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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
C. S. 루이스, 공경희 옮김, 홍성사, 2009년 3월·2011년 7월·2012년 4월


pilza2 (pilza2@gmail.com http://www.pilza2.com)



 〈나니아 연대기(이하 나니아)〉와 함께 루이스의 대표적인 장르소설 시리즈인 우주 3부작은 나니아 이상으로 특정 종교의 사상을 주입하고 홍보하는 알레고리로 가득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소설적 재미가 떨어져 나니아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런 선입견을 품고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기독교 소설은 아니었다. 대신 서문에서 스스로 밝혔듯 올라프 스태플든의 영향이 느껴지는데, 특히 [이상한 존(오멜라스, 2008년 7월)], [스타메이커(오멜라스, 2009년 1월)]에서 스태플든이 제시한 초지성체의 선악을 초월한 도덕관에 대한 루이스의 응답 혹은 반론이라 할 수 있겠다.
 루이스는 선악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선함은 기독교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는 식으로 에둘러서 옹호하고 있다. 블레이크에 대한 반론으로 [천국과 지옥의 이혼(홍성사, 2003년 7월)]을 썼음을 떠올린다면 새삼스럽게 여겨지진 않을 것이다.

1. 침묵의 행성 밖에서

 표면적으로는 SF지만 루이스는 처음부터 SF의 경향을 따를 의지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 외적으로는 베른과 웰스 시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품에 그려지는 우주여행의 방법, 행성의 풍광은 집필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우주선의 비행 원리 같은 건 처음부터 생략하여 다루지도 않았으며 외계 행성으로 간 인간이 이질적인 환경에 금방 적응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대기, 중력, 기후, 온도 등 생존에 필요한 요소가 한둘이 아닌데 그 모두가 지구와 흡사함은 물론이고 잡초를 식량으로 쓸 수 있다는 등 편의주의 설정으로 퉁치고 지나간다.
 어쨌든 갑자기 납치되어 화성에 오게 된 언어학자 랜섬은 순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원주민 흐로스, 요정이나 천사 같은 존재 엘딜, 철학자이자 지식인 소른, 엘딜의 대표이자 화성의 왕인 오야르사, 신적인 존재 말렐딜을 차례로 만나며 다른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갈등이 빠질 수 없는 일. 라이벌에 해당하는 웨스턴 박사(이름부터 상징적이다)는 서구 제국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로 화성을 정복하려는 야욕에 불타고 랜섬은 이에 맞서게 된다. 제국주의와 자연 친화적인 원주민의 대립, 그리고 반대편에 감화되어 맞서 싸우는 백인 주인공 이야기는 영화 〈아바타〉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전형적이고 흔한 줄거리다.
 다만 랜섬은 [양심의 문제(제임스 블리시, 불새, 2013년 11월)]의 루이스 수사와는 달리 신앙적 고민에 빠지진 않았다. 오히려 외계의 존재를 통해 기독교 사상을 이해한다는 건 나니아의 아슬란이 이교도의 사자신이 아니라 예수의 상징임을 역설한 루이스다운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2. 페렐란드라

 속편인 [페럴란드라]는 전작 이상으로 편의적인 설정으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아닌 요소는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금성이 무대인데, 귀찮게(?) 우주선을 타고 갈 필요조차 없다. 이제는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간단하게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으며, 역시나 환경에 적응할 우려도 없고 사방에 맛있는 과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낙원이 펼쳐진다. 외계는 더 이상 낯선 환경도 아니고 그저 사변 전개를 위한 무대장치에 불과해졌다는 느낌이다.
 금성이 상징하는 바는 간단명료하다. 외계에 펼쳐진 에덴 동산인 것이다. 이브의 선악과 이야기가 외계판으로 재현될 위기에 처하자 말렐딜은 랜섬을 보내 천사 역할을 맡기고 악마(?)에게 혼을 빼앗긴 웨스턴이 다시 등장해 악마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기독교 알레고리는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화되었고 랜섬의 노력 끝에 금성판 에덴은 지구에서와 달리 왕과 왕비(곧 아담과 이브)의 승리로 끝난다. 선악과를 먹지 않은 이들은 앞으로 원죄가 없는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펼쳐나갈 것인가? 그런 희망과 기대를 품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3. 그 가공할 힘

 세 번째 작품이자 완결편인 [그 가공할 힘]은 전작들과 성격이 조금 다른데, 보다 어둡고 심각하며 분량도 많다. 무대는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국 촌구석(?)에서 세계와 인류의 운명이 걸린 최후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화성과 금성에서 밀려난 매크로브(나쁜 엘딜)는 지구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승리를 잡으려 하고 선한 엘딜이 이를 막기 위해 나선다. 전자의 조종을 받는 국공연은 나치식 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는데, 본작의 주인공 마크는 출세와 신분상승을 꿈꾸다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나가는 건 아닌’ 국공연에 붙잡히게 된다. 한편 아내 제인은 예지몽을 꾸고 랜섬을 만나 감화되어 그와 함께 행동하게 된다. 양측이 승리를 위해 노리는 인물은 바로 고대의 마법사 멀린이다. 이야기의 열쇠를 쥔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과거와 전설, 마법 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악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에 맞설 대안으로 고대의 마법을 제안한 셈이다.
 본작이 2차대전 중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대립구도를 만든 작가의 함의를 짐작케 한다. 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루이스가 보기에 2차대전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일으킨 비극이며 과학기술이 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공연은 그에 대한 상징이며 특히 경찰을 조종하는 대목에선 권력의 남용과 국가 폭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도구일 과학기술을 악의 수단처럼 묘사한 본작에 대해 SF팬들이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본작에서 기독교 홍보색이 옅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반에 마크가 예수 수난상을 모독하도록 강요받으나 거부하는 장면이 있는데(2013년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권은희 과장이 발언한 ‘십자가 밟기’에 해당하는 일), 마크가 무교라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그가 거부한 이유는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왜곡된 것에 희생된 실존 인물인 예수의 고뇌를 상상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즉 예수와 기독교가 자체로 올바름의 상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왜곡됨(=악함)에 탄압당했다는 일종의 변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무신론자로 살다가 기독교를 선택한 루이스다운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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