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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까렐 차뻭, 길, 2002년 4월


세뇰 (garleng@naver.com)



1. 들어가는 글

 1996년,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이던 개리 카스파로프가 딥블루에게 패배한 다음 날 신문들은 ‘인간이 기계에게 패배했다’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이대로 컴퓨터가 발전한다면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냐는 우려도 터져 나왔고, 러다이트 운동이 재현되리라는 추측도 있었고, 체스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지적 유희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당시 바둑기사들은 ‘바둑은 체스보다 훨씬 경우의 수가 방대하기에, 바둑으로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날은 아직 멀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5년 3월 15일, 한국 최고의 기사이며 세계 최고의 기사 중 하나인 이세돌은 구글 딥마인드에서 제작한 알파고에게 4:1로 패배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창조물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는 공포는 많은 세월에 걸쳐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으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을 전후해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각성한 기계가 인간에 저항한다는 것은 SF라고 하면 으레 생각나는 대표적인 클리셰가 되었다.
 워쇼스키 자매 감독(당시에는 ‘형제’였다)의 걸작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 3부작에서도 공히 반복된 이 클리셰는 B급 펄프부터 고전 걸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며 그 원인 역시도 단순한 버그부터 시작하여 개별 AI의 수준과 능력에 따라서
 1)AI가 스스로를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 케이스
 2)역으로 자신이 갖지 못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간을 감정적으로 증오하게 된 케이스
 3)철학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판단하고 두 번 다시 인류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 직접 행동을 시작한 케이스
 4)서로 상충하는 명령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그렇게 된 케이스
 5)어떤 종류의 가치판단 없이 논리적 합목적성에만 입각하여 행동한 결과 그렇게 된 케이스 등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그 모든 해석 이전에 최초로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지적인 존재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또한 그러한 존재가 인간을 적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단순한 적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이해한 희곡 작품이 있었다. 체코의 극작가, 까렐 차뻭의 이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2. 작품에 관해

 이 작품의 서막은,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서 인간을 대신해 육체노동을 수행하는, ‘로봇’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생산 공장이 있는 섬에 인권운동 단체 소속인 헬레나 글로리오바라는 여성이 도착해서는 ‘로섬 유니버설 로봇’ 사의 사장 해리 도민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해리 도민은, 처음으로 로봇을 만들어낸 1대 로섬은 유물론자로서 인간의 손으로 인간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어 신의 창조주로서의 위업을 부정하고자 했다는 것, 그 자식이었던 2대 로섬은 로봇의 실용성과 상업적 가치에 주목해 회사의 기틀을 다지고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 것을 설명하고서 자신은 로봇을 통해 인간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창조성과 예술적 가치를 가진 활동에만 전념하게 되는 이상향을 건설하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힌다.
 헬레나는 처음에는 로봇들도 인간과 같은 인권이 있다고 여기고서, 인간 노동자와 같은 권리를 주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나 어떤 감정도 없고 자유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로봇의 모습을 본 뒤 해리 도민을 필두로 하는 관리자들에게 점차 설득되어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해리 도민이 기도문을 외듯 하는 대사는 그의 인물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람이 사람에게 종속되는 일이나 사람이 사물에게 예속되는 일은 끝날 겁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빵을 벌기 위해 분노와 생명을 지불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노동자도 사무관도 모두 다 사라지게 될 겁니다. 누구도 광산에서 석탄을 캐거나, 다른 사람의 기계로 종처럼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19세기의 계몽주의자와 인본주의자들이 품었던 이상을 연상케 하는 그의 의지는, 극히 당연히도 이어지는 1막과 2막에서 꺾이게 된다.
 이 작품은 여러 모로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창세기에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따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작중에서 묘사되는 1대 로섬은 신의 위대함 내지 신성성을 탈색시키고, 인간이 신과 같이 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갖고서 로봇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2대 로섬은 기업인다운 효율성과 합리성을 발휘해 로봇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낼 생각을 했고, 해리 도민에 이르러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아담의 업보로부터 해방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막으로부터 10년이 흐른 1막에서 로봇은 전쟁 병기로 이용되며 증오심을 ‘학습’하고, 전 세계를 덮친 수수께끼의 집단 불임 현상과 더불어(이 현상의 원인은 끝내 작중에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인류의 시대가 끝을 맺는다는 걸 상징하는 서사적 장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로봇들 사이에선 (인간 입장에서 보자면)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라디우스라는 이름의 로봇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 후대의 숱한 다른 작품들에서 지루하리만큼 반복된 ‘기계의 반란’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라디우스는 말한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은 로봇과 다릅니다.
당신들은 로봇처럼 유능하지 못합니다. 로봇은 뭐든지 다 합니다.
당신들은 그저 명령만 내립니다. 공허한 말만 합니다. …(중략)…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라디우스(Radius)라는 이름은, 약간 변형하면 Radiant(빛나는, 찬란한)가 된다. 이 이름은 라디우스가 로봇들을 계몽하는 선각자임을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성서에서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의미로 쓰인 ‘루시퍼(Lucifer)'라는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대목이 특별한 이유는, 타인을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은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 상태의 짐승도 사회성이 높은 종은 무리 내에서 서열을 만들고, 가장 서열이 높은 알파의 권위에 복종한다. 하지만 무리의 생존이라는 생물학적 필요성에 따라 짐승 사회 내에서 생겨나는 권위와, 우열을 갈라 타인을 복종시키는 것 자체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권력욕은 완전히 궤가 다르다. 어떤 이유로건, 무력하고 무리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알파는 축출 당한다(이 과정에서 대개 폭력이 동반되긴 하지만, 알파였던 개체가 부상이나 노화로 인해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면 자발적으로 무리를 떠나는 사례도 다수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권력자는 집단 내에서 자신이 갖는 우월성(과 그에 따른 특권) 자체를 유지하고자 한다. 결국 로봇들은 전 인류를 상대로 봉기하고, 2막으로 이어진다.
 분노한 로봇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 남은 인간들은 격론을 벌인다. 해리 도민은 결국 이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최상의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무언가로 만들고자 했던 자신의 이상은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그의 열망은, 인간을 보다 더 나은 존재로 이끌어 가고자 했던 의지는 결국 역설적으로 바로 그러한 인간에게서 증오를 배우고, 권력욕을 배운 로봇들에 의해 좌절된다.
 남은 인간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로봇들은 스스로를 재생산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내기 위한 생산 공정의 비법을 로봇들에게 알려주는 대신 목숨을 보장받고자 하지만 결국 그 시도는 좌절되고 만다. “세상은 가장 강한 자의 것이다. 살기를 원하는 자는 지배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구의 지배자다!”라는 라디우스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선언과 함께 2막은 끝난다. 이 작품이 ‘기계의 반란’이라는 클리셰를 확립한 최초의 작품인 동시에 독보적인 작품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후에 나온, 해당 클리셰를 따른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인간성을 주로 양심이나 도덕관념, 타인에 대한 연민과 같은 범주로 놓거나 피노키오 컴플렉스를 품은 로봇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이 로봇보다 우월함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의 증오와 권력욕을 배운 로봇에 의해 결국 인간이 몰락함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3막에서는, 로봇의 성격이 곧 인간의 성격임을 가장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대사가 나온다. 마지막 남은 인류의 생존자가, 왜 사람들을 전부 죽인 거냐고 묻자 로봇들은 답한다.



