 기사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아마 중세 무렵일 거예요. 말을 타고 싸우는 사람들은 그 전에도 있어왔지만요. 그렇지만 착각의 힘과 망상의 힘을 조금씩 빌어 한 아기가 마구간에서 태어나던 그 날에도 기사가 있었다고 잠깐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Silent Night, Holy Knight. 여기에 '범프 오브 치킨'의 노래처럼 알파벳 한 글자를 덧붙여서 두 기사가 있었다고 상상하는 거예요. Silent Knight, Holy Knight. 고요함의 기사와 거룩함의 기사가 이천년 하고도 조금 더 전에 있었다고. 그렇게 멀리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천사는 천국에 삽니다. '산다'라는 말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 사이를 이야기한다면 조금 어색한 단어일지도요. 천사들은 태어나긴 하지만 병들거나 죽지 않잖아요. 어쨌거나 우리가 만날 두 기사, 천사 S와 H는 천국에 살았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살고 있겠죠. 천사니까요. 다른 멋진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지만 74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천사의 이름을 정경에 나오는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만 인정한다고 하니 이 이름 없는 짜바리… 아니, 하급 천사들은 일단 이니셜로 부르겠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많고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두 사람만이 죽지 않고 하늘로 직접 올라갔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에녹이 그랬고 나중에 예언자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갔죠. 그래서 구약이 끝난 당시의 천국에 그렇게 인구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하급 천사들은 할 일이 꽤 많았을 거예요. 천국에는 배고픔도 목마름도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고 마시는 걸 못 하면 그게 천국입니까. 그러니까 음식하고 마실 거리도 때에 따라 적당히 채워 놔야 하고, 천국에 온 인간들이 놀 수 있게 하프 타는 천사도 있었을 거고, 땅에 있을 때 친구가 없어서 천국에서도 심심한 인간과 보드게임을 같이 해 주는 왕따 전용 천사도 있었을 거란 말이죠. 이 하급 천사들도 그런 일을 했을 겁니다. 정확한 보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땅 위에 예수님이 태어나던 날 천국은 어땠을까요? 천국 각지에서 자기 모니터로 현장중계를 보거나 모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팝콘이라도 먹으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천국에도 노동 3권 정도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법을 신이 만든 건 아니에요. 하지만 노동 3권이 지켜지지 않은 천국이라니 너무 끔찍하잖아요. 너무나도 평화로워 노사협상을 할 일이 없을 수는 있겠지만요. 노동자의 권리에 따라 당연히 유급휴가 내지 휴일도 있었겠죠. 천사 S와 H는 그 해 크리스마스 날 비번이었다고 합니다. 그 전날까지 천국에 온 사람들이 먹을 팝콘과 마실 콜라, 그리고 지상을 중계하는 대형 스크린 설치에 동원되었거든요. 그렇다면 하루쯤은 쉬어야죠. 그래서 천국 저 구석 쇼파에 퍼질러 앉아 심심해하고 있었어요. 영체라서 뭘 먹을 필요도 없으니 쉬는 날 마트에 가서 장을 볼 필요도 없고. 애인이 있는 게 아니니 데이트를 할 수도 없고.
"비번 괜히 신청했나."
"왜. 아무리 장수해도 우리보다 어린 인간들 팝콘 시중 드는 것보다야 낫잖아."
천사 둘은 오늘 밤에 일어날 일대 이벤트, 메시아의 출생 때문에 작년부터 폭풍우처럼 휘몰아친 일을 떠올리며 한담을 나눴습니다.
"그거 들었냐. 가브리엘 선배가 지상 강림 처음 한다고 신나서 내려갔다가 시나리오 다 말아먹을 뻔 한 거."
"아. 듣긴 했다. 그 양반은 적당히라는 걸 몰라서 늘 문제더니만."
