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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rita 비내리는 2호선

2019.06.30 12:0006.30

비내리는 2호선

amrita

최막달 씨는 어느날 하늘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 푸른 하늘이 칼등에 생선 비늘 벗겨지듯 그르럭 거리며 긁혀 떨어져 나갔고, 그 너머의 어떤 공허가 시꺼멓게 세상으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밤하늘, 아니, 밤하늘보다 더욱 지독하게 진리에 가까운 텅 빈 물질은 발톱 세운 꿈 속의 꽃잎처럼 무게감 없이 지상에 내리꽂혔고, 그 검은 것에 조금이라도 닿은 자들은 곧장 쓰러져 죽어 버렸다.

최막달 씨는 꿈에서 깨고 나서 평소와 다름없이 씻고 아침상을 차렸다. 최막달 씨의 금지옥엽 외동딸, 최사랑 씨는 샤워하고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나와 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오디션인가 뭔가 한대매?”

“어. 오리엔테이션 한대.”

“우리 딸이 벌써 이렇게 커서.”

“무슨 좋은 꿈 꾼 거 없어? 오늘이 첫날인데. 엄마 꿈 잘 맞잖아.”

최막달 씨는 오렌지 쥬스를 컵에 한가득 따라 딸에게 주며 활짝 웃었다.

“별 거 없었는데. 우산이나 챙겨 가.”

“오늘 비 와?”

“그냥 갖고 다녀. 아니다, 내가 지금 아예 가방에 넣어둘 테니까 니는 빨랑 드라이나 혀.”

최막달 씨는 끙차 하고 일어나서 신발장 상단에 올려뒀던 우산을 꺼내다 딸의 토트백 앞주머니에 꽂았다. 최사랑 씨는 머리를 말린 후 꺼내뒀던 검은 투피스를 입은 뒤 현관에 엄마가 미리 내놓은 흑색 옥스퍼드를 꿰어 신었다.

“다녀올게요.”

“그래. 주차장까지 나갈까?”

“뭘 그래, 딸내미 챙기느라 아직도 아침도 못 자셨으면서. 빨리 진지부터 드시죠.”

최막달 씨는 못내 아쉬운 기분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하긴, 자신의 딸은 유치원 때부터 엄마한테 배웅 받기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어린애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부담스럽다나. 뭐 그럴 수도 있긴 하다. 그런 성격이니까. 최막달 씨는 식탁에 앉아 벽면 스크린을 켜고 뉴스 채널을 띄웠다. [오늘 날씨는 전반적으로 맑을 예정입니다, 구름이 약간 있겠습니다만……]

못내 걱정되는 것은, 딸의 특이하다면 특이한 유머 센스였다. 매양 무뚝뚝한 표정에 국어책 읽는 말투라 본인은 농담을 한다고 해도 남들이 알아듣는 경우가 적었다. 게다가 남한테 곧 죽어도 빈말은 못하는 성격이니 아부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친구를 한 번 사귀면 모 아니면 도였다. [속보입니다. 광화문 일대에 이무기가 출몰했다는 소식입니다, 아직은 얌전히 배너만 내걸고 있다고 합니다만…….]

공립 학교를 다니다 홈스쿨을 시작하니 성적이 중하층에서 최상층으로 팍 뛰어오른 것도, 사회성은 낮지만 집중력과 연구력 부분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한 성질분석과도 연관이 깊을 것이었다. 아무튼 회사 생활은 또 홈스쿨과는 다를 것인데, 눈치를 잘 봐 가면서 아첨도 좀 하고 그래야 할 텐데 과연 저런 성격으로 무던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인지……. 고양이 키울 때에는 그래도 좀 낫더만……. [현장에서 강하나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강하나 리포터!] 이 회사는 좀 다르다기는 했지만. 최막달 씨는 딸의 밥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넣었다. 오늘은 왠지 밥 말고 아침으로 빵을 먹고 싶었다. 나가서 단팥빵하고 크로와상이나 사와야지. 그는 빵집에 갈 생각에 간밤에 꿨던 꿈을 까맣게 잊었다.


최사랑 씨는 고속 열차 역에 다다라서야 ‘내가 교통 크레딧을 사 뒀었나?’ 싶었다. 네크워크 팔찌를 입구에 찍어 보니 다행히 잔고는 충분했다. 다음에는 그냥 자동 이체 시켜둬야지, 생각하며 그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뎠다.


이후남 씨는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내집 장만을 했다. 일찌기 스물에 이른 결혼을 했고, 딸을 셋 낳았고, 서른에는 남편이 죽어서 졸지에 과부가 되었으며, 시집살이나 죽어라 시키던 시집한테 도움은커녕 빈대 붙으려는 것을 싸워서 떼어내고 죽어라 일해서 이뤄낸 성공이었다.

친정에서는 그의 백수 오라비에게 올인하느라 딸이 어떻게 살든 관심도 없었고, 어쩌다 급해서 막내딸 좀 하루만 봐줄 수 없느냐는 부탁에 우리도 바쁘다며 콧방귀도 안 뛰는 집이라, 후남 씨는 그쪽에다가 집 샀다는 말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딸이라 대학도 안 보내주려던 집구석이었던 것이다. 집 샀다는 말을 했다간 너는 이제 살만한 것 같으니 우리도 도우라고 되려 물릴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취업은 물론이요 비상 육아지원, 주거 지원을 해준 것은 친정보살 앤 컴퍼니 뿐이었다. 친정보살 앤 컴퍼니야말로 어떻게 보면 이후남 씨에게 있어서 부모보다 더 부모같은 회사였다. 그러므로 그가 큰 위기에 닥쳤을 때 회사에 가장 먼저 지원요청을 날린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이야?”

“네.”

“그냥 보기에도 좀 그렇네.”

그렇긴 한데, 주거환경 지원 요청에 반나절 만에 사람이 파견될 줄은 몰랐다. 후남 씨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어린애가 파견될 줄도 몰랐다. 이래도 되나?

그러했다. 친정보살 앤 컴퍼니에서는 열 살짜리 (후남 씨의 첫딸보다 두 살 많다) 어린애를 홀랑 보내왔다. 머리를 양머리 스타일로 땋아 둘둘 말아올린 데다가, 검은 양복 차림에, 황금색 젤리 고무신을 대충 꿰어 신은 애를.

“이거 내 명함.”

후남 씨는 삼태극 배경무늬로 빛나는 명함을 얼떨결에 공손히 받아 들었다.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친정보살 앤 컴퍼니
지원실장 트리오
흑창해

“실, 실장님? 흑 실장님?” 우리 회사 최강실장 트리오 중 그 흑 실장? 이 꼬맹이가?

“어.”

흑 실장은 짧게 답한 후 아파트 로비 쪽으로 자박 자박 걸어갔다. 로비의 센서는 흑 실장이 거주인도 아닌데 알아서 녹색으로 빛난 후 문을 열어 주었고, 후남 씨는 서둘러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이 어떻게 열린 거예요?”

“원래 나한텐 다 열려.”

“그건, 아, 그렇군요….”

하긴,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니까 그럴 수 있다. 후남 씨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이 꼬마애도 그렇다, 겉모습만 귀여운 꼬마지, 사실은 증조할머니 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훨씬 더 오래 됐어.”

“아, 네?”

“그러려니 해.”

“네…….”

흑 실장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서 15층을 눌렀다.

“전에는 멀쩡했어?”

“아, 그, 전에는 한 세 번 봤었는데 다 멀쩡했어요. 그런데 이사오던 날부터….”

