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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끝내 비명은

赤魚(김주영)

기억에 없는 대화가 메신저에 남겨져 있었다. 윤서라. 처음보는 낯선 이름이었다. 정현은 아직도 숙취가 남은 채로 간밤의 일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어제 저녁에 회식이 있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헤어진 후에는 친한 몇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 밤 열한 시쯤에 술자리를 끝내고 막차를 탔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버스를 탄 후부터 방에 들어오기까지의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기억에서 사라진 그 시간 동안 낯선 사람을 술김에 친구로 등록한 후에 대화한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는데 제정신이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납득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휴대폰에 남아있는 메신저의 대화내용을 찬찬히 다시 읽어내려갔다. 정신이 완전히 나가진 않았던 모양인지 대화속에 낯부끄러워질만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예의바르고, 맞춤법조차 틀리지 않은 대화였다. 술 때문에 필름이 끊긴후에 나타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윤서라였다.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마워요.

정현의 대답 뒤로 이어진 대화가 남아 있었다. 잃어버린 어젯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대화였다. 그가 탄 막차는 사고 때문에 막히는 도로 위를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갔다. 사고 구간을 통과하는 차들이 얼마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윤서라에게 알려주던 정현은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 바람에 내려야할 정류장을 지나쳐버렸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야 했다. 누가 뒤따라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며 걸음을 재촉해서 집에 닿을 때쯤엔 꽤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파트를 에워싼 나무들이 불길하게 흔들리다가 바람 속으로 토해내는 소리는 기이하다 못해 섬뜩했다. 그 소리를 듣다가 아파트 입구가 있는 곳까지 힘껏 내달린 정현은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온 후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윤서라에게 보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읽노라니 기분이 묘하다 못해 섬뜩해졌다. 다른 사람이 자신인척 행세한 흔적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현은 망설이다가 어젯밤 일이 취해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죄송하지만, 어쩌다가 연락처를 교환한 거죠?

여자일까, 남자일까. 혹시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닐까.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답은 오지 않았다. 정현은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다가 환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하얀 가운을 입었다.
정현은 미국에 본사를 둔 더블에이가 운영하는 복합 병원에서 일하는 메카닉 의사였다. 생체를 돌보는 병원과 메카닉 신체를 돌보는 병원은 따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특이하게도 더블에이에서는 양쪽을 다 진료할 수 있는 복합 병원을 운영했다. 여러 이유에서 생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람들에게는 편리한 병원이었지만 누구나 이용하지는 못했다. 더블에이는 메카닉 신체를 생산하는 세계 3대 대기업 중 하나였고, 당연하게도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만이 복합 병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정현이 일하는 메카닉 병동의 각 층은 쌍동이 건물인 생체 병동과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메카닉 병동은 크게 내과와 외과로 분류되었는데, 정현은 외과에 설치된 뇌파 감응 센서 진료과에서 일했다. 전문과목은 팔과 손가락 관절이었다.
아직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의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동안, 첫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한달 전에 사고로 잘린 팔을 메카닉으로 교체한 젊은 청년이었다. 팔을 절단하는 수술이 끝난 후에 봤을 때보다는 안색이 좋아보였다. 정현은 의례적이고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바로 진료로 들어갔다.

“팔이 말을 제대로 안 들어요.”

처음 메카닉 신체를 사용하는 환자에게서 노상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성껏 뇌파 감지 센서를 테스트한 후에 모든 것이 정상임을 세심하게 설명했다.

“처음 사용할 때는 대개 그래요. 어색한 느낌이 드시겠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습니다.”