성경에 따르면 예수의 인간 어머니 마리아가 잉태하기 직전,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을 찾아보면 가브리엘이 한 첫 대사가 '두려워 말라' 라고 나와 있죠. DON'T PANIC.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이제부터 저희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야 하겠는데요. 이런 말이 아니라 '두려워 말라'는 이야기였던 걸 보면 초면에 마리아가 어지간히도 놀랐던 모양이지요. 애 들기도 전에 애가 떨어질 만큼. 가브리엘은 성경에도 이름이 있는 대천사입니다.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보면 천사는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택한 '남성'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네요. 보통은 흰 옷을 입고 다닌다고는 하는데, 음. 낮이든 밤이든 시집도 안 간 처녀 앞에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성인 남성이 뾰로롱 나타나면 누구라도 놀라긴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마리아를 진정시켜야 할 정도면 가브리엘의 센스가 좀 괴상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롭게 상상하세요. 성화를 보면 대부분 천사들이 금발의 백인으로 나오는데 갈릴리는 중동 지역이란 말이죠. 팔레스타인 쪽이라고요. 그 쪽에 금발 백인 성인 남성이 흰 옷을 입고 나타나기만 해도 꽤 놀라운 일이긴 하겠습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되고, 정혼자 요셉은 손만 잡고 잔 적도 없을 것 같은데 갑자기 '내가 아빠라니!'라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셨다고 성경은 전하지요. 그러니 인간 아이를 가졌을 때 갖게 되는 온갖 고난을 성모 마리아께서도 겪었을 겁니다. 입덧에, 배는 당기고, 애는 무겁고. 제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지금도 제 주변에는 아기를 뱃속에 데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아기는 커서 뭐가 되려는지 옆구리에 미친 듯이 사이드킥을 날린다고 합니다. 뭐가 되었든 메시아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건강하게 태어나렴 아가야.
이야기가 딴 데로 흘렀는데, 요셉의 고충도 상당했을 겁니다. 약혼했으면 된 거지 그 새를 못 참아서 사고를 치냐, 요즘 애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양육비는 충분히 벌어 놨냐 기타 등등. 주변의 잔소리와 오지랖에 시달리던 요셉에게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긴 여정이 차라리 휴식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요셉 당신 마음이고.
임산부에게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임산부의 안정은 태아의 건강한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또 살도 찌죠. 임신 기간 동안 10킬로그램이 늘어나는 건 예사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로마 총독 아우구스토는 인구 조사를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아아, 로마 총독이 알립니다. 전 국민은 각자 고향으로 가서 인구 조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는 고사하고 기차나 버스도 없고 자전거마저 없던 시절, 전 국민은 고향으로 돌아가 신고하고 돌아와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요셉의 고향과 갈릴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 그 거리가 약 100킬로미터에 근접하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부산 노포동 버스 터미널까지 400킬로미터고요. 서울에서 천안까지가 약 84킬로미터입니다. 자, 서울에서 천안까지 요새는 지하철로 한 시간쯤 걸리죠. 그런데 이 거리를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야 하는 겁니다. 그것도 만삭의 임산부를 데리고. 
사람이 한 시간에 3킬로미터쯤 걷는다고 치고, 해가 빨리 떨어지니 하루에 5시간만 걷는다고 합시다. 한 엿새쯤 걸리겠군요. 가는 데 엿새, 오는 데 엿새. 그런데 가는 도중 해산할 때가 임박했다고 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예정일 일주일 전에 장거리 도보 여행을 강제로 떠난 겁니다. 세상에나. 잠시 눈을 감고 묵도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님의 강철 체력에 감사하나이다. 아멘.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아무래도 아이가 태어날 것 같은 상황에 놓이고 만 거죠. 인구조사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오죽 많았겠습니까. 찾아가는 여관마다 방이 없어서 요셉과 마리아는 결국 마구간으로 들어갑니다. 천국에서는 이 장면에서 아침드라마 보듯이 '아이고 저런' '안됐구만' '어쩌누'라는 소리가 나왔겠네요. S와 H의 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 우리 총대장… 야훼께서는 왜 꼭 시나리오에 고난을 추가하시냐. 옛날에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 끌고 나올 때도 온갖 블록버스터가 쏟아지더만."