“집을 밤에는 본 적 없지?”

“네. 낮에만 봤어요.”

“햇빛이 들면 그래도 멀쩡해 뵈거든. 그러다 어두워지면 맛이 확 가.”

“맞아요! 정말 잘 아시네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후남 씨는 검은 복도로 나가기가 싫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설 뻔했다.

“빨리 치우고 애들 방 꾸며 줘야지?”

흑 실장이 고무신을 작작 끌며 서슴없이 앞장서지 않았다면 그는 서둘러 일층으로 도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노을도 거의 져 가고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아파트 복도부터 왠지 음침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무슨 기계음인지, 유독 이 복도를 지나갈 때만 귀울음이 삐- 하고 들려서 더욱 기분 나빴다. 무슨 전자파 때문인가 싶기도 했는데, 다른 층 복도는 아무리 걸어봐도 그런 일이 없어서 더 이상했다.

처음에 집을 봤을 때, 후남 씨는 이렇게 좋은 집이 이렇게 좋은 가격에 나올 줄이야! 하면서 기뻐했었다. 부동산 업자도 이런 집은 드물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최신형 아파트에 좋은 학군에 교통까지 좋으니 이 집을 탐내는 팀도 몇 팀이나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가격을 올리기는커녕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내려 판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긴 했다. 매매 절차 중에 집 주인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야, 흔한 일이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이상한 일은 이사 당일부터 벌어졌다. 짐을 대충 풀고서 잠깐 잠들었는데, 예의 이명이 한두 번 울리더니, 갑자기 누군가 귀에다 대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후남 씨는 기겁을 하고 깨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보니 모든 것이 소름끼치게 이상하게만 보였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음산하고 잔인한 것이, 마치 집의 공기가 뒤틀려 꼬여오며 자신을 밀어내려는 것 같았다. 미처 다 꺼내지도 못한 아이들 곰인형 토끼인형마저 무슨 괴물 같은 살기를 띄고서 자신을 노려보는 듯했다. 이사오기 전에는 집에 햇빛이 따스하게 밀려들어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확 달라질 수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후남 씨는 사옥의 임시거주 기간을 연장 신청하면서 주거지원 서비스도 같이 신청했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옆자리 삼 대리가 알려줘서 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주거지를 최근에 옮기셨습니까? 네. 상식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까? 아니오. 꿈자리가 뒤숭숭하거나 물건이 자주 흩어지거나 분위기가 지나치게 불길합니까? (무슨 질문이 이렇게 자세해?) 네. 이사 전에 거주지 스크리닝 서비스를 받으셨습니까? 아니오. (그런 게 있었어?)

“여기네?”

후남 씨는 지문 센서에 손을 가져다 대서 문을 열려다가, 흑 실장의 손짓에 물러나 섰다.

“말했잖아. 나한텐 다 열린다고.”

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스르륵 열렸다. 흑 실장 뒤에서 불안해하던 후남 씨는 슬그머니 안을 들여다 보고는 놀란 소리를 냈다. 어라?

“이건, 오늘은 또 멀쩡하잖아요?”

그러했다. 현관이며 거실, 부엌, 안방과 작은방 둘, 드레스룸, 다용도실까지 모든 곳이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일전의 그 끔찍한 분위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리 안 된 박스가 산만하게 쌓이고 널린 와중에도 전반적으로 멀끔하고 온화한 느낌이었다.

“내가 왔잖아. 그러면 이렇게 돼.”

“아….”

후남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거 같았다.

“그럼 이제 해결된 거예요? 그 뭐가 뭔지 몰랐던 문제는 이제 재발하진 않는 거예요?”

“그게 좀.”

좀 뭐요? 후남 씨는 다시 긴장했다. 설마 흑 실장님이 여기 있을 때만 집이 멀쩡한 걸까? 그럼 흑 실장님이 룸메이트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엔…….

“집 자체는 괜찮네. 터가 망한 자린 아닌데? 그건 그나마 다행이고.”

“그래요? 그건 다행이에요.”

후남 씨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터 문제가 아니면요, 대체 왜….”

“일단 딸이 셋이고. 그럼 다 낳았네? 그건 됐고.”

“네?”

흑 실장은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녔다.

“가구도 아직 안 산 것 같은데.”

“네, 이사 후에 가구는 사려고 했거든요.”

“직원 할인에 백크레딧에 뭐 받을 거 다 받아. 또 까먹지 말고. 잘 모르겠으면 사내 지원실에 전화를 해. 걔네들 일이 없어서 허구헌날 탕비실에 짱박혀서 무협 소설이나 본다고.”

“네….”

“애들은 어디 있어? 무지개 센터?”

“네….”

사옥에 딸린 사원 전용 보육 시설의 이름이 무지개 키즈센터였다. 후남 씨의 세 딸은 모두 어려서부터 그곳을 무지개 놀이터라고 불렀고, 무탈하게 잘 다녔다.

“저, 딸이 셋인 것과 이 집의 문제가 무슨 상관인 건가요?”

“그런 게 있어.”

흑 실장은 거실 한가운데 쌓인 박스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어서 후남 씨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일단은 좀 보자고.”

흑 실장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검은 펜을 하나 꺼내서 위로 던졌다. 아니, 펜이 아니라 홀로그램 프로젝터구나. 후남 씨는 거실 천장에 둥둥 뜬 프로젝터를 올려다 보았다. 하나, 둘, 셋…. 그와 함께 프로젝터는 홀로그램 재생을 개시했다.

“앗?”

후남 씨는 거실 한가운데 나타난 홀로그램이 순간적으로 자신인 줄 알고 놀란 소리를 냈지만, 다시 보니 다른 사람인데다 옛날 옷차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깐 헷갈릴 만 했던 것이, 자기처럼 홀로그램 속 젊은 여자한테도 올망졸망 어린 딸이 셋이나 붙어 있었다. 그 역시 어린 것들을 끌어안고 막바지에 몰려서, 세상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부러진 칼 같은 눈빛이었다.

나지막한 톤으로 나레이션이 시작되었다.

[21세기의 박말자 씨는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결혼을 했다. 사업 자금이 필요했던 오라비가 동네 노총각에게 그를 팔아넘기듯 보내서 성사된 혼인이었다. 말자 씨는 저 하나만 결혼하면 친정도 형편이 필 것이고, 시집에서도 나어린 며느리를 사랑해줄 것이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말에 얼결에 결혼하기로 했다.]

옛날 옛적의 흔해빠진 이야기였다. 말자 씨의 오라비는 사업을 말아먹고 야반도주했으며, 시집에서는 딸을 하나도 아닌 둘이나 낳은 며느리를 흰눈으로 보았다. 말자 씨의 남편은 그나마 아내와 딸들을 아꼈지만, 대를 이어야 한다며 핏대 세우는 제 아비 앞에서는 감히 말대꾸는커녕 고개도 못 드는 처지였다. 말자 씨의 시어미는 그래도 몰래 몰래 며느리에게 애들 옷이나 사주라며 돈을 찔러 주었지만, 며느리가 미워서 기세가 시퍼런 남편 몰래 돈을 챙겨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말자 씨가 셋째로 아들을 낳았다면 이 모든 고난이 사라지고 그럭저럭 인생이 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셋째 임신 소식을 알린 날부터 시애비의 구박이 싹 사라지기는 했다. 그는 게다가 태몽도 아주 커다란 청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꾸었다며, 이번에는 아무래도 손자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초음파로는 태아의 자세 때문에 성별을 확인할 수 없었고, 피 검사로 알 수도 있다지만 그간 받아온 구박으로 말하자면 대하 드라마를 찍고서 다섯 번은 리메이크해도 모자란 말자 씨로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미리 성별을 알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말자 씨로서는 아무래도 이번에도 딸 같았는데, 미리 말하면 시애비가 낙태 강요는 물론이요 더 심한 짓도 저지를까 두렵기도 했다.)

