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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이란 대단한 것이다.
골목마다 수도 없이 설치되어 있던 CCTV 덕분에, 그 참혹한 순간은 마치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재현될 수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폼페이 최후의 날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지던 순간들을, 그저 기록과 유적과 생존자들이 남은 평생을 시달려야 했던 마음과 육체의 질병으로 이해해야 했던 것과 달리. 그 도시의 마지막은 생생한 기록으로 남았다. 적어도 CCTV가 기능을 유지하던 그 마지막 찰나, 혹은 지하로 연결되던 광케이블이 끊어지기 전의 그 마지막 한 순간까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어떤 특별한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수십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동시에 찍어, 매우 천천히 영상을 이어붙인 것처럼, 뉴스들은 360도로 빙 돌아가며 시청자들에게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목격하게 했다. 등 뒤에서 해가 하나 더 떠오른 듯 번쩍 하는 빛을 돌아보던, 갈색 아기띠를 멘 아이 엄마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고, 터미널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높다란 건물들, 홈플러스며 뉴코아며 아이즈원 같은 건물들이 마치 괴물이 밟고 지나간 성냥갑처럼 부서지던 그 모든 순간들을.
종말의 날을. 

“아니, 잠깐만요. 이런 걸 수십 번이나 계속 돌려 보는 건 아무래도…”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 말에 반박했다. 

“뭐, 혼자 점잖은 척 하지 마쇼. 사람들이 원래 그런 걸 좋아하는 걸 어떡하라고.”

화면에는, 사방의 CCTV들이 기록한 그 날, 그 순간의 기록들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왜, 예전에 걸프 전이라고 있었잖아요.”
“예전은 무슨, 난 대학 다닐 때였는데.”
“개인정보 드러나는 말 하지 맙시다.”
“자기 개인정보 자기가 푸는 거야 어쩌겠어요. 그래서, 걸프 전이 어땠는데요.”
“그게 폭격이 그야말로 위성으로 생중계된 첫 번째 전쟁이었을 거예요. 그때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거든요. 전쟁을 게임처럼 여기는 거냐. 이런 건 부당하다. 사람의 죽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그때 걸프 전 생중계의 시청률이 말이죠.”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봐도 된다는 건 아니죠. 거, 스너프나 섹스몰카 있으면 좋다고 찾아보실 양반이네.”
“굳이 찾아보진 않아도 있으면 볼 수도 있는 거지. 선비질 하시기는.”
“선비질? 지금 인간 쓰레기라고 인증 하시는 겁니까?”

부천의 부도심중 하나인 상동역 지상에서 폭발한 원폭은, 비록 1945년 나가사키를 때린 팻보이의 두 배가 조금 넘는 규모의, 현재의 기준으로는 무척 작은 폭탄이었다. 하지만 이 폭탄은 넓게 뚫린 길주로를 따라 인천 삼산체육관부터 부천시청, 그리고 그에 수직으로 연결된 상동로와 송내대로, 그리고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는 송내역 광장까지를 단숨에 증발시키고, 반경으로 그 2.5 배 이상 거리 안에 들어가는 지역들을 열복사와 폭풍으로 초토화시키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단숨에 증발되는 구역의 가장자리 쯤에 대학병원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2차병원 치고는 규모가 좀 되는 병원 몇 곳이 주변에 더 있었지만, 대부분 이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부개에 있는 병원은 주변에 있는 오피스텔들과 함께 수많은 시멘트 더미를 남기고 붕괴했고, 삼산동에 있던 여러 개인병원들이 줄줄이 자리잡고 있던 빌딩도 시 경계를 따라 삼산동에 높이높이 올라갔던 신도시 개념의 아파트 단지들과 함께 싹 사라졌다. 그나마 가까운 인천 계산동에 있는 병원은, 별관은 박살이 났지만 응급실이 자리잡은 본관동과 기자재들은 어느정도 남아 있었다고도 하니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뭔가를 쓸 수 있는 상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왜, 원폭이다 보니 아무래도 피폭 문제도 있을 테고.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었다면 지금의 이 참변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는 이 병원 역시, 지상 2층보다 높이 있던 부분들은 거의 철골만을 남기고 사라진 상태였다. 폭발 직후의 돌풍으로 고층 건물들이 줄줄이 무너지며 벌어진 일이었다. 로비와 지하, 정확히 말하면 장례식장만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그 안에 있었던 이들 대부분이 이미 사라졌거나, 죽었거나, 혹은 숨이 붙어 있어도 곧 장례식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가, 고작 몇 초의 여유를 남기고 다시 숨이 끊어져 버린 듯 했다. 
그리고 여기, 이 상황에서 무척 난감해진 이들이 있었다. 