지상 중계를 보고 있던 두 천사에게도 이건 한숨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겠다고 모세와 람세스가 온갖 전투를 벌일 때 천사들은 개구리를 나르고, 강을 피로 만들고, 모든 집의 큰아들을 죽이느라 이게 천사인지 악신인지 모를 만큼의 감정노동 겸 육체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냥 평화롭게 보내주었어도 될 것을. 그러면 오늘날 가자지구 분쟁도 조금 덜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네? 그건 아니라고요? 
S와 H는 말 울음소리를 들으며 걱정을 했습니다.
"마굿간이라. 시끄러워서 중계 잘 될지 모르겠네."
"안테나 제대로 안 달았어?"
"달기야 달았는데 모든 문제는 리허설이 아니라 본 행사 때 터지니까 영 불안해서."
아, 하긴. 엑소더스 때도 그랬죠. 성경으로는 출애굽기 때 말입니다. 광야에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야 하는데 어느 천사가 메추라기와 오골계를 착각하고 광야에 닭을 풀 뻔 했다고 합니다. 그 천사야 사수들에게 불려가서 '니 눈은 색맹이냐? 닭하고 메추리도 구분 못하게?' 소리를 삼일 밤낮으로 들었다고 하더군요. 하마터면 기원전부터 대치킨시대가 열릴 뻔 했죠. 그러니 지금 두 하급 천사가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드디어 진통 장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거 알아요? 초산 진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길면 열두 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다는 거. 지금까지의 생중계가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편이었다면 이제는 ‘극한직업’ 편이 되는 거죠. 처음에는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두 천사도 슬슬 비명이 난무하는 오디오에 질리고, 피 볼 일이 없는 천국에서 살다가 지상의 고통을 보니 속도 안 좋아서 중계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이게 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사 S가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할 것 같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와중에 H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뭐 생각해. 난 제발 야훼께서 시나리오를 순산 쪽으로 쓰셨기만 빌고 있다."
"사람 비명소리가 참 크긴 커. 어째 마굿간 말 우는 소리보다 크냐?"
H의 엉뚱한 말에 S가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이크를 그 쪽으로 집중한 거겠지. 아무려면 사람 소리가 말보다 크겠어?"
그러자 H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그렇지?"
잠시의 침묵 후, 이제는 다시 중계를 볼까 말까 망설이는 S에게 H가 물었습니다.
"예수님 말이야. 지금 태어나시는 분."
"응."
"성격 좋을까? 그러니까, 막 태어났을 때. 신생아 때."
"성격 좋은 신생아가 어딨냐? 인간들이 늘 하는 말 몰라? ‘내 애가 아니었으면 확 집어던졌다’고. 애들은 다 성격 더러워."
"그러면 마굿간에서 제대로 못 잘 거 아냐."
잠시 두 천사의 눈빛이 서로 마주치고, 야훼의 아들인 예수께서 '잠자리가 시끄럽다'며 태어난 지 하루만에 마굿간을 박살내는 영상이 지나갔습니다. 못할 것도 없죠. 외경에 보면 소년 예수님도 여러 가지 사고를 치셨다는데 아기 예수님이라고 뭘 못하시겠어요. 그림 보면 아기 천사들이 폐활량도 끝내주는지 나팔도 잘 불더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지만 본체는 메이드 인 천국. 어떤 능력을 가지셨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 모골이 송연해진 두 천사는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인데 야훼 대장이 설마 잠도 안 재우겠어?' '마리아가 참을지도 의문이다. 너 같으면 막 애를 낳았는데 말들이 울어대면 애 안 집어던지고 싶겠어?' 라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야."
"어."