태아 성별이 궁금한 것은 시애비였는데, 그럴 때마다 족족 용꿈, 고추밭에서 팔뚝만한 고추 따는 꿈을 꿔서 무슨 감별이고 뭐고 이번에는 그야말로 아들이라고,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며 아예 확신을 해 버렸다. 그렇게 어영부영 아홉달이 지난 후, 드디어 태어난 셋째가 손녀라는 소식에 시애비는 거품을 물며 뒷목을 잡았다.

여러 난리가 있었지만 아무튼지간에, 말자 씨는 세 딸과 함께 시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기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애비는 옷가지 등을 대충 밖으로 집어던졌고, 며느리와 손녀 셋이 미처 뭐라고 말 한 마디 해보기도 전에 대문 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걸어 잠갔다.

당장 애 셋을 데리고 살 길이 막막했던 말자 씨는 일단 친정으로 갔는데, 친정에서는 떨떠름하니 그들을 받아주긴 했으나 밥상에서 계란 반찬을 한 번 집어들기에도 눈치가 팍팍히 보일 지경이라, (고기 반찬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자 씨는 무슨 일이든 찾아서 일단 돈부터 벌기로 했다. 친정이랍시고 개풀 가시방석 같기는 했지만 당장 애들이라도 맡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말자 씨는 급한 대로 식당 일을 찾았고, 매일같이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면서 최대한 돈을 모았다. 친정에는 월세 사는 셈 치고 매달 돈을 얼마간 주니 그래도 한결 나았고, 일이 힘들기는 했으나 시집살이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 어떤 진상도 시애비만큼 지독하지 않았던 것이다. (첫딸을 낳았던 날, 저건 미역국이고 뭐고 개밥이나 주라며 병원에서 벌개진 눈으로 날뛰던 양반이었다.)

그렇게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가 했는데, 어느 날 수척해진 전남편이 그를 찾아왔다. 그동안 못 본 막내딸을 이리 저리 돌려 보다가 끌어안고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고 싶었다며, 집에서는 새장가를 가라며 들들 볶아대는데 자기는 이것 저것 다 싫고 당신과 애들과 오손도손 살고 싶다고 했다. 말자 씨는 그런 그가 딱하긴 했으나, 그가 부모와의 연을 끊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좋은 말로 얼러서 대충 돌려 보냈다. 전남편은 그래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자기 마음이라며 선물이며 돈을 들고 부득부득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말자 씨는 커피나 한 잔 먹이고 돌려 보냈다. 길게 보자면 인연을 끊는 것이 좋겠지만, 전남편도 평생을 제 애비에게 두들겨 맞으며 살아온 사람인 걸 알았기에 차마 매몰차게 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다보니 말자 씨는 차라리 자기가 어디 좋은 혼처라도 찾아서 전남편을 보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데다, 외모가 번드르한 것도 아니고 설상가상으로 탈모마저 시작된 데다가, 시부모에게 돈 받아 쓰는 백수 남자한테, 시집과 합가해야 하고 반드시 아들도 낳아야 하는데 게다가 재취 자리로 누가 간다 할 지 영 가망없는 일이긴 했다. 심지어 아들을 못 낳았다며 눈을 부라리던 시애비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치는데 자기 편하자고 다른 여자를 그런 자리로 엮어 넣는다니, 금수도 아니고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는 결론이었다. 말자 씨는 그냥 얼른 돈을 모아서 이사나 갈 계획이었다.

문제는 시애비가 어느 날 아들의 뒤를 밟아 따라왔다는 거였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저년이 꼬리를 쳐서 우리 아들이 이모양 이꼴이라며, 우리 집안의 대를 끊어놓다 못해 있는 아들까지 뼛골을 뽑아 죽일 년이라는 둥, 전생의 웬수가 틀림없다는 둥, 시애비는 담장의 능소화가 흔들릴 정도로 고래 고래 악을 쓰며 길거리에서 말자 씨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그동안 말자 씨의 전남편은 안절부절 못하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제 애비한테 진정하시라는 둥,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앉아서 말씀하시라는 둥,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말린답시고 헛소리나 늘어놓았다.

말자 씨는 차라리 그냥 죽고 싶었다. 어릴 적 멋모르고 시집가서 겪은 온갖 비참한 일들이 눈앞을 스쳐갔고, 제법 커서 벌써 뭐가 뭔지 아는 큰딸의 날선 눈빛과 둘째, 셋째의 순해터진 양뺨이 선명히 떠올랐다. 이 인생? 이 따위가 다 뭐냐, 어차피 망한 거. 그래서 뭐 어쩌자고? 세상은, 집은, 친정이고 시집이고 다 그냥 지옥이다. 안 그런가? 세상은 대놓고 그를 짓밟아 왔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 그런 거라고 했다. 기집애가 공부는 해서 뭘 하며, 빨리 좋은 조건에 팔려나 갈 수 있으면 장땡이지. 아들도 못 낳는 쓸모없는 것. 대체 아들이 뭔가? 그게 무슨 왕이나 세상의 구원자라도 되는가? 끽 해야 지 마누라 얻어터지는 것조차 방어를 못 하는 칠푼이 아닌가? 일은 제놈이 자꾸 찾아와대서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도 괴로운 건 알겠다만. 시애비의 손톱이 말자 씨의 뺨을 긁었고, 그때 그의 심장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틀어졌다. 큰딸은 언젠가 늦은 밤에 자라는 잠은 안 자고, 말자 씨의 손등을 쓸어내리며 엄마 내가 돈 많이 벌어다 줄게, 우리끼리 잔디밭에 집 짓고 살자? 그러기도 했다. 소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고, 토끼풀도 기르자? 특히 이마와 눈썹이 그를 쏙 빼닮은 딸내미였다. 아들, 아들이라고? 우리 딸이 그놈의 소름끼치는 잘난 아들보다 천만억배는 더 소중하다.

“아으아아아아아아악! 이 이 이년이!”

말자 씨는 일단 시애비의 팔을 물어 뜯었다. 피를 보고 놀란 시애비가 머리채 잡았던 손을 놓자 대뜸 달려들어 그의 옆머리를 잡아 뜯었다. (시애비도 대머리라 잡아뜯을 머리라고는 옆머리 약간 정도였다.) 전남편은 역시 어버버 거리고 멍청히 섰을 뿐이었다. 말자 씨는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흘리지 않았다. 그가 평생 갈고 닦아온 것이라고는 인내심 뿐이었고, 지금은 그러한 인내심을 지금까지와는 십분 다른 방식으로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말자 씨는 시애비의 모가지를 붙잡고서 미친 듯이 뒤흔들어댔고, 손목을 꺾었고, 등을 발로 걷어찼다. 어차피 말이 시애비지 말자 씨보다 작고 마른 체형에 목소리만 큰 양반이라, 온갖 궃은 일로 단련된 말자 씨에게 힘으로 당해낼 수도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웅크린 시애비를 말자 씨는 인정사정 없이 밟았다.

홀로그램은 여기서 딱 멈췄다. 한참 몰입해서 보던 중에 영상이 갑자기 멈추자, 후남 씨는 의아한 눈으로 흑 실장 쪽을 바라보았다.