“이 상황이 되었는데 저런 소릴 하고 싶나… 극혐….”
“어쨌든 기술이란 참 좋은 거예요. 우리가 입원했던 병원이 이렇게 콩가루처럼 사라지는 걸 3D로 다 볼 수 있다니.”
“잠깐,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니까요. 지금 사람이 한두 명 죽었어요?”
“육체가 없어져도 사람은 패드립을 칠 수 있는 거군요….”
“그러게요. 어떻게 농담이라고 그런 걸 농담이라고 한답니까.”
“왜, 우린 이런 농담 좀 해도 괜찮아요. 이 지구상에, 이 일로 농담해도 되는 건 우리 밖에는 없을 걸요?”

조금 전까지 낄낄거리던 이가 갑자기 서늘하게 빈정거렸다.

“우린 이 병원의 유령들이잖아요.”

유령. 
뭐, 그 말만이 정확하게 이 상태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없이 떠도는 영혼이라는 점에서. 그 점에서 망령이라든가, 확실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 말들, 귀신이나 조상귀, 뭐 그런 말들은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육체가 없지만 아직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아니, 육체를 잃었지만 여전히 빈정거릴 힘만은 남아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몇 명 있는 겁니까? 열둘? 내가 수술 받을 때 열 두 명 있었는데.”
“저 폭발 있기 사흘 전에, 내가 들어올 때 열여섯.”
“그리고 의식 복구한 사람 있어요. 내가 저 날 아침에 받았는데 열셋이었고요.”
“내가 저 폭발 한 시간 전에 마취 들어갔는데 그때 열다섯이었으니까, 열다섯이 맞을 겁니다.”
“세어 볼까요? 나부터, 하나.”
“둘.”
“셋.”

정확히는, 이들은 바로 그 사라진 병원에서, 수술 직전 의식을 업로드해 둔 사람들이었다. 

“열여섯. 와, 열여섯 명의 돈 많은 사람들, 뭐 그런 거예요?”

그리고 빈정거리던 이가, 스스로를 열여섯으로 칭했다. 열세번째 사람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 누군지 몰라도 눈 앞에 있었으면 두들겨 팼을 것 같아.”

짜증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열여섯 번째의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이 대학 병원에서는, 주로 뇌와 관련된 수술을 받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되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의식 복제 서비스를 옵션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큰 수술을 받고 나서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성격이 변하거나, 말이나 행동이 어눌해져서 예전의 직업에 종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로, 병원의 원격지 서버에 제공된 용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현재로서는 동시에 최대 열 여섯 명까지 의식을 저장해 둘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목숨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생할 확률이 높지도 않으며, 필수적인 것도 아닌 이런 일에 심평원이 순순히 돈을 내 줄 리 없으니, 당연하게도 이 서비스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그런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뇌수술을 받게 되는 이들, 그 중에서도 젊고 건강하며 소위 ‘창창한’ 사람들에게 이 서비스를 많이 권했지만, 실제로 이 옵션을 선택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젊고 건강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열여섯 번째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잖아요. 나 포함해서, 여기 의식 업로드 해놓고 수술할 동안 자기 머리만큼은 안전하게 보존하겠다, 혹시라도 수술 했다고 기억력이 손톱만큼이라도 가물가물 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여기에 웬만한 신차 한 대 가격 넘어서는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그것의 문제지.”

열세 번째 사람이, 조금 화가 난 듯한 태도로 대꾸했다. 

“자기 밑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관리에도 열성을 다해야 하는 법이고….”
“그렇게 책임질 사람이 많으면 아예 미국이나 뭐 그런 데 가서 받지 그랬어요, 수술.”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여기서 싸워서 뭐 하자고.”
“그 논리대로라면 나는 가장이고 나는 남자고 나는 회사 경영자라 내 밑에 직원이 몇 명이고, 뭐 그런 식으로 목숨을 서열을 정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뭐, 님은 그렇게 서열을 매겨도 자기 목숨이 한참 상위권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지만.”
“….”
“그런데 다 죽어버렸네.”
“이보세요!”