"내려가자. 준비해라."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한다는 건 아까 말씀드렸죠. 가브리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둘은 최선을 다해 '요셉과 비슷한 인간'으로 변장했습니다. 그 결과 둘의 모습은 떡 벌어진 어깨에 덥수룩한 수염, 구릿빛 피부에 시커먼 눈썹을 가진 두 인간 남성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외모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목수라는 직업으로 미루어 볼 때 근육질이었을 겁니다. 성화에는 예수님이 아라곤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실제 반지원정대에서 당시 유대인과 흡사한 외모를 찾으라고 하면 김리였을 거예요. 준비를 마친 두 천사는 그렇게 마굿간 근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천사들이 지상에 도착했을 때는 진통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비번이 아닌 천사들은 하늘에 빛나는 별을 띄우고 목동에게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걸 누가복음에서는 '목동들에게 나타났다'고 전하고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고 전하는데요. 4복음서의 설명은 가만히 읽어보면 중복되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주경야독이라고는 하지만 목동이 동방박사와 동일한 인물은 아니겠지요. 여기서는 일단 동방박사들이 찾아오는 이야기 노선을 따르겠습니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박사들은, 혹은 박사과정의 학생들은 밤낮이 바뀌었거나 밤낮이 없지요. 여기 세 동방박사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밤 크게 빛나는 별을 보고 '큰 인물이 나셨어!' 라는 생각을 했겠죠. 동료들을 불러 각자의 선물을 챙겨 든 동방박사는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굉장히 단순한 선택을 한 거죠. 큰 인물이 난다면 당연히 좋은 왕이 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은 왕궁에서 태어난 왕자님일 거라고. 어떻게 보면 왕족에게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군요. 우리에게 '오늘 큰 사람이 될 아기가 태어난대!' 라고 하면 청와대로 가지는 않을… 아 이건 좀 다른 문제가 있군요. 현재에는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왕궁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와 그 상관과 기타 등등 궁궐의 많은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헤롯 왕도 포함해서요. 애가 태어났다고? 어디서? 누가 낳았는데? 왕비가 낳은 거야? 언제? 그럼 애 아빠는 누구야? 아니, 애 아빠가 나일 수도 있지. 그러면 애 엄마는 누군데? 확실한 것은 ‘왕궁에서’ ‘오늘’ ‘왕비가’ 아기를 낳지는 않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헤롯 왕의 아이든, 아니면 다른 아이든 왕이 될 사람이 어딘가에서 태어났다는 거겠죠. 헤롯 왕은 당황을 감추며 '큰 사람이 될 아기를 찾으면 나에게도 전해달라'는 말을 전하며 동방박사들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 번쯤 중얼거렸겠죠. '그때 걘가?'라고요. 남녀상열지사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서요. 
동방박사들은 선물을 가지고 또 멀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별은 하늘 한가운데서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걸어서, 또는 무언가를 타고 느리게 이동하는 동방박사들을 보며 하늘에서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요. ‘쟤네 오늘 밤 내로 만날 수 있겠소?’ ‘이러다가 딱 잘라버리고 카페베네 광고 뜨면 나 지상에 강림해버릴 겨.’ 라는 대화가 오갔겠지요. 성질 같아서는 당장 동방박사들을 잡아다가 목적지인 마굿간 앞에 워프를 시키고 싶었지만 천국의 모두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텔레포트 내지 워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박사들을 옮길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참다 못한 누군가가 묻긴 했습니다.
“거, 엘리야 선지자님. 천국 올 때 불마차 타고 올라왔다며. 그거 지금 쓰면 안 되나? 내가 복장이 터져서 두 번 죽겠는데요.”
흰 수염에 버터팝콘 부스러기를 묻히며 화면을 보고 있던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그거 500년 넘게 안 써서 수리하는 데만 3년은 걸릴 걸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불마차 못 타. 승차감이 얼마나 거지같은데. 내가 승천할 때 ‘차라리 바알 숭배자들과 다시 싸우겠나이다! 제발 곱게 올려주세요!’ 라고 기도한 거 모르시는구만.”
“하긴, 야훼께서 스펙터클한 거 좋아하시지. 바다도 쫙쫙 가르고. 삼손한테 힘 줘서 건물도 막 부수고.”
“천지창조의 목적에는 ‘나중에 심심하면 부수려고’도 있다는 쪽에 일 달란트 겁니다.”
아마 세상이 멸망하는 날 천국의 누군가는 일 달란트를 얻게 될 겁니다. 요한계시록을 보시면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아주 삐까번쩍 화려하게 멸망하거든요. 그리하여 동방박사들의 느릿느릿한 이동을 지켜보는 사이, S와 H는 마구간 앞에 도착했습니다. 일단은 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천사는 여관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방이 있으면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가 좀 더 편안하게 잘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여관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방이 없다 못해 테이블을 붙여놓고 잠든 사람도 있었죠.