“저, 실장님? 이거 무슨 에러인가요?”

“아니. 일시 정지야.”

“아….”

“말자 씨가 여기서 어째야 한다고 생각해?”

“네? 아, 이 국면에서요? 아, 음.”

후남 씨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뭐 생각할 거리까지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잠깐 침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냥 죽이면 안 될까요?”

“정답이야.”

흑 실장의 손으로 펜이 천천히 내려와 앉았다. 그는 펜을 들고서 부엌으로 가서 벽면에 붙은 아파트의 컨트롤 박스를 가볍게 터치했다. 온도, 습도, 공기 정화, 셀프 청소 모드, 단지 공지 사항 등 여러 옵션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맨 마지막으로 업장 소멸 옵션이 나왔고, 흑 실장의 펜이 닿자 연장 / 완료 옵션이 또 떴다. 흑 실장은 완료 옵션을 선택했고, 최종 컨펌까지 선택한 후 기본 화면으로 돌아갔다. 후남 씨는 이 집에는 인공지능이 기본으로 들어있다더니 저런 기능까지 있나…? 싶었다.

“저, 그런데 죽이는 것까진 좋은데요.”

“어.”

“시체 처리라든지, 목격자나, 뒷처리는 어쩐대요? 그 집도 애가 셋이라면서 애엄마가 감옥에 가면 안 되잖아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아무튼 이제 이 집은 깨끗하니까 애들하고 들어와 살면 돼.”

“아니 결말이 궁금해서 그러지요, 얘기가 막 흥미진진해지던 참에 딱 끊기면요.”

“이것저것 건너뛰고 결말은 해피 엔딩이야. 시애비는 죽고, 말자 씨는 남편과 재결합해서 애들 키우며 잘 살아. 시집 재산도 다 말자 씨가 먹고, 애들도 잘 크고. 시애비는 소로 태어나고 남편은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지. 딸 밖에 없는 집에 셋째로. 그래서 개고생하면서 자라나 어영부영 결혼하는데, 또 딸만 셋을 낳아. 제 마누라가 겪었던 고생만 하겠나만, 비슷하게는 겪어보는 거지. 겸사겸사 고통을 통해 성장도 하고.”

후남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근데 왠지 저랑도 좀 비슷하네요? 저도 셋째 딸이에요. 그래서 다음에는 아들나라고 제 이름이 후남이 됐잖아요? 어휴.”

“그래. 뭐. 아무튼 난 간다? 가구나 빨리 사.”

“아니 저기, 차라도 한 잔 하시고요!”

“됐어. 짐부터 풀어.”

흑 실장은 문을 쿵 닫았다.

“아니 잠깐, 실장님! 흑 실장님!”

후남 씨는 급히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 젖혔지만, 복도고 엘리베이터고 흑 실장의 모습은 그림자 한 쪽도 보이지 않았다.


사랑 씨는 오늘 따라 역이 한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좀 일찍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사람이 없을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혹시 시간을 잘못 알고 나왔는가 싶어서 열차 대기선에 뜨는 시간을 체크해 보았다. 제대로였다. 세상에 출근하러 나선 사람이 자신 혼자뿐일 리도 없는데, 그러면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가? 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저 멀리 한 둘 정도였고, 반대편 방향에서 대기 중인 사람은 잘해야 서넛 뿐이었다. 열차선에 무슨 일이 생겨서 운행이 정지된 건가? 그걸 모르고 여기 온 사람들인 건가? 생각하는데 안내 메시지가 공중에 울려퍼졌다. [서울 행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대기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일이야. 마치 분위기가 저승의 고속 열차 플랫폼 같잖아? 사랑 씨는 일단 어쨌든 출근은 해야겠으므로 대기선 앞에서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고속 열차는 일 분도 안 되어서 플랫폼으로 매끄럽게 입장하여 멈춰 섰고, 곧 문이 열렸다. 사랑 씨는 열차의 벽에 빨갛게 깜박이던 화살표가 초록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렸다가 열차 안으로 들어섰고, 문가를 밝힌 백색 조명이 그런 그의 어깨를 타고 낼름 휘어 지나갔다.

열차 안은 조용한 편이었다. 방금 너무 한산해서 이상하던 역과는 달리, 여기는 사람들이 꽤 되어서 자리가 반 정도는 찼다. 사랑 씨는 일단 1인용 칸막이 좌석부터 찾아서 열차 안을 스캔했고, 마침 그런 빈 자리가 근처에 있길래 얼른 가서 앉았다.

저승 생각이 나서 말이지만, 저승에도 백화점이 있고 고속 열차와 전철, 버스와 빌딩과 카페가 있다. 그 중 사랑 씨에게 익숙한 곳도 여러 곳 되었다. 빈티지 아이템을 모아놓고 파는 가게하고 (특히 가죽 가방이 멋진 게 많고, 사장님의 패션 센스가 출중한 곳이다) 하얀 놀이기구가 재미있는 백화점, 그리고 고양이 카페까지. 한 달에 한 번, 그는 꿈에서 저승에 내려가 먼지와 차를 마셨다. 먼지는 그가 중학생 때 키우던 노란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먼지를 만난 것은 (당연하지만) 이승에서였는데, 골목길에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지에 몸을 스윽 부비더니 계속 졸졸 따라오는 치즈냥이를 집에 데려오지 않을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검은 교복 바지에 고양이가 부빈 자리마다 털과 먼지의 길이 생겨나서, 이름도 먼지라고 지었다. 엄마는 웬 괭이냐? 하더니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다면 키우라며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먼지를 병원에 데려가자 이미 중성화가 된 고양이라면서, 아마 집고양이였을 텐데 가출했거나 길을 잃었을 거라고 했다. 어린 사랑 씨는 혹시나 해서 동네에 전단지를 붙여보기도 했지만, (냥이 잃어버리신 분?) 별 응답은 없었다. 칩도 없었고, 동네 인트라넷의 실종 고양이 리스트에도 없었고, 먼지 사진을 올려 봐도 반응도 없었고, 목걸이고 뭐고 다른 단서도 없었으므로 먼지는 사랑 씨의 방에 그대로 은근슬쩍 눌러앉게 되었다.

어쩌면 실상은 사랑이 먼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먼지가 사랑을 키우기로 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 사랑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먼지는 사랑이 서툴게 목욕을 시켜도 별 반항도 없이 잘 참았고, 사료를 가리는 일도 없었고, 화장실도 알아서 잘 썼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먼지는 사랑이 집에서 숙제 하다가 졸 것 같으면 뺨을 툭툭 쳤고, 늦잠을 자면 배를 꾹꾹 눌러 깨웠으며, 밥을 남기면 식탁에 버티고 앉아 다 먹을 때까지 울었다. (우는 소리라기보다는 야단치는 소리 같았다.) 한번은 소개팅 나가기로 한 날 먼지가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져서 다 취소하고 울며 불며 병원에 달려가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는데, 그렇게 흐지부지된 소개팅 상대가 몇 달 안 가서 몰카 찍다 현장에서 걸렸더라는 말을 전해들은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먼지가 온 날부터 사랑의 일이 잘 풀렸다. 바닥에서 맴돌던 성적도 슬슬 상향되었고, 엄마는 단번에 일급 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큰 병원에 취직했다. 매일 야간 반찬 공장에서 열두시간 씩 일하느라 자식에게 마음대로 시간을 내지 못했던 엄마가 이제 일주일에 세 번, 세 시간 씩만 일해도 전보다 돈을 몇 배는 더 벌게 되자 생활이 여러 모로 부드러워졌다.