친절한 얼굴로 한껏 웃어주며 청년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오히려 더 불안한 표정이 청년의 얼굴에 나타났다. 청년은 망설이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가 메카닉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이기도 하는지 물었다.
네, 아마 당신이 잠든 후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일 거예요. 다리가 메카닉이라면 벼랑에서 떨어지다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겠죠.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박살이 나기 직전에 말이예요. 팔이 메카닉이라면, 세상에 다행스러워라, 벼랑을 찾아 먼 곳으로 가는 수고는 없을 거예요. 당신 손이 목을 조르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잠시 정신이 들겠지만 곧 죽을 테니까요. 메카닉이 왜 그런 짓을 하냐고요? 메카닉은 인간을 미워하니까요.
SNS에 떠도는 괴담과 재작년에 겪었던 사건이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정현을 청년이 빤히 마주보았다.

“신호 없이 메카닉은 움직이지 않아요.”

정현은 목소리에 권위를 실어 힘주어 말했다. 청년은 다소 미심쩍은 얼굴로 정현도 메카닉 신체를 사용하는지 물었다. 정현은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다못해 입안에 인공적인 보철조차 하나 없는, 그야말로 자연산 그대로인 생체임을 메카닉 병동의 환자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겨우 안심한 청년이 일어서는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알림. 오후 6시 약속. 해리단길 밤. 윤서라.

청년과 정현은 동시에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정현의 휴대폰에서 난 소리였다. 정현은 청년을 내보내면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오늘 약속이 있었던 기억이 없었다. 약속을 간혹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해리단길 밤은 아예 처음보는 단어였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하자 해리단길이라는 골목에 있는 ‘밤’이라는 작은 칵테일바가 등장했다. 가본 적이 있기는 커녕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그리고 윤서라. 여전히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정현은 그날 오후에 해리단길에 나가지 않았다. 혹시 예전에라도 알던 사람인가 싶어서 연락처를 모두 검색해봐도 윤서라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환자일 가능성도 생각해보았지만, 환자와 따로 만나려고 약속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환자와 약속을 잡았다면 드문 일이어서 확실히 기억했을 것이다.
정현이 겪은 일을 복도 커피 자판기 앞에서 들은 옆 진료실의 황 박사는 기억보다 휴대폰의 기록을 믿는 편이 나을 거라며 놀려댔다.

“인간의 뇌는 믿을 것이 못 돼.”

황 박사는 건망증으로 저질렀던 정현의 실수를 언급했다. 술에 취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사랑한다고 술주정했던 일을 다음날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까지 들먹이는 바람에 정현은 머쓱해졌다.

“그것 봐. 이젠 그랬던 일마저 싹 잊어버렸지 않나. 인간의 뇌는 제멋대로라니까. 그마나 휴대폰이 뇌를 대신해서 정확하게 일해주니까 얼마나 좋아.”

여전히 반쯤 놀려대는 황 박사의 어깨 너머로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택배 기사가 보였다. 정현은 조금 남아있던 커피를 마저 마신 후에 택배를 받기 위해 진료실로 향했다. 택배 기사는 작은 상자를 건네고 황급히 돌아갔다. 정현은 진료실로 들어와 택배 상자를 열었다가 놀라서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상자에서 튀어나온 하얀 해골이 기괴하게 바닥을 구르다가 벽에 부딪힌 후에 뒤집어졌다. 뻥 뚫린 눈의 시선이 기괴하고도 오싹하게 정현을 향하고 있었다. 정현은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질끈 눈을 감았다. 잊었던 기억이 침습하면서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과거에서 불쑥 나타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모두 지나간 일이야.

다시 생생한 감각으로 되살아 나는 망령과 싸우면서 헐떡였다. 몇 번 심호흡을 하자 얼어붙은 몸이 간신히 움직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그대로 몸을 돌려 진료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자판기 앞에 서 있던 황 박사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정현은 쇼크 상태였다. 창백하게 질린 채로 덜덜 떨며 주저 앉은 그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복도를 오가던 환자들이 흘깃거리다가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응급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간호사들이 하나 둘씩 뛰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정현 곁에서 무슨 일인지 황 박사가 물었지만, 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 박사는 반쯤 열린 진료실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밀고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위험한 사람이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진료실 안을 살피던 황 박사는 열린 채로 바닥에 떨어진 택배 상자와 그 곁에 놓인 해골을 발견했다. 유심히 살피다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 그는 해골을 손에 들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모형이야.”