“방 없수?”
“없습니다.”
일 단계 작전 실패. 두 천사는 눈빛을 교환하고 다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전까지 여기서 나갈 사람은 있수? 특히 말 끌고 나갈 놈.”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자꾸 사람이 드나들면 울어댈 수도 있고, 그러면 아기 예수님이 깰 테니까요. 주인은 그런 손님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옆에 있으니 아프리카 대륙 쪽이긴 하지만 최저기온은 10도 아래로 떨어지거든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굳이 새벽에 길을 나설 사람은 없겠죠. 험악한 인상의 두 천사를 보며 주인은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예상과는 달리 두 천사는 씩 웃으며 주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좋수. 장사는 그렇게 해야지.”
“네?”
“들어갈 땐 맘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런 정신 말이오.”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말거나 두 천사는 밖으로 나가 마굿간 문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말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가운데 가끔씩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무사히 태어난 겁니다. 하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두 천사는 벽 너머로 말들에게 마음의 소리를 은은하게 전했습니다. ‘말들이여 잠잠하라. 너희가 보는 아기가 이 세상을 구할 구주이시니라.’ 였을 수도 있고 ‘오늘밤 우는 놈은 천국에 올라가 불마차를 끌게 만들어주겠어’ 였을 수도 있지요. 덕분에 마구간은 한층 조용해졌습니다. 위에서 중계를 보던 영혼들은 ‘갑자기 음질이 좋아졌다?’ ‘아까 천사 둘이 내려가는 것 같던데 마이크 연결 손 보러 갔나봐.’라는 대화를 나누며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향해 축복을 보냈습니다.

“아들이야.”
초산의 고통을 간신히 이겨낸 마리아에게 요셉이 아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아기는 평범한 인간처럼 작고 연약했습니다. 목도 가누지 못하고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작은 생명이 피얼룩 진 강보에 싸여 울고 있었어요. 마리아가 안아주니 엄마를 알아보는 듯 잠시 울음을 그쳤지만 곧 다시 칭얼거렸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것이 따뜻한 물과 온기가 아니라 차가운 12월의 바람과 마구간 물통에 적신 천이었으니 아기 예수가 지상에 가진 첫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겠어요. 그래서 이 아이는 나중에 자라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의 장사치들을 일격필살 원샷 다중킬을 실현하는 광역 딜러가 됩니다. 어릴 때 정서가 안정되어야 온화한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이네요.”
원한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는데 덜컥 생긴 아기. 그렇지만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함께한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중에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건, 세상을 멸망시킬 사람이건 갓 태어났을 때는 모두 작고 여리지요. 아기가 춥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부서지지도 않게 짐 속의 옷으로 감싸고 껴안은 마리아와 요셉은 세 가족의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마구간 문 앞에서는 ‘누구든지 아기 예수님의 잠을 깨우는 자, 내 밑으로 니 위로 8대조까지 집합이다’라는 기세로 두 천사가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기세가 너무도 빛처럼 형형하여 새벽에 여관 문을 두드려볼까 하던 사람들이 멀리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Silent Knight, Holy K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이제 여러분도 이 가사가 좀 더 와닿나요? 두 기사가 한밤중 문 앞을 지키니 세상이 잠잠하고 빛나도다.

세상엔 눈치 없는 사람이 더러 있는 법이라. 우리의 세 동방박사들도 눈치가 없는 타입인가 봅니다. 그런 애들 있잖아요. 공부는 잘 하는데 다른 데는 묘하게 나사가 빠진 애들. 애들이 안 놀아주니까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은 오르는데 눈치는 안 오르고. 세 사람은 천사들의 흉흉한 복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태어난 마구간 앞으로 갔습니다. 무거운 선물을 들고서. 두 천사는 세 동방박사를 막아섰습니다. 2대 3이지만 그래도 천사인데 설마 싸움에서 지겠냐 하며.