일단 막달 씨는 딸을 데리고 상담을 다녔고, 교육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대체하고 테니스와 수영, 피아노 레슨에 등록해 주었다. 사랑은 그로부터 일 년 후 출전한 콩쿨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전에 같은 반이던, 자신을 반강제로 단체 소개팅에 끼워 넣거나 숙제를 대신 시키거나, 자신의 의자에 풀칠을 하고서 웃던 지영이를 참가상 행렬 속에서 언뜻 본 것 같았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먼지는 사랑 곁에서 다섯 해를 보낸 뒤 세상을 떠났고, 그날 그는 아예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울지도 못했다. 꿈에서 저승으로 내려가 먼지를 만나고 오는 일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처음에는 그냥 개꿈인가 했다. 그런데 개꿈이라기에는 모든 게 너무 생생했다.

사랑은 꿈에서 별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고양이 카페로 들어섰는데, 먼지가 등장해서 자신은 고양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양이 카페는 원래 고양이가 운영하는 거라고 했다. 왜냐면 고양이 카페니까.

소파에 앉은 사랑에게 알바 고양이가 커피와 아몬드 비스코티를 가져다 주었고, 먼지는 맞은편 소파에 기대어 누운 채 우아하게 앞발을 그루밍했다.

이상한 것은, 꿈 속에서 사랑은 마치 먼지와 단 하루도 헤어진 적 없었다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만났구나! 싶은 감격도 없었고, 그냥 낮잠 잘 자고 왔니? 싶은 느낌으로, 생시의 사랑이었다면 이해조차 못했을 일상적인 감각으로 먼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차라리 신기한 것은 로코코한 저승의 고양이 카페 인테리어와 삼색 알바 고양이와 오가는 짐승 인간 귀신 손님들의 다양한 패션이었다.

한 번은 알바 고양이가 채찍을 들고 카페 화장실로 가더니 검고 흐물거리는 슬라임 같은 것을 칭칭 묶어 끌어내기도 했다.

‘쟤는 불법 촬영하다 죽은 귀신이야. 죽어서도 그 버릇을 못 버려서 저래.’

‘아, 그래?’

곧이어 카페 문이 와장창 열리더니 검은 오토바이 헬멧을 쓴 도포 차림의 사자 한 명이 거센 바람과 함께 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채찍에 묶여 있던 귀신은 입 (같은) 것을 열어서 끼이이익 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유예 상태였을텐데 이제 다 끝났네. 지옥행이야.’

‘지옥?’

‘결박당한 채 안구가 뽑히는 형벌이 영원히 계속되는 지옥이지. 눈이 뽑히고, 새로 나고, 뽑히고, 새로 나고. 여기서는 남몰래 뭘 설치한다든지 완전범죄 같은 거 없거든.’

먼지는 무심하게 홍차에 설탕을 두 스푼 넣었다.

‘그래서, 요새는 어떻게 지내? 밥은 잘 챙겨 먹어?’

‘그냥 저냥.’

‘넌 입이 왤케 짧어? 좀 꾸준히 먹어.’

‘네가 없으니까 잘 안 먹게 돼. 그냥, 허전한 거야.’

‘그래도 잘 좀 먹어. 살아서 잘 먹어야 죽어서 힘을 내지?’

‘그런 거야?’

‘그런 거야.’

‘그렇구나.’

‘그래.’

‘괜찮아질 거야.’

‘그럴까?’

‘그래.’

사랑은 먼지에게 넌 내 어디가 그렇게 기꺼워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그 평생에 이승의 그 누구도, 엄마 빼고, 이런 정을 보여준 일이 없었다. 물론

‘우린 헤어진 게 아니야. 이렇게 만날 수 있잖아?’

먼지는 꼬리로 소파의 빈 자리를 탁탁 내리쳤고, 또 홍차를 한 모금 우아하게 마셨다. 노란 털이 카페의 조명 속에서 나긋나긋 춤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지극한 찬란함 속에서든 지랄맞은 절망 속에서든 우리는 둘이 아닌 거야. 그치?’

“어…….”

사랑은 단잠에서 잠시 깨어 토트백 주머니에서 빠져 떨어지는 우산을 도중에 잡았다. 아무래도 앞주머니는 얕아서 물건이 잘 빠진다. 근데 언제 잠든 거지? 모르겠네. 그는 우산을 백 안에 집어 넣었다. 열차 안은 오 분 전과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처럼 졸거나, 벽면에 흘러가는 뉴스를 보거나 했다.

저승은 모든 것이 깨끗한 곳이다. 물건을 잃어버려도 주인에게 어김없이 돌아오고, 공기는 항상 맑고, 하늘은 항상 푸르다. 죄를 남몰래 저지른다는 건 아예 성립조차 안되는 곳이다. 저승법은 원래 그런 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저승 꿈을 규칙적으로 꿔 오면서도 한 번도 비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구름은? 구름은 본 적이 있나? 사랑은 꿈에서 구름을 본 적이 있는가 기억해보려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에 또 꿈 꾸면 잘 봐야지. 그는 머리를 열차 좌석에 기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어쨌든 이곳은 이승이니까, 가끔은 날씨가 맑지 못할 수도 있다.


말자 씨는 지쳐서 더는 발길질도 못 할 정도가 되어서야 길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리가 아팠고 귀가 울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시애비는 여전히 엎드린 채 젖은 빨래처럼 그대로 구겨져 있었다.

죽었나?

말자 씨는 발끝으로 시애비의 옆구리를 꾹 밀어 보았다. 그는 미는 대로 옆으로 굴러 엎어졌다. 흡뜬 눈과 침에 젖은 턱이 보기 흉했다.

뭐야, 정말 죽었어?

“뒤졌어.”

말자 씨는 뒤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후다닥 돌아섰다가, 웬 꼬맹이를 보고서 긴장을 약간 풀었다.

“아, 얘, 여기는 애가 있을 곳이 못 되니까… 얼른 집에 가렴.”

“너나 가. 이 새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뭐?”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잘해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가 대뜸 반말을 하는 것이 그런데 왜인지 어색하지가 않았다. 말자 씨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게지. 하긴 아직도 손이 떨리고.

“둘러 봐봐. 뭐가 있어?”

“뭐가 있긴, 길거리에…….” 말자 씨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길거리며 담장이며 슈퍼마켓,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모든 게 방금 전과 그대로였지만, 방금 전만 해도 여럿 되던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도 없었다. 공기가 바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커튼 흔들리듯 수직적으로 밀려나가고 밀려왔다. 보라색 하늘에는 한문처럼 생긴 문자가 흰색으로 줄줄이 떠다녔고, 가끔 붉은 새나 푸른 용이 느적 느적 날아다녔다.

말자 씨는 멍하니 섰다가, 얼 빠진 손가락으로 이채로운 하늘의 여기저기를 가리켰다가, 다시 검은 옷의 초등학생을 가리켰다.

검은 번개와도 같은 끔찍한 광채로 이글대는 눈을 말자 씨는 그제서야 보았다. 그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얼른 눈을 피했고, 손을 치웠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는 건가? 미친 게 분명하다. 아님 간뎅이가 부은 건가? 이건 보통의 애가 아니다. 턱끝만 끄덕 해도, 아니, 굳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도, 자신 같은 미물은 먼지처럼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다.