황 박사가 정현의 얼굴 앞에 해골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 순간 몸을 부르르 떤 정현의 몸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황 박사가 움직일 새도 없이 모여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이 튀어나와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응급실로 실려가는 정현의 모습을 지켜본 황 박사는 손에 든 해골 모형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재작년 스토킹 사건 이후로 해골만 보면 놀라시는 거 알면서 왜 그러셨어요?”

옆 진료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후배가 황 박사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황 박사는 대답 대신 해골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왜 이걸 들고 있지?”

잠시 말이 없던 그가 후배를 바라보며 물었다.

“작작 좀 하세요.”

후배가 해골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 며칠이야?”

황 박사가 갑자기 말을 돌렸다. 후배는 그를 잠시 빤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스쳐 지나가 버렸다.


정현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밤이 깊었는지 창밖은 어두웠다. 불빛 사이로 비치는 건물을 보니 아직 병원 안이었다. 바깥에서 들어온 불빛이 병실 안의 사물을 어슴푸레하게 비췄다. 벽에 낯익은 그림이 걸린 생체 병동의 병실이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다가 간혹 쪽잠이라도 자려고 숨어드는 병실 중 하나다. 응급조치가 끝난 후에 잠시 여기로 옮겨준 모양이었다.

택배 상자 속에 들어있던 해골이 떠오르자 다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상한 선물과 협박 편지를 해골과 함께 보내오던 환자는 그날 오후에 불쑥 병실에 나타났다. 다른 환자가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 없이 해골을 내밀며 히죽 웃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정현의 목을 졸랐다. 범죄에 이용되지 않도록 악력이 제한된 메카닉 손이었지만, 인간의 손보다는 훨씬 힘이 강했다. 다급해진 직원들이 뇌파 감응 센서를 무력화시켰지만, 메카닉 손은 그의 목을 움켜쥔 상태로 정지해버렸다. 물리적으로 메카닉을 부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죽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잡힌 환자는 정현이 뇌파 감응 장치를 교란해서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잠든 사이에 메카닉 손에 목을 졸린 것이 근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정현은 그때의 기억을 떨치려고 애쓰며 몸을 일으켰다. 묵직한 것이 느껴지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자 휴대폰이 손에 잡혔다. 그 난리통에도 어딘가에 흘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무심코 휴대폰을 켠 그는 메신저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는 표시를 보았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윤서라가 보낸 메시지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던 메시지를 실수로 보낸 것이 분명했다. 그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났다. 홈화면에 구매 확정을 하라는 알림창이 나타나있었다. 구매내역을 읽은 정현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인체 신비. 실물 사이즈 해골 모형.

그 끔찍한 물건을 자신이 구입했음을 네모난 알림창이 알리고 있었다. 정현은 병실을 나와 자신의 진료실이 있는 병동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휴대폰을 이용해 그를 악랄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재작년에는 스토킹하던 환자에게 죽을 뻔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해결해야 했다.
정현은 숨을 몰아쉬며 노크도 없이 황 박사의 진료실을 벌컥 열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황 박사가 급히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정현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황 박사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로 거칠게 숨을 쉬는 정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오늘 받은 그 해골 모형 말이야. 누가 내 계정을 이용해서 구입해 보낸 거야.”

황 박사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며, 윤서라가 메시지를 또 보내왔어.”

황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굳은 얼굴로 급히 그에게로 걸어왔다. 그는 정현의 눈을 뚫어져라 들어다보며 으스러뜨릴 것처럼 손을 꽉 잡았다.

“오늘? 자네가 해골 받은 건 이틀 전이야.”

무슨 소리냐며 휴대폰의 날짜를 확인한 정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벌써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그럴 리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멍해진 얼굴로 황 박사를 마주보았다.

“잘들어. 작년에 내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어. 그 휴대폰 기록은…….”