“우리는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무기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승리자가 되어야만 했습
니다.”
“선생님, 우리는 사람들의 잘못을 알아냈습니다.”
(다른 로봇들에게)“너희가 사람처럼 되고 싶다면, 너희는 죽이고 정복
해야만 한다. 역사를 읽어 보라! 인간들의 책을 읽어보라! 너희가 사람
이 되고 싶다면 너희는 정복하고 살육해야만 한다!”


 이 말을 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만큼 낯선 것은 없다”고 독백하며 통곡하는 장면은 21세기인 지금, 이미 기계의 반란이라는 클리셰를 숱하게 접해 온 독자의 입장에서도 지나치기 어려운 울림이 있다. 피노키오 컴플렉스를 품은 로봇은, 대개 (’선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인간성을 동경하며 인간처럼 되고 싶어 하거나 반대로 자신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인간성을 가진 인간을 증오한다.
 하지만 다몬은, 마치 라디우스의 이름이 루시퍼를 연상시키듯 ‘악마(Demon)'를 연상케 하는 이름을 가진 모든 로봇들의 지도자는 악(惡)이야말로 인간됨의 요체이며 증거라고 외친다. 인류의 생존자는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았고, 로봇들 역시도 자신들의 미래가 닫혀 버렸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있던 바로 그 때. 모든 희망의 끝에서 새로운 희망이 태어난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등장하는 수학자 이안 말콤이 말했듯, 생명은 길을 찾아낸다.


3. 나오는 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전, 방한한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대국 결과와는 상관없이 승자는 인류다.” 라고 말했다. 에릭 슈미트 본인은 어디까지나 알파고의 개발자 역시도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만, 이 말은 약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로봇은 인간의 증오와 권력욕을 학습했다. 물론 현실에서 AI가 그렇게 인류를 감정적으로 증오하며 적대할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 과학자들은 거듭해서 말한다. AI의 발전 속도가 점차 더 빨라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HAL9000이나 스카이넷이 될 지도 모른다는 미신적인 두려움을 품을 필요는 없다고. 다만 인간이 어떻게 쓰냐가 문제라고.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이지만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AI가 인간의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인간과 AI를 가르는 기준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인간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다는 관점을 벗어나, 도구와 인간 자체가 동일한 지평에 서게 된다.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한다면, 완전한 자의식을 각성한 AI에게 조종되는 드론과 다족보행 워봇 군대가 산 속에 숨은 인간 저항군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풍경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거듭 말했다시피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그것은 AI가 인간의 ‘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류 자체가 두 종으로 갈려 기존의 종과 현대의 종이 생존 경쟁을 벌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 경쟁에서 인류가 도태되거나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계의 승리가 아니라 숲에 들어온 젊은이가 숲의 사제를 살해하고 황금가지를 손에 넣어 그 자리를 계승한다는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성’의 요체는 그렇게 대를 넘어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의 발달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면, 인간 스스로 인간성을 ‘정의롭고 이타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인간 사회에서 윤리란 지극히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난 규범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실제로 인간 자신이 그렇게 살며, 남들에게도─특히, 개개인보다 사회적으로 큰 권한을 갖고 있는 대기업과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 그를 강요해야 한다(이 글이 거울에 걸릴 즈음이면 아마 총선이 지났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있어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 수준의 AI가 등장하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인간이 그렇게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AI는 ‘인간이 쓰기 나름’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 나름’인 것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으며, 악마의 존재도 믿고, 유령의 존재도 믿는다. 지성을 가진 외계 종족도 아마도 있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것이다.


댓글 2
  • No Profile
    유이립 16.05.07 17:57 댓글

    리뷰보고 읽을려고 방금 도서관에서 대출해 왔어요~

  • 유이립님께
    No Profile
    세뇰 16.05.13 11:09 댓글

    저는 매우 감명 깊게 읽은 작품입니다. 이 희곡이 처음 나온 지는 100년이 넘었고 제가 처음 읽은 지는 10년이 넘었는데도 볼 때마다 새로움. 유이립님도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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