말자 씨는 일단 도망치고 싶었는데, 몸도 놀랐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죽을 때가 된 건가? 그래서 저승 사자를 만나게 된 거야? 여긴 어디지? 왜 모든 것이 다른가? 외양만 봐서는 평범한 듯하지만 아니다, 뿌리부터 모든 것이 다르다. 다른 세상이다.

말자 씨가 패닉을 하든 말든, 흑의소녀는 저 멀리 어딘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도 그냥 꾹 참기만 했으면 괴로움만 길어졌을 거야. 잘했어.”

“아… 네…….”

“쓰레기는 내다 버려야지 참는답시고 집에 모셔둔들 금덩이로 바뀌진 않잖아? 물론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놈은 아니지.”

“아…… 네…….”

“이제 왔네. 이제 쟤 따라가.”

“아…….”

말자 씨는 이제 고개를 약간 돌릴 수 있었다. 그의 시야에 담벼락에 앉아 야옹, 하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시체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리고 이거 받아 가.”

이제는 손도 움직일 수 있다. 말자 씨는 흑의소녀가 내 주는 명함을 양손으로 더할나위 없이 공손히 받아 들었다.

친정보살 앤 컴퍼니
지원팀 실장 트리오 정예
흑창해 / 저승 삼신

“실, 실장님?”

“어.”

흑 실장 곁으로 검은 고양이가 우아하게 다가와 꼬리로 한 번 발목을 휘감고는 말자 씨 앞으로 와 섰다.

“이제 가.”

“저, 저기…….”

“다음 생에는 좋은 엄마 만나서 곱게 살아. 금지옥엽 외동딸로 태어나게 해줄테니까. 이제 가.”

말자 씨는 흑 실장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흑 실장은 벌써 돌아섰고 검은 고양이는 눈빛으로 그에게 길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말자 씨는 골목길 저편으로 걸어가는 흑 실장의 자그만 어깨를 향해, 우리 혹시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감사하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심장의 밑바닥에서부터 넘어져 까진 손바닥마냥 쓰리고 얼얼한 통증이 은은히 올라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 이미 아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간밤의 꿈이 절반 정도는 기억나고, 절반 정도는 잊어가는 느낌과도 같았다.

검은 고양이는 말자 씨 발치를 맴돌며 다시 냐옹, 했다. 어서 가자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

말자 씨는 천천히 한 걸음, 두 걸음 떼어 놓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거세게 일어서인지, 눈앞이 약간 흐렸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가끔은 담벼락에 손을 대며, 검은 고양이를 따라서 걸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다. 시애비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한다는 걸까? 망설이다 돌아보니 길거리는 여전히 한적했고, 시체는 온데간데 없었다.

발치에서 다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말자 씨는 아래쪽을 보았다.

“어…….”

이불이 옆으로 몰려 가서 오른 발목만 좀 춥다. 말자 씨는 잠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인지했고, 이불을 약간 끌어왔다. 꿈이었구나. 그는 눈을 감았다. 꿈이 뭐 이리 생생하고 난리람. 사람 놀라게시리.

그대로 자려다가, 말자 씨는 고개를 들어 옆에 나란히 누운 세 딸을 확인했다. 다들 이불은 신나게 걷어차 버려서 발목이고 배꼽이고 보기만 해도 추운데 새근새근 잘도 잔다. 젊은 것들은 혈기가 뻗쳐서… 말자 씨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정말 자자.


사랑은 깜박 졸다가 누군가의 꿈을 꾸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누군가의 꿈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부터 그를 찾아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는 어떤 젊은 여자가 이불 같은 것을 끌어안고서 척척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푸르고 어둔 바다가 저만치 멀리서 말려들며 파도치는 가운데 번개가 때때로 붉게 번쩍였다. 작은 손이 여자의 어깨 위로 올라와서, 사랑은 그것이 이불이 아니라 아기라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아이를 안고서 바다 쪽으로 느리게, 멈춤 없이, 계속해서 걸어가는 여자의 눈가는 이제 다 말라붙은 눈물 대신 혹간 떨어지는 빗방울로 젖어 갔다.

바람이 한 무더기로 쏟아지는 화살처럼, 혹은 비명처럼, 천지 사방으로 바다로 해변으로 부딪혀 꽂힌 후에 요란히 흩어졌다. 사랑은 불길하게 날뛰는 검은 바다를 보았고, 괴로움이 심장에 가득 들어찬 어린 엄마의 창백히 질린 발목을 보았다. 신발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맨발이 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마른 폭풍 중에서 유난히 서늘했다.

폭풍이 시작되는 지점은 세상의 그 어느 곳도 아니라 심장 속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한없이 넓었고, 하늘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되는 또다른 몸이었다. 땅은 바다 속으로 밖으로 구불구불 이어지고 섞이는 누군가의 꿈의 피부였으며, 붉게 붉어지다가 까마득히 무너지는 경계에 이르면 수명이 다 한 빛이 빨려들어가 숨을 거두는 흑암의 지경까지 이르는, 그 어떤 빛도 결국은 어두워지는, 늦추거나 거부하거나 돌아설 수 없이 엄정한 죽음의 길을, 즉 뒤집힌 광채의 지도를 뱃속에 품은 물질이었다. 그러한 땅에 고인 채 일렁이는 푸름은 물결이었고 흐름이었고 소용돌이였다. 이러한 푸름 속에도 역시 모든 빛의 무덤으로 이어지는 어둠으로 뻗어가는 방향이 있어서, 결국에는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물의 영역 역시 끝나게 될 것이었고 물질은 꿈과 본디 한몸이며 세상은 생사의 다른 이름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니 시작과 끝을 알고 오갈 수 있다면 곧바로 시간의 지도를 질러가 과거도 미래도 넘나들 수 있는 법이 있었다.

사랑은 세상을 가득 채운 채 아우성치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번개 퍼뜩 접혀 지났고, 천둥 소리 혹참했다.

방금 어디서 누군가 죽어버렸다.

일순간 불확실한 종류의 앎이 사랑의 존재 곁으로 슬쩍 다가왔다가 떠나갔다. 바다가, 바람이, 파도가, 하늘이 이 난리인 것은 아마도 그래서이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럴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그러한 추측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 꿈은 사랑의 꿈이기도 했지만, 셋째도 또 딸이라며 시애비에게 구박을 당하다 당하다 집에서 쫓겨난 애엄마의 것이기도 했으며, 아홉 번째 자식도 딸인 것을 참지 못해 갓난 것을 찢어 죽이려는 아비의 손을 물어뜯어 찢어내고 몸통만 열두 동강을 내어 죽인 동해 용왕 막내딸의 꿈이기도 했다.

일찌기 동해 용왕에게는 딸만 여덟이었는데, 아들 욕심이고 뭐고 다 포기하려던 마당에 그는 또 왕비가 태기가 있어서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제 연수도 있어서 아무래도 마지막 자식이 될 것이라, 그는 아들을 얻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치성을 들이고 점을 치고 비방을 하고 날짜를 따지고 천체를 보고 극성도 그런 극성이 없었다. 용궁 전체가 왕자를 얻겠다고 훌쩍 뒤집어져서 오만 난리를 치는 가운데 아홉 해가 반나절처럼 훌쩍 지났다.