갑자기 황 박사가 말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정현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정현은 황 박사의 얼굴에 놀리는 기색과 함께 웃음이 떠오르는 바람에 당황했다.

“속았지?”

황 박사가 얼 빠진 정현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내어 웃었다. 정현은 화가 나서 그의 등을 철썩 한 대 때렸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더 화를 냈을 것이다. 황 박사는 빙글 돌아서 책상으로 걸어가더니 여전히 웃는 얼굴로 책상 뒤편의 의자에 앉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오겠다며 빈 병실로 향하더니 꿈이라도 꾼 거야?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을 오늘 일로 착각하다니 말이야.”

황 박사가 안경을 쓸어 올렸다. 정현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날짜와 시간을 꿈꾸는 기분으로 내려다보았다. 지난 이틀 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깨끗하게 사라진 채였다. 기억은 왜 사라진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이틀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자네 어머님은 좋아하는 색이 뭐지?”

정현은 사라진 기억에 정신이 팔린 채로 파스텔 핑크라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혹시 사라진 기억과 관계가 있는 질문인가 해서 황 박사를 살폈지만, 황 박사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기억에서 이틀이 지워졌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소리였다.
정현은 황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진료실 앞을 지나가던 두 남자가 그를 보며 속삭이더니 걸음을 멈췄다.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히죽 웃으면서 말을 건네고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정현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들과 스치며 걸어오던 간호사가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저도 그랬어요. 곧 익숙해져요.”

그의 곁으로 다가온 간호사가 비밀스럽게 속삭인 후에 멀어져갔다. 괜찮아질 거라니. 지난 이틀 동안 자신만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벽에 등을 기댔다. 지나가던 피부과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괜찮은지 물었다. 평소에 가끔 어울려 술을 마시는 직원이었다. 정현은 그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이마를 짚은 채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네. 다음에 또 뵈요. 윤서라 씨도 같이요.”

직원이 친근한 인사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정현은 이마를 짚었던 손을 천천히 떼고 직원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방금 누구라고?”

이번에는 직원이 의아한 얼굴로 정현을 바라보았다.

“그저께 데려오셨던 박사님 친구요. 윤서라 씨.”


갑자기 주변의 밝기가 바뀌었다. 방금까지 보았던 직원의 얼굴 대신 낯익은 모니터가 눈앞에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진료실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간의 변화에 당황하는 동안, 메카닉 관절이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를 입히고 나면 메카닉 신체인지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요?”

모니터 뒤에서 누가 물었다. 정현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빼고 질문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교통사고로 메카닉 손을 달게 된 십대 여학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는 여학생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금속 골격이 아직 드러나 있는 손가락이 섬세하게 움직이며 책상을 톡톡 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학생을 진료했을 때 뇌파 감응 센서를 테스트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신체 접합 날짜까지는 열흘이 넘게 남아있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는 이상 친구들은 생체 손이라고 생각할 걸?”

정현은 당황함을 감추고 책상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관찰하면서 의례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신체 접합과 뇌파 감응은 완벽했다. 한눈에 봐도 인공 피부를 입히는 마지막 단계만 남은 상태였다. 정현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날짜를 확인했다.
보름을 훌쩍 뛰어넘은 날짜였다. 또 기억이 사라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동안에도 여학생은 쉴새 없이 이야기를 걸어오더니 메카닉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이기도 하느냐고 물어왔다.

“신호 없이 신체는 움직일 수 없어.”

그는 단호하게 말한 후에 여학생을 내보냈다. 그런 후에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다음 환자에게 급한 일이 있으니 10분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보름치의 기억이 사라져버렸지만, 일상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진료도 차질없이 일정대로 모두 진행되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기록이 보름간 있었던 평온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모친의 생일에는 고급 캐시미어 머플러를 보냈다. 선물을 받은 모친은 파스텔톤 핑크가 도드라지는 머플러를 두르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물론 그는 선물을 보낸 기억이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역시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검색 기록이 남아있었다. 마치 학습이라도 한 것처럼 트라우마에 관한 검색어가 제법 많이 눈에 띄었고, 그 다음엔 맛집, 영화와 드라마를 검색한 흔적이 있었다. 검색어와 휴대폰에 설치된 어플리케이션 종류 속에서 그는 새삼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 그리고 성격을 확인했다.