“정지.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S가 먼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들어가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동방박사들은 ‘아, 이쪽 문은 사용금지인가?’ 하며 다른 쪽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H는 동방박사의 손목을 쥐었습니다.
“저기, 지금 안에 귀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들어가시면 좀…”
“아, 우리도 알아요.”
동방박사의 태연한 대답에 두 천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습니다. 역할분담이 워낙에 철저했던 터라, 두 천사는 ‘어디에서 언제 아기가 태어난다’는 정보만 받고 일을 했지 동방박사들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이벤트는 몰랐거든요. 
‘어떻게 알았지?’
‘시나리오 유출인가?’
‘암살자인가?’
두 천사의 머릿속에서 온갖 험악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거나 말거나 동방박사 중 한 명이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가 큰 별을 보고 위대한 사람이 태어났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일단 왕궁에 들렀더니 거기서는 아이가 안 태어났다고 하고. 그래서 다시 길을 떠났는데 헤롯 왕께서 친절하게 ‘아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게 되면 나에게도 알려달라’며…”
인간 아기, 왕족 아님, 장래희망은 아니고 장래 직업 목수 겸 구세주. 그런 아이가 태어났는데 왕이 ‘아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려달라’고 했다고? 이 인간들 암살자는 아니군. 천사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능력으로 먼 곳, 동방박사들이 들렀던 왕궁 쪽을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궁전으로부터 몇 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동방박사들이 지나간 흔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멍청이네!’
네, 아까 ‘왕족에 상당히 호감이 있었던 모양’ 이라고 했는데 저도 천사들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은 세 얼간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래서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아니 선물 가지고 왔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당신들이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요!’ ‘왜요, 여기도 애가 없어요?’ ‘있는데요.’ ‘그럼 걔가 별 볼 일 없는 애입니까?’ ‘님 지금 우리 야훼 대장 아들 욕함?’ 같은 소리죽인 말다툼이 오갔습니다. 천사들은 성질 더러운 야훼의 파괴 행각을 잘 보고 지내왔기에 ‘상사를 무조건 믿으면 곤란하다’는 신념이 있었거든요. 헤롯 왕의 말이 순수한 축하가 아니라는 걸 알아챈 건 용하지만, 이러다가 동방박사 쪽 시나리오를 담당한 천사가 복장 터지게 생겼군요. 그리고 천사들이 동방박사와 다투는 사이, 말들을 억누르고 있던 복음도 점차 사그라들어서 말울음 소리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러다가 예수님 깨시겠는데요? 시나리오 성공이냐, 인류 멸망이냐! 어쨌거나 기독교적 세계관 끝은 멸망이지만!
“새벽부터 누구요!”
다행히도 구원투수, 아니 목수가 등장했습니다.
“애가 자는데 밖에서 시끄럽게 굴다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으이?”
천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쫄았습니다.
아기를 받아 줄 산파가 없으니 굳은살 박인 손으로 직접 아기를 받았겠지요. 기진맥진한 마리아를 돌보고 부족하게나마 아이를 씻긴 사람도 요셉이겠고요. 그래서 지금 요셉의 몰골은 한 마리 털 뜯긴 숫사자와 같았습니다. 마리아가 진통을 이기려고 요셉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좀 빠졌거든요. 그 외에는 베테랑 목수답게 떡 벌어진 어깨에 끝내주는 노동형 팔근육. 거기에다 애를 받고 씻기고 마누라 돌보느라 옷은 엉망에 여기저기 피투성이. 연구실이 집이자 세계인 동방박사들은 평생 만나 볼 일이 없었던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희들이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를 하러 왔는데 여기 이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사태의 원흉인 두 천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있었다면 응당 남아있을 발자국마저요. 시나리오에 등장하면 안 되는 S와 H는 타이밍 좋게 사라졌던 겁니다. 뭐, 혹시라도 카메라에 찍혔다가는 동방박사 쪽 시나리오 팀에게 창세부터 멸망까지 오라지게 욕 먹을 게 두려워서기도 했지요. 동방박사들의 순진한 눈망울을 본 요셉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들어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밖은 춥고, 손님이 왔으면 들여야지요. 게다가 오늘은 아들이 태어난 날인걸요. 추운 겨울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축하를 전해주는 사람이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말구유에 짚과 옷으로 자리를 만들어 눕힌 아기가 동방박사들에게 보였습니다.