아홉해가 되기 하루 전, 왕비인 구천 부인은 꿈을 꾸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거꾸로 공중으로 오르고, 땅이 그 가운데 어지럽게 뒤섞이는 것을 보았다. 하늘이 저며져 벗겨 내린 뒷편에는 용의 비늘 같은 무늬가 점점이 찍혀 있었고, 핏방울이 여기 저기 날아다녔으며, 바다의 텅 빈 밑바닥에서 번쩍이는 검은 번개가 솟아나와 뒤집힌 하늘의 뒷면에 가 우르르 꽂혔다. 그는 꿈 속에서 태중 아기의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
내 육신의 어머니여
어느 번의 천년세월 아들 못 난 죄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여
이 창해의 절반이 족히 당신의 눈물이오

나를 본디 생근 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이니
생사여탈권이 이미 내 것이라

당신은 내 실상의 어미는 아니지만은 그래도 태의 어미요
오로지 자식의 무사평안을 위해 피눈물로 범벅된 심정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니

이제는 일컷 앞날 일에
울음 삼킬 것도 없으리

이후 구천 부인은 순간적으로 밤하늘에서 땅으로, 바다까지 꿰뚫는 그믐달의 궤도를 보았다. 가장 깊은 어둠의 칼선은 순정히 잔인하여 도리어 황홀했고, 냉혹한 그대로 지당하여 차라리 아름다웠다.

어둔 데 겹쳐 어두우니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보였으며, 번개보다 빠르게 일어난 일이었으나 모든 소리와 바람과 별빛과 세상은 잘려나간 채 멀거니 허랑장창 멈춰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산기를 느끼면서도, 구천 부인은 더는 두렵거나 염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갓난 아기가 또 딸이라는 소리에도, 분노한 용왕이 날뛰는 기세에도, 그는 전처럼 떨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보았다. 금방 말까지 떼서는, 탯줄을 어서 끊으라고 재촉까지 했다. 부인은 산파와 시녀들이 힘없이 흩어지고 용왕이 칼을 들고 산실로 들어설 때, 차분히 막내딸의 몸을 닦는 중이었다.

칼을 들고 들이닥친 아비의 일그러진 얼굴을 향해, 구천 부인의 막내딸은 저 몰골이 너무나도 웃겨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쾌청하게 웃어 제꼈다. 그의 웃음 소리가 바다를 뛰어 넘어 천지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그는 그렇게 세 번을 웃고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아비의 손을 물어 뜯어 북해까지 뱉었다. 이때 그는 이미 많이 자라서, 혼자 걷거나 뛰거나 칼을 쥐어 휘두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등을 덮고 출렁였고 핏방울이 산실 바닥에 자수처럼 놓였으며, 동해 용왕은 벌써 기세가 제압되어 주춤거렸다.

“너, 넌 대체 뭐냐?”

“나는 나의 어매니라.”

창해는 왼손을 뻗었고, 구천 부인은 방금 전 아기 탯줄을 끊는 데 사용했던 단검을 그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 손등에 난 푸른 비늘 몇 점을 훑어 벗겨 떨구었고, 눈치는 빨라서 어느새 산실 밖으로 도망쳐 나가는 아비 쪽으로 집어던져 심장부터 박살 냈다.

그리고 쓰러진 몸을 밟고 서서 팔다리를 잘랐다. 목을 베었다. 비늘을 남김 없이 벗겼다. 남근을 절단했다. 늙어 쉬어빠진 용의 몸통이 토막나는 대로 검은 핏줄기가 파도처럼 일어났다.

용궁의 모든 이들은 제각기 구석으로 도망쳐서 아가미 펄럭이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창해는 푸른 비단을 몸에 두르고서 아비의 조각난 시체를 대충 한 발로 밀쳐가며 계단을 올라 진주 옥좌에 앉았다. 구천 부인은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전으로 들어섰고, 그의 뒤로 여덞 명의 딸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주부가 덜덜 떨며 옥새를 받들고 입시했다. 창해의 손짓에 옥새는 곧바로 떠오르더니, 여덞 딸 중 유일하게 평온한, 시선을 낮추지 않은 셋째에게로 헤엄쳐 갔다. 그렇게 다음 용왕이 결정된 후, 창해는 용궁을 떠나 뭍으로 올라갔다.

그가 수면을 깨뜨리고 나왔을 때, 날은 밤이었고 달은 그믐이었으며 천지간에 바람이 미쳐 날뛰는 가운데 공허한 해변에는 갓난 아기를 감싸 안은 인간 어미가 물에 발목까지 담근 채 동상처럼 서 있었다.

그믐달의 흑색이 창해의 비단옷을 검게 물들여 갔다. 그는 인간의 어미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나마 한 줌도 안 되는 사람의 심장이 슬픔과 막막함으로 무너져 내리며 폭풍의 기세를 지피는 광경은 하찮고도 고귀해서, 별빛과 보석과 산하와 용암과 시체와 오물을 한꺼번에 모두 이고 다니는 모순된 인간생의 묘체요, 가히 진흙 세상이 굳이 존재하는 이유라 할 만했다.

그는 곧 일렁이는 바다의 껍질 위로 천천히 나아갔다. 검은 물 위로 검은 바람 흔들렸고 검은 구름 너머의 그림자 달과 밤하늘의 암흑까지, 천지해의 모든 눈들이 까맣게 번쩍이며 이제 갓 태어난 저승 삼신의 행방을 주목했다.

물이나 뭍이나 부서진 어매들 뿐이구나.

창해는 파도가 밀어주는 대로 매끄럽게 모래사장까지 흘러갔다. 그는 소금 기둥마냥 뻣뻣이 선 말자 씨의 어깨를 조금 밀었다.

폭풍 일으키는 법을 너는 이미 알면서, 무엇이 두려운가?

말자 씨는 문득 정신이 깨이는 느낌이 들어서, 일단 물에 잠긴 발이 너무 추워서 얼른 뒷걸음질을 했다. 이불에 둘둘 감다시피한 어린 것이 눈에 들어왔고, 빨갛고 곤하게 잠든 모습에 목이 턱 메였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아무리 암담해도 그렇지,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아직 그의 눈으로는 저승 삼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쨌거나, 말자 씨는 급히 해변을 떠나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가에는 그의 큰딸과 둘째 딸이 급한 대로 잠바라도 덮고서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중일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또다시 가슴께가 탁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모든 걸 다 내버리고 싶던 이전과는 달리 앞날 생각이 착착 들었다. 일단 뭐라도 챙겨서, 급한대로 친정에라도 들어가고, 무슨 일이라도 하고, 돈을 벌고……. 창해는 멀어지는 말자 씨의 등에 운수를 한 움큼 얹어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사랑의 시선을 정면으로 거슬러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 비가 오리라.

사랑은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다. 자신이 열차 안이고 열차 안에서 우산을 쓰는 법이 세상에 어딨으며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쩌나 같은 생각이 미처 들기 이전에 손이 먼저 움직여 저지른 일이었다.

과연, 열차 안에서 우산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쟤 왜 저러나, 하는 눈으로 사랑 쪽을 흘끔거렸으며 혹시 우산 장사인가 싶어서 열차내 잡상인 신고를 하려는 사람마저 있었지만, 갑자기 열차 내벽을 흐르던 화면이 깜박이더니 경고 메시지가 떴다. 동시에 열차가 느닷없이 정지하는 바람에, 앉아 졸던 몇몇 사람들은 옆자리 칸막이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아 진짜 뭐야? 아우….”

“어? 저건 또 뭐… 어?”