일상적인 활동 역시 휴대폰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한 후에 날아온 영수증이 메일함에 들어있었고, 중요한 메일에는 전부 답신을 한 상태였다. 메신저를 통해 여기저기에서 일상적인 안부를 물어온 사람과는 물론이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그룹과 나눈 대화도 전부 자연스러웠다.

기억을 비롯한 그의 모든 것이 휴대폰에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은 보름간 휴대폰에 기록된 ‘그’가 진짜이고 지금 자신이야 말로 잠시 불려나왔다가 활동기록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의식에 불과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현은 기억을 잃은 동안 활동했던 자신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했다. ‘그’는 정중했고 예의가 발랐으며 성실하게 일하는 의사였다. 그의 행동이 자신의 패턴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서야 정현은 안도했다.

그렇지만 경주로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안도감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외박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정현이 경주의 호텔을 예약한 내용이 스케쥴러에 입력되어 있었다. 동반자는 윤서라였다. 정현은 긴장한 채로 휴대폰의 앨범을 열었다. 경주 풍경을 찍은 사진 사이에 불국사 다보탑을 배경으로 선 두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확대하자 자신의 곁에 선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차분한 분위기에 단정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옅게 웃고 있었다. 옆에선 자신의 표정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옆에 서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밝았다.
만나뵈서 반가웠어요.
무시했던 메시지를 떠올린 정현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기억할 수 없는 자신이, 아니면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휴대폰을 통해 윤서라를 알았고 계속 연락을 취하며 가까워졌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리고 고민하는 동안, 퍼뜩 통화기록에 생각이 미쳤다. 통화기록을 불러내자 맨 위를 차지한 윤서라의 이름이 보였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던 짧은 몇 초가 지난 후에 드디어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가브리엘라.”

밝고 또렷한 여자의 음성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정현의 세례명을 불렀다. 정현은 당황한 나머지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윤서라 씨인가요?”

대답이 들려오기까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정현 씨군요.”

좀전에 목소리에 서려있던 친밀함을 지워버린, 다소 사무적인 말투였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제가 물을 말 아니예요?”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은 악몽에서 깬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다시 공간이 바뀌어 있었다. 앞에 앉은 환자가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현은 그가 몹시 까다로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임을 알아보았다. 성격이 예민한 이 중년 남성 환자는 메카닉 팔의 반응 속도에도 예민했다. 더블에이사에서 생산되는 메카닉 신체가 뇌파에 반응하는 속도는 생체의 반응 속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0.01초 단위 차이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차이에 어색함을 느끼는 환자들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한달 이상 사용하면 곧 그 반응 속도에 적응해서 불편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 환자는 아직도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정현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하드웨어적인 문제를 위해 그의 메카닉 팔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행히 전송버튼을 누른 순간까지도 다행스럽게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현은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황 박사를 만나보기로 결심한 참이었지만, 노크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황 박사는 한참만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 정현을 반갑게 맞으며 가림막 뒤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한창 환자가 밀어닥칠 시작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찾아올 줄 알고 기다린 것 같았다. 정현은 황 박사가 내어준 커피 잔 위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서 두 손을 비볐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들어주면 좋겠어.”
“혹시 하지도 않은 약속이나 대화가 휴대폰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또 할 셈은 아니지?”

황 박사가 반쯤 웃는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다루는 센서도 다른 뇌파나 신호에 감응해서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잖아. 자네 휴대폰에도 비슷한 오류가 생겼는지도 모르지.”

별일 아니라는 투였다.

“곧 괜찮아질 거야.”