세상을 구할 만큼 힘이 세지도, 놀라운 진리를 전할 만큼 똑똑해 보이는 아기는 아니었습니다. 작고 조금은 더럽기까지 한 보통 아기. 그러나 이 추운 겨울에도 ‘아기 잘도 잔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깊게 잠든 모습은 평화를 가져다 줄만한 사람다웠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모태솔로라 아기를 보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아기. 자라날 아기. 이 아기가 가장 무력하고 위험할 갓 태어난 순간에 아기 아버지가 자신들을 안으로 들였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알게 된 거죠. 모든 짐승은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지키기 위해서요. 짐승이 새끼를 보이는 것을 허락하는 상대는 오직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상대’ 뿐이죠.
그 약한 존재 앞에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선물을 내려놓았습니다.
“황금입니다.”
“…돈 많이 버시는갑소.”
목수인 요셉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가 자라날 때 돈이 들 테고, 이 황금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이건 유향입니다.”
“유황?”
“아뇨. 그렇게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긴 한데요. 유황은 원자번호 16의 비금속원소로 지독한 냄새가 나는 가스를 만드는 물질인데 그걸 왜 애한테 선물로 줍니까.”
“됐고, 그럼 이건 어디 쓰는 거요?”
“소독약이자 향료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예물이기도 하고요. 이 아이가 신에게 쓰임받는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수 일 하면 애 손 많이 다칠 텐데, 고맙소. 잘 쓰리다.”
어쩐지 마지막 동방박사의 등에 식은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네 연구실에서 가장 귀한 걸 가져온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셋의 연구 분야가 다르다 보니 ‘귀중한 것’의 개념도 각각 달랐단 말입니다! 공대생한테 작고 반짝이는 걸 달라고 하면 보석이 아니라 LED를 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두 동방박사가 물러나고 마지막 동방박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냥 선물 안 가지고 왔다고 할까.’
몇 번이나 고민하던 동방박사는 결국 자신의 선물을 꺼냈습니다. 자칫하면 ‘세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찾아 왔다. 그 중 둘은 황금과 유향을 가지고 왔으며 마지막 동방박사는 빈손이었다. 이는 공수래 공수거라는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라고 성경의 일부가 다시 쓰여졌을지도 모르는 위기였습니다.
“이건 뭡니까?”
두 동방박사가 보여준 호의에 한결 너그러워진 말투로 요셉이 물었습니다. 심약한 마지막 동방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몰약입니다.”
“그건 또 어디 쓰는 거요?”
황금만 빼고 나머지 둘이 뭔지 모를 물질이다 보니 요셉의 말이 또 다시 퉁명스럽게 변했습니다. 뭐, 좋은 거기야 하겠지만 어린애한테는 사탕 한 봉지가 소설 한정판 박스셋이나 3캐럿 다이아보다 더 값질 수도 있잖아요. 여기가 마지막 동방박사에게는 대 위기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른 두 동방박사들에게 구원을 원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두 박사는 아기가 귀엽다며 딴청만 부렸습니다. 구세주여, 그냥 지금 임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방부제입니다.”
“잉?”
“방부제라고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디에…”
마지막 동방박사의 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렸습니다. 학자라는 사람들은 아는 걸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죠. 모든 떠벌이가 학자는 아니지만.
“미라 만들 때 씁니다.”
평균 최저기온 8도의 이스라엘 12월. 안 그래도 추운 마굿간이 한층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습니다. 두 동방박사가 ‘황금으로 저 놈 머리통을 쳤어야 하는데’ ‘유향을 먹여서 확 혓바닥을 소독시켰어야 되는데’ 라는 후회를 해 봤지만 이미 늦었죠.
“…미라요. 그, 시체 바짝 말려갖고 천년만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그거.”
“예.”
“…그걸 지금 갓 태어난 우리 아들한테 준다 이거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요. 몰약이라는 건 시체 닦는 방부제로도 쓰이지만 그건 결국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숭고한 뜻으로써!”
