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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황태환 외, 황금가지, 2012년 8월


날개 (http://blog.alddin.co.kr/twinpix revinchu@empal.com)



 제2회 ZA 공모전 수상 작품집입니다.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21번 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일단, ZA 공모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소재 공모전이지만 횟수가 오래된 것도 아니고, 홍보가 많이 된 것도 아니니까요. ZA란 'Zombie Apocalypse'의 약어입니다. 즉, 좀비로 인해 종말을 맞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가리킵니다. 좀비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화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다뤄진 좀비지만, 한국에서 생산되는 영화나 소설은 매우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좀비 장르는 꽤 마니아를 갖고 있기에 황금가지에서는 이렇게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 공모전을 열 정도인 거지요. '좀비' 소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공모전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특정 소재의 소설만 받는 공모전이 열리고 수상집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습니다.

 사실 처음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과연 응모자가 있을까, 있다 해도 읽을 만한 소설들이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1회 수상집이 출간되고 읽어본 바로는 꽤 괜찮게 읽었습니다. 설익은 면도 당연히 있었지만, 아주 나쁜 느낌은 아니었고, 시장에서도 3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던 단편집이었습니다.(게다가 드라마의 완성도나 저작권 문제로 말은 많았지만 황희 작가의 [잿빛 도시를 걷다]가 2011년 12월 11일 MBC 특집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로 최초의 한국식 좀비 드라마로 각색 방영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2회 수상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황태환, 임이래, 최철진, 뒤팽, 황금가지, 2012년 8월)입니다. 1회 수상집인 [섬, 그리고 좀비]와 마찬가지로 대상 소설의 제목에다가 '좀비'를 달아서 독자들에게 좀비 단편집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회 수상집보다 나은 소설도 있었고, 1회 수상집에 실린 단편보다 아쉬운 면이 더 큰 단편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그래도 역시 한국 작가의 좀비 소설을 보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이 단편집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또한 앞으로 재능 있는 장르 작가를 배출할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럼 단편집인 만큼, 한 편씩 짧게나마 감상을 밝혀보겠습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 / 황태환

 책으로 나오기 전에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 {행복한 시체들}(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407)로 읽었던 단편입니다.(공교롭게도 네이버 오늘의 문학의 마지막 실린 장르 단편이기도 합니다. 양질의 한국 장르 단편을 볼 수 있었던 창구 역할을 했는데, 끝을 맺어서 아쉽게 되었지요.) 근 100편의 응모작 중에서 당당히 수상을 한 이 작품은 본심에서 영화 [이웃집 좀비]의 오영두 감독과 환금가지 편집장이 함께 만장일치로 뽑은 작품입니다. 그만큼 구성이 완벽하고 흡인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는 {행복한 시체들}로 제목을 바꿔 수록 했지만, 책에서는 다시 원래 제목인 {옥상으로 가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행복한 시체들}이 주는 은유의 효과가 있지만 아무래도 다 읽고 나면 {옥상으로 가는 길}이 더 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좀비 소설을 쓴다고 하면 여러 가지 시작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좀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작되면 세상에 퍼지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한편, 좀비가 이미 퍼진 시점에서 시작을 하면 그로 인해 좀비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거나 혹은 좀비가 되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시작점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좀비 소설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택한 것은 이미 세상에 좀비가 전염되어 멸망한 세계입니다. 한 건 물에 다섯 명이 살아남아 헬기의 보급을 통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왜소증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고 건물에 고립된 채로 보급품을 받게 되자, 주인공만이 쓰레기 배출구를 통해 옥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로지 주인공을 통해서만 식량을 받을 수 있지요. 이런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해 놓고, 인간의 이기심, 욕망, 선의와 악의의 엇갈림을 선명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탄탄한 구조 위에 인간의 탐욕와 실수를 매력적인 갈등 요소 안에 녹여놓았습니다. 좀비가 주가 된다기 보다는 그로 인해 인간의 황폐한 내면을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씁쓸한 맛이 느껴지고, 인상에 강렬히 박힙니다. 어떤 소설들은 읽자마자 머릿속에서 지워지며 내용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소설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그 강렬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후자였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작은 의심이 암처럼 퍼지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글의 구성 또한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서 파고드는 점이 마음에 든 단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수상작보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구소B의 침묵 / 임이래

 뒤의 두 작품 보다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운 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글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모짜르트를 만난 살리에르 같은 주인공이 천재 연구원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그의 어두운 면까지 엿보는 점은 긴장감을 주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병렬 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장황해 보이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연구소를 가기까지 분량이 상당히 깁니다. 독자는 제목에서부터, 또 좀비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연구소에 진입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미적거리면서 너무 천천히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 구성상 앞에서 마음이 있는 여자 연구원에 대한 묘사와 과거 천재 연구원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세하게 앞에서 푸는 것보다 약간은 현실 이야기 전개와 병행하면서 과거를 풀어갔어도 괜찮았을 듯싶습니다.