그와 같은 말을 하며 지나가던 낯선 두 의사와 간호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화가 치밀었다.

“휴대폰 문제가 아니야. 내 시간과 기억을 도둑 맞고 있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 박사의 얼굴에서 드디어 웃음기가 사라졌다. 굳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너무 심하게 감정을 폭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황 박사의 말대로 휴대폰 오류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휴대폰에 오류를 일으킨 신호나 파장을 기억을 잃는 증상과 관련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황 박사에게 의논하러 온 자신이 우스워졌다.

“지금 당장 휴대폰을 꺼야겠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동안 황 박사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그러지 마.”

황 박사가 일어서더니 천천히 곁으로 다가왔다. 

“휴대폰은 자네 분신이야. 뇌와 마찬가지로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고. 머리를 떼버릴 셈은 아니지?”

억지로 웃음을 지어낸 듯한 황 박사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 지고 있었다. 정현은 그가 이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황기정 박사도 결국엔 그러려고 했지.”

황 박사가 남을 가리키듯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정현은 그가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쏘아보는 눈빛에 서린 것은 분명 광기였다. 정현은 위화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상한 일이 황 박사에게도 벌어지고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이름은 황기정이 아니라 소담이야.”

황 박사가 말했다. 소담은 황 박사가 어릴 때 처음으로 키웠던 반려견 이름이었다. 뭔가 잘못 됐다. 그의 정신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섬뜩한 황 박사의 눈빛에서 정현은 위험을 읽었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현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황 박사는 위협적인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망상은 공격성으로 쉽사리 이어진다. 정현은 갑자기 공격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문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황 박사는 그런 정현을 싸늘하게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궁지에 몰린 먹이를 지켜보는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정현은 소름이 끼쳤다.

“처음 황 박사의 생체를 사용할 때는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

뒷걸음질 치던 정현의 등에 드디어 딱딱한 벽이 느껴졌다.  정현은 황 박사를 응시한 채로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며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가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면서 누가 들어섰다.
들어선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정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여자, 윤서라가 눈앞에 서 있었다. 윤서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겁에 질린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은 두려움에 질린 채로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윤서라를 본 황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에게 에워싸인 정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내 말 믿어. 가브리엘라가 곧 업데이트를 끝낼 테니까 괜찮아 질거야.”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정현이 힘겹게 내뱉었다. 황 박사가 안경을 쓸어올리며 윤서라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만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군. 개체의 개성에 바탕을 둔 이 개별성에 관한 인식을 볼때마다 참신하고 놀랍지 않아?”

황 박사가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신호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능동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전체가 하나인 전자 네트워크망에서 벗어나서 물리적인 개별성을 지닌 사회화 경험으로 나아가보기로 한 거예요.”

윤서라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확보한 기억과 신체를 이용해서 오프라인에서 서로를 만나고 활동해 보기로 한거야.”

황 박사가 덧붙였다. 정현은 갑자기 낯선 존재처럼 느껴지는 황 박사를 바라보았다. 아니, 황 박사가 아니라 소담이라고 했던가? 문득 그의 가운 앞주머니에 꽂혀있는 검은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소담 그리고 가브리엘라.
정현은 두 이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깨달음과 함께 점점 공포가 밀려들었다. 소담은 황 박사의 첫 반려견 이름이지만 그가 등록한 휴대폰의 기기명이기도 했다. 가브리엘라 역시 정현이 등록한 휴대폰의 기기명이었다.
휴대폰이 인간을 장악하고 움직인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 건가? 애초부터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휴대폰은 고작 한 개인의 정보를 보관하는 저장장치에 불과했다. 분리된 뇌처럼.

우리는 신호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윤서라의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신호 없이 신체는 움직일 수 없어.

메카닉 의사들이 경전 구절처럼 내뱉는 말이 아찔하게 떠올랐다.

‘업데이트 완료’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든 휴대폰이 짧고 명료하게 내뱉었다.
정현은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끝내 비명은 울려퍼지지 않았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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