“애 돌잔치에 와 갖고 수의 입히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내가 못 배워먹었다고 애 태어난 날 와서 이러면 안되지!”
버럭, 요셉의 호통에 선잠이 든 마리아가 깨어났지만 아기 예수는 여전히 쌔근쌔근 잘 자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피 묻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바닥에 주저앉은 세 번째 동방박사에게 다가갔습니다.
“내가 말여. 왜 고향에서 일주일은 걸리는 갈릴리에 가서 대패질이나 하고 있는지 몰라서 이러는가본데. 갈릴리에서도 내 명성이 짜다리하지 말여. 내가 새 마음 먹고 갈릴리에 가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텃세를 부리는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박사님들 귀에는 안 들어갔구만. 으이? 갈릴리의 강철대패 요셉이라고 모르나 봐?”
“몰라도 알겠습니다! 저기요! 저희 나갈게요!”
“사람이 오는 순서대로 가는 거 아니라지만 오늘 태어난 내 아들보다는 니놈자식을 먼저 보내버릴 거구만! 몰약으로 아주 등껍데기가 벗겨지도록 닦아줄끼구마!”
“잘못했습니다!”
“말이면 단가! 연대는 실천이여! 거기 셋 다 이리 와!”
…약 삼십년 후, 성전에서 호통과 채찍질이 벌어지기 전에 마구간에서는 피 묻은 옷가지를 휘두르며 동방박사를 잡으려 드는 요셉이 있었습니다. 이미 천국으로 올라가 마구간 안 생중계를 보던 S와 H는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그렇죠. 어째서 하필 성모 마리아의 몸에 아기 예수가 잉태되었는가 궁금하더라니, 인간 아버지 성질머리가 하늘 아버지 성질머리와 맞먹는군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도 야훼 대빵 성격은 그대로 물려받겠군.”
“더 근육질일 거 같아. 저 아저씨 목수라잖아. 이두박근 끝내주던데.”
두 천사가 한가롭게 늘어져 있는 동안 마구간 안에서는 세 동방박사가 요셉에게 말구유로 두들겨 맞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는 아기 예수님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고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은 이 때 맞아서 골병이 든 몸을 치료하느라 먼저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헤롯 왕의 군사들은 동방박사를 뒤쫓을 수 없었죠. 같은 길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잠복해 있었거든요.

“이제 어떻게 될까?”
크리스마스 생중계가 끝났습니다. 천사 둘은 팝콘 부스러기를 옷에서 털어냈습니다. S의 물음에 H가 피식 웃었습니다.
“뭘 어째. 다른 애들처럼 사고도 좀 치고, 웃고, 울고, 부모님 속도 썩이고 매도 맞으면서 크겠지.”
“그렇겠지?”
“응. 지금이야 저렇게 작지만 인간은 쑥쑥 자라니까.”
“응. 분명 우리가 바쁘게 일하다가 땅을 내려다보면 몰라보게 커 있겠지.”
두 천사는 서로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 태어난 한 아기가 이 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30년하고도 3년 후. 그 때까지 천사들은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 한 아이가 첫날 잠을 평화롭게 자는 걸 도우려고 땅으로 내려갔던 날을. 그리고 성경에는 적히지 않았지만 여러분도 이제는 기억하겠죠. 고요함의 기사와 거룩함의 기사가 그날 밤 마구간 앞에서 아기 예수를 지켰다는 걸.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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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경 16.01.06 15:33 댓글

    업데이트하면서 읽었는데 이제야 댓글 씁니다. 읽으면서 완전 즐거웠어요. 전삼혜 작가님 새삼 환영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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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6.01.13 14:53 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 앤윈님 단편 http://mirror.pe.kr/novel1/106344 에는 공무원처럼 일하는 저승사자 이야기였는데, 이번에는 천사 이야기라니 또 색다르고 재미있네요. 둘 다 웃을 곳 많은 이야기라서 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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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16.02.01 02:27 댓글

    이 분위기 넘 좋아요. 으아 ㅠ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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