실제로 언성을 높여 고함을 치진 않았지만, 누구라도 지금 저 사람은 고함을 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상태로, 열세 번째 사람은 화를 냈다. 
그 사람 말고 다른 이들도, 다들 부글부글 부아가 끓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으, 이럴 거라면 저 사람 좀 차단해 버리면 좋겠는데.”

일곱 번째 사람이 중얼거렸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면서요. 기술 문제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요. 개개인을 저장하는 데이터 테이블이 다를텐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해.”
“업로드 되기 전에 설명 들었잖아요. 업로드 된 다른 사람의 의식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개인정보는 말하지 말라고.”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파일 시스템을 다르게 하든, 뭔가 방법이 있었을 텐데.”
“기술적으로 뭔가 잘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 의식이라는 게 그렇게 오묘하다는 말이죠.”

사람들은 열여섯 번째에게 불만을 토로하다가 말고, 이 의식 업로드 시스템의 부작용이자 버그로 알려진 이, “천국의 대화방”이라 불리는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병원에서 동시에 업로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슬롯은 총 열 여섯 개. 각각의 슬롯은 서로 물리적으로 분리된 채 한 시스템 안에서 연결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현상이 있었는데 발견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업로드된 사람의 의식들이,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인지하고,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먼저 깨어난 사람이, 실제로 오프라인, 아니, 산 몸으로는 만난 적이 없는, 아직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다른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상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사람의 몸은 수술 중 죽었지만 아직 서류 처리가 끝나지 않아 서버에 의식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말하자면 죽은 자와의 대화였다. 이런 증상이 보고되자, 사람들은 이 현상을 “천국의 대화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영혼이라는 게 참 희한하단 말입니다. 과학기술이 온갖 것을 다 알아낸 것 같은 시대인데도, 아직도 분석이 끝나려면 멀고 먼 게 이거예요. 여기 업로드되면 마치 마음의 장벽이 없어진 것처럼, 서로 파일이 다르고 무슨 데이터 베이스가 다른데도 대화가 된다는 거죠.”
“사후세계가 이럴까요.”
“사후세계가 이런 게 아니라 우린 이미 다 죽었고요.”
“아, 저 열여섯번째 분 진짜.”

누군가가 대놓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열여섯번째는 태연히 대꾸했다.

“거, 다들 CCTV에 올라온 것 마르고 닳도록들 봤으면서 그래요? 우리가 수술받던 병원이 장례식장 빼고 싹 날아갔는데, 수술 받던 우리 몸도 같이 날아갔을 게 뻔하지 않겠어요?”
“아니, 그래도 사람이 말을...”
“혹 폭발 직후에 살아 있었다고 쳐 봐요. 근데 아까 뉴스 들었잖아요. 건물도 날아가고, 의료진들도 다 죽었다고. 다들 머리 째고 해골 열고 뇌 드러내 놓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의사들이 죽었으면, 다른 기자재들 다 멀쩡하다고 치고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우린 지금 어떻게 멀쩡한 거예요?”
“중요 백업은 소산시키는 게 원칙이라 그래요.”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말했던 사람이 설명했다. 

“백업같은 것을 할 때 원칙이 그래요. 원본하고 사본을 같은 자리에 뒀다가 화재라도 나면 소용없으니까,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이중화 삼중화 해서, 여러 곳에 소산백업을 하는 게 원칙이죠. 요즘은 클라우드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를 해서 더 편해졌지만, 클라우드가 나오기 전에도 그렇게들 했어요.”
“원칙적으로는 말이죠.”

아홉 번째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런 게 재해복구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져도, 실제로는 예산이나 비용 문제로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래도 여기 병원은 양심이 있네요. 그런 걸 원칙대로 하고 있고.”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것보다 아X존의 시스템을 쓰는 게 더 싸서 그래요.”
“그래요?”
“이거 AMS 쓰고 있던데요.”
“와, 그런 건 언제 또 보신 거예요.”
“내 의식이 업로드된다는데, 시스템이 안전한지는 보고 누워야죠.”