 여러모로 분량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낀 단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소 안에 들어가면서는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두 남자의 긴장감을 주는 구성과 앞에서 정성껏 심어놓은 복선이 풀어지는 점은 퍼즐을 맞추듯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또한 쉽게 짐작이 가는 것이라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묻지 마 / 최철진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긴 분량을 자랑하는 글입니다. 폐쇄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 이야기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토속적인 면을 잘 살려서 중간중간 웃긴 구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집에서 가장 실망한 글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 정돈이 안 되었다고 할까요? 이 분량을 반으로만 압축할 수 있었다면 정말 훌륭한 글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장점이 많았는데, 그걸 너무 늘어지게 풀어놓았고 정신 산만하게 편집을 해 놓아서 독자가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몇몇 전개는 뻔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느리게 전개가 되다보니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소재와 인물을 가지고도 매력적인 블랙 코미디의 참신한 작품이 되지 못하고, 퇴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마구 늘려 쓴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하는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이는 글이라고 할까요. 글에서 디테일은 중요하지만, 이 소설은 이도저도 아닌 게 된 것 같습니다. 재미나 흡인력이나 현실감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다이아몬드 원석인데 하나도 가공을 하지 않은 느낌의 글입니다. 이야기가 잡다하게 튀고 인물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며,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인물을 줄이고 개성을 더 부여했다면 글이 살았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에피소드는 바로 보여주지 않고 서술로 넘어가고 핵심만 묘사했다면 깔끔하고 근사한 글이 나왔을 거란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긴 분량만큼 페이지를 넘기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끝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했던 글이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 뒤팽

 주인공인 강혁은 김아영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영은 좀비에게 긁혀서 조금씩 좀비가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문을 두고 먹을 것을 주면서 강혁은 희망없이 아영을 지킵니다. 콜렉터라는 도둑이 명화를 훔치고 난 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적어놓아 많이 이야기됩니다. 철구 아저씨라는 사람이 강혁과 만납니다. 강혁은 나중에 철구 아저씨가 콜렉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은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콜렉터라는 도둑을 엮었는데, 이 결합이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소품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성입니다. 결국, 아영은 좀비가 될 것이고, 이야기는 다르게 뻗어나갈 구석이 없습니다. 깔끔한 문장으로 쓰인 작품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진부해서 아쉬운 글이었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1회 수상작에 비해 좀비라는 소재를 더 작가들이 잘 갖고 논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회 수상작에 실린 작품들이 비슷한 색채의 글들이 실렸던 것에 반해 2회 수상집에는 소재들이 각기 다른 느낌이라 읽는 맛이 있었습니다. 좀비가 퍼진 세상에서 인간 심리에 주목한 수상작 [옥상으로 가는 길]도 단연 인상에 남는 작품이고 [연구소B의 침묵]도 아직 좀비가 세상에 퍼지기 전, 광기를 지닌 한 연구원이 개발한 좀비 바이러스와 거기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배경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긴 [나에게 묻지 마]도 한국형 좀비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소품이면서 깔끔하게 좀비 이야기를 풀어낸 [별이 빛나는 밤]도 있었고요.

 이렇게 각기 색깔이 달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인상은 1회보다 더 기억에 남을 듯싶습니다. 물론 대상작인 [옥상으로 가는 길]을 제외하면 완성도 면에서는 다른 세 편이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발상이나 전개에서는 장점도 많은 글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제2회 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 출간되어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에 장르 단편 코너도 중단된 시점에서 황금가지가 계속 특이한 장르 공모전을 연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얼마 전 발표된 3회 심사평에는 당선작이 없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 장르 공모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독자 입장에서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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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담 13.02.04 22:56 댓글

    3회는 개인적으로 더 실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에 수상작과 전체 응모작들 두루 비교해 봤는데, 뭐랄까요, 도무지 수상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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