천장의 흰 면이 양옆으로 싹 갈라지더니 메로나처럼 생긴 연록색 금속 바가 착착착 내려왔다. 대략 일 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서 하나, 둘… 그렇게 열차의 첫칸부터 막칸까지 일렬로 나란히 등장하더니만, [승객 여러분께 알립니다, 스프링클러가 이제 곧 작동하겠습니다] 하는 메시지와 함께 물줄기가 촤르륵 회전하며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당연히 비명을 지르고 일어나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다. 아아악! 전화! 전화! 책! 이거 가죽인데 어쩔 거야! 사람 살려! 어푸푸푸 누가 물 좀 이거 빨리 꺼! 대중교통이 사람잡네! 이거 책임자가 누구야! 문 열어! 창문! 창문 열어! 고속 열차에 창문이 어딨어! 비상문 여는 방법 아는 사람? 알게 뭐야 제기랄! 이때 누군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겼는지, 또다른 메시지가 재생되었다. [열차는 이미 정지한 상태입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열차는 이미 정지한 상태입니다. 침착히 차장의 안내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까적에 멈춘 열차에서 뭣하러 브레이크는 또 걸어? 누구야? 다른 칸에서 걸었나보지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유? 왜 엄한 남한테 시비여? 됐고 물이나 끄라고 차장! 차장! 아 오늘 일진에 물조심 하래서 웃었는데! 끄아아아악 내 코트!

이와중에 유일하게 평온히 제자리에 앉은 이는 사랑 뿐이었다. 그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서, 어서 물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열차 운전석도 당황했는지, 마이크 켜는 소리가 났다가, 마이크를 뭘로 툭툭 쳤다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가, 족히 오 분은 지난 후에야 스프링클러가 꺼지더니 천장 안으로 주섬주섬 접혀 들어갔다.

[아, 아,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신원 미상의 칠십대 노인의 시신이 잠겨있던 컨트롤 룸에서 발견되어 열차가 잠시 정지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스프링클러는 시체에 버튼이 잘못 눌려 작동한 것이며 화재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시신이 수습되는대로 운행이 정상 재개될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입니다. 승객 여러분께….]

사랑은 살며시 우산을 내려 접었다. 물방울이 우산 끄트머리를 타고 얌전하게 흘러내려갔다. 사람들은 젖은 머리와 옷과 짐과 신발을 처벅대며 원성을 높이거나 뉴스를 제보하거나 셀카를 찍었다.

2호선 고속라인 타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끽 해야 삼십분인데, 이 난리에 시간이 무려 이십분이나 초과되는 바람에 스케줄이 꼬인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음 고속 열차까지 줄줄이 시간이 밀려서, 대기 승객들까지 덩달아 불편을 겪게 되었다. 아무튼 많은 난리가 있었고, 경찰이 컨트롤 룸에서 시신을 수습해간 후 열차는 운행을 재개해서, 사랑은 그럭저럭 여덟시 반 경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열차의 문이 열릴 때 상층 벽면에는 이미 전남 2호선에서의 해프닝이 한줄 뉴스로 지나가고 있었다. 신원 미상의 시신이 컨트롤 패널을 눌러서 비상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사건 발생, 고속 2호선 열차의 승객들은 출근길에 갑작스레 물벼락을 맞음.

사람들은 제각기 처벅 처벅 물소리를 내며 열차에서 내렸다. 사랑은 좀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에 내렸고, (혼자서만 물을 안 맞은 것이 왠지 뻘쭘했다) 이제 서울 내선 호버 버스로 옮겨 타야 했다. 어젯밤에 미리 확인해둔 통근 정보에 의하면, 버스를 타고 삼차 교차대교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회사 바로 앞이다. 그는 왠지 긴장되는 느낌에 어깨를 의식적으로 폈다. 보살 컴퍼니라니, 대체 어떤 곳일까?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뭘 할까? 내가 제일 늦었으면 어쩌지? 아, 첫날부터 그럼 안 되는데. 환승 안내판에 의하면 300번 버스 정류장은 출구 12번. 12번…….

“어땠어?”

“응?”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사랑은 고개를 돌렸고, 웬 꼬맹이의 양갈래 머리를 보았다.

“나 말이니?”

“어. 오리엔테이션 어땠냐고?”

“으 어응?”

열 살이나 되어 보일까 싶은 검은 양복 차림의 여자아이는, 아몬드 초콜렛 바를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사랑은 12번 출구로 향하던 걸음이 서서히 멈추는 것을 느리게 느꼈다. 이 검은 눈은 전에 본 적이 있다.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아이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네왔다.

사랑은 명함을 받아 읽었다.

친정보살 앤 컴퍼니
지원실장 트리오 정예 멤버
흑창해 / 저승 삼신

“흑- 실장님? 이시라고요?”

거의 본능처럼 존댓말이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동시에 사랑은 눈앞의 이 존재가 흑 실장이 아닐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존체 강녕하셨습니까! 이번에 새로 입사한-.”

“최사랑이지. 그럼 이제 갈까?”

“아, 네. 앞장 서시면 따르겠습니다.”

“회 좋아해? 회 먹으러 가자.”

사랑은 잠시 망설이다가, 질문했다.

“이 시간에요?”

“어. 노량진에 단골집 있거든. 오늘 생선이 싱싱하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오늘 저기 그,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로 했었는데요.”

“벌써 끝났어.”

“네? 전 아직 회사에 도착도 못 했는데요!”

“아니 네 것만, 네 오리엔테이션만 끝났다고. 다른 애들은 뭐 알아서 하겠지.”

“아 그런 거군요.”

사랑은 한결 안심이 되었다. 슬슬 앞서 걸어가는 흑 실장의 뒤를 졸졸 따르며, 그는 명함을 이리 저리 살펴보다가 뒷면도 뒤집어서 보았다. 무슨 문구가 찍혀 있었다.

‘이게 뭐지? 착한 년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나쁜 년은 살아서 어디든 가고, 미친 년은 생사를 넘나든다?’

“외워.”

“아, 네! 외우겠습니다!”

“우리 지원실 좌우명이야.”

“네!”

“신입은 빠릿해서 좋네. 하긴 우리 인연이 깊긴 하지.”

흑 실장은 아몬드 초콜렛을 다시 한 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 방긋 웃었지만, 잔뜩 긴장해서 뒤에서 따라오는 최사랑 신입사원으로서는 각도상 볼 수 없는 웃음이긴 했다. 흑 실장은 택시 정류장 쪽으로 경쾌히 걸으며 흥얼흥얼 노래말을 읊었다. 비내리는 2호선, 고속 열차에에, 살떨리는 차창 너머로, 두구두구두구, 빗물이 흐르고, 내웃음도 흐르으고, 뒤져버린 그새끼도 흐르으네, 빠밤빠밤 빠밤, 번쩍 번쩍 이는, 화려 한 천벌 속에, 에에에, 그때 죽인 그새끼, 말도 많던 그새애끼, 깔끔히 처리했는데- 백날을 찾아 봐, 시체는 미래에, 미래에 갖다 버렸어어.

“실장님, 그런데 신발이 참 예뻐요. 어디서 사신 거예요?”

“너도 고무신 좋아해? 회사에 많아. 깔별로.”

“그렇군요! 광택이 반짝거려요.”

이쯤해서 같은 시간 광주의 최막달 씨는, 빵집에서 단팥빵과 소보루, 크림빵과 마들렌을 고르다가 자신도 알 수 없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안심을 했다. 그가 걱정해온 것과는 달리, 그의 딸인 최사랑 씨는 마음만 먹으면 저승 삼신한테도 뻔뻔하게 아부할 수 있는, 친정 보살 앤 컴퍼니에서 괜히 뽑은 게 아닌 보살의 그릇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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