그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사람이,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근데 그래봤자 수술하다 죽거나 하는 정도도 아니고… 시체도 안 남게 될 줄은 몰랐죠.”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글쎄요? 시체가 없으니 일단 실종이 되나? 실종 걸었다가 실종 만료되면 사망으로 처리하는 것 아니에요?”
“근데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맛을 아나요. 핵폭탄이 떨어져서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누가 봐도 이건 백프로 죽은 거잖아요. 이럴 땐 어떻게 하나… 누구 법잘알 없어요?”
“법잘알이 뭐예요, 법잘알이. 법조인도 아니고.”
“제가 그쪽 일을 좀 합니다만….”
“오, 레알 법조인 등판.”
“인정사망이라고, 관공서에서 일괄로 처리하는 게 있습니다. 이런 재해 같은 때, 시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이건 반드시 사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여겨질 때요. 이를테면 태풍이 부는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빠졌으면, 누가 봐도 이건 살아서 돌아올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럴 때 쓰는 거죠.”
“아, 그럼 우리도 곧 처리가 되겠네.”
“근데 일단 부천시 행정이 마비 상태잖아요. 부천 말고 다른 데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모두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조금 불편해질 무렵, 열 여섯 번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행정이 문제가 아니라….”

나머지 열 다섯 사람이 전부,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그를 두고 ‘지옥에나 떨어질 주둥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르는 듯이. 

“우리 지금 좀비예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사람.”
“아, 진짜.”
“뇌수술 직전, 혹은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 회복을 기다리던 인간 열 여섯 명. 근데 관공서에서, 병원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서, 우리가 여기 업로드 되어 있으니까 파기를 하라고 명령해 줄까요? 난 정말 모르겠네. 우리 이대로 계속 붕 떠 있는 거 아니냐고요.”
“거,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 좀 상생 좀 합시다. 말을 왜 그따위로만 해요.”

첫 번째 사람이 역정을 냈다. 

“공무원 놈들이야 무능해서 그런 것 까지는 못 살핀다고 치고.”
“무능한 게 아니라, 시청이 여기 병원보다 더 상동에 가까이 있잖아요. 날아가도 공무원들이 우리보다 먼저 날아갔겠네.”
“아니, 다른 데 공무원들이라도 와서 일할 것 아뇨. 그 사람들이 무능해서 우리를 발견 못 한다고 쳐도, 그럼 우리 자식들이, 가족들이, 우릴 안 챙길까. 그러면 어떻게든….”
“좋겠네요.”

열 여섯 번째가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가족이 남아 있으신 모양이죠?”
“무슨 소리요, 그게.”
“아니, 그런 걸 청구할 보호자나 뭐 그런 분이 남아 계신 모양이라고요. 여긴 되게 애매한 데잖아요. 서울 사람이면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했겠죠. 인천에도 저쪽 동인천 쪽에 대학병원 하나 있고. 굳이 여기로 오는 건 이 동네 사람이잖아요.”
“….”
“폭심지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삼산체육관하고 굴포천 사이에 있는 병원, 동쪽으로는 시청 좀 지나서까지, 거긴 광구라고 해요. 그야말로 폭발하자마자 1초만에 증발해 버렸단 이거예요. 그리고 저기 부평구, 계양구, 그리고 부천시 절반 넘게. 여긴 열복사라고 해서, 순식간에 2천도 이상의 열이 올라가요.”
“그럼 다 타 죽었다고?”
“복사열이라고 했잖아요. 직접 노출되면 타죽고, 콘크리트 잘 발라서 두꺼운 건물이나 지하에 있었으면 살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운이 좋으면 살겠죠. 전신 화상을 입은 상태긴 하지만.”

그냥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는 이야기를, 열 여섯 번째는 무감하게 말했다. 

“근데 군대 다녀오신 분들 여기 많지 않아요? 폭발이라는 건 격렬한 연소예요. 가운데에 산소가 싹 타버린다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뭐다?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요. 상동역 있는 쪽으로 바람이 부는데, 이게 태풍보다 세요. 음속보다도 셀 걸.”
“태풍이 음속보다 느린가?”
“그게… 태풍이 음속 급이었으면 태풍 불 때 마다 소닉 붐으로 건물들 다 자빠졌게요.”
“그럼 우리 가족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열 여섯 번째는 최후의 심판을 내리듯이, 다시 말했다.

“저 CCTV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뉴스에는 올라왔어요. 버섯구름 말입니다. 아까 말했죠? 공기가 광구로 싹 몰려든다고. 그래서 버섯구름이 생기고 하늘로 높이높이 올라가고. 그리고.”

열 여섯 번째가 화면을 바꿨다. 그 폭발 전후로 일주일 간의 기상 뉴스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폭발이 있었던 다음 날, 수도권 전역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잖아.”

누군가가, 아마도 다섯 번째 사람이 중얼거렸다. 

“잔불이 꺼지는 건가…?”
“지금 잔불이 문제가 아니에요. 아, 민방위 할 때 안 배웠어요?”
“난 민방위 아니에요.”
“민방위 아닌 사람도 지금 저게 뭐가 문제인진 압니다. 저거… 낙진 이야기죠?”

비는, 부천과 인천은 물론, 서울, 인천, 수원, 일산, 김포, 그보다 더 먼 곳까지 내리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죽음의 비였다. 

“이제 어쩌지?”

반나절 가까이 침묵하던 대화방에, 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청구해 줄 사람이 없으면 우린 이대로 계속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저 재수없는 사람도 포함해서?”

누군가 불만을 터뜨렸다. 그 재수없는 사람이 열 여섯 번째를 의미한다는 것은, 부연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게 문제예요? 지금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아니, 잠깐만. 우린 이미 죽은 걸로 봐야 합니다. 그건 그렇고 삭제될 땐 되더라도 사람의 의식인데, 좀 존엄하게 삭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존엄하지 않을 건 뭐가 있어요. 어차피 그동안에도 수술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아, 약관 안 읽어 보셨구나…. 약관에 보면 자기 종교에 맞는 사제나 뭐 그런 사람에게 고해를 하든가, 경을 읽어주거나, 뭐 그런 걸 이 남아있는 의식에게 해줄 수 있어요. 왜, 그래서 수술 전에 종교 쓰잖아요.”
“어떡하죠. 나 무교 썼는데.”
“그럼 지금 최악의 경우는 뭘까요?”
“서버비를 안 내서 갑자기 닫히는 게 아닐까요.”
“그거라면야.”

그리고 한참 입을 닥친 채 잘 듣고 있던 열 여섯 번째가 문득 말했다. 

“저기 상동역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갑작스럽게 모든 게 닫히기로 말하자면.”
“이 새끼가!”

아마도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인간 중 절반 이상은 열 여섯 번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말을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많은 화면이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여기 머물러 있는 의식들이 심심하지 않게 해 주기 위해 뉴스 같은 것을 보여주는 장비다. CCTV에 연결해서 바깥을 보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몇 번이고 CCTV를 돌려 보았다. 뉴스에서는 계속 상동역의 이야기가, 버섯 구름과 죽음의 비가, 초토화된 길주로의 거리 풍경이 보였다. 건물들이 풍압에 싹 무너지며, 부천 한복판에서 멀리 계양산이 제대로 바라보였다. 
열한 번째 사람이 문득 생각했다. 오늘이 며칠이지?
네 번째 사람이 문득 생각했다. 그 폭발 이후로 며칠이 지난 거지?
여덟 번째 사람이 문득 생각했다. 그 폭발 이후로 꽤 지난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주의 뉴스만이 계속 반복되는 거지? 복구가 이루어지고는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누군가가, 아마도 아홉 번째 사람이,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SNS에 접속하려 애썼다. 네트워크는 느렸고, 제대로 접속되지 않았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로그인했던 것은 2년 전, 그리고 그 마지막 글에는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2년 전?!”

세 번째 사람이 경악했다. 그는 아홉 번째 사람을 채근하여, 그가 팔로우한 사람들의 최근 타임라인을 봐 달라고 말했다. 
타임라인은 1년 반 전에서 완전히 멈춰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라왔던 트렌드는, 세계대전, 전쟁, 지구종말,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게 뭐야….”

그들은 저마다 울고 흐느끼다가, 갑자기 모두가 죽어버린 지구 위에 남아 버린 사람들이 된 기분으로, 마지막 인류애를 담아 서로를 확인하듯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은 몇 번째 사람이고, 누구이고 무얼 하던 사람이라고, 그렇게 최후의 인사를 건넸지만, 열 여섯 번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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